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비시선 120
박형진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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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9



동냥아치 먹이는 어매한테서 물려받은 시골노래

―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박형진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4.3.30.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시골에서 살며 곁님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시골살림을 고이 건사하면서 하루를 지으려 하는 아재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 아재는 손수 흙을 만져서 손수 밥을 먹는 살림을 사랑합니다.


  시골 아재는 시골을 사랑하기에 시골집을 돌보고, 이녁이 곁님하고 낳은 아이는 시골바람을 마시면서 자라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이 시골 아재는 어느새 노래를 부르지요.



아침밥 해먹으면 / 마루 한번 훔칠 새 없이 /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밭으로 내달아야 하는 / 우리와는 달리 / 애들 챙겨서 유치원 차 태워 보내고 /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랠 들으며 / 그 형수씨 설거지한다 (서울에 와서)



  시골 아재가 부르는 노래는 때로는 구슬픕니다. 때로는 성이 치밉니다. 때로는 푸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웃음이요 기쁨이며 벅찬 꿈이에요.


  호미질을 하다가 노래를 하고, 가래질을 하다가 노래를 합니다. 지심을 매다가 노래를 하고, 망가지거나 무너지는 시골마을을 바라보다가 노래를 합니다.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노래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를 해요.


  이런 노래는 알알이 글로 거듭나고 시로 다시 옷을 입어서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창작과비평사,1994)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내 땅을 장만하려는 마음 하나로 / 결혼하고 6년 동안을 / 담배도 끊어보고 술도 끊고 / 애도 더는 낳지 말자고 / 뱃속에 든 것에까지 몹쓸 짓을 했는데…… / 동네 땅금이 오천원에서 평당 육만원까지 오른 지금 / 내 꿈은 산산이 부서져 /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이 되었다 (서해안 바람 1)


땅금은 땅땅 올라 서해안 바람은 / 버스도 몇번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콘도를 들여와서 / 더 뜨거운 여름을 예비하고 있고 / 나는 땅 한 마지기를 살 수 없고 /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 외딴 조각밭에 잡초만 무성하고 / 나는 이제 밭에 가기 싫어졌다 (서해안 바람 2)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를 쓴 시골 아재는 박형진 님입니다. 사회에서는 이녁을 가리켜 ‘농부 시인’이라고도 일컫는데, 이녁이 남달리 뛰어나기에 시를 쓰는 흙일꾼이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흙을 만지고 곁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시골살림을 가꾸다 보니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올 뿐이에요.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시골이웃이 줄고 시골사람이 사라지며 시골노래가 옅어지기 때문에, 박형진 님이 조용히 나서서 시골노래를 부르려 하는구나 싶어요.


  박형진 님은 그동안 여러모로 재미난 글을 갈무리해서 책을 여러 권 내놓았습니다. 《호박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내일을여는책,1996)이나 《다시 들판에 서서》(당그래,2001)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2003)이나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2005)이나 《갯마을 하진이》(보리,2011)나 《콩밭에서》(보리,2011)나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열화당,2015) 같은 책을 선보였어요.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 추녀 물을 세어본다 / 한 방울 / 또 한 방울 / 천원짜리 한 장 없이 /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입춘 단상)


아침에 내가 집을 나설 때 / 너희는 버릇처럼 아빠 / 맛있는 것 좀 사다 달라고 했지 / 맛있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 아빠는 오늘 / 자지 않고 기다릴 너희를 위해 / 천원짜리 한 장을 아꼈다가 / 호빵을 샀다 (호빵을 사면서)



  시골 아재는 시골 아재스럽게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노동은 이제 돈이 되지 못한다” 하고 슬픔 섞인 노래를 부르고, “자지 않고 기다릴 너희를 위해 천 원짜리 한 장을 아꼈다가 호빵을 샀다” 하고 기쁨 감도는 노래를 부릅니다.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를 읽으면 ‘천 원짜리’라는 말마디가 유난히 자주 나옵니다. 이 시골노래를 부르던 무렵이나 요즈음이나 그리 안 달라졌는데, 시골에서 시골지기가 땅을 일구어 얻은 남새나 푸성귀는 값이 거의 그대로예요. 스무 해 앞서나 요즈음이나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 값은 엇비슷합니다. 쌀값도 그렇지요. 지난 스무 해 동안 찻삯이라든지 우표값이라든지 이런저런 물건값은 몇 곱으로 올랐어요. 그렇지만 ‘시골지기 일삯’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이러하다 보니 시골 아재는 자꾸 ‘천 원짜리’ 하나를 아끼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래를 부를밖에 없구나 싶어요. 뙤약볕에 흘리는 땀이 천 원짜리 한 장이 못 되는 살림을 노래합니다. 그래도 이 천 원짜리 한 장을 아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맛난 것을 장만하려는 마음을 노래해요.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 나는 /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사랑)


밭둑 가에 난 / 한 포가리 녹두 / 무심코 따 / 씹어보니 달싹하다 // 딸아, / 먹어보렴 / 칭얼대지 말고 / 시장한 배엔 / 녹두 꼬투리도 맛있구나 (지심)



  바람이 한 줄기 불어 시골 아재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달래 줍니다. 구름 한 조각이 살며시 깃들어 시골 아재 등판에 내리쬐던 땡볕을 식혀 줍니다. 해거름에 반딧불이가 나타나 시골 아재 시름에 젖은 눈가를 어루만져 줍니다.


  풀여치 한 마리가 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풀여치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작고 수수하면서 투박한 사랑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녹두 한 포가리가 노래로 새로 태어납니다. 지심을 매다가 녹두 한 포가리를 훑어서 씹다가 빙그레 웃는 노래를 짓고, 이 노래를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설을 며칠 앞두고 어머닌 / 동네 노인들과 두부를 하시는데 / 방안에 앉아 있노라니 / 왠지 밖이 떠들썩하다 / “동냥? 워매 세상에 / 지금도 동냥 얻으러 댕기는 사람이 있구만잉, / 이리 들어와서 불 좀 쬐소 내 / 쌀 한 됫박 퍼올텡게” / 동냥 소리에 놀라 / 나도 밖으로 나가보니 / 두부를 하다 말고 어머닌 / 물바가지에 하나 가득 쌀을 퍼다가 / 동냥아치 주머니에 부어주시고 / 두부 한 모는 썰어서 상에 받쳐서 / 두 동냥아치를 먹이시네 (어머니)



  시골 아재 노래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이녁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꾸었겠지요. 동냥아치를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들여서 밥을 먹이고 아끼는 손길을 늘 지켜보고 마주하던 마음이 자라고 자라서 시나브로 노래 한 가락으로 태어났겠지요. 그리고 이런 시골 아재 노래는 여느 때에 언제나 이녁 아이들한테 스며들어서 이녁 아이들도 가만가만 시골노래를 부르는 이쁜 숨결로 자랄 수 있었을 테고요.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더라도, 이러는 동안 마음속에 품은 꿈까지 쪼그라들더라도, 흙을 만지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려는 손길은 어엿합니다. 겨울 지나 봄이 새로 찾아오면 다시금 씨앗을 심는 손길이 됩니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들면 다시금 땡볕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들과 숲에 푸른 바람이 불도록 살림을 짓는 손길이 되어요. 이리하여 가을에 가을들과 가을숲에 서서 가을노래를 부르는 고운 시골 아재가 됩니다.



댓 마지기 농사 이것도 농사라고 / 우리 식구 모두가 매달려 / 새참 때 막걸리 한 사발의 목마름도 / 해결치 못하면서 / 그렇다 / 우리의 노동은 이제 / 돈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노동은 돈이 되지 못한다)



  호미질 한 번에 노래 한 가락입니다. 삽질 한 번에 노래 두 가락입니다. 괭이질 한 번에 노래 석 가락이요, 고무래질 한 번에 노래 넉 가락입니다.


  노래를 부르기에 시를 씁니다.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기에 시를 씁니다. 노래를 부르며 삶을 가꾸려는 손길이기에 시를 씁니다. 노래를 부르는 살림으로 곁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려는 꿈이기에 시를 써요. 온몸하고 온마음을 바쳐서 시를 써요. 따사로운 흙 품에 안겨서, 맑고 파란 하늘숨을 마시면서, 싱그럽게 춤을 추는 풀과 나무와 꽃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시 한 줄을 노래처럼 써요. 2016.9.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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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6
전영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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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7



부르면 맨 먼저 돌아보는 그대를 사랑해

―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전영관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6.8.22. 8000원



  학교에서 교과서로 시를 가르칩니다. 시를 읽은 뒤에 느낌이나 생각을 묻는 시험문제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퍽 많은 사람들은 시를 어렵게 여깁니다. 시 한 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시 한 줄을 써 보라 하면 ‘시인이 아닌데 어떻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입니다.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 놀라지 않겠지 (분갈이)



  시가 어렵다면 시는 아무도 쓸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시가 어렵다면 우리는 시를 쓸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시를 읽는 사람이 있으며, 시로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는 아주 쉬우면서 사랑스럽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시를 어렵게 쓰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어요.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거든요. 일부러 어렵게 쓰지요. 일부러 알아보기 힘들도록 쓰지요. 속내를 숨기려 하면서 시를 어렵게 쓰고, 속마음을 숨기면서 겉을 꾸미려 하면서 자꾸만 시가 어려운 길로 가지 싶습니다.



바람과 파도처럼 남남이었다가 /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까지 / 누구를 흔들고 하냥 기다리게 했는지 (파랑주의보)



  전영관 님이 선보인 시집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실천문학사,2016)을 읽습니다. 이 시집을 놓고도 어렵다고 여기면 어렵습니다. 쉽게 쓴 시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 시집을 놓고 어렵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때에는 그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겠지요.


  전영관 님은 2015년 가을에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 그예 죽음나라로 갈 뻔했다고 해요. 둘레에서는 다시 일어서기 어려우리라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단한 수술을 거친 끝에 씩씩하게 다시 일어섰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면서 새롭게 시집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르면 가장 먼저 돌아보는” 님을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한 올 두 올 엮어서 시집 한 권 묶을 수 있었다고 해요.



당신의 하늘은 나도 없고 달도 없어 / 캄캄할 것이네 남은 쑥은 함지에 웅크린 채 / 바람이 차가워진다고 버석거릴 것이네 / 달 없는 동네라고 저녁별들 몰려와 / 품앗이로 한 줌씩 푸른빛을 부어주고 가겠네 (바람떡)


자두와 살구 사이 / 서성거리는 당신을 생각한다 (아내)



  부르면 가장 먼저 돌아보는 님을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부르면 서로 먼저 외치면서 돌아보아 줍니다.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지르는 마을고양이를 바라보면서 불러 보면 여러 마을고양이가 모두 한꺼번에 고개를 홱 돌리면서 쳐다봅니다. 뒤꼍 나무에 내려앉는 멧새를 불러 보면 멧새는 한꺼번에 이쪽을 쳐다보았다가 푸드득거리면서 날아오릅니다. 가을들을 빼곡하게 채운 샛노랗게 익는 나락을 바라보며 “금빛으로 고운 나락이로구나” 하고 부르면 나락은 바람을 타고 촤락촤락 노래하며 이쪽을 바라봅니다. 하늘을 덮은 흰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멋지도록 하얀 구름이로구나” 하고 부르면 구름은 바람을 사뿐사뿐 타면서 천천히 흐르며 이쪽을 내려다봅니다.



저녁은 저 혼자 / 팥죽 같은 노을 한 그릇 퍼먹고 퇴근했다 / 몇몇은 불판 앞에 모여 상사를 씹고 / 삼겹살을 씹고 질긴 하루를 씹는다 / 호떡 장사 아줌마는 모로 누워 / 식어가는 호떡 자세로 기대앉았다 (야근)



  수술대에 누워서 그리운 님을 마음속으로 불렀을 시인을 떠올려 봅니다. 수술대를 박차고 일어난 뒤에 사랑스러운 님을 입으로 불러 보는 시인을 헤아려 봅니다. 마음속으로만 부르던 님을 입으로도 부를 수 있을 적에 참으로 기쁘겠지요. 마음속으로 애타게 그리던 님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두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적에 더없이 반갑겠지요.


  가을에 감알 하나 따며 시를 씁니다. 마음으로 쓰지요. 이 감알 하나를 혼자 먹을 수 있고, 반으로 갈라 둘이 먹을 수 있으며, 반으로 또 갈라서 넷이 먹을 수 있어요. 가르고 또 가르면 개미한테 나눠 줄 수 있고, 새한테 나눠 줄 수 있어요. 나비하고 벌도 감 한 알을 조금씩 나누어 먹을 만합니다.


  잘 여문 초피알을 훑으면 두 손에 초피내음이 번집니다. 잘 익은 무화과알을 따면 두 손에 무화과내음이 번집니다. 나락을 베는 손에는 나락내음이 번지고, 낫를 쥐어 풀을 베는 손에는 풀내음이 번져요. 아침저녁으로 물을 만지며 밥을 짓는 어버이 손에는 물내음도 밥내음도 번지겠지요.



구름은 과묵한 사내의 양미간 / 구름은 학자를 비웃으며 진화하는 장르 / 구름은 들끓던 기억도 식혀 들려주는 냉장고 / 구름은 쏟아내도 절망이 줄지 않는 화수분 / 구름은 서로 괜찮다며 밀치다 떨어트린 만두 / 구름은 사랑에 실패한 여인들에게서 만발하는 후일담 (변신에 대한 프롤로그)



  시집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을 찬찬히 읽는 동안 온갖 생각을 기울입니다. 내가 부를 적에 가장 먼저 돌아보아 주는 님은 누구일까요? 나는 누가 내 이름을 부를 적에 댓바람에 그쪽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웃을 만할까요?


  아픈 이웃한테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씁니다. 고단한 동무하고 어깨를 겯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읽습니다. 기운차게 뛰노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는 손길로 시를 읽고 씁니다. 밥을 짓고 살림을 짓는 어버이 넋으로 시를 쓰고 읽습니다.


  바람 한 줄기가 솔꽃(부추꽃)에 내려앉습니다. 부전나비 한 마리가 바람 한 줄기를 타고 마당으로 찾아와서 솔꽃 봉오리에 가볍게 앉아 아침을 누립니다. 아침 햇살이 구름 사이로 퍼지며 대청마루로 들어오는 한가을입니다. 2016.9.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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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예쁜 마을책방 두 군데가 2016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마을책방입니다.
마을책방을 연 두 사람은
두 사람 나름대로 두 가지 빛깔로
두 군데에 따로 마을책방을 냈습니다.

대구에 계신 분이라면,
또 대구마실을 하는 분이라면,
'아이 키우는 어머니'가 꾸리는
이 예쁜 마을책방을 눈여겨보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영남일보>에 두 마을책방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2016년 9월 12일치 기사입니다.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60912.0102208125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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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의 편지 창비시선 105
강은교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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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6



가을볕 같은 시를 읽고, 가을바람 같은 시를 쓰다

― 벽 속의 편지

 강은교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2.11.5. 7000원



  저는 ‘시 쓰는 공책’을 따로 둡니다. 시를 써서 잡지에 실은 일이 아직 없고, 새봄에 치르는 글잔치에 시를 보내어 뽑힌 적이 없습니다. 제가 시 공책을 따로 두는 까닭은, 우리 집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입니다. 아이들한테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에 담기는 말을 들려주려고 ‘시’를 써요. 아이들하고 주고받는 짧고 쉬우며 재미난 시골살이 이야기를 노래처럼 적다 보니 저절로 시가 된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시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짧게 노래를 지어 봅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 거의 없는 시골에서는 / 건널목이나 / 신호등이 / 쓸모없어 // 모든 곳이 / 길이면서 / 마당이면서 / 마을이면서 놀이터인 / 이 시골에서는 / 조용하고 홀가분하지.”처럼 이야기를 지어요.


  아이들하고 들마실을 할 적마다 너른 논둑길을 신나게 걸어요.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빼고 거의 아무런 자동차도 안 지나가니까 너른 논둑길은 참말로 길이면서 마당이에요. 이 가을에 이 논둑길은 깨나 콩을 바심하고서 말리는 마당이 되고, 또 나락을 베어 너는 마당도 되어요.



새벽길 / 어둠이 마악 일어서기 시작할 때 / 어린 고양이 한 마리 / 달려오는 자동차에 나동그라졌네 / 푸들 푸들 / 허공을 긁어대었네 (새벽길)



  시를 어렵게 여긴다면 참으로 어려워요. 그러나 시가 우리들 수수한 살림살이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조촐한 이야기라고 여긴다면, 여느 어머니나 아버지 누구나 수수한 노래로 지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강은교 님이 쓴 《벽 속의 편지》(창작과비평사,1992)라는 묵은 시집을 읽으면서 이 가을에 시를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1945년에 태어난 강은교 님이니 이제는 어엿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시인이지요. 이녁은 한창 젊던 스물일곱 나이에 아기를 밴 몸으로 그만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죽음과 삶 사이를 허우적거리듯이 오가면서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찔하고 끔찍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해요. 아기랑 함께 죽음 문턱을 넘나들면서 죽음보다 괴로웠을 텐데, 그 죽음 문턱에서 벗어나 삶이라는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 ‘글(시)’을 예전하고는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 텔레비전을 켜면 / 우리 모두 지혜롭네 / 우리 모두 평화롭네 / 공룡이 가리키는 먹이 / 즐겁게 즐겁게 먹으며 / 공룡이 가리키는 벌판 / 평화롭게 평화롭게 걸으며 (공룡)


바람소리 두엇이 달려오기에 / 반갑게 맞이하네 / 바람소리 두엇을 방에 들이려니 / 바람소리 서넛이 따라 들어오네 / 바람소리 서넛을 방에 들이려니 / 바람소리 대여섯이 따라 들어오네 // 끝이 없네 //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 수천 날 그리 울면서 / 여기. (벽 속의 편지, 바람소리)



  아파 보지 않고서는 아픔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다고 해요. 죽음 문턱을 넘나들어 보지 않고서는 죽음을 알거나 말하기는 어려우리라 느껴요. 어버이로서 ‘아이가 아플’ 적에는 ‘내가 이 아이들 아픔을 도맡아서 앓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마음이 되기 일쑤예요. 아픔이 얼마나 몸을 갉아먹는가를 알기에 아이들한테는 아픔이 없기를 바라지요. 이러면서 아이들 손을 잡거나 이마를 쓸어내리면서 얘기를 걸어요. “얘야, 아픔은 살짝 들렀다가 지나간단다. 네가 더욱 튼튼한 몸으로 거듭나서 신나게 놀라는 뜻으로 살짝 머물다가 떠나지. 다 괜찮아. 푹 자고 난 뒤에, 새로운 몸으로 벌떡 일어나서 신나게 뛰노는 생각을 하렴.”


  끙끙 앓는 아이를 달래고 나서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땁니다. 아이더러 아픔을 훌훌 털고 일어나서 맛나게 먹으라고 이르다가 문득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노래로 지어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가지를 치면 / 무화과알이 더 많이 더 굵게 / 맺힌다는데 // 가지를 고이 두고 / 늘 살뜰히 어루만져도 / 무화과알은 / 달고 굵은 선물을 / 해마다 여름 가을에 / 실컷 / 베푸네.”



이제 오르자 / 그대들의 날개 끝으로 / 이 탁한 공기를 차올려라 / ‘페놀’의 공기를 걸러올려라 / 아, / 죽은 이들이여,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이들이야. (그대들은 새가 되었네, 젊은 죽음들을 위하여)



  강은교 님이 1992년 언저리에 쓴 시에 나오는 텔레비전을 돌아봅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 우리 모두 지혜롭네”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켜면 ‘공룡’이 가리키거나 시키거나 보여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면서 ‘평화롭게’ 살 만하다는 사회 모습을 다룹니다. 사회를 익살스럽게 다루는 시라고 할 만하지요. 이러한 모습은 1990년대뿐 아니라 2010년대에도 그리 안 달라졌다고 여길 수 있어요. 우리 둘레에는 ‘공룡’ 같은 거대자본이나 거대권력이 무시무시하게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시 한 줄로 담아내는 셈이에요.


  2010년대를 사는 우리들은 ‘4대강 사업’이 남긴 아픈 자국을 맞닥뜨립니다. 지난날에는 새만금과 시화호에서 아픈 자국을 맞닥뜨려야 했고, 또 지난 어느 한때에는 낙동강에 페놀을 몰래 버린 아픈 자국을 맞닥뜨려야 했어요. 강은교 님은 시 한 줄로 페놀 이야기를 씁니다. 1992년을 살던 사람들이 맞닥뜨리던 아픔을 시로 달래면서 다독여요.



그리하여 / 보이게 하소서 // 지금 부는 바람은 / 봄으로 가는 바람이니 / 지금 반짝이는 별은 / 홀로 하늘을 끌고 가고 있으니 // 보이게 하소서 / 어둠 속의 / 속의 빛 / 차가운 눈이 품고 있는 저 탄생들 // 끝내는 흐르게 하소서 / 처음과 끝이 하나 되어 / 흐르게 하소서 / 일어서 / 흐르게 하소서. (지금 어두운 것들은)



  시골 멧자락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이오덕 님은 지난날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어린이가 입으로 읊는 말은 언제나 모두 시가 되고, 어린이가 제 삶을 꾸밈없이 글로 적을 수 있으면 이 글은 늘 시가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런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긴다면 ‘어른도 모두 어린이로 자라며 뛰놀던 나날’이 있던 만큼, “어른도 모두 시인이다” 하고 말할 만하다고 느껴요. 어린이다운 마음을 잊거나 잃지 않고 즐겁게 살림을 짓는 어른이라면 어른도 모두 시인이 되리라 생각해요.


  시쓰기란 우리 살림살이를 수수하게 쓰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시쓰기란 어버이나 어른이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이어주거나 가르치고 싶은 즐거운 살림노래가 될 수 있어요. 시쓰기란 우리가 겪거나 바라보는 슬프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이야기를 달래는 손길이 될 수 있어요. 시쓰기를 하면서 우리 삶하고 살림을 새롭게 헤아릴 수 있고, 시쓰기를 하는 동안 우리가 늘 쓰는 말을 새삼스레 사랑할 수 있어요.


  강은교 님 작은 시집 《벽 속의 편지》에 흐르는 바람을 그려 봅니다. “봄으로 가는 바람”을 그리고, 이 봄으로 가는 바람이 간질이는 “반짝이는 별”을 그립니다. “처음과 끝이 하나 되어” 흐르게 해 달라는 비손을 담은 봄으로 가는 바람은 어떤 기운이라고 할 만할까요.



나, 그이를 기다립니다. / 바람 속에서 바람의 범벅이 되며 / 어둠 속에서 어둠의 범벅이 되며 (벽 속의 편지, 언덕)


힘을 빼야 하네 / 어깨에서 어깨힘을 / 발목에서 발목힘을 / 그런 다음 / 헐거워진 그대 온몸 / 곧게곧게 펴야 하네 (물에 뜨는 법)



  묵은 시집이든 갓 나온 시집이든 삶을 밝히는 이야기가 흐르면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이름난 분이 쓴 시이든 우리가 스스로 써서 아이들이나 이웃하고 도란도란 나누려고 쓰는 시이든 모두 즐겁다고 느낍니다.


  가을에 시집을 읽어요. 그리고 가을에 시를 써요. 가을에 스스로 노래를 불러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홀가분하게 노래로 불러요. 나락이 익게 하는 가을볕 같은 시를 읽고, 바심한 콩과 깨를 말리는 바람 같은 시를 써요. 2016.9.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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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 성원근 유고시집 창비시선 146
성원근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51



하늘에서 바람으로 만나는 작은 유고시집

―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성원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2.28. 3500원



  1958년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고, 1977년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1985년에 비로소 마친 뒤, 1989년에 혼인한 다음, 1991년에 아들을 낳고, 1992년에 대학원을 마치고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는, 1993년에 악성골육종 진단을 받고 암하고 싸우다가 1995년에 고요히 숨을 거둔 사람이 있습니다. 이녁은 1994년에 대학교에서 첫 강의를 하기도 했다는데, 고작 한 해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려운 몸으로 이 땅에 스러졌다고 합니다.


  이녁은 가슴에 품은 이야기를 틈틈이 시로 적어 놓았고, 이 시 꾸러미를 엮어서 1996년에 조그마한 시집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하늘로 가면서 언제까지나 젊은 마음인 시인으로 남을 성원근 님 이름으로 나온 유고시집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창작과비평사,1996) 이야기입니다.



그날, / 하늘이 맑을 때, / 노래가 생겼다. / 그날 감람산에 오르면 / 하늘을 볼 것이다 (하늘)


한장의 땅과 / 한겹의 하늘이 있으면 / 내 잠자리는 편안하다. // 땅은 땅으로 / 하늘은 하늘로 곧 / 그만인 것을. (물 흐르듯이)



  성원근 님이 남긴 시를 읽으면 ‘산’과 ‘하늘’과 ‘바람’ 이야기가 잇달아 나옵니다. 시인 스스로 ‘이 땅에 오래 머물지 않고 저 하늘로 곧 날아가’리라 느꼈기 때문일까요. 어릴 적부터 이 땅에서 저 하늘을 그리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일까요.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시집을 읽습니다. 2016년 여름에 전남 고흥에는 빗줄기가 거의 안 들고 내내 땡볕이었습니다. 구월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빗줄기가 드는데, 이 빗줄기는 몹시 거셉니다. 석 달 동안 마른 못을 한꺼번에 채워 주려는 듯이, 석 달 내내 가늘게 흐르던 골짝물이 잔뜩 붇도록 하려는 듯이, 구월비가 참으로 세찹니다.


  그런데 이 거세가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놉니다. 우산을 받다가 우산을 치웁니다. 비옷을 입다가 비옷을 벗습니다. 아이들은 시골집 마당하고 고샅에서 마음껏 비를 맞으면서 뛰고 달립니다.


  시골비는 맞을 만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도 어릴 적에, 그러니까 이 아이들만 하던 날에 으레 비를 맞으며 놀았다고 떠오릅니다. 비를 맞으며 공을 차고, 비를 맞으며 술래잡기를 하며, 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했어요.



댓잎이 흔들린다. / 스치는 바람에 / 눈이 시리다. // 또다시 바람이 불면 / 내가 / 댓잎 되어 스치우리라. (푸른 대숲, 늘 바람 부는)


나는 왜 자꾸만 / 너를 닮아가는 거냐. // 사암길 켜를 벗으며 / 버섯꽃이 피는 / 너의 거친 피부를 (바위와 솔 2)



  아무리 거센 비라도 곧 멎어요. 아무리 세찬 비라도 머잖아 그쳐요. 비가 그치면 밀린 빨래를 하고, 이불을 볕에 말릴 테며, 볕을 쪼이는 새로운 놀이를 누려요. 이 비가 지나가면 이 가을에 마을마다 벼베기로 부산해요.


  봄에는 싹을 틔우던 볕이 가을에는 열매를 익힙니다. 봄에는 잎이 돋고 줄기가 굵도록 북돋우던 볕이 가을에는 오직 열매와 씨앗이 알차게 여물도록 이끕니다. 가을볕을 쐬는 열매는 아침저녁이 다르게 익어요.


  꼭 한 권으로 남는 작은 시집을 베푼 성원근 님이 읊은 노래를 생각합니다. 꼭 한 번 열매를 맺은 작은 시집에 흐르는 노래를 생각합니다. 꼭 한 차례 피어난 작은 꽃송이 같은 노래를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는가. / 인간으로 태어나 노래 부르는 인간의 마음을. / 초록의 나뭇잎이 이슬을 달고 / 순금의 햇살 반짝이는 아침이 아니어도 / 억새풀만 우거진 벌판 같은 가슴이어도 / 바람이 부렁왔다 스치고 갈 때마다 / 노래 부르는 마음을. (노래 부르기)


내가 가진 모든 것과 / 네가 가진 모든 것으로써 / 우리 만나지 못한다면 / 우리가 못 가진 그것으로 만나기로 할까. (여백)



  시인 한 사람이 채운 자리하고 시인 한 사람이 미처 채우지 못한 자리는 무엇이 될까요. 오늘 하루를 사는 우리가 채우는 자리하고 오늘 하루 우리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자리는 무엇이 될까요. 빗줄기를 가르며 뛰노는 아이들 웃음에는 무엇이 깃들까요. 빗물에 젖은 아이를 씻기고 말려서 입히고 먹이는 어버이 손길에는 무엇이 감돌까요.


  하늘에서 바람으로 만나는 작은 유고시집을 책상맡에 놓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짓습니다. 빗소리에 섞이는 밥 끓는 소리를 듣고, 이 소리 사이에 스며드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이 되는 노래를 듣고, 빗줄기와 햇볕 사이를 넘나드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2016.9.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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