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의 저녁
오규원 지음 / 눈빛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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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6



글밭이 텃밭으로 바뀌는데

― 무릉의 저녁

 오규원 글·사진

 눈빛 펴냄, 2017.2.2. 25000원



문득, 노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문득 어디선가, 빛이라든가 어둠이라든가 나무라든가 돌멩이라든가 문이라든가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러한 것들이 노래를 듣고 싶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쪽)



  시를 쓰는 오규원 님이 사진을 찍으며 사진말을 펼칩니다. 이녁 삶자리에서 바라본 시골 이야기를 사진으로 살포시 담고, 이 사진에 맞추어 이녁이 살아온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무릉의 저녁》(눈빛,2017)은 이녁 스스로 가장 느긋하면서 넉넉한 마음이 되는 삶자리에서 사진하고 글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랫동안 글하고 책으로만 새로운 글을 쓰는 살림을 이었다면, 이제는 땅하고 하늘을 마주보는 자리에서 새로운 글을 쓰는 살림이라고 합니다. 글하고 책만 보면서 글을 쓸 적하고, 땅하고 하늘을 보면서 글을 쓸 적은 사뭇 다르겠지요.


  모를 노릇일 텐데, 시인 할배가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본다면 이때에도 사뭇 달라지겠지요. 글하고는 매우 다르고 책하고도 무척 동떨어진 새로운 자리를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겠지요.


  다만 《무릉의 저녁》을 보면 글치레처럼 사진치레를 하려는 손길이나 눈길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힘을 잔뜩 들인다고 해서 더 나은 글이 되지 않습니다. 멋을 부린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글밭이 아닌 텃밭을 만나듯이, 살구 대추 감 상추 쑥갓 호박 옥수수를 만나듯이, 흙을 만날 적에는 흙내음이 나는 낱말을 가려서 흙내음이 나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으면 한결 투박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8.1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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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강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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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5


옛 서울 냇가로 마실을 가다
― 시간 속의 강
 한영수 사진
 한선정 엮음
 한그라픽스 펴냄, 2017.5.1. 4만 원


  여름에 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 같은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일손을 쉬고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이와 달리 여름에도 여름 휴가를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좀처럼 여름 휴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살림이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은 따로 여름 휴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짐승을 치는 분이라면 언제나 짐승 곁에 머물며 짐승을 돌보아야 합니다. 논밭을 가꾸는 시골지기도 논밭 곁에서 지내지요.

  이 여름날에 사진책 《시간 속의 강》(한그라픽스,2017)을 읽습니다. 한영수문화재단에서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입니다. 어느덧 세 권째 나오는 한영수 님 사진책이에요. 첫째 권 《Seoul, Modern Times》가 2014년에 나왔고, 둘째 권 《꿈결 같은 시절》이 2015년에 나왔습니다. 셋째 권인 《시간 속의 강》이 2017년에 나오는데, 세 사진책은 지나온 우리 삶을 서울이라는 고장을 바탕으로 삼아서 보여줍니다. 이제 사진으로 남은 아득한 옛 살림을 보여주지요.

  《시간 속의 강》은 1950∼60년대라는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여줍니다. 이 물줄기는 서울이라고 하는 터전에서 한강이라는 시간과 발자국과 사람과 마을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시간 속의 강》에 나오는 한강 둘레는 참말로 어느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요 냇가이며 살림자리일까요? 사진 밑에 1950년대 어느 해라든지 1960년대 어느 해라는 말을 안 붙인다면 도무지 떠올리기 어려운 서울 한강 모습이지 싶습니다. 노들섬 뚝섬 마포 한남동 같은 이름을 안 붙인다면 그곳이 참말로 그곳이 맞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서울 한복판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을 떠올리던 분들조차 머리에서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이 얼어붙은 날 얼음을 켜서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내다 팔려고 끌고 가는 일을 하던 분들조차 다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즈음 한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분은 없겠지요? 그런데 1950∼60년대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엄청나게 큰 얼음을 톱으로 켜서 썼대요. 게다가 이 얼음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실었어요.

  한강 얼음에 소수레입니다.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할 뿐 아니라,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한강에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서 햇볕을 쬘 뿐 아니라, 물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한강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한강을 옆에 끼고 살림집을 짓습니다. 어른들은 물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물에서 놉니다. 한강물 곁에서 마을을 이루어 삽니다. 한강을 어여쁜 냇가로 여기면서 이웃하고 사귀고 동무하고 어우러져요.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모래밭을 밟아요. 냇가에서 풀내음을 마시고 새소리를 들어요.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테지만, 이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스러운 기운을 듬뿍 먹으면서 아이들이 자랐다고 합니다.

  이제 서울이라고 하는 고장은 어마어마한 개발로 옛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울에서 풀집이나 논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궁터나 성터는 남고, 기와집도 조금 남지요. 빨래터나 우물터나 대장간이나 길쌈터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버드나무 그늘에서 멱을 감던 일은 그야말로 사진에나 남겨진 모습이 될 만합니다. 뱃사공이 길손을 실어 나르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모습으로 사진에만 겨우 새겨진 자국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서울도 예전에는 시골과 같았다고 해요. 서울도 얼마 앞서까지는 시골스러웠다고 해요. 서울에서 다른 고장으로 여름 나들이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해요. 서울에서는 한강에서 여름을 나고 여름을 누리며 여름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한강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찻길을 걷어내고서 이곳에 다시 모래밭이 펼쳐지도록 바꿀 수 있을까요? 앞으로 서울사람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밭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켜거나 얼음지치기를 할 날을 새삼스레 맞이할 수 있을까요? 흐르는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여름에 시원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떠나지 못하신다면, 어여쁜 물줄기하고 모래밭이 눈부신 한강을 사진으로 만나는 《시간 속의 강》을 곁에 두고서 펼쳐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서울에도 한때 멋스럽고 신나는 물놀이터가 있은 줄, 누구나 걸어서 여름과 겨울을 누리던 냇물하고 냇가가 있은 줄 되돌아봅니다. 2017.8.4.쇠.ㅅㄴㄹ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보내 주셨습니다. 고맙게 싣습니다 *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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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는 눈 -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다큐멘터리 인물그림책
바브 로젠스톡 지음,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최종규 추천 / 책속물고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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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4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다
―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바브 로젠스톡 글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7.5. 12000원


  옥수수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옥수수싹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러했습니다. 수박이나 수세미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해바라기나 민들레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벼나 밀을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수박싹도 수세미싹도 해바라기싹도 민들레싹도 벼싹도 밀싹도 알 길이 없어요.

  씨앗에 실 같은 뿌리가 내리면서 조그마한 싹이 터서 올라옵니다. 어린 싹을 모르면 그냥 밟고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옥수수싹이든 밀싹이든 풀싹이든 뭐가 뭔지 모르니까요. 꽃이 핀 모습을 보고는 참으로 곱다고 말하더라도, 꽃이 피기까지 어떻게 싹이 오르고 줄기가 솟으며 잎이 돋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그 이쁜 꽃이 새싹이던 무렵 그만 밟아서 죽일 수 있어요.


도로시아는 눈이 남달랐어요.
잿빛이 도는 초록 눈동자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2쪽)


  풀싹을 보는 눈이란 이웃을 보는 눈입니다. 풀싹을 눈여겨보는 마음이란 이웃을 눈여겨보는 마음입니다. 겉모습을 훑는다고 해서 이웃을 알 수 없어요. 옷차림을 살핀다고 해서 이웃을 알 길이 없지요.

  예부터 이런 일이 있어요. 먹을거리가 없는데 애먼 불을 땐다고 하지요. 굴뚝에 연기가 솟게 한다잖아요. 밥을 하지도 않는데 불을 때어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도록 한다고 해요.

  얼핏 보기로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니 ‘저 집은 끼니마다 밥을 잘도 먹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속으로 헤아리는 눈이 있다면 ‘틀림없이 저 집에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을 텐데 어떻게 연기가 나오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보고서 지나치는 사람이 있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는 믿을 수 없기에 슬그머니 이웃집을 들여다보거나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웃을 보는가요? 우리는 어떤 몸짓으로 이웃한테 다가서는가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이웃을 마주하려는가요?


도로시아는 어릴 때부터 얼굴을 좋아했어요.
뺨이 둥그런 엄마와 턱이 모난 아빠,
입술이 오므라든 할머니,
콧방울이 도톰한 동생까지
가족 얼굴을 가만히 지켜봤지요.
얼굴을 보노라면,
그 사람을 껴안는 느낌이 들었어요. (3쪽)


  바브 로젠스톡 님이 글을 쓰고, 제라드 뒤부아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책속물고기,2017)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이면서 사진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사진책이면서 그림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이야기책이면서 삶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그림책입니다. 줄거리로는 사진책입니다. 사진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그림으로 담은 흐름을 가만히 살피면,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마음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살뜰합니다.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 삶을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사진가로서 어떠한 사랑으로 삶을 마주할 적에 사진을 기쁘게 찍을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병은 나았지만, 도로시아는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절뚝거리는 도로시아를 놀려댔지요.
도로시아는 꼭꼭 숨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지요. (6쪽)


  더 살펴본다면 이 그림책은 위인전일 수 있어요. 사진이라는 길에 깊고 너른 발자국을 남긴 훌륭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가를 다룬 위인전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위인전이 아닐 수 있어요. 오늘 우리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톺아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참말 훌륭한 일을 했구나 하고 높이 살 수 있습니다만,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사진 역사’를 이루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사회를 바꾸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도 않았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사랑하려는 손길로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하는 삶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우리가 훌륭하게 여기거나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사진에 깃든 마음과 사랑이 따스하면서 넉넉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고, 결혼해서 새 가정도 꾸렸어요.
겉으로는 마음 느긋하게 사는 듯이 보였지요.
그렇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어요.
‘나는 왜 눈과 마음으로 사진을 찍지 않을까?’ (16쪽)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면 누구나 사진을 찍지요. 그런데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비록 사진기를 손에 쥐었어도 궂거나 밉거나 나쁘거나 모진 마음을 품는다면, 이녁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멋지거나 값진 기계를 손에 쥐었기에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델이나 피사체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두 이웃이에요.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가 ‘사진으로 찍힐 사람’을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적에, 한 걸음 나아가서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를 둘러싼 이웃을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으로 손을 맞잡을 적에, 비로소 사진다운 사진 하나를 얻는다고 느껴요.

  아무나 못 찍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그리는 그림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부르는 노래요 아무나 못 추는 춤이지 싶어요. 왜냐하면 먼저 마음으로 바라볼 노릇이거든요. 마음으로 바라본 뒤에는 사랑으로 품을 노릇이고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이 사진기만 쥔다면 빈 껍데기만 쏟아낼 뿐이에요. 마음과 사랑으로 사진을 안 찍고 포토샵만 만진들 멋지거나 놀라운 모습이 나올 수 없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쓰는 글은 우리 가슴을 적시거나 울리지 못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가락이나 박자나 음정이나 …… 이런 잔솜씨만 잘 맞춘다고 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되지 않아요. 잔솜씨만 그럴듯해 보인다고 해서 춤이라고 하지 않아요.


도로시아는 사진기를 들고 세상을 두루 살폈어요.
아버지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들판에서 쉬지 않고 일했어요.
어머니들은 천막에서 목마르고 아픈 아이들을 돌봤지요.
어떤 가족은 먼지 폭풍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낡은 자동차에서 살았어요.
도로시아는 절뚝거리며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사진에 낱낱이 담아냈어요.
세상이 등 돌린 사람들을 마음으로 되새기고 싶었지요. (21쪽)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은 책이름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을 보는 눈이기에 참을 그립니다. 참을 마주하는 눈이기에 참을 옮깁니다. 참을 바라보는 눈이기에 이웃이 겪거나 치르거나 마주하는 모든 슬픔과 응어리와 아픔과 고단함을 내 몸으로도 받아들입니다.

  참된 눈에서 참된 사진이 태어나요. 참다운 손끝에서 참다운 사진이 태어나요. 참된 몸짓에서 참된 사진 한 장이 태어나요. 참다운 사랑으로 찍는 손길이기에 참다운 사진 한 장을 찍어서 우리한테 보여줄 수 있어요.

  사회가 등을 돌리고 정부가 등을 돌린 사람들한테 마음으로 다가선 도로시아 랭 님입니다. 이웃으로서 다가갔지요. 동무로서 마주보았지요. 이웃으로서 손을 잡았어요. 동무로서 어깨를 겯었어요.

  꾸미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데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덧바르지 않습니다.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데 덧발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웃이 살림하는 하루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이웃이 느끼는 슬픔을 사진으로 싣습니다. 이웃이 고단해 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을 가만히 사진으로 드러냅니다.


도로시아는 꾸준히 사진에 진실을 담아냈어요.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는 진실, 서로가 서로를 살펴야 한다는 진실을요.
그렇게 도로시아는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24쪽)


  나무는 모든 것을 사람한테 내어줍니다. 열매도 땔감도 줍니다. 몸뚱이를 통째로 주어 집을 짓도록 해 줍니다. 책상이나 걸상이 되어 줍니다. 연필이나 책이 되어 줍니다. 나무가 숲으로 우거질 적에는 싱그러운 바람을 사람한테 주지요. 마당에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그늘을 베풀 뿐 아니라, 드센 비바람을 막아 주기까지 해요. 이러면서 온갖 새가 찾아드는 보금자리 구실을 해요. 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두는 사람은 맑은 새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어요. 더욱이 나무는 작은 애벌레도 품에 안아서 나비가 깨어나는 자리도 되어요.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멋진 나비 춤사위까지 만나요.

  《진실을 보는 눈》이라는 그림책은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이 바로 나무와 같은 품을 보여주었으리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나무 같은 숨결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도로시아 랭이라고 할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든 다 좋습니다.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진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손에 없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로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우리는 늘 마음으로 먼저 사진을 찍어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마음에 새기지요. 마음으로 담은 사진을 마음으로 나누고요.

  어느 모로 본다면 도로시아 랭 님은 다큐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오롯이 사진가입니다. 살가운 이웃입니다. 반가운 벗입니다.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하늘 같은 사랑이에요. 2017.6.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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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엄상빈 지음 / 눈빛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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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2


쇠가시울타리 걷어낼 평화를 바랍니다
―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
 엄상빈 사진
 눈빛 펴냄, 2017.4.3. 4만 원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인천 바다를 늘 바라보았습니다. 살던 집이 바닷가 코앞이기도 해서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고, 일부러 바닷가 쪽을 걷기도 했습니다. 동무네에 놀러가는 길에 바닷길을 따라 달리거나 걷곤 했어요.

  다만 인천 앞바다는 고기잡이배보다 짐배가 훨씬 많습니다. 인천에 있는 수많은 공장으로 갈 원료나 자재를 싣는 짐배라든지, 고속도로를 거쳐서 서울로 보낼 물건을 실은 짐배가 으레 인천 앞바다로 찾아옵니다.

  언제나 바다 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나날이었지만, 언제나 바닷가로는 쉽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쇠가시울타리, 이른바 철조망이 빼곡하거든요.


1960년대 후반 바닷가에 처음 등장한 군경계 시설물은 ‘흔적선 끌기’였다. 모래밭을 써레질하듯 평평하게 밀어 놓음으로써 밤사이 침입자의 발자국 등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섬뜩한 불빛이 수 킬로미터나 나가는 ‘서치라이트’라 부르던 탐조등도 등장했다. 그 다음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케 하는 ‘목책’이 생겨났고,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의 ‘철조망’이 등장했다. (사진가 말)


  어릴 적에 ‘철조망’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 ‘철조망’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머리통이 굵은 뒤에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철조(鐵條)’는 “굵은 쇠줄”을 가리키고, ‘망(網)’은 “그물”을 가리키는 줄 알았어요. 쇠줄로 엮은 그물이래서 ‘철조망’인 셈인데, 바닷가에서 본 ‘쇠줄로 엮은 그물’은 그냥 쇠줄로만 엮은 그물이 아니라 손이라도 댈라치면 뾰족한 쇠가시에 찔리거나 긁혀서 다치는 ‘쇠가시로 높이 쌓은 울타리’였어요.

  다른 고장에서는 인천 앞바다를 으레 똥물이라고 놀렸습니다. 인천 앞바다는 물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커다란 발전소이며 화학공장이며 유리공장이며 온갖 공장이 가득한 인천이니까요. 더욱이 서울에서 버리는 쓰레기물이 물줄기를 타고 인천 앞바다인 ‘황해(서해)’로 흘러들고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바다는 틀림없이 바다요, 밀물썰물이 오가며 드러나는 어마어마한 갯벌이며 물결이 퍽 놀라워서 이 바다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바라보고 싶건만, 쇠가시울타리가 없는 데란 없을 만큼 빽빽했어요. 어디에서도 제대로 바다를 보기 어려웠어요.


철조망은 한때 녹슬고 삭아서 기둥만 남을 정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에 따라 더욱 튼튼한 모습으로 규모와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철조망의 변모는 당시의 통치이념이나 남북 관계의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했다. 철조망에 내걸린 문구도 ‘접근하면 발포함’ ‘접근금지’와 같이 군사정권다운 위협적이로 일방적인 명령어였다. 오후 6시만 지나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제구역으로 바뀐 채 밤을 맞았다. (사진가 말)


  사진가 엄상빈 님이 긴 나날에 걸쳐서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바닷가에서 마주한 삶을 담아낸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눈빛,2017)을 읽습니다. 경계에서 또 하나 더 있는 경계는 분단이고, 이 분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쇠가시울타리였다고 합니다.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깃든 사진을 보면서 제가 어릴 적에 인천 앞바다에서 수없이 보던 그 쇠가시울타리뿐 아니라, 곳곳에 많은 경계초소를 떠올려 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끝없는 울타리 사이사이에 있는 경계초소를 가리던 ‘소나무’를 새삼스레 떠올려 봅니다. 가만히 되새기니, 경계초소나 쇠가시울타리를 가리려고 강원도뿐 아니라 온 나라 곳곳에서 소나무를 베거나 뽑아다가 바닷가에 줄줄이 두었구나 싶어요.

  엄상빈 님이 책끝에 ‘사진가 말’로 붙이기도 했는데, 강원도 바닷가뿐 아니라 인천 바닷가에서도 ‘탐조등’이 바닷가를 밤마다 비추곤 했습니다. 이 불빛이 얼마나 센지 몰라요. 얼굴에 이 불빛을 맞으면 눈이 멀까 싶도록 따갑고 뜨겁습니다. 눈을 못 뜨지요.

  어릴 적에 동무네 집에 놀러가려고 일부러 바닷길을 따라서 걸으면 으레 무섭게 생긴 어른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인천 바닷길이라고 해도 모든 바닷길은 쇠가시울타리로 막혔으니 이 쇠가시울타리를 손으로 슬슬 만지거나 긁거나 스치면서 걷는데, 사람 발길이 없는 바닷길에 갑자기 낯선 어른이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서 이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지 말라고 윽박지르지요.

  그때에는 왜 갑자기 낯선 어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나 바닷가 쇠가시울타리에는 빈 깡통이라든지 뭔가 길게 이어지기 마련이에요. 제가 동무네 집에 가는 길에 심심하기도 하고 바다를 보며 걷다가 얼결에 자꾸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니, 또 빈 깡통을 나뭇가지로 톡톡 두들겨 보기도 하니, 군부대 경계초소로 ‘어떤 신호’가 갔겠지요. ‘아이들 장난’을 마치 ‘간첩이나 북한군이라도 넘어온 일’이 터진 듯 여겼겠지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성화 봉송 때는 ‘자연보호 The Preservation Nature’라는 거짓문구를 붙이는가 하면, 7번 국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경계초소를 감추느라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다 가려 놓기까지 했다. 이는 성화 봉송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지나가는 한순간을 위해 이런 식으로 베어진 소나무는 동해안만 해도 수만, 수십만 그루였으리라 짐작된다. (사진가 말)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흐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쇠가시울타리는 누구를 누구한테서 지키는 구실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끝도 없이 이은 쇠가시울타리를 따라 시멘트로 쌓은 경계호와 경계초소는 누가 누구를 지켜보거나 막으려고 한 자리였을까 궁금합니다.

  ‘개구멍’이라고 하는, 쇠가시울타리 한쪽을 자그맣게 잘라내어 마련한 구멍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슬그머니 드나들고, 마을 아이들이 살짝살짝 드나들지요. 저는 어릴 적에 쇠가시울타리를 잘라내어 구멍을 낸다는 생각은 못 했고, 어딘가에 개구멍이 있으리라 여기며 한참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서 찾아보곤 했어요. 개구멍이 난 자리로 몰래 들어가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놀고 싶었거든요.

  애써 개구멍을 찾아내도 오래 드나들지는 못 합니다. 어느 날 이 개구멍이 거친 손길로 막혀요. 그러면 다른 개구멍이 있나 찾아보고, 다른 개구멍을 찾아내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살그마니 들어갑니다. 어느 날은 몇 시간째 이리저리 살펴도 개구멍이 없어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만, 개구멍을 내려는 마을 어른하고 개구멍을 막으려는 군인 사이에서 고단한 실랑이가 늘 도사렸지 싶어요.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를 보면 쇠가시울타리에 오징어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고, 빨래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는 모습이 고즈넉하면서 부드러이 흘러요. 두려움이 없달까요, 무서움이 없달까요. 그러나 마을사람들 살림을 돌아본다면 쇠가시울타리에 돋은 뾰족뾰족한 쇠가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 없이도 착하고 정갈하며 곱게 살아가는 수수한 마을사람은 쇠가시울타리나 시멘트 담벼락이 없어도 도란도란 이웃사랑을 나누는 살림이에요. 총칼로 지키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누는 삶입니다. 뾰족한 쇠가시로는 지키지 못하는 평화요,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이웃사랑으로 지키는 평화입니다.


7번 국도변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보아 온 낯익은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넝쿨을 키우고 때로는 빨래나 오징어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 이 구조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가 말)


  이제 우리는 안보가 아닌 평화를 헤아릴 때를 맞이했다고 봅니다. 선거철만 되면 ‘안보 팔이(안보 장사)’를 하며 나라를 ‘빨갛게’ 물들이려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런 안보 팔이와 전쟁 팔이는 그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쇠가시울타리는 인천 앞바다를 비롯한 황해 바닷길을 따라서도 끝없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가둔 쇠가시울타리라고 할 만해요. 적한테서 우리를 지키는 쇠가시울타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 쇠가시울타리에 갇힌 얼거리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경계초소로 평화를 지키겠노라 하는 몸짓은 이제 끝내야지 싶어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저쪽보다 더 세거나 더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갖추어서 이쪽이 평화롭겠노라고 윽박지르는 몸짓은 이제 멈추어야지 싶어요. 남북녘 살림을 살펴보면, 북녘이든 남녘이든 전쟁무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사람과 품을 바치느라, 막상 북녘도 남녘도 좀처럼 평화롭지 않고 넉넉하지 않구나 싶습니다.

  북녘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새로 만들어 내려는 몸짓을 멈출 노릇이요, 남녘 정부는 북녘이 이러한 길로 가도록 슬기로우면서 따스한 손길로 이끌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이 걱정하지 않도록 부질없는 전쟁무기는 이 땅에서 걷어내거나 걷어치워야지 싶습니다. 남북녘이 서로 손을 맞잡고서 ‘전쟁무기를 차츰 줄여 앞으로는 몽땅 없애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남북녘 모두 스스로 나라 곳곳에 세운 덧없는 쇠가시울타리를 녹여서 호미랑 낫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쇠가시울타리랑 경계초소로 얼룩진 자리를 호미랑 낫으로 가꾸어서 마을텃밭이나 마을숲으로 바꾸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7번 국도 자리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군인이 아닌 젊은 시골지기가 젊은 마을로 일구는 싱그럽고 착한 몸짓을 사진으로도 마주하고 삶으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평화는 오직 평화로운 마음일 때에 이룹니다. 평화는 오로지 평화를 꿈꾸는 사랑일 적에 함께 나눕니다. 2017.5.2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노래)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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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민탕 - 다 때가 있다 눈빛사진가선 34
손대광 지음 / 눈빛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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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1


‘제 때’를 살피는 ‘제때’에 찍는 사진

― 광민탕, 다 때가 있다
 손대광 사진
 눈빛 펴냄, 2016.12.2. 12000원


  한국말에서 ‘때’는 두 가지로 씁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이나 해 같은 흐름을 나타내요. 둘째로 우리 몸에서 먼지랑 땀이 얽히며 생기는 것을 나타내요. 생김새는 같으나 뜻은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한 ‘때’입니다.

  몸에 때가 생기면, 이 때를 벗길 때라는 뜻입니다. 때를 벗길 때에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곳에 몸을 두어요. 살갗이 부풀기를 기다립니다. 천천히 때를 기다리면서 때를 벗깁니다. 알맞구나 싶은 때가 찾아오면 슬슬 때를 벗기지요.

  아무 때나 함부로 벗길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살이 아직 부풀지 않은 때에 마구 문질러서 때를 벗기려 하면 살이 아파요. ‘제때’를 기다려서 ‘제 때’를 벗겨야 합니다. 제 때를 벗기려 한다면 참말로 제때를 맞추어야 합니다.

  때를 살피기에 때를 벗길 수 있으니, 때를 놓치거나 때를 안 살피면 때를 벗기기 어렵습니다. 때를 모르면 때를 못 벗긴다고 할 만하고, 제 때를 모르니 제때를 가누지 못한다고도 할 만해요.

  이러구러 ‘때’라는 낱말 하나를 두고 두 가지로 쓰는 살림이 재미있으면서 뜻깊구나 싶어요. 어쩌면 예부터 ‘때’라는 낱말 하나를 사뭇 다르다 싶은 두 군데에 쓴 뜻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면 가는 게 생이다.” 목욕을 마친 잿빛 머리의 환갑을 넘긴 남자가 탕 문을 나서며 한마디 던진다. 선승 같은 그 사내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나는 오래도록 가부좌를 틀거나 두 다리를 뻗치며 몸에 감기는 살냄새 나는 물의 마음을 생각하였다. 오면 가는 게 생이듯 광민탕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에이씨 비씨 디씨…’ 여기서만 통하는 욕이자 콧노래라던 광민탕 이발사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벌거숭이 나에게 가끔씩 물음을 던져 보곤 한다. 그대가 좋아하는 살맛 나는 온도는 몇 도인가? (사진가 노트)

  손대광 님이 빚은 사진책 《광민탕》(눈빛,2016)을 읽습니다. 부산에 퍽 오랫동안 있었다는 목욕탕 가운데 하나인 ‘광민탕’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제 이 광민탕이라는 곳은 문을 닫았다고 해요. 광민탕을 드나들던 사람 이야기나, 광민탕에서 일하던 사람 이야기는, 이제 이 사진책에만 남습니다.

  부산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목욕탕이 퍽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른바 ‘찜질방’이 생기면서 목욕탕은 아주 빠르게 시들었어요. 잠도 잘 수 있는데다가 아무 때이고 몸을 불리며 노닥거릴 수 있기까지 한 찜질방은 목욕탕을 아주 가뿐히 밀어내었다고 할 만합니다.

  작은 마을이나 골목에 있던 숱한 가게가 편의점하고 큰가게(대형할인마트)에 밀리면서 문을 닫거나 시들합니다. 뭔가 더 도시스럽고 커다란 곳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하루아침에 바뀌곤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퍽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던 이웃을 쉬 잊고 발빠르게 다른 자리로 갈아탑니다. 미처 가만히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더 빠르거나 크거나 넓다고 여기는 데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책 《광민탕》에 나오는 사람들은 천천히 몸을 씻으려고 광민탕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광민탕을 드나들지는 않아요. 제 몸에 때가 쌓일 즈음 찾아갑니다. 제 몸에서 때를 벗길 만한 때를 저마다 스스로 깨달으면서 찾아가지요.

  목욕탕에서 사진을 찍자는 생각을 품은 손대광 님은 목욕탕 사람들한테 천천히 다가갑니다. 목욕탕한테도 천천히 다가서지요. 목욕탕에서 때를 함께 벗기면서 다가갑니다. 목욕탕에서 천천히 때를 벗기면서 목욕탕하고도 천천히 사귑니다.

  손대광 님은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델(피사체·취재원)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한마을에서 사는 이웃’으로 마주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모델이나 피사체나 취재원이 아닌 터라, 서둘러 사진기를 손에 쥘 까닭이 없습니다. 이녁은 여덟 달 만에 드디어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었다고 하는데, 고작 여덟 달 만에 사진기를 쥐었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러면?

  여덟 달이 아니라 스무 해나 서른 해였겠지요. 손대광 님이 광민탕이라는 목욕탕을 둘러싸고 살아온 나날을 고이 지켜보고 마주하고 함께한 발자국이 있으니, 이 발자국이 밑바탕이 되어 지난 여덟 달을 더욱 눈여겨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담아내자는 생각이 솟았겠지요.

  살아온 나날을 몸에 아로새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바탕으로 여덟 달이라는 나날을 고이 건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은 때를 보냈다고 할 만해요. 제때를 기다려 사진 한 장을 찍어요. 제때를 생각하며 사진 한 장을 빚습니다. 제때를 마주하고 바라보고 느끼고 되새기면서 사진 한 장을 이룹니다.

  오늘 사라질 모습이라고 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곧 사라질 곳이라고 해서 바삐 찍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마음에 새길 모습이고, 다음으로 몸으로 느낄 모습입니다. 이러고서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야지요. 무엇을 왜 어떻게 누가 어디에서 누구를 찍되, 어떠한 사랑이 흐르는 손길로 찍느냐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제 때를 벗기듯이 제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묵은 이야기 실타래를 한 올 두 올 벗깁니다. 우리 때를 벗기듯이 우리 살림살이에 깃든 오랜 발자국을 한 걸음 두 걸음 옮기면서 사진 몇 장으로 남겨 봅니다. 사진책 《광민탕》은 목욕탕이라고 하는 마을 만남터·쉼터를 둘러싸고 수많은 ‘때(삶)’가 켜켜이 쌓인 숨결을 보듬은 이야기꽃과 같구나 싶습니다. 2017.4.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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