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5.9 - Vol.2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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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5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 사진잡지 《포토닷》 22호

 포토닷 펴냄, 2015.9.1. 1만 원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즐거울 때에 사진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움이 새롭게 샘솟습니다.


  고단할 때에 사진을 고단하게 읽다가, 어느새 고단함을 가만히 씻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더욱 즐거운 마음이 된다면, 고단한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새 고단함을 녹입니다.


  옛말에 기쁨은 곱절로 북돋우고 슬픔은 반토막으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살가운 곁님이나 동무나 이웃은 기쁨을 한결 따스하게 북돋웁니다. 이러면서 슬픔은 나누어 받으면서 너그러이 달래지요.


  마음이 아프다든지 일이 힘들다든지 살림이 팍팍할 적에는 언제나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내가 찍은 우리 아이들 사진은 나한테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사진에서 웃는 아이들은 늘 나더러 웃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에서뿐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늘 웃습니다.



인천 이외의 지역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인천 만수동을 비롯한 주택지역은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을 불쑥불쑥 마주하게 되면서 찾아내는 재미를 느꼈다. 또한 그 모습 자체도 제멋대로라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는 어느 정도 찍다 보니 질려 버렸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조경인데다 지속적인 관리를 받고 있어 몇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32쪽/유리와)


작업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으로 기록도 하고 싶었지만, 예산과 인력의 부족 문제로 실행하진 못했다. (43쪽/임형태)



  사진잡지 《포토닷》 22호(2015년 9월호)를 읽으며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 말고 ‘사진읽기’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누구나 사진을 찍어요. 전문가나 작가뿐 아니라 ‘안 전문가’도 사진을 찍습니다. ‘취미’로도 사진을 찍고, 전문가도 아니요 취미도 아니라 하더라도 사진을 찍어요. 이를테면 시골 할매가 이녁 손자를 손전화로 찰칵 찍은 뒤 액정 화면으로 담습니다. 한 해에 두 차례 있는 큰 명절에만 손자를 만나더라도, 한 해에 두 차례 사진을 찍지요. 볼 때마다 새삼스레 크는 손자를 손전화로 찍는 시골 할매는 무척 많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시골 할매가 ‘도시에 사는 손자’를 그리면서 찍은 ‘손전화 사진’을 죽 그러모아도 무척 재미난 사진전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아무튼, 사진찍기는 오늘날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정주하 작가의 전시장에서는 관객들의 다양한 물음들이 제기됐다.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상동의 질문들은 현대미술을 다룬 전시장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질문들이다. (50쪽/최연하)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어떠한 대상을 재현하더라도 그것에 ‘예술’이라는 이름표만 붙여 주면 된다는 이들의 안일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한마디로 사진은 마음만 먹으면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109쪽/장정민)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까요?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을까요?


  쉬우면서도 어려운 물음이라 할 텐데,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문 사진가만 찍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전문 사진가만 값비싼 장비를 써서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서양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서 읽어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시골 할매가 이녁 손전화로 손자 사진을 찍듯이, 또 시골 할매가 손전화를 켤 적마다 이녁 손자를 손전화 화면에서 보듯이, 우리는 누구나 ‘사진찍기’하고 ‘사진읽기’를 늘 함께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새롭게 하나 물어 볼 노릇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2호에서 최연하 님이 쓴 사진비평에 나오는 말처럼, 전시장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하고 묻는다면, 전문 사진가와 전문 비평가는 ‘전문가 아닌 여느 사람’한테 사진읽기하고 사진찍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만할까요? 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고 언제 사진을 읽을까요?



별천지다. 찍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았지만 원칙적으로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다. 걸리면 벌금을 내고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바로 해고다. 거대한 작업 현장에서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온몸에 연장을 차고 마스크를 쓴 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폐쇄된 군대나 교도소를 떠올리게 한다. 길게 줄을 서서 2층으로 올라가는 사진이 대표적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선 줄이다. 2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려 15분간 밥을 먹고 다시 작업장으로 가는 데 20분이 걸린다. (75쪽/변해석)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을 받은 변해석 님이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동무를 사진으로 찍듯이, 참말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헤아릴 노릇입니다.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찍은 사진을 볼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변해석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못 알아보’거나 ‘못 알아차리’거나, ‘왜 찍었을까?’ 하고 물을까요? 아니면, 사진을 보는 동안 ‘이래서 찍었겠네’ 하고 느끼거나 이 사진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곧바로 고스란히 알아챌까요?




전세계 곳곳에서 초대받은 사진 관계자들은 아침마다 란린거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자유분방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커다란 전시장을 하나 빌려놓고 공무원 중심의 개막식과 테이프 커팅 세레머니 이후에 뒷풀이를 하고 헤어지는 폐쇄적인 한국의 사진축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90쪽/강제욱)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번쩍거리는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많은 한국이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작가로 뛰는 사진가가 제법 많고, 사진전시가 전국 곳곳에서 다달이 꽤 많이 열리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전시가 제법 많다고 하지만 막상 사진책은 한 달에 몇 권 못 나옵니다. 사진책이 어쩌다가 한 권 나와도 잘 안 팔립니다. 전문 사진가는 전문가답게 서양 철학과 이론에 맞추어 이녁 사진을 해석하거나 비평하는 길로 접어듭니다. 젊은 사진가는 젊은 사진가답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새롭게 떠도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기라는 장비를 빌어서 펼치는 아티스트 활동’을 합니다. 여기에 사진 동호인은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장비만큼은 누구보다 전문가답게 잔뜩 갖추어 ‘하이 아마추어’가 됩니다.


  삶으로 사진을 기쁘게 즐기는 사람은 뜻밖에 퍽 적습니다. 사랑으로 사진을 기쁘게 누리는 사람은 뜻밖에 꽤 적습니다. 꿈을 이루거나 펼치는 길에서 사진을 기쁘게 가꾸는 사람은 뜻밖에 참 적습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127쪽/최종규)




  우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달라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워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준다고 하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으로 하루를 즐겁게 누리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은 사진을 기쁘게 읽으’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면 돼요.


  ‘전문가처럼 잘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부질없습니다. 브레송을 흉내낸다든지 살가도 꽁무니를 쫓는 사진을 찍는 일은 덧없을 뿐입니다. 쿠델카나 아담스나 앗제나 카쉬 사진을 따라하는 듯한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가만히 사진으로 찍고 차분히 마음으로 읽으면 넉넉합니다.



1982년 울산에서 카메라를 처음 쥔 필자가 맨 처음 한 일은 서점으로 가서 사진잡지를 산 것이었다. (100쪽/진동선)


우리가 어떻게 (사진을) 만들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유명한 사진에서 액자를 걷어낸 것과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 ‘뭐지’ 하고 고민한 뒤에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사진도 거짓, 조작은 아닐까 의심한다. 우리는 묻는다. 사진은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과 같은 디지털 사진의 시대에 말이다. (121쪽/조야킴 코티스·아드리안 존데르거)



  글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나 시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글을 쓰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가나 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요리사나 쉐프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밥을 지으면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육아 전문가’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그저 ‘어버이’가 되면 돼요.


  이리하여,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사진찍기도 바로 오늘 하면 됩니다.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상업 스튜디오에서 견습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삶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으면 됩니다. 푼푼이 돈을 모아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꾸준히 장만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삶으로 가는 길이 기쁘면 사진으로 가는 길이 기쁩니다. 삶으로 가는 길을 꿈으로 여민다면 사진으로 가는 길도 꿈으로 여밀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내가 되어 내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너는 언제나 네가 되어 네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우리 스스로가 되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사진을 기쁘게 찍고 읽습니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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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었니, 사진아
테일러 존스 지음, 최지현 옮김 / 혜화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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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3



이 수수한 사진이 모두 사랑이었네

― 잘 있었니, 사진아

 테일러 존스 엮음

 최지현 옮김

 혜화동 펴냄, 2013.1.30. 13000원



  우리 집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 으레 고개를 빼꼼 내밉니다. 이러면서 “왜 나는 안 찍어? 나도 찍어 줘요.” 하고 묻습니다. 이 작은아이는 이른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노는데, 늦게 자고도 일찍 일어나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며시 사진기를 들어 찰칵 한 번 찍으면 어느새 눈치를 채고는 방실방실 웃으며 “또 찍어요. 더 찍어요.”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언제 저희를 사진으로 찍는지 압니다. 아버지가 빙글빙글 웃고 노래하는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즐거울 적에 사진을 찍으니, 아이들로서도 ‘아하, 우리 아버지가 즐거운가 보네. 그러면 사진 얼마든지 찍어야지.’ 하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자동차에 태우고 끌기. 이제는 가는 곳마다 할아버지를 태우고 다닐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느낀 그 기쁨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Sandy/23쪽)


우리를 돌봐 주던 할아버지가 계시던 때가 그리워요. 하지만 부디 걱정 마세요. 제가 여전히 여기서 할아버지의 꽃들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요. (Marisa/36쪽)



  테일러 존스 님이 엮은 사진책 《잘 있었니, 사진아》(혜화동,2013)를 찬찬히 읽습니다. 테일러 존스 님은 어느 날 문득 알아챘다고 합니다.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제나 이녁 곁에서 이녁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꾸렸구나 하고 알아챘다고 해요. 그래서 옛날 사진을 한 장 꺼내어 ‘오늘 이곳’에서 맞대면서 ‘우와, 지난날에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바라보았구나!’ 하고 느꼈다고 해요. 이리하여, ‘겹쳐서 찍는 사진 이야기’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아빠 엄마,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어요. (Ronnie/43쪽)


40년 전, 갓 결혼한 부모님은 사랑이라는 재산을 일구기 위해 저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 아버지가 지은 이 집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으로 채워졌지. 그 행복한 시간들은 영원히 우리 거야. (Fermec, 87쪽)



  겹쳐서 찍는 사진이란, 말 그대로 겹쳐서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 이곳은 액자처럼 바깥을 감싸는 틀입니다. 한복판에는 내가 예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또는 우리 어머니나 할아버지가 예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찍은 때’는 달라도 ‘찍은 곳’이 같은 사진을 살며시 겹치는 셈입니다. 아스라하다 싶은 시간이 흘렀어도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한 가지를 만나려고 하는 사진놀이인 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한결같이 흐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다만 한 가지 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더 없어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따사로운 마음인 사랑이 흐를 뿐입니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사랑이 흘러요. 사랑 아닌 다른 것이 흐르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옆에 계실 때는 햇볕이 훨씬 더 환하게 비췄어요. 작별 인사는 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 천국으로 가실 때 할머니의 따사로운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보고 싶어요, 할머니. (Ivan, 122쪽)


23년 전엔 이렇게 꼭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얼굴 보기도 힘드네요. 언니랑 오빠가 보고 싶네요. (Danae, 150쪽)




  사진책 《잘 있었니, 사진아》는 참말 사진한테 절을 해요. 꾸벅 허리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면서 불러요. “잘 있었니? 나도 잘 있었어.” 마흔 해 묵은 사진이 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스무 해 지난 사진이 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한 번 찍고 파묻는 사진이 아니에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틈틈이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오늘을 되새기고 앞날을 그리려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 이곳에 선 꿈을 찍고, 앞으로 이룰 꿈을 찍지요.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사랑을 찍고, 앞으로 이곳에서 가꿀 사랑을 찍습니다.



가끔은 자기 집 뒷마당에 앉아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마냥 즐길 필요도 있다. 내 아이도 그렇게 살기를. (Amy, 201쪽)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흔 해 남짓 앞서 찍은 사진을 오늘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로 달리던 두 젊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한집을 이루기로 했을까요. 마흔 살이 넘은 ‘아이’는 ‘앳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집 여덟 살 어린이와 다섯 살 어린이는 저희가 찍힌 두어 살 적 모습을 보며 새삼스럽다고 여깁니다. 저희가 어릴 적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를 사진에 비추어 새롭게 바라봅니다. 며칠 앞서 신나게 놀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오늘 바라보면서 며칠 앞서 그야말로 어떤 기쁨으로 신나게 놀았는가를 새록새록 아로새깁니다.


  노래가 흘러 사진이 됩니다. 노래가 빛나면서 사진이 됩니다. 노래가 어느덧 사진으로 거듭납니다. 노래 한 마디가 사진 한 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네 삶도 내 삶도 모두 노래입니다. 네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버이가 우리 모습을 수수하게 찍은 사진은 모두 노래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를 수수하게 찍은 사진도 한결같이 노래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4348.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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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쳐찍은 사진을 보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눈이 번쩍 하다가 사진을 찍은 당사자를 생각하니 뭉클하네요
제친구중 하나는 어릴적 부모님과 나들이때 가족과 찍은 그장소를 기억하여 자신의 아들,딸이 어린 자신의 나이와 얼추 비슷하겠다 싶어 그장소를 찾아가 가족사진을 찍어 옛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대조하여 블러그에 올렸던데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는 것을 체감하며 카메라를 누를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뭉클뭉클하네요!!

숲노래 2015-09-13 08:14   좋아요 0 | URL
자리는 같고
시간은 다르나
서로 아끼는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구나 하고 깨우쳐 주는
멋진 사진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보슬비 2015-09-1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런 스타일의 사진을 본적 있었던것 같아요. 참 재미있는 스타일이구나..생각했는데, 이렇게 겹쳐찍기를 해서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니 무척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보관함에 담아두고 천천히 도서관에 있나 살펴봐야할것 같아요. ^^

숲노래 2015-09-13 08:13   좋아요 0 | URL
아마 도서관에 있으리라 생각해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참으로 많아요.
아름다운 책입니다.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
고홍곤 지음 / 지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2015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아쉽게도 책방에 배본이 안 되었군요.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야 장만할 수 있을 듯합니다. (02-3272-2052)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9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

―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

 고홍곤 사진

 지누 펴냄, 2015.3.24. 20000원



  밤이 되면 달빛이 드리웁니다. 달빛은 마루를 지나 방으로도 부엌으로도 들어옵니다. 풀벌레가 고즈넉하게 노래하는 밤이면 언제나 달빛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잠이 듭니다. 다만, 시골집에서는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잠이 들지만, 도시에서라면 다르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달빛이 아닌 전등불빛이 퍼질 테고, 수많은 자동차가 밤새도록 비추는 불빛이 넘칠 테지요. 저 먼 별에서 찾아오는 별빛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여러 전자제품이 내뿜는 불빛이 가득할 테고요.


  요즈음은 전등불빛 아닌 달빛이나 별빛을 마주하면서 한밤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아닌 전등불빛에 기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한낮이든 한밤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 햇빛이나 햇살이나 달빛이나 별빛을 살피기보다는, 전등불빛을 살피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저는 늘 당신 안에서 돋습니다. 세찬 눈보라에도 당신이라면 맨발도 따뜻합니다. (10쪽)

솟구쳐 솟구쳐 촛불처럼 밝혀라. 환한 날들이 네 앞에 있음을. (12쪽)






  고홍곤 님이 2015년에 선보이는 ‘꽃 이야기’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지누,2015)를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지난 2006년에 《꽃, 향기 그리고 미소》를 처음 선보였고, 《꽃심, 나를 흔들다》(2007)와 《희망, 꽃빛에 열리다》(2009)와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2011)와 《굽이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2013)를 차곡차곡 선보였습니다. 2006년에 처음으로 ‘꽃 이야기’를 선보인 뒤, 홀수 해마다 사진전시와 사진책을 함께 내놓습니다. 앞으로 2017년에도, 2019년에도 새로운 꽃 이야기로 꽃내음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바람 속에도 우리는 웃어요. 웃어, 햇살 가득하지요. (22쪽)

당신의 음성은 사랑의 꽃별입니다. 별빛 달빛도 머물다 갑니다. (26쪽)





  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꽃이 핍니다. 바닷가에서는 바다꽃이 피고, 숲에서는 숲꽃이 피며, 멧골에서는 멧꽃이 피어요. 서울에서는 서울꽃이 필 테고, 부산에서는 부산꽃이 필 테지요.


  다만, 자동차와 사람이 빽빽하게 넘치는 곳에서는 꽃을 쳐다보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에는 따로 꽃집이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따로 꽃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굳이 꽃집을 찾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꽃잔치요 꽃내음이며 꽃누리인 터라, 모든 살림집이 ‘꽃집(꽃가게인 꽃집이 아닌, 꽃으로 이룬 집인 꽃집)’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자동차가 너무 싱싱 달리니 들꽃이나 길꽃이 제대로 자랄 겨를이 없습니다. 길가에서 하염없이 들꽃이나 길꽃을 들여다보면서 꽃내음을 맡을 틈이 없어요.


  그래도 도시에서 골목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꾸준히 늡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갈라진 자리에서 돋는 조그마한 풀포기와 꽃송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천천히 늡니다. 골목마을 이웃이 작은 꽃그릇에 작게 심어서 가꾸는 골목꽃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는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이 차츰 늡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에서 목돈을 들여서 서양꽃을 잔뜩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백만 송이에 이르는 국화나 장미나 튤립을 한곳에 몰아서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한 가지 꽃만 백만 송이나 천만 송이나 십만 송이를 심을 적에는 ‘다른 모든 들꽃’은 ‘잡풀’로 여겨서 마구 뽑아냅니다. 장미꽃잔치나 튤립꽃잔치나 국화꽃잔치를 벌이는 자리에서는 나팔꽃도 냉이꽃도 민들레꽃도 씀바귀꽃도 달맞이꽃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쑥꽃이나 부추꽃이나 봄까지꽃이나 소리쟁이꽃은 아예 생각하지 않아요.





햇살과 바람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52쪽)

손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으니, 늘 새로운 나날이여. (64쪽)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사진을 읽고, 글을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사진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붙입니다. 아니, 꽃을 찍은 사진마다 이야기가 한 타래씩 자랍니다. 꽃을 마주하는 동안에 사진을 한 장 얻고, 사진을 한 장 얻는 사이에 이야기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꽃한테 다가서는 동안 마음속으로 기쁜 숨결이 피어나고, 사진을 찍고 뒤돌아설 즈음 가슴속으로 기쁜 노래가 흐릅니다.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에 나오는 ‘사진말’을 꽃말이나 삶말로 여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는 말로 삼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고스란히 ‘사진말’로 느끼며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찍기에 사진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루를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찍습니다.


  “손을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을 때에 “늘 새로운 나날”인 줄 스스로 깨닫고, 이렇게 깨닫는 동안 꽃송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문득 단추를 눌러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를 듣다가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한 장이 거듭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 (88쪽)

손을 잡으면 따스합니다. 손이 또 손을 부릅니다. (113쪽)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입니다. 아이다운 놀이를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낮입니다. 하늘다운 꿈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저녁입니다. 냇물다운 사랑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밤입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함께하는 노래는 늘 가슴을 울립니다. (132쪽)

사랑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놓으면 삶은 감동입니다. (137쪽)



  시인은 시를 쓰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습니다. 어버이는 밥을 짓고, 아이는 뛰놉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노래하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밥을 지으면서 노래하고, 아이는 뛰놀면서 노래합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고, 숲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숲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지요.


  그러니,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찍을 적에 ‘내 노래’가 어떤 가락이거나 숨결인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사진책을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읽을 적에 ‘내 이웃이 부르는 노래’에 어떤 이야기와 꿈이 서려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아이도 꽃답고 어른도 꽃답습니다. 젊은 사람도 꽃답고 늙은 사람도 꽃답습니다. 스무 살 먹은 나무도 꽃을 피우고, 이백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도 꽃을 피웁니다. 작은 들풀도 꽃을 피우고, 무리지은 들풀도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꽃은 흙이 있어야 필 수 있습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립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니,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아서 꽃이 피면서 열매를 맺어요. 다시 말하자면, 흙이 있어야 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는 밥이 나오지 않습니다. 꽃을 볼 줄 알아야 밥을 헤아릴 수 있고, 꽃을 가꿀 줄 알아야 밥을 지을 줄 알며, 꽃을 아낄 줄 알아야 밥을 함께 먹는 이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곱고, 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리땁습니다. 우리 마음밭에서 피어나는 꽃이 반갑고, 깊은 숲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맙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꽃은 언제나 피고 집니다. 한국에서 겨울이 되어 꽃이 지면, 지구 맞은편에서는 여름이 되어 꽃이 핍니다. 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내음을 싣고 지구 맞은편으로 퍼지고, 지구 맞은편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냄새를 퍼뜨려 이 땅에 베풀어 줍니다.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사진꽃’을 피워서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4348.8.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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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맛 - 느낌 있는 사진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사진 강의
우종철 지음 / 이상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4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하는 맛

― 사진의 맛

 우종철 글·사진

 이상미디어 펴냄, 2015.8.10. 25000원



  사진 한 장은 아무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모든 것이 됩니다. 사진 한 장은 그저 한 장일 뿐이지만, 두고두고 바라보면서 어느 한때를 되새기는 밑바탕이 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놀다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내 뒤에 달라붙어서 “뭐야? 뭐야!” 하면서 쳐다봅니다. 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희가 예전에 어떤 모습으로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한테 안기며 놀았는지 되새깁니다. 아이들은 그저 노는 몸짓이었을 텐데,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자리에서는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사진찍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가 하면, 사진에 찍힌 모습을 들여다보면 ‘몸에 있는 눈’으로 볼 때하고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눈으로 보는 모습과 ‘다른 사람 눈으로 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달라요. 그러니, 아이들은 사진찍기가 재미난 사진놀이입니다.



대략 100년에서 150년 전에 나타난 이러한 경향(회화 모방)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다수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찍고 답습하는 사진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16쪽)


쿠델카는 자신의 사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떠나고, 사랑하고, 웃고, 우는 세상의 모든 모습들은 결국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32쪽)



  우종철 님이 빚은 《사진의 맛》(이상미디어,2015)을 읽습니다. 《사진의 맛》은 사진길에 접어들려고 하는 이웃님한테 베푸는 선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직 사진을 모르지만, 사진기를 손에 쥐고 신나게 사진놀이를 하고픈 이웃님이 사진을 노래하는 삶이 되도록 북돋우려고 하는 길잡이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에 적힌 말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이키 톤·미들 톤·로우키 톤’ 같은 말을 그냥 씁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런 영어는 오늘날 영어라기보다 한국사람 누구나 흔히 쓰는 ‘여느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톤’이든 ‘콘트라스트’이든 그냥그냥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맛》이라고 하는 책이 사진길로 가려는 이웃님한테 ‘사진을 즐겁게 찍자’고 노래하는 길잡이책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쉬우면서 부드러운 말씨로 풀어낸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어 아닌 한국말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어른 아닌 어린이한테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가르칠 적에 어떤 말을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초보 사진가들에게 있어 사진 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은 바로 사진기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느낌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고자 애쓰는 행위일 것입니다. 이 과정도 간단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과정이 지나면,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 것’이란 점을 이해하고 그러한 세계에 좀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45쪽)


대상을 보고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가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이게 하는 톤을 미리 결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76쪽)



  사진찍기는 사진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찍기는 ‘사진기를 다루는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연필을 다루는 일’이나 ‘자판을 다루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진찍기를 할 적에는 ‘사진기를 알맞게 다루기’는 해야 하지만, 굳이 사진기를 남달리 다루기까지는 안 해도 됩니다. 북을 치는 이가 북채를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서 북을 칠 수 있듯이, 글을 쓰는 이가 연필을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서 글을 쓸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재주는 잔재주라고 합니다. 잔재주는 잔재주로 다른 사람 눈길을 끌 터이나, 이러한 잔재주는 사진이나 글이 나아가는 밑바탕이나 기쁨은 아니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사진을 배우려고 한다면 사진을 배우면 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면 사진을 찍으면 돼요.


  ‘잘 찍은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남한테 자랑할 만한 ‘멋진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스스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면서 놀 수 있으면 되어요.



주 피사체에 항상 초점이 맞아야 한다는 정해진 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03쪽)


순수하게 사물을 보는 연습의 전 단계로 우선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을 찾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뭔가 동요하는 자신의 느낌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136쪽)



  《사진의 맛》이라는 책에서도 다루는데, 틀에 박힌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주 피사체’이든 ‘찍히는 어떤 것’이든 꼭 초점이 맞아야 하지 않습니다. 황금률 구도를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고, 뛰어난 구도를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는 사진을 찍는 일일 뿐, 멋지거나 빈틈이 없는 구도를 찾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고, 많이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빛을 예쁘게 맞추지 않아도 괜찮으며, 어둡거나 밝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흐른다면 다 괜찮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하고 사진을 읽는 너하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웃음꽃을 피울 만한 이야기가 흐른다면 모두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랑 사진을 읽는 너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픔이나 아픔을 달랠 만한 이야기가 서린다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진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진으로, 그림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157쪽)


사진 찍기에 좋은 대상은 결국 내 주변 가까이에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180쪽)


사진의 출발은 잘 아는 것, 익숙한 것,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고 찍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187쪽)




  사진을 찍는 맛이란, 삶을 짓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이야기를 빚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사랑을 노래하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꿈을 꾸는 맛입니다.


  이리하여, 사진기 한 대를 손에 쥐면서 무엇이든 사진 한 장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찍을 사진이란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사진이 되고, 어떤 삶이든 사진이 됩니다. 부자인 삶도 가난한 삶도 모두 사진이 되어요. 이름난 예술가도 이름이 안 난 시골 할매도 모두 사진이 되지요. 갓난쟁이도 어린이도 어른도 사진이 됩니다. 몽골이나 티벳도 사진이 되고, 일본이나 중국도 사진이 되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에는 ‘흔한 소재’나 ‘아무것 아닌 주제’가 없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찍는 이야깃감이어도 재미난 사진이면서 놀라운 사진이 됩니다. 아무도 안 찍는다고 하는 소재나 주제도 얼마든지 사랑스러우면서 멋진 사진이 되지요.



흔히 사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력 없이 육체적 시각에 의존해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초보적이고 제한적인 사진 행위입니다. (249쪽)


어떤 경우 작품을 보고 작가의 지인들이 “너답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나답다.’라는 것은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솔직했다는 반증입니다. (327쪽)



  나는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합니다. 두 장도 백 장도 아닌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합니다. 공모전에 뽑힌다거나 어떤 상을 받은 사진이 아닙니다만, 우리 아이들이 바람 따라 물결치는 논둑에 서서 바람노래와 풀노래를 한껏 마시는 모습을 찍은 한 장으로 삶을 노래합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오늘 찍은 사진’은 어느덧 ‘어제 찍은 사진’이 되면서 우리 삶을 새삼스레 되짚는 이야기밭이 됩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날’에도 기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어제로 흐르고, 오늘은 다시 앞날로 흐르며, 오늘과 어제와 앞날은 사이좋게 만납니다.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언제나 젊으면서 기쁩니다.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언제나 춤추면서 꿈꿉니다.


  사진은 어떤 맛일까요? 사진은 내가 바라는 맛입니다. 슬픈 날에는 슬픈 맛이 나는 사진이고, 기쁜 날에는 기쁜 맛이 나는 사진이에요. 맑은 날에는 맑은 맛이 나는 사진이다가, 흐린 날에는 흐린 맛이 나는 사진이지요.


  늘 달라지면서 늘 새롭게 거듭나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 하나를 마주하면서 고요히 생각에 젖습니다. 참으로 사진 한 장이 고맙습니다. 《사진의 맛》을 읽는 ‘사진이웃님’ 누구나 마음에 담을 이야기꽃을 곱게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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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2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도서관’이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보관

 로라 립먼·마빈 하이퍼만 글

 하워드 그린버그 엮음

 박여진 옮김

 윌북 펴냄, 2015.3.30. 25000원



  요즈음 ‘사람책’이라는 말이 차츰 퍼집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책’입니다. 종이로 빚어야만 ‘책’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오롯이 ‘책과 같다’는 뜻입니다.


  종이로 빚은 책을 내놓을 때에만 ‘작가’이지 않습니다. 연필을 손에 쥔 적이 없고, 교사나 교수나 강사가 되어 본 일이 없더라도, 아이들한테 삶을 이야기로 물려준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온 삶으로 사랑을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고스란히 보여준 사람도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작품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나 문화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만 작품일까요? 전시회를 하지 않거나 책을 내지 않더라도, 온몸이 고스란히 ‘작품’과 같아서, 호미질을 하는 손놀림이나 밥을 짓는 손놀림이나 바느질을 하는 손놀림이 한결같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바로 ‘사람책’을 찍습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 하고 느낄 만한 모습을 보면서, 사진기를 찰칵 눌러서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책’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마이어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는 보는 이들마다 달라진다 …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9쪽/로라 립먼)



  비비안 마이어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윌북,2015)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비비안 마이어 님이 엮지도 않았고, 비비안 마이어 님이 뜻하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날부터 늙어서 죽는 날까지 늘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몸에 품고 살던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책인데, 비비안 마이어 님이 ‘한뎃잠’도 자다가 ‘돈이 없어서 애먹’기도 하다가, 그만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이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고 해요.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는 380달러에 30만 장에 달하는 네거티브 필름과 소지품들을 구매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그녀의 삶이 남긴 무런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 실제로 마이어의 작품은 무엇일까? 생전에 마이어는 자신의 작품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40, 41쪽/마빈 하이퍼만)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라는 사람은 380달러에 30만 장에 이르는 필름과 온갖 물건을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죽음을 앞두고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을 모두 빼앗겨야 한 비비안 마이어 님 손에는 ‘돈 몇 푼’이 흘러갔을까요? 아마 한푼조차 안 갔을 테지요. 경매에 넘겨졌다고 하니까, 코앞에서 이녁 모든 것이 갑자기 이슬처럼 사라지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갔겠구나 싶습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380달러에 필름 30만 장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도 아주 많다고 하니까(자그마치 컨테이너 다섯 대 부피), 10달러에 필름 1만 장을 산 셈입니다. 마흔 해 넘도록 바지런히 찍은 사진을 단돈 몇 푼에 빼앗긴 비비안 마이어 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존 말루프 님은 인터넷경매로 ‘비비안 마이어 사진’을 팔려고 했다는데(팔았는지 안 팔았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진 한 장마다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이를테면, 오드리 햅번을 찍은 사진은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특별하고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마이어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할 때 독특한 차림새나 걸음걸이도 자주 언급하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그녀의 목에 언제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 아이들에게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경로를 보여주기 위해 도축 조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자필 서명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동네 공원이나 해변에 소풍을 가거나, 민주당 전당 대회 기간에 열린 대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현장에도 데리고 갔다고 한다. (18, 20쪽/마빈 하이퍼만)




  내가 찍는 사진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이 아이들한테서 밝게 피어나는 눈부신 한때를 즐겁게 아로새깁니다.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고, 그 다음에 사진으로 옮깁니다. 언제나 마음에 기쁘게 담은 뒤에 사진으로도 가볍게 옮깁니다.


  사랑으로 짓고 싶은 하루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마음도 사랑이 됩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눈빛도 노래처럼 흐릅니다.


  스스로 사랑일 때에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스스로 노래일 때에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슬프기에 슬픈 빛이 어리는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아프기에 아픈 넋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사진책에 실린 비비안 마이어 님 사진은 모두 ‘비비안 마이어 님 삶’입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든, 비비안 마이어 님한테는 사진기를 목걸이로 삼아서 어디이든 마음껏 누비고 다니는 삶이 바로 기쁨이요 노래요 사랑이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낳지 않았으나 비비안 마이어 님이 돌보는 아이들을 이끌고 도축장에 가거나 전시장에 가거나 골목길을 다니는 동안에도 사진기는 늘 비비안 마이어 님 목에 걸렸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삶을 읽고, 손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누비고, 기쁨으로 사진을 빚습니다.




마이어가 열심히 모았던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마이어는 세실 비튼부터 토마스 스트루스에 이르기까지 사진가에 관한 논문을 포함해 수천 권의 책들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유명인사의 사인이 든 사진, 야구 카드, 모조 보석, 정치 홍보용 배지, 우표, 라이터, 구둣주걱, 병따개 등도 수집했다 … 갱단 기사부터 케네디에 관련된 기사, 상담을 해 주는 디어 애비 칼럼, 현대 사진전 리뷰 같은 기사들을 발췌해 모았다. 그 분량이 파일 수백 권에 달했다. (22쪽/마빈 하이퍼만)



  우리는 누구나 ‘도서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책’이면서 ‘사람도서관’입니다. 둘레에 이야기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들려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저 온몸으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슬기로운 삶을 환하게 밝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책이면서 도서관입니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라고 하는 분은 이녁 두 손에 사진기를 쥐면서 ‘온몸과 사진으로 삶을 적바림하는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비비안 마이어 님이 빚은 사진을 두루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수많은 모습’이 드러나고, ‘사람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는 일과 놀이’가 나타나며, ‘사람이 사랑과 꿈으로 짓는 이야기’가 애틋하게 흐릅니다.




대다수 사진가들이 안전하게 최상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같은 대상을 다양한 구도로 여러 장 찍는 데 반해 마이어는 관심이 있고 눈에 들어온 피사체를 단 한 장만 찍었다 … 그녀가 찍은 도시 풍경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겠다거나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만들겠다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계속 직면하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그녀 자신의 욕구였다. (26, 30쪽/마빈 하이퍼만)



  아마추어나 프로를 따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겨야 비로소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이라고 하는 삶은 몇몇 사진가로 뭉뚱그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림이나 노래나 글도 이와 같아요. 몇몇 뛰어나다거나 놀랍다고 하는 화가나 가수나 시인 같은 사람들로 뭉뚱그릴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수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이요 소설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가입니다. ‘작가’,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우리는 모두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지어서 이 “삶 사랑”을 이야기로 새롭게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을 적에 ‘같은 모습’을 굳이 여러 눈길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여러 눈길로 찍으며 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한 장만 찍어도 이야기꽃이 피어나니, 애써 여러 눈길로 찍지 않아도 됩니다. 둘레를 휘 살피면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가 흘러넘칩니다. 한곳에 고일 겨를이 없습니다. 나비처럼 춤추는 몸짓으로 이곳저곳 사뿐사뿐 즐겁게 웃으며 돌아다니면서 사진꽃이 핍니다.


  삶꽃을 피우듯이 사진꽃을 피우고, 사진꽃을 피우기에 사랑꽃이 피며, 사랑꽃은 이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은 어느새 사람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말없이 들려주거든요.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조용히 알려주거든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숱한 사진을 빌어서 말하자면, 사람은 노래이고 춤이고 빛이고 고요이고 웃음이고 눈물이고 사랑이다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 한마당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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