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4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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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3



잊지 않는 이야기

― 신부 이야기 4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7.31.



  글을 쓰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누구나 어릴 적에는 아무것도 적거나 남기지 않습니다. 갓난쟁이였을 적이나 두어 살 적에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너 살 적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여섯 살 적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일을 환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어릴 적에 겪은 일을 떠올리고,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릴 적에 주고받은 이야기를 떠올려요.


  모든 이야기를 다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요모조모 골라서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먹던 밥까지 떠올릴 수 있고, 남다른 날에 먹던 밥만 떠올릴 수 있어요. 일기를 쓰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야기를 새깁니다. 그림으로 옮기지 않아도 마음 깊숙하게 이야기를 남깁니다. 사진으로 찰칵찰칵 그때그때 적바림하지 않아도 마음에 또아리를 튼 이야기가 오래오래 흐릅니다.



- “이런 일은 천천히 진행해야지. 서로 나눠야 할 이야기도 있을 테고. 아무튼, 그랬단 말이지. 생각보다 아주 씩씩한 아가씨라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너희 어머니는 아주 조용한 분이셨다만, 몸도 약해서 말이다.” (38쪽)





  혀끝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혀끝에 이야기가 남아서 나이가 많이 든 뒤에도 ‘혀끝에 남은 맛’을 아련하게 떠올리거나 그리곤 합니다. 손끝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끝에 이야기가 남아서 나이를 많이 먹은 뒤에도 ‘손끝에 남은 느낌’을 애틋하게 떠올리거나 다시 겪고 싶기도 합니다. 갓난쟁이였을 적에 어머니 젖을 빨며 맡은 살내음을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어버이가 몸을 씻기던 느낌을 오래도록 되새길 수 있으며, 깊은 숲에 깃들어 마시던 바람이나 높은 봉우리에 오르며 누린 하늘을 오래오래 되새길 수 있어요.


  잊지 않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잊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잊지 않는 이야기는 사랑이지 싶습니다. 잊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사랑이 감돌지 싶습니다.


  너무 아파서 못 잊는 이야기가 있을 테고, 아주 기뻐서 못 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 슬퍼서 못 잊는 이야기가 있을 테며, 몹시 즐거워서 못 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픈 삶은 아픈 사랑입니다. 기쁜 삶은 기쁜 사랑입니다. 슬픈 삶은 슬픈 노래입니다. 기쁜 삶은 기쁜 노래입니다.



- “아, 음, 들었던 것을 잊지 않게 써 놓는 거죠.” “…….” “잘 까먹어?” “그런 건 아니지만, 잊어버려도 쉽게 기억이 나도록.”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하면 되잖아?” “우린 그러는데.” (55쪽)





  모리 카오루 님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2) 넷째 권을 읽으며 ‘잊지 않는 이야기’를 곰곰이 떠올립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는 중동아시아를 가로지르면서 문화인류학을 살피는 서양사람 눈길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중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글을 남기’거나 ‘책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 만나서 왁자지껄하게 떠들 뿐입니다. 함께 마주하며 소곤소곤 속삭일 뿐입니다.


  녹음기를 쓰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 마음과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깁니다. 잊지 않고 싶은 이야기는 참말 잊지 않습니다. 그러면 잊지 않아요. 잊지 않으려고 종이에 글을 써야 하지 않아요.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면 넉넉합니다.



- “속였어?” “마법이 아니었던 거야?” “속이지 않았다. 일을 잘하는 아가씨는 그만큼 누구나 탐을 내는 법이거든. 자자, 식겠구나. 어서 먹으렴.” “누나야, 맛있어.” “당연히 맛있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99쪽)

- “딱히 느닷없이 반할 필요도 없잖아? 걔들은 늘 꿈만 꾸니. 상대가 우리란 걸 알면 아마 실망할걸. 우리보다도 더. 피차일반이니까, 하다못해 소중히 여겨 줘야겠다 생각해. 사미 너도 너무 매정하게 굴진 마라.” (115쪽)




  책이란 무엇일까요.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을까요. 책에 쓰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읽는 책에는 우리 이야기가 어느 만큼 적힐까요.


  책을 쓰는 사람은 우리 이야기를 어느 만큼 삭히거나 받아들일까요. 책을 엮는 사람은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마주할까요. 우리 삶을 모르는 채 지식으로만 뚝딱뚝딱 만지작거리지는 않나요. 우리 삶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이 구경거리 삼아서 아무렇게나 다루지는 않나요.


  신문에 나오는 글과 방송에 나오는 모습은 우리 삶을 얼마나 보여줄는지요. 기자가 취재해서 내보내는 기사는 우리 사랑을 얼마나 담아낼는지요. 정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 이들은 삶을 삶답게 못 보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수많은 글과 그림과 사진은 아주 조그마한 조각 하나만 겉훑기로 담는 셈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 “언니, 애들 어리광 너무 받아주지 마. 한 번 기어오르면 하늘 높은 줄 모른다니까.” “뭐, 어떠니. 오랜만에 이런 걸 손에 쥐면 나도 젊어지는걸. 게다가, 신부의상은 가능한 여러 사람의 바늘이 들어가야 하는 거야. 그래야 행복해지거든.” “엄마는 그런 말 안 했는데.” “처음부터 말해 줬으면 너희는 그거 믿고 안 했을 거 아냐. 마지막에 여러 사람의 손이 닿으면 돼. 지금 편하게 했다가, 나중에 모르는 게 생기면 어떡할래.” “그럼 물어 보러 올게. 바로 근처인걸.” “그렇게 어정쩡하게 해선 안 돼. 시집가기 전까지 전부 해치워야지. 부모는 언제까지고 있는 게 아니야.” (171∼173쪽)



  예부터 바느질을 책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흙일을 책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고기잡이를 책으로 배우지 않고, 배를 뭇고 모는 일을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도끼질이나 낫질을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밥짓기와 국 끓이기를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떡을 할 적에 책을 보면서 떡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을 적에 책으로 배우지 않고, 아이를 돌보며 키울 적에 책으로 돌보거나 키우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면서 책을 보던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무엇이든 책으로 합니다. 오늘날에는 무엇이든 학교에서 합니다. 오늘날에는 무엇이든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기대어 합니다.


  삶이 사라진 채 지식과 정보만 흐르는 오늘날입니다. 삶에 깃든 사랑을 모르는 채 지식하고 정보만 춤추는 오늘날입니다. 삶을 밝히는 이야기는 없는 채 인기와 명예와 재산만 떠도는 오늘날입니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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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순정만화 1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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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6



같은 길에 선 다른 삶

― 철도순정만화

 나카무라 아스미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 모여서 같은 버스와 전철을 탑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같은 회사나 학교에 갑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거나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받습니다.


  다 같은 일을 하는 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마치고 무엇을 할까요. 다 같은 수업을 받는 다 다른 사람들은 수업이나 학교를 마치고 무엇을 할까요. 다 다른 사람들은 왜 다 같은 곳에서 살아가려 하고, 다 같은 일자리를 얻으려 겨루며, 다 같은 자가용이나 버스나 전철을 타려 할까요.



-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녔던 건 알아? 지난주 내가 감기에 걸려 고열에 쓰러지기까지 했던 건 알아? 당신, 우리 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잖아. 집에 와도 ‘아아’ ‘으으’ 앓는 소리가 고작이고, ‘나 왔어’ 하고 인사 한마디 안 해. … 우리 요즘 눈 마주치며 얘기한 적 있어? 난 대체 뭣 때문에 당신과 결혼한 거지? 난 가정부가 아니야! 당신 엄마도 아니야! 이런 식으로 당신 편할 대로 부려먹기만 하는 거 더는 지겨워서 못하겠어!” “내가 먹여 살리는데…….” (25쪽)



  예부터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었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똑같은 집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집을 다 다르게 지었고, 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기에 알맞도록 다 달리 가꾸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땅을 일구었고,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씨앗을 심었습니다. 집안마다 갈무리한 씨앗이 달랐고, 집집마다 씨뿌리기가 달랐어요.


  옛날에는 똑같은 부엌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다 다른 부엌이었고,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지게를 짊어지고 다 다른 멧골로 들어가서 다 다른 땔감을 그러모았어요. 다 다른 살림집마다 다 다르게 불을 지폈고, 다 다르게 밥을 지어서, 다 다른 밥상에 수저를 얹고 먹었어요.


  공산품이 없던 옛날이니 다 다를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은 어디에나 공산품이니 다 같을밖에 없습니다. 전기밥솥도 같고 냉장고도 같습니다. 텔레비전도 같고 자가용도 같습니다. 옛날에는 고장과 고을뿐 아니라 마을마다 말이 달랐고, 집마다 말이 또 달랐어요. 그러나 이제는 고장과 고을과 마을에서 쓰는 말이 거의 똑같습니다. 집집마다 다른 말씨는 자취를 감춥니다. 영화와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 넋과 얼을 똑같은 틀로 짜맞춥니다.





- “고토 군을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데 제풀에 혼자 포기해 버린 거야! 게다가 닛타 군은 좋은 사람이라, 내게 사귀자고 말해 줬을 때 기뻤거든! 하지만 한 달 전쯤 독일 이민이 결정되면서, 그러면서, 나 정말 못된 아이지만, 이제 마지막이고 하니,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60쪽)

- “글쎄, 힘든 건 다 힘들지 않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냥 평범한 거 아닌가?” (89쪽)



  나카무라 아스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철도순정만화》(시리얼,2011)를 읽습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다 같은 자리, 철도에서 만나고 스칩니다. 그런데, 다 다른 사람들이 복닥이는 이야기라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사람이 어제 본 그 사람이요, 예전에 마주치던 그 사람이 오늘 새로운 사랑을 속삭이는 짝꿍이 됩니다.


  같은 길에 선 다른 삶인데, 다른 길에서 만나는 같은 삶이 됩니다. 같은 길에 서며 걷던 다른 사랑인데, 다른 길에서 만나는 같은 사랑이 됩니다.




- “바꿔 탈 순 없나요? 이쪽 열차는 산으로 가지만, 저쪽 열차는 바다로 가거든요.” (102∼103쪽)

- “아마 저 아이에겐,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일 거예요.” (146쪽)



  바다로 가면 바다에서 즐겁습니다. 멧골로 가면 멧골에서 즐겁습니다. 시골에 가면 시골에서 즐거워요. 도시에 가면?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즐겁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즐겁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넋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다 다른 노래를 불러요. 그런데 다 다른 노래를 함께 부르니, 다 다른 목소리와 숨결이 한 동아리가 됩니다. 한마음이 되고 한몸이 되어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 같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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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연립주택
오영진 글.그림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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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5



함께 살아가는 나라

― 수상한 연립주택

 오영진 글·그림

 창비 펴냄, 2008.12.12.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리던 지난날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가장 짜증스러운 일은 신문도둑입니다. 신문사지국에 새벽에 몰래 기어들어서 신문을 훔치는 이웃이 있고, 신문배달을 할 적에 자전거를 세우고 아파트에서 돌리면 자전거 바구니에 있는 신문을 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온갖 ‘놈’들이 신문을 훔칩니다. 무엇보다, 신문을 훔치는 이들은 돈이 있습니다. 돈이 있는 이들이 신문을 훔칩니다.


  가장 어이없는 신문도둑은 경찰입니다. 새벽에 동네를 지켜 주니 신문 한 부쯤 으레 가져가도 되겠거니 여깁니다. 아파트에서 새벽바람으로 운동을 하는 아저씨나 할배가 자전거 바구니 신문을 슬쩍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아저씨는 여러 배달부 신문을 골고루 훔쳐서 웃옷 안쪽에 숨깁니다. 바구니에서 신문이 사라진 줄 깨닫고 부랴부랴 뒤를 좇으면 이녁 옷자락에서 여러 신문이 우수수 떨어져요. 어떤 이는 ‘나는 안 훔쳤다. 빈 자전거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져가서 배달부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면서 그 새벽에 만 원짜리를 내밀며 돈을 거슬러 달라 합니다. 만 원짜리 아닌 천 원짜리를 내밀어도 어느 배달부가 새벽에 잔돈을 챙겨서 신문을 돌릴까요.




-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젊은 쉐끼가 남의 집 신문이나 훔쳐! 내놔!” “아무리 집주인이지만 거 말씀이 지나치시네. 훔치다니요! 아저씨 예의를 좀 갖추고 말씀하세요!” “야! 훔치지 않았으면 니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뭔데?” “한집에 같이 살면서 이 정도 정보공유도 못한단 말입니까?” (21쪽)

- “당신이 세입자들을 선동하고 다닌다면서?” “그래요, 훗.”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웬 개수작이야!” “절은 좋은데 굴러들어온 땡중이 문제죠!” (33쪽)



  신문배달부는 신문 한 부 도둑맞으면, 그 한 부 때문에 다시 지국까지 돌아가서 신문을 챙겨서 와야 합니다. 배달부 자전거나 오토바이 바구니에 담긴 신문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돌리는 부수에 맞추어 챙겨서 나오니까요.


  신문이야 도둑맞은 뒤에 다시 갖다 주면 되지만, 우유는 참 큰일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신문과 우유를 훔치지 않아요. 돈이 있는 사람이 우유와 신문을 슬쩍하기 일쑤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지국에 조금 넉넉히 신문을 갖다 주기에 ‘도둑맞은 신문’을 아침에 다시 갖다 주지만, 우유회사에서는 배달부한테 맞돈으로 우유를 줍니다. 작은 우유팩 하나라도 도둑맞으면 배달부 주머니에서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전거도 아무렇지 않게 훔칩니다. 누군가 너무 바쁜 나머지 자전거에 자물쇠를 안 채우고 화장실에 들른다든지 가게에 들를 적에, 고 몇 분이나 몇 초 사이에 슬쩍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자전거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자전거 도둑맞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누가 자전거를 훔칠까요? 훔친 자전거는 누가 탈까요? 자전거 한 대 훔쳐서 돈을 얼마나 벌까요? 자전거 한 대 훔치면 부자가 될까요?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더라도 훔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내 자전거가 아니니까요. 책방에 가서 책을 훔쳐도 될까요? 책에 자물쇠를 안 채웠으니 슬쩍 가져가도 될까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말이 될 수 없어요. 책도둑도 도둑일 뿐 아니라, 아주 못된 괘씸한 도둑입니다. 책이 무엇이겠어요.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이야기밭인데,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훔쳐서 어떤 마음을 살찌우겠습니까. 인문책을 훔치든 사전을 훔치든, 책을 훔치는 이는 마음그릇이 아주 글러먹은 못된 ‘놈’일 뿐입니다.




- “행복이란 이런 거야. 여보, 당신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제부터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알아? 음, 좋아 좋아. 저 현수막(황금동 재개발 확정) 하나로 이 동네가 이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워.” (100쪽)

- “뭘 좀 여쭤 볼게 있는데 이 집 앞에 있는 황금비둘기들이 다 뒈져버리면 누가 가장 좋아라 할까요? 아무래도 집주인이 제일 좋아하겠지요.” “이봐, 소설 함부로 쓰지 마! 나는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야! 감히 내 앞에서 시답잖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나불대지 말란 말야!” (161쪽)



  오영진 님 만화책 《수상한 연립주택》(창비,2008)을 읽습니다. 연립주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연립주택 집임자와 세입자 사이에 툭탁거리는 이야기를 만화로 옮깁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있을 법할까요 없을 법할까요.




- ‘한여름의 아이콘. 나무 그늘 아래 평상, 단돈 천원으로 두 세대 모두에게 만족을 제공한 쮸쮸바에게 별 세 개를 주고 싶다.’ (234쪽)



  함께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대통령 하나가 잘난 나라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게 살아갈 나라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국회의원이나 무슨무슨 머시기가 잘난 마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아끼고 돌볼 마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집입니다. 사내는 하늘이고 가시내는 땅이 아닙니다. 집일은 가시내가 해야 하지 않고, 아이도 가시내가 돌봐야 하지 않습니다. 한집 사람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클 뿐 아니라, 어버이가 다 함께 따사롭게 보살필 노릇입니다.


  길에는 건널목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길을 건너야 할 사람이 있으면 자동차가 스르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와 할매가 느릿느릿 건너더라도 기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전거도 사람도 자동차도 함께 사이좋게 어울릴 만한 길이어야 길입니다. 자동차만 싱싱 내달리는 곳에는 사람내음과 살내음도 사랑내음도 없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지 않으면 들도 숲도 아닙니다. 새가 찾아들지 않으면 밭도 나무도 아닙니다. 무지개가 드리우지 못하면 하늘이 아닙니다. 별빛이 초롱하지 않다면 밤이 아닙니다. 물고기와 가재와 다슬기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냇물이 아닙니다. 잠자리와 제비와 박쥐와 나비와 벌이 한데 얼크러져 춤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실 바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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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2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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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4



즐겁구나, 내 하루

― 미카코 2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1.3.30.



  아침에 똥을 누러 뒷간에 가서 앉는데, 엊그제 우리 집으로 돌아온 큰 제비 한 마리가 뒷간 바로 위에 드리운 전깃줄에 앉아서 한참 노래합니다. 열어 둔 뒷간 문으로 제비 꽁지를 올려다보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제비는 찌찌찌찌 찌르르르찌르르째르르르째르르르 무척 빠른 가락으로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할 적에 주둥이 아래쪽 턱이 떨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비는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짓거나 고쳐서 살지만,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휙 하고 날아가는데, 내가 뒷간에 있는 줄 모르고 요 위에 앉아서 노래합니다. 이리하여 제비가 노래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봅니다.


  뒷간이 바깥에 있는 시골집은 이래서 참 좋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똥을 누면서 바람소리를 듣고 구름빛을 보며 새노래를 만납니다.



- “이치무라! 굉장한 거 보여줄게.” (10쪽)

- ‘15분 지각했더니 정문이 닫혀 있었다. 그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 건 내가 아니라 발 때문이었다.’ (13쪽)

- ‘어서 여기를 뜨지 않으면 발톱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16쪽)





  올해에는 마을에 제비가 몇 마리 안 돌아왔습니다. 제비가 깃드는 집도 몇 안 되겠구나 싶습니다. 올해에 우리 마을에 돌아온 제비를 보면 덩치가 꽤 큰 아이가 하나이고, 작은 제비가 여럿입니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하다가 우리 집 제비보다 덩치가 더 큰 제비를 한 마리 보았어요. 되게 큰 제비도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했습니다. 워낙 큰 제비일까요, 여러 해 살아서 덩치가 커졌을까요.


  제비 깃털을 가만히 바라보면 새까만 빛이 반들반들 빛납니다. 짙은파랑과 짙은보라가 섞여 거의 새까맣다 싶은 빛깔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까망과 하양 두 가지 빛깔로 그리되 짙은파랑이나 짙은보라를 살짝 곁들이면 잘 어울리리라 느낍니다.


  제비가 우리 집에 돌아오면서, 겨우내 봄내 제비집에 조용히 깃들던 참새와 딱새는 처마 밑에서 떠납니다. 집임자가 돌아왔으니 떠나야겠지요. 그래도 참새와 딱새는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만 떠날 뿐, 우리 집 둘레에서 맴돕니다. 후박나무 가지에 앉고 초피나무 가지에 앉습니다. 전깃줄에 앉고, 가끔 빨래줄에 앉습니다. 이불을 말리려고 바깥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는데, 어제는 제비가 그만 이불에 똥을 한 차례 질렀습니다. 녀석아, 똥 눌 자리는 많은데 왜 이불에다가 똥을 지르니. 저기 갓꽃밭이나 유채꽃밭에다가 똥을 질러야지.



- “반년밖에 안 남았어. 최소한 이과냐 문과냐는 정해야지. 안 그러냐? 언제까지 이럴래? 그럼 곤란하다고.” ‘반년 뒤에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1쪽)

- ‘부러웠던 건 아니다.’ (52쪽)

- ‘아무거나 상관없지만, 새로운 접시는 절대 안 깨지는 것으로 보내 주세요.’ (67∼68쪽)





  우리 집 옆밭에 갓꽃이 한창입니다. 일곱 살 큰아이보다 웃자란 갓꽃은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갓꽃밭 옆에 서면 갓꽃내음이 확 끼칩니다. 갓꽃내음은 유채꽃내음과 거의 같습니다. 갓잎은 유채잎보다 쓴맛이 센데, 꽃내음은 둘이 거의 같아요. 꽃빛도 꽃잎도 둘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추꽃도 유채꽃이나 갓꽃하고 많이 닮았어요. 세 가지 꽃은 빛깔이며 잎사귀며 냄새며 동무입니다. 한식구랄까요, 이웃이랄까요. 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빛이며 무늬이며 모양은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제비와 참새와 딱새는 저마다 다른 숨결입니다. 다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고, 다 다른 먹이를 즐깁니다. 그렇지만 이 새들은 똑같은 사랑이요 숨결이며 목숨이에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새입니다. 사람과 함께 지구별에서 노래하는 빛입니다.



- ‘이 통이 가득 찰 일은 없을 것 같다.’ “뭐? 그게 뭐야? 그럼 쓸쓸하잖아. 잠깐만 기다려.” (76∼77쪽)

- ‘빨간 페디큐어를 지우고, 난 아직 아이인 채로 있기로 했다.’ (112쪽)

-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차가웠다.’ (120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물빛이 흐르는 만화입니다. 물빛처럼 물내음이 나고 물노래가 흐르는 만화입니다. 냇물이랄까요, 도랑물이랄까요, 샘물이랄까요, 골짝물이랄까요.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흐르는 물빛이 감도는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 삶이 어떠한 빛인가 하고 스스로 되새깁니다. 내 삶은 어떤 빛으로 물들며 고운 냄새를 피우는가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 삶은 어떤 빛이 꿈과 사랑으로 자라면서 이웃들한테 즐겁게 웃음꽃을 베풀 만한가 하나하나 곱씹습니다.


  노래하기에 삶입니다. 노래하기에 사랑입니다. 노래하기에 꿈입니다. 노래하지 않으면 삶이 아니요 사랑이 아니며 꿈이 아닙니다. 노래하는 하루일 때에 즐겁습니다. 노래하는 하루를 밝히면서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요. 이야기는 꽃이 되고 잎이 되며 열매가 됩니다. 이야기는 한들한들 춤을 추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고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착한 꽃내음입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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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의 눈물 코다마 유키 단편집 1
코다마 유키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32

 


꽃냄새
― 망고의 눈물
 코다마 유키 글·그림
 추지나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1.7.8.

 


  매화꽃 곁에서는 매화꽃 내음이 납니다. 복숭아꽃 곁에서는 복숭아꽃 내음이 납니다. 벚꽃 곁에서는 벚꽃 내음이 나고, 모과꽃 곁에서는 모과꽃 내음이 납니다. 조그마한 별꽃 곁에서 별꽃 내음을 맡은 적 있나요. 자그마한 괭이밥꽃 곁에서 괭이밥꽃 내음을 누린 적 있나요.


  동백꽃과 장미꽃도 고운 냄새를 퍼뜨립니다. 느티꽃과 초피꽃도 푸른 냄새를 베풉니다. 민들레꽃한테서도 맑은 냄새가 번지고, 고들빼기꽃과 부추꽃과 까마중꽃한테서도 밝은 냄새가 흐릅니다.


- “것 봐라, 망. 밤늦게까지 만화를 보니 그렇지. 여러분, 얘는 열여섯 살이나 먹어서 순정만화 읽고 운대요! 애래요, 애!” (5쪽)
- “아까부터 제대로가 어쩌고 하는데, 그럼 내가 좀 묻자. 하치야의 생활은 제대로 됐어? 제대로라는 게 대체 뭐야? 날마다 시간에 매여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해대는 생활? 돈 때문에 자신을 굽히고 살면 제대로인 건가?” (102∼103쪽)

 


  꽃을 마주하기에 꽃내음을 즐깁니다. 꽃을 바라보기에 꽃내음을 알아챕니다. 꽃을 생각하기에 꽃내음을 사랑합니다.


  꽃을 마음속으로 그리지 않을 적에는 꽃내음을 알 수 없습니다. 꽃을 마음자리에 두지 않을 적에는 꽃내음과 만나지 못합니다. 꽃을 마음밭에 심지 않을 적에는 꽃내음을 이웃과 나누지 않습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어떤 빛이 있을까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으로 서로 만나거나 사귀거나 헤어지거나 엇갈릴까요. 나한테 찾아올 님한테서만 꽃내음을 맡고픈 마음일까요. 내가 내 님한테 함께 꽃내음을 퍼뜨리려는 마음일까요.


  서로 꽃과 같은 빛으로 만나서, 나도 님도, 님도 나도, 곱게 얼크러지는 이야기가 될 때에 가장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내 이웃도 꽃님이요 나도 꽃님입니다.


- “나, 부자는 싫어. 다들 거만하잖아.” “망?” “푸하하! 갑자기 미움받았네.” (9쪽)
- ‘어째서 이렇게 두근거릴까. 좋은 냄새가 나. 이 사람은 땀도 흘리지 않나 봐. 꽃처럼 향긋한 냄새.’ (18쪽)

 

 


  코다마 유키 님 만화책 《망고의 눈물》(애니북스,2011)을 읽습니다. 짧은만화를 여럿 담습니다. 베트남에서 살아가는 젊은이 이야기가 흐르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젊은이 노래가 감돕니다.


  어떤 사람이 서로한테 사랑이 될까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때에 스스로 즐거울까요. 돈이 있거나 얼굴이 잘생겨야 사랑이 되나요. 한뎃잠을 자거나 돈이 없으면 사랑이 안 되나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쯤 되어야 사랑을 할 만한 사이일까요. 커다란 도시에서 살거나 커다란 집 한 채쯤 있어야 사랑을 속삭일 만한 님이라 여기는가요.


-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사이공 강은 변함없이 흐른다. 꽃향기를 씻어내린 망고 샤워며 눈물도 전부 강으로 돌아간다. 모든 걸 품은 채 흐른다. 그리고 내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빛나는 아침이 찾아오겠지.’ (36쪽)

 

 


  꽃집에서 꽃을 사고팝니다. 들과 숲에서 꽃이 피고 집니다. 꽃다발도 꽃이요, 꽃밭도 꽃입니다. 장미나 튤립이 되어야 꽃으로 여기거나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봄까지꽃이나 코딱지나물꽃마냥 아주 조그마한 봄꽃을 귀엽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씀바귀에 꽃이 피는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고추꽃을 예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추꽃과 무꽃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며, 머위꽃과 모시꽃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이봐, 자네. 여기 앉아 있으면 일반 시민의 통행에 방해가 되잖나.” “아, 일반 시민이 아니라 미안하군. 아저씨도 앉아 보지? 세상이 달라 보여.” (74쪽)
- “서, 설마 수입이 없니?” “응. 일하는 게 성미에 안 맞아. 돈 욕심도 없고.” “말도 안 돼. 난 싫어. 그럼, 날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야?” (80쪽)


  모두 꽃입니다. 모두 사람입니다. 모두 삶입니다. 모두 사랑입니다.


  모두 나라입니다. 모두 마을입니다. 모두 집입니다. 모두 살림입니다.


  마음으로 만나면 모두 같은 숨결입니다. 마음으로 사귀면 모두 같은 꿈입니다.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면 모두 같은 동무요 님이고 이웃입니다. 좀꽃마리도 어여쁜 꽃이요, 안개꽃도 어여쁜 꽃입니다. 꽃다지도 어여쁜 꽃이며, 수선화도 어여쁜 꽃입니다. 스스로 꽃넋이 될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꽃웃음을 지을 적에 사랑을 속삭입니다. 스스로 꽃노래를 부를 무렵에 시나브로 사랑이 눈부시게 퍼집니다.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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