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 Box upon the Sea 바다로 떠나는 상자속에서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안목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7



삶이라는 바다로 헤엄치는 ‘이야기 사진’

―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필립 퍼키스 사진·글

 박태희 옮김

 안목 펴냄, 2015.12.1. 7만 원

 http://blog.naver.com/anmocin



  겨울이 차츰 저뭅니다. 사흘거리로 춥다가 포근한 볕이 드리운다는 날씨는 바야흐로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 번 추위기 닥치면 한 달 내내 꽁꽁 얼어붙거나 달포 즈음 싱싱 찬바람이 부는 겨울입니다. 춥다가도 포근해져서 몸을 녹이던 옛날 겨울은 자취를 감추어요. 온도로 친다면 요즈음 겨울은 옛날에 댈 만하지 않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사흘 동안 꽁꽁 얼어도 나흘 동안 포근한 볕이 흐르기에 이럭저럭 견딜 만했지요. 오늘날에는 온도가 옛날보다 낮지 않더라도 포근한 볕이 좀처럼 들지 않으면서 꽁꽁 얼어붙기만 하니 여러모로 고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얼어붙는 날씨여도 아이들은 마당에서 개구지게 놉니다. 먼 옛날에도 아이들은 이 겨울에 코를 훌쩍이며 놀았겠지요. 오늘날에는 폭신한 장갑이나 옷이라도 있다지만, 옛날에는 장갑도 변변하게 없이 추운 겨울에 연을 날리거나 얼음을 지치면서 놀았어요. 게다가 얼음장 같은 물에 아기 기저귀를 빨기까지 했어요.


  노는 아이들은 지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놀이라서 그렇지요. 놀이가 아니라 ‘시험 과목’이라거나 ‘학과 공부’라면 한겨울에도 마당에서 손발이 얼면서 놀지 않아요. 놀이를 즐기기 때문에 손발이 얼어도 재미있고, 웃음이 나면서, 기쁘게 뛰거나 달립니다. 놀이를 하기에 지칠 일이 없고 고단할 일이 없어요. 놀이를 하면서 배고픔까지 몽땅 잊어요.





시장 한 구석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장소가 있었다. 허리 높이에 대략 가로 20센티, 세로 60센티 정도의 불판이 몇 군데 있었고 불판을 에워싼 남자들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먹고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고 있었다. 한 남자는 불판에 구울 고기를 썰고 있었다. 고기와 술이 전부였다. 불가사의하게도 엄숙한 기운이 에워싸고 있었다.



  필립 퍼키스 님이 일군 사진하고 글을 엮은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안목,2015)를 읽습니다. 필립 퍼키스 님이 사진하고 글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다로 떠나는 상자”에서 길어올립니다. “바다로 떠나는 상자”는 배일 수 있고, 말 그대로 상자일 수 있으며, 우리 몸일 수 있습니다. 상자가 떠나는 곳은 ‘바다’인데, 이 바다는 말 그대로 물결이 치는 바다일 수 있고, 마을일 수 있으며, 우리 보금자리일 수 있어요. 아니면, 너른 우주나 숲일 수 있습니다.


  필립 퍼키스 님은 이녁 사진에 ‘장치’를 걸지 않습니다. 필립 퍼키스 님은 이녁이 발을 딛는 이 땅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장치가 없이 사진을 찍어요. 바라본 대로 사진을 찍고, 마주한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사람을 마주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림을 짓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일구는 대로 사진을 찍어요.


  오늘날에는 수많은 장치를 잔뜩 집어넣은 사진이 유행이라 할 만합니다. 이렇게 멋을 부린다거나 저렇게 솜씨를 부리는 사진이 ‘현대 사진 흐름’이라 할 만하지요. 그렇지만 필립 퍼키스 님은 ‘현대 사진 흐름’이라는 물결에 올라타지 않습니다. 필립 퍼키스 님은 언제나 ‘필립 퍼키스라는 사람이 짓는 삶·살림·사랑’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난 그들을 자주 보러 간다. 때로 나의 상태가 열려 있고 행운이 내 곁에 머물 때면, 저 루앙들은 인간의 표상도 아니고 인간 자체도 아니며 둘 다거나 아무도 아닌 비존재가 된다. 그들은 실재하는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다.



  나는 설날 언저리에 날마다 이불을 빨래합니다. 올해 설날에는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 절을 하러 마실을 가고 싶기도 하지만, 찻삯이 없어서 우리 시골집에 고요히 머물기로 했습니다. 굳이 설이라고 하는 때가 아니어도 언제나 스스럼없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찻삯을 마련하는 대로 느긋하게 마실을 가자고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긴 설 연휴에 날마다 이불을 한두 채씩 빨래하기로 했어요. 마침 올해 설을 둘러싸고 전남 고흥은 볕이 무척 고우면서 포근하고, 바람도 알맞습니다.


  아침 일찍 이불을 빨아서 마당에 널면, 아이들은 슬금슬금 마당으로 따라나오다가는 뒤꼍으로 올라갑니다. 뒤꼍에서 아침부터 낮을 지나 저녁해가 질 무렵까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됩니다. 손이며 낯이며 발이며 옷이며 흙을 잔뜩 묻히면서 흙놀이를 해요. 이리하여 저녁이면 아이들 옷을 몽땅 벗기면서 씻기고, 이 옷가지는 이튿날 이불하고 함께 빨래를 하지요.


  틈틈이 이불하고 옷가지를 뒤집어서 햇볕을 골고루 품도록 합니다. 이때에 아이들 놀이를 살그마니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한두 장씩 찍습니다. 아이들은 나한테 모델이 되려고 겨울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한테 사진에 찍히려고 마당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 나름대로 하루를 새롭게 누리려는 뜻으로 흙을 만지면서 새로운 꿈을 그립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작품’을 모은다거나 ‘예술’을 하지 않으며 ‘창작 행위’를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 몸짓을 기쁨으로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다 같이 새롭게 누리는 이야기가 샘솟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로다는 뉴웍의 학교 도서관장으로 일했고 루는 필라델피아에서 회계일을 했다. 60대 중반이 되자 함께 살기 시작했고 결혼도 했다. 근사한 결혼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난 일 년에 한두 번 그들과 만났고 늘 함게 있는 시간을 즐겼다. 로다는 다소 짓궂었고 루는 늘 수많은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곤 했다.



  사진책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필립 퍼키스 님이 찍은 사진에 나오는 사람은 ‘모델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필립 퍼키스 님이 찍은 사진에 나오는 곳은 ‘모델이 될 만한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사진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글이 몇 줄씩 깃듭니다. 사진도 글도 ‘처음부터 뚜렷하게 자리가 잡혀서 어우러지는 얼거리’는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필립 퍼키스 님이 이녁 스스로 삶을 마주하는 마음결 그대로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입니다. 바다로 떠나는 상자 같은 이야기입니다. 바다로 나가는 상자 같은 이야기입니다. 바다로 나들이하는 상자 같은 이야기요, 바다로 헤엄치는 상자 같은 이야기예요.


  그러고 보면, 어버이는 아이 앞에서 짐짓 꾸미면서 웃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뻐서 웃을 뿐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 앞에서 애써 웃음을 억지로 지어야 하지 않아요. 그저 즐거워서 웃을 뿐이지요.


  사진은 언제 찍을까요? 아주 놀라운 모습이 코앞에서 스쳐 지나가기에 ‘한때(찰나)’를 놓치지 않고 ‘남기려(기록)’는 뜻에서 사진을 찍을까요? 이처럼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찰나를 기록하는 예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손길로 나누는 삶’을 ‘사랑스러운 눈빛을 반짝이면서 노래하는 마음결’이 되면서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어느 모습이든 모두 사진입니다. 어느 몸짓이든 모두 사진입니다.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예술이어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창조나 창작이어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남이 안 찍은 소재나 주제를 찾아나서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남다르거나 돋보이는구나 싶은 어떤 모습을 담아내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 그대로일 때에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내 몸은 기능도 제대로 못하고 말도 듣질 않았다. 난 표류하고 있었고 무력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살아 있었다. 단순 그 자체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 혓바닥에 올려진 얼음, 주변을 둘러보기 ; 난 기계 안에 있었다 : 빛, 벨소리,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존재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창문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한 형태로서의 삶이 있을 뿐.



  겨울에는 빨래를 일찍 걷습니다. 이를테면, 십이월에는 세 시 오십 분 즈음이면 서둘러 빨래를 걷습니다. 네 시를 넘어가면 ‘잘 마른 옷가지’가 다시 눅눅해지거나 얼어붙습니다. 일월에는 세 시 즈음이면 얼른 빨래를 걷습니다. 한겨울인 일월에는 네 시에 가까워도 옷가지가 눅눅해지거나 얼어붙으려 합니다. 이월에는 네 시를 살짝 넘어도 괜찮습니다. 봄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빨래는 조금 더 오래 해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진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살피면서 찍는데, 조리개값이나 빛결이 아니라 ‘빨래 말리기’를 헤아리면서 빛과 그림자를 알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씨앗을 심는 사람이라면, 철마다 다른 흙빛하고 흙내음을 느끼면서 ‘사진을 찍는 때’를 알 수 있고 ‘씨앗 심는 날’에 따라 ‘사진을 찍기에 걸맞는 때’를 알아챌 수 있다는 뜻이에요.


  사진책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는 사진으로 담는 빛과 그림자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무척 부드러이 풀어내어 보여주기도 합니다. 빛을 더 담거나 덜 담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손짓을 살그마니 보여줍니다. 그림자를 더 담거나 덜 담으려고 너무 힘쓰지 말라는 눈짓을 나긋나긋 보여주어요.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담을 수 있을 때에 ‘가장 알맞고 나으며 멋지고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입니다. ‘가장 좋은 때(빛이 가장 좋은 때)’는 없지 싶습니다. 모든 때가 저마다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이야기를 담으려 하지 않고 ‘빛만 좋은 때’를 살피려 한다면, 이때에는 사진이 아니라 ‘빛놀이’에 머물 테지요. 빛을 갖고 얼마든지 재미나게 놀 수 있습니다만, 사진찍기는 ‘빛찍기(빛을 찍는 놀이)’가 아니라 ‘삶찍기(삶을 찍는 기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진찍기는 ‘그림자찍기(그림자를 찍는 놀이)’가 아니라 ‘사랑찍기(사랑을 찍는 사람)’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표현기법에 너무 얽매이다가는 ‘표현기법 뽐내기’에 머물고 말아요. 표현기법이 아무리 훌륭하고, 초점을 안 흔들리게 맞추었고, 콘트라스트라든지 이것저것 기계질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없는 그림’만 멋들어지게 꾸몄다면, 이런 ‘이야기가 없는 그림’은 ‘그럴듯한 그림’에 머물 뿐, ‘사진’이 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폴의 나이는 고작 여덟 살이었지만 자연주의자였다. 숲속에 땅을 파서 헌 항아리로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에 바위, 양치식물, 벌레와 고만고만한 화초들을 심었다. 그 ‘연못’ 조성을 위해 개구리 몇 마리와 작은 뱀, 올챙이도 잡아 넣었다. 폴에게 어떻게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관리하는지 물었다. “아무도 도망가지 않아. 왜냐면 여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게 있거든.” 난 늘 그 말을 기억했고 50년이 지난 후, 그가 ‘욕망의 끝’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울에는 다섯 시가 저녁입니다. 아니, 이월인 겨울에는 다섯 시가 저녁입니다. 일월인 겨울은 네 시가 저녁이고, 십이월인 겨울은 네다섯 시 사이가 저녁이에요. 이월이 저물고 삼월이 가까운 겨울에는 바야흐로 대여섯 시가 저녁입니다. 달마다, 또 날마다 다른 저녁이면 나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으면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물을 살살 끓여 놓고 아이들을 조용히 부릅니다. 자, 이제 들어와서 손이랑 낯이랑 발을 씻고 밥을 먹어야지?


  밥을 짓거나 아이들을 씻기거나 집안일을 하는 동안에는 내 손에 사진기가 아닌 부엌칼이나 수세미나 국자나 빨랫비누나 마른천이 들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밥을 짓거나 아이들을 씻기거나 돌보면서 ‘두 눈과 두 손을 거친 마음결’로 ‘이야기를 오롯이 아로새기는 하루를 누립’니다. 메모리카드나 필름에는 ‘사진 한 장’조차 얹지 못합니다만, 내 마음속에는 앞으로 언제까지나 한결같이 흐르고 이어질 ‘즐거운 오늘 이야기’가 살가이 얹혀요.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나는 이 물음에 늘 ‘사진은 마음으로 찍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나누어요.’ 하고 대꾸합니다. 사진책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를 빚은 필립 퍼키스 님은 빙그레 웃는 낯으로 우리한테 ‘사진읽기·사진찍기’를 스스로 기쁜 손길로 짓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정갈하게 꾸며서 태어난 고운 사진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오늘 이곳에서 내 나름대로 짓는 삶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고운 사진책 한 권을 곁에 두면서, 살림하는 재미와 사랑하는 즐거움과 살아가는 기쁨을 차분히 되새깁니다.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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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 깨지고 까여도 출사는 계속된다, 박찬원의 열혈 사진 공부 이야기
박찬원 지음 / 고려원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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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6



‘죽고 까무라칠’ 다짐으로 사진을 배우는 할배

―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박찬원 글·사진

 고려원북스 펴냄, 2016.1.5. 15000원



  무엇이든 배운다고 할 적에는 ‘새로움’을 배웁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영어를 배우든, 사내가 부엌일이나 뜨개질을 배우든, 나이 마흔 줄에 자전거를 처음으로 배우든, 나이 쉰이나 예순에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려고 배우든, 예순을 지나고 일흔이 되는 나이에 그림이나 사진을 배우든,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로움’을 느끼려고 이 길을 걸어요.



“도대체 뭘 하는 거여? 아직도 찍을 게 남았어?” 나를 볼 때마다 한결같이 하는 단골 멘트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염전에 뭐 찍을 게 있다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것도 몇 년씩이나 출근 도장을 찍느냔 말이다. (14쪽)




  1944년에 태어난 박찬원 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신나게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며 책을 내는 ‘늦깎이 사진가’입니다. 예순다섯 언저리에 처음으로 그림(물빛그림)하고 사진을 나란히 배우고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고려원북수,2016)라는 사진책까지 선보입니다. 느즈막하다 싶은 나이에 예술대학원까지 다녔으니, 대학원에서는 거의 쉰 살까지 벌어지는 젊은이하고 함께 배운 셈입니다. 딸아들이 아니라 손주하고 함께 사진을 배웠다고 할까요.


  이 사진책을 읽으며 문득 ‘수채화가 박정희 할머니(1923∼2014)’가 떠오릅니다. 할아버지 박찬원 님하고 할머니 박정희 님은 다른 삶길을 걸었지만, 두 분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새길을 걸었다’는 대목에서 비슷합니다. 박정희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으셨어요.


  박찬원 님이 걸어온 길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이분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이끄는 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그 일을 마친 뒤에는 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내로라하는 발자국을 남긴 셈인데, 이분이 그림이나 사진을 새로 배우려 한다면 ‘이제껏 쌓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요.


  왜냐하면, 배움이란 ‘내려놓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려놓은 자리에 ‘채움’을 하지요. 그저 내려놓아서 비우기만 해서는 ‘명상’은 될는지 모르나 ‘배움’은 되지 않아요. 새롭게 배우려 하기에 이제껏 머릿속이나 몸에 채운 것을 모조리 뱉어냅니다. 이름값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이를 내려놓아야 해요. 고집이 있다면 고집까지 꺾어야 하지요. 이름값이나 나이나 고집을 고스란히 붙잡는다면 아무것도 못 배워요. 그냥 ‘살아온 대로’ 앞으로 살아갈 테지요.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지도교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내 표정 위로 혹평이 이어졌다. “패턴을 버리라고 했는데 똑같아요. 핀트가 안 맞는 건 사진이 아닙니다!” … 내게 화를 내준 교수가 고마웠다. 나이 많은 학생이란 이유로 마음에 안 들어도 완곡한 표현을 써 왔는데, 오늘은 정말 화가 많이 났던지, 아니면 작심하고 야단을 칠 각오를 했던 것 같다. (16쪽)



  박찬원 님은 대학원에서 사진을 배울 적에 어느 날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하고 나무라는 말을 듣습니다. 큰 꾸중을 들어요. 아무래도 옛날 버릇을 말끔히 털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버릇을 버리고 새로운 매무새가 되어야 ‘배울’ 수 있는데, ‘배우겠다면서 대학원까지 들어온 사람’이 낡은 틀을 단단히 붙잡은 채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치니까, 지도교수로서는 더는 봐줄 수 없었을 테지요. 아무리 할아버지 나이인 분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따끔하게 나무랄 노릇입니다.


  배우는 자리에 서면 우리는 모두 똑같습니다. 배우는 자리에서는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따로 없습니다. 배우는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배움이(학생)’입니다. 배우려고 한다면, 흔한 말로 ‘계급장·훈장·밥그릇·가방끈·은행계좌·얼굴값’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이제껏 배워서 익힌 지식’마저 모두 내다 버려야 합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교사가 굽신굽신하면서 높임말을 써 가며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대통령도 배움자리에 서는 배움이가 되려 한다면 교사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고개숙여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박찬원 님은 “패턴을 버리라고 했는데 똑같아요!” 같은 말을 들어요. 사진학과 지도교수는 ‘패턴’이라는 영어를 씁니다만, 이 영어는 한국말로 하자면 ‘버릇’입니다. 오랫동안 몸에 길든 몸짓이 바로 버릇입니다. ‘길든 몸짓’을 버리고 ‘새 몸짓’이 되어야 새롭게 사진을 찍을 텐데, 길든 몸짓 그대로 제자리걸음에 머무니까 ‘길든 사진’만 찍을밖에 없어요. ‘길든 사진’이란 ‘낡은 사진’이요 ‘틀에 박힌 사진’이며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흉내내는 사진’이에요.


  다만, 지도교수는 “핀트가 안 맞는 건 사진이 아닙니다!” 하고 외쳤습니다만, ‘초점(핀트)’이 어긋나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초점이 안 맞아도 눈빛하고 이야기가 살아서 숨쉬면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초점이 잘 맞아도 눈빛이 흐리거나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에서 우리가 깊이 바라보면서 헤아릴 대목은 바로 ‘눈빛’이요 ‘마음’이며 ‘생각’이고 ‘이야기’입니다.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몸짓이 되어야 비로소 새롭게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어요.




물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소금 알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래, 나비는 죽은 것이 아니라 먼 하늘로 여행을 가고 있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19쪽)


사진을 하면서 외모도 많이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다. 외모가 프리 스타일로 변하니, 마음도 따라 편하고 자유롭다 … 내가 운동화를 신기 시작하자 딸이 스니커즈를 선물했다. 식사 자리에서 지도교수는 내 신발이 바뀐 것을 눈치채고 패션도 바꿔 보라고 조언했다. 평생 처음으로 청바지를 샀다. (32∼33쪽)



  박찬원 님은 ‘전문(프로) 사진가’로 살아 보겠노라는 꿈을 일흔 가까운 나이에 품고서 사진을 처음으로 배우면서 ‘소금밭(염전)’을 이녁 사진감(사진 주제)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금밭이라는 곳을 적어도 백 차례는 찾아가서 들여다보고 사진으로 찍어 보겠노라 하고 다짐을 했다고 해요.


  날마다 소금밭을 찾아가지는 못했어도 아흔 몇 차례째 소금밭에 찾아갔다고 하는데, 백 차례 가까이 소금밭 나들이를 할 무렵 ‘소금밭 이야기’로 사진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숫자로 100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소금밭에 들인 땀방울로 길어올린 사진을 지켜본 둘레 사람들이 ‘소금밭 이야기 사진잔치’를 열어도 넉넉하겠다고 말해 주었다고 해요.


  숫자 100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숫자 10이나 1000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열 장을 찍거나 백 장을 찍거나 천 장을 찍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만 장이나 십만 장쯤 찍어 보아야 사진을 알 수 있지는 않아요.


  사진을 알려면 처음부터 ‘사진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사진을 배워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을 배워서 알지요.


  이리하여, 사진을 배워서 알려는 사람은 사진을 한 장 찍으면 ‘한 장 찍은 만큼 압’니다. 열 장을 찍으면 ‘열 장 찍은 만큼 알’아요. 백 장이나 천 장을 찍으면 ‘백 장 찍은 만큼’이나 ‘천 장 찍은 만큼’ 알기 마련이에요.




“왜 아마추어 때 찍은 사진이 더 좋은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대학원에 들어와 찍은 사진들엔 힘이 들어가 있어요. 억지로 찍은 것 같아요.” (57쪽)


단체 관광을 가더라도 미술관을 갈 때는 혼자서 다닌다 … 작품 감상이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77쪽)



  사진을 쉰 해쯤 찍은 분이 사진을 더 많이 잘 알지는 않습니다. 그저 ‘쉰 해 동안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을’ 뿐입니다. 사진을 다섯 해쯤 찍은 분이 사진을 더 적게 알지는 않습니다. 그저 ‘다섯 해 동안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을’ 뿐이에요.


  대학교를 다녔기에 사진을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대학원을 다녔거나 유학을 다녔기에 사진을 더 깊거나 넓게 알지 않습니다. 그저 ‘대학교 사진’하고 ‘대학원 사진’하고 ‘유학 사진’을 마주하고 배웠을 뿐이지요. 그런 경험을 그동안 쌓았을 뿐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적에 ‘육아 강의’를 들어야 아이를 잘 낳거나 슬기롭게 키우지 않습니다. 모든 어버이는 저마다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다른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펴요. 이러한 얼거리처럼, 사진을 배워서 찍을 적에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저마다 다른 눈길·눈빛·눈높이·눈매·눈짓·눈썰미에 따라서 사진을 받아들이고 찍습니다.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를 읽으면, “대학원에 들어와 찍은 사진들엔 힘이 들어가 있어요. 억지로 찍은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요. 힘이 들어간 사진은 ‘힘이 들어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억지로 찍은 사진은 ‘억지로 찍은’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 찍은 사진은 ‘사랑스러움’을 숨기지 못해요. 웃고 노래하는 기쁨으로 찍은 사진은 ‘웃음·노래·기쁨’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사진을 하면 눈이 좋아진다 …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매일 출퇴근길에서 보던 나무, 꽃, 도로, 자동차, 건물인데 그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 벚꽃, 개나리, 철쭉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저녁에 지는 노을이 그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몰랐다. (120쪽)


사진을 하면서 얼굴이 두꺼워졌다. 욕을 먹어도 아무렇지가 않다. 욕을 하던 분들도 다음에 만나면 수그러든다. 사진을 하려면 우선 사람과 친해져야 하고 그들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끈기가 생긴 것이다. 염전은 다시 인간을 배우게 해 주었다. (145쪽)



  새롭게 배우는 길을 걷기에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사내(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이 기저귀 갈기라든지 집안일을 잘 안 합니다만, 아이키우기나 집안일을 즐겁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배우려 한다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새로움’에 눈뜰 수 있어요. 새로움에 눈을 뜨면, 집안일만 하는 분들, 이를테면 가정주부도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새로운 사진’을 찍어요.


  외국으로 나간다든지, 출사여행을 한다든지, 낯선 마을을 걷는다든지 해야 ‘새로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짓과 생각이 새로움으로 가득할 때에 비로소 ‘새로운 사진’을 찍어요. 마음과 몸짓과 생각이 새로움이 아닌 ‘낡은 버릇’이라면, 외국으로 나가거나 출사여행을 하거나 낯선 마을을 걷더라도 늘 똑같이 ‘낡은 버릇(똑같은 패턴)’대로 사진을 만들어 내고 말아요.


  그러니, 사진을 찍을 적에는 더 값진 장비가 있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렌즈를 골고루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대형필름이나 중형필름을 구태여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새로운 마음’이요 ‘새로운 눈길’이며 ‘새로운 생각’을 건사하거나 다스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렌즈 하나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잘 찍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낡고 작으며 값싼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즐겁게 찍는 사진가가 있어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어서 마음에 새깁니다. 마음으로 먼저 찍지 않는다면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먼저 새기지 않으면 ‘필름이나 메모리카드나 종이’에 새로운 숨결을 사진으로 새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손주들 사진 찍어 주려고 사진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100일 사진은 직접 찍기로 했다. 간단한 조명을 설치하고 배경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217쪽)



  사진책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를 읽는 동안 ‘할아버지 사진가’ 모습이 자꾸 떠오르면서 즐겁습니다. 박찬원 님은 할아버지 나이로 사진가 길을 걷겠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사진을 배웁니다. 다만, 사진을 배우는 동안 아직 다 가벼이 내려놓지는 못한 탓에 ‘젊은(그렇지만 많이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교수’한테서 꾸지람을 듣기도 하는데, 이런 꾸지람을 달게 받아들이면서 씩씩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죽기살기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사진을 배운다고 할까요.


  왜 그러한가 하면, 낡은 버릇을 ‘죽여야’ 새로운 몸짓이 ‘태어나’거든요. 사진을 새롭게 찍으려면 오래되어 낡은 틀을 스스로 ‘죽이’듯이 ‘깨서 부수어’야 해요. 스스로 새로운 마음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박찬원 님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청바지를 장만하는 일’을 겪습니다. 흰머리를 ‘처음으로 그대로 두기’로 합니다. 흰머리를 까맣게 물들이지 않기로 합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차려입고서, 흰머리를 그대로 나풀거리면서, 어깨에는 사진기를 걸고서 활짝 웃는 몸짓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길을 나섭니다.


  아마 이런 삶은 박찬원 님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처음으로 느즈막하게 겪으면서 새로운 바람을 마셨으리라 느낍니다. 바야흐로 ‘남 눈치를 안 보는’ 몸짓이 된다고 할까요. 남 눈치가 아니라 ‘내 눈길을 생각하는’ 몸짓으로 거듭난다고 할까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가’를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에 얹히는 빛과 그림과 그림자와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눈부시게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박찬원 님이 양복을 벗고 염색을 그만두면서 청바지와 운동화와 흰머리인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시나브로 새로운 눈길로 씩씩하게 서는 사진길이 펼쳐집니다.



자기가 잘 찍었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 놓으면 그것이 작품이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 일 년 동안 찍은 가족사진을 모아 탁상용 캘린더를 만들어도 좋다. 항상 흐뭇한 추억과 함께 할 수 있다. (153쪽)



  할아버지가 손주를 찍는 사진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할아버지가 흰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골목을 걷고 소금밭을 걷고 숲을 걷고 시내를 걷고 시골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감(사진 주제)은 남달라야 하지 않습니다. 남다른 것을 찾아내려 한다면 ‘남다른 것’은 되더라도 ‘새로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늘 곁에 있는 가장 흔하고 수수한 것이어도 스스로 새로운 눈길이 될 적에 ‘새로운 사진’을 찍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책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는 바로 이 대목을 즐겁게 건드려 줍니다.


  일흔 넘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진가로 거듭나려고 하는 몸짓은 ‘사진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버릇을 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서 신나게 새로운 삶·살림·사랑을 가꾸는 ‘새로운 사람’이 되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할아버지 사진가’가 앞으로 선보일 새로운 사진과 사진책을 즐겁게 기다려 봅니다.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줄거움/사진비평)


(이 글에 넣은 사진은 박찬원 님한테서 받아서 올립니다. 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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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학교 - 3.11대지진 이후 도후쿠, 후쿠시마의 '우리 학교' 이야기
김지연 지음 / 눈빛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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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5



무너져도 일어나서 씩씩하게 새로 배운다

― 일본의 조선학교

 김지연 사진

 눈빛 펴냄, 2013.8.6. 17000원



  사진가 김지연(1971∼) 님은 2000년에 《연변으로 간 아이들》을 선보입니다. 이 사진책을 보면, 나고 자란 고향나라인 북녘을 떠나야 하면서 중국에서 꽃제비로 지내며 배를 곪고 외로운 아이들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어루만지면서 선보인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책은 ‘우리 이야기’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진’을 어떠한 눈길과 손길로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실마리를 새롭게 열었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 다큐사진’에 새길을 살며시 보여주었다고 할 만합니다.


  김지연 님은 이윽고 2001년에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를 선보입니다. 이주노동자가 아닌 똑같은 노동자라는 대목을 짚으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이 얼마나 사람답게 사는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밝히지요. 2005년에는 《러시아의 한인들》을 선보이면서 ‘사진으로 들려줄 수 있는 삶과 사람’을 새롭게 갈무리했습니다.


  ‘한국 다큐사진’을 일구는 다른 ‘김지연(1948∼)’ 님도 있지요. 1948년에 태어난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에서 계남정미소공동체를 일구다가 전북 전주로 옮겨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립니다. 나이는 달라도 이름은 같은 두 김지연 님은 ‘다큐사진’, 그러니까 ‘이야기를 담아서 삶을 비추는 사진’을 저마다 다르면서 곱게 보여줍니다. 한 분은 한국 시골마을에서 터를 잡고서 시골이웃을 사진으로 담아서 이야기를 엮고, 다른 한 분은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한겨레를 바라보고 이웃을 마주하는 손길로 사진을 담아서 이야기를 엮어요.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는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한겨레를 바라보고 이웃을 마주하는 김지연(1971∼) 님이 선보인 사진책입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난 뒤에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는 그 지진 피해 앞뒤로 어떤 배움살이를 하는가를 돌아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과학문명의 혜택을 신나게 누리며 살고 있는 21세기에 고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예쁘게 입을 모아 통일된 조국의 그리움을 노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고난과 원한의 눈물로 얼룩진 일본 땅에서 말이다. (5쪽)



  사진책 《일본의 조선학교》를 살피면 ‘조선학교’가 나옵니다. 이 조선학교는 ‘북조선 학교’가 아닙니다. 남녘과 북녘으로 갈리기 앞서 ‘그냥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던 그 ‘조선학교’입니다. 북녘에 매이지도 않고 남녘에 얽히지도 않은 채 ‘한겨레 삶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입니다.


  한때 북조선에서 조선학교를 돕는 손길을 내밀기도 했지만, 이 손길이 끊어진 지 퍽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녘에서는 일본 조선학교에 제대로 손길을 내민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일본에서는 ‘일본에 있는 교육시설’ 가운데 하나인 조선학교를 돕는 손길을 내밀지 않을 뿐더러 억누르거나 괴롭히는 손길을 뻗는다고 해요.


  일본에서 사는 ‘조선인’은 누구일까요? 일본에서 살아야 하는 ‘조선인’은 ‘한겨레’일까요, 아닐까요? 일본 정부한테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조선인은 남·북녘 모두한테서도 똑같이 따돌림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남·북녘 모두한테서 따스한 손길과 사랑을 받아야 할까요?





도호쿠 조선초중급학교는 1965년에 개교하여 1973년에는 860여 명의 학생이 있었던 번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20여 명의 학생만 학교를 지키고 있다. (사진 4)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서, 지진으로 끊긴 도로를 우회하며 도착한 동포들의 첫마니는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진 11)



  사진책 《일본의 조선학교》는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를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조선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아이들을 보여주고,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른들을 보여줍니다. 북녘말도 남녘말도 아닌 ‘조선말’, 그러니까 ‘한겨레 말’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 삶을 가만히 보여주어요. 총부리를 맞대고 으르렁거리는 두 나라가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할 살림살이를 생각하는 배움살이를 고요히 보여줍니다.


  마땅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텐데, 남녘 사회가 북녘 사회를 미워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북녘 사회도 남녘 사회를 싫어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남·북녘이 서로 으르렁거리거나 전쟁무기를 내세워서 윽박질러야 할 일이 없습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평화로운 삶을 이룰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언제나 싸움으로 이어지고, 평화는 한결같이 평화로 이어지며, 사랑은 늘 사랑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무기를 새로 낳는 길로만 갈 뿐이고, 사랑 어린 손길은 서로 돕고 아끼는 어깨동무로 가기 마련입니다.




“우리학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만든 학교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와 살게 된 땅에서 우리 민족교육을 하고자 만든 학교가 왜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사진 48)



  조선학교도 일본학교도 한국학교도 똑같은 배움터입니다. 조선학교에서도 일본학교에서도 한국학교에서도 똑같이 평화를 가르치고 배울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조선, 일본, 한국, 이렇게 서로 엇갈리는 이름이 되기보다는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서로 이웃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즐거운 길을 헤아릴 노릇이요,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어루만지고 얼싸안으면서 따스히 보살피는 길을 생각할 노릇이지 싶어요. 배움터는 그저 배움터일 뿐이고, 삶터는 그예 삶터일 뿐이니까요.


  사진 한 장이나 사진책 한 권이 일본 사회를 바꿀 수 있거나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은 ‘오늘도 일본 어느 곳에 조선학교가 있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한 권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 뒤에도 이 무너진 터전에서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서 학교를 추스르는 손길이 있다는 대목을 밝혀요. 사진을 한 장 한 장 그러모아서 엮은 사진책 한 권은, 오래된 데에다가 큰 지진이 닥쳐서 더욱 허름해지고 만 건물이라 하더라도 마음과 몸은 언제나 해맑고 씩씩한 어른하고 아이가 조선학교라는 터전에서 기쁨을 짓는다는 대목을 알려주어요.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진 117)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길을 가르치고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한국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을 가르칠까요? 일본에 있는 일본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일본에 있는 여느 학교에서도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함께 사랑을 짓는 길을 가르칠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교과서를 지어서 아이들한테 어떤 살림살이를 가르칠 때에 서로 웃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책 《일본의 조선학교》에 나오는 어른하고 아이는 함께 웃으면서 가르치고 배우는데, 이처럼 함께 웃으면서 가르치고 배울 자리가 힘겨운 살림에 허덕이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요. 무너진 자리에서도 씩씩하게 일어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빌어요.


  일본에서도 한국(남·북녘 모두)에서도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그야말로 아름다운 삶터가 되고 사랑스러운 배움터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 한 장은 언제나 사진 한 장인데, 이 사진 한 장이 깃든 사진책을 넘기는 동안, 상냥한 사람들이 이웃을 바라보며 밝게 웃는 숨결을 살그마니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4349.1.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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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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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서울과 대구에 있는 작은 마을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이라는 책에 이 느낌글(사진비평)을 붙입니다. <빈 방에 서다>뿐 아니라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도 널리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서울 : 책방 치읓(ㅊ) + 테이크아웃드로잉,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 스토리지북앤필름, 비엥북스, 땡스북스
대구 : 더폴락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3



‘보금자리’하고 ‘낡고 빈 집’ 사이

― 빈 방에 서다

 김지연 사진

 사월의눈 펴냄, 2015.10.16. 29000원



  제가 큰아이를 낳은 곳은 인천이고, 이무렵 우리 식구가 살던 집은 4층 건물 옥탑이었는데, 1955년에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4층 건물은 아직 그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용케 안 헐렸다고 할 수 있지만, 제법 튼튼하게 지었으니 버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은 기찻길하고 맞닿은 터라, 인천하고 서울 사이를 오가는 전철이 지나갈 때면 덜덜 떨려요. 전철이 서너 대(여느 전철과 빠른 전철)가 겹쳐서 지나갈 때면 떨림과 소리가 대단했습니다.


  오늘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은 전남 고흥 시골에 있습니다. 이 집은 언제 지었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른 시골집도 이와 비슷한데, 시골에서는 집을 짓고도 면내나 읍내에 신고를 안 하기 일쑤라 건축대장에 없습니다. 전기를 쓸 적에는 한국전력에 신고해야 하기에 전기를 처음 쓴 때는 알 수 있으니, 우리 식구가 사는 이 시골집은 1986년 7월부터 전기를 썼다고 나와요.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면 이 집에서 살았다는 분이 여럿 계십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꽤 오래된 집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흡사 관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작가 이야기)



  “낡은 방”하고 “빈 방에 서다”가 어우러진 사진책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2015)를 읽으면서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 사진책을 선보인 김지연 님은 전북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립니다.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두 가지로, 하나는 그저 낡고 작은 방이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입니다.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차츰 스러집니다. 빈집이 되면 이 집에는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는 터라, 아무도 없으나 천장이 주저앉고 비도 새기 마련입니다. 빈집을 따로 돌보는 사람도 없고, 빈집에 불을 때는 사람도 없으니, 이 빈집은 쓸쓸하게 남다가 어느새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에서는 집을 흙이랑 나무랑 돌로 지으니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지요.


  도시에서는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한 집이어도 재개발을 한다면서 허뭅니다. 더 오래 살고 싶어도, 따스한 보금자리로 여기면서 알뜰살뜰 아끼고 싶어도, 이러한 집이요 보금자리요 삶터를 하루 아침에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앞에 내세우면 그 어느 것도 이 돈을 이기거나 견디지 못해요. 재개발을 하면 돈이 떨어진다 하고, 재개발을 해야 돈이 된다 하며, 재개발을 하기에 돈을 잘 번다고 하지요.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낡거나 빈 집에 선 사진가 눈길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낡거나 빈 집은 참말 말 그대로 ‘낡’거나 ‘빈’ 집입니다. 그러나, 낡은 집이든 빈 집이든, 오랫동안 사람 살던 곳이요, 사람 살던 자국이 흐르는 곳이요, 사람 살던 이야기가 머물던 곳입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달력과 사진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때로는 편지가 벽에 붙고, 때로는 무언가를 적은 쪽종이가 벽에 붙어요. 빈틈이 하나도 없이 벽종이를 바른 낡은 방이 있고, 오랜 나날 묵은 때가 깃든 방이 있습니다. 발신자번호 따위는 뜨지 않는 낡은 전화기가 방 한켠에 얌전히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진책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문을 살그마니 열면 들이나 숲이 보이는 자리에 있구나 싶습니다. 방에서 문만 빼꼼 열어도 바람이 훅 불지요. 여름에는 더운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요. 여름에는 빗물 묻은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송이 날리는 바람이 불어요.


  텃밭에 심은 남새에서 풀내음이 흐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서 잎내음이 흐르다가,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잎노래가 흐릅니다. 젊은 날 낳아서 돌본 딸아들은 훌쩍 자라서 도시로 떠났습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설이나 한가위가 아니면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한 해 거의 모두 조그맣고 조용한 집에서 늙은 할매와 할배가 온 하루를 보냅니다. 방에 홀로 있기보다는 밭에라도 가고, 아니 방에 홀로 있지 않고 밭으로 가며, 옷을 정갈히 차려입고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갑니다.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작가 이야기)



  예부터 집을 지을 적에는 먼저 숲을 가꾸었습니다. 예부터 어느 집이건 나무를 기둥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우람하게 잘 자라서 튼튼한 줄기가 멋스러운 나무가 있어야 기둥으로 삼아서 집을 지어요.


  이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이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사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사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천 해도 가고 다시 천 해를 더 갈 수 있다고도 해요.


  오늘은 그저 ‘낡은 집’이거나 ‘빈 집’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이 모든 낡거나 빈 집은 하루 아침에 지은 집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백 해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입니다. 못해도 백 해는 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요, 웬만하면 삼백 해나 사백 해는 너끈히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에요.


  삼백 해를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라면, 이 집은 삼백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오늘은 낡은 집이 되어 헐리더라도, 비록 오늘은 빈 집이 되어 조용히 스러지더라도, 비록 오늘은 아무도 안 찾는 외딴 집 쓸쓸한 자리가 되더라도, 이 집에 깃든 노래와 숨결과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는 애틋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책 《빈 방에 서다》를 선보인 김지연 님은 바로 이 애틋하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마음을 달래면서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고, 책으로 꾸려서, 우리한테 다소곳하게 내밉니다.



어느 초여름, 그 빈집 앞에는 유채꽃과 황매화가 만발하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하루 아침(은 아니고 한두 해)에 우지끈 뚝딱 시멘트로 때려집은 집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멘트로 이루어진 아파트숲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이든 모두 집이요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시골집이든 도시 아파트이든, 사랑이 흐르고 이야기가 흐를 때에 집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천 해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이어도 사랑이 흐르지 않으면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오백 해가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멋스러운 기와집이어도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지 않으면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집살림을 곱게 건사하면서 알뜰살뜰 사랑스러운 손길로 돌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보금자리로 거듭나도록 북돋웁니다. 오늘은 비고 만 집이어도 유채꽃이 피고 냉이꽃이 핍니다. 어제도 비고 오늘뿐 아니라 모레도 비고 말 집이어도 민들레꽃이 피고 쑥꽃이 핍니다.


  텅텅 비어 사람 그림자가 안 보이는 집이기에 ‘낡거나 빈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 발자국이 없을 뿐, 이곳은 ‘꽃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마다 새로운 꽃이 흐드러지니 꽃집이에요. 마당에 감나무가 있으면 감나무집이라 할 수 있고, 마당에 배나무가 있으면 배나무집이라 할 수 있어요. 바다를 내다보는 ‘바닷집’이라든지, 멧골에 깃든 ‘멧집’이 될 수 있습니다.


  빈 방 앞에 선, 또 낡은 방 앞에 선 김지연 님은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빈 곳과 낡은 곳 앞에 선 김지연 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둘러보면서 사진 한 장 찍었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오늘 언뜻 보기에 낡았기에 빨리 허물어서 번듯한 시멘트집이나 아파트로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보아하니 텅 빈 집이기에 얼른 치우거나 밀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새롭게 살도록 할 집이요 보금자리입니다. 집을 짓는 마음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일 때에 아름답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숨결일 때에 싱그럽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집살림을 물려받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어른으로 자랄 아이들은 이 집을 물려받아 한결 이쁘장한 보금자리로 가꿀 수 있고, 다른 터에 새로운 집을 지어 그야말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집자리가 보금자리인 까닭은, 집을 지어서 살림을 이룰 적에 사랑을 꽃피우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곧, 집자리는 보금자리이면서 사랑자리요, 이야기자리이고, 노래자리이자 꿈자리입니다. 웃음자리이고, 꽃이 피는 자리이며, 삶이 기쁘게 흐르는 자리, 바로 삶자리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태어나고, 사랑자리에서 자랍니다. 사진책 한 권은 이 삶자리에서 사랑을 가꾸며 웃음과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빚습니다. 4348.11.15.해.ㅅㄴㄹ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김지연 님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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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김지연 지음 / 아카이브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22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김지연 글·사진

 아카이브북스 펴냄, 2008.11.5. 1만 원



  시에는 시장이 있듯이, 읍에는 읍장이 있고, 면에는 면장이 있습니다. ‘리’로 끊어지는 시골마을에는 이장이 있습니다. 2015년부터 주소 얼거리가 바뀌어 이제 ‘리’로 끝나는 마을 이름이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행정을 맡은 이들한테는 ‘마을(리)’이 사라졌다고 할 테지만, 마을에서 사는 이들한테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마을’이 있고, 마을을 대표하는 분을 가리키는 ‘이장’도 똑같이 있습니다.


  다만, ‘마을지기’라고 할 수 있는 ‘이장’이라는 이름과 자리가 생긴 발자국은 매우 짧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같은 이장은 행정과 사회 얼거리에서 생긴 이름이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이장이 아닌 ‘마을 어른’이 있었거든요.


  전북 전주에서 2013년부터 서학동사진관을 꾸리는 김지연 님이 지난날 전북 진안에서 ‘계남정미소 공동체박물관’을 꾸리던 무렵에 선보인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아카이브북스,2008)이 있습니다.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이라는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계남정미소라는 곳을 ‘공동체박물관’으로 고쳐서 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였다고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도시살이만 헤아린다면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습니다. 거꾸로 시골살이만 헤아린다면 ‘동장’이나 ‘통·반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을 테지요.



내가 시골에 들어가기 전에는 생활 주변에 있는 회사나 관청의 직책 즉 회장, 사장, 전무, 부장, 과장 등 아니면 높으신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변호사, 의사 등이 관심 있게 눈에 들어왔고 또 그것이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직책인 줄 알았다. 이장이라니! 아직도 그런 직함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런데 시골로 들어오면서 이장이 하는 일이 참으로 놀라웠다. (머리말)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에서 전북 전주로 ‘사진을 이야기하는 무대’를 옮겼지만 전라북도에서 시골마을을 돌면서 사진을 찍는 일을 그대로 잇습니다. 2015년에는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라는 사진책도 선보였습니다. 《빈 방에 서다》라는 사진책을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시골을 무대로 사진을 찍기에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사는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를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숨결이 고이 흐릅니다.


  지난 2014년에는 《삼천 원의 식사》(눈빛)라는 사진책도 나왔어요. 《삼천 원의 식사》를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다가 밥 한 끼니를 먹던 식당에서 만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김지연 님하고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힙니다. 멀디먼 곳에 있느라 거의 안 보이거나 감추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김지연 님 둘레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사람들이 김지연 님 사진으로 찬찬히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김지연 님이 선보이는 사진책은 김지연 님이 스스로 일구는 삶에 따라서 마주하는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시골사람을 마주하면서 ‘시골은 어떤 곳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비율로 치면 시골에 사는 사람은 10퍼센트조차 안 될 뿐 아니라, 막상 농사일(농업)을 하는 사람은 5퍼센트 안팎입니다. 9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도시에 살고, 농사일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이 95퍼센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신문이나 방송뿐 아니라 사회와 학교에서 ‘시골에 살거나 흙을 만지는 사람’ 이야기나 움직임은 거의 안 드러날 만합니다. 아예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안 보이’거나 ‘안 드러난’ 자리에 있던 시골사람 이야기와 움직임을 ‘이장’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은 시골지기 모습으로 밝혀서 드러내려고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좀처럼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면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은 시골마을 이장님을 바로 ‘내 이웃’이요 ‘우리 이웃’이라는 눈길로 마주하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이야기꾸러미라고 하겠습니다.


  일부러 멋있게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시골을 지키는 듬직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와 동떨어지게 끝까지 시골을 붙잡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늙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이런 편견이나 저런 선입관이 없이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사진 한 장으로 흐릅니다.



“이곳이 좋아요. 이곳에서 낳고 이곳에서 자랐는데 도시에 나가서 무얼 합니까.” 그 말 속에는 젊은 시절 큰 도시로 나가고 싶었던 꿈까지 부정하기에는 많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은 자기 고향에 많은 애착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떠날 꿈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버릴 수 없는 땅과 가족과 친지와 자연이 있다. (머리말)



  시골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사람도 무척 적습니다. 대통령 움직임이라든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의사나 변호가나 사장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놓고 눈길을 두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라면 이처럼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오르내려요. 이러면서 이런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여느 사람들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낮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조차 머릿속으로 스며들 겨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시골사람한테는 어떤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들까요? 바로 ‘땅’이나 ‘하늘’이나 ‘숲’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지요. 풀하고 나무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지요. 논이랑 밭 이야기를 가만가만 나누지요.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을 읽으면, 소나 풀이나 나무나 논이나 밭 이야기가 나란히 흐르지는 않습니다. 이 사진책은 시골마을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면서 삶을 짓는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로 엮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에 있는 이웃을 살가이 마주하는 손길이 드러나고, 시골에 있는 이웃이 저마다 즐겁게 짓는 살림이 얼마나 푸근한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젊은이나 어린이가 자취를 감추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를 씩씩하게 맡으면서 예나 오늘이나 이 작은 마을에서 오붓한 잔치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사진으로 넌지시 보여줍니다.




나즈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갈우소니’라 불리웠다고 한다. 산의 형태가 소가 가로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리웠으나 일제강점기 때 새로 개간한 밭이 많다고 해서 신전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동네 어른들은 ‘갈우소니’라 부른단다. 6만여 평의 밭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호박고구마를 생산한다고 이장님이 자랑을 한다. 상수리를 말려서 겨울에는 상수리묵도 해먹는다고 한다. (207쪽)



  사람이 사는 시골이고, 이웃이 살림하는 시골입니다. 흙을 일구어 삶을 짓는 시골이며,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사랑을 나누는 시골입니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할매가 밭을 일구어 거둔 남새를 찬찬히 상자에 담아 우체국까지 짊어지고 가거나 경운기에 싣고 가서 도시에 있는 아이들한테 부칩니다. 돈으로 치면 얼마가 될는지 모르나, 땀방울이 알알이 밴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에는 흙내음이 서립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즐겁게 땅을 일군 뒤, 스스로 기쁘게 이웃(거의 도시이웃)한테 베푸는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해요.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에는 이런 모습이나 얼거리가 사진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바로 이런 살림을 조용히 가꾸면서 예나 이제나 고요히 마을을 돌보는 할매랑 할배한테 둘러싸인 이장님이 사진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차근차근 나와요. 이장님은 저마다 이녁 마을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가 하는 이야기를 사진가한테 자랑합니다.


  사진가는 조용히 사진을 찍으면서 조용히 이웃이 됩니다. 한 번 들렀다가 다시 안 오는 뜨내기나 구경꾼이 아니라, 한 번 들른 뒤에 기쁘게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되고, 손님에서 어느덧 이웃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고 자꾸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반가운 사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으로서 여러 시골마을을 찾아갑니다. 이 투박한 사진책에 실린 여러 마을 이장님 얼굴을 바라보다가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어김없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하고, 궂은 일도 기쁜 일도 도맡으면서 씩씩하고 기운찬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곰곰이 그려 봅니다. 4349.1.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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