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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러브 앤 프리 : 자, 떠나버릴까? - 다카하시 아유무, 전설의 세계 방랑 노트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을 알면 사진찍기는 늘 즐겁다
 [찾아 읽는 사진책 3] 다카하시 아유무, 《LOVE&FREE》


 잘 팔리는 사진책은 몹시 드뭅니다. 제법 팔리는 사진책을 살피면 이른바 ‘정통 사진책’이라 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정통이든 아니든 똑같은 사진책이고, 한결같이 사진을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 이 나라에는 ‘참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이 그리 많이는 안 나왔습니다. 나라밖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무척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 가운데 한국말로 옮겨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살가도라든지 쿠델카라든지 브레송이라든지 드와노라든지 앗제라든지 스티글리츠라든지 아담스라든지 할스만이라든지 …… 한글판으로 알차게 엮은 책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해적판으로 나온 책이 더러 있고, 아주 조그맣게 나온 번역책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을 배우는 길에서 아름다운 스승이 된다’는 사람들 작품책은 거의 나오지 못합니다. 팔리기 힘들고, 판권을 사 오자면 돈이 많이 든다는 아우성만 들립니다.

 이 나라에도 문화부가 있고 지역마다 문화재단이 있습니다(없는 곳도 많습니다만). 문화재단이 없더라도 시나 군마다 문화 정책을 다루는 부서가 있습니다. 개인 출판사에서는 돈이 모자라 힘들다면, 시나 군이나 문화부에서 따로 출판사를 차려서 ‘나라 안팎 빼어난 정통 사진책’을 펴내면 됩니다. 사진책 하나 내는 데에 돈이 꽤 많이 든다지요? 그렇지만 해마다 거님길 돌 갈아치우는 데에 쓰는 돈 가운데 1/100만 들여도 해마다 100권이 넘는 놀라운 ‘정통 사진책’을 펴내고 남습니다. 이렇게 펴낸 사진책을 도서관과 학교마다 한 권씩 거저로 줄 만큼 이 나라 건설과 토목과 행정은 엉뚱한 데에 돈을 흘립니다.

 일본사람 다카하시 아유무 님 글과 사진으로 엮은 《LOVE&FREE》를 읽습니다. 2010년 9월에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2002년 판은 책값이 8400원인데 2010년 판은 외려 400원 내린 8000원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예전 책을 펼칩니다. 아유무 님은 처음부터 “돈은 조금 부족하지만 시간만은 무한대로 있는 여행(15쪽)”을 즐기겠다고 밝힙니다. 그래요. 여행이든 동네마실이든 삶이든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음껏 즐기면 됩니다. 다달이 오백만 원쯤 벌어야 살 만하겠습니까. 달마다 이백만 원을 벌거나 백오십만 원을 벌면 어떠하지요? 한 달에 오육십 만 원 벌이로는 너무 빠듯한가요? 그러나, ‘돈이 없어’도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모자란 대로 오순도순 지낼 만합니다. 내 아이한테 십만 원짜리 옷을 사 주어야 사랑이겠습니까. 내 옆지기한테 이십만 원짜리 치마를 사 주어야 믿음이 되나요. 텃밭에서 가꾼 무를 뽑아 무채를 만들고 무국을 끓여도 사랑입니다. 돈은 한푼 없으나 아이를 품에 안으며 실컷 놀아도 믿음이에요.

 책 첫머리에서 아유무 님은 당신 넋을 거듭 밝힙니다. 이러한 다짐과 넋이 아름답기에, 《LOVE&FREE》라고 하는 ‘정통 아닌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을 만하며, 참으로 두루 사랑받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지기보다 한 사람의 가슴을 도려내듯 절절한 표현을 하고 싶다(25쪽).”는 마음가짐으로 “사야카의 웃는 얼굴이 좋다. 무엇인가 끄적거리기 전에 우선 이 여자를 즐겁게 해야지(27쪽).” 하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는 두 사람은 길을 떠날 즈음 “사는 것이 예술이다(26쪽).” 하고 느낀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첫머리에 이렇게 말을 할 줄 안다면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이 책 《LOVE&FREE》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알 만합니다. 삶이 곧 예술이라면 사진이 바로 예술이며, 글이 곧바로 예술입니다.


.. 미처 몰랐기에 신선하다 ..  (53쪽)


 아직까지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보려”고 발버둥입니다. 입문책을 보고 기술책을 보며 참고서를 뒤집니다. 여행 길잡이책이라든지 사진 새내기책은 하나같이 자잘한 손재주와 지식덩어리를 다룹니다. 여행을 하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는 가슴을 다루지 못해요. 나들이를 즐기는 넋이랑 사진을 사랑하는 얼을 보여주지 못해요.

 아유무 님과 짝꿍이 일군 《LOVE&FREE》는 ‘알면 아는 대로 좋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새삼스러우며 싱그러운’ 삶을 즐깁니다. 따지고 보면, 안다고 해 보아야 무엇을 어느 만큼 어떻게 안다 할 수 있나요. 신라를 알고 신라 불상을 안다 하면 신라랑 신라 불상을 얼마나 잘 안다 할 만한가요. 경주를, 안동을, 제주를, 춘천을, 평양을, 백두산을, 하늘못을, 한라산을, 속리산을, 태안을, 부석사를, 해남을, 광주를 …… 사람들은 어느 만큼 어떻게 무엇으로 안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피사체가 무엇이든 혹은 누구이든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찍혀 주셔서 고마운’ 것이 아닐까(75쪽).” 하고 비로소 느끼는 아유무 님입니다.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틈틈이 나오는 수많은 ‘정통 사진책’을 비롯하여 ‘만듦사진(메이킹포토)’을 보여주는 숱한 몸짓은 아직까지 ‘찍히는 사람과 사물과 자연한테 고맙다고 느끼는 마음밭’이 지나치게 얕지 않나 싶어요. 찍혀서 대단한 사진이란 없거든요. 찍혀 주어 대단한 사진이랍니다. 찍어서 놀라운 사진이란 없습니다. 찍혀 주었기에 놀라운 사진입니다.

 이리하여, 이런저런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인도라는 나라를 다녀오며 찍은 사진이 왜 한결같이 볼품없거나 볼썽사나운가를 일깨우는 한 마디가 톡 튀어나옵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이 대목을 잘 깨우치며 삭일 수 있을 때에, 한국땅 사진쟁이 작품과 여행쟁이 이야기를 나라 안팎에서 살뜰히 즐기며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유무 님은 “나는 지금까지 편파와 왜곡으로 일그러진 필터를 통해 인도를 보아 왔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길에서 자는 것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 길에서 호젓한 낮잠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 인도에는 슬픔과 아픔 대신 수천 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현실’과 ‘미래’가 있을 뿐이다(70∼71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말하고 느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아름답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멋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모자라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꾀죄죄해요. 무엇이 있고 없고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됩니다. 삶을 바라보면 돼요. 사람을 사람다이 마주하면서 내 사랑을 고이 나누면 넉넉해요.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한 권의 책이라도 책장이 뚫어질 때까지 읽어 보렴. 그 편이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145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면 됩니다.

 사람을 많이 사귀면 더 좋을까요? 사람을 더 많이 사귀면, 더 많은 사람을 사귀면, 아는 사람이 많아 내 손전화 기계에 천 사람 넘는 전화번호가 담겼으면 ‘좋은 벗이 많다’ 말할 수 있나요. 인간문화재를 백 사람 취재해서 사진책 하나 내놓으면 그럴싸할는지요? 인간문화재라는 분 가운데 다문 한 사람만 마주하면서 이이 한 사람 삶을 가까이 사귀어 살붙이가 되면서 내놓는 사진은 어떠한가요. 인간문화재가 아니면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동네 이웃 한 사람을 서른 해나 마흔 해 사귄 이야기를 사진하고 글로 엮어서 내놓으면 어떠할까요. 제주 올레길은 멋들어지고, 우리 동네 골목길은 하찮은지요. 서울 북촌은 멋스럽고 우리 동네 골목집은 지저분하나요. 영화배우 아무개는 잘생겼고, 우리 할아버지는 못생겼을까요. 여행쟁이 한비야 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내 어머니와 내 언니와 내 동생과 내 동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얼마나 되는가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다 함께 연속극을 본 적 말고, 텔레비전이 없는 조용한 방에서 커피 한 잔이든 찬물 한 잔이든 앞에 놓고 한두 시간 신나게 수다를 떨어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요.


..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 아래였다 ..  (202쪽)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멋스럽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을 담은 듯 사진을 찍는들, 싯말처럼 보이는 글을 펼친들 뭔가 남다르다 할 수 없어요. 그예 살아가는 내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따사롭고 부드러이 꼭 감싸안을 수 있으면 됩니다. 멋스럽지 않아도 좋은 사진이요, 남다르지 않아도 기쁜 글입니다. 훌륭해 보여야 하는 사진이 아니고, 재미있어야만 하는 글이 아닙니다. 파란하늘을 어깨동무하며 즐길 줄 아는 몸가짐이면 됩니다. 푸른 들판에서 호미와 낫을 들고 땀흘려 일할 줄 아는 발바닥이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친 다음 국 한 그릇 구수히 끓여 살붙이랑 배불리 먹을 줄 아는 살림꾼 꾸덕살이면 됩니다. 날마다 아기 기저귀를 빨아 빨랫대에 널어 놓고 나서, 이 빨래들이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느낌을 사진으로 한 장씩 담거나 글로 한 줄씩 적바림해 놓아도 좋아요. 이렇게 즐기는 사진 한 장과 글 한 줄이 차곡차곡 모이면 빛깔 고우며 냄새 그윽한 삶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4343.11.7.해.ㅎㄲㅅㄱ)


― LOVE&FREE (다카하시 아유무 글·그림,차수연 옮김,동아시아 펴냄,2002.8.1./8000원·2010년 9월에 ‘에이지21’에서 고침판으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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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像) The Portrait
김아타 지음 / 학고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바라보는 대로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0] 김아타, 《상, The Portrait》



- 책이름 : 상, The Portrait
- 사진·글 : 김아타
- 펴낸곳 : 학고재 (2008.3.20.)
- 책값 : 40000원


 (1) 잡지 《뿌리깊은 나무》


 1975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1995년에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고, 이해 11월에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대로 끌려가 1997년 12월에 인천로 돌아왔으나 1998년 1월에 다시 서울로 떠납니다. 2003년 9월에 서울을 떠나 충청북도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왔고, 2007년 4월에 다시금 인천으로 왔으나, 2010년 6월 끝무렵에 거듭 충청북도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옵니다. 굵직하게 보면 이래저래 옮긴 셈인데, 가깝지 않은 곳을 오가며 살림을 옮기는 동안 1995년부터 거의 해마다 살림집을 새로 옮겼지 싶습니다. 이제 더는 살림집을 옮기고 싶지 않으나 앞날은 모르는 노릇입니다. 푸진 돈으로 마음껏 살림집을 뿌리내리는 형편이 아니니까요. 다만, 이렁저렁 1995년부터 거의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는 동안, 내 살림집에 늘 가까이 모셔 놓는 책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잡지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1980년 가을로 접어들 무렵, 군사독재를 일으킨 전두환 씨 힘에 짓밟혀 그만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1976년 봄에 태어난 잡지는 고작 다섯 해를 버티었습니다. 아니, 잡지 《뿌리깊은 나무》한테는 ‘버티었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섯 해 동안 이 나라 얕은 문화밭을 튼튼하게 일구었습니다. 한때에는 정기구독자가 7만이 넘었다고 했는데, 군사독재 정권 총칼에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살아숨쉬며 수십만 독자를 거느리며 이 나라 문화밭을 한결 알차게 북돋았을는지 모릅니다.

 꿈이야 좋으니 꿈을 꾸지만, 꿈이기만 하다면 굳이 꿈을 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난날 우리 삶터를 곱게 어루만지던 잡지를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한 권씩 두 권씩 장만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짝은 다 맞추지 못하고 두 권이 비었으나 이럭저럭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 결과 흐름을 찬찬히 읽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한두 권씩만 장만해서 찬찬히 읽으며 모으다 보니, 딱 한 번, 《뿌리깊은 나무》 첫 책부터 마지막 책까지 한꺼번에 헌책방에 나왔을 때에, 헌책방 사장님이 무척 싼값에 팔 테니 가져가라 했을 때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무렵은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한 달 벌이가 십육만 원이었는데, 《뿌리깊은 나무》 예순 권쯤 한 질을 고작 5만 원에 주겠다 하셨습니다. 눈이 동그래질 만한 값이지요. 제가 그 헌책방 단골이요 책을 아끼는 ‘고학생’이라 다른 장사꾼이나 교수한테는 안 팔고 자네한테 팔겠네 하던 헌책방 사장님입니다. 참말 그때 외상이라도 그으며 사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십육만 원으로 한 달을 가까스로 버티는데 오만 원을 그날 하루에 다 바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어요.

 한 권씩 두 권씩 사서 모아 온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도 늘 끈 자국이 나지 않게끔 살살 다루었고, 짐을 끌를 때에도 거의 맨 먼저 끌르며 다른 데도 아닌 늘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자리에 얹어 놓습니다. 틈틈이 들추고 꾸준히 읽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외려 이렇게 가까이 두는 데에도 잘 안 들추곤 합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할 수 있습니다. 몹시 사랑하고자 가까이에 두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기에 참멋과 참모습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늘 가까이에 있다 보니, 바람처럼 햇살처럼 물처럼 흙처럼 얼마나 소담스러우며 아름다운가를 잊는다고 할까요.

 엊저녁, 1979년 1월치 《뿌리깊은 나무》를 꺼내어 봅니다. 나중에 잡지가 문을 닫은 뒤 ‘해뜸’ 출판사를 차린 사진쟁이 윤주심 님이 사진을 찍은 기사 〈명창 강도근〉을 읽습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는 이무렵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던 예용해 님이 〈민중의 유산〉이라는 꼭지에 이 나라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이야기를 꾸준히 적바림하곤 했습니다. 예용해 님은 1960년대 첫머리에 ‘인간문화재’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써서 신문에 기사를 띄웠고, 어문각 출판사에서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인 두툼하며 멋들어진 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익히 아는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은 예용해 님이 만들었고, 정부에서 인간문화재를 법으로 삼아 도움돈을 내어 주도록 하기까지에도 예용해 님 힘이 대단히 컸습니다. ‘이 나라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한 손길로 수수한 살림살이 만들던 사람들 손품과 다리품’이 바로 ‘사람 문화재’임을 온누리에 밝힌 예용해 님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수많은 사람들한테 들씌워져 있던 손가락질과 푸대접을 차츰 벗을 수 있었어요. 제주섬에서는 진성기 님이 이러한 일을 알뜰히 하셨지요.

 윤주심 님 사진에 호원숙 님 글이 붙은 〈명창 강도근〉을 차근차근 읽습니다. 예전에 이 글을 읽을 때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헤아려 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는 수업 시간에 조금도 늦지 않을 뿐더러 한 시간도 빼먹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모습에선 광대라든지 쟁이라든지 예술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거만함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고 …… 오후 다섯 시쯤에 수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곧장 시장으로 간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는 것이다. 이리 가서 생선도 몇 마리 사고 저리 가서 과일도 몇 알 사서 보자기에 싸 자전거 뒤에 올려놓는 그의 모습은 궁상스러워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정겨워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가 부지런히 페달을 저어 가는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의 집이다.” 서울 바닥에서는 놀 마음이 없이 전주 바닥에서만 논다는 명창 강도근 님 삶을 살뜰히 살피면서 담아낸 글이 좋고 사진이 좋습니다. 어김없이 인간문화재라 할 만한 강도근 님인데(강도근 님은 인간문화제 5호이며 1996년 5월 15일에 일흔여덟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 마주하는 당신 삶은 참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낱낱이 보이는 당신 가난한 삶이 참 부드럽습니다. 따숩고 좋습니다. 더 많은 돈이나 이름이나 힘보다는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식구들하고 시골집에서 조용히 어우러지면서 고향 후배한테 소리를 가르치는 품새가 더없이 애틋하구나 싶습니다. 명창이자 인간문화재이면서도 손수 밭갈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저잣거리에서 찬거리를 장만하여 집으로 돌아온 다음, 자그마한 집에서 온식구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꽤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들을 몸소 업어 주고 안아 주며 함께 복닥입니다.

 흔히들, 아니 으레 잘 모르거나 잘 알고자 하지 않으니 그러하겠지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이들이라 해서 떵떵거리거나 배불리 잘 사는 사람이란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좀 달라지거나 나아졌는지 모르지요. 내 삶을 사랑하며 내 넋을 고이 건사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습니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아닙니다.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는 이들이 건사하는 ‘전통문화’란 여느 사람들 여느 삶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수수한 삶입니다.

 때로는 임금님 자시는 밥거리를 장만하는 분들이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임금님 밥상은 누가 차리나요. 양반이 차리나요, 사대부가 차리나요. 임금님 옷은 누가 지어 주나요. 양반이 바느질을 하나요, 사대부가 뜨개질을 하나요, 지식인이 길쌈을 하나요.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는 이들은 하나같이 농사꾼입니다. 농사꾼 아들이거나 딸입니다. 뿌리가 농사꾼이고 벗과 이웃과 살붙이가 농사꾼인 인간문화재입니다. 스스로 땅에 뿌리를 두고 스스로 땅인 몸뚱이로 살아가며 ‘삶을 곧 문화로 일구는’ 사람인 인간문화재예요.

 예용해 님 글을 즐겁게 만나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인데, 예용해 님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수수하고 가난하며 투박한 여느 삶 사람들 이야기를 알뜰살뜰 여미어 내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이들이 왜 인간문화재요,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이들 삶이 어떠한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예요. 그래, 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나 이 잡지를 읽는 사람이나 이 잡지에 실리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수수한 사람’입니다. 하나같이 못생기거나 투박하거나 수수하거나 하잘것없는 사람이에요.

 다른 호수를 하나하나 들추어 봅니다. 어느 호수를 들추든 잘난 구석 없는 사람들, 그러면서 못난 구석 또한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알뜰히 담겨 있습니다. 그예 바라보는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마주하고 앉은 자리에서 참 좋다고 느낄 만한 사람들 이야기로 쏠쏠합니다. 내 삶부터 수수하고, 인간문화재라 하는 사람들 삶도 수수하며, 정치꾼이건 운동선수건 청소부이건 하나같이 수수합니다. 겉으로는 떵떵거릴지라도, 어디에선가 우쭐거릴지라도, 모두모두 수수한 사람이요 이웃입니다. 이름표를 떼고 보셔요. 주민증을 집어넣고 보셔요. 다 같은 사람이요, 다 착한 사람이며, 다 고운 사람입니다. 신비스럽다든지 신령스럽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가운 사람이고, 좋은 이웃입니다. 좋은 아재요 푸진 아짐씨입니다.


 (2) 새로운 사진과 이야기는 내 삶에 있습니다


 온누리에 내로라 할 만큼 손꼽힌다는 사진쟁이 김아타 님 사진책 《상, The Portrait》를 읽습니다. 한국땅에서 인간문화재라 하는 분들을 한 분씩 찾아뵙고 한 장이나 두 장쯤 얼굴사진이나 몸통사진을 담아서 엮은 사진책입니다. 책 왼쪽에는 인간문화재 소개글을 짤막하게 붙이고, 오른쪽에는 사진을 넣습니다. 사진은 모두 흑백입니다.


- 서한규, 그는 대나무 살을 발라 채상을 만든다. 그의 손줄이 가파르면 대나무는 벌거벗고 춤을 춘다. 담양은 대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담양에 대나무가 많은 것은 땅이 고와서 그럴 것이다. 땅을 닮아서 그의 심성도 곱다. 조모가 만들었다는 백 년이 넘은 채상, 낡은 시간을 세웠다.


 사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인간문화재라 하니까 인간문화재로구나 하고 생각하지,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으면, 이냥저냥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할 할머니나 할아버지겠구나 싶다고. 날카로운 눈매와 고즈넉한 매무새를 보이는 할매와 할배 모습이 있습니다만, 해병대 나왔다는 할배라든지 온갖 시집살이 고된살이 다 치렀다는 할매한테서도 날카로운 눈매나 고즈넉한 매무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르고 으싸으싸 하면서 목청을 돋우는 할배한테서도 얼마든지 깊은 이야기와 너른 삶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문득, 인천 전동 골목길을 마실하며 이제 지친 다리를 쉴까 하며 여관집을 찾으려 할 무렵(인천에서 살다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에 인천 골목마실을 하고 난 다음에는 동네 여관집에서 묵어야 합니다) 가물가물 기울어지는 저녁햇살을 받으며 대문 앞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월남전 참전 군인’이던 할배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떠오릅니다. 동네 할배는 제 모습이 당신 막내아들을 닮았다면서 월남싸움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때 베트공한테 목숨을 앗긴 숱한 동료들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며,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에서도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전동 골목집 할배로서는 동료 전우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슬퍼하는 마음은 있으나, 당신하고 아무런 등진 일이 없는 애먼 베트남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또 이들을 죽이려 하며 죽어야 하던 숱한 사람들 구슬픈 아픔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깨닫습니다. 어찌 되든 ‘전쟁은 나쁘다’는 한 가지. 골목집 할배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이 ‘불쌍한 베트남사람 삶’을 헤아려 주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불쌍한 한국사람 삶’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으로도 반갑고, 이와 같은 마음을 곱다시 건사하면서 할배가 살아가는 골목동네 이웃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으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느냐고 느낍니다. 저는 골목동네 할배가 내미는 손을 꼬옥 붙들면서, 당신 눈을 마주 보면서, 사람도 삶도 사랑도 하나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 장인은 스스로 안다. 옻칠이 손을 덮고. 하얀 눈 내린 태산 같은 눈썹, 달콤하고 나른하게 말을 건넨다. 풀 소리 가득한 봉원사. 무심한 가부좌는 겁의 시간을 낚고 있다. 8×10인치의 필름 위에 선 하나를 십만 번 넘게 그었다는 그를 가둔다. 숨이 멈춘, 사진을 찍었다.


 김아타 님은 《상, The Portrait》라는 사진책에서 한국땅 인간문화재인 분들을 퍽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게 담아내어 보여줍니다. 어쩌면, 김아타 님 삶부터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문화재인 분들이 신비스럽고 신령스럽기 때문에 김아타 님이 이분들 삶자락을 이와 같이 담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바라보면서 찍는 사진이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면서 찍는 사진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되자면, 사진으로 찍고자 하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짐승이나 자연하고 내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같이 숨쉬고 같이 밥먹으며 같이 똥오줌 누고 같이 잠자며 같이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한동아리 한몸 한마음이 될 때에는 누구나 ‘있는 그대로’ 찍는 사진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로 모두어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하면, ‘바라보는 대로’ 찍는데,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란 바로 ‘내가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아직 생각이 얕다면 ‘아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김아타 님은 생각이 얕은 분이 아닌 터라 ‘아는 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그래요, 김아타 님은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분들하고 마주하고 만나며 어울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 ‘김아타라는 사진쟁이가 바라보는 결’을 고스란히 살립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은 아무개라는 삶결’을 고스란히 살리지 않습니다.


- 무당 김금화. 그를 처음 만나던 날, 내가 올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신의 밥을 먹고 사는 사람. 신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내림굿을 받아 40년 동안 작두를 타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작두가 까칠하다. 정한 마음으로 작두 위에 올라야 한다. 연두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 새털처럼 가볍게 자리에 앉았다.


 내 어머니를 만나거나 옆지기 어머니를 만나거나 노상 생각합니다. 두 분 어머니한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일 사람은 없을 텐데, 굳이 인간문화재를 나한테 두 사람 뽑으라 한다면 내가 아는 어머니 두 분을 뽑겠다고. 10분은커녕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사이 밥상을 후다닥 차려내는 솜씨란 고스란히 인간문화재라 할 만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푸짐하게 차려 놓고 언제나 “차린 것 없는데 많이 먹어.” 하고 말씀합니다. “차린 게 없어서 어쩌나.” 하는 말씀을 되풀이합니다.

 바느질을 못하나 빨래를 못하나 아이를 못 보나 청소를 못하나 설거지를 못하나 …… 그렇다고 집안이 기울어질 때에 소매 걷어붙이며 돈벌이를 못하나. 저하고 옆지기로서는 두 분 어머니를 빼놓고 다른 누구를 놓고 인간문화재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두 분 어머니를 기르신 어머니들(할머니들)이 살아 있다면 이분들한테 이 이름을 붙여 보겠지요.

 그런데 우리 살붙이를 낳고 기른 두 분 어머니만 인간문화재라 할 수 없습니다. 내 벗을 낳고 기른 어머님이든, 내 옆지기 벗님들을 낳고 기른 어머님이든, 우리 둘레 모든 어머님들을 놓고도 인간문화재라 말 안 할 수 없어요. 아버님들은 또 어떻고요.


.. 많은 시간이 흐른 기억 저편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을 다시 만난다. 그날들, 그들은 아까운 시간을 내게 주었다. 남도의 끝에서 서울 깊숙한 마을 안길까지 그들은 터를 잡고 있었다. 때로는 리어카에 장비를 싣고 신작로를 달리기도 하고, 며칠 밤낮을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완고함으로 이태에 걸쳐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야 했던 사람도 있다. “자네가 일가를 이루면 그때 찾아오라”는 사람도 만났다 ..  (책머리에)


 김아타 님은 틀림없이 온누리에 손꼽는 사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뉴욕에서, 또 이탈리아에서, 숱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거나 손꼽힐 만한 분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첫손을 꼽을 인간문화재인 우리 어머니한테도 김아타 님 사진이 첫손을 꼽을 만큼 아름다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옆지기 어머님한테도 김아타 님 사진이 온누리에 손꼽을 만한 작품이 되도록 멋들어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누가 8만 달러에 김아타 님 사진을 사들인들, 빌 게이츠라는 사람이 김아타 님 사진을 장만한들, 이런저런 값과 이름과 힘이 사진을 돋보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삶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자면 나부터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나와 내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 때에 비로소 사진찍기가 이루어집니다. 내 나름대로 바라보면서 내 풀이(해석)에 따라 내 작품(신비스러움)을 만든다고 해서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나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 받아들여 몇몇 어르신들한테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이니, 온누리 평론가와 큐레이터나 업자들 또한 김아타 님한테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름이란 얼마나 아름다웁거나 뜻있거나 값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는 대단한 돈도 부질없지만 대단한 이름 또한 부질없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찾을 한 가지란, 즐거우며 착하고 참된 내 삶 한 자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착한 인간문화재를 마주하여 착한 사진 하나 얻자면 내 삶이 착하면 됩니다. 참다운 인간문화재를 맞이하여 참된 사진 하나 이루자면 내 삶이 참다우면 됩니다. 고운 인간문화재를 만나서 고운 사진 하나 찍자면 내 삶이 고우면 돼요.

 주제를 먼저 세워 놓고 다큐멘타리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는 분들 가운데 제대로 된 다큐멘타리 사진을 내놓는 분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주제는 따로 잡아 놓지 않았다지만, 소재를 먼저 잡아 놓고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분들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뜰살뜰 나누는 분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입니다. 그림 또한 그저 그림입니다. 예술은? 글쎄요, 예술은 내가 하루하루 즐겁고 신나게 꾸리는 삶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아닐는지요.

 예술은 만들 수 없고 가르칠 수 없으며 배울 수 없습니다. 문화 또한 만들거나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삶이란 만들거나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해요. 삶은 내 모습 내 길 내 넋 내 손 내 꿈이면서 내 꾸덕살이고 내 손빨래이며 내 설거지인 가운데 내 똥기저귀입니다. (4343.11.2.불.ㅎㄲㅅㄱ)
 

  

사진을 찍기 앞서 삶을 배우거나, 삶을 다부지게 껴안아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 실린 윤주심 님 사진 - 명창 김도근 (인간문화재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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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 김수남 사진집
김수남 지음, 황루시 글 / 눈빛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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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앞서 사람을 사랑하는 넋으로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9] 김수남, 《강릉단오제》



- 책이름 : 강릉단오제
- 사진 : 김수남
- 글 : 황루시
- 펴낸곳 : 눈빛 (2007.9.20.)
- 책값 : 5만 원



 (1) 사람을 사랑하는 사진찍기


 저는 제 사진을 찍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삶을 스스로 알뜰살뜰 꾸리자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보내는 가운데 사진을 찍습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아이 사진을 찍고, 집 둘레 멧기슭과 논과 밭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날마다 새 마음으로 일어나 새롭게 놀고 복닥이며 어르고 달래는 아이 삶자락을 차근차근 사진 한 장 두 장으로 그려 봅니다.

 아빠가 늘 사진기를 붙잡으니까 아이는 사진기를 갖고 놉니다. 이제 망가져서 더는 못 쓰는 헌 사진기 하나를 아이가 용케 찾아내어 “어, 사진기네.” 하고 말하며 목걸이처럼 목에 겁니다. 이 망가진 사진기에는 망가지는 바람에 미처 꺼내지 못한 ‘찍다 만 필름’이 들어 있습니다. 필름을 꺼내야 하는데 섣불리 꺼내지 못합니다. 건전지로 가는 사진기인데, 건전지는 살았으나 기계가 멈추어 되감기를 할 수 없습니다. 기계를 통째로 수리집에 들고 가서 꺼내야 합니다. 벌써 한 해 가까이 사진기를 필름과 함께 그대로 두고 맙니다. 아이는 이 ‘아빠가 내버려 둔 사진기’를 끄집어 내어 갖고 놉니다. 아빠가 사진을 찍듯 저도 사진기를 쥐고 “사진 찍어.” 하는 말을 들려주면서 사진을 찍는다며 놉니다.

 엊그제까지는 아빠 사진기로 사진을 찍던 아이입니다. 아빠나 엄마 손전화를 손에 들고 수도 없이 갖가지 사진을 찍은 아이입니다. 손전화 기계하고 셈틀을 잇는 줄이 없어 손전화에 담긴 사진 수백 장을 못 꺼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가면 이 줄 하나 장만해야겠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무슨 사진을 어떤 눈길과 눈높이로 찍어 왔는지를 구경하고 싶어요.

 어제, 아빠는 아이를 집에 두고 볼일을 본다며 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아이는 아빠가 혼자 나간다며 서운해서 웁니다. “아빠! 자전거!” 하고 외칩니다. 자전거수레에 저를 태워 주고 같이 나가잡니다. “아빠! 자전거 아냐? 이야야? 이야?” 하고 외치며 아빠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빠 혼자 다녀올게. 돌아올 때에 까까 사 올게. 나중에 이야 같이 가자. 미안해.” 하며 손을 흔듭니다. 다른 때에는 으레 손을 흔들며 “다녀오셔요.” 하는 말을 따라하더니, 어제만큼은 서운하고 풀죽은 얼굴로 바라보기만 합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뒤를 쳐다보며 논둑길을 걸어 시골버스역으로 갑니다. 아이가 울멍울멍하는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이렇게 아이한테 미안한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시외버스를 타기 무섭게 속이 울렁거립니다. 메스껍습니다. 시골집에서만 지내다가 시외버스를 탔기 때문인가 봅니다. 몸이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윽윽 하며 게우고 싶지만 꾹 참습니다. 아이랑 함께 버스를 탔다면 아이는 훨씬 괴로웁겠다고 느낍니다. 아이하고 서울이나 인천 같은 도시로 마실을 나온다며 버스를 타야 할 때에는 무척 힘들겠구나 싶습니다. 기차는 괜찮으려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기차를 타야겠습니다. 한손으로 머리를 짚습니다. 아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발걸음을 겨우겨우 한 걸음씩 떼다가 아이 사진을 담았는데, 이렇게 담은 아이 사진에는 아이가 아빠한테 서운해 하며 슬퍼 하는 빛깔을 고스란히 옮겼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아니, 나로서는 아이가 서운해 하거나 슬퍼 하도록 살아가고 싶지 않은데, 아이를 서운해 하거나 슬퍼 하도록 하면서 사진을 남긴 일이 옳은지 궁금합니다. 언제나 아이가 웃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떼를 쓰며 우는 모습도 찍곤 합니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도 찍고, 아이가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도 찍습니다. 밥을 먹는 모습도 찍는데, 밥을 먹다가 안 먹는다며 실눈을 뜨고 살짝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아직 안 찍었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투정을 부릴 때에는 몹시 힘들어 사진기를 쥘 기운이 나지 않아요. “제발, 밥도 한 술 먹어 주라.” 하고 빌기에 바쁩니다. 아이가 제풀에 지쳐 배가 고프기를 기다리면서, 아빠도 배가 고프니 밥술을 허둥지둥 뜹니다.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할 때에 옆에 앉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에 방바닥에는 늘 이불을 깔아 놓습니다. 책 몇 권을 챙겨 이불에 다리를 넣습니다. 아이도 아빠를 따라 엄마 옆 이불에 발을 넣습니다. 아이 그림책을 챙겨 왔으니 아이 옆에 이 책들을 펼치고, 아빠는 아빠 책을 읽습니다. 아이는 아빠 곁에서 아빠를 따라 책을 넘기며 읽습니다.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그림책을 넘기다가 언니가 넘어진 모습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언니, 넘어졌어.” 하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짚습니다. “언니, 아야 했어.” 하고 말할 때에 “응, 언니 아야 해. 이제는 일어났네. 괜찮네.” 하고 대꾸합니다. 예전에는 이 그림책을 펼치며 아이한테 구석구석에 나오는 모든 모습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는데, 이제 아이는 떠오르는 대로 하나씩 되새기며 말을 합니다. 차츰 말문이 트이는 듯합니다. 스물일곱 달째 살아가며 말문이 트는 딸아이라. 그렇구나. 이맘때에 우리 아이는 말문을 트는구나.

 책을 읽는 딸아이랑 뜨개질을 하는 엄마랑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한 장 조용히 찍습니다. 아이는 사진 찍히는 줄을 느끼지 못하며 책에 빠져듭니다. 뜨개질하는 아이 엄마 손을 조금 크게 찍습니다. 아이 엄마 손을 찍다가, 몸이 퍽 안 좋은 아이 엄마 다리며 팔이며 허리며 주물러 준 지 퍽 오래되지 않았는가 하고 깨닫습니다. 하기는, 아이 아빠인 저부터 갖은 집일을 다하며 살아가자니 늘 고단하고 지쳐서 내 몸 건사하기에도 빠듯하다 보니, 아이 엄마 몸 돌보기를 자꾸 못하고 맙니다. 이렇게 사진 한 장 더 찍기에 용쓰지 말고, 사진 한 장 찍을 겨를에 아이 엄마 다리를 주물러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직 다리 주무르기를 잘 모릅니다. 가끔 따라하긴 하지만 아이로서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틈틈이 아이한테 쭉쭉이를 시키며 온몸을 주물러 주는데, 아이한테 이렇게 해 주어도 엄마나 아빠를 주무르는 법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빠가 힘에 부쳐 서너 시쯤 “이제 아빠도 쓰러진다!” 하고 벌렁 드러누우면, 아이도 아빠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불!” 하면서 저도 이불을 덮고 눕겠다 하면서, 아빠 옆에서 아빠 얼굴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눈을 감으며 아이 여린 손길이 내 얼굴에 닿는 느낌을 즐깁니다. “응응, 고마워.” 하고 말하며 아이가 낮잠 한 숨 자 주면 아빠도 숨을 살짝 돌리겠다고 얘기를 합니다.

 어느새 포로롱 잠듭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아이가 곁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히유 하고 한숨을 쉬며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낮잠에 빠져들면서 꿈으로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헌책방으로 마실을 가서 신나게 책을 고르며 사진을 찍는 일’이라든지 ‘또다른 내 사진감인 인천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다며 인천으로 찾아가서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골집에서 세 식구 올망졸망 살아가는 동안 내 사진감을 옳게 찍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내가 찍을 사진이라면 내가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즐겁게 가장 사랑하면서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요즈음 내 삶으로는 헌책방이든 인천 골목길이든 자주 찾아갈 수 없으니, 어쩌다 한 번 찾아갈 수 있다면 눈물 콧물 웃음 실컷 길어올리도록 사진을 찍어야 하고, 여느 때에는 내 여느 삶자리에서 우리 세 식구 삶을 홀가분하게 사랑하며 찍으면 넉넉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나와 살아가는 옆지기를 사랑하며, 엄마 아빠랑 오붓하게 살아가는 딸아이를 사랑하면서 찍을 사진입니다. 이렇게 사진 하나 찍는 매무새를 내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즐길 수 있을 때에, 헌책방에 가든 골목길을 가든 다른 어디를 가든 나로서는 내 눈길과 손길로 내 마음길 사뿐히 담아내는 사진 이야기를 일군다고 느낍니다.


 (2) 굿을 사랑하는 사진찍기


 김수남 님 사진책 《강릉단오제》(눈빛,2007)를 읽습니다. 사진을 읽고 사진마다 붙은 글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김수남 님이 저승사람이 된 뒤에 나왔기에, 사진마다 붙은 글은 김수남 님이 손수 달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김수남 님 사진으로 태어났던 “한국의 굿”에 달려 있던 이야기 결이나 느낌하고 사뭇 다른 글이 붙은 《강릉단오제》입니다. 사진을 읽다가 글을 읽을 때에는 어쩐지 둘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은 빛깔 곱지만, 글은 빛깔 고운 결에 녹아들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한국의 굿”이라는 이름이 붙어 스무 권 나온 사진책에는 책날개마다 사진쟁이 김수남 님 짤막한 덧글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스무 권을 빠짐없이 챙기지 못했는데, 집에 있는 “한국의 굿” 가운데 두 권을 뽑아 듭니다. 먼저 《수용포 수망굿》(1985)에 적힌 글을 읽습니다.


.. 바닷속에 잠든 넋을 건져 총각귀신 처녀귀신 면하라고 결혼시켜 주는 수망굿. 대반에 의지해서 들어오고 있는 예쁜 인형 신랑 신부의 결혼식이다. 넋을 건지는 동안 슬피 울던 가족들도 결혼식이 시작되면 웃기 시작한다. “새색시 웃지 마라 딸 난다.” “술을 제대로 먹여야지.” 짓궂은 농담과 우스갯소리가 계속된다. 결혼식이 끝나면 인형 신랑 신부끼리 신방을 차려 준다. 물론 창호지를 뚫고 신방을 훔쳐보기도 한다. 조그만 어촌에서 벌어지는 굿판은 구경꾼들로 가득 차서 슬픔과 즐거움이 엇갈린다. 수십 리 안팎에서 모여든 할머니 아주머니 장사꾼들로 해서, 여름 바닷가 모래사장은 장터로 변한다. 가족들은 슬퍼하고 기뻐하고 구경꾼들은 굿을 즐기고 무당들은 박수 받기를 기대하고 ……. 굿을 좋아하는 민족에게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1985년/4권 《수용포 수망굿》)


 굿을 좋아하는 겨레한테서 볼 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곱다시 담아 온 김수남 님입니다. 딱히 사진을 안다 모른다 말할 수 없던 고등학생 때부터 “한국의 굿”을 기쁘게 장만하며 읽어 왔습니다. 스무 권을 통째로 장만하지 않고, 한 권 한 권 다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장만하면서 읽었습니다. 굿을 구경하지 못했고, 굿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내 삶인데, 고등학교 수험생에서 인천부터 서울까지 오가는 대학생이 되다가, 대학교는 집어치우고 신문배달 일꾼으로 일하면서 “한국의 굿”을 틈틈이 한 권씩 사 모았습니다. 굿판에 갈 겨를이 없는 바쁘고 빠듯한 삶을 되삭이면서 김수남 님 사진책에 실린 사람들 놀음과 웃음과 어우러짐과 눈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참말, 김수남 님은 다른 사진을 못 찍으시겠구나.’ 하고 느껴 왔습니다. 아니, 다른 사진도 제법 잘 찍으실는지 모르지만, 김수남 님으로서는 이 나라 이 겨레 삶자락을 ‘굿 사진 사랑’으로 풀어냈다고 느낍니다. 굿을 하는 사람들 주름살과 옷고름과 손짓에 이 겨레 삶이 묻어 있습니다. 굿을 치르려는 사람들 쪼그라든 살결 입술과 고랑진 이맛살 아래쪽에 옴폭 패인 눈자위에 이 땅 농사꾼과 고기잡이 삶이 배어 있습니다. 굿을 구경하는 사람들 애틋하거나 안타깝거나 즐겁거나 설레는 몸짓에 이 나라 수수한 사람들 웃음과 눈물이 한 올 두 올 어려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책을 좋아하는 동무한테 김수남 님 사진책을 보여주며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 하나야말로 우리 겨레 문화를 고스란히 밝힌다고. 대학생이 된 다음 동무나 선배나 후배한테 김수남 님 사진책을 한 권씩 선물로 사 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생이라면, 이 나라 대학생이라면, 김수남 님 사진책을 한 권쯤이라도 읽고 헤아리며 알아야 한다고.


.. 신굿은 심방들 자신들의 성무의례로 초신질, 중신질, 상신질을 발룬다(바르게 한다) 하여 일생에 세 번 행하는 큰 굿이다. 초신질 발루는 것은 심방을 하겠다고 신에게 고하는 일종의 내림굿이며, 중신질과 상신질은 중신층, 상신층으로서의 자격과 길을 인정받기 위한 굿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1981년 당시 스물한 살인 입무자 문순실의 초신질 발루는 굿을 찍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신타파라는 이름으로 굿하는 것이 급격히 소멸하던 시절이었다. 심방들의 이야기로는 몇 십 년 만에 하는 굿이라고 했다. 또한 신굿 과정 중의 몇몇 부분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던 심방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신굿에는 평소 작은 굿을 할 때는 볼 수 없는 제주의 많은 제차들이 등장한다. 신굿은 보통 열흘 이상 보름 정도 계속되는 큰 굿이다. 워낙 긴 기간 진행되고 많은 굿이 포함되어 있기에 대표적인 제차들을 중심으로 내보낸다. 여든이어멍으로 불리는 문순실의 어머니 역시 동김녕마을 당매인 심방이다. 그녀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대를 이어가며 모녀가 지금도 굿판에서 살고 있다. 이 굿이 진행된 문순실의 집은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와 접해 있다. 그래서 매일 새벽 다섯 시 경에 진행된 관세우를 보고, 아침식사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파도치는 바위 위에 앉아 전국의 굿과 무당들에 대해 십 여 일 동안 황루시 씨와 토론했던 기억이 새롭다 ..  (1989년/12권 《제주도 신굿》)


 김수남 님이 아니었어도 굿 사진을 찍은 사람이 꽤 있습니다. 김수남 님이 굿 사진을 찍던 무렵에도 적잖은 이들이 굿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굿 사진하고 김수남 님 굿 사진을 나란히 놓고 살피면, 다른 사람들 굿 사진은 영 못마땅합니다. 뭐하러 애먼 필름을 쓰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따로 돈이 되기에 찍는 굿 사진이 아니고, 굳이 ‘한국 문화를 적바림한다’는 거룩한 뜻에서 찍는 굿 사진이 아닙니다. 굿이건 뭐건, 굿이건 춤이건, 굿이건 헌책방이건, 굿이건 풍물패이건, 굿이건 대통령 행차이건, 굿이건 4대강 사업이건, 굿이건 재가발이건, 굿이건 연예인 알몸 모델이건, 다 사진은 사진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좋아할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삶터와 삶자락을 찍을 사진입니다. 김수남 님은 스스로 굿이 되었고, 스스로 굿하고 살짝 떨어진 자리로 나와서 굿판에 고요히 녹아드는 흐드러진 몸사위로 사진찍기를 하지 않았나 하고 느낍니다. 고요히 녹아드는 흐드러진 몸사위일 때에 이렇게 애틋하다 느낄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강릉단오제》를 읽으며 이 사진책에 붙인 글이 더없이 거추장스럽다고 느낍니다. 글을 붙일 자리에 사진을 더 넣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제는 김수남 님 사진에 섣부르거나 어설프거나 서툰 글을 보탬말로 달지 않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강릉단오제》 뒤쪽에는 빛깔 넣은 사진이 꽤 실리는데, 사진마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장면을 담았다’는 말만 아주 짤막히 붙이기만 하면서, 굿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보여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풀나풀 옷자락이 춤추는 결에 생긋 웃는 굿쟁이 얼굴이 아름다이 담긴 빛깔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아, 이 사진이야말로 《강릉단오제》 겉장으로 보여줄 사진이 아닌가 하고 깨닫습니다. 《강릉단오제》 겉에 실린 흑백 사진도 나쁘지 않으며, 이 모습 또한 썩 훌륭하다 할 만하지만, 김수남 님이 굿판에서 여러 날 함께 지내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추는 굿쟁이 웃는 얼굴’마냥 신나게 웃으면서 온 사랑을 바쳤을 테니까요.

 사랑하면서 찍은 굿 사진이거든요. 사랑을 쏟아 일군 굿 사진이거든요. 사랑을 소담스레 펼쳐 보이며 굿판에서 또다른 굿판을 선사하던 사진찍기이거든요. 굿판에서 굿을 벌인 굿쟁이이든, 굿을 치르려던 분들이든, 굿을 구경하던 사람들이든, 사진기 두 대로 새삼스럽고 남다른 살풀이굿을 선보이는 김수남 님을 서로서로 웃거나 울며 나란히 바라보았겠구나 싶거든요. (4343.1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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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 : 에드워드 슈타이켄
최봉림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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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사람과 삶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찾아 읽는 사진책 1] 최봉림,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디자인하우스,2000)


 사진길을 걸었던 에드워드 슈타이켄(에드워드 스타이겐) 님 이야기를 ‘마치 에드워드 슈타이켄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기라도 하는 듯 꾸며’서 엮은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를 읽습니다. 나라안 출판사에서 에드워드 슈타이켄 님 책을 펴낸 적은 딱 한 번입니다. 다만, 이 책은 해적판으로 《인간가족》을 몰래 펴낸 판으로, 그나마 1986년에 월간사진사에서 한 번 나오고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해적판이면서도 제대로 낼 만하지만, 해적판이면서 제대로 내지 못한 책이기에, ‘인간가족’이라는 사진잔치를 마련하여 도록을 엮은 슈타이켄 님 삶이나 넋을 고이 싣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한글로 된 자료라든지 책으로는 슈타이켄 님이 어떤 사진길을 걸으며 어떠한 사진밭을 일구었는가 헤아리기 몹시 어려워요.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라는 책은 2000년에 나옵니다. 슈타이켄 님 작품이라든지 슈타이켄 님이 마련한 사진잔치 모습이라든지 슈타이켄 님이 사진길을 걸을 무렵 둘레에서 이룬 남다른 사진 작품 들이 이 조그마한 책(128쪽)에 찬찬히 실립니다. 도판은 퍽 깔끔합니다. 그러나 슈타이켄 님이 이루었거나 일구었다 할 만한 작품세계를 차분하게 살필 만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살짝 엿볼 만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오직 생각날개로) 책을 쓴 최봉림 님은 “회화주의의 역사적 소임은 사진적 재현이 기계적 복제술이 아니라, 회화처럼 인간의 지성과 감수성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이라는 것을 예술계와 사회에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45쪽).”라든지 “선생님의 전시회는 인류의 희망과 화해를 기원하고 손짓했지만, 실제로 ‘인간 가족’이라는 이상적 개념은 오히려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를 호도하고 가리는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될 수도 있었습니다(97쪽).”라든지 하면서, 말이 좀 많습니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틀이라 한다면 이처럼 말이 좀 많을 수도 있다 할 만하지만, 이 작은 책은 최봉림 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서 읽을 책이 아닙니다. 최봉림 님이 이토록 온갖 말을 당신 입으로 더 드러내어 밝히고자 했다면 ‘마주이야기 틀’이 아닌 ‘비평 틀’로 책을 엮어야 옳다고 느낍니다.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를 읽는 내내 ‘슈타이켄 님 목소리’로 나오는 이야기가 참말 슈타이켄 님이 했던 말인지, 또는 당신이 손수 쓴 글에 적힌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따로 붙임말을 달아 어느 자료 몇째 줄에 실린 글에서 따서 적었다고 밝히지 않으니까요. 최봉림 님이 생각해 내어 적은 ‘슈타이켄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하는 말인지, 최봉림 님이 ‘슈타이켄 증언 자료를 이리저리 깁고 새로 엮으면서 묻는 말을 새로 만들었’는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곧이곧대로 믿으며 읽어야 할 뿐입니다.

 슈타이켄 님 목소리로 “점, 선, 면과 흑과 백의 계조도가 만들어 내는 항공사진의 추상적 형태미는 오직 사진이라는 매체만이 실현할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55쪽).”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라든지 “아름다움이 미술관과 살롱의 전유물로 갇혀 있기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술 운동의 한 결실인 셈이었죠(79쪽).”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와 아울러 자잘하게 묻고 대꾸하는 안부인사가 꽤 깁니다. 아마, 이런 안부인사란 ‘마주이야기 틀’로 엮은 책임을 또렷이 드러내면서 감칠맛나는 짜임새를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200쪽이나 300쪽짜리 책이 아닙니다. 사진 자료까지 곁들여 128쪽으로 자그맣게 엮은 책입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서 한결 속내를 캐내는 이야기를 뽑아 올려야 하는데, 그만 허울을 좋게 꾸미려 하면서 알맹이를 다루는 자리가 아주 줄어들고 맙니다. 이러면서 슈타이켄 목소리보다 최봉림 목소리가 더 높습니다.

 이를테면, 슈타이켄이 바라보는 사진과 사진길과 사진쟁이와 사진누리 들을 날카롭게 잡아채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슈타이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이렇게 말했다’ 하는 마주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아 몹시 아쉽습니다. ‘슈타이켄은 사진쟁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이와 같이 말했다’ 하는 마주이야기 또한 나타나지 않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스티글리츠의 ‘사진 분리파’가 성취하려 했던 것은 ‘사진 작가’에 의한 ‘예술 사진’, ‘예술 사진’을 위한 ‘사진 작가’, 사진작가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사진이었습니다(31쪽).” 하는 이야기처럼, 슈타이켄 이야기보다 스티글리츠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차지합니다. 이런 마주이야기라면 아흔네 살까지 잘 살았다는 안부인사가 아니라, 슈타이켄 어린 나날 이야기를 여쭙고, 어린 나날 어떠한 터전에서 무엇을 누리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마음을 살찌웠는가 귀기울여 들으며, 사진과 삶과 문화와 사람을 슈타이켄 님 나름대로 어떻게 배우며 받아들였는가를 아로새겨 주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주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최봉림 님은 굳이 슈타이켄 님 입을 빌어 “만족했지요. 돈, 명예, 그리고 권력은 언제나 내 편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사진가’는 아니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진가라고 말하는 것이 옳았을 겁니다(103쪽).” 하는 말을 끄집어 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끄집어 내면서도 책을 통틀어 ‘왜 슈타이켄이 온누리에서 널리 우러르는 사진쟁이’인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도 끄집어 내지 못했습니다. 128쪽짜리 책에서 103쪽까지 이루어진 마주이야기 내내 ‘슈타이켄이 이룬 열매’와 ‘슈타이켄 발자취와 이 발자취 비평’을 이야기하는 데에 쏠립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마주이야기를 이토록 따분하게 엮으면서 온갖 지식과 정보만을 담으려 한다면, 차라리 마주이야기가 아닌 ‘슈타이켄 사진론 비평’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식으로 사진비평책을 낼 노릇이라고. 평전을 쓰든 비평책을 내든 ‘주관이 아닌 객관’이라는 자리에 튼튼히 서면서 더욱 낱낱이 따지거나 파헤치는 비평책을 써야 한다고. 슈타이켄 님이 일군 사진을 1부에 넣고 슈타이켄 님이 빚은 사진잔치를 2부에 넣으며 슈타이켄 님이 가르친 사진쟁이 이야기를 3부에 넣은 다음 슈타이켄 님과 스티글리츠 님이 맺은 사진삶을 4부에 넣으면서 5부에 이르러 ‘슈타이켄 종합 비평’을 하는 정식 이론책을 내놓아야 비로소 읽을 만한 사진책 하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라는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국도 밥도 죽도 아닙니다. 게다가 책이름에 적바림한 “성공신화의 셔터”라는 이야기조차 풀어내지 못합니다. 왜,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성공하여 신화를 이루었는지’ 밝히지 못합니다. (4343.10.26.불.ㅎㄲㅅㄱ)


-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 (최봉림 글,디자인하우스,2000.6.1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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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이 Fighting Bull, Hanmyung
윤현수 사진 / 눈빛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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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사랑하는 만큼 찍는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8] 윤현수, 《한명이》



- 책이름 : 한명이
- 사진 : 윤현수
- 펴낸곳 : 눈빛 (2008.9.23.)
- 책값 : 35000원



 (1) 내 삶자리를 사랑하면서 사진 한 장


 사진쟁이는 사진을 찍고 그림쟁이는 그림을 그리며 글쟁이는 글을 씁니다. 연극쟁이는 연극을 하고 춤쟁이는 춤을 추며 노래쟁이는 노래를 합니다. 노래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춤에도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글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 한편 그림에도 숱한 갈래가 있어요. 사진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찍기에도 갖가지 갈래가 있어요.

 가지가지 다른 길을 걸으면서 하는 사진이며 그림이며 글이며 연극이며 춤이며 노래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할 수는 없는 사진이며 그림이며 글이며 연극이며 춤이며 노래입니다. 노래를 하는 이 가운데에는 레코드판이나 시디를 긁어서 소리를 새로 만드는 사람이 있을 테고, 전자장비를 만져 ‘지구에는 없는 소리’를 남달리 빚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 가운데에도 사진기와 필름과 메모리카드로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필름만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 있고 갖가지 장치를 하거나 전자장비를 써서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문화를 즐기거나 무슨 예술을 뽐내건 언제나 사진이고 그림이며 글입니다. 연극이며 춤이고 노래입니다. 이들 문화는 늘 내 삶자리에 바탕을 둡니다. 이러한 예술은 한결같이 내 삶자락에 뿌리를 둡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일구는 문화인 사진입니다. 내가 살아가고픈 대로 가꾸는 예술인 글입니다. 내 삶이 아닌 네 삶이 훨씬 좋아 보여 네 삶을 좇으며 따라하는 문화나 예술은 될 수 없습니다. 스승을 좇는다든지 동무를 따른다든지 할 수 없어요. 노상 내 모습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하는 모든 일에 느긋함이 뱁니다. 능금을 팔든 배추를 팔든 물고기를 팔든 이이가 장사하는 가게에는 느긋함이 어려 있어요. 더 많은 돈을 뽑아내고파 하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하는 모든 일에 돈내음이 뱁니다. 회사를 꾸리든 회사원으로 있든 이이 옷자락과 발걸음에는 돈내음이 물씬 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하는 모든 말에 착한 기운이 서립니다. 기나길게 말을 하든 짤막히 말을 하든, 편지를 쓰든 보고서를 쓰든 착한 기운이 가득 서립니다. 자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이가 펼치는 모든 문학에 자랑하는 어깨춤이 깃듭니다. 사진을 찍든 노래를 하든 그림을 그리든 똑같습니다.

 아이 하나를 함께 낳아 함께 기르면서 하루 내내 아이를 들여다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보여주는 모습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이가 내뱉는 말은 어버이가 아이 앞에서 내뱉는 말 그대로입니다. 아이가 먹는 밥은 어버이가 먹는 밥 그대로예요. 어느 하나 아이 스스로 새로 만들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않은 모습이 없습니다. 아이한테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면 어버이로서 사랑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이고, 아이한테서 밉살스러움을 느낀다면 어버이부터 밉살스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이랑 스물일곱 달째 살아가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아이 오늘 모습에 사랑스러움이 드러나는지 고단함이 드러나는지 착하며 고운 빛이 드러나는지 지루하며 골 부리는 몸가짐이 드러나는지 가만히 살핍니다. 겉보기로는 아빠가 아이를 찍은 사진이지만, 속보기를 한다면 아빠 된 어버이가 아이랑 복닥이는 하루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진쟁이 작품을 언제 어디에서나 구경하거나 돌아볼 수 있는 오늘날입니다. 바야흐로 사진이 넘치는 이 나라 사진삶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예나 이제나 사진책은 잘 안 팔린다 하고, 예나 이제나 사진책 펴내는 출판사는 작품책 하나 선뜻 내놓지 못한다 하며, 예나 이제나 사진길을 고지식하게 파고드는 사람은 배를 곯는다 합니다. 그런데 잘 안 팔린다는 사진책이 나날이 더 많이 나오고, 펴내기 힘들다는 사진책 또한 꾸준히 많이 나오며, 사진 한길을 걷는 사람은 더 늘어납니다.

 고작 열 해쯤 앞서인 2000년을 생각하면, 또 1990년을 돌아보면, 사진책 하나 번듯이 내놓은 한국 사진쟁이는 얼마 안 됩니다.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진잔치 숫자는 썩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5년을 곱씹고, 2010년을 살피며, 다가올 2015년을 내다본다면, 사진책 하나 멋들어지게 내놓는 사람 숫자는 부쩍 는다 할 만하고, 사진잔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할 만합니다. 갖가지 갈래 온갖 사진을 아주 많은 사진쟁이들이 다 다른 눈썰미와 손짓으로 이루어 냅니다.

 지난날에는 오로지 필름사진이었고, 이제는 필름사진과 디지털사진 두 가지입니다. 여기에 디지털사진이 아닌 만듦사진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틀은 ‘사진’을 빌지만 ‘예술’을 하는 이들이 퍽 늘었어요. 이름부터 ‘사진찍기’가 아닌 ‘사진빚기’를 하는 분들이 꽤 늘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예술을 뽐낸다고 하는 이들만 사진빚기를 하지 않습니다. 멈추어 있는 물건을 그리는 그림이 있고, 모델을 세워 놓고 그리는 그림이 있듯, 정물만을 찍거나 모델만을 찍는 사진빚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진은 이름은 사진찍기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진빚기입니다. 정물과 모델을 빌어 당신 생각과 목소리를 담는 예술로 거듭나는 사진빚기입니다.

 말 그대로 사진찍기를 하는 사진쟁이는 무척 줄었습니다. 앞으로도 말 그대로 사진찍기로 사진을 즐기는 사진쟁이는 더 줄어들리라 봅니다. 사진기 하나를 믿거나 기대어 나하고 마주하는 사람과 만나면서 삶을 일구는 사진쟁이는 그예 줄어들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나랑 마주보는 목숨과 물건과 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찍기로 거듭나는 사진쟁이는 자꾸 사라지리라 봅니다. 내 삶자리를 사랑하여 사진을 좋아하는 사진쟁이를 만나기 힘들어지며, 내 삶자리는 아랑곳하지 않는 가운데 사진빚기를 하는 사진쟁이만 수두룩하게 늘어난다 싶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진은 사진이라 하겠지요. 이렇게 일해서 벌거나 저렇게 일해서 벌거나 돈은 돈이라 하니까요. 이마트 값싼 물건을 장만하여 아이를 먹이든, 동네 구멍가게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들여 아이를 먹이든, 생협에서 올바른 먹을거리를 마련하여 아이를 먹이든, 손수 땅을 일구어 아이를 먹이든, 어찌 되든 똑같이 밥이니까요.

 내 어머니를 사진으로 찍어도 내 어머니하고 깊디깊이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장 두 장 고맙게 ‘얻는’ 사진을 어머니랑 웃음과 울음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그러모아 선보이는 사진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내 어여쁘거나 잘생긴 짝꿍을 사진으로 담아도 내 짝꿍이랑 서로서로 어떤 길을 걸어오며 어떤 꿈과 보람으로 어떤 삶을 일구었는가를 톺아보는 가운데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을 길어올리는 사진 작품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합니다. 골목길을 찍든, 여자 고등학생을 담든, 대나무숲을 옮기든, 몸매 좋은 연예인을 그리든, 나라밖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에서 티없는 웃음을 빼앗든, 너무 섣불리 지나치게 빨리 참으로 우악스럽게 ‘만드는’ 사진이 아주 많이 넘실거리는 한국 사진밭이라고 느낍니다.

 왜 우리는 이 나라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터와 이야기를 올망졸망 아기자기 알뜰살뜰 오순도순 ‘찍지’ 못하는가요. 우리는 내 곁에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님을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없는지요. 구경하는 사진이나 뽐내는 사진이나 만드는 사진이 아니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숨결을 보듬는 사진을 이룰 수 없나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땀투성이가 된 채 싱긋빙긋 웃고 떠드는 사진을 즐길 수 없나 궁금합니다.

 사진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문학(글)도 삶이요, 노래도 삶이고, 춤도 삶입니다. 그림과 만화도 삶입니다. 연극과 영화도 삶입니다. 모두모두 내 삶을 살포시 어루만지어 나타내는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사진은 삶입니다. 사진은 사랑하는 내 삶입니다. 사진은 사랑하는 내 삶과 함께 있는 고운 벗님과 살붙이랑 어울리는 신나는 삶입니다.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 아이 얼굴이든 몸이든 모습이든 사진 하나로 찍지 못합니다. 내가 내 터전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골목길이든 도심지이든 고샅길이든 바닷가이든 사진 하나로 담지 못합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내 삶을 옮기는 일이지만, 그냥저냥 흐르는 내 삶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둘도 셋도 넷도 없이 아끼며 사랑하는 내 삶을 눈물콧물땀방울 뒤섞어 힘차게 옮기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일이에요. 사랑하는 일이랍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일이고요. 내 삶이고 내 사랑이며 내 사람이거든요.


 (2) 소 아닌 싸움을 찍은 ‘한명이’ 이야기


 사진책 《한명이》를 읽습니다. 《한명이》는 사진책인 만큼 사진은 ‘본다’고 해야 맞으나, 사진책 《한명이》를 읽습니다. 소 이야기나 소 삶을 다룬 사진이 아닌 소를 빌어 사람살이 싸움과 싸움판을 넌지시 보여주는 사진책 《한명이》를 읽습니다.

 사진책 《한명이》는 싸움소 가운데 ‘한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가 싸움판에서 어떻게 싸우는가, 싸움판 바깥에서는 어떻게 지내는가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사진쟁이 윤현수 님은 싸움소 한명이를 빌어 당신이 하루하루 살아낸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윤현수 님 사진감은 싸움소요, 싸움소 가운데 한명이입니다만, 정작 이 사진책 《한명이》에서는 싸움소 한삶이나 한명이 하루를 담지 않습니다. 오직 윤현수 님이 어떤 마음과 눈길과 몸짓으로 살아가는가를 당신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 무릇 산 것들 중 싸우지 않는 것이 있을까. 소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약 2천 년 전 정도로 추정된다. 아마 그때부터 소싸움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싸움의 이유도 다양하였을 것이지만, 사람의 싸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의 소싸움은 일종의 놀이다. 야생의 자연스런 소들의 싸움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한 규칙과 약속에 의한 싸움놀이이다. 현재와 같은 민속놀이 소싸움은 아마 명절인 추석 때 풍년과 화평을 기리는 뜻으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진주 소싸움의 기원은 백제와 싸워 이긴 신라가 시작했다는 전승기념 잔치 설을 비롯하여 고려 말부터 자생했다는 고유의 민속놀이 설 등 다양하다 ..  (172쪽)


 사진쟁이 윤현수 님이자 씨이오라 할 만한 윤현수 님한테 사진은 ‘싸움’입니다. 아니 윤현수 님이 사진기를 들기 앞서 윤현수 님 삶은 ‘싸움’입니다. 윤현수 님이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싸움’으로 날을 지새웁니다.

 싸움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따질 수 없습니다. 어떠한 이야기이든 사진으로 알뜰히 담으면 넉넉합니다. 이런 이야기이든 저런 이야기이든 사진으로 담는 손길과 그릇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우면 즐겁습니다. 예쁜 꽃을 찍어야 예쁜 사진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픈 사람들을 찍는다고 아픈 사진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윤현수 님 사진에 담기는 소들, 싸움소들은 어떤 목숨인지 궁금합니다. 윤현수 님은 ‘우리 나라에 소가 처음 들어온 2천 년 앞서부터 소싸움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 나라에 소싸움이 벌어지기로는 ‘신라 때나 고려 때 즈음’이라고 (윤현수 님 스스로) 말합니다. 고려 때라면 육칠백 해쯤 앞서일 테고, 신라 때라면 즈믄 해쯤 앞서가 될까요. 그런데 참말 소싸움이 그무렵부터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으려나요. 소싸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이 즐길 뿐, 여느 농사꾼은 즐기지 않았다면 이를 어떠한 ‘문화’나 ‘삶’으로 보아야 할는지요. 지난날 농사짓던 사람 가운데 소를 부릴 만한 살림을 꾸린 이는 얼마나 되었을는지요.


.. 그래 끝장을 보아야 한다. 두 마리의 싸움소가 내뿜는 모래먼지 속에서 승패를 향한 그치지 않는 뿔 치는 소리는 〈비창〉 3악장의 팀파니 소리에 섞여 나의 이를 시리게 한다 ..  (177쪽)


 윤현수 님은 더 잘 찍은 사진이 아니고, 더 못 찍은 사진이 아닌, 꼭 윤현수 님이 좋아하는 삶결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윤현수 님 소싸움 사진에서 피가 튄다면 윤현수 님 삶에서 피가 튀기 때문입니다. 윤현수 님 소싸움 사진에서 짜릿함을 느낀다면 윤현수 님 삶에서 짜릿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윤현수 님 소싸움 사진에서 아픔과 괴로움과 고단함이 엿보인다면 윤현수 님 삶에 아픔과 괴로움과 고단함이 늘 어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한명이》를 읽고 거듭 읽고 다시 읽으면서 제 마음이 썩 따스하지 못합니다. 윤현수 님으로서는 한명이라는 싸움소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진을 찍어 책으로 여밀 때에 사람들하고 따스함을 나눌 마음이 아니었구나 싶거든요. 윤현수 님은 당신 삶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데에 알뜰합니다. 들여다보자면 소요 싸움소요 한명이입니다. 이름표는 틀림없이 ‘한·명·이’입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윤·현·수’예요. 윤현수 님은 사진이라는 매체 빛깔을 잘 헤아리면서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당신이 곧바로 쏟아낼 이야기보다는 사진이라는 옷을 입힌 문화나 예술로 당신 발자국과 걸음걸이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 서기보다 한 꺼풀 옷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수많은 싸움소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장을 누빈다. 그러다 싸움소로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 싸움소는 일반 비육우보다 훨씬 싼값에 넘겨진다. 억대에 달하는 이름값은 첫새벽 이슬처럼 사라지고, 다만 육질이 질긴 소로서 생을 마감한다 … 나도 그저 한 마리 소가 된다. 한명이가 된다. 덕성농장의 한 마리 싸움소가 된다. 내 피멍든 삶의 상처 속에 강씨 부자의 오줌찜질이 놓인다. 그들의 눈길과 손길이 청·홍·황빛의 묵은 광목이 지친 내 이름을 감싼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를 본다. 당뇨, 빨치기, 폐병. 세상의 병고 속을 우리 안의 한 마리 곰처엄 의연히 싸우다 가신 아버지가 보인다 ..  (180∼181쪽)


 “무릇 산 것들 중 싸우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하고 묻는 윤현수 님입니다. 그래요, 아마 아직은 잘 안 보이실 테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부디 보거나 느끼거나 알아채 주시면 좋겠어요. 산 목숨 가운데 안 싸우며 사랑하는 예쁜 님이 무척 많답니다. 싸움이라는 낱말을 아예 모르는 사람 또한 몹시 많아요.

 팔리 모왓 님이 쓴 《잊혀진 미래》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보셔요.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라는 책을 가만히 읽어 보소서. 그지없이 착하며 고운 사람들 삶자락이 알뜰히 서려 있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말괄량이 삐삐’ 이야기이든 ‘떠돌이 라스무스’ 이야기이든 곰곰이 새겨 보셔요. 얼마나 따스하며 넉넉한 가슴으로 내 이웃을 보듬는 사람이 많은가를 놀랍게 깨달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저는 “무릇 살아가면서 사랑하지 않는 목숨이 있을까?” 하는 말마디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요. 우리는 사랑하며 어깨동무해요. 우리는 사랑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려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이 가득합니다. 사랑으로 아침밥을 차리고, 사랑으로 살붙이 빨래를 하며, 사랑으로 집식구 잠자리를 깔아 함께 잠을 잡니다. 사랑하는 동무들이랑 일을 하여 살림돈을 마련하고, 사랑하는 이웃들이랑 마을이나 동네를 이루며, 사랑스러운 뭇목숨 어우러진 숲과 들과 바다를 소담스레 돌보면서 이 땅 이 나라에 두 다리로 우뚝 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사진 또한 있고, 사랑이 없을 때에 사진 또한 없습니다. (4343.10.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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