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춤추다 1
타무라 테마리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53

 

 
가난뱅이한테 길바닥시장
― 거북이 춤추다 1
 테마리 타무라 글·그림
 강동욱 옮김
 미우 펴냄, 2009.2.15.

 


  얼결에 새끼거북 한 마리를 주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거북이 춤추다》(미우,2009)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한다. 만화책이기에 만화를 아주 빼어나게 그려야 하거나, 줄거리를 빈틈없이 짜야 하거나, 재미가 철철 넘치거나 해야 하지 않다. 다만, 함께 나누려는 이야기가 있으면 된다. 함께 즐기려는 웃음이나 눈물이 있으면 된다.


  엽기만화를 그려도 나쁘지 않다. 순정만화도 재미있다. 판타지만화도 사랑스럽다. 명랑만화도 새롭다. 어느 만화이든 반갑다. 그런데, 일본 만화쟁이 테마리 타무라 님은 이 만화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만화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한국에 있는 만화즐김이한테 어떤 빛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일는지 궁금하다.


.. 비록 우린 이 나무에 얽힌 마음이나 과거를 모르는 남일 뿐이지만, 지금만큼은 함께 이 벚꽃을 사랑해 주고 싶다. 근데 넌 그 옆에서 뱀밥이나 따고 앉았냐! 그래! 가난뱅이에게는 봄 산이 온통 노천시장이나 다름없구나! ..  (62쪽)


  가난뱅이가 아니더라도 풀을 뜯는다. 풀이 맛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고기를 먹는다. 고기가 맛있기 때문이다. 가난뱅이가 아니라도 일을 한다. 꼭 돈을 벌 생각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이웃사랑을 한다. 꼭 돈이 있어야 이웃사랑을 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풀은 봄에도 뜯지만 겨울에도 뜯는다. 봄에 나는 풀이 따로 있고, 겨울에 돋는 풀이 따로 있다. 철마다 다른 빛을 들과 숲에서 얻는다. 고장과 고을마다 다 다른 숨결과 이야기가 흐른다.


  엽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든, 뒤집기를 해대든, 이런저런 장치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어떤 삶과 어떤 꿈과 어떤 사랑을 어떤 이야기로 곰삭혀서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리면 좋겠다.


  책은 왜 읽는가? 책은 왜 쓰는가? 만화책을 왜 읽는가? 만화책을 왜 그리는가? 4347.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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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꽃미남
켄모치 마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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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152

 


내가 꽃미남이면 넌?
― 너는 꽃미남
 마요 켄모치 글·그림
 장혜영 옮김
 미우 펴냄, 2008.12.15.

 


  재미있구나 싶은 책을 골라서 읽는 사람도, 재미없구나 싶은 책을 골라서 읽는 사람도, 바로 나이다. 내가 스스로 골라서 재미있는 책과 재미없는 책을 나란히 읽는다. 눈을 맑게 밝히면 내 삶에 재미있는 책을 즐겁게 고르고, 눈을 맑게 밝히지 못했을 적에는 내 삶에 재미없는 책을 엉뚱하게 고른다.


  마요 켄모치 님 만화책 《너는 꽃미남》(미우,2008)은 나한테 어떤 책일까?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


  처음 책이름을 보았을 때부터 ‘뒤집기’로 엮어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참말, 처음부터 끝까지 ‘뒤집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뿐이다. 다른 어떤 빛도 넋도 꿈도 드러나지 않는다.


..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그렇다. 그는 분위기 파악을 안 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꽃미남 얼굴값 ..  (10쪽)


  그림을 그린 이와 함께 지내는 사내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거짓말 아닌 참말이라 느낀다. 그러면, 그림을 그린 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얼굴을 보았다. 그래서, 이 만화책 그린 이는 ‘얼굴값에 따르는 뒤치닥거리’를 하며 산다. 얼굴이 아닌 ‘마음을 보며 짝을 찾은’ 꽃미남 사내는 얼굴값 아닌 마음값을 하는 짝을 만나서 지내니, 딱히 걱정할 일이 없다. 마음이 착한 사람하고 지내면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이 만화책은 ‘꽃미남 남자친구’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넌지시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보다는 ‘남자친구를 꽃미남으로밖에 보지 못한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더 똑똑히 보여준다고 느낀다. 사람을 겉만 보고 헤아렸으니 ‘얼굴값만 하는 사내’하고 살아가지 않겠는가. 사람을 마음속으로 보고 살핀다면 ‘마음값 하는 사내’하고 살아갈 테지.


  이기고 진다고 하는 틀이란 없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꽃미남 사내’는 딱히 잘못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이녁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보거나 입맛을 맞추는 일이 없다.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한다. 이와 달리 ‘꽃미남 남친과 지내는 아가씨’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거나 입맛을 살피느라 벅차다.


  스스로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린이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와 거꾸로, 그린이가 ‘꽃미녀’이고 남자친구가 못생겼다면? 그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그때에도 이런 만화를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4347.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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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1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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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0

 


이 땅에 흔한 이야기는 없다
― 설희 1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08.8.12.

 


  이 땅에 흔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너무 흔한 나머지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이야기는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이 땅에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도 두 아이는 빈틈없이 똑같지 않아요. 어버이는 알지요. 둘 가운데 누가 누구인 줄.


  누군가 어느 작품을 흉내내거나 베낀다고 할 적에, 두 작품이 똑같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똑같이 흉내내더라도 똑같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슷하게 베끼더라도 비슷하게 되지 않아요. 둘은 사뭇 다릅니다.


  곧, 아주 흔하다 싶은 글감을 놓고 글을 쓰더라도 ‘빈틈없이 똑같은 두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둘은 사뭇 다른 넋과 빛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느 작품 하나를 놓고 흉내내거나 베끼려는 마음으로 작품을 새로 빚을 적에는 ‘똑같다’라든지 ‘비슷하다’라든지 느끼곤 해요. 왜냐하면, 줄거리나 흐름이나 이야기가 ‘다르다’ 하더라도, 어느 작품 하나에서 비롯한 넋과 빛을 ‘가로채’거나 ‘훔쳐’서 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화책 줄거리와 이야기를 훔쳐서 연속극을 만들 적을 헤아려 봅니다. 연속극에서 만화책 주인공과 무대와 다르게 꾸민다든지, 줄거리에 살을 붙인다든지 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여러모로 장치를 집어넣을 텐데, 이렇게 살을 붙이거나 장치를 집어넣거나 줄거리 틀이나 얼개를 바꾼다 하더라도, 나는 두 작품이 ‘똑같다’거나 ‘비슷하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베끼거나 훔쳤기 때문입니다.


- “아름답겠지. 마지막 본 게 10년 전이던가.” (10쪽)
- “흠, 한번 보고 괜찮으면 네가 꼬셔도 괜찮지 않니? 어차피 섬에서 자라 네가 손 한 번 까딱 해도 넘어올 텐데.” “어머니 그 애 싫어하지 않았어요?” (17쪽)
- “그 애 친자 감정 이런 거 안 해도 돼요? 결혼도 하지 않고 낳은 자식인데 확인해야지요.” “그런 건 의미가 없죠. 수양딸로 들인 이상에는 친딸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마커스도 유산을 받지 않았습니까. 주위 눈을 좀 생각하시죠, 부인.” (23쪽)
- “아버지를 10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는데, 그 0년 동안 행복하셨나요?” (58쪽)

 

 

 


  새로 만드는 사람, 이른바 ‘창작’하는 사람한테서는 똑같다 싶은 작품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새로 만들지 않는 사람, 이른바 ‘표절’하는 사람한테서는 똑같다 싶은 작품이 자꾸 나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일 때에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니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지 않습니다.


  논문을 쓰든 책을 쓰든,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글’에서 따오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글에서 ‘배운 즐거움과 보람’을 밝히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글에서 따온 대목을 ‘낱낱이 밝혀’ 이렇게 아름다운 책과 글이 있기에, 나는 ‘새로운 글을 써서’ 여러분 앞에 선보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야 올바르고 아름답습니다.


  올바르지 않을 때에는 착하지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을 때에는 참답지 않습니다. 모든 문학과 문화와 예술과 교육과 사회와 정치와 과학은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밑틀로 삼아 태어나요. 올바르지 않은 문학이 착할 수 없는 만큼, 올바르지 않은 문학이 어떻게 되겠어요? 바로 일제식민지 때에 드러난 변절문학이 됩니다. 아름답지 않은 문학이 참다울 수 없는 만큼, 아름답지 않은 문학이 어떻게 되겠어요? 바로 독재정권 때에 나타난 독재찬양 문학이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변절문학을 한 이들이, 해방 뒤에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위인전을 썼습니다. 이들은 올바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름답지도 않았어요. 착하지도 못하고 참답지도 못하지요. 그러면, 이렇게 변절문학과 독재찬양 문학을 해서 무엇을 얻느냐? 돈을 얻어요. 이름을 얻어요. 힘, 바로 권력을 얻어요. 문단권력을 누리면서 돈과 이름을 새롭게 거머쥘 뿐 아니라, 문단권력을 단단히 키워서 새로운 작가들이 새로운 꿈을 새로운 이야기로 키우는 길을 꽁꽁 틀어막곤 합니다.


- “21억 달러. 그게 얼마죠?” “뭐, 개인이 평생 쓰기에 모자라진 않는 돈이죠.” (29쪽)
- “아, 잠깐 세워요. 나, 뉴욕 핫도그 먹고 싶어요! 아, 맛있다.” (33∼34쪽)
- “피어슨 씨는 돈 버는 걸 좋아하나요?” “네? 그게 내 직업이죠.” “그럼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나요?” “무슨 뜻이죠?” “난 내가 정당하게 번 돈을 좋아해요. 그럼 좋아하는 자신의 일을 해 주세요. 당신이 수고한 만큼 돌려드리죠.” (36∼37쪽)
- “알리사 양에게 돈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파가니 존다는 100만 달러. 아까 산 원피스는 120달러. 핫도그는 1달러. 단지 그거예요.” (39∼40쪽)

 

 

 

 


  이 땅에 흔한 이야기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땅에 새로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다 어디에선가 태어난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나 혼자서 새롭게 지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풀이 자랐기에 풀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내가 풀을 만들지 않습니다. 꽃이 피었기에 꽃을 노래할 수 있어요. 내가 꽃을 만들지 않습니다. 내가 해와 달과 별을 만들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내가 냇물과 골짜기와 들을 만들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그러니, 숲을 노래하거나 바람소리를 노랫가락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내가 새롭게 지은’ 이야기, ‘창작’이 아니라 할 만합니다.


  이 땅에서 나 스스로 새롭게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틀림없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흐르는 모든 이야기는 ‘나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빛납니다. 풀 한 포기는 내가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줍니다. 꽃 한 송이는 내가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하면서 고운 무늬를 베풀어 줍니다. 바람 한 줄기는 내가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싱그러운 기운을 흩뿌려 줍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만화나 노래나 춤이나 온갖 모습으로 ‘창작’할 수 있는 바탕은 이런 데에 있어요. 나 스스로 새롭게 눈을 뜨니 언제나 ‘새롭게 지어낼’ 수 있어요. 새롭게 눈을 뜨지 않으면 어느 하나 새롭게 짓지 못해요. 새롭게 눈을 뜨는 사람은 시도 소설도 마음껏 써요. 새롭게 눈을 뜨는 사람은 시도 소설도 마음껏 읽어요.


- ‘아, 역시 자연이 좋긴 좋아. 할 수 없군.’ (65쪽)
- “있죠, 사실 난 가끔 같은 꿈을 꾸거든요. 그 꿈에서 한 남자와 결혼해서 사계절을 보내며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 죽고 말죠. 나는 꿈에서 너무나도 슬퍼하다 잠이 깨죠.” (85쪽)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08) 첫째 권을 퍽 예전에 읽었습니다. 2013년에 어느덧 아홉째 권까지 나왔습니다. 퍽 예전에 읽고 지나갔는데, 요즈음 새롭게 다시 읽습니다. 뚱딴지 같다고 해야 할는지,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할는지, 어느 방송작가께서 이 만화책 이야기를 훔쳐서 연속극 대본으로 쓰고는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기 때문입니다.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모습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름답게 일해서 아름답게 돈을 벌면 아름답습니다. 착하게 일해서 착하게 이름을 누리면 착합니다. 참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참다운 힘을 얻는 일은 참답습니다.


- “그렇게 돈이 갖고 싶었어요? 사람을 죽여서라도?”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른 체한다고 자신이 한 일이 바뀌지는 않지요.”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소리니?” “댁을 보니 그 10년 동안 양부 벤더스 씨는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164∼165쪽)
- “날 죽이고서 속이 시원했니? 죄책감은 조금 느끼셨나?” “나, 난 그런 적 없어. 무슨 소리야. 넌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 “남을 죽였으면 그 대가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을 죽이고도 멀쩡히 돈 챙겨서 살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좀 솔직해지지 그래. 나를 죽인 사진을 그놈들이 보냈을 텐데, 어땠어?” (166∼167쪽)
- “웃기시네. 그 선택에 누가 강요를 했나? 넌 벤더스를 만났을 때 그걸 (돈 거머쥘)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니야? 저 세상에서 사람을 죽인 참회나 하셔.” (168쪽)

 

 

 

 


  만화책 《설희》에 나오는 줄거리와 이야기와 주인공과 말(대사)은 ‘새롭지’ 않습니다. 나는 1986년부터 강경옥 님 모든 만화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번에 《설희》뿐 아니라, 1986년에 처음 선보인 《이 카드입니까》를 비롯해 다른 작품을 하나하나 새롭게 다시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경옥 님은 1980년대에도 ‘판타지’나 ‘에스에프’라 할 만화를 순정만화로 그렸습니다. 《설희》는 2008년에 첫 낱권책으로 나오고 2013년에 아홉째 권까지 나왔는데, 이 만화에 흐르는 고갱이는 서른 해 앞서 선보인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1986년에 선보인 작품에서든 2013년이나 2014년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든, 작가 이름을 가린 채 만화책을 들추더라도 ‘아하, 이 작품은 강경옥 님 작품이네!’ 하고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딱 강경옥 님 넋과 빛이 드러나는 작품인 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줄거리와 이야기와 주인공은 언제나 다르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나타나거나 드러나는 넋과 빛은 모두 같아요.


  언제나 ‘같은’ 넋과 빛을 작품 하나에 담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같은’ 넋과 빛을 언제나 ‘다른’ 이야깃감을 찾고 살펴서 그립니다. 이리하여, 《이 카드입니까》는 늘 《이 카드입니까》이고, 《설희》는 늘 《설희》이지요. 만화책 《설희》에서 흐르는 줄거리와 이야기와 주인공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훔쳐서 연속극 대본으로 삼은 그분은 ‘난 설희를 본 적 없어’ 하고 말하지만, ‘만화책 설희를 이루는 밑틀’을 훔친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 “당신은 운이 좋아.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은 거야. 그러니 만족할 줄 알고 살라고. 좋은 일 하면서 살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 인생이니 참견 않겠지만, 두 번 다시 나한테는 관여하지 마. 이번에 제대로 죽고 싶으면 다시 한 번 일 벌여 봐! 나에 대해서 파고들어와 봐!” (172∼173쪽)
- “마커스, 여기는 현실이에요. 나를 보고 괜히 그걸 잊지 말아요. 마커스가 본 건 나의 현실일 뿐이에요. 나만의 현실. 이런 능력이 있다고 물리쳐야 할 악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 한 인간일 뿐이에요.” (181쪽)


  변절문학이라 하더라도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사랑할 노릇입니다. 독재정권 찬양을 일삼은 작가라 하더라도 이이가 빚은 다른 ‘순수문학’을 ‘순수하게’ 즐기고 싶다면 즐길 노릇입니다. 어느 작가께서 ‘어느 정당 아무개’를 찬양하거나 말거나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독자로서는 어느 작가가 보여주는 ‘정치 성향’ 때문에 어느 작가를 좋아한다고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화책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을 즐기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즐길 노릇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만화책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을 ‘표절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고, ‘만화책을 표절한 연속극을 표절한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독자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 스스로 ‘아무 생각 없이 작품만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독자는 어떤 작품을 즐기더라도 스스로 고운 넋과 맑은 빛으로 이야기 하나 사랑스럽게 누릴 때에 독자입니다.


  그래서, 어느 작품을 놓고 생각하든, 독자로서 바라보면 ‘원작’이든 ‘표절작’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표절 작품은 독자로서 바라보면 아주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표절 작품은 ‘작가’로서 생각하고 ‘사람’으로서 바라볼 일입니다. 다른 사람 창작품을 훔치거나 베껴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면 표절작가 스스로 어떤 보람과 즐거움과 사랑이 싹틀까요? 다른 사람 창작품을 훔치거나 베껴서 거두는 돈과 이름과 힘으로, 이 표절작가는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삶을 누릴 만할까요?


  배고픈 나그네는 다른 사람 밭에서 자라는 무 한 뿌리나 토마토 한 알을 서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밭에서 자라는 무와 토마토를 훔쳐서 저잣거리에서 내다 팔려고 한다면?


  서리와 도둑질은 다릅니다. 배움과 도둑질은 다릅니다. 나눔과 도둑질은 다릅니다. 논문에서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모두 ‘표절 논문’이 됩니다. 연속극과 영화도 이와 같아요. 연속극과 영화를 찍을 적에, 이 연속극과 영화에 담는 이야기와 줄거리와 주인공을 꾸밀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된 ‘다른 작품’을 제대로 밝히고 저작권사용료를 떳떳이 치르지 않는다면, 그저 도둑질이 될 뿐입니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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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05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강경옥님의 <설희>군요!
표절작품은 '작가'로서 생각하고 '사람'으로서 바라볼 일입니다.-라는 말씀에
마음이 기울입니다.
그렇겠네요. '다른 사람 밭에서 자라는 무와 토마토를 훔쳐서 저잣거리에 내다 팔려고 한다면?'

숲노래 2014-01-05 09:47   좋아요 0 | URL
어떤 작가도
다른 사람들 수많은 작품을 즐기고 누리면서
새롭고 좋은 마음을 살찌워요.
그러니, '완전한 창작은 없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다른 작가와 작품에서 배웠으면
'배운 고마움'을 제대로 밝힐 수 있어야겠지요.

배우기와 훔치기란
너무나도 다른 울타리이니,
이 사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 안타깝게도 '표절작가'가 되겠지요...
 
경계의 린네 12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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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99

 


즐겁게 놀고 일하는 삶
― 경계의 린네 12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바람이 잔잔하니 겨울이 포근합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니 한겨울에도 숨통을 틉니다. 폭한 날씨를 누리는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으로 내려서며 놉니다. 옷차림도 가볍습니다. 전남 고흥은 워낙 따스한 고장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가라앉고 햇볕이 따끈따끈 내리쬐니 마치 봄날을 맞이하기라도 한 듯이 올망졸망 흙을 만지면서 놉니다.


  겨울 추위가 살짝 수그러드는 며칠은 더없이 반갑습니다. 겨울은 춥기에 겨울이요, 겨울날은 추위가 찾아들어 들도 숲도 멧골도 바다도 냇물도 곱게 쉽니다. 모두 조용히 쉬면서 새봄을 기다립니다. 겨우내 느긋하게 다리를 쉬고 팔을 쉬며 몸을 쉽니다. 마음을 쉬고 생각을 쉬면서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저녁에 해가 기울면서 어둠이 찾아들어요. 어둠은 우리를 잠자리로 이끕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밤에 다 함께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소근소근 속닥이다가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다가 슬그머니 곯아떨어져요.


- “들리는 소문엔, 여기서 몇 년 전에 신인 아이돌이 데뷔 이벤트 중에 다이빙대에서 떨어져 죽었다는데.” (13쪽)
- “올바른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소유주를 따라다니며 계속 피해를 입힌다고 해. 벗어나려면 새 주인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수밖에.” ‘역시 나한테 떠넘긴 거구나.’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지만, 누구의 소원도 들어준 적이 없어. 이건 그런 돌이지.” “올바른 소원을 말하면 되지. 그러면 그만이잖아?” (159쪽)


  두 아이를 왼쪽 오른쪽에 하나씩 누이고 잠자리에 들면, 이쪽에서 종알 저쪽에서 쫑알 수다를 떱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놀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 저희끼리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 노래를 한참 듣고 나서 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따릅니다. 어버이 목소리를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노랫말을 되새기고 노랫가락을 가다듬어요.


  아이들은 저희끼리 가위질도 잘 하고 삽질도 잘 합니다. 그런데, 둘레에서 어떤 어른이 참말 깊고 넓게 삽질을 하면 저희 삽질을 멈추고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아하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눈빛입니다. 도마질을 할 적에 아이들은 옆에 달라붙어 구경합니다. 쌀을 씻을 적에, 빨래를 할 적에, 비질을 할 적에, 못질을 할 적에, 아이들은 옆에 가만히 붙어서 지켜봐요. 그래 그래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눈망울입니다.


  마당에서 포근한 겨울바람을 누리는 아이들은 생각하겠지요. 그래 포근한 겨울바람은 이러한 결이로구나 하고. 쌩쌩 모질게 된바람 부는 날에는 또 이렇게 생각할 테지요. 아이고 겨울바람 된바람 되게 춥네 하고.

 


- “너무 성급했어, 로쿠몬! 모습을 드러내서 해결될 일이라면 진작 그렇게 했지!” (16쪽)
- “오보로, 0점이라니.” “내가 왜!” “넌 이름을 안 썼잖아.” “난 이름! 썼어요!” “이름만이라도 쓰면 5점.” “만세, 5점이다, 5점!” “훗, 이겼군.” (31쪽)


  삶이란 얼마나 재미난 하루일까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웃음일까요.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입니다. 언제나 빙그레 짓는 웃음입니다. 이야기가 자라고 노래가 흘러요. 이야기가 피어나고 노래가 감돌아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3) 열두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열두째 권에서도 살가운 이야기가 보드랍게 흐릅니다. 죽음을 맞이하고도 느긋하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넋이 떠돌면서 누군가 저희를 건져내 주기를 바랍니다. 이승에서 못 다한 아쉬움을 풀 길을 기다립니다.


  어찌 하면 좋을까요. 어찌 하면 될까요.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느긋하지 못하다면, 죽음을 맞이하기 앞서, 이승에서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 때에 아름답지 않을까요. 언제나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하나 없이 기쁘게 웃고 춤추는 삶이라면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 “쿠로스 6단, 이것은?” “재활용이군요. 같은 파친코 구슬을 몇 번씩 쓸 수 있어서 비용이 저렴하죠.” “과연 가난뱅이 린네의 흑묘로군. 하는 짓마다 궁상이야.” (91쪽)
- “최선을 다해! 그러고도 합격을 못하면, 그때는, 또 응시료 500엔을, 내 줄게.” “쿠로스 6단, 저것은?” “피눈물이죠.” (114쪽)

 


  부자가 된 다음에 놀 수 있지 않아요. 부자가 되어야 여행을 다닐 수 있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책을 못 읽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대학교를 못 가지 않아요.


  마음이 있을 때에 즐겁게 놀아요. 가위바위보만 하더라도 즐겁게 놀아요. 꽃 한 송이 바라보면서 즐겁게 놀지요. 냇물에 살그마니 손을 담그면서 즐겁게 놀 수 있습니다.


  먼먼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가야 여행이 아닙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뒷동산 올라가더라도 여행입니다. 마을 한 바퀴 천천히 걸어도 여행이에요. 아이와 손을 잡고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녀와도 여행입니다. 군내버스를 타도 여행이요,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다녀오는 길도 여행입니다.


  삶은 노래이자 여행이며 놀이입니다. 일은 노래이고 여행이면서 놀이입니다. 즐겁게 누리기에 삶입니다. 즐겁게 맞이하기에 일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삶도 안 되고 일도 안 되어요. 즐겁기에 웃음꽃 피어나는 삶이 되고 웃음노래 흐르는 일이 됩니다.


- “로쿠도, 이거 먹어라. 선생님 애인이 직접 만든 거야.” “이게 다 해물장조림.” “밥도 주세요.” (152쪽)
- “나는 대체 뭐지? 아아, 그래도 물어 보기가 무서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네에, 그래서 어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가로, 자기가 어떤 파워스톤인지 알아내려고, 자아를 찾는 여행이었군요.” “아아, 그래도 알기가 두려워.” (168쪽)


  사랑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이룹니다. 흰말 탄 님이 짠 하고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흰말 탄 사랑이가 되면 즐겁습니다. 꿈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펼칩니다. 먼먼 뒷날 엄청나게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날마다 아기자기하게 펼치면서 환하게 어깨동무하는 꿈이 되면 아름답습니다.


  나를 믿고 서로를 믿어요. 나를 아끼면서 서로를 아껴요. 나를 좋아하면서 서로를 좋아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럼없이 즐겁게 웃어요. 내 삶이 고스란히 이야기밭입니다. 내 사랑이 시나브로 빛물결입니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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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8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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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8

 


평화란, 전쟁이란, 삶이란
― 히스토리에 8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12.30.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3)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에우메네스 서기관’ 눈길로 그리는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어느덧 싸움터 한복판입니다. 한쪽은 싸움을 일으키려는 싸움이요, 다른 한쪽은 싸움을 막으면서도 새롭게 싸움을 일으키려는 싸움입니다. 저쪽에서 들어오는 싸움을 막아내면서 한동안 평화를 지킨다고 할 만하지만, 평화를 지키는 동안에도 저쪽을 찬찬히 노리면서 전쟁을 치르려고 군인을 키우고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저쪽 또한 싸움을 마치며 한동안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는 듯하지만, 언제나 군대와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어 어느 나라로든 쳐들어가서 무언가 사로잡거나 빼앗거나 거머쥐려 합니다.


  전쟁을 벌여 이웃나라 사람을 노예로 사로잡아야 돈을 법니다. 돈을 벌면 이 돈으로 군인을 더 늘리고 전쟁무기를 더욱 갖춥니다. 돈을 벌어야 군대와 전쟁무기를 둔 도시를 먹여살립니다.


  사회 얼거리가 전쟁을 벌여야 굴러가도록 되었으니, 언제나 전쟁을 생각합니다. 젊거나 힘세다는 사내는 온통 전쟁터로 나가야 하니, 도시 사회를 이루는 곳에서 아이를 낳거나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을 오직 가시내가 맡습니다.


  전쟁이 있어야 도시가 굴러갑니다. 전쟁을 해서 이겨야 도시가 살아납니다. 전쟁을 하지 않거나 전쟁에서 지면 도시는 무너집니다.


- “이 말 좀 빌려 갈게.” “왜? 어디 가려고?” “본영! 왕에게 진언 좀 하고 올게!” (33쪽)
- ‘스키타이 측의 강경한 자세. 비잔티온 앞바다에서의 마케도니아의 패전 사실을 알고 얕잡아보고 있는 것이 명명백백하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 “스키타이의 보물은 강건한 육체와 용기, 그리고 양질의 말뿐이라는군. 하면 어쩔 수 없지. 그것들을 챙겨 돌아가는 수밖에.” (110∼111쪽)

 


  지난날에는 이렇게 전쟁을 벌여 나라를 먹여살렸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서로 총칼을 들이대어 죽이는 짓은 애써 벌이지 않으나, 돈을 숫자놀음으로 툭탁거리면서 싸웁니다. 지난날에는 젊은 사내를 전쟁터로 끌여들였다면, 오늘날에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 모두 ‘숫자놀이 싸움터’로 끌여들입니다. 회사원과 공무원이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공장 노동자가 되도록 닦달합니다. 밥을 얻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최저 한도’로 맞춥니다. 적어도 ‘식량 주권’을 외칠 수 있어야, 돈으로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일 적에 바가지를 덜 쓸 테니까요. 식량 주권이 없으면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일 적에 엄청나게 바가지를 쓸 테니까요.


  조금만 생각해도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시골사람 1%이고 도시사람 99%인데, 도시사람이 100%가 되면,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칠레나 미국이나 캐나다나 에스파냐나 호주에서 곡식과 고기와 열매를 값싸게 팔 까닭이 없어요. 안 팔 테지요. 석유값은 아주 싸지만 물값은 아주 비싼 중동 나라를 헤아리면 돼요. 물 한 잔을 퍽 비싼값 치러 사다 마셔야 하는 여러 유럽 나라를 떠올리면 돼요.


  이 나라에서는 아직 곡식이나 물이나 열매나 고기 값이 퍽 싸요. 왜냐하면, 시골사람이 1%는 남았거든요. 앞으로 이 1%마저 무너지면 도시사람은 돈을 더 악착같이 벌도록 톱니바퀴가 되어야 합니다. 이 1%조차 사라지면 도시사람은 돈을 엄청나게 벌어도 늘 조마조마한 채 살아야 합니다.


- “아테네군의 시민군과는 대조적으로 마케도니아군은 평소에도 훈련에 전념하는 직업군인. 백병전에 들어가면 아네테 측이 불리해져. 즉, 이게 바로 아네테군의 정공법인 거야.” (59쪽)
- “한쪽 노가 전부 다 부러졌어.” “응. 그 충격으로 선내에서 노 젓던 사람들도 많이 다쳤을 거야. 대단한 평화주의자인걸.” (75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은 만화책 《히스토리에》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전쟁터에서 머리를 빠르게 돌릴 줄 아는 ‘에우메네스 서기관’이라는 사람 위인전을 보여줄 생각일까요? 아마, 아닐 테지요. 위인전으로 그리려고 이 만화를 그릴 일은 없겠지요.


  평화롭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하나도 평화롭지 않은 문명 사회, 전쟁을 벌이지만 하나도 전쟁 같지 않은 문명 얼거리, 평화와 전쟁이 뒤죽박죽 얽힐 뿐 아니라, 이 틀이 사라지면 권력도 돈도 이름도 도시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흐름 들을 넌지시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요. 우리 사회는 평화로운가요. 우리 사회는 참말 평화라고 할 만할까요. 우리 사회에 있는 엄청난 군대와 전쟁무기는 무엇일까요. 왜 군대를 두고 왜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거나 사들일까요. 도시는 왜 스스로 먹을거리를 일구지 않으면서, 자꾸 이웃나라에서 돈을 들여 먹을거리를 사들일까요. 뜻있는 이들은 이웃나라에서 사들이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농약이나 비료나 방부제나 항생제가 많이 깃드는가를 알 텐데, 막상 이런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도 도시에서 텃밭 일구기조차 거의 안 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길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뜻없는 이들이야 권력자나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휩쓸린다 하더라도, ‘뜻있는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아리송합니다.

 


- “내용은 이상입니다! 그럼 이만!” “잠깐! 지금 이거, 정말로 아탈로스 장군의 지시냐?” “네? 전 서기관 에우메네스! 워낙 긴급한 사태라 전령을 맡았습니다! 따지고 드는 건 적을 격퇴한 후에 얼마든지 하시죠!” “……. 미안하다.” (181∼1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에우메네스 서기관’은 어떻게 해야 이녁 목숨을 건사할 수 있을까요. 이녁은 왜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도시로 나와서 전쟁터 한복판에 설까요. ‘평화주의자가 벌이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하나로 평화롭지 않은 전쟁놀이’와 맞서는 또다른 ‘평화로운 전쟁’을 하고 싶을까요. ‘평화로운 전쟁’을 끝내면 그야말로 평화로운 나날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평화를 생각할 때에 평화입니다. 사랑을 생각할 때에 사랑입니다. 평화를 생각하며 평화로이 살림을 꾸려야 비로소 평화입니다. 사랑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때에 바야흐로 사랑을 나눕니다.


  전쟁을 생각하면 언제나 전쟁입니다. 도시사람 출퇴근은 전쟁이고, 도시사람 영업과 매출은 전쟁입니다. 도시사람 육아와 복지 또한 전쟁이요, 도시사람 교육과 문화마저 전쟁이에요. 모두 숫자놀음이면서 전쟁입니다. 전쟁 틈바구니에서 전쟁만 떠올리는 사람들한테 《히스토리에》는 어떤 이야기책이 될 만할까요.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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