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의 왕자 레오 1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9 

 


구름빛과 함께 즐거이
― 밀림의 왕자 레오 1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하주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1.7.25.

 


  저녁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녁빛을 누립니다. 아주 마땅한 얘기이지요. 저녁에는 저녁빛을 누리고 아침에는 아침빛을 누려요. 새벽에는 새벽빛 있고, 낮에는 낮빛 있어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다른 빛을 누려요. 도시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바라볼 수 있으면, 눈길을 돌려 느낄 수 있으면,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마다 다른 빛을 포근히 누립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저녁빛을 모르고 아침빛을 안 느껴요. 시골에서 살 때에도 마음을 기울여 저녁빛 맞아들이고 사랑을 쏟아 아침빛 반깁니다.

 


- “판자는 동물의 왕이기도 해서, 숲의 짐승들은 모두 그놈 덕에 무사히 사는 게지요.” (15쪽)
- “그게 아닙니다. 판자는 일부러 가축을 죽이는 거예요. 인간을 미워하거든요. 판자는 숲속의 동물에겐 관대하지만, 인간이 기른 짐승은 몹시 미워하는 듯해요.” (17∼18쪽)


  깊은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밤구름을 느껴요. 바람이 자는 날에는 밤구름이 아주 느릿느릿 흐릅니다. 밤구름이 어리는 별빛은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과는 사뭇 다른 빛살입니다. 밤구름이 흐르는 달빛에는 아늑하면서 고요한 이야기 나란히 흐르곤 해요.


  보름달이냐 반달이냐 초승달이냐 그믐달이냐에 따라 밤빛이 달라요. 구름이 얼마나 짙으냐에 따라 밤빛은 또 달라요. 한참 밤하늘 올려다보면 어느 곳에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별똥이 반짝 빛나면서 지나가곤 해요. 지구에 떨어지는 별똥일는지, 지구 곁을 스치는 별똥일는지, 지구에서 아주 먼 데에서 사그라드는 별똘일는지 잘 몰라요. 눈 한 번 깜짝 하는 사이에 스러지는 별똥을 바라보면서, 우리 눈에는 눈 한 번 깜짝 하는 사이라 할 테지만, 우리 눈에 보이기 앞서까지 얼마나 오래 활활 불타오르다가 사라질까 궁금해요.


  밤에는 아무것 안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밤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온갖 것이 내 눈과 마음으로 들어와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밤을 밟겨 노래를 들려줍니다. 늦가을부터 첫봄에 이르기까지는 개구리도 풀벌레도 없지만, 곧잘 멧새가 노래를 베풀고, 멧새 노래가 없으면 밤바람이 스산하게 지나가면서 풀노래와 나무노래를 베풀어요.


  달빛이 없는 날은 별빛이 초롱초롱합니다. 달이 없으면 별빛을 벗삼아 길을 바라보고 느껴요. 달이 훤하면 달빛을 동무삼아 길을 마주하고 누려요.


  참말 얼마 앞서까지, 어느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모두 달빛과 별빛 곱게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언제부터인가, 어느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모두 달빛이랑 별빛을 까무룩 잊으며 지내는구나 싶어요.

 

 


- “저 구름을 봐. 저 뭉게구름 아래 아버지 나라가 있단다. 아프리카라는 드넓은 나라야. 레오, 넌 동물원에 갔다간 평생을 망치게 된단다. 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사자가 돼야 해.” (45쪽)
- “저 창으로 빠져나가서 아프리카로 가거라.” “싫어,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그게 널 위한 길이란다. 넌 우리 안에서 평생 주는 먹이 받아먹으며 살고 싶니?” (46쪽)


  다른 고장하고 견주어 많이 포근한 고흥 밤빛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잡니다. 밤에 한두 차례 쉬 마렵다 잠에서 깹니다. 가끔 아이들 데리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밤빛을 아이한테도 나누어 주곤 해요. 저녁에 잠자리에 안 들려 하는 아이들도 마당으로 나오도록 해서 별과 달을 보도록 하고, 마을 한 바퀴를 빙 돌기도 해요.


  우리 고장이 겨울에도 무척 포근하지만, 잠자리 안 들려는 아이들 데리고 밤마실 한 바퀴 하면 다들 춥다고 덜덜 떠는데, 추우면 달리자 말하고 걸음을 재촉하면 콩콩콩 뛰고 달리면서 몸을 달구어요. 저기 우리 집 불빛을 보다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해요. 벼리야, 보라야, 저 구름을 보렴, 밤에 보는 구름 어떠니, 예쁘지 않니.


  시골에도 이제는 등불이 많아 예전처럼 별을 더 누리기 힘들지만, 높은 건물은 따로 없고, 읍내나 면소재지도 일찌감치 닫는 가게 많아요. 도시에서는 늦도록 불을 안 끄는 가게 많고, 자동차도 너무 많은 나머지, 아주 깊은 밤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기 어려워요. 생각해 보면, 낮에 낮구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밤에 밤구름 누려요. 낮에 낮볕 누리는 곳에서 밤에 밤달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흙을 돌보고 살찌우면서 밥을 얻으니 높은 건물이 있을 턱 없어요. 골고루 햇볕을 잘 받아야 흙이 싱그러이 숨쉬거든요. 도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서 옹기종기 살아야 하니 건물을 높이 올릴밖에 없어요. 자동차도 많아야겠고, 가게도 많아야겠으며, 이것저것 크고 높아야 하는 도시입니다. 해와 어깨동무를 하는 시골이니, 밤에는 달과 별하고 함께 지내는 시골이에요. 해는 몰라도 높은 건물과 지하상가와 자동차 물결 그득한 도시이니, 낮이고 밤이고 똑같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똑같이, 숫자 하나만 바라보며 달리는 도시로 치닫지 싶어요.

 


- “이런 데서 표류하고 있다간 평생 가도 못 갈 거야. 네 힘으로 헤엄쳐 가지 않으면.” (62쪽)
- “있잖아, 잭! 동물원은 처음 봤지만 끔찍했어.” “예, 세상엔 저런 게 수천 개는 더 있죠.” “저런 데 사는 동물들은 행복할까?” “글쎄요. 뭐, 다칠 염려도 없고 먹을 것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우리 쥐들은 꿈도 못 꿀 행복이죠.” “그럴까? 난 아닐 것 같아. 우리도 인간처럼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갈 권리가 있을 거야.” (95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밀림의 왕자 레오》(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깊은 숲을 보살피는 흰사자는 ‘판자’입니다. 그런데 판자는 나쁜 사냥꾼 꼬임에 빠져 그만 목숨을 빼앗겨야 합니다. 판자 곁님은 나쁜 사냥꾼한테 사로잡혀 도시에 있는 동물원으로 끌려갑니다. 배를 타고 오랫동안 천천히 아프리카를 떠나야 하는 길에 ‘레오’가 태어나요. 레오를 낳은 암사자는 레오더러 ‘너는 동물원 같은 데에 가서는 안 되는 넋’이라 가르치면서, 넓디넓은 바다로 뛰어들어 고향 아프리카까지 헤엄쳐서 돌아가라 이릅니다.


  어머니다운 가르침이요 말이에요. 어머니는 쇠우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만, 몸이 조그마한 새끼 사자는 쇠우리 틈을 빠져나와 바다로 뛰어들 수 있어요.


  자, 레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 품에 안겨 동물원으로 가야 할까요. 씩씩하게 바다로 뛰어들어 밤하늘 달빛과 별빛에 기대면서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까요.


- “난 아프리카에 돌아가서, 아빠 뒤를 이을 거야. 그리고 전 세계 동물원의 동물들을 아프리카로 불러서, 사이좋게 살 거야.” (97쪽)
- ‘어서 와라, 어서 와라, 레오. 정글은 네 고향이란다, 레오. 따뜻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라. 모두가 널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라.’ (138쪽)


  어린 사자 레오는 아프리카로 쉬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아닌 도시를 헤맵니다. 사람들 사는 도시에서 속임수에 휘둘리고, 바보스러운 도시 얼거리를 몸속 깊이 깨닫습니다. 이러는 동안 나쁜 사람들 그득한 사이사이 착한 사람들 있는 줄 살핍니다. 사람다운 넋을 건사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다운 넋을 스스로 잃거나 버리는 사람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깊은 숲속에서도 착한 짐승과 나쁜 짐승이 있을까요. 글쎄, 짐승누리에서 착하거나 나쁘다는 잣대로 이래저래 금을 그을 수 있을까요. 착한 나무와 나쁜 나무가 있을까요. 착한 풀과 나쁜 풀이 있을까요. 착한 새와 나쁜 새가 있을까요. 착한 벌레와 나쁜 벌레가 있을까요. ‘착하다’와 ‘나쁘다’라는 잣대나 틀은 오직 사람누리에서 사람들끼리 얄궂게 세우는 바보스러운 잣대나 틀은 아닐까요.

 


- “자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독일군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딸 가진 선량한 시민에 우수한 사냥꾼이라.” (121쪽)
- “자, 여러분. 목소리가 높은 순서로 늘어서 주세요. 이제부터 다 같이 합창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함께 노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죠? 그래서 전 합창단, 아니 오케스트라라는 걸 만들어, 여러분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161쪽)


  어린 흰사자 레오는 아버지와 어머니 넋을 이어받습니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싸움을 말리는 넋입니다. 서로 돕는 넋이며, 서로 아끼는 넋입니다. 이웃 짐승을 돌보며, 동무 짐승을 사랑하는 넋입니다.


  사람들은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벌입니다. 사람들은 전쟁무기를 들고 숲속으로 들어와서 사냥질을 합니다. 배가 고파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냥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냥을 ‘스포츠’로 여깁니다. 이런 스포츠는 운동경기로까지 뻗어 ‘사격’이 있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서로 치고 때리고 맞고 툭탁거리는 싸움을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여 큰돈을 걸며 경기장도 짓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데에 꿈과 사랑을 쏟기보다는, 돈이 되는 일거리에 돈을 들여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꿈과 사랑을 기울이기보다는, 돈을 더 키우는 일거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요.


  돈을 만지는 사람은 구름을 볼까요. 돈을 바라는 사람은 해를 볼까요. 돈을 거머쥐려는 사람은 달이나 별을 볼까요. 돈바라기로 흐르면서 정작 이녁 아이들조차 안 바라보지는 않나요. 돈쟁이가 되면서 막상 이녁 식구들 마음조차 안 읽거나 못 보지는 않나요.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꿈꾸거나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요. 숲넋 판자 뒤를 이은 레오는 숲에서 살아가는 이웃들한테, 또 숲으로 찾아온 사람들한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지구별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가슴속에 고운 빛으로 품자는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고 싶습니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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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2-1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밀림은, 동물의 왕국, 레오레오레에오, 흰사자 레에오~"
전 아직도 이 만화영화 주제가를 기억해요. 제가 겨우 여서일곱살때 TV에서 보았는데말이지요.

숲노래 2013-12-17 14:36   좋아요 0 | URL
아, 한국말 번안으로 보셨군요!

오오, 예전 동영상을 찾아보면 도무지 한국말 더빙은 안 나오더라구요 ㅠ.ㅜ
그래도 일본말 동영상은 있어,
아이들하고 예전 만화영화를 보곤 해요~
 
소녀소년학급단 1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90

 


좋아하는 길
― 소년소녀학급단 1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8.25.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노래를 부릅니다. 좋아하지 않는 가락을 듣기보다는 좋아하는 가락을 들을 때에 즐거워요. 좋아할 만한 노랫말을 가만히 읊고, 좋아할 만한 곳에서 느긋하게 노래를 불러요.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조용히 듣기도 해요. 바람은 물결을 간질이며 바다노래를 들려주어요. 바람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흔들며 나무노래를 들려주어요. 바람은 꽃송이를 어루만지며 꽃노래를 들려주고, 풀잎을 보듬으며 풀노래를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둘레에는 언제나 노래가 흘러요. 고속도로를 싱싱 달리는 자동차조차 노래를 불러요.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살갑거나 사랑스러운 노래 될는지 모르지만, 자동차 또한 노래를 들려줍니다.


  시골마을에 짓는 발전소도 노래를 들려줘요. 시골에 지은 발전소에서 도시까지 우람한 송전탑을 줄줄이 박으면, 송전탑도 우리들한테 노래를 들려줘요. 다만, 발전소와 송전탑이 들려주는 노래가 얼마나 즐거울는지 알 길은 없어요.


- “얘, 여자는 피구야.” “그래? 하지만 좋아하는 거 하면 되잖아? 난 야구 할래!” “여자는 피구해!”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 하라고.” “시끄러! 여자랑 같이 야구하면 볼이 썩어버려.”  (12∼13쪽)
- “오빠 우리 야구 팀 선배지? 다들 코시엔 나간 오빠가 대단하다고 그랬어. 오빠는 우리 영웅이야.” “하루카의 꿈은 뭐니?” “오빠는 남자라 좋겠다.” (63∼64쪽)


  줄세우기를 하는 학교교육도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시험지에 연필과 펜으로 답안을 적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지난날 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손찌검이나 주먹이나 발길이나 몽둥이로 두들겨패던 소리도 노래입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컴퓨터를 쓰고 에어컨을 돌리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세는 소리도 노래예요. 감옥에서 고문을 하는 소리도 노래예요.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나긴 나날 집회를 하는 할매들 목소리도 노래예요. 서너 살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려는 어버이 목소리도 노래이고, 시골에서 논밭에 농약을 뿌리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사람들은 새와 풀벌레가 노래한다고 이야기해요. 사람들은 개구리와 맹꽁이와 두꺼비가 노래한다고 이야기해요. 참말 그렇지요. 어떤 소리가 노래가 아니겠어요. 사람 귀에는 안 들린다 하는 지구별 구르는 소리도 노래가 되어요.


  시냇물이 노래하고 우물물이 노래합니다. 샘물이 노래하며 도랑물이 노래합니다. 빗물이 노래하고 눈송이가 노래해요. 구름이 노래하고 무지개가 노래합니다.


  귀를 열면 노래를 들어요.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노래가 즐거워요. 자전거 구르는 노래가 싱그럽습니다. 아이들 콩콩콩 달리는 노래가 산뜻합니다. 콩을 터는 소리가, 나락을 베는 소리가, 풀을 뜯어 나물을 무치는 노래가 상큼합니다.


- ‘이상한 건 이 반이야. 이전 학교에서는 남자 여자 상관없었는데.’ (17쪽)
- “그래, 알았어. 다른 사람을 때리면 자기도 괴롭지? 알았니? 우리 동생이 잘못한 건 맞는데, 그래도 때리면 안 돼. 그런 걸로 다쳐서 좋아하는 야구 못하게 되면 아깝잖아.” (32∼33쪽)

 

 

 


  내 귀에는 자동차 구르는 소리는 노래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붕붕 소리 내며 달리기를 즐기는 이들한테는 아주 사랑스러운 노래이리라 느껴요. 내 귀에는 오토바이 부르릉 소리는 노래답지 않아요. 그렇지만, 부릉부릉 소리 내며 내달리기를 즐기는 이들한테는 더없이 기쁜 노래이리라 느껴요.


  공책에 글을 쓰느라 연필을 사각거리는 소리,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느라 석석거리는 소리, 붓에 물감을 발라 그림을 그리면서 슥슥거리는 소리 모두 노래라고 느껴요. 빙그레 짓는 웃음도 노래로,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도 노래라고 느껴요.


  밥을 끓이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국을 끓이는 소리도 노래이고, 설거지를 하며 물을 틀어 그릇을 부시는 소리도 노래예요. 빨래를 조물조물 주무르고 헹구는 소리, 다 마친 빨래를 북북 비틀어 짜면서 물방울 떨구는 소리도 노래예요.


  스스로 삶을 가꾸면 삶노래를 누립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지 못하면 삶노래란 찾아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삶노래를 빛냅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지 못할 적에는 삶노래하고 그예 등져요.


- “적어도 우린 나카타니보다는 희망 있으니까. 여자는 코시엔에도 못 나가는데 뭐.” “내 볼에 삼진 당하는 녀석들이 메이저는 무슨 메이저야!” (68∼69쪽)
- “저도 언젠간 어른이 돼요. 그러니까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인간으로 봐 주세요!” (81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되든 중학교나 고등학교 푸름이가 되든, 또 대학교 젊은이나 여느 사회 여느 어른이 되든, 모두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걷고 싶어요. 취업이나 취직이 아닌, 이름값이나 돈벌이가 아닌, 삶을 밝히는 길을 걷고 싶어요. 사랑하는 꿈을 북돋우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걷고 싶어요.


  가시내라서 야구를 하지 말란 법이 없어요. 가시내이니 축구를 해서 안 되는 법이 없어요. 머스마라서 요리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요. 가만히 따지면, 집에서 밥짓기 즐기는 머스마가 참 드물지만, 요리사는 가시내만 있지 않아요. 어찌 보면 요리사로 일하는 머스마가 무척 많아요. 빵집에서도 횟집에서도 중국집에서도 머스마 요리사가 참 많아요.


- “이루지 못할 꿈이 없어?” “응. 희망을 버리니까 꿈이 끝나는 거야.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루어져.” (83쪽)
- “자기가 생각하는 걸 상대에게 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말하면 오빠가 나 미워할 거야.” “그럼 그때는 널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되잖아. 시합에서 지면 다음에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지? 똑같아.” (156∼157쪽)


  좋아하는 길을 걷는 사람이 웃습니다. 좋아하는 길을 가꾸는 사람이 노래합니다. 좋아하는 길을 아끼는 사람이 어깨동무를 해요. 좋아하는 길을 돌보는 사람이 이웃이랑 동무를 사랑해요.


  이 나라 어른들은 얼마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걸어갈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얼마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북돋울까요. 평화가 자리잡고 평등이 뿌리내리며 민주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에서 웃음꽃 터뜨리고 웃음씨앗 뿌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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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2-1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책에 글을 쓰느라 연필을 사각거리는 소리,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느라 석석거리는 소리"
- 아이들 키울 때 이런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없지요.

"밥을 끓이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국을 끓이는 소리도 노래이고, 설거지를 하며 물을 틀어 그릇을 부시는 소리도 노래예요. "
- 길 지나가다가 어느 집에서 이런 소리가 나면 평화롭게 느껴지죠.
찌개 끓여 나는 냄새도 평화롭게 느껴져요. ^^

숲노래 2013-12-11 17:31   좋아요 0 | URL
아파트 문화가 되면서
이제 이런 살가운 소리를 듣지 못하니
서로서로 평화로움을 잃거나 잊기도 하리라 느껴요... 이궁...
 
봄의 소나타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86

 


봄을 부르는 환한 목소리
― 봄의 소나타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11.25.

 


  봄은 겨울이 지나면서 찾아옵니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있어요. 춥디추운 겨울 즐겁게 나는 사람들이 봄을 누려요. 차디찬 겨울에 찬바람 마시면서 하루하루 살림 일군 이들이 따사로운 바람 곱게 부는 봄날을 맞이합니다.


  겨울은 봄과 여름과 가을 지나면서 찾아옵니다. 봄을 누리고 여름을 즐기며 가을을 사랑한 나날 흐르면서 천천히 겨울이 찾아와요. 따순 바람과 볕을 누리기에 겨울을 맞이합니다. 푸른 내음과 밥을 즐기기에 겨울을 받아들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에 씩씩하게 일한 사람들이 겨우내 일손을 살포시 쉬면서 새 기운 북돋웁니다. 겨우내 따순 불기운 누리면서 몸과 마음을 살찌웁니다.


  겨울이 있어 봄이 따스하고, 봄가을 있어 겨울이 싱그러워요. 겨울이 있어 봄이 반갑고, 봄가을 있어 겨울이 하얗게 빛나요.


- ‘내 이름은 혼다 료코. 나이는 50세. 쉰 살에도 봄은 온다.’ (5쪽)
- ‘부끄럼쟁이 노도카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애한테 내가, 뭔가 해 줄 수 없을까?’ (13쪽)
- “노도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절대 못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실패해 봤어? 노도카는 도전해 봤냐고? 봐 봐, 얘가 우리 딸인데 말이지.” “응, 봤어요. 지난번에도.” “누굴 닮았는지 오기 하난 대단했어요. 영어회화 선생님한테 반해 가지고. 근데 영어도 사랑도 잘 안 된다며 나한테 만날 화풀이하지 않나, 왜 영국인으로 낳아 주지 않았냐고 생트집을 잡지 않나.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19쪽)

 

 


  누구나 봄을 부릅니다. 누구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으니 봄을 부릅니다. 저마다 봄을 부릅니다. 저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고 싶기에 봄을 부릅니다.


  봄에는 봄빛이 싱그럽습니다. 봄빛이란 새로 태어나는 빛입니다. 그러면 겨울은? 겨울은 어떤 빛일까요? 겨울에는 가으내 톡톡 떨어진 씨앗이 천천히 흙 품에 안겨 뿌리를 내는 철입니다. 씨앗이 저마다 흙 품에서 자리를 잡는 사이 숲은 고요히 잠들고, 고요히 잠든 호젓한 숲에서 씨앗은 새롭게 자랍니다. 어미 나무 곁에서, 어미 풀 둘레에서, 이듬해에 씩씩하게 자랄 꿈을 꾸면서 아주 천천히 뿌리를 틔워 지구별 한복판으로 뻗어요.


  봄을 부르는 이들은 봄을 부를 만하기에 봄을 불러요. 봄을 부르는 이들은 봄을 노래하고 싶어 봄을 불러요. 사랑이 사랑을 부르듯, 마음속에 따사롭게 봄빛 키우는 이들이 봄을 불러요. 빛이 빛을 부르듯, 가슴속에 환하게 별빛 담은 이들이 봄을 불러요.


  웃으며 밥을 차리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웃음을 먹입니다. 노래하며 바느질을 하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노래를 입힙니다. 춤을 추며 들길을 걷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들내음 흐르는 이부자리를 폅니다.


- “왜 그래?” “손님 입장에 서는 게 오랜만이라. 언제나 내가 머리를 숙이는 쪽이었거든. 정말 좋다. ‘고객님’이란. 행복을 선사받는 쪽이니까.” (67쪽)
- ‘반지 같은 것보다, 정말 갖고 싶은 건 그 테두리야. 당신의 테두리 속에 넣어 줬으면 좋겠어.’ (75쪽)

 


  스에츠구 유키 님이 빚은 짧은만화를 담은 《봄의 소나타》(학산문화사,200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봄을 부르고 싶은 이들이 봄을 불러요. 가슴속에 늘 봄빛을 품은 이들이 봄을 노래해요. 봄볕처럼 따스한 마음이 아닐 적에는 내가 누구를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이도 나를 사랑하지 못해요. 봄빛처럼 맑은 숨결이 아닐 때에는 내가 누구한테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고, 다른 이도 나한테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지 않아요.


  빛과 빛이 만나니 봄에 사랑이 무르익어요. 꿈과 꿈이 만나서 봄에 이야기가 피어나요. 사랑과 사랑이 만나면서 봄에 꽃노래 흘러요.


  연속극에 나오는 사랑이 아니에요. 우리 삶에서 우리가 스스로 이루는 사랑이에요. 영화에 나오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나 느끼는 사랑이에요. 책에 나오는 사랑이 아니지요. 우리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하하호호 웃는 사이 시나브로 자라고 부풀며 빛나는 사랑입니다.


- “아무리 자기가 행복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접할 수 있는 일이라니, 얼마나 좋아요?” (95쪽)
- “소리 좋고.” “중화냄비로 튀김을 하는 건 무지 어려워. 온도가 변하기 쉬우니까. 이 집 아들은 아직 저걸 잘 못 다루거든.” (120쪽)
- “근데 점장님. 왜 도련님한테 요리를 정식으로 가르치지 않으세요? 요즘 같은 시대엔 가게 분위기가 중요하다고요, 분위기가! 도련님의 BMW를 팔아치우고 조명이라도 새로 해요! 설계사무소에 아는 친구가 있으니까 싸게 해 달라고 할게요!”“엉?”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역시 음식이니까.” (125쪽)

 


  아픈 옛일 있대서 사랑을 못 하지 않아요. 슬픈 일이 응어리가 져서 다시 사랑을 못 하지 않아요. 눈물도 나무를 키우고 웃음도 나무를 돌봐요. 생채기가 난 자리에 새로운 살이 돋고 새로운 가지가 나요. 잎이 떨어져 가랑잎 되면 흙을 새로 북돋아 나무가 겨울나기를 하며 새봄 맞이할 밑힘으로 거듭나요.


  나한테 올 사랑을 바란다면, 내가 노래할 사랑부터 가꾸어요. 나한테 찾아올 사랑을 꿈꾼다면, 내가 나누어 줄 사랑부터 보듬어요. 스스로 샘물이 되어 맑게 흐를 때에 이 물줄기가 흙을 적시고 들을 적시면서 사랑이 자라요. 스스로 바람이 되어 푸르게 흐를 때에 이 바람이 노래가 되고 춤이 되면서 숲과 마을을 북돋아요.


- “미사 씨는, 왜 그렇게 우리를 위해.” “우리 집은요, 꽤 잘 나가는 양식당인데요, 그런데요, 엄마처럼 다 갈라터진 손으로 평생 살기가 싫어서, 집에 안 돌아가고 버티다가, 가게가 망해 버려서. 난 사실은 도련님한테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에요. 자기를 키워 준 가게였는데. 남의 일 보듯이. ‘식당집 딸’이라는 게, 내 소중하고 든든한 바닥이었는데.” (126∼127쪽)
- “난 쭈욱 뭔가를, 있는 힘을 다해 하고 싶었어요. 전력을 다하고 싶었다구요. 아무리 손이 거칠어져도. 나는 이렇게 든든한 바닥이 필요해요!” (152∼153쪽)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빛을 가슴에 품습니다. 이이가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저이가 더 빛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사랑스러워요. 스스로 얼마나 곱고 환한지 깨달으면 돼요.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바로 내 손으로 밭을 일굴 수 있고, 논을 돌볼 수 있어요. 내 밥은 내가 일구어 거두어요. 내 집은 내가 건사해서 아껴요. 내 사랑은 내가 가다듬어서 즐겁게 나눠요.


  만화책 《봄의 소나타》는 봄노래가 태어나는 자리를 보여줍니다. 만화책 《봄의 소나타》는 봄빛이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눈부시게 환한지 보여줍니다.


  이 지구별에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따로 없어요. 이 지구별에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따로 없어요. 이 지구별에는 가장 즐거운 나라가 따로 없어요. 어느 나라이든 저마다 아름답고 살기 좋으며 즐겁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마을이든, 어느 보금자리이든, 어느 식구이든, 어느 짝꿍이든, 모두 아름답고 좋으며 즐겁습니다.


- “봐, 노도카. 벌써 벚꽃망울이 잡혔구나.” (20쪽)
- “나나는 아직 어려요. 너무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아. 버스 타고 혼자 오느라고, 많이 무서웠지?” (178쪽)


  수많은 벚나무는 저마다 곱게 벚꽃 피웁니다. 수많은 복숭아나무는 저마다 곱게 복숭아꽃 피웁니다. 수많은 능금나무는, 살구나무는, 동백나무는, 뽕나무는, 감나무는, 잣나무는, 저마다 다른 꽃을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나누어 줍니다.


  함박꽃이 가장 예쁠까요? 찔레꽃이 가장 예쁠까요? 민들레꽃이, 냉이꽃이, 박꽃이, 딸기꽃이, 수수꽃다리꽃이, 참말 어느 꽃이 가장 예쁠까요?


  꽃은 꽃으로서 저마다 예쁩니다. 풀은 풀이기에 저마다 푸릅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빛을 누릴 수 있을 때에 사랑이 자랍니다. 얼굴값이나 돈값으로는 사랑을 키우지 못해요. 마음으로 사랑을 키우고 삶으로 사랑을 보듬어요. 4346.11.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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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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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88

 


뭐가 즐거울까
―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9.15.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묻습니다. 시골에 무엇 볼 것 할 것 있다고 이렇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언제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겁거든요.” 무엇이 즐겁느냐 되물으면 “무엇이든 다.” 하고 덧붙입니다. 허허 하고 너털웃음 지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농약 퍼붓는 모습, 쓰레기 아무 데에서나 태우는 모습.” 이 두 가지만 없으면 시골살이가 아주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골로 오기 앞서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물었습니다. 왜 아파트에 안 살고 골목집에서 사느냐고. 그러면 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거워요. 재미있고요.” 무엇이 즐겁고 재미있느냐 되물으면, 한 걸음만 나가면 골목이고, 두 걸음만 나가면 자동차 못 다니는 골목이며, 세 걸음만 나가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함께 누리는 골목꽃과 골목나무가 흐드러진 데가 바로 이곳,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라고 이야기합니다. 호호 하고 웃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아무 데나 선 자동차, 갑자기 미친 듯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이 두 가지만 없으면 골목살이가 아주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 “여고생은 곧 죽잖아.” “알아듣기 쉽게 말해.” “어? 어라? 못 알아들었어? 으음. 여고생이란 건, 금방 죽잖아.” “…….” “졸업하면 여고생이 아니게 되니까, 그건 곧 여고생으로서의 내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20∼21쪽)
- “그래, ‘현모양처’란 건 장난으로 적은 거냐? 그런 거면 정말 센스가 없구나. 아니면 진심인가?” (25쪽)

 


  아이들은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즐겁게 놉니다. 아이들은 나무작대기 하나로도 하늘을 납니다. 아이들은 빈손이나 맨손이어도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저희 빈손에 사탕이 있고 얼음이 있으며 떡이나 포도나 밥이 있다고 얘기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문득문득 손바닥을 곱게 펼쳐 들고 다가와서 말합니다. “자, 여기 맛있는 밥이 있어요. 맛있게 드셔요.” 그러면, “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냠냠 먹습니다. 아이들은 히히 웃으며 뒤돌아섭니다.


  소꿉놀이란 소꿉이 있어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소꿉으로 삼을 무언가 잔뜩 늘어놓아야 소꿉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살림살이 하나조차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소꿉놀이를 해요. 한 사람은 어머니 되고 한 사람은 아버지 될 수 있어요. 학교놀이를 할 적에 번듯한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학교 교사 노릇 맡는 아이가 교사자격증 있어야 하지 않아요. 이런 놀이를 누리건 저런 놀이를 즐기건, 늘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으로 그리며 누려요. 마음으로 웃으며 즐겨요.


  마음이 있기에 놀이가 돼요. 마음으로 놀이를 새로 빚어요. 마음을 모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뛰고 달리고 구르고 날지요.


  마음이 있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은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살찌우는 일을 해요. 돈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일을 찾아요.


  마음이 없는 채 논다면, 아니 마음이 없는 채 놀 수 없어요. 마음이 없는 채 끌려다니며 레크리에이션이나 체험학습이나 무슨무슨 캠프에 간대서 놀이가 되지요. 마음이 없이 이곳저곳 다닌들 모두 힘들 뿐입니다. 마음을 열어 어디에서나 놀 수 있으면 됩니다. 마음을 모아 다 같이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됩니다.

 

 


- “가사 동아리에 남학생이라니 이상하지 않아?” “가, 가사 동아리가 뭐 어때서?” “천만에!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수영부지!” “카네타카는 손재주가 좋고 뭐든 잘해. 가사 동아리의 에이스란 말야. 동아리 인기남이라고!” (44쪽)
- “다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니?” “아, 죄송해요. 지금 바로 스트레칭 시작할게요.” “아,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래. 다들 농구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떤지.” (77쪽)


  우리 삶터 둘레에 꽃이 흐드러진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꽃을 느낍니다. 마음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면, 우리 눈길이 닿는 자리가 꽃밭이라 하더라도 꽃밭인 줄 알아채지 못해요. 자가용을 몰든 버스나 기차를 타든, 꽃잔치 이루어진 가을길 여름길 봄길 지나가면서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꽃내음 맡고 꽃빛을 바라봅니다.


  바쁜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바쁜 나머지 꽃내음을 못 맡아요. 바쁘니 꽃빛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요.


  힘들 적에도 그래요. 힘든 사람한테 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한테도, 돈은 많지만 구두쇠로 지내는 사람한테도,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들여다볼 틈이 없어요.


  살림이 넉넉할 때에도 즐거울 텐데,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해야 즐겁습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살림이 넉넉하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대학졸업장이 있건 은행계좌 넉넉하건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를 거머쥐었건, 무슨 보람이나 웃음이나 설렘이나 기쁨이 있겠어요. 마음이 넉넉할 때에, 스스로 삶을 즐겨요. 마음을 넉넉하게 두면서, 스스로 삶을 지어요. 마음을 넉넉하게 가꾸고 돌보고 아끼고 북돋우면서 웃음꽃과 이야기꽃 피울 수 있어요.

 


- ‘키스 같은 걸 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98쪽)
- ‘미츠요의 키스는 미츠요의 세계를 바꾸었니? 그래?’ (113쪽)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하느님들이 모여 놀다가 ‘지구 운명’을 ‘멸망’으로 찍고 말아, 그만 ‘지구 멸망’으로 나아가는데, ‘애써 예쁘고 멋지게 만든 이 지구를 멸망하게 둘 수 없’어서 여러 하느님이 땅으로 내려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길’을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 아이들은 시큰둥합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나, 제가 무슨 하느님이라고 깝죽을 떠는가, 뭔 썰렁한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고 여겨요.


  그런데, 이 아이들,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에 찾아온 이가 참말 하느님인 줄 천천히 알아챕니다. 그러고는 저희 삶이, 저희 꿈이, 저희 사랑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거의 아무 뜻이나 생각 없이 흘려보내던 하루하루가 이제부터 예전처럼 흐를 수 없습니다.


- ‘저 애,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145쪽)
- “내 말 명심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국은커녕 지구 자체가 없어지고 말아. 그 애들이 진심이 되게 하려면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해.” (180쪽)


  오늘 죽으면 꽤 서운할까요. 모레 죽으면 덜 서운할까요. 서른 해를 살면 안 서운할까요. 스물아홉 해 살 수 있으면 조금 서운할까요. 스물일곱 해 산다면, 스물여섯 해 산다면, …… 열다섯 해 산다면, 열네 해 산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요.


  어떤 빛을 누리는 삶인가요. 어떤 빛으로 가꾸는 하루인가요. 어떤 꿈으로 즐기는 삶인가요. 어떤 꿈으로 밝히면서 이루는 하루인가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즐거운지는 누구나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챙겨 줄 수 없는 삶이고, 즐거움이며, 사랑입니다. 남이 내 몫까지 겪거나 누려 주지 않는 삶이며, 즐거움이고, 사랑입니다. 스스로 짓고 일구는 삶입니다. 스스로 가꾸고 밝히는 삶입니다. 4346.11.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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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노래
백성민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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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87


 

그림옷을 입은 삶노래
― 광대의 노래
 백성민 글·그림
 세미콜론 펴냄, 2007.10.19.

 


  나비가 춤을 추고 새가 춤을 춥니다. 사마귀가 춤을 추고 베짱이가 춤을 춥니다. 목숨 있는 모두 춤을 춥니다.


  아이가 춤을 추고 어른이 춤을 춥니다. 갓난쟁이는 응애 울면서 춤을 추고, 늙은 할매와 할배는 구부정한 몸으로 천천히 춤을 춥니다. 숨을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사뭇 다릅니다. 봄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노래에는 보드라운 손길이 있고, 여름바람에 묻어 들려오는 노래에는 싱그러운 눈길이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깃들어 들려오는 노래에는 밝은 꿈길이 있고, 겨울바람에 담겨 들려오는 노래에는 새하얀 마음길이 있습니다.


  나무는 바람을 먹습니다. 한 숨 두 숨 찬찬히 먹습니다. 나무는 햇볕을 먹습니다. 한 줄기 두 줄기 가만히 먹습니다. 나무는 빗물을 먹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맛나게 먹습니다. 나무는 흙을 먹습니다. 한 줌 두 줌 살그마니 먹습니다.


  바람을 먹으며 바람노래를 부르고 바람춤을 춥니다. 햇볕을 먹으며 해노래를 부르고 해춤을 추어요. 빗물을 먹으며 비노래와 비춤을 즐깁니다. 흙을 먹는 동안 흙노래와 흙춤을 베풉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으면서 어떤 춤을 추나요.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가며 어떤 노래를 부르나요. 사람들 목소리에 살풋 실려 흐르는 노래에는 어떤 빛이 있는가요. 사람들 몸짓에 살랑 담겨 감도는 춤에는 어떤 꿈이 있는가요.


- 내 그림이 붓으로 그었다고 해서 일반적인 동양화는 아닌 것 같구요. 극화나 민화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리는 ‘마당그림’이랄까. (머리말)

 

 

 

 


  백성민 님 만화책, 또는 그림책이라 할, 《광대의 노래》(세미콜론,2007)를 읽습니다. 만화를 그리다가 틈틈이 붓을 쉬면서 홀가분하게 춤을 추듯 그린 그림조각을 하나둘 그러모아 ‘마당그림’이 되고, 이 마당그림이 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백성민 님은 네이버 누리사랑방에 곧잘 그림을 띄웁니다. 웹툰연재는 아니고, 블로그질도 아닙니다. 즐겁게 그린 그림을 즐겁게 띄웁니다. 신나게 누린 그림을 신나게 올립니다. 다만, 자주 올리지는 않고, 많이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꼭 알맞게, 밥그릇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예쁘게 담듯이, 맛깔나게 그린 그림을 흐뭇하게 보여줍니다.


  극화라 할 만화를 혼자서 그리는 백성민 님은 자잘한 데까지 그리다 보니 눈이나 손이나 몸이 무척 고단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극화 아닌 여느 만화를 그리는 이들도 지난날에는 혼자서 모든 그림을 다 그렸어요. 글을 쓰는 사람도 밑글을 쓰고 나서 원고지에 정갈하게 옮겨적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며,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부치는 일을 으레 혼자서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필름을 장만하고 사진기를 손질하는 일부터, 사진 찍을 곳으로 오가는 일, 찍은 사진을 찾고 종이로 뽑는 일을 혼자서 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돋움하면서, 그림도 글도 사진도 손품과 다리품이 많이 줄었어요. 예전처럼 홀로 고단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일이 퍽 줄었습니다.


  백성민 님은 오늘날에도 즐겁게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요. 종이에 물감이나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린다고 해요. 나도 연필을 쥐고 종이에 글을 쓰기를 즐깁니다. 다만,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더라도, 이 글을 보내자면 다시 타자로 옮겨 누리편지로 띄워야 하지요. 그림쟁이는 스캐너로 그림을 긁으면 되지만, 글쟁이는 스캐너를 못 씁니다. 어찌 되든, 그림도 글도 사진도 손맛입니다. 컴퓨터를 켜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더라도 손맛이 깃듭니다. 왜냐하면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까요.


  디지털파일이 되더라도 손길이 깃듭니다. 디지털파일로 그림과 글을 빚기 앞서 온몸으로 삶을 겪어야 합니다. 스스로 누린 삶이 있을 때에, 이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 그림이나 글로 빚습니다. 스스로 누린 삶이 없으면, 이야기로 엮을 삶이 없다는 뜻입니다. 책이나 자료를 뒤져서 그림을 그리지 못해요.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이도 있지만, 이런 글에서는 싱그럽게 빛나는 사랑이 감돌지 못해요. 삶은 삶으로 만나고 사랑은 사랑으로 마주할 뿐입니다. 빗방울은 빗방울로 마주해야 빗방울인 줄 알아요. 흙은 흙으로 만지고 밟아야 흙인 줄 알아요. 바람은 바람으로 맞아들여야 바람인 줄 알지요. 햇볕은 햇볕으로 쬐어야 비로소 햇볕인 줄 압니다.


  백성민 님이 들려주는 홀가분한 그림마당, 또는 마당그림인 《광대의 노래》는 살가운 빛입니다. 살가운 빛이 사랑스러운 빛이 되는 그림이요, 사랑스러운 빛이 새삼스레 살아가는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림입니다. 삶을 누린 이야기가 그림으로 거듭납니다. 삶이 촉촉히 흐르는 이야기가 그림옷을 입고 책이 됩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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