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 믿음의 글들 47
미우라 아야코 지음 / 홍성사 / 1988년 11월
평점 :
절판



 몸이 아플 때에 이웃을 사랑한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 5] 미우라 아야꼬,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 책이름 :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 글 : 미우라 아야꼬(미우라 아야코)
- 옮긴이 : 김갑수
- 펴낸곳 : 홍성사 (1988.11.5.)


 (1) 몸과 마음


 새벽부터 밤까지 집일을 붙잡다 보면, 잠자리에 들 즈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쑤신 곳이 없습니다. 손끝 발끝에다가 머리카락 끄트머리마저 욱씬욱씬합니다. 이렇게 쑤시고 결리며 저릴 때에는 그저 꼼짝없이 드러누워 아이고 아이고 읊을 뿐입니다. 이렇게 몸이 고단해서야 어찌 살아가나 싶으며 겨우 눈을 감습니다.

 그러나 아직 내 몸이 제법 튼튼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죽은 듯이 쓰러져 잠든 지 너덧 시간이 흐르면, 또는 대여섯 시간이나 예닐곱 시간이 흐르면, 어느 만큼 새힘이 솟습니다. 욱씬거리던 몸이 제법 풀립니다.

 새벽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며 아이 오줌기저귀를 갑니다. 둘째를 밴 옆지기 몸을 조금 주무릅니다. 새벽녘에 새힘으로 일어나 맞이하는 새날을 곱씹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목숨을 하늘이 베푼 새삼스러운 하루를 즐겁게 맞아들입니다. 사람은 죽지 않고 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죽을 때가 되면 죽겠지만, 살아야 할 때에는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떻게든 사는 목숨이고, 어떻게는 살아가면서 내 길을 내 나름대로 걷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 나는 군국주의 시대의 여학생으로서 여러 차례 신사참배라는 것에 끌려나갔다. 전교생 천 여 명이 신사의 뜰에 정렬하여, “경례!” 하는 구령으로 일제히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를 숙일 때 우리 학생들의 가슴속에는 대체 무엇이 떠올랐을까. 오직 구령에 맞추어 머리를 숙이는 것일 뿐, 진심으로 기도하는 자는 없지 않았을까. 남의 구령에 따라 머리를 숙이는 ‘기도’란 아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 참된 신이란 어떤 분인가, 신 앞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고 있다면 우리 일본인의 생활은 좀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  (8∼9, 10쪽)


 내 몸이 요즈음보다 한결 튼튼하다고 느낄 때에는 옆지기 몸을 꽤 오래 꾹꾹 누르며 주물렀습니다. 내 몸이 차츰 힘들어진다고 느끼며 옆지기 몸을 못 주무르기도 하고, 애써 주물러도 조금만 주무르고 맙니다. 제 몸이 옆지기보다 더 안 좋은 몸이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살필 노릇이었을까요. 아픈 사람끼리 골골거리며 복닥였을까요.

 믿음이란 늘 내 곁에 있다고 느낍니다. 믿음이란 언제나 내 몸이라고 느낍니다. 내 곁에 있는 모든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믿음이라고 느낍니다. 봄을 맞이해 새롭게 돋는 풀과 새로 피는 꽃 모두 믿음이라고 느낍니다. 겨울날 꽁꽁 얼어붙는 날에도 새벽바람으로 일어나 먹이를 찾으며 재잘거리는 멧개가 곧 믿음이라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도 참새나 까치나 비둘기가 먹이를 찾으러 부산을 떱니다. 도시사람은 도시 비둘기를 가리켜 닭둘기라고 비아냥거리곤 하는데, 도시사람 스스로 자연을 잃고 오로지 돈만 벌면서 밥·옷·집이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디로 흐르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두고는 그닥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습니다. 닭둘기라는 이름은 닭한테도 비둘기한테도 몹쓸 말이요 모진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들 사람은 스스로 사람다움을 잃거나 잊은 채 살아가면서, 정작 내 삶과 내 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하나도 안 아름답게 망가뜨리가를 느끼지조차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도시에 살거나 도시를 좋아하는 일이 궂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내 삶을 읽어야 합니다. 도시를 좋아하든 시골을 좋아하든 내 사람됨을 사랑해야 합니다. 착한 넋으로 착한 몸을 보살피고 착한 말을 나눌 때에 비로소 한 사람 목숨이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의 청정함을 모르면 자신의 추악함을 모르는 법이다 … 얼굴을 씻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씻어 하루를 출발한다는 것은 얼마나 상쾌한 일이겠는가 … 상대방과 헤어질 생각이라면 몰라도 일생을 같이할 사람이라면 역시 기도할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을까. 아니, 기도 드리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법이 아닐까 …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당했을 때 사람은 단지 슬퍼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을까. 슬퍼해도 좋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다, 좋고 나쁘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  (23, 24, 32, 51쪽)


 도시에는 논밭이 없습니다. 논밭 하나 없는 도시이지만 온갖 곡식이 골고루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안 나는 블루베리 같은 먹을거리도 있고, 한겨울에도 수박이 있으며, 딸기철이 되려면 멀었으나 벌써부터 딸기가 백화점이든 마트이든 길거리이든 수북합니다.

 도시에는 짐승우리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소를 치거나 돼지를 치거나 닭을 치거나 개를 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짐승우리에서 똥오줌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을 모를 테고, 짐승 한 마리 기르는 일이란 ‘사람 하나 건사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줄을 모릅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오직 돈만 벌고 돈만 쓰면서 갖은 곡식과 고기를 즐깁니다. 삼치 한 마리나 참치 한 마리를 어떻게 낚는 줄을 알까요. 갈치 한 마리와 오징어 한 마리를 어떻게 잡는 줄을 느낄까요.

 벼 한 포기가 자라기까지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을 얼마나 맞아들여야 하고, 이 벼를 어떻게 베고 깎아 쌀로 만들어야 비로소 밥거리가 되는가 하는 흐름을 어느 만큼 알는지요. 같은 10킬로그램 쌀자루라 할 때에 몇 만 원 더 얹으면 유기농 쌀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유기농 쌀은 돈 몇 만 원이 아닙니다. 유기농 푸성귀 또한 돈 몇 만 원이 아니에요. 유기농이란 똥과 오줌을 삭혀 거름으로 쓰고, 풀약을 안 치면서 사람이 손으로 풀을 하나하나 뽑으며 짓는 흙일굼입니다.

 돈을 치르지 말고 스스로 흙을 만져 볼 노릇입니다. 삼성이라는 재벌회사를 꾸리는 분이든, 한 해에 7억 원을 받는다는 운동선수이든, 은행에서 일하는 분이든, 7급 공무원이든, 초등학교 교사나 교장이든, 누구나 밥을 하루 세 끼니씩 먹는다 한다면, 한 해에 한 번쯤이라도 내가 비우는 밥그릇이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떻게 손질하여 내 밥상에까지 오르는가를 깨닫도록 몸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가을철이면 ‘농번기 방학’을 열흘쯤 두어 가을걷이와 가을일에 아이들도 품을 거들도록 했는데, 오늘날에도 도시사람들은 누구나 가을날 한창 바쁠 때에 열흘쯤 회사일을 쉬면서 ‘내 밥을 마무리짓는 가을일’이라도 스스로 겪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영혼의 문제를 놓고 만족할 만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적은 그렇게 흔치가 않다. 그것이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 때문에, (나는 그들(부모)에게 무엇을 해 드렸단 말인가) 하며 후회하는 것이다 … 진정으로 사람의 생명을 애석해 한다면 그 죽음을 계기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영혼의 문제와 맞서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 참된 의미에서 생명을 아끼는 일이 아닐까 … 한 사람의 죽음에 의해 자신이 크게 변화되는 것이 참으로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몇 사람씩이나 사별하면서도 자신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56, 57쪽)


 몸으로 움직이지 않고서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깨닫습니다. 몸으로 아파하지 않고서야 마음으로 아파할 수 없겠다고 깨닫습니다.

 사람이라는 짐승은 생각을 한다기에, 생각으로 ‘아픈 이웃’을 어림하곤 합니다. 가난한 이웃이 얼마나 고될까 하고 생각한다든지, 불쌍한 이웃이 얼마나 힘들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 이웃이 얼마나 고되거나 힘든지 몸으로는 모르지만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불우이웃돕기’를 합니다. 저기 멀리, 이웃나라 일본으로도 따스한 손길을 보내자고 이야기합니다. 막상 집 잃고 식구 잃으며 모든 삶뿌리를 잃은 사람한테 물 한 병 보내 주자고 이야기합니다.

 돌이켜보면,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이 살아숨쉬는 동안 틈틈이 이웃돕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쓴 글이 책으로 되어 나올 때에 퍽 많은 사람이 사서 읽어 준 터라, 이렇게 당신이 뜻밖에 벌어들이는 돈을 푼푼이 모은 다음 우체국에서 찾아 십만 원이고 이십만 원이고 그때그때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꽤 목돈이다 싶을 돈을 이런저런 곳에 이름없이 맡기기도 했습니다.

 돈을 벌었기에 돈을 맡긴다 여길 수 있지만, 돈을 벌지 않던 때에도 사랑과 믿음을 나누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돈이 있을 때에는 돈을 나눌 줄 알던 권정생 할아버지라고 느낍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돈이 없는 대로 무엇을 나누며 살아야 좋은가를 알았겠지요. 내 몸이 아프면서 내 이웃 몸이 얼마나 아파 힘들까를 느낍니다. 머리로 품는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깨닫는 느낌입니다. 밥을 굶고, 또 밥을 굶으면서, 배고픔이란 얼마나 사람을 미치도록 갉아먹거나 쓰러뜨리는가를 깨달은 사람은 배고픈 이웃한테 내 밥그릇을 내밀어 줍니다. 돈이 있어 밥 한 그릇 사먹으면 되지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밥 한 그릇에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 깃드는가를 몸이 알기에 살며시 내밉니다.

 안다는 일이란 부질없습니다. 지식을 갖춘다는 일이란 덧없습니다. 더 알든 덜 알든, 사람이라면 살아야 합니다. 삶이란 지식으로 꾸리지 않습니다. 요리 지식이 있대서 밥하기를 잘 해내지 않습니다. 밥을 할 때에 쌀알을 낱낱이 세거나 무게를 꼼꼼이 재면서 하지 않습니다. 밥물을 비이커에 몇 그램인지 따져서 맞추지 않습니다. 전기밥솥에 안치면 그만인 밥하기인 오늘날이라지만, 예부터 아주아주 오랫동안 밥하기는 불을 지펴서 했고, 불을 지필 때에 장작을 얼마나 쓴다든지 불을 몇 분 몇 초 동안 지핀다든지 하는 통계란 없습니다. 그저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밥에 들이는 땀과 품과 사랑입니다.

 밥과 옷과 집이란 삶이요 사랑이며 몸과 마음입니다. 밥과 옷과 집이란 돈이나 겉치레나 눈치레가 아닙니다.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누리는 삶이고, 몸으로 맞아들여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2) 미우라 아야코 님 문학


 미우라 아야코 님은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라는 책을 씁니다. 일본에서는 1978년에 마무리지은 글이고, 한국에서는 1988년에 옮겨집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은 모두 열두 꼭지로 나누어 열두 갈래로 돌아볼 만한 우리 삶자락에 따라 어떻게 내 삶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두 손길을 모아 비손하면 좋을지를 톺아봅니다.

 비손이란 돈바람이나 이름바람이 아닙니다. 비손이란 나 하나만 잘 되기를 비는 속좁은 꿍꿍이가 아닙니다. 비손이란 나 스스로 그닥 착하게 살아오지 못했다고 뉘우치면서, 이제부터 부디 착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보태어 달라고, 아니 이제부터 착하게 살아갈 테니까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나를 꾸짖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북돋우기도 해 달라는 다짐입니다.


.. 남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유연성을 허용하지 않는 매서운 것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는 자신이 아파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함께 앓자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질병을 앓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에 그친다면 질병이란 자신에게 단지 마이너스의 기간을 의미할 따름이다 … 내가 병에 걸린 이상 환자로서 생각해야 할 것은 완쾌에 대한 노력과 동시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  (26, 31, 42쪽)


 미우라 아야코 님은 머리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 스스로 ‘머리로 글을 쓸 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미우라 아야코 님은 오래도록 몸앓이를 하며 드러누운 삶에 따라 글을 씁니다. 당신이 몸으로 부대낀 삶만큼 글을 씁니다. 당신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 눈높이라든지, 당신보다 덜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 눈높이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당신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을 우러르며 글을 쓰지 않습니다. 당신보다 덜 아픈 사람을 얕잡으며 글을 쓰지도 않아요. 그저 당신이 겪는 아픔만큼 글을 씁니다. 당신으로서는 당신만큼이라는 무게와 깊이와 너비가 이만하다고 들려줍니다. 자랑도 아니지만 들추기도 아니에요. 그저 미우라 아야코 님 삶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아프기만 했던 삶에서 아픈 삶으로 나아지고, 아픈 삶에서 눈물나는 삶으로 달라지다가는, 눈물나는 삶에서 웃는 삶으로 시나브로 옮기는 모습을 글로 찬찬히 담습니다.


.. 기도란 이와 같이 점차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닐까 … 누군가에 대해 원한을 가지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설 수는 없다 … 인생의 가장 깊은 슬픔을 맞았을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우러러 기도할 수가 있단 말인가 …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결코 아니다 ..  (36, 37, 51, 97쪽)


 그렇지만 워낙 아픈 사람이다 보니, 웃는 삶으로 나아가려 하다가도 금세 첫자리로 돌아갑니다. 스스로 바보짓을 하고 난 뒤 내 바보짓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가를 새삼스레 부끄러워 하면서 이 모습 또한 고스란히 적바림합니다.

 예수님은 바보스럽거나 멍청하거나 어리석거나 형편없는 제자들한테 다시금 같은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땅 숱한, 아니 이 땅 모든 어머님들은 당신 집식구한테 날이면 날마다 예순 해 일흔 해 여든 해에 걸쳐 하루에 두세 끼니 꼬박꼬박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집식구가 밥을 고맙게 먹든 그냥 입구멍에 퍼넣든, 이 땅 모든 어머님들은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며 한삶을 보냈습니다.


.. 몇 해 전부터 나는 파티에 참석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사람들이 제공되는 요리를 거의 그대로 남겨 두기 때문이다. 그대로 남은 요리를 종업원은 아낌없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쏟아 버린다. 음식을 남기는 자도 또한 남은 요리를 처리하는 자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조금도 아까움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 도대체 물질적 번영이 가져다준 것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황폐만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물품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자들에게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도시로 나올 때는 타락하리라는 것을 당사자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자기만은 결코 그런 사람과는 다르다 하며 꿈을 안고 도시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몇 해 만에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만큼 인간이 변해 버릴 수 있을까. 사람은 곧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변한다고 한다. 집을 떠날 때 가장 가까운 자는 친구이다. 바로 그 친구가 때로 악의 유혹자가 된다. 도박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어느덧 자신도 도박을 즐기게 된다 ..  (89, 104쪽)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는 성경과 예배당에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은 틀림없이 성경에도 깃들고 예배당에도 깃듭니다. 성경에 하느님이 안 깃든다든지, 예배당에 하느님이 안 깃들 까닭이 없습니다. 목회자 말씀에도 하느님은 깃듭니다. 신학자 연구와 논문에도 하느님이 깃듭니다. 하느님은 성당에도 깃들고 교회에도 깃듭니다. 하느님은 절집에도 깃들고 여느 살림집에도 깃듭니다.

 우치무라 간조 님이 무교회주의를 외쳤다지만 ‘무교회’ ‘주의’란 없습니다. 하느님이 깃든 자리가 어디인가를 제대로 깨닫자는 외침일 뿐입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은 애써 하느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도 하느님이고, 내 살붙이도 하느님이거든요. 내 밥 한 그릇 또한 하느님이고, 내 옷가지 한 벌 또한 하느님입니다.

 내가 디디는 땅을 이루는 흙알갱이 하나 또한 하느님입니다. 개구리와 뱀만 하느님이겠습니다. 도마뱀과 도룡뇽도 하느님입니다. 밥알 하나와 두부 한 조각과 깻잎 하나 또한 하느님입니다.

 물 한 모금이 하느님이고, 바람 한 점이 하느님입니다. 구름과 무지개를 비롯해서, 큰 물결과 모진 비바람이 하느님입니다.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라는 이야기책은 믿음이 있는 사람한테나 믿음이 없는 사람한테나, 아니 예배당에 나가는 사람한테나 예배당에 안 나가는 사람한테나 곱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이야기책인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입니다. 날마다 받아들어 내 배를 채우는 밥그릇 하나가 얼마나 고마운지 기도해 보시지 않겠느냐고 말을 거는 이야기책입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를 깨닫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잡이책입니다.


 (3) 몸이 아플 때에 이웃을 사랑한다


 몸이 아플 때에 이웃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내 몸이 아플 때에 내 이웃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이 그닥 안 아프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못 키운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에 쉽게 병원에 가고 쉽게 약을 사다 먹으니까 자꾸자꾸 이웃사랑을 놓치거나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 어떤 때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젖먹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도 아름답고, 늙은이를 섬기며 돌보는 젊은이도 아름답다 … 하나님은 죽어야 하는 그 당사자나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시기를 택하여 죽음을 내리시는 것이다 … 사랑이란 입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임도 ..  (7, 55, 124쪽)


 몸이 아프지 않고서야 내 몸을 알기 어렵습니다. 몸이 아플 때를 맞이해야 비로소 바쁜 걸음을 멈춥니다. 다리를 절뚝이지 않고서야 다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없어 걸음이 더디거나 못 걷는 사람 슬픔과 아픔을 알 길이 없습니다.

 자가용 모는 사람은 자전거 타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걷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걷는 사람은 바퀴걸상에 앉은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바퀴걸상에 앉은 사람은 아파서 자리에 드러눕기만 하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아파서 드러눕기만 하는 사람은 미처 태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숱한 목숨붙이 마음을 모릅니다.


.. 나는 내 자신의 머리속에 추악한 장면이나 더러운 말들이 이 이상 기억되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축적된 기억들이 문득 마음에 떠올라 언제 어느 곳에서 나 자신을 악으로 이끌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  (106쪽)


 모든 씨앗은 사랑씨입니다. 풀도 짐승도 사랑씨입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씨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으로 이루어진 씨앗이래서 늘 사랑스레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사랑으로 맺은 씨라지만 막상 태어났을 때에는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되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누구나 몸이 아플 때에 이웃을 사랑합니다. 몸이 안 아플 때에도 온누리를 옳게 깨닫거나 바라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거룩하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사람도 어김없이 있다고 느낍니다. 참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요. 하느님다운 사람이랄까요, 하느님을 가슴에 예쁘게 품는 사람이랄까요.


.. 어린아이가 아무리 졸라도 어른이 주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세 살짜리 어린이에게 자전거를 사 주거나 집을 마련해 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권총이나 칼을 사 주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에게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극진한 사랑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  (118∼119쪽)


 아픈 사람은 사랑을 나눕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못 나눕니다. 아픈 사람은 믿음을 나눕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믿음을 홀로 차지합니다.

 아파 보아야 깨닫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에는 그저 ‘알기’만 합니다. 아프며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에는 온갖 책을 잔뜩 읽으면서 ‘알기’만 하겠지요.

 앎은 삶이 아닌 앎입니다. 삶은 앎이 아닌 삶입니다. 사람은 삶을 일구지 앎을 일굴 수 없습니다. 앎을 일구는 나날도 보람이 있거나 뜻이 있다 하겠지요. 그런데 하루하루 내 삶을 일구지 않고, 이 앎 저 앎 가득가득 머리에 담기만 하는 나날이란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좋다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세책이나 경영책이나 자기계발책은 다 쓰레기입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경력증명서는 모조리 종잇조각입니다.

 돈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은 사람이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늘 아파하다가도 깨어나고, 깨어나다가도 아파하며, 하루하루 슬프면서 고맙게 살아갑니다. 기쁘다가 아파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사람인 나머지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하고 자꾸자꾸 말을 걸고 되뇌면서 살아갑니다. (4344.4.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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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안재구 지음 / 돌베개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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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한테 돈을 더 주면 기쁜 일이 될까
 [책읽기 삶읽기 46] 안재구,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길어올리는 이야기란 나한테만 재미있을 수 있고, 나부터 따분할 수 있으며, 여럿이 함께 즐거울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고단하거나 힘든 삶을 담은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것 아닐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대단하지만 다른 이한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씩씩하거나 꿋꿋하게 살아가려 힘을 쓰지만, 남이 보기에는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발버둥을 치는 꼴일 수 있어요.

 사진은 어제나 그제를 찍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진은 꼭 오늘만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어제나 그제 이야기를 얼마든지 담거나 나타냅니다. 내 마음으로 가만히 떠올리면서 어제나 그제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요. 그러나 사진은 어제나 그제 모습을 어찌저찌 만들어서 찍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찍기만 어제를 못 찍지 않습니다. 내 삶 또한 어제를 일구지 못합니다. 어제는 어제이고 그제는 그제입니다. 나로서는 오늘 내 삶만 일굽니다. 다가올 앞날을 앞당겨서 일굴 수 없습니다. 며칠 뒤에 배가 고플 테니까 며칠 뒤 먹을 밥을 오늘 먹을 수 없습니다. 어제 못 먹은 밥을 오늘 곱배기로 먹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오로지 오늘 밥그릇만 비웁니다.

 지나온 내 삶은 즐겁게 되새길 수 있으나 슬프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프게 돌이킬 수 있으며, 반가이 곱씹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나온 내 삶이란 내가 어떻게 헤아린다 하더라도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득한 옛이야기입니다. 머나먼 옛 발자국이에요.

 사람들이 예전에는 한결 맑은 물과 바람과 흙을 누리면서 미리내도 보고 밤하늘 별도 훨씬 많이 보며, 박쥐나 땅강아지나 두더쥐하고도 벗삼으며 놀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논둑에서 개구리나 버마재비하고 벗삼으며 놀지는 못합니다. 어디에서나 자연을 잃고 어디에서나 자연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가까이합니다. 어디에서나 자동차와 가까이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하고 제 보금자리에서 부대끼기보다는 학교나 학원이나 시설에서 전문 보육교사나 학습교사하고 지식쌓기를 합니다. 안재구 님은 당신 아이들한테 당신이 걸어온 지난날을 이야기책 하나로 갈무리해서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습니다. 그러면, 안재구 님네 아이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면서 ‘안재구 님네 아이들이 낳아 돌볼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밀양시에서는 서쪽 교외 들판의 논 일대를 ‘터실’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금은 읍에서 시가 되어 집이 꽉 들어차 있지만 터실은 겨울날 우리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고 여름에는 식물원과 작은 동물원이었다. 터실에서 자라는 것은 벼·보리·수수·콩·조 등 온갖 곡식과 여러 가지 채소뿐만 아니다. 밀양읍의 서쪽에 사는, 그러니까 내이동에 사는 아이들도 이 자연의 교실에서 함께 자랐다 ..  (62쪽)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몇몇이 남았을까 헤아려 봅니다. 2010년대에 서른 줄이나 마흔 줄을 보내는 사람들은 당신 어린 나날 이야기를 얼마나 곱씹거나 떠올리면서 당신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2010년대에 쉰 줄이나 예순 줄을 보내는 사람들은 당신 뒷사람한테 무슨 옛날이야기를 어느 만큼 되새기거나 아로새기면서 물려줄 수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스무 줄 젊은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이야기책 하나를 묶을 수 있을까요. 2010년대에 아홉 살이나 열아홉 살을 보내는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커서 서른이나 마흔쯤 되었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쓴다 할 때에 무슨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나눌 만할까요.

 다른 집 아이를 생각하기 앞서 우리 집 아이를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일찍부터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들어간다 할 때에 어버이로서 사랑다운 내리사랑을 물려줄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무슨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아이 똥오줌을 가리며 아이 스스로 똥오줌을 가리도록 할 뿐 아니라, 아이하고 잘 놀아 주지는 못하나 아이 손을 잡고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며 노는 동안 아이 손길과 살결을 느끼는 나날처럼 빛깔 고운 이야기가 더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운 날 겨울눈을 아이랑 함께 바라보며 눈쓸기를 하든, 새봄에 새눈 틔우는 멧나무를 아이랑 함께 바라보며 눈에 새기든, 스스로 치마를 입을 줄 안다며 용을 쓰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든, 곁에서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이 있어야 비로소 아이하고 함께 살아간다고 느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재구 오나.” “아이구, 내 새끼야. 이리 보자. 얼마나 컸능공.” 이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고, 할매들이 품어 등을 두드려 주던 손길이 그립다. 할매들은 나와 작은아버지에게 무엇을 해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  (111쪽)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이라는 이야기책은 수학자 안재구 님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당신 딸아이한테 띄운 편지를 그러모았다고 합니다. 안재구 님은 옥살이를 하면서 ‘일제강점기에 당신이 어느 마을에서 어떤 어린이로 살며 어떤 어른이나 동무하고 복닥이며 자랐는가’를 편지로 적바림합니다. 아버지로 당신 아이한테 할 수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몫인 ‘이야기 남기기’를 편지쓰기로 합니다.

 몸으로 부대낀 나날을 이야기하고, 몸으로 살아낸 나날을 이야기하며, 가슴에 깊이 새긴 나날을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누구도 다시 찾거나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안재구 님은 당신 가슴으로 언제든지 떠올리고 얼마든지 되새깁니다. 안재구 님이 어릴 적 뛰놀던 들판은 예전 들판이 아니요, 올해에 피는 꽃은 일흔 해나 여든 해 앞서 피던 꽃하고는 다른 모양새 다른 냄새 다른 빛깔이라 할 테지만, 올해에 피는 꽃을 바라보며 일흔 해 앞서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이듬해에 다시금 마주할 봄날에는 여든 해 앞서 느끼던 봄꽃을 되돌아볼 수 있어요.

 안재구 님은 “고향을 모르고 사는 너희들에게 옛사람들의 생활과 슬기, 우리 선조들의 풍상(4쪽)”을 들려주려는 생각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누구나 태어난 곳이 있으니 고향이 없다 할 수 없으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제 고향마을을 떠올리거나 되새기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고향마을 숨결과 살결을 보듬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돈벌이 되는 일자리를 찾는 데에 바쁘고, 내 이름값 높일 가방끈을 늘이느라 힘겨우며, 내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키우는 데에 마음쓰느라 벅찹니다. 어쩌면 안재구 님네 아이들도 이런 오늘날 흐름에 쉬 휩쓸릴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쓰기를 했겠구나 싶고, 오늘날 삶터가 그닥 살갑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지 못하니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자락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는구나 싶어요.

 살가운 삶이라면 굳이 글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아도 되고, 사랑스러운 삶이라면 애써 책으로 이야기를 묶지 않아도 되며, 아름다운 삶이라면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며 넉넉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이야기는 몸에서 몸으로 잇지, 글로 적어 글로 잇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할머니는 시집올 때 무척 많이 해 가지고 오셨는가 싶다. 옛날에는 해 가지고 온다고 해 봤자 무명·명주·삼베밖에 더 있었겠는가. 이 무명·명주·삼베 중에서 고운 것은 할머니의 친정어머니가 손수 길쌈하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 평생, 할아버지 소용은 물론이고 윗대 어른 소용도, 그리고 많은 시동생 소용도, 아랫대 두 아들, 두 딸의 소용도 다 감당했고, 나도 어릴 때 이 베로 옷을 해 입고 이불도 만들어 덮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물건을 챙겨 보니, 그러고도 무명·명주·삼베가 남아 있어서 초상에 보태 썼다고 했다 ..  (223∼224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길쌈을 하지 않습니다. 길쌈을 가르쳐 줄 어른이나 어버이가 없고, 길쌈을 할 만한 연장이 없으며, 길쌈을 하기까지 흙을 일구어 거둘 목화가 없습니다. 누군가 목화농사를 지어 거둔 다음 실로 잣고 천으로 엮어 주어야 비로소 돈을 치러 장만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 아이도 스스로 길쌈을 한다거나 옷짓기를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 되는 나부터 스스로 길쌈을 한다거나 옷짓기를 하지 못하니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꾸린 삶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제 어버이 삶을 돌아보면서 제 어버이가 걷지 못한 길을 얼마든지 걸어갈 만합니다. 어버이 그늘에서 맴돌 수 있지만, 어버이 그늘이 아닌 내 길을 찾아 씩씩하게 살아갈 만합니다. 안재구 님이 당신 어린 나날을 이야기책 하나로 갈무리한 까닭은 당신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길을 찾아 씩씩하며 꿋꿋하게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이렇게 살아낸 나날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하니까, 당신 아이들은 당신 아이들대로 너희 삶을 일구면서 앞으로 너희 삶을 너희 새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들려주면 좋겠다는 꿈을 나누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 할아버지는 새해 들어 모든 생활필수품이 배급제로 되자 가장 안타까운 일이 용아 먹일 분유를 못 구하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쌀을 빻아 백설기를 쪄서 말리고 다시 가루를 내어 암죽을 끓여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탕을 넣지 못해 단맛이 없으니 아이가 먹지 않고 혀로 밀어냈다. 젖이 모자라니 암죽으로 키울 수밖에 없는데 아이는 달지 않다고 먹지 않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 집에 와서 할아버지는 양치질을 오래오래 하고서 자기 입으로 백설기를 꼭꼭 씹어서 단맛이 날 때, 말하자면 침 속에 있는 지아스타제로 단맛이 생길 때 그것을 용아에게 먹였다 ..  (249쪽)


 누구나 어버이나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버이나 어른으로 지내면서 집이나 자가용이나 살림살이를 가득가득 갖출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제 아이한테 이 돈 저 살림살이를 하나씩 물려줄 수 있습니다. 큰회사를 일군 분들은 당신 아이한테 큰회사 이름과 돈과 힘을 물려주려고 여러모로 용을 쓰곤 합니다. 재벌총수네 아이는 똑같이 재벌총수가 되고, 대학교수네 아이는 똑같이 대학교수가 됩니다. 의사네 아이는 똑같이 의사가 되고, 정치꾼네 아이는 고스란히 정치꾼이 되곤 합니다.

 나는 아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무슨 빛그림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곱씹습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물려줄 빛그림이란 어떠한 빛으로 이루는 그림이 될 때에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즐거울까 되뇝니다. 나 또한 무슨무슨 재벌총수네처럼 아이한테 어마어마한 돈을 남기는 어버이여야 할까요. 나 또한 내 아이가 대학교수가 되든 법관이 되든 의사가 되든 하도록 이끌어야 좋거나 훌륭한 어버이 노릇을 다했다 할 만한가요.

 내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물려받거나 이어받을 때에 빙그레 웃을 수 있을는지요. 우리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느끼거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날 때에 신나거나 즐겁거나 고맙다 할 만할는지요. (4344.3.30.불.ㅎㄲㅅㄱ)


―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 (안재구 씀,돌베개 펴냄,1997.10.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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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1
스즈키 노리히사 지음 / 소화 / 1995년 11월
평점 :
절판




 믿음길이란 예쁘며 착하고 기쁜 삶길
 [책읽기 삶읽기 39] 스즈키 노리히사,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라는 일본사람을 이야기할 때에 으레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을 앞에 붙입니다. 이 이름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치무라 간조 님은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치무라 간조 님이 말한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에 얽매이는 넋’이 아니라 ‘하느님을 참답게 믿으면서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자는 넋’입니다.


.. 우치무라 간조 하면 어딘지 모르게 근접하기 어렵고, 근엄한 인물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실은 들이나 산에 피는 한 송이 꽃에도 눈길을 돌리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  (7쪽)


 하느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지, 예배당이나 절간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하느님 얼굴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부처님 모습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조각상이나 그림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늘 떠올리려고 마련합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를 보살필 뿐 아니라 우리가 엇나가지 않도록 알뜰히 이끈다고 생각하려고 마련합니다.

 거짓스러운 껍데기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을 노릇이면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우상으로 받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믿음으로 사랑할 넋입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내 삶으로 녹일 얼입니다. 나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부처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말이 하느님이 들려주는 말과 같아야 합니다. 내 모든 낯빛과 매무새가 부처님이 살아움직이는 흐름과 같아야 합니다.


.. 간조가 그리는 천국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노동이 있고, 이 노동의 하나로 교육이 있다. 천국의 교육이 현세의 교육과 다른 것은 거기에는 “정부에 아부하고 국민에게 아양을 떠는” 학자는 없고, “무학이라고 해서 남 앞에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으며, 국회의원(간조는 현재의 국회의원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부언한다)과 어린이가 함께 공부한다. 천국에서의 미술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상의 발표”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미켈란젤로나 베토벤이다 … 간조가 부정하려 한 것은 서양에서 전해진 기독교에 집착한 서양적인 제도나 의례이다. 그와 동시에 서양의 교파와 선교단체의 지배하에 굴복하고 있는 일본 교회의 체질이다 ..  (82, 99쪽)


 일본사람 우치무라 간조 님은 적잖은 한국사람한테 믿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무교회주의’라는 주의주장을 나누어 주었을 테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옳고 바르며 착한 삶’이나 ‘예쁘며 참답고 기쁜 삶’을 나누어 주었겠지요.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라 해서 ‘교회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주의주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가 있어도 되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믿고, 교회가 있으면 있는 대로 믿습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면서도 비손을 드립니다.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조그마한 아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 스스로 밥을 떠먹도록 오랜 나날 가르치거나 이끌면서 비손을 품습니다.

 삶이 온통 비손입니다. 삶이 온통 사랑입니다. 삶이 온통 믿음입니다.

 믿음은 교회 안팎 어디에나 있지, 교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경책에도 적히지만 성경책에만 붙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목사님만 읊을 수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 착한 가슴속에서 샘솟습니다.


.. 전쟁이라면 모조리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도달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간조가 오직 성서에 깊숙이 빠져든 결과였다 ..  (110쪽)


 믿음을 고이 건사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믿음길을 걸으며 빙그레 웃기에 아리땁습니다. 믿음씨앗을 솔솔 뿌려 다 함께 하느님나라로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기에 어여쁩니다.

 하느님나라란 하늘나라일 수 있고 흙나라일 수 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나무로 짠 마지막 쉼터에 깃들어 땅속에 깊이 묻혀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작고 좁다는 가난한 사람 살림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시골자락 흙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어디나 하느님나라요, 어디나 하느님나라가 아닙니다.


.. 어떤 인간의 전기를 읽거나 쓰는 일은 한동안 그 사람과 마음의 여행을 함께하는 것이다. 더욱 때만 달랐지 그 인물과 몸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  (164쪽)


 우치무라 간조 님 이야기를 읽는 까닭은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대단하거나 훌륭하다는 사람을 떠받들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한 사람이 사랑하려고 한 ‘아름다움’이 무엇일까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 삶을 한껏 ‘아름다이’ 북돋울 길을 내 손으로 씩씩하게 일구고픈 기운을 보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란 아름다운 삶을 읽는 즐거운 웃음꽃입니다. 책읽기란 예쁜 꽃송이를 품에 살포시 안으며 활짝 웃다가는 너를 꺾어 품에 안으니 미안하구나 하고 울 줄 아는 눈물바람입니다. (4344.3.4.쇠.ㅎㄲㅅㄱ)


―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스즈키 노리히사 글,김진만 옮김,소화 펴냄,1995.11.30./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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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국어사전 -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들이 함께 보는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국어사전


 나는 지난 2001년부터 두 해하고 여덟 달 동안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했다. 내가 함께 만들던 어린이 국어사전은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했다. 나는 밑일만 하다가 그만두어야 했다.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한 어린이 국어사전이 책으로 나온 모습을 책방에서 보고는 더없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내 손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다. 사전이 너무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아니, 제대로 말해야겠다. 말풀이가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짜임새와 엮음새는 훌륭했다. 책은 참 예쁘장했다. 꾸밈새도 뛰어났다. 곧,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는 좋다. 겉으로 보기에 참 괜찮다 싶은 사전이다.

 그러나, 사전은 속을 읽는 책이지, 겉을 살피는 책이 아니다. 아무리 잘 엮거나 짜서 낱말을 찾거나 살피기에 좋은들 무엇하랴. 사전은 말풀이를 옳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사전이라 이름붙일 수 없다. 사전은 말풀이 때문에 사전이 되지,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 때문에 사전이 되지 않는다.

 오늘 돌이키면,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한 권이 내 손을 거쳐 태어났다면 나로서는 덜 슬퍼 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덜 슬퍼 하는 만큼 왜 슬퍼 하지 않아도 되는가를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길을 걸어서 오늘에 이르렀기에, 비로소 지난날 그 국어사전을 안 만들어서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배우는 사람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가장 옳고 바른 말만 배우다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 스스로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하면서 국어사전을 만든다 한다면 얼마나 슬프며 안타까운 노릇일까.

 국어학자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지 않는다. 국어학자란, 한 가지를 파고들어 논문을 쓴 다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써야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쓰려 한다면, 왜 이러한 외국말을 안 써야 하는가를 살뜰히 깨달으면서, 알맞으면서 즐거이 쓸 우리 말이 무엇인가를 또렷하면서 살가이 느껴야 하고, 우리 말을 재미나며 알차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열네 살 푸름이가 모인 자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을 함께 펼친다. 국어사전 읽기와 찾기를 함께 한다. 아이들은 국어사전이 참 따분하다 이야기한다. 국어사전을 읽어도 ‘내가 찾으려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 다다르다 : 목적한 곳에 가서 닿다. 어떤 곳에 이르다
 ├ 닿다 : 목적지에 다다르다
 └ 이르다 : 어떤 곳에 다다르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을 펼친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 모두 돌림풀이를 한다. 나는 국어사전을 만들 때에 이런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말풀이를 모두 새롭게 지었다. 열 가지가 넘는 국어사전을 나란히 펼치고 말풀이를 다 달리 붙이면서 돌림풀이가 아닌 참풀이가 되도록 땀을 흘렸다. 그렇지만, 내가 그만둔 다음 나온 어린이 국어사전조차 돌림풀이만 판친다. ‘다다르다’하고 ‘이르다’ 말풀이를 어떻게 붙여야 할까. 말풀이는 어떻게 새겨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한다. ‘다다르다’라 한다면, “가려고 하는 곳에 다 가다”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르다’라 한다면, “어떤 곳으로 가서 있다”라 해야 한다고 느낀다. ‘다다르다’라 할 때에는 처음부터 어떤 곳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으로 가서 “다 갔다”고 하는 느낌이고, ‘닿다’라 할 때에는 ‘다다르다’하고 같은 마음으로 가되, “다 가서 그곳에 있다”나 “다 가서 그곳에 있게 되다”라는 느낌이며, ‘이르다’는 딱히 “가려고 하는 마음”이라기보다 어떤 곳으로 “가서 있”기만 하는 느낌이라고 본다.

 ┌ 가늠 :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 짐작(斟酌) : 사정이나 형편 같은 것을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
 ├ 어림 : 짐작으로 대충 헤아리는 것
 └ 헤아리다 : 어떤 일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살피다


 어린이 국어사전 일러두기에 나온 ‘가늠’이라는 낱말에 달린 풀이를 아이들한테 읽어 준다. 아이들은 ‘가늠하다’라는 낱말을 어느 자리에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왜 ‘생각하다’라고만 쓰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가늠하다’는 ‘재다’와 ‘따지다’와 ‘살피다’와 ‘헤아리다’와 ‘생각하다’를 모두 한 자리에 놓고 견주어야 말뜻을 알 수 있다. 이 낱말 하나만 똑 떨어뜨린 채 알도록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같은 말풀이를 달면 이 낱말을 알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한다.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고 품는 마음”쯤으로는 적어야 ‘가늠’이라는 낱말뜻을 어렴풋이나마 알도록 하리라 본다. 아이들이 “품는 마음”이라 할 때에 ‘품다’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걱정스러운데, 그러면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이라고 하면 되리라. ‘어림’은 쉽다. “잘 모르지만 어느 만큼 될는지, 또는 어떻게 될는지 하는 마음”이라 하면 된다. ‘가늠’과 ‘어림’은 “잘 모르지만”이라는 꾸밈말이 붙고 안 붙고에서 갈린다고 여길 수 있다. ‘가늠’은 “잘 모르지만”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될까 안 될까” 하는 마음이 ‘가늠’이다.

 말풀이를 꼭 어찌저찌 해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전을 읽어서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낱말을 싣거나 저런 낱말을 실었대서 알찬 사전이 되지 않는다. 어느 사전이든 모든 낱말을 낱낱이 싣지 못한다. 모든 낱말을 싣지 못하는 사전이지만, 사전에 싣는 낱말만큼은 제대로 풀이해야 하고, 살뜰히 읽으며 말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말풀이가 엉터리라 해서 사전이 엉터리라 말할 수 없다. 짜임새는 훌륭한 사전이 있고, 엮음새는 빼어난 사전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짜임새가 훌륭하거나 엮음새가 빼어난 사전조차 드물다. 어린이 국어사전 가운데에는 짜임새와 엮음새가 괜찮은 사전이 있다. 다만, 말풀이를 제대로 다룬 사전은 없다. 말풀이에 넣는 낱말을 옳으면서 바르게 가다듬은 사전 또한 없다.

 나는 이 때문에 슬프다. 말풀이가 제대로 된 사전이 없을 뿐 아니라, 말풀이에 넣는 낱말이 옳으면서 바른 사전이 없기 때문에 몹시 슬프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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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글쓰는 사람은 왜 도시를 떠나는가
 [책읽기 삶읽기 40]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에리카 레너드, 《작가의 집》



 20세기를 대표한다는 책을 쓴 스무 사람이 어떠한 집에서 살면서 글을 썼는가를 돌아본다는 책 《작가의 집》을 읽습니다. 저로서는 이 《작가의 집》에 실린 스무 사람이 ‘20세기를 대표하는 글쓰는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노벨문학상을 탄 사람이 있고, 아주 널리 이름난 사람이 있으나, 이들을 놓고 20세기를 대표한다고 섣불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느 한 세기를 대표한다는 사람을 ‘인기투표’ 하듯이 뽑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온누리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을 내놓아 다 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어 준 일을 돌아본다면, 이런 말은 참으로 부질없으며 덧없습니다. 헤르만 헤세나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나 장 지오노 같은 사람들을 20세기를 대표하는 스무 사람에 넣을 수 있겠으나, 저로서는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라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든지 중 자오정 같은 사람을 넣고 싶습니다. 어쩌면, 《침묵의 숲》을 쓴 레이첼 카슨을 넣을 수도 있겠지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나 피에르 로티 같은 사람을 넣을 수도 있으나, 하이타니 겐지로나 미우라 아야코를 넣을 수도 있을 테며, 저는 한국사람이니까 리영희나 이오덕이나 이원수나 박경리나 권정생을 넣을 수 있을 테고요.

 《작가의 집》에 실린 스무 사람이란, 20세기를 대표한다기보다, 이 책을 쓴 프랑스사람이 좋아하는 글쟁이라고 여겨야 옳겠다고 봅니다. 더구나, 20세기를 대표한다는 사람은 온통 서양사람이며, 거의 다 서유럽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 스스로 좋아하는 스무 사람인데다가 서유럽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일컬어야 올바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을 살필 때에도 언제나 유럽문학이 한복판에 섭니다. 베트남문학이나 중국문학이나 필리핀문학이나 멕시코문학이나 칠레문학을 살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우리도 어느새 이런 틀에 젖어듭니다. 세계문학이라 하면, 말 그대로 세계를 아우를 뿐 아니라 세계를 돌아보는 문학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순원이나 조정래를 나라밖으로도 읽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나라와 겨레마다 아름다운 말꽃을 피우거나 일군 손길과 삶을 껴안을 때라야 비로소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 스웨덴의 모르바카 저택은 그녀(셀마 라게를뢰프)의 일가가 몇 대에 걸쳐 살면서 정을 붙인 곳이다. 그 땅에는 전통, 흥미로운 모험담, 겨우내 난롯가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신기한 옛이야기가 풍부했다 … 장 지오노는 이 프로방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1895년에 똑똑한 무정부주의자이지만 고독했던 이탈리아계 구두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  (134, 170쪽)


 다시금 생각하면, 《작가의 집》은 그저 “글을 쓰던 사람들이 살던 집”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살핀 다음 적바림한 책이라고만 말해야 옳습니다. 어느 한 세기를 대표한다든지 세계문학을 대표한다는 말은 알맞지 않아요. 글을 쓰고 책을 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작가의 집》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과 뜻에 따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인가를 밝혀, 이러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까닭을 찬찬히 들려주면서, 이들 글쟁이 삶과 발자취를 톺아볼 때에 한결 알차며 훌륭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작가의 집》에 실린 스무 사람 삶을 돌아보면, 딱 한 사람을 빼놓고는 가난에 허덕이거나 배를 곯은 일이 없습니다. 딱 한 사람조차 술과 바람피우기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써댔기 때문에 남의집살이를 하듯 떠돌며 살았지, 한 사람 한 사람 돌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이거나 꽤 넉넉한 살림을 누리면서 글을 쓴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글을 쓰면 안 된다거나 밥 굶는 걱정 없이 글을 쓴다 해서 글이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다만, 글로만이 아니라 사진으로도 “작가들이 살던 집”을 보여주는 책인 만큼, “작가라 하는 사람들이 살던 집이 너무 으리으리하거나 크”니까, 어쩐지 높직한 울타리가 서는 듯합니다. 글 좀 쓰고 살려면 이만 한 부잣집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듯한 느낌이 짙습니다. 더욱이, 《작가의 집》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널리 사랑받으며 많이 팔리는 책’이 생기면서 이렇게 많이 팔아 돈을 버는 책이 있을 때마다 집을 넓히거나 키웠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옵니다.


.. 1980년대 말부터 유럽의 정세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지척에서 폭격을 당했다. 울프 부부는 수시로 폭격이 일어나고 공습경보가 빈번한 혼란스러운 도시 런던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되었다 … 1930년에 딸 알린을 데리고 정착한 부부에게 “서쪽으로 200미터 남짓 거리에 도시가 있는 언덕 비탈. 종려나무, 월계수, 살구나무, 포도나무가 어쩌면 오십 그루쯤. 모자만 한 크기의 연못과 샘”이 있는 그곳은 천국과 같았다 … 그는 파리를 싫어했고 문학계 암투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는 언제나 마노스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161∼163, 174, 183쪽)


 저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들 깃든 시골집이 겨울에 덜 춥고 여름에 덜 더울 수 있도록 손질하자면 천만 원쯤 있어야 합니다. 저한테는 천만 원이란 꿈 같은 돈이며, 이만 한 목돈을 손에 쥐기란 몹시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지난해부터 얻어 지내는 시골집도 집삯을 안 내고 거저로 고맙게 얻어 지내는 판에, 집 고칠 돈을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그런데, 저 또한 제가 쓴 책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제법 팔려 한 해 사이에 다섯 쇄쯤 신나게 찍는다면 글삯으로 천만 원이 모일 수 있어요. 이렇게 글삯이 들어온다면 이 돈으로 우리 시골집을 요모조모 고치고 손질할 수 있을 테지요. 이런 꿈을 꿀 수밖에 없습니다. 나 혼자 지내는 집이 아니라, 아이와 옆지기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니, 또 ‘글쓰는 사람 집’에 쌓인 숱한 책들이 비바람이나 햇볕이나 멧쥐한테 다치지 않도록 건사하자면, 아주 빼어난 집은 아니더라도(바랄 수도 없으나) 기름값이나 땔감 걱정을 덜 하면서 조용히 잘 지낼 집을 바랄밖에 없습니다.

 참말 작은 집 한 채라면, 스무 평 서른 평도 아닌 열 평 남짓 되는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어른 둘이랑 아이 둘이랑 복닥이면서 지낼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라면, 네 식구 먹을 푸성귀를 일굴 텃밭을 옆에 끼면서 그야말로 호젓하게 흙에 뿌리를 내리는 삶을 사랑하면서 글과 책을 함께 사랑할 만하리라 봅니다. 한 사람 몫으로 두 평씩, 마루 몫으로 네 평, 부엌 몫으로 두 평, 씻거나 빨래하는 몫으로 한 평이면 한솥밥 먹는 식구들 살림집으로 좋습니다. 뒷간은 집 바깥에 내어 똥오줌 거름을 모아 텃밭에 뿌릴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 그(로렌스 더럴)는 이집트의 습한 무더위, 도시가 뿜어내는 심한 먼지를 싫어했다 … 두 사람(크누트 함순과 아내)은 북부의 스토게임에서 ‘노르웨이 흙을 일구며’ 살았다 ..  (266, 319쪽)


 19세기를 살던 톨스토이 님은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네, 한 사람 앞에 땅이 백 평만 되더라도 이 넓은 땅을 돌보자면 등허리가 휩니다. 천 평 이천 평이 된다면 뼈가 빠집니다. 오천 평 만 평이 된다면 일하는 식구가 커야 합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느냐는 옛사람 말도 있습니다만, 넓은 땅을 한 사람이 어떻게 건사하겠습니까.

 넓은 땅도 한 사람이 건사하기 벅차지만, 많은 돈이나 높은 이름도 한 사람이 건사하기 힘듭니다. 은행계좌에 1억이나 10억이 쌓였다면, 아이고, 이 돈 무서워서 어찌 사는가요. 집이란 한솥밥 먹는 살붙이가 오순도순 복닥이며 살을 부빌 만한 넓이면 넉넉하고, 돈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쓰거나 나눌 만큼이면 즐겁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근심덩어리인 돈이라고 느낍니다.

 《작가의 집》에 나온 스무 사람이 “글을 쓰고 지내던 살림집”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스무 사람이 글을 쓰며 지내던 살림집은 하나같이 도시하고 멀리 떨어집니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지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양은 한국처럼 아파트가 널리 퍼지지 않기도 했지만, 수풀이 우거지고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마당을 오가는 시골자락 살림집에서 지내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자연을 노래하는 글을 썼든 안 썼든, 글을 쓰는 사람들 살림집은 한결같이 도시를 등집니다.

 문득 우리 나라를 떠올립니다. 우리 나라에서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으레 도시로 몰립니다. 더 큰 도시인 서울로 몰립니다. 작은 도시에 머물거나 시골자락에 뿌리내리며 글을 쓰는 사람도 제법 있습니다만, 훨씬 많은 글쟁이는 도시에 몰렸고, 이 가운데 서울 안쪽에 가장 많이 우글거립니다.

 신문기자이든 잡지기자이든 방송기자이든, 기자라는 이름을 내거는 이들 또한 으레 서울에 몰립니다. 책을 만드는 일꾼이라면 아주 마땅히 서울에만 있어야 하는 줄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니까 서울 이야기를 쓰고 서울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며 서울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서울 바깥 이야기는 잘 모르며 잘 모르니까 나누지 않는데다가, 나누지 않다 보니 살갗으로 못 느낄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소식보다 멀디먼 소식처럼 여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뿌리내린 곳에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보금자리 언저리에서 생각하며 말합니다.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사랑하거나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4대강사업을 가로막자고 외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외침말은 그저 외침말이지, 내 몸부림이거나 내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서울에서는 환경운동이나 환경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4대강사업 막는 일을 비롯해 참다운 진보나 올바른 개혁을 이루지 못합니다. 서울 같은 도시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평화로운 일거리와 삶자락이 아니라, 무기공장이나 자동차공장 같은 데에서라도 일해서 어찌 되든 돈을 얻어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돈으로 살림집을 얻어 돈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아닌 돈이 한복판에 또아리를 트는 도시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나, 20세기에 손꼽히는 글쟁이 스무 사람이 하나같이 도시하고는 멀찍이 떨어진 시골자락 살림집에 뿌리를 내리면서 글을 쓴 까닭을 알 만합니다.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권력)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아끼는 넋을 글로 담고자 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4344.2.22.불.ㅎㄲㅅㄱ)


― 작가의 집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글,에리카 레너드 사진,이세진 옮김,윌북 펴냄,2009.11.10./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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