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01 | 302 | 303 | 304 | 30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늘의 아스카 쇼 1
모리 타이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82

 


가슴 펴고 재미있게 살자
― 오늘의 아스카 쇼 1
 모리 타이시 글·그림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7.25.

 


  재미있게 살아가야 재미있습니다. 재미없게 살아가면 재미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삶이란 스스로 일구지, 남이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란 스스로 길어올리지, 남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하루가 재미없다면 스스로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를 한대서 재미있지 않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춤이나 노래를 불러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우스갯소리는 우스울 뿐이고, 우스꽝스러운 춤이나 노래는 우스꽝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재미있을까요. 어떤 삶이 재미있는 삶일까요.


- “제 엉덩이를 보는 바람에, 불쾌한 기분이 드셨나요?” “아뇨, 아뇨! 그, 그렇진. 오히려.” “오히려?” “오히려, 그, 기뻤, 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9∼10쪽)

 

 


  내가 나를 좋아하고 아끼면 무엇이든 재미있습니다. 내가 나를 안 좋아하고 안 아끼면 무엇이든 재미없습니다.


  꼭 이런 책을 읽어야 재미있지 않아요. 어느 책을 읽든, 스스로 마음을 시원스레 열면서 내 마음을 좋아하고 아낀다면, 늘 재미난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아무리 재미나다는 책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꼭 닫고는 이녁 마음을 좋아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다면, 재미난 노래는 퍼지지 못합니다.

  웃으면서 밥을 지으면 밥이 맛납니다. 노래하면서 아이들 손을 맞잡으면 저절로 춤이 이루어집니다. 웃으면서 길을 걸으면 마당에서 맴돌이를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노래하면서 자장자장 아이들을 재우면 하루가 아름답게 빛납니다.


- ‘속옷은 옷 안에 입는다는 본래 용도가 있는 데 반해, 수영복은 물가에서 입는 게 본래 용도라는 설득력! 과연! 그렇담 반대로 물이 있는 곳이라면 수영복 차림으로 있는 게 부끄럽지 않단 뜻이니까. (45쪽)
- ‘그렇구나. 딱히 이런 데서 한다고, 남한테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구나. 방해해서 미안하네.’ (78∼79쪽)

 

 


  모리 타이시 님 만화책 《오늘의 아스카 쇼》(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열다섯 살부터 읽도록 하는 책입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는 걸맞지 않다 할 책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생각이 얕거나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사람한테 ‘이야기샘이 솟는 길’을 느끼도록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재미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인데, 열다섯 살 밑 아이들은 굳이 이 만화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빛낼 만해요.


  다만, 이 나라 아이들은 열넷이든 열다섯이든 입시지옥에 일찌감치 시달립니다. 어떤 아이들은 열셋이나 열둘에도 참고서와 문제집 따위에 짓눌립니다. 어버이라는 사람부터 아이들한테 시험교재를 잔뜩 선물하는 짓을 일삼습니다.


  아이들이 왜 ‘시험문제 풀이’를 해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삶을 못 배우고 시험문제만 풀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사랑과 꿈을 못 키우면서 대학입시만 바라보아야 하나요.


- ‘굳이 혼욕탕에 들어오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정신력이 장난 아니구나! 하지만 이왕이면, 노천 욕탕 쪽도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 그냥 그 이유만으로도 괜찮지 않나? 알몸을 보고 싶다든가 보이고 싶다든가 그런 건 상관없이, 난 그저 순수하게 이 노천 욕탕에 들어가고 싶은 거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86∼87쪽)

 

 


  어른들 스스로 눈을 터야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눈을 트며 삶길 열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삶 빛내는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아이들 또한 스스로 제 삶길 꿋꿋하게 걸어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봐요. 아이들이 집과 학교 사이를 자가용만 타고 다닌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볼까요. 아이들이 스스로 버스를 타 보지 못한다면, 또 아이들이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다니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은 마을과 이웃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나요. 아이들이 더운 날 더위를 느끼며 집과 학교 사이를 다니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추운 날 추위를 느끼며 집과 학교 사이를 다니지 못한다면, 우리 둘레 숱한 이웃을 어떻게 살갗으로 느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맑은 날에는 맑은 하늘 볼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흐린 날에는 흐린 하늘 볼 수 있어야 기쁩니다. 잔뜩 낀 구름을 보고, 티없이 파란 하늘을 볼 때에 마음을 환하게 엽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보슬보슬 듣는 나즈막한 빗소리 들으면서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에 젖어들 적에, 아이들 마음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 “치한이세요?” “에에엑? 아, 아뇨. 에엑. 아닌데요!” “아, 죄송합니다! 계속 뒤를 쫓아오시니까. 실례 되는 소릴 해서 죄송합니다!” (107쪽)
- “보는 바와 같이 전 키도 작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장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지만,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저기, 사귀어, 주시겠어요?” “…….” “죄, 죄송합니다! 이런 시원찮은 녀석이 그쪽처럼 귀여운 애한테, 웃기지도 않는 일이죠! 하핫.” “네? 이런, 얼굴에 드러났나? 죄송해요. 그런 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그쪽이 전자제품을 산다고 쳐 봐요. 점원이 ‘이 상품은 솔직히 기능도 적은데다, 성능도 안 좋고, 사용법도 불편하지만 괜찮으시면 사 주세요.’라면서 권하면 사겠어요?” “안 살 것 같은데요.” “자기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걸 남한테 권하는 건, 실례라고 봐요. 전 코바야시 씨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자기 단점만 늘어놓으면 어떡해요! 장점을 더 많이 말해야죠!” (109∼110쪽)


  만화책 《오늘의 아스카 쇼》는 ‘아스카’라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일구려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른들이 만든 ‘굳은 생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 스스로 삶을 재미나게 누리려는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늘 걷는 길도 새롭게 걷습니다. 언제나 보는 하늘도 새롭게 봅니다. 곰곰이 따지면,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모습이란 없습니다. 열다섯 살 나이도, 열여섯 살 나이도, 참말 꼭 한 번만 겪는 새로운 삶입니다.


  못생기고 잘생기고라 하는 틀이란 없습니다. 있고 없고라 하는 틀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그대로 흐르는 삶입니다.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할 대목이 없는 삶이에요. 물과 같이 흐르고 바람과 같이 흐릅니다. 물처럼 맑고 바람처럼 싱그럽습니다. 물처럼 깨끗하며 바람처럼 정갈합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하루가 즐겁습니다. 오늘 하루 아끼는 넋이기에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걸레질도 재미있고 빨래도 재미있습니다. 비질도 재미있으며 설거지도 재미있어요. 아이들 놀이를 가만히 지켜보아도 재미있고, 아이들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거나 공놀이를 해도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을 삶이 있을까요? 재미있지 않을 사랑이 있을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지 않으면, 아이들을 시험공부로 옥죄지 않으면, 또 어른들 스스로 돈벌이에 휘둘리지 않으면, 이리하여 어른들 스스로 물질문명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4346.11.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Crater 더 크레이터 박스 세트 - 전3권 데츠카 오사무 걸작선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더 크레이터> 세 권을 놓고 느낌글을 모두 썼다.

지난 8월과 10월에 하나씩 썼고, 오늘 드디어 셋째 글 마무리짓는다.

세 권짜리 짧은 만화라 할 텐데,

다섯 권이나 일곱 권쯤으로

조금 더 그려서

삶과 죽음, 사랑과 전쟁이 무엇인가를

더 낱낱이 밝힐 수 있어도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이 땅에 없는 분한테

뒤엣권 더 그리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만화책을 가볍게 읽는다면

그저 가벼울 뿐이지만,

이 만화책을 여러 차례 차근차근 읽으며

글과 그림을 곰곰이 되새길 수 있다면,

죽음 아닌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서 빛나는가를 깨닫는 밑바탕을

알아차리리라 느낀다.

 

 

살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2013.11.13.)

http://blog.aladin.co.kr/hbooks/6690181

 

살아가고 싶어 살아간다 (2013.10.6.)

http://blog.aladin.co.kr/hbooks/6623086

 

삶에는 핑계가 없다 (2013.8.25.)

http://blog.aladin.co.kr/hbooks/6546483

 

 

1, 2, 3권 따로따로 쓴 느낌글 바로가기 주소를 붙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크레이터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72

 


살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9.25. 9000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The crater》(학산문화사,2011)는 셋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셋째 권 마지막 꼭지에서 책이름 ‘더 크레이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달을 살펴보려는 과학자이자 우주비행사가 달까지 가서 잘 내려앉지만, 그만 말썽이 생겨 우주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달에 남습니다. 그런데 달에 있는 분화구에서 나오는 김이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 몸에 닿으니 다시 살아나요. 이 우주비행사는 홀로 달에 남아 죽고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이동안 지구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구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 “하지만 말이다. 만약 도중에 어떻게든 자신의 직업에 의문이 생긴다면, 만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팔각형의 저택으로 오거라. 그러면 딱 한 번 너는 다른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 “다른 운명?” ”그래, 만약 네가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지, 또 하나의 세계에 있는 자신으로 바꿀 수가 있는 거란다. 단 한 번뿐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있나요. SF도 아니고.” “류이치, 이 우주는 말이다, 네가 모르는 무한의 세계가 있단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세계이지.” (12∼13쪽)


  지구사람은 무기를 만드느라 바쁩니다. 무기를 만든 지구사람은 엄청나게 만든 무기로 전쟁을 하느라 바쁩니다. 전쟁을 하는 지구사람은 서로를 죽이면서 스스로 죽느라 바쁩니다.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지구사람은 지구별을 아주 망가뜨려 숲도 들도 바다도 땅도 모조리 무너뜨립니다.

  달에서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는 이 모든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지구사람 아닌 달사람이 되고 만 우주비행사는 지구별에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고 깨닫습니다.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해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통에 어느 누구도 지구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에 어느 누구도 숨을 곳이 없으며, 애써 숨는다 하더라도 핵폭탄이 터져 흐르는 방사능 때문에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방사능이 안 닿는 곳에 숨더라도 먹을 밥이나 마실 물이나 바람이 없습니다.

  지구사람은 왜 어리석은 길을 가고야 말까요. 지구사람은 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안 깨달을까요.


  무기를 만들면 전쟁을 할밖에 없습니다. 군대를 만들면 전쟁하는 데에 쓸밖에 없습니다. 군인을 키워 어디에 쓰나요. 전투경찰도 경찰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예전 안기부나 오늘날 국가정보원은 어떤 구실을 하는가요. 참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다면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이 아닌 평화부가 있어야 하고, 사랑을 나눌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부란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낳는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사랑을 나눌 일꾼이란 남한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흙을 일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무기 만들기를 그치지 않으면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군대를 하루빨리 없애지 않으면 평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온통 전쟁 이야기만 있는 역사책을 들여다보셔요. 제아무리 잘났다 하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전쟁으로는 평화를 거두지 못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땅을 아무리 넓혀 본들 백 해를 잇지 못합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부를 뿐입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낳을 뿐입니다. 전쟁은 사람들 등허리를 휘게 할 뿐입니다. 전쟁은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 땅과 숲과 물과 바람을 더럽힐 뿐입니다.

 


- “아아, 출구인가! 바깥 바람이.” “조금만 더 힘을 내. 별이야! 저것 봐! 너랑 이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어. 지금은 단둘뿐이야.” ‘이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카이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67쪽)
- “너,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거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 줄래?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도 안 돼. 약속할 수 있겠니?” “약속이야 하겠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미도리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뇨? 아하, 아하하, 농담하지 마세요. 이 가게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미도리는 말이지, 저 샘에서 사는 님프란다. 님프란 존재를 아니? 님프란, 물 주변에 사는 요정이야.” (87쪽)


  사람이 살아갈 길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로운 사랑과 사랑스러운 평화, 이 길 하나가 바로 사람이 살아갈 길입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평화를 누려야 살아갈 수 있어요. 이밖에 다른 삶길은 없습니다.

  무기를 만드느라 돈과 품과 겨를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저마다 밭을 일구고 숲을 돌보는 데에 온마음과 온힘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전쟁준비나 전쟁훈련에 돈과 품과 겨를을 바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가꾸는 데에 모든 꿈과 사랑을 들일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시험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아이들과 푸른 아이들은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빛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대학교 입학시험 치르는 일에 온 마음이 빼앗긴 채 꿈과 사랑하고 동떨어진 길을 자꾸 걸어가고 말면, 이 나라에는 아무런 빛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대학교가 아닌 삶을 보아야 하고, 시험문제가 아닌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들한테 돈과 학력과 아파트를 물려줄 생각은 접고, 어른들부터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고 아름다운 평화를 꽃피우는 길을 즐겁게 걸어가야 합니다.


- “원시림에 들러싸여, 정말로 고요하게 숨겨져 있는 샘을 발견했지. 물론 그곳은 누구 하나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보였어. 내가 그 샘을 처음 봤듯이, 샘도 인간을 처음 봤을 거야. 나는 그 샘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자, 무슨 일인지 샘물에 물결이 일더니,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난 거야.” (88∼89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책 《The crater》 세 권을 빌어 우리한테 묻습니다. 여보시오, 이녁은 살고 싶소, 아니면 죽고 싶소?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살고 싶은가요, 죽고 싶은가요? 삶길을 가고 싶은가요, 죽음길을 가고 싶은가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삶길인가요, 죽음길인가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사랑길인가요, 전쟁길인가요? 우리는 어느 길에 설 때에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가요.


  모든 길은 나 스스로 걷습니다. 남한테 이끌려 걷는 길은 없습니다. 어느 길이든 나 스스로 걷습니다.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안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사랑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스스로 찾는 사랑이고, 스스로 가꾸는 사랑이며, 스스로 나누는 사랑입니다. 착한 마음이 되어 참다운 생각을 밝힐 때에 사랑이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맑은 넋이 되어 밝은 꿈을 키우려 할 때에 사랑이 가만히 눈을 뜹니다.


  전쟁은 누가 따로 가르칩니다. 남한테 이끌리거나 제도권에 휩싸일 때에는 전쟁 톱니바퀴 되고 맙니다. 내 마음이 없거나 내 넋을 세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 손에 휘둘리면서 전쟁 허수아비가 되지요. 내 꿈이 없거나 내 사랑을 빛내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함부로 저지르는 바보가 되어요.


- “아주머니, TV에서 한 발표 들었어요?” “네에, 들었어요. 류이치 소식 말이죠?” “전사했다면서요. 정말 멋져요.” “오쿠노 씨의 어머님이죠? 아드님의 전사통지서입니다. 훌륭한 공적을 세우고 옥쇄하셨습니다.” (111쪽)
- “류이치,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단다. 정말은 군신 따위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어.” (119쪽)
- “너는 빈사의 중상을 입으면서도 적 기지로 돌진해 사령탑과 폭사했단 말이다. 용사의 날까지 제정하고, 충령탑까지 만들어서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다. 왜, 왜, 왜 돌아온 거냐?” “그런 말씀을 하셔도 저는 몰랐던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살아 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너 이 자식, 한 번 더 죽어라!” “네에? 겨우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죽으라니, 그건 너무합니다. 너무하다고요.” “이 멍청아! 살아서 뻔뻔하게 기지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군 사령부나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게 된단 말이야. 너를 명예로운 전사자로 발표했단 말이야.” (122∼123쪽)
- “오쿠노, 귀관은 한 번 적의 기지로 날아가라! 그리고, 전사해라. 그렇다. 군의 공표대로다! 우선 적기의 공격을 받아서 가슴에 적탄을 맞고 이를 악물면서 적의 기지로 돌진하는 거다! 그대로 실행해라. 그러면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다른 전우를.” “안 돼! 귀관이 해야 한다.” “저는 영웅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습니다.” (124쪽)

 

 


  전쟁을 벌이는 사람은 영웅을 만듭니다. 영웅이란 언제나 전쟁영웅입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영웅이 없습니다. 평화영웅은 없어요. 사랑영웅도 없어요. 왜냐하면, 평화와 사랑이란 어깨동무요 두레이며 품앗이입니다. 서로 어깨를 겯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와 사랑에 영웅이 끼어들 자리 없습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일꾼입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사람입니다. 오롯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 평화와 사랑입니다. 오롯이 슬픈 영웅이 되는 길이 전쟁입니다.


  전쟁영웅이 된다는 뜻은 ‘내 이웃이나 동무를 많이 죽였다’는 소리입니다. 싸움터에서 적군을 많이 죽이니 전쟁영웅 된다는데, 적군은 누구일까요. 적군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군과 적군은 똑같습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한테 휘둘려 덧없이 끌려나와 부들부들 떨며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고 두려워 하는 여느 사람들이 아군이요 적군입니다. 서로를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동안 조용한 마을에서 조용한 사람으로 조용한 삶 일구다가 갑작스레 싸움터에 총칼을 거머쥐고 서서는, 서로를 ‘얼른 죽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바라는 허수아비요 바보입니다.


- “할머니, 기운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자, 보세요. 그 거미가 저렇게 큰 집을 만들었어요. 멀고 먼 이 낯선 땅에 와서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163쪽)
- “그 가스를 믿지 않는단 거야? 그 기적의 가스를?” “그게 어쨌단 거야? 잘 들어, 좀비. 지구는 지금 세계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한창 대립하고 있는 중이라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보다, 어떻게 빨리 적에게 이길까가 더 중요하단 말이야.” (188∼189쪽)
- 며칠이 지났을까. 문득 나는 지구를 보고,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건 핵폭발이야. 전 세계에 핵폭발의 빛이. 이제 다 끝나 버렸군. 아마도 핵전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거겠지. 그리고 이제 인간은 누구 하나 살아 있지 않을 거야.” (192∼193쪽)


  살아가려면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을 보듬으면서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바람 마시며 숲노래를 부릅니다. 죽으려면 총칼을 들어 이웃과 동무를 찔러 죽이거나 쏘아 죽입니다. 살아가려면 숲밥을 먹으면서 이웃과 나란히 숲집을 짓습니다. 죽으려면 탱크와 전투기와 미사일과 군함을 잔뜩 만들어 이웃 없이, 아니 이웃을 죽이고 나도 죽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권력자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만 가득한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새로운 삶을 쓸 노릇입니다. 사랑 이야기와 꿈 이야기가 가득한 새 삶을 써서 새 역사책을 지을 노릇입니다.


  역사란 사람들이 살아온 발자취라 하는데, 싸우고 죽인 짓만 담는 책을 역사책이라 하기에는 참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일군 아름다운 빛을 담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참다운 역사책입니다. 여태껏 어른들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바보스러운 역사책만 썼지만, 앞으로 이 땅 이 나라 아이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역사책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 어른들도 부끄러움을 깨닫고 아이들과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데즈카 오사무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1

 


산 사람들과 죽은 넋
― 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04.10.13.

 


  깊은 밤에 문득 깹니다. 작은아이 칭얼거리는 소리 듣고는 반듯하게 누이고 이불을 새로 여밉니다. 큰아이도 다독입니다. 쉬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고무신에서 철벅 소리가 납니다. 응, 뭔가? 발을 빼내고 들여다보니 고무신에 빗물이 고여 찰랑거립니다. 우리 식구 잠든 뒤에 비가 퍽 몰아쳤구나 싶습니다. 섬돌이 폭삭 젖고 신도 모두 젖었습니다.


  깊은 밤, 비가 그친 하늘에 별 몇 자그맣게 보입니다. 비는 그쳤는가 보구나. 늦가을 비가 내렸으니 앞으로는 날이 퍽 썰렁하겠구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다니려면 장갑을 끼워야겠습니다. 아이들 장갑이 제자리에 잘 있나 살펴야겠고, 아이들 겨울옷 모두 꺼내야겠습니다.


  아이들 여름옷을 언제 꺼냈고 겨울옷은 언제 치웠는가 돌아봅니다. 얼마 안 된 일 같습니다. 앞으로 몇 달 지나면 새삼스레 아이들 여름옷을 도로 꺼내고 겨울옷은 다시 집어넣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새로 맞이합니다. 살아가면서 아침과 낮과 저녁을 새삼스레 마주합니다. 시간과 날짜는 똑같다 할 만하지만, 언제나 다른 때와 곳입니다. 나는 올 2013년을 끝으로 서른아홉 살이 저뭅니다. 지난 2012년에는 서른여덟 살을 지났어요. 다가오는 2014년에는 마흔 살이 됩니다. 서른아홉 살도 서른여덟 살도, 또 마흔 살도 나한테는 꼭 한 번 찾아와서 누리는 나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아, 여섯 살도 다섯 살도 일곱 살도 꼭 한 번만 누리는 나이예요.


- ‘아,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아직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됐는데. 역시, 벌을 받은 거야!’ (6∼7쪽)
- “말도 안 돼. 그건 내가 봤을 때 이미 차에 깔려서 죽은 거였다고! 그치 소타?”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죽은 생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게 얼마나 큰 죄인 줄 알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난 모른다.” (11쪽)

 

 


  아이들을 아무런 시설이나 학원이나 학교에 안 보내는 뜻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넋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살아가는 넋’을 가르치지 못해요. 아니, ‘살아가는 넋’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유치원 교사는 교사로서 훌륭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교사이기 앞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아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에 기대지 않고서, 스스로 삶을 일굴 줄 아는 사람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날에는 시골사람조차 스스로 우뚝 서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거의 모두 농약과 비료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모두 기계와 자동차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누구나 석유와 전기에 기댑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고작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헤아리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제법 많습니다. 1960년대까지 살피면 어떤 굴레나 틀이나 제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 손과 두 다리로 삶을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머리와 마음과 가슴으로 삶을 일구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짓고 생각을 지었어요.


- “귀신이 나타나면 다 엄마 때문이라고요!” “네가 항상 나쁜 짓만 하니까 귀신 같은 게 무서운 거야.” (16쪽)
- “이치로.” “왜요, 귀신 누나. 난 지금 누구와도 얘기할 기분이 아니니까 방해하지 마요.” “이치로, 도와줘.” “시끄러워요. 난 누굴 도울 수 있는 애가 아니라니까요. 치로조차 구하지 못한 내겐 그 무슨 일도 무리라고요.” “새로운 생명을 구해냈잖아!” (50∼51쪽)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됩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됩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가게를 차리거나 회사를 엽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장사를 하거나 작가가 됩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가운데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에서 물을 만지는 아이는 없어요.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사이에서 삶을 스스로 지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아이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워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해요. 일본사람이니 일본말을 해요. 베트남사람이니 베트남말을 해요. 티벳사람이니 티벳말을 해요. 영국사람이니 영국말을 해요. 그렇지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말도 중국말도 일본말도, 또 미국말이나 영국말도 아닌, 어설픈 뒤죽박죽 얄딱구리한 말을 합니다.


  교과서 아닌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요. 참고서 아닌 책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교재 아닌 책은 무엇을 밝히는가요. 자기계발서 아닌 책은 무엇을 드러내는가요.


  삶에서 빛을 읽을 때에 책입니다. 삶에서 꿈을 찾을 때에 사랑입니다. 삶에서 이야기를 엮을 때에 말입니다.


  머리나 생각이 아닌 손으로 숟가락을 쥐어 밥을 떠서 입으로 먹습니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하루입니다. 온마음을 기울여 씩씩하게 살아내는 나날입니다. 모든 것은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 아닌 죽음에서 비롯하는 것은 없습니다. 삶 아닌 지식이나 책이나 학교에서 비롯하는 것조차 없습니다.


- “태어났을 때부터 의사가 10살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대요.” “그럼 지금으로도 꽤 득 본 거네.” “네?” “7년이나 더 살았잖아.” (70쪽)
- “고, 고마워요.” “수제품은 수제품이지만, 그래 봤자 그냥 잡동사니잖아.” “잡동사니가 아니에요!” “잡동사니야.” “아녜요.” (72∼73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하나다 소년사》(삼양출판사,2004)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을 잇습니다. 《하나다 소년사》에 나오는 아홉 살짜리 머스마 ‘하나다’는 누구도 못 말릴 말썽쟁이입니다. 언제나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 아이는 왜 말썽을 일으킬까요. 이 아이는 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는 삶 아닌, 말썽을 피우는 짓을 서슴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삶과 밝은 웃음과 사랑스러운 노래를 싫어하는 아이일까요.


  하나다네 어버이가 하나다와 함께 조용히 흙을 만지면서 흙을 사랑하는 나날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다가 이녁 어버이와 함께 시골마을에서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물려받아 찬찬히 나눌 적에도 말썽쟁이 짓을 똑같이 할까 궁금합니다.


  하나다는 왜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 하고, 시험은 으레 0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다는 왜 짓궂은 짓을 일삼고, 텔레비전에 목을 매며, 집식구들한테서 걱정을 한몸에 살까요.


- “아냐! 나한테 부탁을 하려고 멋대로들 찾아오는 거라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안 보이니까 말해 봤자 모르잖아. 그래서 나한테 오는 거라고.” (141쪽)

 

 


  온갖 잘못과 말썽을 일삼던 하나다는 이웃집 자전거를 훔쳐 꽁무니를 빼다가, 그만 외딴길에서 짐차와 박습니다. 하나다는 하늘로 붕 날며 죽는 길로 갑니다. 하나다는 참말 죽습니다. 그런데 함께 죽음길 저승나라로 가던 어떤 예쁜 누나가 ‘넌 아직 이 길로 오려면 멀었다.’고 말하면서 이승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하나다는 ‘죽은 넋’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 “응? 이치로. 우리 엄마를 도와줘! 우리 엄마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전해 줬으면 해.” (151쪽)
- “엄마, 제발 다시 건강해지세요! 나는 죽었지만 언제나 엄마 곁에 있으니까.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가시게 되면 나도 엄마가 계신 곳에 다시 태어날게요. 나는 엄마가 좋으니까 다시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러니 건강하게 사세요! 난 괜찮으니까!” (170∼171쪽)


  하나다는 죽는 자리에서 ‘이제 죽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여태껏 저지른 엄청난 말썽 때문에 값을 치른다’고 깨닫습니다. 두 가지를 깨달은 하나다는 ‘예전 삶’이 죽어서 시나브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삶’이 깨어나 시나브로 나타납니다.


  죽은 넋은 그동안 하나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둘레에도 늘 있었지만, 하나다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죽은 넋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죽은 넋을 알아볼 마음이 없기도 했고, 죽은 넋을 알아본들 무엇을 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다는 이제까지 말썽만 저지르면서 ‘안 본 모습’을 새롭게 봅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모습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잔꾀를 부리려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마음’으로 달라집니다. 아홉 살짜리 철부지가 열 살을 앞두고 철을 살살 벗습니다. ‘산 사람’을 돌아보고 ‘죽은 넋’을 뒤돌아봅니다. 살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죽은 넋이 되었다고 해서 슬프거나 서운하거나 아프지 않구나 하고 찬찬히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넋은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다부터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셈이니까요.


  목숨을 얻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얻을 때에 삶입니다. 목숨을 더 이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기쁘게 나눌 때에 삶입니다. 하나다를 저승나라에서 이승으로 돌려보낸 누나는 바로 이 대목을 하나다가 스스로 깨달으며 앞으로는 아름답게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바랐지 싶어요. 하루하루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를 깨달아, 언제나 맑은 웃음과 밝은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11-1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책, 왠지 그림결부터 재밌어 보이고
이야기도 좋습니다. ^^

숲노래 2013-11-10 10: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절판되었답니다!
저도 1권과 2권만 사 놓고... 뒤엣권은 없어서 못 봐요 ㅠ.ㅜ

<피아노의 숲> 연재할 때에 함께 나온 책인데,
이 책이 이렇게 일찍 절판될 줄은 몰랐어요... 에구... ㅠ.ㅜ

<피아노의 숲>을 그린 분이 함께 그린 짧은 작품이랍니다.
모두 다섯 권이에요.
 
우리 마을 이야기 6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0


 

흙을 배우는 삶
― 우리 마을 이야기 6
 오제 아키라 글·그림
 이기진 옮김
 길찾기 펴냄, 2012.5.31.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배울 만한 대목을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아이들이 아이답게 그림을 그리도록 북돋우지 못하고, 아이들이 장난감 없이 흙과 모래와 물을 만지며 놀게 이끌지 못하며, 아이들이 한국말 슬기롭게 익혀서 쓰지 못하는 나이에도 일찌감치 영어 노래와 영어 만화영화를 보여줍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마주하지 않고, ‘예비 대학입시생’이라도 되듯이, 어릴 적부터 ‘시험공부’에 길들도록 내모는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들 집어넣어 아이들 마음과 생각을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어릴 적에 신나게 뛰놀지 못한 아이들은 몸이 튼튼히 자라지 못합니다. 어릴 적에 마음껏 뛰놀지 못한 아이들은 마음이 씩씩하게 크지 못합니다. 놀며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참말 놀 줄 몰라요. 놀며 자라지 못한 사람이 어른 되면 술담배만 할 뿐, 스스로 즐거운 놀이를 찾지 못합니다. 참말 오늘날 어른들이 누리는 놀이란 무엇일까요? 어른들은 무슨 놀이를 하나요?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란 어떤 노래인가요?


  옛날 사람들은 모든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불렀습니다. 이른바 ‘일노래(노동요)’나 ‘이야기노래(전통노래)’입니다. 밥을 짓건 베틀을 밟건 모를 심건 피를 뽑건 나물을 캐건 빨래를 하건 방아를 찧건 콩을 털건 아이를 재우건 바느질을 하건, 늘 노래를 불렀어요. 요즈음 사람들은 일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라디오를 틀거나 대중노래를 틀어요. 스스로 노래하지 않고, 스스로 노래가 샘솟지 않아요.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니라, 오직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기에, 노래가 흐르지 않아요.


  삶에서 노래를 길어올리지 않는 오늘날인 터라, 모든 대중노래는 ‘젊은 남녀 짝짜꿍 노닥거리’에 파묻힙니다. 이 틀을 벗어나는 노래는 대중노래가 되지 못합니다. 삶에 일이 없고, 삶으로 누리는 일이 즐겁지 않으며, 오로지 돈바라기만 해야 하는 회사일이 되고 보니, 이러한 삶에서 노래가 솟아나지 못해요.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노래를 짓고, 의사는 의사답게 노래를 지으며, 교사는 교사답게 노래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제 일자리에서 노래가 흐를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을 나 스스로 노래로 지어 부르지, 누가 내 삶을 노래로 지어서 불러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회는 ‘내 삶’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아주 사라져, 모두 톱니바퀴 된 채 쳇바퀴로 구르다 보니 ‘삶 아닌 삶’을 궁둥이 들썩이며 노닥거리는 노랫가락에 담을밖에 없습니다.


- “오히려 내가 너희들한테서 배우는 게 많아.” “선생님이 우리한테서 배운다고요?” “그러엄. 너희들 정말 멋있어. 모두 신념을 갖고 있잖니.” (5쪽)
- “아빠가 말했어요. 땅을 지키는 것은 바로 저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나는 계속 아빠하고 함께 싸워 나갈 거예요! 공항에 비교하면 우리 밭 같은 건 상대가 안 되겠지만,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키워 준 걸요. 엄마 아빠의 소박한 농사꾼의 마음이 거대한 공항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7∼8쪽)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 가운데에서도 서울이나 도시하고 가까운 시골이 아닙니다. 아침 일곱 시에 길을 나서도 낮 두 시 반쯤 되어야 비로소 서울에 닿을 만한 시골입니다. 섬은 아니지만 섬과 같은 시골입니다. 더욱이, 읍내하고도 멀찌감치 떨어진 시골입니다.


  우리 식구 이렇게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지내고 보니, 내 어버이도 옆지기 어버이도 그닥 반기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으리라 느끼지만, 도시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길이 아주 막히는데, 이럭저럭 회사원 되어 돈만 벌고 지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밥을 먹어야 살아갑니다. 바람과 물과 밥이 싱그럽지 않다면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밥이야 도시에서도 생협 회원이 되어 좋은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제값 치러 받으면 된다지요. 그러면 바람과 물을 어쩌지요. 시골바람을 도시로 끌어들일 수 있나요. 시골물을 페트병에 담아 도시로 가져오면 되나요.


  요즈음은 좀 달라진 듯한데, 내 어릴 적에 둠벙이나 못에서 잡은 물고기를 ‘수도물’에 담그면 모두 죽었어요. 어릴 적에 둠벙이나 못에서 잡은 물고기를 기르려면, 수도물이 아닌 ‘둠벙물’이나 ‘못물’을 날마다 길어와서 부어 주어야 살았습니다.


  이무렵부터 물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 내 어버이는 늘 수도물을 끓여서 보리차로 마셨지, 수도물을 날로 마시지 않았어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학교에서도 ‘수도물을 끓여서 먹으라’고 가르쳤어요. 그래, 물은 끓여서 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어렴풋이 길이 들 즈음이었는데, 물고기들이 수도물에 죽는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깨지더군요. 아니, 물고기는 끓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냇물에서 살잖아. 사람은 왜 끓인 물을 마시나. 사람 또한 흐르는 물을 마셔야 하지 않나. 사람들이 수도물 끓여서 마시니, 하나같이 몸이 아프고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지 않나.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물을 옳게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대학교에서도 물을 슬기롭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회사라고 다르지 않아요. 어른 나이 되어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으면 스스로 깨우칠까요. 갓 태어난 아기한테는 어떤 물을 마시게 해야 아이가 튼튼히 자랄까요. 물을 물답게 마시지 못하는 채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삶을 누리는가요.


- “우리 학교는 도쿄의 한가운데 있어서 나무나 풀도 없고 하루 종일 자동차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에 휩싸여 있어요. 공항이 만들어지면 여러분의 학교도 이렇게 되겠지요. 저는 산리즈카의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13쪽)
- “거, 거긴 내 밭이여! 왜 남의 밭에 함부로 들어가는 게여! 이 땅 도둑놈들아!” (50쪽)
- ‘기동대는 우리들이 여름 동안 열심히 김을 맸던 밭을 군화발로 짓밟았다. 그곳은 곧 수확을 앞두고 있는 밭이었다.’ “이놈들, 다시는, 다시는 밥을 먹지 마라! 이 천벌 받을 놈들!” (60쪽)
- “내 몸에 말뚝을 박아라!” (62쪽)
- “여긴 우리 밭이야. 우리 목숨이야! 말뚝을 박으려면 어디 우리 모녀를 꼬치 꿰서 해 봐라!” (76쪽)

 

 


  어제 아침에 이웃 할매와 할배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캐는 모습을 보고는 일손을 거듭니다. 우리 집하고 돌울타리를 사이에 둔 밭이니, 할매와 할배가 등이 잔뜩 굽은 채 쉬엄쉬엄 일하는 모습을 훤히 내다봅니다. 구경만 할 수 없어 호맹이를 들고 밭흙을 함께 쪼아 고구마를 캐서 자루에 담습니다.


  이제는 늙어 영양제도 듣지 않는다고 하는 할배는 “집이는(자네는) 왜 이런 시골에 왔나. 서울 가서 살아야제.” 하고 말씀합니다. “시골엔 아무것도 읎어. 얼른 서울로 가. 옆에서 어찌 사나 싶어 짠하네. 고흥으로라도(고흥 읍내로라도) 가.” 하고 덧붙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잘 살면 되지요.” 하고 말씀합니다.


  고구마를 캐는 동안 하늘빛 마알갛습니다. 한여름이라면 땡볕일 테지만, 늦가을이기에 햇볕이 포근합니다. 늦가을 들일은 이렇게 햇볕 드리우는 때에 해야 더 즐거우며 기운이 날 만합니다. 가끔 구름 몇 조각 흐르고, 멧새는 쉴새없이 날아다니며 노래를 부릅니다. 참새도 딱새도 까마귀도 멧비둘기도 까치도 동박새도 직박구리도 저마다 노래 한 가락 흘리며 지나갑니다.


  바람이 붑니다. 맑은 바람 한 줄기 살풋 지나갑니다. 바람노래와 새노래는 경운기와 짐차 더러 지나가는 소리에 사그라들지만, 경운기도 짐차도 이내 지나가니, 다시금 바람과 새가 들려주는 노래가 그득그득 넘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꽃삽으로 흙을 콕콕 쪼면서 온몸이 흙투성이 됩니다.


  그려, 너희는 이렇게 꽃삽질 조물조물 하면서 나중에 호미질도 익숙하게 할 수 있어.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껴야지. 이 흙이 바로 우리 밥을 낳는 숲빛이고, 이 흙에서 우리 숨을 낳는 풀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지. 예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흙빛 얼굴에 흙빛 살결이었어. 임금님이나 신하나 양반들은 흙을 안 만지고 햇볕도 안 쬐니 허여멀건 얼굴이요 살결이었지만, 미국사람도 독일사람도 일본사람도 중국사람도, 권력하고 등을 진 채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들은 모두 흙빛이었어요. 흙내음 마시고 흙노래 부르면서 흙밥을 먹었지. 흙밥 먹는 사람은 아픈 일 없었고, 흙밥 먹는 사람은 날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가이 노래를 불렀지.


- “근데 말야, 도쿄에서는 선생님이 공항에 대해 얘기해 주신다는데, 아이들도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말야, 왜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걸까? 공항은 도쿄가 아니라 여기, 우리 마을에 만들어지는데.” “맞아.” “우리 선생님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립이라고만 해.” (14쪽)
- “하하핫! 까불고들 있어! 농사꾼 두들겨패고 땅 빼앗고, 임산부의 배를 걷어차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여! 국제공항이라고 했냐! 웃기고들 있네! 농사꾼이 땅을 지키고 체포당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 주지! 여보! 죽어도 밭을 내주면 안 돼!” (80∼81쪽)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란다면, 아이들은 자동차 이름을 배웁니다. 도시에서 크는 아이들이라면, 교통신호를 배우고 버스와 전철을 배웁니다. 도시 아이들은 광고와 상품과 가게를 배웁니다. 도시 아이들은 돈과 은행을 한결 빨리 배웁니다. 도시 아이들은 ‘아버지는 돈을 벌러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술에 절어 돌아오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아직도 남녀평등 또는 여남평등은 머나먼 딴 나라 일 같은 한국이기에 도시 아이들은(시골 아이들도 똑같은 듯한데) ‘어머니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배웁니다.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놀거리가 없습니다. 이제 도시는 거의 다 아파트요, 아파트 아니어도 여러 층으로 된 다세대나 빌라인 만큼, 신나게 뛰지 못합니다. 구르지도 못합니다. 달리지도 못합니다. 집에서도 못 달리고, 골목에서도 못 달려요. 골목은 온통 자동차로 꽉 차고, 오토바이가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학교에 가면 달릴 만할까요? 교실이나 골마루에서 뛰거나 달리면 교사들이 꿀밤을 먹입니다. 흙으로 된 운동장을 거의 걷어치우니, 플라스틱 가짜 잔디 박은 운동장에서 뛰다 넘어지면 피가 줄줄 흐를 만큼 다칩니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은 뛰거나 달리며 놀 줄 몰라요. 뛰거나 달리는 놀이를 다 잊어버리고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흙운동장이 있어야 흙바닥에 돌로 금을 그리고는 이렇게 달리고 저렇게 뛰는 놀이를 즐깁니다. 고무줄놀이를 하건 다른 어떤 놀이를 하건, 흙바닥 운동장이어야 비로소 무언가 할 수 있어요.


  도시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흙을 못 만집니다. 흙이 없으면 벼도 콩도 밀도 보리도 안 나지요. 흙이 없는데 능금이나 배나 수박이나 딸기를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그런데, 도시 어른과 아이는 흙 한 줌 없어도 마트에서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돈으로 사다 먹어요. 흙을 몰라도 되는 도시요, 흙하고 동떨어져도 살 수 있는 도시요, 흙을 잊어도 걱정없다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참말 이래도 될까요. 아이들이 흙을 잊고 흙을 안 만지며 커도 될까요. 아이도 어른도 흙하고 등을 진 채 밥을 먹어도 될까요.


- “공단이 기동대를 앞세우고 온 건 측량이 목적이 아니여. 우릴 겁주려고 그런 게지. 그 녀석들도 지금쯤 황망하겄지. 겁주기는커녕 우리한테 자신감만 잔뜩 심어 줘 버렸응께!” (111쪽)
- “텔레비전 따위 안 봐도 돼. 신문 따위 읽지 않아도 돼. 너희들, 한 번만이라도 우리 마을이랑 공사현장에 와 봐. 공항 만드는 곳에 민주주의나 주권재민 같은 건 요만큼도 없어. 있는 건 기동대의 폭력뿐이다! 우리는 가족이 총출동해서 3일 동안 싸웠어. 공단은 측량을 전혀 못 하고 돌아갔어. 하지만, 아무리 날림으로 한 측량이라도, 이게 끝나면 다음에 오는 건 강제수용이야! 땅을 빼앗는 거란 말이다! 강제수용이란 건!” (114∼115쪽)
- “저, 선생님. 저, 조금 더 뎃페이의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저도.” “저도요.” “선생님, 전 지금까지 공항이 생기면 편리해서 좋겠다고만 생각했어요. 반대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납득하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 3일 동안 티브이를 보면서, 우리와 같은 학년의 친구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을 보면서, 내가 공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그것이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시자카 군. 좀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줘.” (118∼119쪽)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 나리타공항을 지을 적에 일본 정부와 경찰이 얼마나 끔찍하게 시골마을 망가뜨리면서 괴롭혔는가 하는 이야기가 낱낱이 흐릅니다. 더군다나, 조용한 시골마을에 갑작스레 공항을 짓겠다 하면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공무원이기에 정부가 하는 일을 놓고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말하는 교사들 가운데 ‘시골내기’는 없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으면 될 뿐인 교사입니다. 교사들은 흙을 안 만집니다. 시골마을 학생은 어버이가 모두 흙지기입니다. 흙을 만지는 농사꾼입니다. 농사꾼을 가르치는 교사는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닌 지식인이자 공무원입니다. 지식인이자 공무원인 시골마을 교사는 시골을 송두리째 밀어 없애는 나리타공항을 짓는 일에 ‘중립 탈’을 씁니다. 학교 옆에 공항이 들어서면 방음벽 높고 두껍게 대느라 깜깜한 감옥에 갇힌 듯한 모습이 되는데, 이렇게 되거나 말거나 ‘공무원 일자리 빼앗길 수 없는 신분’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한 발 아닌 두 발 석 발 뒤로 뺍니다.


- “요시코, 들었다. 썩은 수박을 공단 놈 면상에 던져서 깨부쉈다면서. 또 밭에 몸을 던져서 말뚝을 못 박게 막았다고! 상상이 안 되네. 너 같은 조신한 문학소녀가 말야.” “오빠. 여기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매일 일어나잖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슬픈 일도, 기쁜 일도.” (123∼124쪽)
- “교장선생님, 선생님이 만약 우리들의 입장이라면, 선생님의 부모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동대한테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힌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척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입장이 공무원이다 보니.” “……. 공항이 들어서면 이 학교도 당연히 방음교사가 됩니다. 선생님은 하루 종일 창문도 열 수 없는 어두운 교실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니,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요. 학생들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면 공항에 반대하시는 거네요? 중립이 아니라. 방음교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어째서 반대하지 않는 건가요? 왜 싸우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공항이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교장선생님! 학생들을 방음교사에 가두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든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것이 교육자로서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습니까?” (177∼179쪽)

 


  지난날 한국에서 김포에 공항을 지을 적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인천 앞바다 영종섬과 용유섬을 메워서 공항을 지을 적에 이곳 시골사람은 ‘땅값 껑충 뛰어 헤헤 웃으며’ 고향을 버렸을는지 궁금합니다.


  비행기가 하늘 가르며 지나갈 때에 얼마나 소리가 크게 울리는지 들어 보았나요? 고흥 시골 하늘 찢는 비행기가 가끔 있는데, 여섯 살 세 살 우리 집 두 아이는 “무서워!” 하면서 마당에서 놀다가 헐레벌떡 집안으로 달려듭니다. 비행기를 모는 이들은 땅에서 시골사람이 하늘 찢는 소리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는가를 못 느끼는구나 싶어요. 어쩌면, 땅에서 흙 만지는 늙은이와 어린이를 놀래키려고 일부러 낮게 날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구나 싶기도 해요.


  공항 곁에서는 이런 소리를 날마다 끝도 없이 들어요. 그리고, 공항뿐 아니라 전철과 기차 지나가는 옆마을도 이와 같습니다. 고속철도 지나가는 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여름에도 창문을 못 엽니다. 귀가 아프거든요. 도시에서는 전철 지나가는 옆에 가난한 사람들 쪽집이 많아요. 돈이 없으니 전철길 옆 값싼 땅에다 집을 짓고 살아가는데, 아주 고달프지요.


- ‘그때 나는 끓어오르는 의문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끈질기게 공항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는 우리의 선생님들은, 우리를 가르치고 이끄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공단·기동대와 한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160쪽)

 


  흙을 모르는 도시사람이 스스로 삶을 무너뜨리는 길을 걷습니다. 사람 적게 사는 시골이라 여기며, 시골에다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아무렇게나 때려지으면, 도시사람은 전기 펑펑 쓸 텐데, 시골흙 더러워지면 바로 ‘도시사람이 사다 먹을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가 더러워지는’ 셈입니다. 시골에 쓰레기 파묻으면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가 더러워질밖에 없습니다. 시골이 땅값이 싸대서 시골에 공장을 짓고 골프장 닦으면, 시골에서 일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가 아주 더러워지지요.


  사람은 누구나 배워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흙을 배워야 합니다. 어제 아침 이웃 할매와 할배 고구마밭 일손을 거드는데, 할배가 문득 “저번 해에 비료와 거름(농협에서 소돼지 똥으로 만들어서 파는 거름)을 썼더니 감저(고구마)가 아주 맛이 없어. 맛이 없는걸 어떻게 먹어. 올핸 비료와 거름을 하나도 안 썼어. 올해에는 맛이 어떨까 몰라. 맛이 좋겠지?” 하고 한말씀 합니다. 아무렴요, 화학비료와 화학거름(화학사료 먹은 소돼지가 눈 똥이나 화학똥이지요)을 뿌리면 겉보기로 알이 굵게 나올 테지만 얼마나 맛없겠어요. 빗물과 햇볕과 바람을 먹으면서 곱고 보드라운 흙에서 자란 고구마라야 맛있지요.


  도시사람은 도시에서도 텃밭을 짓고, 시멘트를 차츰 걷어내어 흙땅을 넓힐 노릇입니다. 도시 골목길이 주차장 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도시 골목길은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들 쉼터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철마다 시골로 들일 하러 말미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텃밭을 일구어 이녁 먹을거리를 손수 거두어야지요. 시골 군수도 군청 앞 주차장 모두 없애고 이 자리를 텃밭으로 삼아 손수 푸성귀를 일구어 먹어야 ‘시골 군수’다운 행정을 펼칠 수 있지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교사들은 학교로 자가용 끌고 나오지 말고, 주차장이 되는 그 터를 텃밭으로 일구어 교사들 스스로 푸성귀를 얻어야지요. 시골에서는 더더구나 아이들 어버이가 모두 흙지기인데, 시골 교사 스스로 흙일을 새로 배우고 새로 깨닫는 하루를 누려야, 시골 아이한테 참삶 가르칠 수 있지요.


  흙을 배우는 삶일 적에 사랑을 배웁니다. 흙을 배우는 삶이 될 적에 이웃을 아끼고 돌보는 길을 배웁니다. 흙을 배우는 삶으로 나아갈 적에 즐거이 어깨동무하며 두레와 품앗이를 하는 웃음꽃 피웁니다.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11-0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마을 이야기 6>와 함께살기님의 삶이 잘 녹아들어(참, 이 표현이 맞나요? ^^;;)
한층 더 직접 흙을 만지고 흙냄새 맡고 있는듯한, 그런 뿌듯함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 흙은 모든 것을 다 새로 태어나게 하는 그런 근원일텐데...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자꾸 제무덤을 파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빛' 가득한 글을 읽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튼튼한 희망이 또 새롭게 피어나 참 감사드리며 좋습니다~*^^*

참,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나올까요?

숲노래 2013-11-06 10:53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몇몇 만화가들이 그렸는데(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이제는... 박건웅 님 <노근리 이야기>와 <꽃>을 빼고는
아무도 못 그려요.

최규석 님이 비슷비슷한 느낌을 그리려고는 하지만,
깊은 마을 속내까지 함께 살아내면서
흙과 시골과 숲과 사랑을 그리지는 못하지요.

이 만화를 그린 오제 아키라 님 다른 작품
<나츠코의 술>은 시골을 지키며 깨끗한 농사를 짓는 삶을
보여준답니다.

우리 만화가들은 모두 생계라는 것 때문에
아이들 학습만화 시장으로 잡아먹혔답니다...

페크pek0501 2013-11-0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자 분량이 적은 만화로 이렇게 긴 글을 뽑아 내시다니...
그래서 눌러요. ㅋㅋ

숲노래 2013-11-06 19:45   좋아요 0 | URL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만화는 '그냥 만화'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문학'이랍니다.

나중에 한 번 이분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보시면
이 느낌을 pek0501 님도 얼마든지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직 절판되지 않은 이분 작품인
<나츠코의 술>과 <우리 마을 이야기>는 꼭
장만해서 읽어 보셔요.

저는 이 책들을 두고두고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한테도
물려주어야 한다고 느껴요~ ^^

그리고, 이분 만화는 '글이 적지 않'답니다.
글이 아주 많아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01 | 302 | 303 | 304 | 30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