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3



내 동무는 누구인가

― 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글·그림

 박계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5.30.



  예전에는 동무를 마을에서 사귀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누구도 동무를 학교에서 사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학교가 선 지는 이제 백 해를 겨우 넘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마을에서 동무를 만나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마을에서 이웃을 만나 즐겁게 일했습니다. 마을지기이면서 마을동무이고 마을이웃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비로소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동무를 사귀지 못해, 학원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나 학원에서 동무를 못 사귀는데, 이때에는 인터넷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아이들이 동무를 사귀는 곳은 아이들이 노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동무가 됩니다. 동무라고 할 적에는 함께 놀 수 있는 사이입니다.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놀 수 있기에 동무입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사이가 될 때에 동무예요.



- “딴죽 걸 부분은 많지만 오히려 이제 언급하고 싶지 않네.” “우리 같은 소시민은 고작해야 핵 셀터를 사는 일 정도밖에 못하니까.” “못 사!” “하긴, 뭔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는 많으니 일일이 다 상관할 수는 없어.” “정말 그래.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야지!” (22쪽)

- “조만간 성별도 이름도 개인정보라고 해서 비밀 취급 될 것 같아.” “응.”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세계가 찾아오는 거야!” (27쪽)




  학교가 없던 지난날에는 마을이 배움터이고, 집이 배움터입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에서 일을 익힙니다. 따로 학교를 가야 일을 익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배울 일이란, 삶을 짓는 일이에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할 줄 알아야 일입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때에 비로소 삶을 짓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는 돈벌기 하나만 가르칩니다. 돈을 벌어서 집과 밥과 옷을 돈으로 장만하는 길을 알려주는 학교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땀을 안 흘리고 돈만 벌도록 알려주는 데가 학교라고도 할 만합니다. 참말 그렇거든요. 학교를 길게 다니면 다닐수록 ‘돈벌기’와 가깝다고 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학교를 오래 다니면 돈은 잘 벌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는 길과 더욱 멀어집니다. 돈을 많이 쌓아서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기에는 수월할는지 모르지만,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해야 돈을 치러 살 수 있어요.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후 디지털 천국에서 재생하는 모양이야.” “이런 일을 해도 하느님한테 혼나지 않을까?” “글쎄? 뭐, 최종적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인공 신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그무렵에는 이미 지구 인구보다 많을지도 몰라. 자, 그럼, 수속도 끝났으니 다음은 츠보이 찾기네.” “어디 있는지 알아?” “맡겨 두시라. 죽은 사람에게는 거의 사생활 같은 건 없어.” (49쪽)

- “왠지, 나는 부모님 마음대로 살려두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가짜 천국에서 급히 부활해 버려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 이건 정말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건가? 싶어서.” (52쪽)





  돈만 벌도록 아이들을 내모는 학교 얼거리요 사회 틀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돈만 벌면 집이든 돈이든 옷이든, 게다가 동무와 이웃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듯이 외치는 학교요 사회입니다. 영화나 문학을 보면, 돈으로 사랑까지 살 수 있는 듯이 떠벌입니다.


  참말 그럴까요? 참말 돈으로 사랑이나 꿈이나 믿음까지 살 수 있을까요? 참말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기에 예배당은 자꾸 커질까요? 참말 돈으로 꿈을 살 수 있으니, 정부는 경제개발만 끝없이 외치는가요?


  아이들은 서로 놀이동무가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온몸으로 배울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은 다른 데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함께 놀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땀흘리는 사이에 천천히 싹트는 사랑입니다. 제대로 놀지 못한 채 나이만 먹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즐겁게 놀지 못한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다가 대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은 살섞기만 알아요. 사랑으로 새로운 아이를 낳는 빛을 몰라요.



- “모처럼 친구가 되었으니까 같이 집에 가자.” “미안. 잠깐만 기다려!” “친구라고 해도, 무늬만이야. 이런 건.” “응?” “왜냐하면 친구는 맞선 같은 거랑은 다르잖아?” (93쪽)

- “아무래도 시간이 된 모양이다. 아저씨도 가련다.” “가, 가다니, 어디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저쪽의 우주야. 뭐, 이 멋진 기회를 혼자 독점하는 것도 아까우니. 만약 너도 따분하다면.” (123쪽)




  츠바나 님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고등학교 아이들 모습은 오늘날 모습은 아닙니다. 얼추 쉰 해나 백 해쯤 지난 뒤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과학문명만 앞세워 달음박질을 칠 때에 드러날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만화이기에 만화처럼(?) 말한다고 할 텐데, 먼 앞날 학교에서는 ‘동무 사귀기’가 ‘성적표 점수’에 들어갑니다. 학교에서는 억지로 짝짓기하듯이 ‘동무짓기’를 합니다. 동무하고 어떻게 지내느냐를 늘 지켜보는(감시) 눈길이 있고, 동무하고 제대로 지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사회에서 바라는 동무 사귀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낙제 점수’를 받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인지 모르나, 만화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뛰놀 겨를이 없습니다. 줄넘기나 공차기 따위를 빼고, 아이들이 참답게 놀이를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동네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빈터가 없습니다. 마땅한 빈터는 모조리 주차장이 되거나 가게가 됩니다. 쓸 만한 빈터는 어른들이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려서 지저분합니다.



- “이건 좋은 걸 샀는데!” “나는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들어.” “그래? 왓핫핫.” “나도 웃자. 왓핫핫.” “어? 지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없어도 웃을 수 있다니까!” (123쪽)



  아이들한테 동무는 누구인가요. 어른들한테 이웃은 누구인가요. 아이들이 동무 없이 학교만 다녀도 될까요. 아이들이 또래 동무를 사귀려면 반드시 학교에만 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마을에서 또래나 동무를 사귀면서 즐겁게 뛰놀 수 없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못 뛰놀도록 가로막기만 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기만 하면서 닦달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집집기와 밥짓기와 옷짓기 같은 삶짓기를 물려줄 생각을 안 하나요. 아니, 어른들은 왜 스스로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는 생각조차 안 하나요.


  아이들이 그저 학교에만 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는 메마른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온통 학교에만 갇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이 차디찬 사회입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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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x츠바사 3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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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5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 유키×츠바사 3

 타카하시 신 글·그림

 편집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4.30.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체육도 언론도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전쟁무기도 어른이 만들었고, 문학과 영화도 어른이 만들었어요. 인터넷과 전화기도 어른이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농약과 비료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자동차와 고속도로도 만들었고,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식물원에서 새로운 꽃이나 열매를 만들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맨 처음이라 할 꽃이나 열매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다른 꽃과 열매가 있을 때에 비로소 이들 꽃과 열매를 바탕으로 조금 손질한 꽃과 열매를 만드는 시늉을 할 뿐입니다.


  우리 사회와 정치와 문화와 교육 모두 어른이 만드는데, 이 어른들은 바람이나 햇볕이나 빗물이나 흙이나 숲은 만들지 못합니다. 만들 재주조차 없거니와, 만들 생각이 없고, 만들 만한 깜냥이나 나이도 없습니다. 지구별 어떤 어른들도 숲 하나를 만들 수 없어요. 숲이 이루어지기 앞서 늙어서 죽겠지요.



- ‘난 단지 악기를 되찾아 선배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뿐. 그게 다야. 난, 결코 범인을 찾아내 벌을 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10쪽)

- ‘괜찮아, 아가야. 넌 망가지지 않았어. 미안해. 싸늘하게 식어 있는데 소리를 내서. 깜짝 놀랐지? 넌 참 예쁜 목소리를 가졌구나? 추위 때문에 튜닝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29쪽)




  지구별 어른들 가운데 숲이나 해나 바람이나 비나 흙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지구별 어른들 누구라도 숲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리거나 없앱니다.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흙도 하루만에 무너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사랑스럽게 삶을 짓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면서, 끔찍하게 삶을 짓밟는 길로는 아주 쉽게 나아갑니다. 사랑으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으면서, 끔찍하게 이웃을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은 아주 쉽게 저지릅니다.



- ‘그리고, 선배는 발견한 것이다. 이 동네처럼 저속한 ‘초능력’ 같은 힘이 아니라, 본래 선배가 전학 오기 전에 갖고 있었을 반짝이는, 빛 같은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70쪽)

- “난 전혀 몰랐어. 이제껏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족속의 인간들이 있다는 걸. 참 웃기지. 아무도 우릴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데.” (113쪽)




  어른은 누구일까요. 나이를 먹으면 어른일까요. 아이는 누구인가요. 나이가 적으면 아이인가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고작 나이 하나만 놓고 ‘어른·아이’를 가릅니다. 그러면, 나이로 가르는 ‘어른·아이’ 틀거리는 올바를까요? 아름다울까요? 알맞을까요? 사랑스러울까요?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 뿐 아니라, 전쟁무기로 이웃을 윽박지르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주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지을 줄 모르는 채 나이만 먹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주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 ‘난 그저 자신의 입김이 뽀얗게 천장에 떠오르는 것을 보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어.’ (121쪽)

- “또, 또, 그, 그런 무서운 표정 지어 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우린 어른들한테 실컷 무서운 꼴 당하고 있으니까.” (167쪽)




  타카하시 신 님 만화책 《유키×츠바사》(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읽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프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프면서 티를 내지는 않으나, 어느새 생채기가 드러나는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이들을 아프게 내모는 사람은 언제나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낳지만, 막상 그네들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줄 모릅니다. 아마, 아이를 낳아 괴롭히거나 닦달하는 어른 스스로 ‘이녁이 아이였을 적’에 ‘이녁을 낳아 돌보았다는 어른한테서 똑같이 괴롭힘과 닦달을 받았다’고 할 만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은 적 없이 ‘나이만 먹고 어른이 되었’으니, 막상 ‘어른인 몸뚱이로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거나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늘은 어른이지만 어제는 아이’였던 사람이 어릴 적에 ‘다른 어른이 만든 엉터리 사회’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정작 ‘어른이 된 오늘 이 끔찍한 사회를 허물거나 몰아내는 데에 힘을 쓰지 못’해요. 예전 어른들이 했듯이, ‘바보스러운 아이 괴롭히기’를 그대로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사회가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새로운 어른이 될 적에도, 오늘과 같이 똑같은 굴레와 쳇바퀴가 되풀이되도록 한다고 할까요.



- ‘산 너머에 있는 친구들, 열심히 하고 있니? 이쪽 학교는 같은 취주악부라 해도 멤버는 그리 많지 않아. 악기도 적고. 하지만 언젠가 대회에서 너희를 만날 수 있겠지. 그때까지는 이쪽 애들하고도 친해져 있을게.’ (140쪽)



  오늘 바꾸려고 할 때에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바꾸지 않고 모레나 글피쯤 바꾸겠다고 말하면 바꾸지 못합니다. 오늘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힘을 내야 합니다. 오늘 어른인 사람들은 오늘 아이인 이웃한테 사랑을 물려줄 노릇입니다.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 아이로 무럭무럭 자라는 이웃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나눌 노릇입니다. 어른이 만든 이 사회는 바로 어른이 스스로 고쳐야 고칠 수 있습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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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3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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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34



따뜻해졌어?

― 미카코 3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1.7.30.



  내가 곁님을 주무르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곧잘 아버지나 어머니를 조물조물 주물러 주곤 합니다. 조그마한 손으로 커다란 어버이 몸뚱이를 주무릅니다. 아이들 손아귀에 얼마나 힘이 있겠느냐 싶지만, 살살 만지는 손길에 묻어나는 따사로운 빛을 느낍니다. 꾹꾹 눌러 주지 않아도 개운합니다. 힘껏 짚어 주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더운 여름날 늘 아버지가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선물합니다. 가끔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부채질을 돌려줍니다. “아버지, 덥지요?” 하면서 이마와 콧잔등에 땀을 내면서 부채질을 합니다. “괜찮아. 고마워. 너희들이 부채질 받아.” 하면서 부채질을 다시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압니다. 저희한테 다가오는 느낌이 즐거움인지 서운함인지 쓸쓸함인지 기쁨인지 모두 압니다. 아이들한테 어른들이 따사로운 손길을 내미는지 거친 손길을 뻗는지 모두 압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랑이 되어 퍼집니다. 미움은 새로운 미움이 되어 번집니다.



- “잔뜩 있네. 비슷비슷한 색이.” “잘 봐. 이건 진한 빨강. 그 옆은 오렌지 빛이 도는 거. 이건, 장미색. 이건 진짜 장미꽃이 들어 있는 거라서 내가 산 물감 중에서 제일 비싸. 한번 맡아 봐.” “내가 왜?” “됐으니까 빨리!” (6∼7쪽)





  아직 수저질이 서툰 아이들한테 밥을 떠먹이곤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수저질이 익숙해지는 어느 때에 저희 작은 숟가락에 밥을 떠서 내밉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붙이지요. “자, 먹어.” 그래, 네가 주는 밥 맛나게 먹을게.



- “따뜻해졌어?” (18쪽)



  바람이 싱그럽게 불면서 들을 간질입니다. 바람이 푸르게 불면서 숲을 보듬습니다. 바람은 시골에서도 불고 도시에서도 붑니다. 바람은 시골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한테도 불고, 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자동차 지붕에도 붑니다.


  바람은 어떤 빛일까요. 바람은 어떤 숨결일까요. 바람 한 점은 우리한테 어떤 노래가 되어 스며들까요.


  바람을 마시면서 풀이 돋습니다. 바람을 머금으면서 나무가 우거집니다. 바람을 들이켜면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바람을 쐬면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키웁니다.





-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음. 딱히 없어. 어리광도 좀 부리고 그래. 아플 때는 아이 때로 돌아가도 되는 거야!” (50쪽)

- “토끼 만들어 줘!!” “사과 먹고 싶어?” “토끼 만들어 줘! 아니야. 잘라서 토끼로 만드는 거야!” “잘라서? 음.” “거기서 멈춰! 반 되면! 귀 만들어 줘. 여기 있는 사과도 몽땅!” “뭐?” (59쪽)



  만화책 《미카토》(미우,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수수한 이야기가 감도는 만화책 《미카코》를 그린 쿄우 마치코 님은 어떤 넋으로 지구별을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이녁 만화책은 아직 《미카코》뿐인데, 이 만화책 한 권을 거쳐 만화쟁이 한 사람 숨결을 어느 만큼 받아마실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사랑은 작은 마을에 작게 드리웁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노래는 작은 마을에 작게 스며듭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꿈은 작은 마을에 작은 씨앗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자그마한 나무로 자랍니다.





- “미도리카와 애인 말이야!! 있는 거 왜 숨겼어? 그리고 그 사람 대학생이라며? 선생님이라며? 그래도 되는 거야?” “애인 같은 거 없어. 다 거짓말이야.” “그럼……. 그럼! 없는 거면 우리 사귀자!” (132∼133쪽)



  사랑은 교과서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꿈은 대학입시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노래는 졸업장에서 샘솟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책에서 흐르지 않습니다. 한겨울에 따뜻하게 내민 작은 손에서 사랑과 꿈과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한여름에 시원하게 내민 작은 손에서 이야기와 노래와 꿈과 사랑이 자랍니다. 4347.7.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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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로 살아라
정송희 만화 / 씨네21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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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50



오늘 이곳에서 누가 살아가는가

― 나대로 살아라

 정송희 글·그림

 씨네21북스 펴냄, 2013.12.31.



  정송희 님이 그린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씨네21북스,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소로, 스콧·헬렌, 타샤 튜더’ 네 사람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등학교 아이들 눈높이에서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책을 살펴서 읽으며 느낀 이야기를 간추리듯이 들려줍니다.


  그런데, 만화책을 넘기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정송희 님은 왜 굳이 이 네 사람을 골라서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그리고,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네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일쑤입니다. 정송희 님 나름대로 삭히면서 새로운 넋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네 사람 이야기를 네 사람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화대사를 꾸며 이야기를 엮는다’면, 굳이 이 만화책을 읽을 까닭은 없지 싶습니다. 애써 만화책으로 네 사람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만한 까닭을 만화로 담아야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 “에머슨은 가까운 친구였지만 소로를 잘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아.” “글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 것 같은데.” (51쪽)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에서 주인공은 고등학교 아이 둘입니다. 소로도, 스콧이나 헬렌도, 타샤 튜더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아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아이 둘은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눈을 뜨면서 삶을 짓고 싶거든요. 고등학교 아이 둘은 스스로 삶을 다시 만나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책은 ‘네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넘어서, 고등학교 아이 둘이 ‘네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마음과 품은 생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스콧은 깔끔하고 소박한 생활. 훌륭한 농장 운영. 차곡차곡 쌓은 땔감과 퇴비 더미. 반짝반짝 빛나는 연장들. 꼼꼼하게 정리된 노트. 정성 들여 읽기 쉽게 쓴 원고에서 예술가였어. 난 스콧이 생활 자체를 예술 작업처럼 하고 있다고 느꼈어. 스콧은 내 독특한 성격을 잘 배려해 줬어.’ (81쪽)

- ‘스콧은 생활 속으로 라디오가 끼어드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어. 라디오는 기껏해야 뉴스 제목만 들을 정도로 사소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보았지. 우리는 운 좋게도 ‘소음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살아왔어. 저녁이나 낮이나 모두 조용했지. 아침 뉴스도 없었어.’ (96쪽)



  오늘 이곳에서 누가 살아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오늘 이곳에서 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입시지옥에서 홀가분한 고등학교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자살로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대학교에 들어갔어도 마음을 못 놓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대학교에 못 들어간 탓에 마음이 찢어지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는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 푸름이한테 어떤 빛이 될 만한지 궁금합니다. 이 만화책이 모자라거나 아쉽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 만화책이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들여다보아야 할 곳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이 찬찬히 마음을 쏟아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있으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 ‘나는 틈틈이 침실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 ‘햇빛, 새소리, 눈송이, 나무’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을 새겼어.’ (99쪽)

- ‘나는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지.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하리라’’ (113∼114쪽)



  소로 님이 쓴 책은 언제 읽어도 아름답습니다. 스콧 님이나 헬렌 님이 쓴 책도, 타샤 튜더 님이 쓴 책도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이러한 책들로 나아가는 길동무가 되는 《나대로 살아라》도 여러모로 뜻이 있으리라 느껴요. 아름다운 길동무를 알려주는 책이 있어도 우리 삶은 한결 넉넉할 테니까요.


  그러면, 소로를 만난 고등학교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요. 스콧과 헬렌을 만난 고등학교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요.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그저 ‘옛사람’한테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을 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지식을 쌓기는 하지만, 무언가 달라지는 낌새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새로운 사람을 찾아나서기만 합니다. 생각이 자라거나 꿈을 키우거나 사랑을 노래하는 빛으로 흐르는 데까지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나대로 살아야지요. 쳇바퀴를 도는 삶이 아닌, 나대로 가꾸는 삶으로 나아가야지요. 도시 물질문명에 갇혀 허덕이는 삶이 아닌, 나대로 사랑하면서 보듬는 하루를 누려야지요.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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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실격 1
마츠야마 하나코 지음, 김부장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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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9



가장 바보 같은 녀석

― 아이 실격 1

 마츠야마 하나코 글·그림

 김부장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12.18.



  마츠야마 하나코 님이 빚은 만화책 《아이 실격》(애니북스,2013)을 읽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이 쓴 소설책 이름을 흉내내어 빚은 만화책 《아이 실격》이랄 수 있습니다. 만화쟁이 마츠야마 하나코 님이 ‘사람살이’를 어느 만큼 읽어내어 이 만화를 그렸는지 알 길은 없는데, 이 만화책에 흐르는 빛은 ‘다시 태어나서 똑같이 괴로운 나날을 되풀이하는 슬픔’입니다. “아이 실격”인 까닭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는 맑은 아이로 태어난 숨결이 아닌, 지난 삶에서 어떤 나날을 괴롭게 누리다가 스스로 죽거나 전쟁 때문에 죽거나 온갖 아픔 때문에 죽었는가를 모두 끌어안고 태어난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 “아들아! 힘내! 조금만 힘을 내서 태어나 다오! 태어나면 신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이를테면, 아빠처럼 평범한 월급쟁이가 돼서,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고, 무난하게 결혼해서…….” “아기의 박동 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4쪽)

- ‘이런 인간들과 인생을 다시 사는 건 사양하겠어! 하지만 이 몸으로는 내 의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얼마나 무력하단 말인가! 나중에 이 몸이 자유로워진다면, 이 녀석부터 날려 버릴 거야!’ (7쪽)




  우리들은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 스스로 삶을 슬기롭게 깨닫지 못하면 다시 태어납니다. 예전 삶을 그치면서 예전 몸을 내려놓은 뒤, 넋이 하늘을 떠돌다가 새로운 몸을 찾아서 아기로 태어납니다. 새로운 삶을 바라면서 새로운 어버이를 찾아서 태어납니다.


  삶을 슬기롭게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다시 태어나지 않겠지요. 슬기로운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느껴 깨닫는 넋이라면, 굳이 지구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온누리를 마음껏 휘휘 날아다니는 빛이 될 테지요.


  이리하여, 만화책 《아이 실격》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둡습니다. 유치원 교사나 어버이 곁에서는 ‘다 모르는 어리광쟁이’인 듯 연극을 하고, 아이들끼리 있으면 그야말로 ‘예전 삶(수많은 전생에 걸친 윤회)에서 짊어진 굴레를 고스란히 떠맡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두운 말만 주고받습니다.



- ‘노조미는 전생의 기억을 (세 살 때에) 잊고 말았다. 왜 인생에 절망했는지, 왜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는지를. 새로운 인격으로 삶을 시작하려는 이때 알 수 없는 무력감만이 남아 있었다. (8쪽)

-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전생의 내가 죽는 순간 간절히 원했던, ‘두 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염원뿐이었다.’ (12쪽)

- “마녀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원래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고 치유 능력을 가졌던 여성들이었는데, 권력자들이 껄끄럽게 생각하여 그녀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했지. 결과적으로 원령이 된 거래.” (115쪽)





  만화책 《아이 실격》은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아기조차 기쁨으로 태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버이도 아기를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하는 얼거리를 보여줍니다. 똑같이 흐르는 쳇바퀴에서 아무런 꿈도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틀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얼거리나 틀을 알면서 고치거나 바꾸지 않아요. 쳇바퀴를 그대로 밟습니다.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입시지옥을 되풀이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입시에 얽매이고, 대학생이 되어도 느긋하게 놀지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배우지 않습니다. 회사원이 되기를 바라고, 회사원이 되어도 늘 돈에 얽매이다가 아파트 전세와 부동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데, 이러다가 짝꿍을 만나 살을 섞은 뒤 아기를 낳아요. 아직 스스로 꿈이나 사랑을 마음에 품지 않았는데, 그냥 아기를 낳습니다.


  이런 육아나 저런 육아를 한들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은 바꾸지 않고 이런 교육과 저런 교육을 한들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저 ‘예전 삶에 쌓은 굴레’만 새삼스레 되풀이할 뿐입니다.



- ‘평범한 놈들이 제일 바보 같아.’ (21쪽)

- “뭐 그냥, 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도 하고, 지키고 싶은 정의도, 타도하고 싶은 악도 없지만, 어쨌든 병역은 거부하려고.” “아, 그건 나도 그래.” (28쪽)

- “난 형이 있는데, 형제란 건, 무슨 일이든 서로 비교해서 암묵적인 순위를 정하고선, 부모의 기대와 돈을 상위 랭커에게 집중하는 것일 뿐. 나랑 형이랑 동시에 물에 빠지면 분명히 형을 먼저 구할 거라고 실감하는 날들의 연속이랄까.” (58쪽)





  아이들은 모두 빛입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빛입니다. 누구나 빛으로 태어납니다. 새롭게 살아가고 싶어 태어납니다. 사랑과 꿈을 새롭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되고 싶어 태어납니다.


  무엇을 할 때에 즐거울까요. 사랑을 하고 꿈을 키워야 즐겁겠지요. 전쟁을 하거나 경쟁을 벌이거나 이웃을 괴롭히면 즐겁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 때에 웃음과 노래가 샘솟을까요. 사랑을 하고 꿈을 키워야 웃음과 노래가 샘솟겠지요. 전쟁무기와 군대를 자꾸 만들 뿐 아니라,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들끓는 도시 문명사회를 그대로 두면 웃음도 노래도 없습니다.



- “여러분도 이제 상급반이 됐으니까 슬슬 ‘사회’에 대해 공부해 보아요.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건 무엇일가요?” “저요! ‘사랑’이요!” “깜빡했는데, 선생님은 그 단어를 제일 싫어해요.” (47쪽)

- “여자들은 편하게 돈과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여자들은 왕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왕자에게 선택된 자신을 사랑하는 거겠지.’ (71쪽)

- “투쟁심을 억제하며 협동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목적 아닌가요?” “현 단계에서 인류의 지성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어요!” (122쪽)




  가장 바보 같은 녀석은 아마 우리 스스로일 수 있습니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지 않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바보 같다 할 만합니다. 삶을 꿈과 사랑으로 가꾸지 않는 우리 스스로 가장 바보 같다고 여길 만합니다.


  거꾸로, 가장 아름다운 님이 우리 스스로가 될 수 있어요.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면 우리 스스로 가장 아름답습니다. 삶을 꿈과 사랑으로 가꾸면 우리 스스로 가장 빛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고 기쁘게 웃으면, 우리 곁에서 아이들이 즐겁습니다. 어른으로 일하는 우리들이 언제나 어깨동무와 두레를 펼치면서 서로 아끼고 돌보는 삶을 짓는다면, 바로 우리 둘레 아이들이 즐겁습니다. 만화책 《아이 실격》을 읽을 적에는 하하 웃습니다. 만화책 《아이 실격》을 덮은 뒤에는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4347.7.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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