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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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17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
― 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9.25.

 


  누구나 마음속으로 품은 꿈대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읽는가에 따라 스스로 삶을 바꿉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읽는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지 않을 때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리지 못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힘들거나 고된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못 품지 않습니다. 느긋하거나 걱정없다 싶은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품지 않습니다.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빛입니다. 스스로 빛이 못 될 때에는 빛이 못 돼요. 남이 나를 아낄 때에 사랑이 아닙니다. 스스로 나를 아낄 때에 사랑입니다. 남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길어올려 삶을 덥히고 가꾸면서 이루는 사랑이에요.


- 교토의 거리는 바둑판 모양. 그 틈을 메우듯 작고 좁은 길이 곳곳에. 사람이 살고 고양이가 가로지르는 그 길을 사람들은 골목길이라고 부릅니다. (2쪽)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높다란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집을 높다랗게 지을 까닭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조그맣게 지었습니다. 조그맣게 지은 집에 온 식구 바글바글 얼크러졌습니다.


  우리 집도 조그맣고 이웃집도 조그맣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하늘바라기를 하며, 어느 집에서나 꽃잔치가 이루어집니다. 햇볕을 혼자 차지하려는 듯이 짓던 집은 없어요. 들과 숲을 혼자 거머쥐려는 듯이 만든 집은 없어요. 모진 바람을 막으려는 섬이나 바닷가라면 서로 촘촘히 기대면서 돌울타리를 쌓지만, 여느 들이나 숲에서 짓는 들집과 숲집은 서로 넉넉하고 아늑했습니다.


  전쟁 소용돌이가 치면서 집이 달라집니다. 전쟁을 꾀하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만한 집을 세웁니다. 층집을 쌓습니다. 이웃을 두지 않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이웃이 될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부립니다. 이러면서 꽤나 널따란 집을 짓습니다. 궁궐이나 기와집은 바로 권력자와 지도자라는 이들이 부리던 슬픈 집입니다. 오늘날에는 문화유산으로 삼기도 하지만, 궁궐을 지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아흔아홉 간이나 되는 기와집을 지을 일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못된 나라나 권력자 때문에 전쟁이 생긴다지만, 궁궐과 기와집 때문에 전쟁이 생깁니다. 이웃한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와서 터지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불러들이는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조용하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조그마한 시골마을로 쳐들어올 군대는 없습니다. 조그맣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한갓진 시골마을로 쳐들어갈 군대는 없습니다. 어느 정부 군대이든 중앙정부를 노립니다. 어느 나라 군대이든 권력자한테 총구멍을 겨누어 권력을 떨어뜨린 뒤 그 자리로 올라서려 합니다.


- ‘충분히 즐거운데요? 난 종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13쪽)
- “그런데 난, 책만 만질 수 있다면 그냥 행복한가 봐요.” (20쪽)
- “책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간절한 바람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 결심하게 되는 건 대개, 그만둘 때예요. 난, 손님이 참고 참아 왔던 바람에, 아름다운 무덤을 채워 주는 거예요.” (28쪽)


  작은 집 사람들은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이웃이니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지도자도 대통령도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판사도 검사도 부질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교사나 교수도 쓸모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덧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공장 노동자조차 있을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집이 모인 시골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나 스스로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지으며 살아가는 수수한 시골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웃입니다. 마을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이웃일 뿐, 경찰이나 군대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시골마을이 평화로운 까닭은 군대나 경찰이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는 전쟁무기 하나 없고 지도자라든지 권력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평화롭습니다.


  이와 달리 경찰이 많고 군대까지 있는 커다란 도시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판사와 검사가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며, 교사와 교수가 많은 커다란 도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공무원도 회사원도 공장 노동자도 많으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한 많은 커다란 도시는 평화로움하고는 아주 동떨어져요. 함께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얼거리가 아닌, 피를 튀기도록 다투면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얼거리인 커다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 “고마워. 그 사람은 ‘훨씬 더 좋은 거’ 운운했지만, 그깟 100만엔짜리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좋아.” (58쪽)
- “케이크 만드는 거? 배운 적 없어. 어릴 때부터 책 보고 혼자 만들었어.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 집이 기온에서 화과자집을 하거든.” (135쪽)
- “나 쿄토가 싫은 건 아니야. 그저 도쿄말을 하고 싶은 거지. 도쿄말 전염시켜 줘.” (145쪽)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골목길 연가》(시리얼,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연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입니다. 일본사람은 ‘연가’라든지 ‘戀歌’일 테지만, 한국사람한테는 ‘사랑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골목길 사랑노래”입니다. 조그마한 골목집이 모인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노래를 부르는 빛을 이루는가를 보여줍니다.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사랑노래가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게 북돋우는가를 밝힙니다.


- “촛불을 가운데 두고 이렇게 둘이 앉아 있으면, 왠지 함께 있는 사람과 거리도 가까워지는 것 같고, 몸과 몸을 기댄 채, 하나의 빛에 포근하게 싸이는 느낌도 들고, 그 가족에게도 아마 소중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160쪽)


  아파트에 사랑노래가 없다고 할 수 없어요. 어디에서라도 서로 아끼는 마음이 흐르면 사랑노래가 번집니다. 사막에서도 너른 바다에서도 사랑노래는 흐릅니다. 시끌벅적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우글거리는 학교에서도 사랑노래는 얼마든지 흐릅니다.


  마음을 열어 빙그레 웃음짓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마음 가득 따사로운 품이 되어 이웃을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사랑을 들려줍니다. 마음밭에 꿈씨 한 톨 심어 곱게 가꾸는 사람이 사랑을 꽃피웁니다.


  만화책 《골목길 연가》는 골목길이기에 더 멋스럽거나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웃이 되는 자리를 보여주고, 서로 사랑노래가 되는 결을 밝힐 뿐입니다. 골목길이기에 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어 마주하는 이웃들이기에 사랑노래가 되는 무늬를 찬찬히 이야기해요.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합니다. 나는 너한테 가까운 이웃이 되고, 너는 나한테 가까운 이웃이 됩니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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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행복하게 2 - 시골 만화 에세이
홍연식 글 그림 / 재미주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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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16

 


시골살이란 무엇일까
― 불편하고 행복하게 2
 홍연식 글·그림
 재미주의 펴냄, 2012.8.16.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쓰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살가이 썼지만 이제 시골사람도 텔레비전 연속극에 길들어 제대로 살가이 쓰는 말하고 자꾸 동떨어집니다. 도시사람은 입시지옥과 영어바람과 물질문명과 돈벌이에 휩쓸리면서 일찌감치 한국말을 팽개쳤다고 할 만합니다. ‘행복한 불편’이라든지 ‘불편한 행복’ 같은 말을 들으면, 참 아리송합니다. 두 낱말은 함께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자말 ‘행복’은 한국말로는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불편’은 한국말로는 “힘듦 또는 괴로움 또는 거북함”을 가리킵니다. 두 낱말은 함께 쓸 수 없어요. 즐거운 사람은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하지 않아요.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즐겁지 못해요. 너무 마땅한 이야기인데,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한국말 ‘홀가분함’은 한자말로 ‘자유로움’입니다. 다시 말해서,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짓거나 가꾸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남한테 휘둘리는 삶이라는 뜻이에요. 곧, 남한테 휘둘리는 삶일 적에는 즐거울 수 없어요. 남이 어떻게 나오건 꿋꿋하거나 씩씩하게 내 삶을 스스로 짓거나 가꿀 적에 즐겁습니다.


  홍연식 님이 시골살이를 누린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재미주의,2012) 둘째 권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스스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하게 살면서 ‘즐거움’이라고 말할 만한지 곰곰이 헤아립니다. 스스로 ‘즐겁다’ 하고 말하면,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있어도 얼마든지 견딜 만한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 “봄은 봄대로 따뜻하겠지만, 겨울 또한 멋진 계절.” (16∼17쪽)
- “학교를 지금 그만두면 후회할 거예요.” “그건 나도 아는데 그게.” “당장 급한 것보단 중요한 걸 먼저 해요, 여보.” (50쪽)
- “하지만 우린 우리니까! 우린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펴엉생 늙어 죽을 때까지 글 쓰고 그림 그릴 수 있는 특권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죠!” (54쪽)

 


  홍연식 님은 곁님과 처음 깃든 멧골집에서 ‘즐겁게’ 살아가려 합니다. 즐겁게 살아가려 할 적에는 돈이 바닥난다든지 추위가 찾아온다든지,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할 뿐입니다. 추우면 추울 뿐이에요. 막차가 끊기면 막차가 끊길 뿐이에요. 다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둘 힘든 일이 기어듭니다.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찾아듭니다.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이 생겨도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돌아보는데, 끝내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을 버티지 못하고 시골을 떠납니다. 다른 곳으로 삶자리를 옮겨요.


  흔히 ‘귀촌’이나 ‘귀농’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시골살이’는 귀촌도 귀농도 아닙니다. 그저 시골에서 꾸리는 삶이 시골살이입니다.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삶이 시골살이예요. 남한테 자랑할 삶이 아니면서, 남한테 굽힐 삶이 아닙니다.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시골살이입니다.


  내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내 집을 스스로 돌봅니다. 내 옷을 스스로 챙깁니다. 다른 사람 눈초리에 따라 옷차림이 휘둘릴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여다보거나 말거나 내 밥상은 내 몸을 살찌우도록 차립니다. 다른 사람이 보건 말건 내 집은 우리 식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알뜰살뜰 여밉니다.


- ‘산 속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지만 분명 봄은 우리 주위에 버젓이 다가와 있다. 크게 앓고 난 이후로 더 이상 몸이 나빠지진 않았다. 내 몸도 새 봄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87쪽)
- ‘이 산엔 아내와 내가 산다. 그래서 이 산의 주인은 나와 아내이다. 도시에 산다면 현관문 밖의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 시골에 산다면 마을 밖의 일엔 신경쓰지 않는다.’ (110∼111쪽)
- ‘비가 와서 풀뽑기가 한결 수월하군. 쓰레기와 등산객들의 차들이 차지하던 이 땅엔 이제 우리가 뿌린 생명들로 가득하다.’ (140쪽)

 


  시골살이에 힘들거나 괴롭거나 거북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힘들다면 도시살이가 힘들리라 느껴요. 도시에서는 손수 일굴 땅이 없거든요. 손수 일굴 땅이 없는 도시에서는 오직 돈만 벌어서 돈으로 가게에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사다 먹어야 합니다. 닭고기이든 돼지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돈을 벌어야 이런 고기를 사다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오직 돈으로 목숨이 간당간당합니다.


  시골살이가 괴로울 일은 없습니다. 도시살이가 괴로울 뿐입니다. 시골집은 비싸지 않을 뿐더러, 시골집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란 없습니다. 시골집은 ‘시골에서 살아갈 사람’이 알맞게 얻어서 알맞게 손질해서 살아갑니다. 헌 집을 고쳐서 살다가 스스로 새 집을 흙과 돌과 나무와 짚을 써서 천천히 지어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돈으로만 집을 얻습니다. 게다가 도시에서는 돈으로 집을 얻어도 서른 해쯤 지나면 재개발 바람이 부니 고향을 떠나야 해요.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한테는 고향이 없습니다. 해마다 전세값이나 월세값이 끔찍하게 오르는 도시입니다.


  시골살이에서 거북한 대목이 있다면 농약 때문입니다. 경운기와 짐차 때문입니다. 비닐쓰레기조차 함부로 태우는 일이 거북합니다. 어느 독재자가 외친 새마을운동이 크게 휩쓸고 지나간 뒤, 시골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를 끔찍하게 씁니다. 농약과 비료가 아니면, 시골 늙은 할매와 할배로서는 농사를 못 짓는다 할 만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싱싱 달리는 자가용은 드물지만, 늙은 할배는 경운기를 몰다가 자빠져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 일쑤예요. 젊은 시골사람은 술을 잔뜩 들이켜고는 짐차를 몰며 사고를 내거나 스스로 목숨을 잃기 일쑤입니다.


  술을 마셔도 옛날처럼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마시면, 힘들 적에 들판이나 풀숲에라도 누우면서 쉬다가 별바라기를 하면 술이 깨서 걱정이 없을 테지만, 소주를 몇 병씩 마시고는 경운기나 짐차를 몰면, 다른 사람을 들이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골로 가기까지 합니다. 시골살이에서 거북한 대목은 바로 이렇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밤도 낮도 따로 없어요. 밤에도 시끄럽고 너무 밝습니다. 밤에도 자동차 소리가 그치지 않아서, 풀벌레나 멧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못 듣습니다. 도시에는 개구리가 깃들 물가나 논둑이 없습니다.


- ‘흰눈이 저 보기 싫은 철골 구조물마저 하얗게 덮어 주고 있다. 그런데 난 왜 눈이 하는 것처럼 내 맘 속에서 기어나오는 증오심을 덮지 못하는 건가. 누구길래 (우리 집 개) 참돌이를 쇠파이프로 때리고 겁을 준 걸까.’ (274쪽)
- ‘이사 온 그날 밤을 생각해 본다. 산새와 풀벌레만이 깨어 있음을 알리던 캄캄한 이곳의 밤을.’ (313쪽)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 둘째 권을 읽으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품고 시골로 간 젊은이가 겪을 만한 고단한 나날이 잘 나타납니다. 이와 맞물려, 고단한 사이사이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무래도 고단함과 즐거움이 나란히 있다 보니 ‘불편하고 행복하게’처럼 말하지 싶습니다.
  그러면, 왜 ‘불편’이 앞에 나올까요? 왜 ‘행복’이 뒤에 나올까요?


  처음부터 시골살이는 ‘불편’이 크다는 생각에 젖었기에, 즐거움을 찾는 길보다는 ‘불편’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자꾸 마음을 쓰고 말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편’이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누리기 마련이에요. ‘불편’을 줄이거나 없애려면 삶을 바꾸어야 해요. 삶터만 바꾼대서 불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바꾸고, 사랑을 심어야 비로소 불편이 사그라듭니다.


  즐거움은 시골로 간대서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시를 벗어나기만 한대서 즐겁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스스로 아름답고 착하며 참다운 넋이 될 때에 비로소 즐겁습니다.


  홍연식 님이 만화책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그릴 무렵에는 ‘불편’과 ‘행복’이라는 열쇠말에 갇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아이들 낳아 복닥복닥 지낸다고 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불편’과 ‘행복’을 나란히 헤아릴는지 궁금해요. 이제부터는 불편이랑 행복을 나란히 놓는 시골살이 이야기가 아닌, ‘꿈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스스로 꿈을 키우고 사랑을 꽃피울 때에 아름다우면서 기쁘게 웃는 맑은 노래물결 이루어집니다.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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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1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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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5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 두 사람이다 1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금메달을 거머쥐고 싶은 사내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거머쥐어야 군면제와 연금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이 사내는 어린 후배 선수를 윽박지르기로 합니다. 어린 후배 선수는 윽박지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여덟 시간에 걸쳐 두들겨팹니다.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닌 여덟 시간이지만, 선수들을 다스리는 코치는 이러한 주먹다짐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운동을 하려면 선배나 감독한테 신나게 두들겨맞아야 합니다. 어느 운동을 하든 선배나 감독은 후배를 두들겨팹니다. 선배나 감독은 후배한테 얼차려를 주고, 거친 말을 일삼습니다. 방송으로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데에도 선배와 감독 입에서는 거친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옵니다. 선수를 두들겨팬 일 때문에 감독이나 코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운동 선수를 두들겨패는 ‘한국 문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운동 선수를 두들겨팬 선배나 감독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리는 못 듣습니다. 길에서 사람을 친다든지, 몽둥이나 뾰족한 것 따위로 때리면, 이런 사람은 경찰이 붙잡아 감옥에 넣는데, 뜻밖에도 운동 선수가 두들겨맞은 일은 법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두들겨패는 교사 가운데 교사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주 적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폭력과 폭행이 ‘문화로 뿌리내렸’구나 싶습니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들지 못하고, 맞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잔다’ 했지만, 오늘날에는 때린 사람이 두 다리 뻗고 잘 뿐, 맞은 사람은 잠들지 못하지 싶습니다.


- ‘너희들은, 내 피를 마시고 내 몸을 먹은 너희들은, 그 피를 거슬러 내려가 그 대대손손 물려주리라. 내 승천을 방해한 대가를. 그러나 알 수 없다. 왜 하필 나인 거냐. 왜 하필 오늘인 거냐. 나의 지성이 부족했는가? 왜?’ (14∼15쪽)
- “정말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글쎄, 출근해야겠어.” “누군지 알면은 그걸 막을 수는 있다는 거예요?” “글쎄, 그보다는, 알고 난 다음이 난 더 두려워.” (22∼23쪽)

 


  싸움이 벌어지면, 두 쪽 가운데 어느 한쪽이 ‘맞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을 두고 네가 잘못했으니 뉘우치라 할 수 있고, 두 쪽 모두 잘못했으니 서로 뉘우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을 두고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때린 사람, 한자말로 하자면 ‘가해자’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습니다. 길에서도 그래요. 멀쩡히 선 자동차나 사람을 들이받고는 ‘네가 거기에 있는 바람에 받았다’고 말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운전수가 있어요. 자동차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보험금을 적게 물려고 외려 큰소리 뻥뻥 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구별 어느 나라가 엄청난 군대와 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터뜨릴 적에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불거져요.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감싸는 매체와 지식인과 정치꾼이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미사일과 폭탄과 총칼로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나라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어요. 한 대 맞은 사람은 죽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총에 맞거나 폭탄이 터지면 목숨을 잃습니다. 다른 이 목숨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는 군대를 거느린 나라를 감싸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전쟁 미치광이를 감싸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겨도 될까요?


- “설마. 그 희생물이 저 귀여운 여자애인 건 아니겠지?” “말 함부로 하지 마! 그건 나일 수도 있는 거니까.” (38쪽)
- “건강한 몸과 정신에는 나쁜 악령 같은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니까.” ‘웬 교과서 발언? 거기다 악령이라니. 이상한 말 쓰는 사람이야.’ (41쪽)
- “나도 그 여주인공처럼 행복한 얼굴로 가족을 기다린다면 배우자도 미리 안 알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미래를 미리 아는 것도 재미없잖아요.” (83쪽)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후배 선수를 두들겨팼을 뿐 아니라, 이녁 아버지 힘을 믿고 돈을 바쳐서 다시 국가대표 자리를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혀서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여린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일터에서 내쫓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으로, 돈으로, 이름으로, 수많은 이웃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얹어,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고 일군 열매를 가로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밭에서 가꾼 푸성귀를 가로채는 사람이라면 도둑입니다. 꿈과 사랑으로 빚은 창작품인 글·그림·만화·사진·노래를 가로채는 사람일 때에도 도둑입니다.


  소매치기도 도둑이요, 표절과 도용을 일삼은 사람도 도둑입니다.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주먹을 휘두르다가 돈힘으로 그예 군면제에다가 금메달까지 가로챈 사람도 도둑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거나 일꾼 작품을 슬그머니 가로채는 사람도 도둑입니다.


- “유진 오빠, 혹 저런 타입 좋아해요?” “난 특별히 좋아하는 타입 없어. 내 눈에 들어오면 그게 내 타입이 되는 거지.” (160쪽)
-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나는 훨씬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켜줄 필요가 없을지도.” (176쪽)

 


  1999년에 나온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는 2007년에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2007년에는 만화책이 새옷을 입고 다시 선보였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두 사람’을 그리는 이 만화는 ‘공상과학’만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굳이 공상과학이나 판타지라는 틀에 넣지 않으면서 바라볼 만화이기도 합니다. 참말 어디에서나 우리들 곁에는 두 사람이 있거든요. 서로를 아끼는 사람 하나, 서로를 아끼기보다는 해코지하는 사람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이 있습니다.


- ‘고모는 이상해. 제정신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들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길 믿으라는 거야? 어린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다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하지만 친척들 모임, 이상한 점쟁이, 때 아닌 굿, 태어나 처음 본 작은고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아니란 확신보다 불신이 더 일어나. 그 일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215쪽)
- ‘그렇지만 어젯밤 그 꿈은 뭐지. 머리에서 울려퍼지듯 무언가가 소리치고 있었어. 왜 나냐고. 왜 나냐고. 왜냐고. 그건. 그건 내가 말하고 싶어. 만약 고모 말이 맞다면, 어째서 나인 거지? 왜 나야. 왜. 왜 내가. 싫어, 정말. 이제 곧 고3이고 그것만도 힘든데. 이런 모호한 일로 신경을 쓰게 만들다니. 그 말대로라면 난 내 미래는 생각도 못하는 건데.’ (230쪽)

 


  착함과 나쁨이라든지 옳음과 그름으로 두 사람을 가를 마음은 없습니다. 한 사람 마음속에 두 가지 마음이 도사린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온누리를 두 갈래로 금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고 했듯이, 스스로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사랑이라는 씨앗은 뿌리를 내려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사랑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어찌 될까요. 미움나무가 될 테지요.


  아름답게 꽃피우고 싶은 꿈을 씨앗으로 심으면, 꿈나무가 돼요. 도둑질로 제 밥그릇을 채우려는 사람은 도둑질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일굽니다.


  주먹질과 돈질로 금메달하고 군면제를 거머쥔 사람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요? 폭력나무와 돈질나무, 또는 거짓나무와 부정부패나무를 심은 셈이겠지요.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 나라 정치꾼이나 우두머리라면 전쟁나무를 심은 셈입니다.


- “난 지나라면 시한부 선고 받고도 굳건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216쪽)


  만화책 《두 사람이다》에 나오는 ‘두 사람’은 이무기를 함부로 죽인 탓에 미움을 받은 집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수렁’을 불러들이는 두 사람입니다. 그동안 이 집안에서는 죽음수렁에 허덕이기만 했습니다. 부디 ‘나한테는 죽음수렁이 찾아오지 말기를 바랄’ 뿐, 내 이웃이나 다른 살붙이가 어떻게 되는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굴레와 수렁을 아무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지나’라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이 일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먼 앞날을 꿈꾸고 싶고, 곧 고3이 되면 하루가 고단할 만큼 바쁠 테니, 이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지만, 시나브로 이 일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물러서지 않고, 비키지 않아요. 에돌지 않고, 숨기지 않아요. 어른들은 그저 쉬쉬할 뿐이지만, 아이들은 쉬쉬하지 않습니다. 모두 남김없이 드러내면서 속내를 캐내고자 합니다. 씩씩하게 맞서고, 사랑스레 얼싸안습니다. 튼튼히 두 다리를 뻗어 이 땅을 밟으며, 환한 웃음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한테도 묻고, 내 이웃한테도 묻고 싶습니다.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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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3 - 완결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3

 


이녁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두 사람이다 3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은 이웃한테 아름다운 꿈을 가만히 퍼뜨립니다.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한테 아무것도 들려주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면서 즐거운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면서 괴롭거나 외롭거나 슬픈 사람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웃음꽃을 피웁니다.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런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며 웃음꽃을 피워 사랑을 깨우는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면서 꽃은커녕 어떠한 사랑도 속삭이지 못하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있기에, 아름다운 꿈을 노래할 적마다 새로운 사랑이 샘솟습니다. 사랑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 스스로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않으면 어떠한 사랑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 ‘알 수 없어.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누구에게 물어 볼 수조차 없어! 생각해, 생각해야 해.’ (18쪽)
- “재석이 너,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를 미워하는 거 아니니?” “무,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지 않고서야 오래 전부터 날 봐 왔다는 네가 날 좋아한다고 고백한 이 시점은, 혜리 일 세희 일 모두 포함해서 알게 되어서 오히려 상처뿐인 얘기들이잖아.” (28∼29쪽)

 


  두 사람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될 수 있고, 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때리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될 수 있고, 어린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오롯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사람으로 살아가며 오직 한 가지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요.


  어느 길로 가든 스스로 고릅니다. 어느 일을 하든 스스로 찾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바라기에 어느 한길을 갑니다. 내가 마음으로 부르기에 어느 일이 나한테 찾아옵니다.


  때리려는 사람은 왜 때리려 할까요. 맞은 사람이 어떤 마음인 줄 알고서 때릴까요. 맞은 사람이 나한테 달려들어 저도 때리려 하는 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때리기만 할까요.


  꽃은 누구한테나 꽃입니다.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 앞에서는 꽃이 흐드러지지 못합니다. 꽃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만 먹고 살아가지 않아요. 꽃도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갑니다. 사랑을 못 받으면 가까스로 몇 송이 피어날는지 모르나, 제대로 빛나지 못합니다.


-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나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 주길 바랐어. 그 말대로 다가 아니었어. 미웠어도, 정말로 사랑했어. 그랬는데, 그랫는데, 나는 끔찍한 사랑의 기억일 뿐이야. 그게 슬퍼. 그게 슬퍼. 그래서 떠나지도 못해.’ (55쪽)
- “약해지지 마, 지나야. 넌 강한 아이야. 처음 볼 때부터 넌 순수하고 강한 애라고 느꼈었어. 명현이가 얘기하던 저주의 대상이 네가 된다 해도 너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야. 그런, 너의 강함이 부러울 정도로, 나는 영능력이 있어도, 지난 사랑의 망령조차 쫓지 못하는걸. 도망만 칠 뿐.” (60쪽)

 


  저마다 아름답게 꾸리는 삶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고픈 대로 꾸리는 하루입니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없고 덜 아름다운 모습도 없습니다. 영화 한 편이 백만 관객이 들어야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천만 관객이 보아야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구백만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고, 구십만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구만 관객이나 구천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지요.


  어느 책 하나를 백만 사람이 사서 읽으니 아름다운 책이지 않아요. 십만 사람이 사서 읽거나 만 사람, 때로는 천 사람이나 백 사람이 사서 읽어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들에 핀 꽃을 알아보는 사람이 다문 한 사람이라서 들꽃이 안 아름답지 않아요. 사람들 많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심은 꽃을 백만 사람이 들여다본대서 이 꽃이 더 아름답지 않아요.


  사랑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사랑을 꺾는 힘은 없습니다. 드센 힘을 물리치는 사랑이 있고, 모진 힘을 견디거나 흘려보내는 사랑이 있습니다만, 어떤 힘도 어떤 사랑을 다치게 하지 못합니다.


- ‘한가한 듯한 일요일 오후, 향긋한 커피향.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않은 오후. 절대 그런 일은 안 벌어질 것 같은.’ (128쪽)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해든아침,2007)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삶을 일구는가를 돌아봅니다. 나는 나대로 어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를 헤아립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속극 대본을 쓰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방송작가로 일하면 돈을 잘 벌 만할까요. 오늘날 웬만한 집마다 텔레비전 한 대쯤은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손전화로 얼마든지 방송을 들여다보니, 방송작가로 일하면 돈을 잘 벌고 이름값도 높일 만할까요. 예나 이제나 한국에서는 만화가를 낮추어 보거나 얕잡아 보는 흐름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밥벌이가 어려울까요. 만화가로 살아가는 나날은 고단하거나 힘들기만 할까요.

 


- “꿈속에서 뱀이 외치던 소리가 있었어. 왜 나냐고, 왜 나냐고. 왜 승천을 하루 앞둔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는 거란 생각이 들어. 나도 그런 생각 했어. 왜 나냐고, 왜 내가 저주의 대상이냐고. 하지만 어째서 자기는 예외일 수 있는 걸까? 이 세상 불행에서 언제까지나 자신만이 예외일 수는 없는 거 아닐까. 하지만 결국 저주를 만든 것이 인간의 의지였다면, 행복 역시 인간의 의지라고 생각해. 난 행복해지겠다고 믿고 이겨낼 거야. 난 유진 오빠도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198∼199쪽)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게 삶을 가꿉니다. 마음속으로 고운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곱게 사랑을 빛냅니다. 마음속으로 착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착하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궂은 생각이 또아리를 틀면, 이 궂은 생각대로 삶이 바뀌어요. 마음속에 못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들면, 이 못난 생각대로 삶이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사람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빙그레 웃음짓는가요?


  내 곁에 나를 사랑할 두 사람을 둘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둘레에 나를 아끼고 좋아할 두 사람을 둘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따사롭게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347.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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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2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
― 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어제 아침 전남 고흥에 아주 드문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한 해에 한 차례 올까 말까 한 손님입니다. 손님은 하늘에서 하얀 빛으로 찾아옵니다. 나풀나풀 춤을 추면서 찾아옵니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는 가벼운 몸짓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찾아옵니다.


  손님은 우리 집 지붕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마당을 빙 돌다가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곁에서 노래합니다. 그러고는 뒤꼍과 이웃집으로 골고루 찾아가고,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에도 두루 나들이를 합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은 낮 열두 시를 지날 무렵부터 천천히 사라집니다.


-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펼쳐지는 광경.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남동생이 까불고,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초록과 빛에 둘러싸인, 우리 가족의 행복의 정원.’ (6쪽)
- “내일이면 필 테니 물 좀 달라고 하고 있는걸.” “꽃은 말 같은 거 하지 않아.” “엄마는 늘 지켜보기 때문에 들리는 거란다.” (14쪽)
- “흐음, 그럼 물과 비료를 주면 꽃은 자라는 거네. 간단하네.” “아니,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응? 그게 뭔데” “후후후, 그건 말이지, 코바나, 사랑이야. 정원으로 나와서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면 식물의 목소리가 들린단다.” (16쪽)

 


  새봄을 기다리며 이제 막 돋은 풀이 모두 눈에 덮였습니다. 춥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눈은 이내 녹아 땅으로 촉촉히 스며듭니다. 더 기운을 내라고, 씩씩하게 힘을 내라면서, 겨울눈이 소복소복 쌓였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무리 겨울에도 포근한 고흥이라지만, 눈바람이 한 차례쯤 불면서 숲과 들을 간질여야 겨울이 지나가는 줄 알겠지요. 풀과 나무마다 눈이불을 한 번쯤 뒤집어써야, 아하 겨울이 지나가지, 하고 알아차리겠지요.


  눈이 그득그득 내렸다가 감쪽같이 녹은 들빛은 한결 보드랍습니다. 지난가을부터 시든 풀은 누르스름한 물이 쪼옥 빠져 희멀건 빛이 되고, 희멀겋게 마른 풀포기 사이로 앙증맞게 조그마한 싹이 조물조물 오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빛이지만, 해마다 새롭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봄빛인데, 해마다 새삼스럽습니다. 들과 숲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 애써 베거나 뽑지 않아도 누르스름하거나 희멀건 풀포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새로 오르는 풀줄기는 말라죽은 풀포기를 털어내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말라죽은 풀포기는 봄이 끝나고 여름이 열릴 무렵 참말 몽땅 사라져요.


  흙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흙땅에서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요. 흙땅에서는 어떤 삶과 죽음이 갈마드나요.


- “내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건 부들레야 때문일지 몰라. 여름 내내 끊임없이 꽃을 피워서, 그 주변에 나비가 날아다녔거든.” (43쪽)
- “아빠와 엄마가 만들었던 정원이 아니라, 내 행복의 정원을 만들 거야! 그게 아빠와 엄마의 바람이란 걸 알았어.” (56쪽)

 


  봄은 늘 풀빛으로 찾아옵니다. 봄빛은 풀빛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풀빛 사이사이 꽃빛이 맑고, 꽃빛이 한창 흐드러지노라면 어느새 여름 문턱입니다. 여름은 풀이 우거지는 빛이라고들 여기지만, 여름이야말로 꽃빛이 해사한 철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풀이요 여름은 꽃이며 가을은 열매입니다. 겨울은 무엇일까요? 겨울은 눈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있고, 잎과 꽃과 열매를 모두 떨군 가지마다 새로 맺는 눈이 있습니다. 겨우내 모든 나무들은 새눈을 틔우려고 힘씁니다. 새눈에 온힘을 쏟습니다. 지난 한 해 돌이키면서 새로운 한 해에 씩씩하게 돋을 눈에 모든 기운을 바칩니다.


- ‘나무, 풀, 꽃, 산, 숲, 새. 가끔 두더지, 가끔 산토끼, 가끔 너구리. 나는 이곳에서 매일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73쪽)
-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버리는 것. 뿌리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 가든 시클라멘에게 리셋의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난 그럴 수 없어. 걱정 마. 너희는 틀림없이 다시 살아날 거야. 내가 되살리고 말 거야!’ (79∼80쪽)


  마츠모토 코유메 님 만화책 《그린 핑거》(학산문화사,2008)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푸른 손가락’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남다른 주인공만 푸른 손가락일까요? 우리 모두 푸른 손가락인데, 우리 모두 스스로 손빛을 잊거나 잃지 않았을까요?


  어느 한 사람만 빼어난 푸른 손가락일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만 푸른 손가락이라면, 몇몇 사람만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고작 쉰 해 앞서만 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내기요 시골 흙일꾼이었습니다. 기껏 백 해 앞서를 살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내기이면서 시골 흙일꾼이었어요.


  인류 문명이니 문화이니 하고 말하기 앞서,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이라면, 흙을 알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사랑하는 삶을 일구었습니다.

 


- “너도 마찬가지야. 자신의 힘으로 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거야.” (17쪽)
- ‘그런 건, 식물들에겐 아무래도 좋을 일. 왜냐하면 식물은, 사람을 고르지 않으니까.’ (84쪽)
- “참 아름다워. 새싹이란 건.” (168쪽)


  ‘가꾸다’라는 낱말은 흙을 만지면서 풀과 꽃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을 가리킵니다. 요새는 ‘옷이나 몸매나 얼굴을 가꾼다’고 하는 자리에 이 낱말을 더 자주 쓰는 듯하지만, ‘가꾸다’는 처음부터 “흙을 가꾸다”입니다. 흙을 가꾸고, 집살림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꿉니다. 사랑을 가꿉니다.


  흙에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라도록 가꾸는 손길이 바로, 살림과 마음과 사랑을 가꾸는 손빛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누구나 푸른 손가락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흙을 살리고 집살림을 가꿀 뿐 아니라 마음과 사랑을 가꿀 줄 아는 고운 빛입니다.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인 줄 느끼기를 바랍니다. 몇몇 사람만 남달라서 사랑을 가꾸지 않습니다. 돈이 있거나 이름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은 아무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꿈은 오직 꿈으로 가꾸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푸른 손가락 되기를 빌어요. 새봄을 앞두고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푸른 노래와 푸른 이야기를 나누는 푸른 숨결로 꿈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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