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눈빛사진가선 16
김보섭 지음 / 눈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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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5



한때 ‘인천 한복판’이던 ‘중구’ 차이나타운

―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

 김보섭 사진

 눈빛 펴냄, 2015.10.1. 12000원



  인천 중구는 행정구역으로 ‘중구’인데, 길그림으로 살펴보면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는 안 보입니다. 인천이 걸어온 길은 인천이라는 고장으로서 곧게 걸은 길이 아닌 탓입니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항구가 선 곳이면서 바닷길로 서울하고 이어지는 징검돌입니다. 오늘날에는 직할시를 거쳐서 광역시가 되었기에 땅으로 치자면 넓습니다만, 지난날에는 그저 자그마한 고을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도 인천은 그리 크지 않은 고을이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서 ‘중구’나 ‘동구’ 같은 이름은 오늘날에는 걸맞지 않은 이름이지만, 이 이름에는 인천이라는 곳이 걸어온 자취가 고스란히 남습니다. 길그림을 보면 ‘중구’가 맨 왼쪽, 이른바 가장 서쪽에 있습니다. ‘동구’는 중구 위쪽에 있어요. 인천 ‘남구’는 중구하고 동구 오른쪽인 동쪽에 있습니다. 인천 ‘서구’는 동구 위쪽인 북쪽에 있어요. 이제는 계양구나 부평구라는 이름을 쓰지만 예전에는 ‘북구’라는 이름을 썼고, 이 북구는 인천에서 동쪽 끝에 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얼거리이다 보니 인천 길그림을 살피면 ‘동서남북’이 모두 뒤죽박죽인 셈이라고 여길 만해요.


  오늘날에는 뒤죽박죽이지만, 인천이라는 작은 고을이 도시로 커진 일제강점기를 살피면, 그무렵에는 ‘인천 = 중구 + 동구’였다고 여길 만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랬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인천 중구는 일본사람이 살던 곳이면서, 중국사람도 건너와서 살고 서양사람도 나란히 살던 곳이었어요. 그무렵에도 중구 쪽에 한국사람이 살았지만, 일본은 ‘조계지’라는 울타리를 내세워서 한국사람이 섣불리 넘보지 못하게 했어요. 이러면서 한국사람은 ‘동구’라는 곳에 몰려서 살았지요. 잠은 동구에서 자고, 일은 중구에 가서 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요즈음 인천에서 잠은 ‘인천에서’ 자고 일은 ‘서울에서’ 하는 틀하고 비슷한 모습이에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일제강점기 중구’ 자리는 일본사람이 ‘한복판에 선’ 곳이요, 여기에 중국사람도 한복판에 선 곳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전철역 이름에도 아직 이런 자국이 남았어요. ‘인천역’은 경인선 맨 왼쪽(서쪽)에 있는 끝 역이고, ‘동인천역’은 인천역 옆에 있는 곳인데, ‘동인천역’은 ‘이제 동쪽 인천이 아닌, 맨 서쪽에 있는 인천’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인천역’이라는 이름이 인천 중구에 있던 까닭은 그곳이 옛날에는 인천 한복판이었다는 뜻이고, ‘동인천역’은 인천 동쪽 끝자락을 가리켰다는 뜻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동인천역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거기는 인천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됩니다. 옛날에는 그랬겠지요.



나의 기록은 1980∼2000년까지의 인천 화교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많은 중국집들로 화려하지만 그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은 여러 가지 이유로 쇠락해 있었다. 나는 사라져 가는 역사의 자취를, 화교 1세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다. (사진가 노트)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면서 인천이라는 고을이 차츰 커집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들어선 수많은 공장은 더욱 많이 늘어났습니다. 서울 옆에서 서울에 자원과 물건과 사람(인력)을 대는 고을로 커집니다. 이러면서 ‘인천 한복판’은 중구 쪽에서 차츰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서울하고 가까운 쪽으로 움직입니다. 인천역이나 동인천역이 ‘인천 중구’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구도 ‘인천역·동인천역’도 ‘옛날 한복판(구도심)’일 뿐입니다.


  김보섭 님이 1980∼2000년 사이에 찍은 ‘인천 차이나타운’ 모습을 담은 사진책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눈빛,2015)을 읽으면서 인천 발자취와 ‘중구’라는 이름과 ‘한복판(도심, 구도심, 신도심)’이라는 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나는 인천 ‘남구(도화동)’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동구(송월동)’이고, 어린 날이나 국민학교는 ‘중구(신흥동)’에서 보냈습니다. 집과 학교와 이웃집 사이는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다녔고, 공항이 들어서기 앞서 배로 오가던 영종섬을 꽤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은 인천 중구에서도 ‘북성동·선린동’ 두 마을을 찬찬히 살핍니다.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은 ‘차이나타운’인데,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을 생각하니, 영어로 차이나타운뿐 아니라, ‘청관’이란 한자말도 썼고, ‘중국인거리’나 ‘중국인마을’이란 이름도 썼어요. 그냥 ‘북성동’이나 ‘선린동’이라고만 하기도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눈부시도록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요 선린동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계획 때문에 인천이라는 곳이 ‘서울 언저리 공업 위성도시’ 구실을 하는 동안에는 행정이나 경제 모두 ‘오른쪽으로(서울과 가까이)’ 갈밖에 없었으니, 그 눈부신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나 선린동은 차츰 저물밖에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고속도로가 나고, 중구에 있던 온갖 시설이 다른 구로 옮기면서 ‘중구’는 ‘한복판’이라는 이름이 바래도록 더 크게 저물었을 테고요.


  나는 어릴 적에 ‘중구에 있던’ 여러 학교들하고 인천시청에다가 인천시외버스역이 모두 ‘다른 구’로 옮기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학교와 행정기관과 여러 시설이 중구에서 다른 구로 옮기면서, 그야말로 인천 중구하고 동구는 나란히 비면서 엄청나게 조용해졌어요.


  요즈음은 ‘차이나타운 관광지’로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 마을로 바뀌는 중구이지 싶습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중국인마을’도 관광바람이 불며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북성동이든 선린동이든 청관이든 차이나타운이든 중국인마을이든, 예나 이제나 똑같은 대목이 하나 있어요. 북새통을 이루었든, 눈부심이 저물었든, 새 관광바람이 불든, 작고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입니다.


  관광지 걸개천이나 붉은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들어서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이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얌전하면서 수수한 골목집이 어깨를 맞댑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집에서 얌전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여느 얼굴입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북성동이나 선린동에 살던 내 어릴 적 동무들은 ‘그냥 동무’였습니다. 화교도 뭐도 따로 아닌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바다 너머에 있는 어떤 나라를 그리는 마음을 때때로 느끼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오늘 함께 웃고 떠들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예요.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놀던 골목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을 낳고 돌본 어버이(이웃 아저씨 아주머니) 모습을 작은 사진책 한 권에서 새삼스레 되돌아봅니다. 2016.4.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어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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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 한치규 사진집 3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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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4



‘평화 이후’를 바라는 ‘분단 이후’ 이야기

― 분단 이후,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

 한치규 사진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1929년 함경남도 정평 출신으로, 1·4 후퇴 때 어선을 이용해 월남했다. 그 후 군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79년 보안사 기조처장(대령)을 마지막으로 예편하기까지 30여 년간 군생활을 하였다. 전쟁 이후 군생활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고 판단해 일본에서 발행하는 사진실기 강좌를 어렵게 구독하여 사진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사진가 한치규 님 해적이)




사진책 《분단 이후,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눈빛,2016)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책 《분단 이후》는 ‘한치규 사진집’ 셋째 권입니다. 한치규라는 분은 직업군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또 수수한 서울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가라는 이름보다는 ‘사진 즐김이’로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찬찬히 찍어서 남겼다고 느낍니다.


문화를 이루려는 사진이 아니라 삶을 적으려고 하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예술을 펼치려는 사진이 아니라 살림을 아로새기려고 하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지난 2012년 5월에 《한씨네 삼남매》가 사진책으로 태어났습니다. 2016년 2월에 《변모하는 서울》과 《분단 이후》가 나란히 사진책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진책 《분단 이후》를 넘기면, 한치규 님이 마주한 비무장지대와 군대 모습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한치규 님은 사병이 아닌 간부(장교)였기에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봅니다. 사병이 군대나 비무장지대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군사법에 걸려서 옥살이를 해야 하거든요. 간부(장교)는 얼마든지 홀가분하게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온갖 모습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진책 《분단 이후》를 넘깁니다. 한치규 님은 어떤 멋들어진 제식훈련(전국대학교련 실기대회)이나 군사행렬(월남 파병 환송국민대회)도 사진으로 담곤 했지만, 비무장지대나 철책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아름다운 이 나라 숲과 골짜기가 아스라이 펼쳐진 모습을 꽤 많이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참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얼핏설핏 철조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금수강산’을 찍은 사진이네 하고 느낄 만합니다. 이곳저곳에 길다랗게 철책이 늘어진 모습이 드러나기에 남녘하고 북녘이 갈린 생채기가 사진마다 도사린다고 할 만합니다.


문득 예전 어떤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입니다. 나는 1990년대에 강원도 양구에서 육군 보병으로 있었고, 이무렵 경계근무를 서든 그냥 지오피에 있든 언제나 ‘맨눈으로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가 짙게 덮이거나 구름이 두껍게 깔린 날이 아니라면 으레 금강산 봉우리를 보며 지냈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있던 부대나 철책 둘레에 흐르는 냇물이 어떤 냇물인지 몰랐습니다. ‘두타연’이라는 이름은 전역하고 한참 뒤에 알았고 ‘용늪’이라는 이름도 참으로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두타연이라는 골짝물을 마음껏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가 연어인 줄도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사진책 《분단 이후》에 나오는 ‘성명을 알 수 없는 적군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싸합니다. 나는 군대에서 수색이나 정찰을 해야 하던 때에 ‘아군 무덤’인지 ‘적군 무덤’인지 알 길이 없는 무덤을 제법 보았습니다. 나뭇가지를 십자가처럼 얽어서 땅에 박은 무덤이에요. 덩굴이 우거진 수풀에 이런 나무십자가 무덤이 꽤 있었어요. 이런 무덤을 볼 적마다 그저 철모를 벗고 고개를 숙입니다. 두 손을 모아서 절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교통호를 판다든지 철조망을 새로 치는 일을 할 적마다 땅을 파야 하는데, 이렇게 땅을 파다 보면 뼈다귀도 나오고, 예전 부대에서 파묻은 쓰레기가 썩지도 않은 채 나오기도 했습니다.


‘땅굴 시추 현장’ 사진에서 김이 솔솔 나는 밥 한 그릇 먹으려고 모인 군인을 보며 가슴이 찡합니다. 한겨울에 따끈따끈 김이 나는 밥 한 그릇이라니. 얼마나 따뜻하고 반가울까요. 나는 군대에서 한겨울(혹한기) 훈련을 하다가 숟가락이 입천장에 달라붙어 안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날 수은주로 영하 18도였는데, 언손으로 겨우 숟가락을 쥐어 국물을 떠서 입에 넣고 빼다가 숟가락이 붙었지요. 누군가 뜨거운 물을 얻어 와서 입에 들이부어 주었기에 ‘뜨거운 기운’보다는 ‘숟가락이 떨어졌다’며 마음을 놓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겨울에 훈련을 할 적에는 눈밭에 천막을 치고 자면서 누구나 군화를 품에 안고 자요. 그런데 군화를 품에 안고 자도 얼어서 쪼그라드니, 새벽에 다시 군화를 발에 끼우려면 용을 써야 합니다. 그래도 군화가 안 들어가서 발이 다 안 들어간 채 엉성하게 한 시간쯤 걸어서 ‘발에서 나는 땀’으로 군화를 녹이면 비로소 끝까지 다 들어갑니다.


‘파월 장병을 면회하는 가족’ 사진을 보면, 비무장지대에 있던 터라 아무도 면회를 올 수 없는 곳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참으로 그래요. 전쟁훈련을 시키는 군대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어버이는 늘 걱정하고 근심이 가득합니다. 총을 두 손에 쥔 젊은이는 죽음을 늘 코앞에서 맞닥뜨려야 합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내가 죽지 않으려면 너를 죽여야 하는 군대입니다.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웃나라 멀쩡한 젊은이’를 죽이도록 훈련을 시키는 군대예요.


분단은 한겨레를 두 나라가 되도록 갈랐습니다. 흔히 ‘군사문화’라 하지만, 아무래도 ‘문화’라 할 수 없는 이 ‘군대신분계급질서’는 두 나라에 아주 깊이 박혔지 싶습니다. 군대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군대 같은 신분이나 계급으로 위아래가 갈리기 일쑤입니다. ‘위에서 시키’면 ‘아래에서는 고스란히 따라’야 합니다. 밥그릇을 비운 숫자(나이값)로도 신분이나 계급이 갈립니다. 전쟁무기도 군부대 크기도 좀처럼 줄어들 낌새가 안 보입니다.


한치규 님이 1960∼70년대에 사진으로 남긴 모습은 스물 몇 해가 지난 1990년대 군부대에서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마흔 몇 해가 지난 오늘날 군부대에서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아니, 이제는 남녘이나 북녘 모든 자리에서 군대가 사라지고 평화가 새롭게 태어날 노릇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철조망을 걷고 지뢰를 치울 수 있기를 빕니다. 낡은 탱크와 소총은 녹여서 낫과 호미와 쟁기로 바꿀 수 있기를 빕니다. 금수강산이라 일컬을 만큼 아름다운 ‘천연보호구역’마다 군부대가 어김없이 있는데, 천연보호구역을 앞으로도 천연보호구역이 되도록 지킬 수 있기를 빕니다. 군대와 전쟁무기를 앞세운 평화가 아니라, 참말 평화로운 삶과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가꾸는 평화가 남북녘에 함께 뿌리내릴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책 《분단 이후》를 가만히 덮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분단 이후” 어느새 일흔 해나 됩니다. 앞으로는 분단이 아닌 “평화 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고 글로 담으며 그림으로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삶자리를 일구는 하루가 되기를 꿈꿉니다. 남녘에서는 금강산도 묘향산도 백두산도 마음껏 드나들고, 북녘에서는 지리산도 북한산도 한라산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새로운 삶을 꿈꿉니다. 2016.3.24.니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기/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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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 안단테마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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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0



아버지는 ‘사진가’와 ‘시인’이 된다

―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안단테마더 펴냄, 2016.1.11. 18000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과분한 일상. 이것이 바로 나의 보물이다(109쪽).” 같은 멋있는 말을 들려주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안단테마더,2016)를 무척 고맙게 읽습니다. 왜 고맙게 읽느냐 하면, 이 사진책을 빚은 아베 고지 님은 이녁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면서 숲을 누비는 기쁨을 기꺼이 나누어 주거든요.


  석 달 동안 배를 타고 한 달 동안 뭍에서 쉬는 일을 하는 아베 고지 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석 달 동안 아이들을 볼 수 없이 일하다가는, 비로소 한 달 동안 말미를 얻어서 아이들하고 만난다고 해요. 한 해 가운데 아홉 달은 아이들도 곁님도 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겠지요?



삼 개월 만에 만나면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라 있다. (4쪽)


사슴벌레를 모자에 넣고 그대로 머리에 쓴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 세계의 ‘멋’. (8쪽)





  석 달 만에 만나는 아이들은 늘 놀랄 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석 달 만인걸요.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니, 석 달이라는 나날은 얼마나 길까요. 한 달씩 말미를 얻어서 쉰다고 하더라도 다시 석 달을 헤어져야 하니까, 한 달이라는 나날은 무척 짧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이리하여 아베 고지 님은 한 달을 쉬는 동안 늘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겠노라는 다짐을 합니다. 아이들하고 만나서 놀려고 석 달을 일한다고 할까요. 석 달을 배를 타며 일하는 동안 ‘앞으로 다시 한 달 동안 신나게 놀아야지’ 하고 꿈을 키운다고 할까요.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마음을 잘 알리라 느낍니다. 아버지가 드디어 배를 내리고 뭍으로 돌아올 적에 기쁘게 웃으면서 안길 테지요. 눈물 같은 기쁜 웃음을 짓지요. 이러다가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서로서로 아쉽고 서운한 손짓으로 헤어질 테고요.


  사진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기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이 있고, 사진기라는 기계가 있기에, 우리는 그립고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짝님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아마 사진이 없었으면 그림을 그리고 글월을 띄웠을 테지요. 마음속에 오롯이 이야기를 담으면서 떠올리려 할 테지요.



신나는 게 최고. (20쪽)


단순함이 좋다. 빛이 나니까! (26쪽)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는 오직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된 아베 고지 님은 처음에는 ‘사진’이라고는 조금도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아이’조차도 잘 몰랐다고 해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한집살림을 가꾸다가 큰아이가 태어난 뒤에 차츰 ‘아이’를 느꼈고, 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딸이 돌이 되었을 무렵, 함께 산책하러 가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잡거나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 같으면 내 다리를 붙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아이나 엄마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선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싹텄습니다(120쪽).” 같은 말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제껏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고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사랑 어린 손길로 사진기를 들고, 기쁨 어린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꿈이 가득한 마음결로 사진기를 쥐며, 웃음 가득한 숨결로 사진을 찍어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진에 찍혀 줍니다. 이 사진은 모두 ‘아버지가 다시 배를 타고 석 달 동안 일하러 가’면, 배에서 이 사진을 돌아보면서 저희를 그릴 줄 알아요.



여름에는 매미잡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32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웃음소리가 아닐까? (43쪽)





  나도 아이들을 늘 사진으로 찍는 사람으로서 이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사진으로 찍힐 때에는 기쁘게 웃으며 노는 때입니다. 기쁘게 웃으며 놀 수 있기에 어버이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스스럼없이 찍혀 줍니다. 모델이 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입니다. 모델을 찍는 어버이가 아니라, 그저 기쁘게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어버이입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사진을 찍는 동안 어느새 ‘사진가’가 됩니다. 사진을 잘 배우고 훌륭히 찍기에 ‘사진가’이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에 담는 숨결이란 언제나 사랑이라는 대목을 깨닫기에 사진가입니다. 사진 솜씨가 훌륭하기에 ‘사진가’이지 않아요. 너(아이)와 내(아버지)가 이곳에서 함께 짓는 하루가 아름다운 꿈으로 피어나는구나 하는 대목을 알아차리기에 사진가예요.



보물이란 무엇일까? (55쪽)


(큰아이) 아카리가 엄마의 치마를 입게 되었다. (72쪽)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는 아버지는 시인으로도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말이 마치 노래처럼 시처럼 흘러나옵니다.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짓는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그림책을 읽어 주든 동화책을 함께 읽든, 모든 말소리는 노랫소리로 거듭나면서 피어납니다.


  “둘째, 셋째가 태어나고 셋째 아이가 걸어다닐 즈음, 나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었습니다. 카메라도 DSLR로 바꾸고,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산속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아이는 그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하지만 도리어 내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고 변해 갔습니다(120쪽).” 같은 이야기를 천천히 읽습니다. 이 말마따나 아이는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요. 그런데 언제나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요. 아이도 자라고 어버이도 자라요. 아이도 사랑으로 자라고, 어버이도 사랑으로 자라요.


  나이를 먹으며 늙는 어버이가 아니라,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을 아이한테서도 고스란히 나누어 받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웃음잔치랑 노래잔치랑 사진잔치를 즐기는 어버이입니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은 없다. (82쪽)


‘아, 고향이 참 좋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91쪽)





  온누리 모든 사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 모든 사내는 아버지로서 사진가와 시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두 손에 호미랑 연필을 쥐거나 괭이랑 사진기를 들면서 아이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에는 사랑하고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한테 ‘사진 찍는 기쁨’을 가르칩니다. 어버이는 모든 말을 시처럼 노래하면서 아이한테 ‘시를 짓는 즐거움’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천천히 뛰놀고 자라면서 아버지처럼, 또 어머니처럼 사진가도 되고 시인도 됩니다. 삶을 그리는 사진가로 자랍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자랍니다.


  사진은 예술이기 앞서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은 문화이기 앞서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사랑을 담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사진이지 싶습니다. 꿈을 그릴 수 있기에 멋진 사진이지 싶어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읽을 온누리 아버지랑 어머니 모두 즐겁게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놀랍고 멋진 사진기이자 시인이거든요. 활짝 웃으면서 사진기를 쥐면 누구나 사진가예요. 하하 웃으면서 연필을 쥐면 누구나 시인이에요.


  아버지 사진가랑 어머니 시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시인이랑 어머니 사진가하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싶습니다.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넣은 사진은 안단테마더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사진을 실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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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 - 만년 사진기자의 증언
권주훈 지음 / 눈빛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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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9



대통령 운구차와 젊은 아가씨 둘

―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

 권주훈 사진·글

 눈빛 펴냄, 2015.11.30. 4만 원



  내가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던 무렵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갓난쟁이 무렵에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는가를 또렷하게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갓난쟁이 무렵에 ‘내 온누리’는 어머니 품이었다는 대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 살이 지나고 두 살이 지나며 서너 살이 되도록 늘 어머니 품에서 자랐어요. 이러다가 형하고 함께 골목을 달리면서 노는 어린이로 자라고, 어느덧 국민학교라는 데에 들어갑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던 1982년에 인천에는 프로야구단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여덟 살 어린이는 몰랐습니다. 다만 집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있는 야구장에서 한 주에 며칠씩 밤을 환하게 밝히면서 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7회가 지나면 문을 열어 주어서 표를 끊지 않고도 들어가서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 있었고요.





  열 살이 되던 1984년에 인천에서는 대단히 큰물이 졌습니다. 이때에 인천 시외버스터미널(신흥동 옛 자리)은 물에 잠겨서 버스기사 아저씨가 버스 지붕에 앉아서 멀거니 있던 모습을 아직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열 살에도 퍽 개구지게 놀았기에 물에 옴팡 잠긴 시외버스터미널 앞마당에서 동무들하고 헤엄을 치며 놀았어요. 드넓은 ‘공짜 수영장’이 생겼다고 하면서요.


  이즈음에 또렷이 떠오르는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에서 뭉게구름이 아주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이에요. 저 멀리부터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곧 이곳까지 저 구름이 오겠네 하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소나기구름은 내 머리 위로 와서는 후두둑 후두둑 엄청난 빗물을 퍼붓더니 뒤쪽으로 옮겨 갑니다. 이러면서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해님이 활짝 웃고, 뭉게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무지개가 걸쳤어요.





  열한 살이던 1985년과 이듬해 1986년에 또렷이 떠오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동인천역 앞 너른터하고 싸리재에 전경이 겹겹이 선 채 버스도 자동차도 하나도 안 다니던 모습이에요. 길바닥에는 짱돌이 가득 굴렀지요. 국민학생이던 나는 으스스한 이곳을 침을 꼴깍 삼키고 지나갔습니다. 전경이 뭐 하는 사람인지, 전경하고 맞선 저 앞에 있는 아저씨들은 뭐 하는 사람인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열네 살인 1988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신문이라는 종이를 읽었고, 대통령 이름이라든지 정치나 사회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교과서로 처음 배웁니다. 국민학생이던 때까지 달력에는 ‘5·16혁명’이라는 붉은 글씨가 박혔고 ‘4·19의거’라는 까만 글씨가 박혔는데, 중학교로 들어설 무렵에는 ‘5·16’ 뒤에서 ‘혁명’이라는 말이 빠졌어요.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 ‘4·19’라는 숫자 뒤에 비로소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고 ‘5·16’은 어느새 달력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광복 이래 21세기를 맞기까지 대한민국은 혼돈과 격동 속에 전진해 왔다. 혼란을 거듭했다. 자유당정권은 독재와 3·15부정선거로 1960년 4·19혁명에 의해 무너지고 민주당의 제2공화국이 탄생한다. 하지만 1년이 채 못 된 1961년 5·16 군사쿠테타에 의해 붕괴되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18년여의 정치 여정을 마감한다. (205쪽)





  보도사진을 모은 사진책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눈빛,2015)를 읽습니다. 사진기자 권주훈 님이 그동안 찍은 보도사진으로 엮은 사진책이라고 합니다. 지난 2015년 늦가을에 이 도톰한 사진책이 나왔습니다.


  권주훈 님은 그동안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뉴시스 사진기자로 일한다고 합니다. 어느덧 마흔여덟 해째라 합니다. 1943년에 태어났으니 ‘할아버지 사진기자’인 셈입니다. 한국에도 ‘할아버지 사진기자’가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놀랍니다. 그러고 보니, 보도사진책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는 사진기자로 한삶을 보냈고, 앞으로도 한삶을 더 이을 한 사람이 온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를 드나들면서 지켜본 이야기가 이 사진책에 깃듭니다. 이를테면,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서 죽은 대통령 한 사람이 운구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깃듭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서 죽을 무렵, 대통령 곁에 있었다고 하는 심수봉·신재순 씨 뒷모습과 앞모습 사진도 이 사진책에 깃듭니다. 책겉을 보면 1970년대에 무척 맵시나는 차림새인 아가씨 두 사람 뒷모습이 나오는데, 이 두 사람이 누구인가 했더니 바로 심수봉·신재순 씨가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소법정’에 증인으로 나가는 뒷모습이라 하는군요.




  사진책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를 보면 집회를 하는 대학생이 나무토막을 들고 경찰차를 때리는 모습이 곧잘 나옵니다. 이와 달리 전투경찰이나 사복경찰이 곤봉으로 대학생이나 여느 시민을 때리는 모습은 거의 없습니다. 고문을 받고 죽은 대학생을 기리는 집회 행렬은 보도사진으로 남는데, 막상 집회와 시위를 했거나 안 한 사람들을 고문하던 모습은 보도사진으로 남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경찰이나 검찰이나 정보부에서 일한 공무원 가운데 ‘역사에 남을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신문기자라고 하더라도 고문실에 당차게 들어가서 ‘고문하는 모습’을 씩씩하게 사진으로 찍기 어려웠을 테지요. 보도사진가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고문실에 몰래 들어가서 고문 현장을 찍을 만한 배짱을 보여준 분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보도사진이 고이 흐르는 사진책을 보다가 문득 이 대목을 돌아봅니다. 한국에 신문사가 꽤 많고, 신문기자도 꽤 많은데, 이들 가운데 참말 고문실에 몰래 들어가서 고문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내고는 이를 온누리에 알린 사람은 왜 없었을까 하고요. ‘고문실 잠입 취재’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하겠지만, 한국 보도사진은 아무래도 ‘길거리 집회’와 ‘국회의사당 둘레’에서 벌어진 일에서 못 벗어난 얼거리이지 싶어요.


  이리하여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를 보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같은 정치인 모습이 퍽 자주 나오고, 여러 국회의원도 자주 나옵니다. 이 땅을 이루고 사는 여느 사람들 모습은 거의 집회 현장이나 시위 현장에서 무리를 지은 모습이에요. ‘구비치는 물결(격동)’하고 ‘어수선한 살림(혼돈)’은 다른 어느 자리보다 정치 현장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할 만하기에 보도사진은 언제나 정치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겠지요.


  그도 그럴 까닭이, 언론사에는 사회부나 정치부나 경제부나 문화부나 연예부 같은 부서는 있습니다만, ‘서민부’나 ‘시민부’ 같은 자리는 없어요. 이 나라를 이루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늘 들여다보고 바라보고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는 기자 자리는 따로 없습니다.





  사진책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에 나오는 대통령이나 장군이나 국회의원이나 재벌총수나 유명인사나 민주운동 지도자나 몇몇 연예인은 틀림없이 우리 역사에 이름이 남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들 이름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읽고 사회를 읽을 적에 한 걸음 살며시 옆으로 옮기면서 수수한 살림자리도 볼 수 있으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들’만 사진으로 찍기보다는,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들 사이에서 웃거나 우는 ‘작은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어야지 싶어요. 집회나 시위 현장에는 가지 못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을 먹여살린 수수한 시골지기 굳은살 박힌 손을 찍을 수 있는 보도사진도, 아기를 낳아 사랑으로 보살핀 수수한 어머니 따사로운 얼굴을 찍을 수 있는 보도사진도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군사독재를 일삼은 정치지도자도 ‘어머니 품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연예인이든 장군이든 재벌총수이든 ‘작은 집’에서 ‘작은 사랑’을 안고 태어났어요. 삶을 이루는 바탕을 한 걸음 더 깊이 파고들면서 국회의사당 둘레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 사회나 정치는 ‘혼돈과 격동’ 물결 사이에서도 작은 발걸음이요 몸짓입니다만 차근차근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이라는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사랑을 받아 태어났으나 사랑으로 정치지도자 노릇을 못한 분들이 있기에 한국 정치는 ‘혼동과 격동’이 되었다고 할 텐데, 그래도 역사는 한 걸음 두 걸음 새롭게 거듭나면서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길로 나아가지 싶어요. 사진책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 맨 끝에 나오는 국회의사당 사진처럼, 부디 곱게 빛나는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역사가 될 수 있기를 빌고, 보도사진이 담는 이야기에 기쁜 삶을 아로새길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2.1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눈빛출판사에서 사진을 보내 주어 고맙게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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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풍경이 되다 - 대한민국 철새도래지
김성현.김진한.최순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8



‘철새 쉼터’는 아름다운 우리 보금자리

― 새, 풍경이 되다

 김성현·김진한·최순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3.12.30. 3만 원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세 사람 김성현·김진한·최순규 세 분이 함께 빚은 책 《새, 풍경이 되다》(자연과생태,2013)를 읽으면서 놀랍니다. 새를 몹시 아끼는 마음이 사진마다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장비는 나날이 발돋움하고, 요새는 디지털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때하고는 사뭇 다르게 오래도록 사진을 많이 찍을 만해요. 그렇다고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때에는 ‘새 사진을 못 찍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필름사진만 있던 때에는 필름을 다시 감고 넣어야 하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새를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담기’가 만만하지 않아요. 《새, 풍경이 되다》는 사진 장비가 발돋움한 오늘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멋진 ‘새 도감(조류도감)’이자 ‘새 사진책’이며 ‘새 길잡이책’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동검도 주변 갯벌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갯벌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14쪽)


여름철에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번식하는 각시바위를 찾아가 보자. 단, 생명을 키워내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번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0쪽)


하천의 버드나무와 갈대 숲은 작고 귀여운 새들로 소란스럽다. (30쪽)





  《새, 풍경이 되다》를 보면, 한국에서 손꼽을 만한 ‘철새 쉼터(철새 도래지)’ 서른 군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새를 보기 좋은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고 할 테지요. 손전화로도 ‘새 모습’을 알아보기 쉽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새를 사진으로 담아서 엮은 이 책은 인터넷이나 손전화로는 한눈에 알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저, 이 책에는 정보만 다루지 않습니다. 새를 깊고 넓게 잘 아는 세 분이 새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면서도, 새와 사람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는가 하는 실마리를 조곤조곤 밝힙니다. 정보에 이야기를 실어서 들려주는 책입니다.


  다음으로, 이 책에 실은 사진은 ‘새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이끕니다. 그동안 나온 여러 ‘새 사진책’을 보면 ‘멋을 부리는 사진’이라든지 ‘예술처럼 보이려는 사진’이 너무 많았는데, 《새, 풍경이 되다》는 새를 사람하고 살가운 이웃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되어 사진으로 담으면서도 새마다 어떤 결이고 무늬이며 모습인가를 똑똑히 알아볼 만하도록 잘 갈무리하고 간추려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부터 한 번 보기조차 어려운 새까지 골고루 보여주어요.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썰미를 보여주고, 한 번 보기조차 어려운 새를 찾아서 먼 나들이를 다니는 기쁨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광릉수목원에서) 왕가의 역사뿐 아니라 나무와 숲, 새들의 역사에도 귀 기울여 보자. (37쪽)


풍요로운 갯벌의 역사는 사라졌지만 새들은 잊지 않고 송도를 찾는다. (55쪽)





  철새가 내려앉아서 쉬는 곳은 철새한테 좋은 쉼터라는 뜻입니다. 철새가 내려앉아서 쉬는 곳이라면, 철새한테 아늑한 터전이라는 뜻입니다. 철새한테 먹이가 넉넉한 곳이요, 철새가 느긋하게 쉬면서 맞잡이한테서 몸을 지킬 만한 데라는 뜻이에요.


  이는 달리 말하자면, ‘사람이 살기에도 넉넉하고 좋으며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왜 그러할까요? 물이 지저분한 곳에 철새가 내려앉지는 않을 테지요? 먹이가 없는 곳에는 철새가 찾아가지 않을 테지요? 철새한테 먹이는 물고기예요. 물고기는 물이 깨끗한 곳에 많이 살아요. 물이 깨끗한 곳이라면 사람 사는 마을도 아늑하면서 아름다울 테고, 이곳에서는 즐겁고 기쁜 살림을 지을 만한 데예요.


  그러고 보면, ‘철새 쉼터’는 새한테뿐 아니라 사람한테도 고운 쉼터요 삶터가 될 만합니다. 우리가 철새가 쉴 터전을 보살피거나 지켜 줄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도 아름답게 보살피거나 지킬 수 있어요.



한 해 1000톤 정도 발생하는 낙곡이 두루미류의 귀한 먹이원이 된다. 한편, 민통선 안의 저수지와 한탄강은 사람과 천적으로부터 새들을 보호해 주는 귀한 잠자리가 된다. (99쪽)


새들의 날갯짓은 뼈가 시리도록 추운 평야의 냉기를 걷어내고 신비로운 아침을 경험하게 해 준다. (107쪽)





  봄에 찾아와서 늦여름이나 첫가을에 떠나는 제비도 철새입니다. 제비 같은 철새는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어디에서나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었어요. 제비 한 마리가 있기에 날벌레를 무척 많이 잡아 주고, 제비가 새끼를 까면서 날벌레를 더더욱 많이 잡아 주지요. 어느 모로 보면, 암수 제비 짝꿍이 새끼를 낳아서 돌보는 한살림이란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흙살림벗(농사짓기 돕는 벗)’입니다.


  더군다나 제비가 둥지를 고치거나 새로 틀어서 새끼를 돌보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고운 노랫가락을 베풀어요. 새벽 네 시 언저리부터 어미 제비가 깨어나서 처마 밑에서 부산을 떠니, 시골에서는 시계가 없어도 하루를 여는 때를 잘 살필 만해요. 해가 질 무렵 어미 제비는 바깥마실(먹이 찾아서 물어다 나르는 일)을 마치고 마당에서 날갯짓을 하면서 둥지에 깃들려 하지요. 그러니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서 쉴 때를 제비가 알려주는 셈입니다.



(천수만은) 전 세계 서식 개체의 약 90%에 해당하는 가창오리가 쉬었다 가던 곳으로, 동틀 무렵이나 노을이 질 무렵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군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89쪽)


한반도와 함께 태어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생명을 낳고 자연을 품은 곳. 하늘에 백두산 천지가 있다면, 땅에는 우포늪이 있다. (262쪽)





  한국에서 여름을 나는 여름새인 꾀꼬리는 무척 고운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매미도 메뚜기도 잠자리도 거미도 잡아먹는 꾀꼬리이지요. 따지고 보면 다른 새도 봄이나 여름에는 날벌레하고 풀벌레를 신나게 잡아먹습니다. 참새가 가을에 나락을 훑는다고 하지만, 참새도 여느 때에는 날벌레하고 풀벌레를 엄청나게 잡아먹어요. 날벌레하고 풀벌레가 없는 추운 철에는 어쩔 수 없이 곡식을 찾지요.


  그래서 새가 좋아할 만한 열매가 맺는 나무를 집 둘레에 울타리로 심거나, 숲에서 이러한 나무가 자라도록 한다면, 때로는 겨울에 모이그릇을 마련해서 집 둘레에 놓을 수 있다면, ‘흙살림벗’이 겨우내 아늑하게 겨울나기를 하면서 봄이랑 여름에 벌레잡이 노릇을 하도록 북돋울 만해요.


  수많은 새는 사람 곁에서 이웃으로 지낸다고 할까요. 때로는 마당에까지 내려앉고, 때로는 지붕에도 앉으면서, 고운 노랫가락을 선물할 뿐 아니라, 나뭇잎이나 풀잎을 갉는 애벌레를 잡아먹어요. 다만, 어떤 새이든 애벌레나 날벌레를 몽땅 잡아먹지 않습니다. 이 벌레가 알을 낳아서 알맞게 퍼질 수 있을 만하도록 잡을 뿐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벌레를 몽땅 잡아서 없애면, 새로서는 다음 먹이가 없거든요.


  사람 곁에 있는 새를 살필 적에 이 같은 대목도 함께 읽어야지 싶어요. 새는 물고기를 싹 잡아먹지 않습니다. 수만 마리 새떼가 찾아든다면 물고기가 씨가 마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수만 마리 새떼가 해마다 드나들어도 물고기는 바닷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 지구별을 이루는 얼거리는 늘 ‘함께 사는 살림’이에요.



1970년대 후반까지 전국에서 흔히 관찰되던 솔개는 개발로 인해 서식지와 먹이가 감소되며 보기 어려운 새가 되었다. 낙동강 하구는 솔개를 연중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287쪽)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 새들이 있어 오늘도 탐조인들은 홍도로 향한다. (381쪽)





  나는 전남 고흥에 있는 살림집에서 겨우내 매를 봅니다. 이 매가 어떤 매인지까지는 잘 모릅니다. 새매인지 개구리매인지, 아니면 조롱이 가운데 하나인지 잘 모르겠어요. 망원경이 없이 먼발치에서만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들길을 달리다 보면 으레 매 한 마리가 마을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날아요.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되면 이 매는 자취를 감추어요. 아마 다른 곳으로 가겠지요.


  매 한 마리가 들을 가를 적에는 까치떼도 까마귀떼도 조용합니다. 때로는 까치떼나 까마귀떼가 매를 몰아내기도 한다지만, 서로 섣불리 건드리거나 다투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매를 보면 우뚝 멈춥니다. 들마실을 하며 걷다가 가만히 섭니다. 전봇대에 앉은 매를 한참 지켜보고,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서 보려 합니다. 그러면 매는 언제나 낌새를 알아채고는 옆자리 전봇대로 옮겨 앉아서 똑똑히 살펴보지는 못해요. 딱 어느 만큼까지만 받아들여 주고, 어느 만큼을 넘어서면 가볍게 바람을 타고 저만치 가요.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번식을 위해 북쪽으로 이동하는 새들에게 섬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79쪽)


자맥질하는 오리들을 보며 오히려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낀다. (161쪽)





  《새, 풍경이 되다》를 책꽂이에 곱게 꽂아 놓습니다. 나도 아이들도 이 책을 틈틈이 들춥니다. 우리가 이 시골집에서 으레 보는 새를 살피면서 사진을 돌아봅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새를 꿈꾸면서 이 책에 깃든 온갖 새를 헤아립니다.


  이름이나 모습은 몰라도 고운 노랫가락으로 우리 집 둘레를 노니는 새를 떠올립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도 물까치가 뒤꼍에 찾아와서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아침저녁으로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들어요. 소쩍새가 우는 소리를 밤에 듣기도 하고, 딱새랑 박새가 들려주는 재미난 소리를 듣습니다.


  물총새가 논도랑을 휘휘 가르면서 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자전거를 달리면 즐겁습니다. 노랑할미새도 마을에서 늘 만나는데, 《새, 풍경이 되다》에 나오는 온갖 할미새를 사진으로 살피면서, 노랑할미새 말고 다른 할미새도 우리 마을에 찾아올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봅니다. 다음에 할미새를 만나면 어떤 할미새가 더 있는가를 잘 살피려고 해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은 새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고, 새들은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401쪽)




  아름다운 숲은 아름다운 새를 부릅니다. 아름다운 새는 아름다운 마을 곁으로 찾아옵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하루를 짓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아름다운 살림을 짓는 손길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태어납니다.


  철새가 찾아드는 서른 군데 쉼터뿐 아니라,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전에도 새들이 느긋하게 쉴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어느 곳이나 새와 사람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터전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아름다운 새를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마음에 담고, 때로는 사진기를 들어 ‘우리 이웃’인 새를 찍을 수 있으면 우리 삶은 한결 아름다울 만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2016.2.1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숲책 읽기)


* 아름다운 사진을 넉넉히 보내 주어 이 글을 곱게 빛내 준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고맙다는 절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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