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핑거 8 - 코바나의 정원
마츠모토 코유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절판


'집(家)'과 '마당(庭)'을 합쳐, '가정'이야. 그 의미를 잘 생각해 봐. 집 앞에 마당이 있고,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의 성장으로 계절을 느끼고, 거기에 벌레며 새가 날아들어 자연의 메카니즘을 알고, 자연을 몸으로 느끼면서 아이는 자라지. 마당이 있음으로써, '하우스'에서 '홈'으로 바뀌는 거야.-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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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8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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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1 0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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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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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19

 


언제나 반갑습니다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4.3.15.

 


  밤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저녁까지 빗줄기가 이어집니다. 여러 날 포근한 날씨였기에 아이들은 내내 바깥에서 뛰놀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내리니,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찬비가 내리지 않고 봄을 부르는 비인데, 마당에서 우산놀이를 하지도 않습니다.


  비가 온다며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은 마루와 부엌과 방을 건너뛰면서 복닥복닥 놉니다. 온 마을 뒤지면서 놀던 아이들이 집에서만 있자니 기운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겠지요.


- “영화 한 편 보러 가는데 이렇게 결심이 필요한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눈앞에 뒹굴거리는 시간은 전부 내 거, 자유롭게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그때가 지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아.” (15쪽)
- “왜 그래? 리카코 고모.” “그냥.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말똥 시대도 지나고 나니까 눈 깜짝할 사이구나.” (76쪽)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은 으레 흙투성이가 됩니다. 집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살림살이와 장난감과 그림책을 방바닥과 마루에 잔뜩 깔아놓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가위를 들고 두꺼운종이를 오립니다. 이웃 아지매한테서 배운 종이오리기를 해 보기도 합니다. 빛종이를 척척 포개듯이 작게 접은 뒤 가위로 끙끙대면서 요리조리 오린 다음 살살 펼치면 가위질한 대로 대칭 무늬가 생겨요.


  일곱 살 아이는 한글을 거의 떼려고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펼치고는 어떤 말이 적혔는가를 하나하나 읽어내려 합니다. 그동안 만화책을 그림으로만 보던 아이가, 그림에 따라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스스로 읽어내면서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아이한테 틈틈이 시를 써서 내밉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즐겁게 노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시로 씁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기쁘게 누리기를 바라는 빛을 단출하게 시로 옮깁니다. 오늘은 ‘숲에서 놀다가 / 살며시 / 고개를 들어 / 나무 우거진 사이로 /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 멧새가 날아가는 하늘 / 빗물이 떨어지는 하늘 / 무지개 드리우는 하늘 / 파란 빛과 무늬와 숨결 / 모두 푸른 숲으로 깃들어 / 내 몸이 됩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적어서 내밉니다. 한글을 읽더라도 아무 글이나 읽기보다는, 마음에 깊이 젖어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꿈이 자라고, 가슴속에서 사랑이 일렁이기를 바라요.


- “둘 다 장하기도 하지. 사야도 하루카도 생각보다 침착해서 마음이 놓여.” “너 바보냐. 장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녀석들 앞에선 절대 하지 마. 너무 어려서 슬픔을 표현할 말도 모르고 밖으로 도망칠 방법도 모르는 거야. 저 아이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뿐이야.” (22∼23쪽)
- “아빠. 울지 마, 아빠. 아빠. 울지 마, 응? 울면 안 돼. 이빠는 어른이잖아.” “그래. 그래, 그래, 미안하다. 이젠 울지 않을게/” (34∼35쪽)

 


  예쁘게 노는 아이는 예쁩니다. 스스로 예쁜 빛을 띄우면서 웃으니 예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는 신납니다. 스스로 신나게 땀흘리면서 뛰고 달리니 신납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는 개구집니다. 스스로 개구지게 뒹굴면서 복닥거리니 개구집니다.


  어른도 아이와 같습니다. 즐겁게 일하는 어른은 즐겁습니다. 아름답게 일하는 어른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레 일하는 어른은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일을 한다면 오로지 돈만 헤아리고야 맙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일을 한다면 오직 무엇을 이루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야 맙니다.


  먹고살기도 해야 할 테지만, 먹고살기만 하려고 일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누리면서 가꾸려고 하는 일이 될 때에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거나 가꾸려고 일하는 얼거리가 못 되는 채, 저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다 보니, 웃음도 노래도 자꾸 사라지는구나 싶어요. 고되더라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일이어야 노래를 합니다. 힘들더라도 기쁘게 마주할 수 있는 일이어야 웃습니다.


  산타 할배는 웃는 아이한테 선물을 준다잖아요? 하느님은 웃는 어른한테 사랑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바람님은 노래하는 어른한테 꿈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해님은 춤추는 어른한테 이야기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풀님은 어깨동무하는 어른한테 생각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를 둘러싼 하늘과 땅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와 바람과 비와 풀과 꽃과 벌레를 비롯한 온갖 숨결을 돌아봐요.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우리 이웃을 느껴요. 오늘 하루 새롭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요. 스스로 웃을 때에 삶이 빛납니다.


- “아직 어린 저 아이들에게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나이의 아이들에게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건,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입니다. 이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아이들에게 억지로 슬픔을 지워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 부디 하루카를 특별취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설령 그 아이를 위해서라고 해도 ‘가엾게도’나 ‘기운 내렴’, 그런 태도는 오히려 그 아이에게 부담이 될 겁니다. 그런 동정은 하루카의 마음을 닫히게 만들 뿐입니다.” (86∼87쪽)

 


  콘노 키타 님이 어린이 눈높이로 그린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넷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너무 일찍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꼭 이만큼이 알맞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권에서는 이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를 둘러싼 ‘죽음’을 퍽 길게 보여줍니다. 앞선 세 권에서는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 어머니가 그만 교통사고로 일찍 숨을 거두고 말았어도 두 아이가 맑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면, 넷째 권에서는 두 아이가 ‘어머니가 갑자기 차가운 몸이 되었을 적’에 이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아이 곁에서 곁님이 이승을 떠난 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했는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 “왜 금방 작아지는 걸까.” “그거야 사야가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지. 옷이나 구두가 작아지는 느낌. 그립다.” (120쪽)
- “우리 아빠가 만든 걸레는 깜찍한 자수가 수놓아져 있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걸.” “사야가 좋아하겠다.” “내일 갖고 갈게. 그럼 안녕.” “저기, 고마워.” “별 말씀을. 내일 보자.” “응.” (131쪽)


  애틋하게 흐르는 이야기를 따사로이 돌아봅니다. 누구한테나 죽음이 찾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해 보고, 죽음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교통사고는 교통사고를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사랑은 틀림없이 사랑을 바라는 사람한테 찾아가는데, 아픔과 슬픔이란 누구한테 왜 찾아갈까요? 사랑을 한결 넓거나 깊게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껴안으라는 뜻에서 아픔과 슬픔도 나란히 찾아올까요?


  내 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난 열흘 동안 몸 한쪽이 꽤 아픕니다. 몸 한쪽이 꽤 아프다 보니 걸을 때뿐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에도 아프고, 드러누워도 아프며 서도 아픕니다. 앉아도 아프고,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지을 적에도 아픕니다. 몸이 아픈 나머지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놀 적에는 더 아픕니다. 갑자기 몸 한쪽이 왜 아픈지 모르겠지만, 이 아픔도 내가 불러서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몸이 한참 아프도록 깨닫거나 느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아픔에는 크기가 따로 없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도마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든, 자동차가 들이받아 다리가 부러지든,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지든, 결핵균이 허파를 파먹든, 이가 썩든,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온몸이 아픕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발끝이 다쳐도 온몸이 흐트러져요.


  아픔뿐 아니라 기쁨에도 크기가 따로 없어요. 아주 조그마한 일로도 기쁘고 아주 커다랗다는 일로도 기쁩니다. 사탕 한 알로도 기쁘며, 선물꾸러미로도 기쁩니다. 봄이 와서 기쁘고, 봄나물을 캐기에 기쁩니다. 입맞춤이 기쁘고 등에 업은 아이가 기쁩니다.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주인공 아이가 이웃 아이와 ‘아주 수수한 일’로 ‘아주 수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끝을 맺습니다. 두 아이는 이 만화책에서 마지막이 될 인사를 아주 가볍게 합니다. “내일 보자.” “응.” 하고. 아이들한테는 내일이 있습니다. 아이들 어버이한테도 내일이 있습니다.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는?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도 내일이 있어요. 만화책 사이사이에 살짝살짝 드러나는데, 두 아이와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한테 날마다 새밥을 올립니다.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 앞에 놓인 밥그릇은 줄지 않지만, 늘 새밥을 올려서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요. 선물할 일이 있을 적에도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도 선물을 받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는 ‘물건으로 된’ 선물을 아이들한테 주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으로만 선물을 줍니다.


  모두들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헤어지며, 마음으로 삶을 가꿉니다. 마음을 밝히며 하루를 열고, 마음에 노래 한 가락 담아 하루를 닫습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웃는 삶입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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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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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17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
― 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9.25.

 


  누구나 마음속으로 품은 꿈대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읽는가에 따라 스스로 삶을 바꿉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읽는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지 않을 때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리지 못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힘들거나 고된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못 품지 않습니다. 느긋하거나 걱정없다 싶은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품지 않습니다.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빛입니다. 스스로 빛이 못 될 때에는 빛이 못 돼요. 남이 나를 아낄 때에 사랑이 아닙니다. 스스로 나를 아낄 때에 사랑입니다. 남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길어올려 삶을 덥히고 가꾸면서 이루는 사랑이에요.


- 교토의 거리는 바둑판 모양. 그 틈을 메우듯 작고 좁은 길이 곳곳에. 사람이 살고 고양이가 가로지르는 그 길을 사람들은 골목길이라고 부릅니다. (2쪽)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높다란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집을 높다랗게 지을 까닭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조그맣게 지었습니다. 조그맣게 지은 집에 온 식구 바글바글 얼크러졌습니다.


  우리 집도 조그맣고 이웃집도 조그맣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하늘바라기를 하며, 어느 집에서나 꽃잔치가 이루어집니다. 햇볕을 혼자 차지하려는 듯이 짓던 집은 없어요. 들과 숲을 혼자 거머쥐려는 듯이 만든 집은 없어요. 모진 바람을 막으려는 섬이나 바닷가라면 서로 촘촘히 기대면서 돌울타리를 쌓지만, 여느 들이나 숲에서 짓는 들집과 숲집은 서로 넉넉하고 아늑했습니다.


  전쟁 소용돌이가 치면서 집이 달라집니다. 전쟁을 꾀하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만한 집을 세웁니다. 층집을 쌓습니다. 이웃을 두지 않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이웃이 될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부립니다. 이러면서 꽤나 널따란 집을 짓습니다. 궁궐이나 기와집은 바로 권력자와 지도자라는 이들이 부리던 슬픈 집입니다. 오늘날에는 문화유산으로 삼기도 하지만, 궁궐을 지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아흔아홉 간이나 되는 기와집을 지을 일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못된 나라나 권력자 때문에 전쟁이 생긴다지만, 궁궐과 기와집 때문에 전쟁이 생깁니다. 이웃한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와서 터지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불러들이는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조용하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조그마한 시골마을로 쳐들어올 군대는 없습니다. 조그맣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한갓진 시골마을로 쳐들어갈 군대는 없습니다. 어느 정부 군대이든 중앙정부를 노립니다. 어느 나라 군대이든 권력자한테 총구멍을 겨누어 권력을 떨어뜨린 뒤 그 자리로 올라서려 합니다.


- ‘충분히 즐거운데요? 난 종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13쪽)
- “그런데 난, 책만 만질 수 있다면 그냥 행복한가 봐요.” (20쪽)
- “책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간절한 바람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 결심하게 되는 건 대개, 그만둘 때예요. 난, 손님이 참고 참아 왔던 바람에, 아름다운 무덤을 채워 주는 거예요.” (28쪽)


  작은 집 사람들은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이웃이니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지도자도 대통령도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판사도 검사도 부질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교사나 교수도 쓸모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덧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공장 노동자조차 있을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집이 모인 시골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나 스스로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지으며 살아가는 수수한 시골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웃입니다. 마을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이웃일 뿐, 경찰이나 군대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시골마을이 평화로운 까닭은 군대나 경찰이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는 전쟁무기 하나 없고 지도자라든지 권력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평화롭습니다.


  이와 달리 경찰이 많고 군대까지 있는 커다란 도시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판사와 검사가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며, 교사와 교수가 많은 커다란 도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공무원도 회사원도 공장 노동자도 많으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한 많은 커다란 도시는 평화로움하고는 아주 동떨어져요. 함께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얼거리가 아닌, 피를 튀기도록 다투면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얼거리인 커다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 “고마워. 그 사람은 ‘훨씬 더 좋은 거’ 운운했지만, 그깟 100만엔짜리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좋아.” (58쪽)
- “케이크 만드는 거? 배운 적 없어. 어릴 때부터 책 보고 혼자 만들었어.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 집이 기온에서 화과자집을 하거든.” (135쪽)
- “나 쿄토가 싫은 건 아니야. 그저 도쿄말을 하고 싶은 거지. 도쿄말 전염시켜 줘.” (145쪽)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골목길 연가》(시리얼,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연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입니다. 일본사람은 ‘연가’라든지 ‘戀歌’일 테지만, 한국사람한테는 ‘사랑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골목길 사랑노래”입니다. 조그마한 골목집이 모인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노래를 부르는 빛을 이루는가를 보여줍니다.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사랑노래가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게 북돋우는가를 밝힙니다.


- “촛불을 가운데 두고 이렇게 둘이 앉아 있으면, 왠지 함께 있는 사람과 거리도 가까워지는 것 같고, 몸과 몸을 기댄 채, 하나의 빛에 포근하게 싸이는 느낌도 들고, 그 가족에게도 아마 소중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160쪽)


  아파트에 사랑노래가 없다고 할 수 없어요. 어디에서라도 서로 아끼는 마음이 흐르면 사랑노래가 번집니다. 사막에서도 너른 바다에서도 사랑노래는 흐릅니다. 시끌벅적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우글거리는 학교에서도 사랑노래는 얼마든지 흐릅니다.


  마음을 열어 빙그레 웃음짓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마음 가득 따사로운 품이 되어 이웃을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사랑을 들려줍니다. 마음밭에 꿈씨 한 톨 심어 곱게 가꾸는 사람이 사랑을 꽃피웁니다.


  만화책 《골목길 연가》는 골목길이기에 더 멋스럽거나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웃이 되는 자리를 보여주고, 서로 사랑노래가 되는 결을 밝힐 뿐입니다. 골목길이기에 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어 마주하는 이웃들이기에 사랑노래가 되는 무늬를 찬찬히 이야기해요.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합니다. 나는 너한테 가까운 이웃이 되고, 너는 나한테 가까운 이웃이 됩니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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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행복하게 2 - 시골 만화 에세이
홍연식 글 그림 / 재미주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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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6

 


시골살이란 무엇일까
― 불편하고 행복하게 2
 홍연식 글·그림
 재미주의 펴냄, 2012.8.16.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쓰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살가이 썼지만 이제 시골사람도 텔레비전 연속극에 길들어 제대로 살가이 쓰는 말하고 자꾸 동떨어집니다. 도시사람은 입시지옥과 영어바람과 물질문명과 돈벌이에 휩쓸리면서 일찌감치 한국말을 팽개쳤다고 할 만합니다. ‘행복한 불편’이라든지 ‘불편한 행복’ 같은 말을 들으면, 참 아리송합니다. 두 낱말은 함께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자말 ‘행복’은 한국말로는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불편’은 한국말로는 “힘듦 또는 괴로움 또는 거북함”을 가리킵니다. 두 낱말은 함께 쓸 수 없어요. 즐거운 사람은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하지 않아요.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즐겁지 못해요. 너무 마땅한 이야기인데,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한국말 ‘홀가분함’은 한자말로 ‘자유로움’입니다. 다시 말해서,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짓거나 가꾸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남한테 휘둘리는 삶이라는 뜻이에요. 곧, 남한테 휘둘리는 삶일 적에는 즐거울 수 없어요. 남이 어떻게 나오건 꿋꿋하거나 씩씩하게 내 삶을 스스로 짓거나 가꿀 적에 즐겁습니다.


  홍연식 님이 시골살이를 누린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재미주의,2012) 둘째 권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스스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하게 살면서 ‘즐거움’이라고 말할 만한지 곰곰이 헤아립니다. 스스로 ‘즐겁다’ 하고 말하면,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있어도 얼마든지 견딜 만한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 “봄은 봄대로 따뜻하겠지만, 겨울 또한 멋진 계절.” (16∼17쪽)
- “학교를 지금 그만두면 후회할 거예요.” “그건 나도 아는데 그게.” “당장 급한 것보단 중요한 걸 먼저 해요, 여보.” (50쪽)
- “하지만 우린 우리니까! 우린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펴엉생 늙어 죽을 때까지 글 쓰고 그림 그릴 수 있는 특권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죠!” (54쪽)

 


  홍연식 님은 곁님과 처음 깃든 멧골집에서 ‘즐겁게’ 살아가려 합니다. 즐겁게 살아가려 할 적에는 돈이 바닥난다든지 추위가 찾아온다든지,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할 뿐입니다. 추우면 추울 뿐이에요. 막차가 끊기면 막차가 끊길 뿐이에요. 다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둘 힘든 일이 기어듭니다.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찾아듭니다.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생겨도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돌아보는데, 끝내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을 버티지 못하고 시골을 떠납니다. 다른 곳으로 삶자리를 옮겨요.


  흔히 ‘귀촌’이나 ‘귀농’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시골살이’는 귀촌도 귀농도 아닙니다. 그저 시골에서 꾸리는 삶이 시골살이입니다.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삶이 시골살이예요. 남한테 자랑할 삶이 아니면서, 남한테 굽힐 삶이 아닙니다.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시골살이입니다.


  내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내 집을 스스로 돌봅니다. 내 옷을 스스로 챙깁니다. 다른 사람 눈초리에 따라 옷차림이 휘둘릴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여다보거나 말거나 내 밥상은 내 몸을 살찌우도록 차립니다. 다른 사람이 보건 말건 내 집은 우리 식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알뜰살뜰 여밉니다.


- ‘산 속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지만 분명 봄은 우리 주위에 버젓이 다가와 있다. 크게 앓고 난 이후로 더 이상 몸이 나빠지진 않았다. 내 몸도 새 봄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87쪽)
- ‘이 산엔 아내와 내가 산다. 그래서 이 산의 주인은 나와 아내이다. 도시에 산다면 현관문 밖의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 시골에 산다면 마을 밖의 일엔 신경쓰지 않는다.’ (110∼111쪽)
- ‘비가 와서 풀뽑기가 한결 수월하군. 쓰레기와 등산객들의 차들이 차지하던 이 땅엔 이제 우리가 뿌린 생명들로 가득하다.’ (140쪽)

 


  시골살이에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힘들다면 도시살이가 힘들리라 느껴요. 도시에서는 손수 일굴 땅이 없거든요. 손수 일굴 땅이 없는 도시에서는 오직 돈만 벌어서 돈으로 가게에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사다 먹어야 합니다. 닭고기이든 돼지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돈을 벌어야 이런 고기를 사다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오직 돈으로 목숨이 간당간당합니다.


  시골살이가 괴로울 일은 없습니다. 도시살이가 괴로울 뿐입니다. 시골집은 비싸지 않을 뿐더러, 시골집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란 없습니다. 시골집은 ‘시골에서 살아갈 사람’이 알맞게 얻어서 알맞게 손질해서 살아갑니다. 헌 집을 고쳐서 살다가 스스로 새 집을 흙과 돌과 나무와 짚을 써서 천천히 지어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돈으로만 집을 얻습니다. 게다가 도시에서는 돈으로 집을 얻어도 서른 해쯤 지나면 재개발 바람이 부니 고향을 떠나야 해요.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한테는 고향이 없습니다. 해마다 전세값이나 월세값이 끔찍하게 오르는 도시입니다.


  시골살이에서 거북한 대목이 있다면 농약 때문입니다. 경운기와 짐차 때문입니다. 비닐쓰레기조차 함부로 태우는 일이 거북합니다. 어느 독재자가 외친 새마을운동이 크게 휩쓸고 지나간 뒤, 시골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를 끔찍하게 씁니다. 농약과 비료가 아니면, 시골 늙은 할매와 할배로서는 농사를 못 짓는다 할 만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싱싱 달리는 자가용은 드물지만, 늙은 할배는 경운기를 몰다가 자빠져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 일쑤예요. 젊은 시골사람은 술을 잔뜩 들이켜고는 짐차를 몰며 사고를 내거나 스스로 목숨을 잃기 일쑤입니다.


  술을 마셔도 옛날처럼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마시면, 힘들 적에 들판이나 풀숲에라도 누우면서 쉬다가 별바라기를 하면 술이 깨서 걱정이 없을 테지만, 소주를 몇 병씩 마시고는 경운기나 짐차를 몰면, 다른 사람을 들이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골로 가기까지 합니다. 시골살이에서 거북한 대목은 바로 이렇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밤도 낮도 따로 없어요. 밤에도 시끄럽고 너무 밝습니다. 밤에도 자동차 소리가 그치지 않아서, 풀벌레나 멧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못 듣습니다. 도시에는 개구리가 깃들 물가나 논둑이 없습니다.


- ‘흰눈이 저 보기 싫은 철골 구조물마저 하얗게 덮어 주고 있다. 그런데 난 왜 눈이 하는 것처럼 내 맘 속에서 기어나오는 증오심을 덮지 못하는 건가. 누구길래 (우리 집 개) 참돌이를 쇠파이프로 때리고 겁을 준 걸까.’ (274쪽)
- ‘이사 온 그날 밤을 생각해 본다. 산새와 풀벌레만이 깨어 있음을 알리던 캄캄한 이곳의 밤을.’ (313쪽)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 둘째 권을 읽으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품고 시골로 간 젊은이가 겪을 만한 고단한 나날이 잘 나타납니다. 이와 맞물려, 고단한 사이사이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무래도 고단함과 즐거움이 나란히 있다 보니 ‘불편하고 행복하게’처럼 말하지 싶습니다.
  그러면, 왜 ‘불편’이 앞에 나올까요? 왜 ‘행복’이 뒤에 나올까요?


  처음부터 시골살이는 ‘불편’이 크다는 생각에 젖었기에, 즐거움을 찾는 길보다는 ‘불편’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자꾸 마음을 쓰고 말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편’이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누리기 마련이에요. ‘불편’을 줄이거나 없애려면 삶을 바꾸어야 해요. 삶터만 바꾼대서 불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바꾸고, 사랑을 심어야 비로소 불편이 사그라듭니다.


  즐거움은 시골로 간대서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시를 벗어나기만 한대서 즐겁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스스로 아름답고 착하며 참다운 넋이 될 때에 비로소 즐겁습니다.


  홍연식 님이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그릴 무렵에는 ‘불편’과 ‘행복’이라는 열쇠말에 갇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아이들 낳아 복닥복닥 지낸다고 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불편’과 ‘행복’을 나란히 헤아릴는지 궁금해요. 이제부터는 불편이랑 행복을 나란히 놓는 시골살이 이야기가 아닌, ‘꿈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스스로 꿈을 키우고 사랑을 꽃피울 때에 아름다우면서 기쁘게 웃는 맑은 노래물결 이루어집니다.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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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1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5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 두 사람이다 1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금메달을 거머쥐고 싶은 사내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거머쥐어야 군면제와 연금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이 사내는 어린 후배 선수를 윽박지르기로 합니다. 어린 후배 선수는 윽박지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여덟 시간에 걸쳐 두들겨팹니다.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닌 여덟 시간이지만, 선수들을 다스리는 코치는 이러한 주먹다짐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운동을 하려면 선배나 감독한테 신나게 두들겨맞아야 합니다. 어느 운동을 하든 선배나 감독은 후배를 두들겨팹니다. 선배나 감독은 후배한테 얼차려를 주고, 거친 말을 일삼습니다. 방송으로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데에도 선배와 감독 입에서는 거친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옵니다. 선수를 두들겨팬 일 때문에 감독이나 코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운동 선수를 두들겨패는 ‘한국 문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운동 선수를 두들겨팬 선배나 감독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리는 못 듣습니다. 길에서 사람을 친다든지, 몽둥이나 뾰족한 것 따위로 때리면, 이런 사람은 경찰이 붙잡아 감옥에 넣는데, 뜻밖에도 운동 선수가 두들겨맞은 일은 법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두들겨패는 교사 가운데 교사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주 적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폭력과 폭행이 ‘문화로 뿌리내렸’구나 싶습니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들지 못하고, 맞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잔다’ 했지만, 오늘날에는 때린 사람이 두 다리 뻗고 잘 뿐, 맞은 사람은 잠들지 못하지 싶습니다.


- ‘너희들은, 내 피를 마시고 내 몸을 먹은 너희들은, 그 피를 거슬러 내려가 그 대대손손 물려주리라. 내 승천을 방해한 대가를. 그러나 알 수 없다. 왜 하필 나인 거냐. 왜 하필 오늘인 거냐. 나의 지성이 부족했는가? 왜?’ (14∼15쪽)
- “정말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글쎄, 출근해야겠어.” “누군지 알면은 그걸 막을 수는 있다는 거예요?” “글쎄, 그보다는, 알고 난 다음이 난 더 두려워.” (22∼23쪽)

 


  싸움이 벌어지면, 두 쪽 가운데 어느 한쪽이 ‘맞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을 두고 네가 잘못했으니 뉘우치라 할 수 있고, 두 쪽 모두 잘못했으니 서로 뉘우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을 두고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때린 사람, 한자말로 하자면 ‘가해자’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습니다. 길에서도 그래요. 멀쩡히 선 자동차나 사람을 들이받고는 ‘네가 거기에 있는 바람에 받았다’고 말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운전수가 있어요. 자동차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보험금을 적게 물려고 외려 큰소리 뻥뻥 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구별 어느 나라가 엄청난 군대와 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터뜨릴 적에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불거져요.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감싸는 매체와 지식인과 정치꾼이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미사일과 폭탄과 총칼로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나라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어요. 한 대 맞은 사람은 죽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총에 맞거나 폭탄이 터지면 목숨을 잃습니다. 다른 이 목숨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는 군대를 거느린 나라를 감싸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전쟁 미치광이를 감싸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겨도 될까요?


- “설마. 그 희생물이 저 귀여운 여자애인 건 아니겠지?” “말 함부로 하지 마! 그건 나일 수도 있는 거니까.” (38쪽)
- “건강한 몸과 정신에는 나쁜 악령 같은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니까.” ‘웬 교과서 발언? 거기다 악령이라니. 이상한 말 쓰는 사람이야.’ (41쪽)
- “나도 그 여주인공처럼 행복한 얼굴로 가족을 기다린다면 배우자도 미리 안 알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미래를 미리 아는 것도 재미없잖아요.” (83쪽)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후배 선수를 두들겨팼을 뿐 아니라, 이녁 아버지 힘을 믿고 돈을 바쳐서 다시 국가대표 자리를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혀서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여린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일터에서 내쫓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으로, 돈으로, 이름으로, 수많은 이웃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얹어,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고 일군 열매를 가로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밭에서 가꾼 푸성귀를 가로채는 사람이라면 도둑입니다. 꿈과 사랑으로 빚은 창작품인 글·그림·만화·사진·노래를 가로채는 사람일 때에도 도둑입니다.


  소매치기도 도둑이요, 표절과 도용을 일삼은 사람도 도둑입니다.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주먹을 휘두르다가 돈힘으로 그예 군면제에다가 금메달까지 가로챈 사람도 도둑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거나 일꾼 작품을 슬그머니 가로채는 사람도 도둑입니다.


- “유진 오빠, 혹 저런 타입 좋아해요?” “난 특별히 좋아하는 타입 없어. 내 눈에 들어오면 그게 내 타입이 되는 거지.” (160쪽)
-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나는 훨씬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켜줄 필요가 없을지도.” (176쪽)

 


  1999년에 나온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는 2007년에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2007년에는 만화책이 새옷을 입고 다시 선보였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두 사람’을 그리는 이 만화는 ‘공상과학’만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굳이 공상과학이나 판타지라는 틀에 넣지 않으면서 바라볼 만화이기도 합니다. 참말 어디에서나 우리들 곁에는 두 사람이 있거든요. 서로를 아끼는 사람 하나, 서로를 아끼기보다는 해코지하는 사람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이 있습니다.


- ‘고모는 이상해. 제정신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들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길 믿으라는 거야? 어린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다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하지만 친척들 모임, 이상한 점쟁이, 때 아닌 굿, 태어나 처음 본 작은고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아니란 확신보다 불신이 더 일어나. 그 일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215쪽)
- ‘그렇지만 어젯밤 그 꿈은 뭐지. 머리에서 울려퍼지듯 무언가가 소리치고 있었어. 왜 나냐고. 왜 나냐고. 왜냐고. 그건. 그건 내가 말하고 싶어. 만약 고모 말이 맞다면, 어째서 나인 거지? 왜 나야. 왜. 왜 내가. 싫어, 정말. 이제 곧 고3이고 그것만도 힘든데. 이런 모호한 일로 신경을 쓰게 만들다니. 그 말대로라면 난 내 미래는 생각도 못하는 건데.’ (230쪽)

 


  착함과 나쁨이라든지 옳음과 그름으로 두 사람을 가를 마음은 없습니다. 한 사람 마음속에 두 가지 마음이 도사린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온누리를 두 갈래로 금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고 했듯이, 스스로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사랑이라는 씨앗은 뿌리를 내려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사랑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어찌 될까요. 미움나무가 될 테지요.


  아름답게 꽃피우고 싶은 꿈을 씨앗으로 심으면, 꿈나무가 돼요. 도둑질로 제 밥그릇을 채우려는 사람은 도둑질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일굽니다.


  주먹질과 돈질로 금메달하고 군면제를 거머쥔 사람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요? 폭력나무와 돈질나무, 또는 거짓나무와 부정부패나무를 심은 셈이겠지요.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 나라 정치꾼이나 우두머리라면 전쟁나무를 심은 셈입니다.


- “난 지나라면 시한부 선고 받고도 굳건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216쪽)


  만화책 《두 사람이다》에 나오는 ‘두 사람’은 이무기를 함부로 죽인 탓에 미움을 받은 집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수렁’을 불러들이는 두 사람입니다. 그동안 이 집안에서는 죽음수렁에 허덕이기만 했습니다. 부디 ‘나한테는 죽음수렁이 찾아오지 말기를 바랄’ 뿐, 내 이웃이나 다른 살붙이가 어떻게 되는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굴레와 수렁을 아무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지나’라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이 일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먼 앞날을 꿈꾸고 싶고, 곧 고3이 되면 하루가 고단할 만큼 바쁠 테니, 이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지만, 시나브로 이 일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물러서지 않고, 비키지 않아요. 에돌지 않고, 숨기지 않아요. 어른들은 그저 쉬쉬할 뿐이지만, 아이들은 쉬쉬하지 않습니다. 모두 남김없이 드러내면서 속내를 캐내고자 합니다. 씩씩하게 맞서고, 사랑스레 얼싸안습니다. 튼튼히 두 다리를 뻗어 이 땅을 밟으며, 환한 웃음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한테도 묻고, 내 이웃한테도 묻고 싶습니다.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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