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 2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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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2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 설희 2
 강경옥 글·그림
 팝콘 펴냄, 2008.11.7.

 


  사랑을 찾아 살아갑니다. 내 마음을 따사롭게 간질이는 사랑을 찾아 살아갑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이야기가 피어나는 사랑을 찾아 살아갑니다.


  꿈을 찾아 살아갑니다. 내 마음밭에 곱게 심을 꿈씨를 찾아 살아갑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활짝 피우는 웃음꽃 묻어나는 꿈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넉넉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다른 것에 매달리거나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사람은 자꾸 다른 것에 매달리거나 얽매이거나 휘둘려요. 사랑이 있으니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언제 어디에서라도 안 즐겁습니다.


  꿈이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꿈이 없으면 안 아름답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요. 꿈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못 가꾸어요. 꿈이 있기에 날마다 새롭고, 꿈이 없으니 날마다 안 새롭지요.


- ‘음, 그런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려면 그런 연애를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 뭐, 그런 생각해 봐야, 사실 지금의 관심사는 연애보다 아르바이트다.’ (10쪽)
- ‘외국으로 나가면 뭔가가 바뀔까? 내 인생이 바뀔까? 그럴 돈도 없지만. 모르겠어. 그저 가능성을 꿈꿔 볼 뿐.’ (30∼31쪽)

 

 

 


  자, 생각해 보셔요. 사랑이 없어도 삶이 즐거울까요? 사랑이 없이 돈만 가득가득 있으면 삶이 즐거울까요? 사랑이 없이 졸업장이나 자격증 많이 갖추면 삶이 빛날까요? 사랑이 없이 겉모습만 멀쩡하거나 이쁘장하면 좋은가요?


  목숨이 몇 해 안 남은 사람한테 무엇이 가장 대수로울까 헤아려요. 갓 태어난 아기한테 무엇이 가장 대단할는지 헤아려요.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한테 무엇이 가장 크게 자리할는지 헤아려요.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은 무엇을 누려야 할까요. 값비싼 옷을 입히면 고양이가 멋져 보일까요? 값비싼 사료를 먹이면 강아지가 튼튼해 보일까요? 집짐승도 사람처럼 사랑을 누릴 노릇입니다. 집짐승도 사람처럼 꿈을 꾸며 삶을 즐겁게 누릴 노릇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이와 같아요.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도 이와 같습니다. 모두들 즐겁고 아름다운 사랑과 꿈을 누릴 노릇이에요.


-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자란, 언제나 부러웠던 세이. 세이에 대한 세이 엄마의 애정은 무서우면서도 부러웠다.’ (39쪽)
- ‘설희가 온 뒤엔, 왠지 뭔가 이벤트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기도 해. 뭐, 나쁘진 않네.’ (153쪽)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콘,2008) 둘째 권을 읽습니다. 《설희》 둘째 권에서, 설희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옵니다. 한국에서 만날 ‘누군가’를 찾습니다. 한국에서 만날 ‘누군가’는 저마다 이것에 이끌리거나 저것에 끄달립니다. 스스로 삶을 짓거나 누리려는 마음이 아직 옅습니다. 이른바, 아직 삶을 지을 만한 마음이 못 됩니다. 삶을 지으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하루를 깨닫지 못합니다.


  설희는 이들 사이에 넌지시 나타나요. 슬그머니 끼어들고, 살며시 이야기를 건넵니다. 마치 모두 다 아는 듯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마치 모두 알거나 모르거나 알쏭달쏭한 모습으로 다가서지요.


- “내가 차주에게 배상해야 하거든요. 보험은 잘 들어 뒀어요?” “어제 인수받아서 보험 명의는 아직 다른 사람인데요.” “어머 어머, 그럼 본인이 혼자 물어야 할 텐데, 와, 이거 견적 세게 나올 텐데? 우와, 얼마나 나오려나.” (54∼55쪽)
- “저기요, 우린 학생이고 돈도 없어서. 부디 선처를 해 주세요.” “학생이어도 책임은 책임이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아요?” (56쪽)
- ‘뭐야 이건. 엔초 페라리의 경우 5000만? 뭐에 근거한 액수야! 정말 이 액수로 요구하는 건 아니겠지? 그 잠깐 실수로 5000만이라니. 아, 일상이 파괴되는 기분. 무슨 일인가 생기길 바랐지만 이런 건 아니라고. 내 젊은 때를 빚 갚다 끝낼 수는 없잖아.’ (64∼65쪽)

 


  돈이란 무엇일까요. 젊은 날을 빚 갚느라 보내야 한다면, 이런 삶은 어떤 빛일까요. 그런데 집을 장만하고는 집값을 갚는다고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보내야 하는 나날도 똑같지 않을까요. 전세나 월세를 마련한다면서 젊은 날을 모두 바치는 삶 또한 다 똑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왜 돈을 벌어야 할까요. 우리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까요. 우리는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요. 우리는 돈을 왜 써야 할까요.


  나는 식구들과 고흥에 깃들어 살기로 할 때에 문득 한 가지를 꿈꾸었어요. 이 아름다운 고흥에 아름답지 못한 ‘매립지’, 이른바 ‘갯벌을 메꾼 엄청나게 넓은 논’이 있기에, 이 매립지 논을 몽땅 사들여서 ‘내 땅이 되’면, 내 마음대로 이곳에 바닷물을 끌여들여 다시 옛날처럼 갯벌이 되어 ‘어떤 사람 소유지도 아닌 바다요 숲이며 시골’이 되게끔 할 꿈을 꾸었어요. 땅을 백만 평쯤 사는 꿈이랄까요. 백만 평을 사는 돈이 얼마나 들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백만 평을 장만해서 더욱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시골빛이 숨쉬도록 하는 꿈을 꿉니다.


- “뭐, 너는 납득이 안 가겠지. 지금은 일방적으로 나만 아는 전생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현실 같아서 말이야. 무시할 수가 없거든.” (105쪽)
- “너 세이 좋아하지?” “그래, 하지만 쟤 엄마 보고 일찍 포기했어. 내가 감당할 수준의 애정이 아니거든. 네 라이벌 안 되니 걱정 마.” “말 안 하고 삭힌 감정은 아무 후유증이 없어?” (156∼157쪽)


  만화책에 나오는 설희는 돈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대수로울 까닭이 없습니다. 삶은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은 오로지 스스로 즐기려는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 해를 못 살고 죽습니다. 백 해조차 못 사는 사람한테 백억 원이 있든 천억 원이 있던 무엇이 대수롭겠어요. 이런 돈을 제대로 쓰기나 하겠어요. 주머니에 단돈 백 원이 있더라도 즐겁고 아름답게 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삶이 빛나요. 주머니에 있는 단돈 백원조차 즐겁고 아름답게 못 쓴다면, 삶은 흐리멍덩하고 말아요.


  곧, 사랑할 때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노래할 때에 노래가 흐르는 삶입니다. 꿈꿀 때에 꿈을 이루는 삶입니다. 좋아 좋아 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좋은 빛 가득 누리는 삶을 펼쳐요. 예뻐 예뻐 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예쁜 웃음을 이웃과 나눕니다. 기뻐 기뻐 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이웃들과 기쁜 노래를 불러요.


  어떻게 살아갈 우리 하루일까요. 어떻게 살며 어떤 사랑을 빛낼 때에 이야기가 곱다시 흐르는 하루일까요.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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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1-19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만화에 푹 빠지신 듯해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숲노래 2014-01-19 01:20   좋아요 0 | URL
만화책이야
늘 읽는 만큼만 읽어요.
다른 책도 늘 많이 읽습니다 ^^;;

다 읽은 책을 미처 느낌글로 못 쓸 뿐이에요~~ ^^
 
아만츄 Amanchu! 1
코즈에 아마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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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5

 


너는 언제 즐겁니
― 아만츄 1
 아마노 코즈에 글·그림
 김유리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5.

 


  아이들한테 넌지시 물어 보셔요. 너는 언제 즐겁니. 모두 잠든 조용한 잠자리에서 마음속으로 나한테 가만히 물어 보셔요. 나는 언제 즐겁니.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즐거울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서 목숨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즐겁게 웃고 노래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즐겁게 밥을 차리지 않으면, 밥맛이 돌지 않습니다. 즐겁게 빨래를 하지 않으면, 옷빛이 맑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고운 꿈을 꾸지 못합니다.


- “모처럼 바다를 보러 왔으니, 바다, 봐야지.” (19쪽)
- “괜찮다. 얼굴을 들어 보렴. 바로 눈앞에, 커다랗고 즐거운 세상이 끝없이 펼쳐져 있거든.” (23∼24쪽)

 


  돈을 벌려고 일하는 분도 많습니다만, 돈을 벌더라도 즐겁게 일하면서 즐겁게 벌 때에 아름답습니다. 곧, 즐겁게 일할 자리에서 땀을 흘리면,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돈이 찾아들어요. 즐겁게 일하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나뿐 아니라 내 이웃도 즐겁지 않아요. 즐겁지 않게 일하고서 얻는 돈은 즐겁게 쓰기에도 어려워요.


  즐겁게 일해서 즐겁게 벌기에, 이 돈을 즐겁게 씁니다. 즐겁게 일하면서 거둔 돈은, 이웃과 동무한테 즐겁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즐겁게 쓴 글은 이웃과 동무한테 즐겁게 읽힐 수 있습니다. 즐겁게 쓴 책은 이웃과 동무한테 즐겁게 선물할 수 있어요. 즐겁게 일구어 거둔 곡식과 열매를 이웃과 동무한테 즐겁게 베풉니다. 즐겁게 짓는 웃음을 이웃한테 살며시 건넵니다. 즐겁게 부르는 노래로 우리 집과 마을을 따사롭게 보듬습니다.


- “귀중한 지도를 손에 넣었습니다!” “귀중?” “응! 앞으로 3년이나 다닐 미지의 세계의 지도잖아. 근사한 보물이에요!” (70쪽)
- ‘이 아이, 어쩐지 굉장히 즐거워 보여.’ (72쪽)
- “앞으로 3년 간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자고, 마음껏 즐기도록 하세요!” (86∼87쪽)

 


  새들은 즐겁게 노래할까요. 풀벌레는 즐겁게 노래하나요. 개구리는 즐겁게 노래하는가요.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하고 한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저마다 즐겁게 노래하리라 믿어요. 즐겁지 않다면 고운 소리가 나오지 않는걸요. 즐겁지 않을 적에는 밝은 사랑이 샘솟지 않아요. 즐겁지 않은 날에는 활짝 웃지 못해요.


  즐겁게 건네는 손길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나라에서 마련하는 정책이나 제도 또한 즐겁게 갈고닦아서 베풀려고 해야 아름답습니다. 아랫사람 내려다보듯이 꾸리는 정책이나 제도란 즐겁지 않고 반갑지 않아요. 함께 즐거울 길을 찾아야 비로소 즐거워요. 서로 웃고 노래할 만한 길을 걸어야 참으로 즐겁습니다.


  혼자만 잘살려 하면 혼자서도 즐겁지 못할 뿐 아니라, 둘레 사람들이 누리는 웃음까지 빼앗곤 합니다. 무엇보다, 혼자서만 잘살 수 없어요. 곁님과 이웃과 동무가 함께 잘살 때에 비로소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버이도, 우리 아이도 잘살아야 비로소 잘사는 모습입니다. 내 동무들이 잘살아야지요. 내 이웃들이 잘살아야지요.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씨앗을 심어야지요. 서로서로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눈빛과 손빛이 될 수 있어야지요.


- “바닷속에선 말이지, 처음에는 자기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지만, 그게 차츰 바다에 녹아들어.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모르게 되는 느낌. 그럴 때면 난 알 수 있어. 아아, 우리 모두가 바다에서 태어난 거구나, 하고.” (118∼119쪽)
- “그럼 테코는 지금 불안감에 빠져 있구나?” “응? 아, 응.” “오늘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언제 어디서든 불행해질 녀석이라고 할머니가 그랬어.” (134쪽)

 


  아마노 코즈에 님 만화책 《아만츄》(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옆으로 퍼뜨립니다. 우리들 누구나 기쁨과 슬픔을 둘레에 퍼뜨립니다. 웃는 얼굴도 옆으로 스며들고, 찡그리는 낯빛도 둘레에 스며들어요. 맑은 넋일 때뿐 아니라 짓궂은 넋 또한 이웃한테 차츰차츰 파고들어요.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마디 모두 아이한테 젖어듭니다. 어른들이 미운 말을 하면 아이들도 미운 말을 배웁니다. 어른들이 이맛살을 찡그리면 아이들도 이맛살을 찡그려요. 아이들이 웃을 적에 어른들이 웃듯이, 어른들이 웃어야 아이들이 웃어요. 아이들이 맑으면서 밝게 살아가기를 꿈꾼다면, 어른들 스스로 늘 맑으면서 밝게 살아가야 할 노릇입니다.


- “큰일났어, 테코! 테코가 두근두근하니까 나까지 가슴이 벅차!” (170쪽)


  두근거리는 마음이 옆으로 옮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이 옆으로 옮습니다. 나는 너한테 어떤 마음을 옮겨야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너는 나한테 어떤 마음을 옮겨야 서로 기쁠까 생각해 봅니다.


  나누고픈 마음을 떠올려요. 함께하고픈 빛을 가슴에 담아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일과 놀이란 무엇인지 언제나 되뇌면서 하루를 열어요.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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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1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옆으로 퍼뜨립니다.'-
참말 그런 듯 싶어요.
오늘도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글 읽으며, 두근거리는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며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숲노래 2014-01-17 20:24   좋아요 0 | URL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퍼뜨리고 나누면서
삶을 가꾸면 아주 좋으리라 느껴요~
 
소녀소년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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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4

 


하고 싶은 대로
― 소년소녀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0.25.

 


  비파나무를 아는 이는 비파나무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한겨울에도 푸른 잎 쪼글쪼글 매단 비파나무 옆을 지나가다고 우뚝 멈춥니다. 찬바람을 씩씩하게 맞이하는 비파잎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비자나무를 아는 이는 비자나무 숲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숲내음을 듬뿍 들이켜고, 푸른빛을 그득 마십니다. 아름드리나무를 가만히 껴안습니다. 열매가 툭툭 떨어져 천천히 뿌리를 내린 어린나무를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 가볍습니다.


- 별 거 아닌 일도 금세 소문이 퍼지는 연애초보자 아이들. (11쪽)
- “난 중학교 졸업하면 일할 거거든.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동안 공부도, 야구도 열심히 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보려고.” (14쪽)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선보이는 나무는 겨울 추위가 제법 드센 날에는 잎사귀를 돌돌 맙니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천천히 동이 트면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면, 돌돌 말던 잎을 살며시 풀어 햇볕을 즐겁게 먹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아침볕이 마루로 스미면 빙그레 웃으면서 깔깔 노래합니다.


  달빛이 환한 밤에 포근히 잠듭니다. 햇빛이 환한 낮에 콩콩 뛰면서 일하고 놉니다. 별빛이 드리운 밤에 조용조용 쉽니다. 하늘이 파랗고 멧새가 지저귀는 낮에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일하고 놉니다.


  어느 나무라도 좋으니, 나무 곁에 서서 겨울맞이를 해 보셔요.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벌거숭이이지 않습니다. 가지마다 새눈이 촘촘히 돋습니다. 나뭇가지를 잘 살피면, 나무와 함께 겨울을 나는 작은 벌레들 겨울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를 보면, 잎사귀 갉아먹힌 자국을 겨울에도 봅니다. 이 겨울에 어떤 녀석이 후박잎을 갉아먹나 하고 찬찬히 살피니, 범나비 애벌레가 실컷 잎을 갉아먹은 뒤 고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 처마 밑 빈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 깃들며 아침저녁으로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서 놀던데, 넌 용케 딱새한테 안 잡히고 살아남아 고치까지 틀었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마자 날개를 펼치려고 이렇게 고치를 틀었니.

 


- “그건 말이지, 정말, 정말, 저엉말, 정말 정말 좋아하니까 하는 거야.” (24∼25쪽)
- ‘켄 오빠는 어떨까. 오빠한테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29쪽)


  겨울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들길을 지나갑니다. 나락을 벤 빈 들판인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베고 나서 바로 마늘을 심은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벤 빈 들에 유채씨를 뿌린 곳이 있습니다.


  마늘싹은 십이월부터 나왔고, 마늘잎은 퍽 자랐습니다. 유채씨를 잘 뿌리고 골을 잘 낸 들에는 유채잎이 푸릇푸릇 잘 돋았습니다. 유채씨를 엉성하게 뿌리고 골을 제대로 안 낸 들은 찬바람 몰아칠 적마다 물이 얼어붙습니다. 씨앗도 몽땅 얼어죽게 생겼습니다. 우리 마을은 올해에도 ‘경관사업’을 한다는데, 이래서야 새봄에 노란물결 일렁이기는 힘들겠다 싶습니다.


  곧 봄이 오면, 유채꽃 노랗게 피는 논이 있을 테고, 유채꽃이 못 피는 논에서는 다른 풀꽃이 피겠지요. 유채씨가 이 겨울에 얼어죽는다 하더라도, 별꽃나물이나 냉이나 씀바귀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나 질경이 씨앗은 얼어죽지 않아요. 갓씨도 모시씨도 얼어죽지 않습니다. 온갖 풀이 논마다 논둑마다 골고루 돋아요.

 


- “설마, 너, 일부러.” “하루카를 상처 입히는 녀석은 내가 가만 안 둬.” (119쪽)
-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139쪽)
- “오빠, 나 빨리 어른 될게.” “안 돼. 서두를 필요 없어.” (177쪽)


  관청에서는 오직 유채 한 가지만 놓고 경관사업을 합니다. 참 재미없습니다. 자운영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재미있을 텐데요. 현호색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멋있을 텐데요. 노랗고 빨갛고 파란 들을 선보일 수 있어요. 자주코딱지나물 씨앗을 뿌려 자주빛 흐드러지게 할 수 있어요. 돌나물 씨앗 깃들게 해서 돌나물꽃 새삼스레 노란물결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경관사업이라 하지 않아도, 빈들에서 자라는 온갖 들꽃이 아름답습니다. 경관사업을 따로 한다며 돈을 쓰는 까닭은, 들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들꽃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냉이꽃잔치 벌어지는 빈들도 예뻐요. 부들꽃이 피는 들이나 늪도 예뻐요. 억새밭은 얼마나 예쁜가요. 따로 씨앗을 돈을 들여 사들인 뒤 잔뜩 뿌려야 예쁘지 않습니다. 풀씨가 스스로 날리고 뿌리내리면서 이루는 들과 숲은 모두 예쁩니다.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머금으며 자라는 모든 풀은 저마다 예뻐요.

 


- “홧김에 한 말이지. 와타루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잖아. 네가 나가면 무슨 의미야.” “넌 같은 팀 멤버한네서 나가란 말 들어 본 적 있어?” “없긴, 한데.” (147쪽)
- “하루카, 같이 리틀에서 야구하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가고! 그래서 같이 야구부 들어가서 코시엔에 가자! 여자는 안 된다는 말, 절대 안 나오게 할 거야.” (154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서로 다투고 아끼고 어울리고 복닥이는 삶을 보여주는 이 조그마한 만화책에 나오는 조그마한 아이들은 저마다 예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들꽃처럼 푸르고 맑으며 사랑스럽습니다.


  들꽃은 스스로 피어나고 싶은 곳까지 씨앗을 날려 자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놀이와 일을 하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을 수 있고, 야구를 하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 수 있고, 마냥 뛰놀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틀을 지우지 말아요. 아이들한테 껍데기를 씌우지 말아요. 아이들을 이리 내몰거나 저리 몰아세우지 말아요. 신나게 땀흘리고 뛰놀며 자라다가 스스로 삶빛을 깨우쳐 즐겁게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요. 그러면 돼요. 꽃은 사람이 심어야 꽃이 되지 않습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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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x츠바사 2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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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3

 


마음을 읽을 때에 사랑
― 유키×츠바사 1
 타카하시 신 글·그림
 편집부 번역
 대원씨아이 펴냄, 201.2.28.

 


  마음을 읽을 때에 사랑입니다. 마음을 읽으니 사랑입니다. 마음을 읽는 사람들은 애틋한 사랑과 따사로운 사랑을 속삭입니다. 마음을 읽는 사람들은 넓은 사랑과 깊은 사랑을 베풉니다.


  마음을 읽기에 사랑이 자랍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사랑을 키웁니다. 이 땅에 민주와 평화와 자유와 평등이 있다면, 서로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민주가 없거나 평화가 없다면, 서로 마음을 안 읽기 때문이지 싶어요.


  마음을 읽지 않으면서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안 읽는데 사랑으로 흐르지 않아요. 마음을 안 읽는 동안 미움이나 다툼이 불거집니다. 마음을 안 읽으니 전쟁과 푸대접과 따돌림이 판칩니다. 괴롭힘과 해코지도 서로 마음을 안 읽는 사람이 일으킵니다.


- ‘내 목소리, 누군가에게 닿지 않으려나? 목소리를 잃어버렸지만, 더럽혀지고 너덜너덜해져 외톨이가 된 내 울음소리에 그날, 츠바사가 알아차려 준 것처럼. 부디 나의 이 작은 힘과 함께해 줘.’ (8∼9쪽)
- ‘강간범 따위는 그냥 죽었어야 되는데. 아아, 그래,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응, 내 초능력으로 죽였을지도 몰라. 그런 인간.’ (58쪽)

 

 

 


  마음을 읽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을 읽어야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합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마을을 가꾸고, 마음을 읽는 동안 숲과 들을 푸르게 돌봅니다.


  마음을 안 읽는다면 서로 어깨동무를 안 하겠지요. 마음을 안 읽는 사람들이 두레나 품앗이를 할 까닭이 없어요. 마음을 안 읽으니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기도 하지만, 쓰레기를 자꾸 내놓는 물건을 끝없이 만듭니다.


  풀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어 보셔요. 나무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셔요. 냇물과 바다가 앓는 소리를 들어 보셔요. 풀벌레와 멧새가 아프게 지르는 소리를 들어 보셔요.


  풀마음을 읽고, 나무마음을 읽으며, 냇물마음과 바다마음을 읽을 때에, 비로소 이 지구별에 사랑이 싹틉니다. 풀벌레와 멧새가 어떤 마음인가를 읽을 때에, 바야흐로 이 땅에 아름다운 빛이 흐릅니다.


- ‘너, 왜, 울고 있니? 불쌍하게.’ (29쪽)
- “어릴 적, 여기처럼 눈이 많이 오는 데에 살지 않았을 때, 눈사람 만들고 하도 기뻐서, 눈사람한테 목도리를 둘러 줬는디, 집으로 돌아가 엄니한테 죽도록 얻어터졌다 아이가.” (86쪽)

 

 

 

 


  타카하시 신 님이 빚은 만화책 《유키×츠바사》(대원씨아이,2013)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가 나오고, 목소리를 좀처럼 안 내려는 아이가 나옵니다. 둘은 굳이 입을 안 엽니다. 하나는 목소리를 못 내고, 다른 하나는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둘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눠요. 마음으로 사랑을 속삭이고,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꿈틀거립니다. 마음에서 자라는 꿈이 있어요.


- ‘선배가 마음속으로 하는 말은 나한테밖에 안 들려서, 가끔 너무나 창피하다. 그런데, 너뮤 유치하고 창피하지만, 두근두근 설렌다.’ (113쪽)
- ‘덕분에 바보 같은 나도 깨달았다. 선배가 그토록 도둑맞은 악기를 찾고 싶어하는 이유. 선배에게 이 악기는 목소리라는 걸. 언제나 언제나 이렇게 큰 목소리로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부르짖었다는 걸. 마치 노래처럼.’ (152쪽)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목이 터져라 입으로 외치면 사랑일까요. 민주란 무엇일까요. 정당 이름에 넣거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내세우면 민주일까요. 평등이란 무엇일까요. 남들 앞에서 보여주거나 말하면 평등일까요.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학교에 넣기만 하면 교육일까요. 농사란 무엇일까요. 농약을 치든 화학비료를 뿌리든 아무튼 땅에서 거두기만 하면 농사일까요.


- ‘하지만 내 마음 저 밑바닥에선 분명 선배의 그 깊숙한 내면을 알고 싶었나 보다.’ (204∼205쪽)


  마음을 알기에 사랑이 됩니다.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사랑이 안 됩니다. 마음을 아끼기에 사랑으로 자랍니다. 마음을 아끼려 하지 않으니 사랑이 안 됩니다. 마음을 보듬고 보살피려는 눈빛이 맑기에 사랑이 됩니다. 마음을 보듬으려 하지 않고 보살피려 하지 않으니 흐리멍덩한 눈빛이 되고 말아 사랑하고 멀어집니다.


  그리고, 마음을 알 때에 민주를 이룹니다. 마음을 나누면서 평화로 나아갑니다. 마음을 보듬으면서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문화도 복지도 올바로 세웁니다. 마음을 보살피지 않는 이들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마음을 따스하게 품지 않는 동안에는 스스로 무너집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해요. 그래야 함께 웃습니다. 마음을 활짝 펼쳐 꿈을 키워야. 그래야 서로 즐겁습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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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에레키테 섬 1 세미콜론 코믹스
츠루타 겐지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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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1

 


지구별에서 우리가 할 일이란
― 모험 에레키테 섬 1
 츠루타 겐지 글·그림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3.12.27.

 


  겨울비 지나간 밤하늘은 더 환합니다. 밤별이 초롱초롱 눈부십니다. 고샅마다 등불이 켜진 마을에서도 밤별이 환하구나 하고 느끼니, 등불 하나 없는 숲속으로 깃들면 한결 포근하면서 사랑스러운 밤별잔치를 누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티벳이나 몽골이나 네팔이나 부탄에서는 얼마나 드넓고 아름다운 밤별잔치를 누릴까요.


  밤별잔치를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이루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고운 별빛을 품습니다. 높다란 멧골이나 싱그러운 숲이나 찰랑이는 바다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슴 가득 별내음을 담습니다.


  먼먼 이웃 별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우리가 디딘 이 지구별 숨결을 깊이 헤아립니다. 먼먼 이웃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별 숨소리를 고루 살핍니다.


  어떤 나무도 졸업장 따위는 없습니다. 어떤 꽃도 족보 따위는 없습니다. 어느 풀도 은행계좌 따위는 없습니다. 즐겁게 뿌리를 내리고,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며, 해맑게 잎을 틔워,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라 수영이나 좀 하다 가려고요.” (10쪽)
- “다들 돌아갔니?” “응.” “미쿠라, 앞으론 어떡할 거니? 아무래도 본토에 돌아가겠지?” “아뇨, 할아버지랑 둘이서 시작한 일인걸. 저 사람들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면 돼요.” (17∼18쪽)

 


  즐겁게 살아갈 나날입니다. 씩씩하게 노래할 하루입니다. 해맑게 이야기 나누는 삶입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면, 더 높은 학교에 다녀야 하거나,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한테 한결 너른 지구별을 일깨우면서,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고 아름다운 빛을 가슴속에 품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고 싶어, 학교를 세워 무언가 가르칩니다.


  입시지옥이 된다면, 초등학교조차 아이들한테 덧없습니다. 제대로 된 삶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꿈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모든 학교는 감옥과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규칙이나 규정을 지키는 톱니바퀴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빛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삶을 누려야 합니다.


  즐겁게 살아야지요. 씩씩하게 노래해야지요. 해맑게 이야기해야지요. 아름답게 사랑해야지요. 아이도 어른도 이 지구별에서 할 일이란, 오직 사랑하는 삶입니다.


- “신기루 섬 말하는 거 아니냐? 그야 알지. 요샌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 바다에는 득시글댔었지.” (30쪽)
- “그리고 기다린다. 잠자코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42쪽)
- “겐 영감님! 나도 드디어 봤어요, 에레키테 섬! 이 눈으로 봤다고요! 상륙할 뻔했는데 아까웠어요. 근데 근데 근데 아무도 안 믿어 준다고요!” (78쪽)

 


  츠루타 겐지 님이 선보이는 만화책 《모험 에레키테 섬》(세미콜론,2013)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모험’을 기쁘게 받아들일 한국땅 어른이나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저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로만 여겨야 할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한국하고 이웃한 일본에서 드넓은 태평양을 누비는 예쁜 아이가 있으면, 일본과 이웃한 한국에서는 어떠한 삶터를 누비는 예쁜 아이가 있을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릴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나누는가요.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나 한라산을 누비면서 삶을 밝히는 어른은 얼마나 있는가요. 동해나 황해나 남해를 누비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아이는 몇이나 있는가요.


  도시로 가서 가수나 연예인이나 배우나 운동선수가 되어야 ‘꿈’인가요. 도시에서 미용사가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거나 회사원이 되어야 ‘직업’인가요.


- “미쿠라.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활 고집하지 말고, 좀 제대로 된 일을 해 보렴.” “응, 알아요.” (107쪽)
- “에레키테 섬은 대충 계산하면 지름 800미터 정도. 섬치고는 너무 작아. 게다가 항상 이동하고 있어서 위치가 일정하지 않으니 더 찾기 힘들고, 바람만 잘못 타도 잃어버릴 정도로 작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112쪽)

 


  시골 면소재지에 꼭 피시방이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뭐, 면소재지쯤 되면 한 군데쯤 있을 만하겠지요. 그러나, 면소재지이든 읍내이든, 피시방 한 군데조차 없이 고즈넉한 시골마을 되도록 가꿀 만합니다. 아이들이 갈 피시방도 없이, 어른들이 갈 술집도 없이, 모두들 숲을 누리고 바다를 누릴 만합니다. 어른들부터 술집을 닫고 편의점도 닫으면서, 피시방 또한 함께 닫고 극장 또한 없어도 돼요. 숲이 극장이고 바다가 극장인걸요. 숲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건지면 돼요. 술을 마시고 싶으면 가게에서 사다가 마시지 말고, 집에서 스스로 담그면 돼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고, 스스로 풀을 뜯고 열매를 따며 고기를 낚아 아침저녁 차리면 돼요.


  씩씩하며 즐겁게 꾸리는 살림이 있은 뒤에 모험이 있습니다.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서 삶이 태어납니다. 살림을 맑고 밝게 돌보는 밑바탕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극장입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지절거리는 숲속 새들 노랫소리가 극장입니다. 여름에 흐드러지고 가을에 멋드러진 숲빛이 극장입니다. 소나기와 무지개가 극장입니다. 누런 들판과 콩 터는 도리깨질이 극장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삶이 모두 다큐멘터리인걸요. 카메라로 찍어서 극장에서 보아야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누리는 삶이 언제나 다큐멘터리입니다. 할매 할배 살아온 이야기를 애써 녹음기에 담아야 하지 않아요. 우리 가슴에 고이 담아 우리 아이들한테 찬찬히 물려주면 넉넉해요. 옛이야기와 일노래는 언제나 가슴에서 가슴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지, 녹음기나 책에 적바림해서 잇지 않았어요. 가슴으로 들려주지 못한다면 옛이야기가 아닌걸요. 가슴으로 부르지 못한다면 일노래가 아닌걸요.


- “아들의 연구 자료네. 유감이지만 이것밖에 안 남았지. 태평양 쓰레기 벨트를 알고 있나? 해안에서 흘러나온 무수히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곳인데. 쓰레기는 태평양의 해류를 타고 결국 특정한 해역에 갇히게 되지.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네.” (136∼137쪽)
-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 설령 올해 망한다고 해도 3년 뒤가 있어. 그게 망해도 또 3년 뒤.” (172쪽)


  역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콩 한 포기가 살아온 나날이 역사예요. 역사책이 굳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쑥 한 포기가 걸어온 길이 역사예요. ‘한복’이 역사가 아니에요. 풀에서 섬유질을 얻고, 섬유질을 다스려 실을 자은 뒤, 가늘고 곱게 실꾸리를 엮어서 베틀을 밟아 천을 마련하고 이 천을 오리고 기워 옷을 짓던 삶이 바로 역사예요. 볍씨를 띄워 쭉정이를 가린 뒤 볏모를 내고, 모내기를 한 뒤, 즐겁게 보듬어 가을걷이를 하고 나서 절구질을 하고 조리질을 하며 솥에 물을 알맞게 맞추어 안쳐서 먹는 밥 한 그릇이 바로 역사예요.


  역사란 삶입니다. 문화란 삶입니다. 교육이란 삶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모두 삶입니다. 과학도 수학도 철학도 모두 삶입니다. 삶이 아닌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학문으로만 있는 학문은 ‘죽은 책’입니다. 죽은 책으로는 어떤 이야기도 샘솟지 않고, 어떤 문화도 되지 않으며, 어떤 역사도 되지 않아요.

 

  죽은 책만 붙잡으니, 이 나라 한국에 모험이 없어요. 죽은 책만 들먹이니 살갑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아요.


  살아서 숨쉬는 이야기를 나누어요. 살아서 숨쉬는 사랑을 노래해요. 살아서 숨쉬는 아이들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부터 살아서 숨쉬는 넋으로 하루를 일구어요. 4347.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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