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1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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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3



어떤 삶을 바라나

― 경계의 린네 13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바라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바랐기에 찾아옵니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빚은 이야기입니다.


  기쁨과 슬픔도 스스로 그립니다. 사랑과 꿈도 스스로 그립니다. 웃음과 눈물도 스스로 그립니다. 노래와 춤도 스스로 그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늘 새롭게 살아가는 내 하루이기에, 내가 하루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나한테 찾아오는 빛이 바뀝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지 않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어떨까요. 이런 흐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을 느끼지 않은 채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쳇바퀴로 살아가기만 할까요.



- ‘나는 로쿠도의 아버지에게 1000엔을 빌려드렸습니다. 분명 돈은 갚지 않겠지.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26쪽)

- “괜찮겠어요, 린네 님? 아무리 공짜라지만.” “확실히 사신에게 낫은 생명과 같지. 말하자면 생명을 맡긴 거야. 그 신뢰에 응할 각오는 되어 있겠지?” (39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비가 퍼붓습니다. 비가 퍼붓는 소리를 얼핏설핏 들으면서 잠을 깹니다. 마당에 있는 살림 가운데 비를 맞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살핍니다. 섬돌 둘레에 흩어진 신을 추스릅니다. 제비집을 올려다봅니다. 비가 퍼붓지만 바람은 그리 불지 않아 빗물이 들이치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날이 새고 마을방송이 퍼집니다. 이장님은 올해부터 우리 마을이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린 까닭을 밝히지 않으면서 ‘친환경농업단지에 주는 친환경농약 보조금’이 사라졌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 수없이 농약을 논에 뿌려댔으니 ‘친환경 쌀’이라고 내세운 우리 마을 쌀이 모조리 농약검사에 걸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아마 밝힐 까닭이 없을 수 있어요. 모두 다 알 테니까요. 친환경농약이든 일반농약이든 모두 똑같은 줄 뻔히 알 테니, 굳이 ‘농약 없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 할매와 할배는 ‘겉보기로 반들거려서 도시사람이 상품으로 좋아하는 농산물’만 거두면 된다고 여기리라 느껴요.



- “정말 돈 욕심은 없었던 거군요.” “연구에 열중하며 독특한 낫을 만드는 건 좋지만, 중요한 건 이, 평범한 낫인데 말이야.” (61쪽)

- “로쿠도 린네. 미…….” “사과하지 마, 카인. 너답지 않게. 다만, 빙의 스티커 값은 네 보너스에서 받아 간다.” (115∼116쪽)




  동이 트면서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부산합니다. 새끼 제비는 밥을 달라 노래합니다. 어미 제비는 비가 퍼붓는 하늘을 재빨리 날면서 먹이를 물어다 나릅니다. 이 빗속에서 먹이를 어떻게 찾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는 나비나 벌레가 풀숲에 얌전히 앉아서 쉴 테니 먹이를 찾기 한결 쉬울까?


  어미 제비는 비가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빗줄기를 가르며 납니다. 나도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줍니다. 밥을 차리고 마당에서 풀을 뜯을 적에 전화가 오면 전화를 안 받습니다. 밥차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놀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받습니다. 아이들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재울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듣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엊저녁에 전화가 온 줄 비로소 압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나도 스스로 내 삶을 빚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밥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히며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샘터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하고, 가까운 골짜기나 바다로 나들이를 가고, 둘레 초등학교 놀이터로 찾아가는 나날도 스스로 빚은 삶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 또한 스스로 빚은 삶일 테지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내가 오늘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처음 익힐 적에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중에 나한테 아이가 오면 이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하고. 스무 해쯤 앞서 내 마음속에 깃든 이 꿈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품은 꿈대로 앞으로 스무 해를 더 살 테고, 스무 해 뒤에는 또 다른 스무 해를 마음속으로 그리겠지요.



- “리, 린네 님. 드디어 사 버렸어요.” “흥분하지 마, 로쿠몬.” “이런 사치를 부리다가 천벌 받진 않을까요?” “천벌은 무슨. 1년에 한 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촛불을 켜고 호화판 케이크(편의점 케익 한 조각)를 나눠 먹는 거야.” “촛불이야 매일 밤마다 켜고 살지만요, 하하하하.” (156∼157쪽)

- ‘어, 어떡하지? 꺼낼까?’ ‘다섯이 나눠 먹는다고요? 이 작고 앙증맞은 케이크를?’ ‘끝까지 숨길까? 하지만 기다려 봐. 어쩌면.’ (167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4)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경계의 린네》 열셋째 권에서는 ‘다음 삶’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 이곳에서 누리던 삶을 미련하게 붙잡는 넋은 아직 ‘다음 삶’을 스스로 그리지 못한 숨결입니다. 몸은 죽었으나 몸이 죽기 앞서 다음 삶을 알뜰히 그리지 못했기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돌며 애꿎은 짓만 일삼습니다. 다음 삶을 스스로 그려 새롭게 살아갈 빛을 꿈꾸지 못해요. 다음 삶을 스스로 빚어 사랑스레 살아갈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 “어떡하면 만족하고 성불하겠어요? 무슨 소원이라도.” “훗.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에 미련 같은 건.” “어, 그럼.” “얼른 성불해서 다시 태어나는 게 어때요?” “다시 태어나? 그, 그런 무서운 짓을.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고 인기 없고, 지금보다 더더더 한심한 인간으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 (184∼185쪽)

- “자, 너는 어떤 내세를 원하지? 생각해 봐.” (187쪽)



  오늘 이곳에서 ‘몸이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들은 어떤 삶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내 삶’을 얼마나 그리는가요. 아침마다 ‘오늘 내 삶’을 얼마나 새로 짓는가요. 저녁에 잠들면서 ‘이튿날 맞이할 내 새로운 하루’를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가요.


  ‘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잠들기에 참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쳇바퀴 삶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길을 찾으면서 빛을 밝히려는 마음이 자라지 않으면, 언제나 쳇바퀴에서 머뭅니다. 아니, 언제나 쳇바퀴를 밟으면서 쳇바퀴를 밟는 줄조차 느끼지 못해요.


  요즈막에 대통령 자리에 있는 어느 분이 ‘국무총리 후보’로 그 나물에 그 밥인 어리보기를 자꾸 고르는 까닭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분 스스로 그런 삶을 쳇바퀴처럼 굴리는데, 스스로 쳇바퀴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새 삶을 지을 줄 모르고, 스스로 새 빛이 되면서 노래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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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Heureka - 단편
히토시 이와아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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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1



과학이란 무엇인가

― 유레카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5.3.25.



  과학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과학이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데, 참말 과학은 믿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과학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요. 과학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 삶을 밝히는 일에 과학은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요.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에서 과학은 어떤 몫을 하는가요.


  과학이라는 이름은 자연과학이나 기술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데까지 붙습니다. 요즈막에는 생활과학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느 자리에나 들러붙는 과학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과학이 하나도 없다면, 과학스러운 학문이나 생각이나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이 없으면 삶이 무너질까요. 과학이 있기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가요. 과학이 없어도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는 아름답게 흐르지 않나요. 과학이 있기에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까지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나요.



- 시라쿠사 출신 망명자 에피큐데스는 지척에서 한니발의 지휘를 보며 그 천재성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15쪽)

-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 세상의 반을 죽이면 영웅, 인간을 전부 죽이면 신이다. (127쪽)




  역사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역사라 할 적에 권력자나 통치자 이름을 들먹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문화라 할 적에 권력자와 통치자가 누리던 사치를 들먹이곤 합니다.


  정치집단이 서로 맞붙어 싸우며 죽이고 죽은 발자취가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이웃나라 땅을 빼앗는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유럽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수많은 나라와 겨레를 죽이고 괴롭히며 식민지로 삼은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미국이 전쟁무기를 내세워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북미 토박이를 죽일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군사힘으로 작은 나라를 억누르는 짓이 역사일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몇몇 이름난 사람들은 역사가 아닙니다. 그네들은 그저 그네들입니다. 역사란 ‘발자취’요, 발자취란 ‘살아온 나날’입니다. 삶은 다툼과 싸움도 아닙니다.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낸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저마다 꿈꾸고 삶을 가꾼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 “클라우디아는 이곳 시라쿠사시를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지금 몹시 슬퍼하고 있단 말이오. 마을 여기저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로마와 전쟁이 터졌으니 다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불가항력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제까지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끼리, 어떻게 오늘 갑자기 칼을 들이댈 수가 있소?” (149∼150쪽)

- “그 외에도 많은 걸 만들었지만 난 사실 그런 괴물들 따윈 만들기 싫었다네. 하지만 왕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해서. 난 그 괴물들의 두목인 셈이지.” (158∼159쪽)





  땅을 일군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은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들이 노래하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나물을 뜯고 나물을 무치며 나물을 먹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제비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역사입니다. 바다와 들과 숲이 역사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역사이고, 풀 한 포기가 역사입니다. 꽃 한 송이가 역사요, 열매 한 알이 역사입니다. 씨앗 한 톨을 건사하면서 사랑을 물려주던 기나긴 이야기가 바로 역사예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볼 뿐 아니라, 참답게 가르치지도 못해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역사를 제대로 못 보여줄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역사를 슬기롭게 깨닫지 못해요.



- “다음 두 번째 질문!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173쪽)

- “왠지 고향을 배신하는 것 같아.” “고향이 먼저 널 배신했어.” (212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유레카》(서울문화사,2005)를 읽습니다. 유럽 어디메에서 지난 어느 한때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다룬 만화책입니다. 과학 문명을 앞세워 전쟁무기를 만들도록 시킨 ‘임금(우두머리)’이 나오고, 과학 문명으로 만든 전쟁무기를 내세워 이웃나라를 괴롭힐 뿐 아니라, 이웃을 마구 죽이면서 ‘영웅’이 되려는 바보들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258쪽짜리 조촐한 만화책은 “마침내 그 모든 목격자는 스러지고 2천 년이 흘렀다.”와 같은 말마디로 끝맺습니다. 이천 해 앞서, 지구별 어디에선가 서로 죽이고 죽는 피튀기는 싸움이 한창이었다는데, 이제 모두 죽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금이나 전쟁 지도자는 땅넓히기가 아주 대단하기라도 하듯이 사람들한테 떠벌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는 떡고물을 얻으려고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 “봐! 여기가 특등석이야! 좋지? 바다랑 에트나산. 이걸 그림으로 그려 목욕탕 벽 같은 데 장식하면 얼마나 좋을까.” (26쪽)

-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자에 발명가에 기술자지만 지도자는 아니오! 전장의 룰 따윌 그대로 적용해서 뭘 어쩌겠단 거요!” “너, 이놈!” “당신은 그 한니발과 호각으로 싸운 장군이고, 과거엔 적군의 왕을 자기 손으로 처치했을 정도로 대단한 용사요! ‘로마의 검’이라고까지 불리던 자가 이제 와서 망령 난 노인 하나의 목이 그리도 탐나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236∼237쪽)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세운 커다란 궁궐이나 성벽이 유물로 남곤 합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쓰던 금관이나 노리개가 유물로 남곤 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살면서 누린 살림살이는 어느 하나 유물로 안 남습니다. 흙집은 유물로 안 남습니다. 가끔 빗살무늬흙그릇이라든지 민무늬흙그릇이라든지 돌칼과 같이 아주 오래된 유물이 나오기도 한다지만, 이런 흙그릇이나 돌칼은 숲으로 돌아가고 흙으로 돌아가는 살림살이입니다. 유물이 될 생각이 없던 유물입니다. 이와 달리 금관이건 노리개이건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이 건사하던 물건은 ‘남기려고 용을 쓰던 유물’입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유물이 아니기에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모두 풀에서 실을 얻어 손으로 지었습니다. 잘 입은 시골옷은 흙한테 돌려주어 새로운 흙이 되고, 시골사람은 풀에서 다시 새로운 실을 얻어 새롭게 옷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이 먹은 밥은 똥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마신 물은 오줌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깃듭니다.


  숲을 들여다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승과 새와 벌레가 나고 죽지만, 짐승 주검이나 새 주검이나 벌레 주검 때문에 숲이 지저분하거나 고약한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이와 달리, 사람이 오늘날 만든 문명은 온통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을 새로 깔려고 헌 아스팔트를 걷으면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파트를 헐고 새로 올리려면 시멘트덩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과자봉지도 쓰레기요, 비닐봉지도 쓰레기입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쓰레기투성입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커다란 멧봉우리를 이룹니다.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문명과 문화란 무엇입니까? 교육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란 무엇입니까? 종교와 문학과 책은 또 무엇입니까? 모두 쓰레기 아닌지요? 앞으로 이천 해가 흐른 뒤를 생각해 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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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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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0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 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새만화책 펴냄, 2014.3.20.



  며칠 앞서 읍내마실을 갔다가 찜통더위에 몹시 애먹었습니다. 고작 오월 십육일인데 이렇게 덥나 싶더군요. 군내버스를 타고 창문을 열며 바깥바람을 쐬다가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로 돌아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덥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마 들에 있으면 덥다고 느낄 만할 테지만,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수북한 곳에 있으면 더위를 못 느낍니다. 나무가 없거나 풀을 찾아보기 힘든 데에 있으면 끔찍하게 덥습니다.


  읍내나 면소재지에 가면, 이곳에서 나무를 보기란 어렵습니다. 읍내도 면소재지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꼼꼼하게 길바닥을 메꿉니다. 논이나 밭 옆을 지나가지 않고서야 읍내에서도 흙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빈터와 숲을 밀어 주차장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몇 억이나 수십 억이나 수백 억까지 들여 시내 한복판에 공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정작 시골에서는 푸른 숲이나 우람한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자동차를 세우려고 용씁니다.



- “어디미 큰 집 한 채 부순 나무를 가지와서 집을 지었어. 그런 나무라야 나중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물론 새 나무도 섞어서 쓸 데는 쓰고.” (12쪽)

- “학교 끝나기만 하면 집으로 달아오고. 어떤 때는 동네 사램들이 부러 귀경을 와. 나중이 집 옆이 심은 꽃낭구랑 자라이까 집이 더 멋있어. 봉이나무에 봉이가 열면 따 먹고.” (20쪽)




  선풍기나 에어컨을 튼대서 더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 한쪽이나 방 한켠에 차가운 바람이 불도록 한대서 더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해야 안 덥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할 테지요. 나무만 있어서는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무만 있으면 나무도 몹시 힘듭니다. 나무는 뿌리를 마음껏 뻗을 만큼 너른 흙땅을 누려야 하고, 나무뿌리가 바깥에 툭 불거지지 않도록 온갖 풀이 알맞게 자라서 흙을 덮어야 합니다. 풀이 없는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릴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서 흙이 깎입니다. 풀이 있는 흙은 빗물에 좀처럼 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풀만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풀이 밟혀 못 일어나도 풀은 흙을 단단히 움켜쥐기에 나무뿌리가 흙땅에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돕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 흙을 알뜰히 돌보고, 풀과 나무가 햇볕을 듬뿍 받아들이면서 물기 머금은 바람을 내뿜을 때에 비로소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시골 읍내라 하더라도, 또 시골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오늘날은 도시와 똑같이 죄다 아스팔트에다가 시멘트이고, 나무까지 없으니 무척 후덥지근합니다.



- “잔치가 무시기 좋은 일로 하는 기 아이라. 군인 끌려 나가면 살아 돌아올지 모르이까 하는 거야. 군인 끌려 나가는 집이서 잔치를 하는 거야 … 잔치는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해.” (36∼37쪽)

- “이 사램 말하는 거를 봅세. 우리가 자식 혼인시기는 거, 자식이 맘이 있는 디 보내야지 떡을 보고 혼인을 시기겠슴메. 싹 가지고 가기오.” (66쪽)





  나무가 없으면 더위에 지치고, 풀이 없으면 더위에 치입니다. 나무와 풀이 있으면 그늘이 지고 빈 자리가 없어 남새를 얻기 어렵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새도 곁에 풀이 잘 자라면 한결 싱그럽고 맛있습니다. 들에서 돋는 풀이란 모두 나물이기도 합니다. 굳이 풀을 죽이거나 뽑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먹는 풀이 아니면, 옷을 짓거나 새끼를 꼴 적에 쓰는 풀이기 마련입니다.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도, 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었어요. 어느 겨레이든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었습니다. 흙밥을 먹고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으며 풀밥(또는 흙밥)을 먹으면 더위를 모릅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며 나무를 쓰다듬으면 더위도 추위도 모릅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지 못하는 곳이 덥거나 춥습니다. 풀과 나무가 사랑스레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리가 고단하면서 메마릅니다.


  살며시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사막이나 북극이나 남극은 어떠한가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해요. 왜 더울까요. 왜 추울까요. 풀과 나무가 없으니 덥거나 추워요. 왜 고단할까요. 풀이 없거든요. 왜 힘들까요. 나무가 없거든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숲을 가꾸고 들을 보살펴야 즐겁게 살 만한데,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사회가 숲이랑 들을 함부로 망가뜨리기에 어느 곳에 가더라도 덥거나 춥구나 하고 느낍니다.



- “그 병신 같은 사람들이 게으름 피우고 놀고먹던 사람들이야?” “우리 고향이서는 놀고먹는 사램이 없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지.” “엄마!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기 땅이 없으니까 못 살고 못 배우고 그런 거지. 그런 사람에게 땅을 줘야 맞는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 땅이 자기 땅이면 먹고는 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땅을 뺏더라도 절반이나 뺏던가 해야지 몽땅 뺏는 건 말도 안 되지.” (112∼113쪽)

- “이북이 있는 식구들도 다른 나라에서 다 만난다는데 우리 숙자는 왜, 왜, 이남이 있는 언니가 자기를 찾지도 않나 그럴 같애. 지금 형편은 이런 줄도 모르고 ‘언니가 잘사는데 나를 찾지도 않는구나’ 그럴지 몰라. 만나면 좀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 살기도 힘들고, 그래도 만나 보깁어.” (119쪽)





  김은성 님이 그린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14) 둘째 권을 읽습니다. 김은성 님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입니다. 김은성 님네 어머니는 북녘사람입니다. 북녘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갑니다. 이 만화책에는 어머니가 북녘에서 즐겁게 누리던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이 나옵니다.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리는데, 늙은 어머니는 이녁이 어릴 적을 돌아보면서 ‘괴롭거나 아프거나 슬픈’ 일 못지않게 ‘즐겁거나 웃거나 사랑스러운’ 일을 조곤조곤 떠올립니다. 웃고 울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다가 가슴을 찢으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 “바다가 밤인데도 어둡지 않아. 달빛이 비추더라고. 맘이 탁 트이는 것도 같고 아인 것도 같고. 이 생각 저 생각 드더라고.” (154쪽)

- “그렇기 오래 안 가다가 친정집이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안막 앞이 우리 논이서 추새(일)를 하다가 우리를 보더이 손을 논물이 씻고 나오더라구.” (159쪽)



  늙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 사람들이 더위나 추위를 그닥 많이 타지는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꼭 김은성 님네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집을 떠올려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이나 창호종이 한 장만 바른 문으로 살았어요. 샤시문이고 무슨 문이고 이중창이고 없었습니다. 창호종이 한 장을 바른 문 안쪽이 바로 방이요 살림터입니다. 지난날에는 전라남도 바닷가에 있는 마을조차 얼음이 꽝꽝 얼었다고 해요. 영도 밑으로 열이나 스무 금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는데, 다들 잘 살았어요. 오리털이니 무슨 털이니 하는 두꺼운 옷이 없었어도 다들 잘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추위를 견디었을까요?


  아무래도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느껴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 바람이 모질게 불지 않습니다. 나무와 풀이 푸르게 덮인 곳은 갑자기 뜨거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따순 기운이 쉬 식지 않습니다. 둘레 삶터가 알맞을 뿐 아니라, 집을 나무와 흙으로 지어요. 집 안팎이 무척 좋습니다. 온도계로 따져서 ‘대단한 추위’라고 말할 일이 없습니다. 온도계는 생각할 일이 없어요. 겨울은 겨울답게 옷을 한 꺼풀 껴입습니다. 여름은 여름답게 물을 만지고 바람을 쐬면서 지냅니다.





- “시숙이 밥을 차려 주니 자시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웃고. 식구 떼 놓고 왔는데도 집이 와서 그런가 좋아하더라구.” (183쪽)

- “젊었을 때 그 혈기 있던 시절 마늘대가리가 불기불기하고 툭툭 터지고 석 접이나 되는 꿈을 꿨는데 깨나니까 기분이 왜 또 이러니야. 내 고향집이 한 번 가 보깁다. 그 집에 우리 형부가 살고 있었다는데.”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 “60년이 지나니까 더 나. 만약 고향이 간다면 모를 파헤쳐 뼈를 만지 보면 좋겠어.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이.” (197쪽)



  만화를 그린 분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곁님 어머니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모든 어머니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우리들 어머니라면, 웬만한 분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자라셨을 테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시골 비슷한 터전에서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라면 거의 모두 흙과 풀과 나무하고 벗삼으면서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누리셨겠지요.


  우리 어머니는 모두 시골빛을 먹으며 활짝 웃던 숨결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마다 시골내음을 마시며 맑게 노래하던 넋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 함께 시골꿈을 꾸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던 사이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왜 샹냥하거나 고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이녁 어릴 적에 어떤 삶터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고운 빛을 품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은 즐겁게 살아가면서 씩씩하게 자라 할머니(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 땅 아이들은 앞으로 즐겁고 씩씩하게 크면서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로 삶길을 걷습니다. 다들 고운 이야기 한 자락을 가꾸면 좋겠어요. 모두들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면 좋겠어요.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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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에 미우치 단편 1 - 요귀비전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39



마음을 움직이는 힘

― 스즈에 미우치 단편 1 요귀비전

 스즈에 미우치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05.6.15.



  땅거미가 질 무렵 나타나는 박쥐를 보며 무섭다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쥐이든 생쥐이든 무섭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후드득 날아가면 깜짝 놀랄 만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박쥐도 사람이 무서울 만해요. 박쥐로서는 사람을 놀래키면서 재빨리 내빼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박쥐가 무서웁다면 왜 무서울까 생각해 봅니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박쥐를 무섭게 그리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이나 만화에서 박쥐를 으레 무섭게 보여주려 하기 때문은 아니랴 싶습니다.


  이를테면, 뱀을 무섭게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개구리도 두꺼비도 무섭다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네도 나방도 무서울 까닭이 없어요. 모두 다른 목숨이고, 저마다 다른 숨결로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웃일 뿐입니다.





- “아무도 없는 백화점 안은 꼭 무덤 같아.” (53쪽)

- ‘미야노우치, 요귀비! 지하감옥과 그 기묘한 인형무리. 아흑왕! 우리가 본 건 대체 뭐지?’ (107쪽)

- “불타고 있는 게 아니야, 캐롤. 숲이 모래와 싸우는 거야. 잎이 갈가리 찢겨지고 가지가 꺾이고 쓰러져 파묻히면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거야. 레노아 마을의 주민도 200년 전부터 싸워 왔어. 저 숲처럼. 파묻히고 파괴당하면서 공격해 오는 모래와 몇 번이고 몇번이고 싸워 왔어. 누가 뭐래도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토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살아남으려면 모래를 막아 줄 숲이 필요했어. 저런 숲이라도 마을 사람들에겐 신과 같은 존재지.” (341쪽)



  누군가는 박쥐나 뱀을 무서워 할 만하지만, 도시에서 박쥐나 뱀이 나올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누군가는 범이나 곰을 무서워 할 만하지만, 도시뿐 아니라 이 나라 시골에서 범이나 곰을 만날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해요. 정작 무서운 무엇인가를 꼽으라 하면, 바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 못지않게 무서운 무엇인가를 들라 하면, 자동차나 전쟁무기나 핵발전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송전탑이 무섭고 댐이 무섭습니다. 화학공장이 무섭고 농약이 무섭습니다. 바다에서 뒤집히면서 기름을 엄청나게 흘리는 배가 무섭습니다. 흙과 물을 모두 죽이는 쓰레기를 내놓는 공장이 무섭습니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오늘날 사회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 무서운 것투성이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스스로 무섭도록 문명이 치닫습니다.


  때로는 학력차별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남녀차별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정치와 경제가 무섭습니다. 때로는 언론 매체가 무섭고, 때로는 제도권 교육과 신분 사회가 무섭습니다. 경찰이나 군인이 무섭기도 하고, 돈이나 카드회사가 무섭기도 합니다.





- “실은 이때부터 요귀비는 자신의 힘을 깨닫고 힘을 키우기 시작했던 모양이야.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잡을 수 없고, 말도 못 했지. 그래서 차츰 염력으로 물건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 (125쪽)

- “가면을 쓰고 남의 눈을 피했지만, 이윽고 나의 몸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숨이 끊어지고 심장소리도 멈췄는데 그래도 내 영혼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지. 이 추한 몸은 그저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163쪽)



  《스즈에 미우치 단편 1 요귀비전》(대원씨아이,2005)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즈에 미우치 님이 짤막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그리 짧지 않은 만화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즈에 미우치 단편》에 나오는 작품은 어느 모로 보면 《유리가면》과 이어집니다. 《유리가면》에 흐르는 수많은 이야기는 《스즈에 미우치 단편》에 흐르는 여러 이야기와 맞닿습니다.


  이 작품과 저 작품 모두 마음을 다룹니다. 짧게 그린 만화도 《유리가면》도 우리 삶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을 다룹니다. 사랑을 그리는 마음을 다룹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다룹니다. 즐거움을 나누는 마음을 다루고, 두려움이 찾아들면서 덜덜 떠는 마음과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마음을 다룹니다.





- ‘난 완전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문득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 미야노우치역 저편은 대체 어디로 통하고 있을까 하고.’ (183쪽)

- ‘분신사바니 지박령이니 제령이니 심령사진이니 하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책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로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224쪽)



  누군가는 풀을 맛있게 먹습니다. 누군가는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습니다. 누군가는 물 한 잔을 마시면서 배가 부릅니다. 누군가는 밥그릇을 여럿 비워도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 이웃과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던 일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밥그릇을 아예 통째로 이웃한테 건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이 굶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어버이가 아플 적에 곁에서 아픈 어버이를 돌본다면, 우리 가운데 아픈 어버이한테서 ‘돌봄삯’을 받을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은 어버이를 돌보면서 돈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동무가 아프거나 이웃이 아플 적에도 돈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아픈 동무나 이웃한테 죽을 끓여서 내밀면서 ‘죽값’을 받을 생각은 아닐 테지요.


  그러면, 어디까지 이웃이고, 어디까지 동무일까요. 내 이웃과 살가운 이웃이라면? 내 동무와 아주 가까운 동무라면? 내 동무와 아주 가까운 동무하고 아주 가까운 동무라면? 우리 마음은 어디까지 즐겁게 손길을 내밀고, 우리 마음은 어디부터 돈을 바랄 만할까요?





- “너 자신이 코모리 사요코의 영혼과 싸워야 한다. 널 죽이려는 저주에 대항해 살고 싶다고 강하게 비는 거야. 그리고 사요코의 저주를 물리치는 거다.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영혼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줘서는 안 돼. 만약 조금이라도 그 신념이 무너지거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면 넌 죽는다. 사고일지 병일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죽게 될 거다!” (238쪽)

-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하느님, 살려 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 코모리 사요코! 난 이 세상에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잔뜩 있어! 살고 싶어!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아!’ (240쪽)



  온누리에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꼭 한 가지 있으리라 느껴요. 무서움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무서우리라 느낍니다. 무서움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서운 것이 없으리라 느껴요.


  온누리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다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면 어디에서나 사랑을 심고 꽃피우며 가꿉니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아름다우면, 나 스스로 즐겁게 웃으면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을 다르게 일굽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삶을 읽습니다. 마음을 아끼면서 이웃을 아낍니다. 마음을 빛내면서 하루를 새롭게 빛내고, 마음을 노래하면서 언제나 기쁘게 노래합니다. 4347.5.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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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5-12 20:21   좋아요 0 | URL
잘 날아갔네요.
한국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해서
아마 초판만 찍고 재판을 못 찍지 않았나 싶은 책인데,
우연하게 한 권을 보았어요.
잘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분 손길을 타면
예쁜 이야기가 되살아나리라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5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

― 팔레스타인

 조 사코 글·그림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2002.9.16.



  땅에 농약을 치면, 사람은 땅에서 나는 곡식에 묻은 농약을 함께 먹습니다. 땅에 농약을 치면, 농약이 땅으로 스미기 앞서 바람에 후 날립니다. 농약을 치는 사람은 늘 농약을 마시고, 농약바람은 이웃에까지 퍼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나오고,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지 않고 길을 걷는 사람까지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여느 집에 있는 사람도 바깥에서 흐르는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은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집이나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였으면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숲으로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언제나 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누립니다.


  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누구라도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습니다. 집안에 있든 집밖에 있든 우리는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삶을 누립니다.




- “이스라엘은 엿먹으라고 해! 유대놈들은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거야.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저 꼴로 만들고 있다구. 그 새끼들이 그 땅에서 살려고 그러는 줄 알아? 정복하려는 거야, 정복.” (20쪽)

- ‘그곳은 실완, 아랍인들만의 마을이었다. 일 주일 전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족 몇몇을 내몰았다. 그리고 그 땅을 점거하고, 철조망을 두른 뒤, 다윗의 별을 내걸었다. 물론, 우지 기관총과 법무장관의 승인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36쪽)



  조 사코 님이 빚은 만화책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안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못 믿거나 안 믿거나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됩니다.


  참은 무엇일까요.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늘 벌어집니다.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전쟁과 폭력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똑같이 찾아듭니다. 총칼을 들고 탱크를 모는 어른들은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총질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길질을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 되는 어른은 왜 이웃과 동무한테 총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할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에 맞서 작은 무기를 든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쪽이 나를 죽이니 나도 저쪽을 죽여야 할까요. 저 녀석이 우리 아이를 때렸으니 나도 저 녀석을 때려야 할까요.





- ‘나는 ‘문제’라는 게 아마도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수백, 수천의 팔레스타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비록 그들은 영국 통치기인 1942년에 정해진 촌락의 범위 안에 갇혀 지내고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농촌의 건축 허가를 불허하는 일이 많아서, 그에 따라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법’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매년 수백 채의 불법 건물을 파괴한다.’ (81쪽)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평화가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습니다.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때에 평화입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고 보살필 때에 평화입니다. 가난한 이하고 집·돈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어깨동무할 때에 평화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도울 때에 평화입니다.


  모든 미움은 전쟁입니다. 모든 손가락질은 전쟁입니다. 도둑질도 새치기도 전쟁입니다. 입시지옥도 전쟁이고 교통지옥도 전쟁입니다. 무역도 전쟁이며 경제발전도 전쟁입니다.


  등수를 매기고 점수를 따지는 일은 모두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웃을 수 없다면 모두 전쟁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모두 전쟁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다면 모두 전쟁이에요.



- “군인 다섯 명이 저를 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동댕이쳤어요. 그 바람에 제 팔이 부러졌죠. 제가 팔을 움켜쥐는 걸 보자, 놈들은 부러진 팔을 걷어차기 시작했죠. 의사와 간호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밀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어요. 놈들은 병원 직원 한 사람의 팔도 부러뜨렸죠.” (218쪽)

-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 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 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300쪽)




  사람은 총에 맞아도 죽고, 차에 치여도 죽습니다. 배가 가라앉아도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습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둘레에서 모질게 괴롭혀서 스스로 죽습니다. 온통 죽음투성이입니다. 총과 폭탄이 춤추지 않아도 죽음수렁이라면, 이 나라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투기와 탱크가 날지 않더라도 죽음물결이라면, 이 나라는 전쟁통입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는 어떻게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이스라엘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평화로울까요. 한국 어린이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일본과 중국과 미국 어린이는 어떤 넋을 추스르면서 어떤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평화로울까요.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입니다. 그악스러운 사람이 따로 있기에 전쟁이 터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따로 있기에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악스럽게 살아가면 전쟁이 자랍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면 평화가 싹틉니다.


  미친 듯이 달리며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전쟁이에요. 농약이 춤추는 시골 논밭도 전쟁이에요. 큰도시 커다란 할인매장에서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술에 절어 해롱거리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맑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은 평화예요. 빙그레 웃으며 아침저녁을 지어 밥상에 올리는 손길은 평화예요. 풀과 나무를 살뜰히 보듬는 사람은 평화예요. 숲이 평화이고, 푸른 들이 평화입니다. 나비와 제비가 평화요, 개구리와 풀벌레가 평화입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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