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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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어디에서든 삶
 [책읽기 삶읽기 65] 제레미 머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


 프랑스 파리에 있다고 하는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보낸 나날을 돌이키면서 적바림한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고서점’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고서(古書)’와 ‘헌책’은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을 한자말로 옮기면 ‘古書’가 될 뿐입니다. 때로는 ‘옛책’이라 할 만할 텐데, 수백 해를 묵은 오래된 책, 말 그대로 옛책을 사고파는 일은 퍽 드물고, 퍽 가까운 요즈음 책을 사고팔 터이니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써야 걸맞습니다.

 한국사람은 헌책방을 헌책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쓸 줄 모릅니다. ‘헌-’이라는 앞가지를 붙이면 어딘가 께름하다고 여깁니다. ‘헌것’이나 ‘헌옷’이라 할 때에는 이제 못 입을 만큼 지저분한 옷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헌-’이라는 낱말은 “오래되어 처음 모습 같지 않은”을 가리킬 뿐이지, “오래되었기에 너덜너덜하거나 못 쓰게 된”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낱말뜻부터 올바르게 헤아리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오래된 책이 아니더라도 한 번 사람 손길을 타면 “처음 모습 같지 않”습니다. 손자국이 묻거나 손때를 타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 돼요.

 옷은 ‘헌옷’입니다. 굳이 한자말로 ‘구제(舊製)’라 적거나 영어로 ‘빈티지(vintage)’라 적어야 멋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빈티지’는 포도술을 가리키는 영어입니다. 껍데기를 씌운대서 빛이 나지 않는 말이요 옷이며 책입니다. 겉치레를 해야 남다르거나 돋보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울 속살이거나 알맹이여야 합니다. 꾸밈없이 아름다운 넋이거나 얼이어야 해요.


..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탐으로써 신체적인 위협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매듭들이 남은 채였다. 우선 돈이었다. 신문사의 급여는 후했고 부수입으로 범죄 실화 책을 써서 들어오는 인세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매일 밤 술과 음식으로 흥청거렸고, 햇살 좋은 섬으로 겨울 휴가를 갔으며, 꼭 필요하지도 않은 독일산 자동차를 몰았고, 전자 제품을 말도 안 되게 사들였다. 거의 틀지 않는 CD가 장식장 몇 개를 차지했다. 어느 해에는 설거지하는 게 귀찮아서 일회용 접시와 포크, 컵을 잔뜩 사들이기도 했다 ..  (22쪽)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쓴 제레미 머서 님은 캐나다에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한껏 껍데기와 겉치레로 둘러싸인 채 지냈습니다. 아니, 껍데기만 볼 줄 알고 겉치레만 할 줄 알았습니다. 글쓴이 둘레에는 글쓴이와 매한가지라 할 만한 사람들만 있었고, 서로서로 얼마나 껍데기요 겉치레인가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아주 마땅하며 즐겁고 넉넉한 삶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잘 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글쓴이는 캐나다에서 흥청망청 누리던 삶을 더 이을 수 없습니다. 얼른 몸을 빼내어 멀리멀리 내빼야 합니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빈털터리인 채 비행기에 올라타고 프랑스 파리로 갑니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되었다면서 어떻게 프랑스 파리로 가서 떨꺼둥이가 될 생각을 했다지?) 스스로 겉멋을 버리지 못했으니 프랑스 파리로 갔을 테지요. 스스로 겉멋이나 껍데기를 벗을 줄 알았다면, 글쓴이는 캐나다 깊은 숲속이나 두메나 멧골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센 강가를 거닐다가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만났기에, 이곳에서 여러 해 지낸 삶을 돌이키면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씁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캐나다 깊은 숲속에 깃들면서 너른 자연이 베푸는 따사로운 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새로운 윌든’이나 ‘새로운 초원의 집’을 썼을 수 있겠지요.


.. 열심히 공부하는 아블리미트가 사라지자 서점은 더욱 가벼워진 듯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서점이 정말 확실히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과 북미의 대학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열차를 가득 메운 배낭 여행객들이 파리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여행 안내서마다 실려 있었으므로, 필히 보아야 할 관광 목록에 서점을 넣고 30초 만에 서점을 휙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  (284∼285쪽)


 삶은 어디에서든 삶입니다. 역사가 깊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이고, 역사가 짧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이름난 헌책방도 삶이며, 제주섬이나 춘천히 한켠에 곱게 자리한 헌책방도 삶이에요. 제레미 머서 님이라면, 프랑스 파리에서뿐 아니라 진주시나 청주시에 깃든 헌책방에서 일꾼으로 여러 해를 보냈더라도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하루하루 살아숨쉬는 헌책방”을 썼을는지 모릅니다.

 시간은 멈출 수 없거든요. 시간은 고일 수 없거든요. 시간은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거든요.

 시간은 흘러요. 시간은 달라져요. 시간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백 해 앞서 누군가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백 해 앞선 때를 살던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때하고, 백 해가 흐른 오늘날 내가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맛과 멋과 깊이와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책이 책 그대로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1월 비 오는 일요일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발견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지는 내가 더는 말을 못하게 막았다. “있잖은가, 내가 항상 이곳에 대해 꿈꾸는 게 있어. 저 건너 노트르담을 보면, 이 서점이 저 교회의 별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 저곳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별관.” ..  (313쪽)


 헌책방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서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새책방도 좋고 책쉼터도 좋으며 북카페도 좋습니다. 책으로 삶을 꾸리는 책삶인 책꾼이라면 어떠한 책터가 되더라도 좋아요.

 내가 쉬고 내가 살며 내가 일할 곳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내가 놀며 내가 어울리고 내가 발을 디딘 곳에 무엇을 놓을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4344.7.4.달.ㅎㄲㅅㄱ)


―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글,조동섭 옮김,시공사 펴냄,2008.1.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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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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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수컷’은 키울 값어치가 없을까
 [책읽기 삶읽기 43] 요네하라 마리,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였다는데, 한국에서 나오는 책이름은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가 되고 만, 요네하라 마리 님 산문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이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하고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는 아주 다르다. 뜻과 느낌과 마음과 생각과 매무새가 모두 다르다. 살아가는 결과 어우러지는 무늬가 다르다.

 요네하라 마리 님 책에 이런 이름을 붙여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요네하라 마리 님 같은 사람한테 이런 책이름을 달아야 알맞다고 여겼을까. ‘수컷인 사람’을 키울 겨를이 없이 통역 일과 글쓰기로 바쁜 요네하라 마리 님이니, 집에서 ‘수컷인 사람을 키울’ 수 없을 텐데, 이러한 대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붙인 이름이라고 느낀다.

 ‘사람 수컷’은 손이 좀 많이 가는가. ‘어른인 사람 수컷’은 ‘아이인 사람 수컷’과 견주어 손에 얼마나 많이 가는가. 아이는 어버이가 차린 밥을 고맙게 받아먹고, 아기는 어머니가 물리는 젖을 즐거이 빨아먹는다. 어른인 사람 수컷은 요 투정 저 투덜로 골을 부리기 일쑤이다. 어른인 사람 수컷 가운데 스스로 밥과 옷을 챙기거나 집안을 쓸고 닦거나 치우는 이는 얼마나 될까. 스스로 제 삶을 건사하는 ‘사람다운 사람 수컷’을 찾자면 얼마나 힘을 들이고 품을 들여야 할까. 애써 애먼 품을 들였다가 나중에 빈 껍데기인 줄 알아채면 얼마나 기운이 빠질까.

 글쓴이 요네하라 마리 님한테 ‘사람 수컷이 쓸모없을’ 까닭이 없다. 굳이 ‘사람 수컷은 안 키우며 즐거이 누리는’ 삶이다.


..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 너무 흔해빠진 비유에 나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이런 눈동자가 바라보는데 거역할 자가 그 어디에 있을 것인가 ..  (47쪽)


 고양이나 개 아닌 사람한테서 ‘맑은 눈빛과 밝은 눈망울’을 느낀다면, 요네하라 마리 님은 틀림없이 ‘사람 수컷도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리라 본다. 다만, 이렇게 느낄 일이 거의 없었으니 사람 수컷은 안 키웠겠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사람 수컷은 집일이나 집살림에 눈길을 안 둔다. 집안에 사람 수컷을 들이면, 이때부터 사람 암컷은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을 건사하는 몫을 맡고,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면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이랑 아이 돌보기까지 도맡아야 한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회사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도맡아 돌본다든지 집일과 집살림을 힘껏 보살피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1억 연봉을 집어치우고 집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걸으려는 사람 수컷이 있기나 있을까.


.. “그래서 중성화수술, 즉 에리는 4개월쯤에 피임수술, 우리는 6개월쯤에 거세수술을 하는 편이 좋겠네요.” “뭐라고요?” “마리 씨, 피임과 거세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아아, 네.” “피임은 임신을 피하다, 거세는 생식력을 없애는 거죠.” “하지만 선생님, 좀 가여운데요. 조금은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고 할까…….” “흠,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죠. 저 역시 이 녀석들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거든요.” “바로 그거예요.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태어나면 키울 각오는 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거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단, 녀석들은 암수니까 1년에 2∼3차례, 4∼6마리씩 낳겠죠.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각각 또 낳고 그 새끼들이 다시 낳으니까, 뭐, 1년 후에는 대략 64마리 정도 될까요. 다음해에도 계속 늘어나겠죠. 그 정도 키울 각오가 있으시면 저는 전혀 말리지 않습니다.” ..  (68쪽)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마음산책,2008)라는 책은 책이름을 옳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책이름부터 옳게 바로잡으면서 이 책이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곱게 아로새기도록 도와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없으면 사람 암컷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 수컷이 쓸모없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책이 아니라, 맑지 않고 밝지 않을 뿐더러 사랑스럽지 않은 길을 자꾸자꾸 걷는 숱한 사람 수컷이 바보스러운 굴레를 벗어던지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이라고 여긴다면, 출판사에서는 책이름부터 얼른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만 돌보지 않을 뿐, 맑은 목숨과 밝은 목숨과 사랑스러운 목숨을 사랑하던 삶을 찬찬히 적바림하는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이기에, 이 책이름은 이 책을 가까이하려는 사람한테 너무도 높은 울타리를 세우고 만다(‘발칙한 도발’ 같은 책이름이 될 수 없다. 요네하라 마리 님은 ‘발칙한 도발’ 같은 이름을 붙이며 글을 쓰지 않았다). 집짐승 돌보기를 즐기는 사람한테뿐 아니라, 고운 목숨을 아낄 줄 아는 사람한테 예쁘게 다가설 이야기책이 되도록 하자면, 더 보드라이 마주하고 더 살가이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책이름부터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도록 해야지 싶다.


.. “잘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오셔서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하타나카 씨가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가자 남자는 그다지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뭐든 물어 보시오.” “‘먹이’라는 통역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푸드’라고 하시오, 푸드.” “네, 알겠습니다.” 하타나카 씨를 따라서 통역사 여섯 명이 넙죽 인사를 하자 남자는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  (132쪽)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이는 ‘사람 수컷’이다. 통역 일을 하면서 만나야 하는 숱한 ‘사람 수컷’ 가운데 아름다운 이도 어김없이 있을 테지만,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바보스러워 슬픈 이가 훨씬 많으리라 본다. 짐승한테 ‘먹이’를 주지 ‘푸드’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사람 수컷은 짐승한테 먹이 아닌 푸드를 주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람 수컷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뉴라이트’를 이야기한다. 몇몇 정치꾼 사람 수컷뿐 아니라, 문화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 수컷 또한 ‘라이팅’을 이야기하고 ‘북마케팅’이나 ‘북쇼’를 이야기한다. ‘버라이어티 쇼’란 무엇일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수컷은 무엇을 생각할까. 아니, 생각하는 머리가 있기는 있을까. ‘뉴타운’이 엉터리라고 여긴다면 ‘에코페미니즘’이건 ‘그린마켓’이건 집어치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땅 사람 수컷은 그리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닥 맑지 못하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 수컷이 쓸모없는지 모를 노릇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는 사람 수컷이요,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이 또한 사람 수컷이며,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무기를 좋아하는 이마저 사람 수컷이다. 전쟁을 기리는데다가 전쟁기념관이나 전쟁박물관까지 만드는 이는 바로 사람 수컷이다. 기리거나 섬겨야 할 것이 그렇게 없어서 전쟁을 기리거나 섬겨야 할까. 기리거나 섬겨야 한다면, 이토록 바보스러운 터전에서도 맑고 밝게 새로 태어나는 목숨들이다. ‘들꽃 기념관’이나 ‘아기 박물관’이나 ‘나무 기념관’이나 ‘흙 박물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 수컷은 그야말로 부질없고 덧없으며 값없는지 모른다. (4344.6.26.해.ㅎㄲㅅㄱ)


―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요네하라 마리 글,김윤수 옮김,마음산책 펴냄,2008.8.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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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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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1]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책이름 :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글쓴이 : 히로세 다카시
- 옮긴이 : 위정훈
- 펴낸곳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1.3.28.)
- 책값 : 18000원



 (1) 흙을 일구던 사람한테는


 조선이나 고려나 백제나 부여나 발해 같은 나라가 이 땅에 섰을 때에 태어났다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어디에서 살았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일본이 이 나라로 쳐들어온 조선 무렵이라면, 그무렵에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서 어떻게 살아남거나 죽었을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땅에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가 나뉘어 치고박으며 다투던 무렵에는 싸움터 병졸로 끌려가서 ‘수만 병사’라는 이름에 묻혀 주검이 되었을는지, 깊은 두메에 숨어 흙을 일구며 목숨을 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온통 싸우고 피가 튀기던 나날입니다. 나라땅이 얼마만한 넓이였나를 살피는 역사책이라고만 느낍니다. 임금님 이름이 어떠하고, 임금님을 모시는 이름난 신하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웠는가 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역사책이며 역사학자입니다.

 한 나라를 버티거나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 목소리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역사책인데, 이는 오늘날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2010년대 여느 한국사람 살림살이를 보여주거나 담는 인문책이 있을는지요. 아니, 수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를 ‘여느 수수한 삶’이라 일컬을 만한지요.

 조용히 흙을 일구던 사람들한테 싸움이란 무슨 뜻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말없이 바다와 마주하며 고기를 낚던 사람들한테 다툼이란 무슨 소리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는 왜 백제를 넘보고, 신라는 왜 고구려를 넘보았을까요. 저마다 제 터전에서 예쁘게 살아가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고대국가라느니 근대국가라느니 하지만, 이러한 나라이든 저러한 나라이든 ‘갖춘 무기’만 다를 뿐, ‘여느 수수한 흙일꾼’을 불러들여 총이나 칼이나 창을 쥐도록 한 다음, 뜻없고 값없이 죽도록 내몰았다고 느낍니다. 천리장성을 쌓느니 만리장성을 쌓느니 하지만, 무기를 갖추거나 무기를 앞세우기 앞서, 서로서로 제 보금자리를 알뜰히 사랑할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 (베트남전정 때) 마을이 완전히 불타 버리자, 미군은 언덕 주변에 구덩이를 파고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를 구덩이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두 아이를 구덩이 앞에 세웠다. 그러고는 아이의 얼굴이 거의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총탄을 쏘아 벌집을 만든 뒤, 손발이 너덜너덜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바로 구덩이 속에서 여자의 격렬한 비명이 들려왔다. 미군은 얼른 총을 삽으로 바꿔 쥐고서 그대로 흙을 덮어 구덩이를 완전히 메우고 발로 밟다 다진 다음, 살아남은 3명의 남자를 포로로 잡아 행군을 계속하였다. 저 멀리 수풀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기는 오늘 밤 정글 속 맹수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날 석양이 질 무렵, 행군하던 부대는 도중에 미군 헬리콥터를 만나자 포로를 끌고 가라면서 마을 남자들을 넘겼다. 헬리콥터는 포로들을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만, 잠시 후 상공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자 헬리콥터에서 사람의 몸뚱이가 아래로 우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세 구의 몸뚱이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고, 그 중에 하나는 머리가 잘려서 멀찌감치 튕겨 날아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 1975년의 인도네시아 침공 이래 격렬한 무차별 공격을 받아 온 동티모르에서는 고문과 강간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모든 생활이 파괴된 채로 전쟁 상태가 계속됐는데, 사망자 수가 25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전쟁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25만 명의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동티모르가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  (22∼23, 139쪽)


 인문책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현대전쟁이든 근대전쟁이든 고대전쟁이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서로서로 죽이는 짓입니다. 그러나, ‘여느 수수한 남자 어른’이 스스로 나서서 싸움터에 나간다거나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언제나 ‘임금님’이나 ‘가장 꼭대기에 앉은 권력자’가 싸움을 일으킵니다.

 베트남이 일으킨 베트남전쟁이 아닙니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던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베트남을 프랑스한테서 이어받아 식민지로 삼으려 하던 미국이 새삼스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서 한 나라가 ‘두 갈래 믿음’을 품어 서로 쪼개지도록 내모는 힘세고 무기 많이 갖춘 큰 나라입니다. 남녘과 북녘도 매한가지예요. 한 나라 안쪽에서도 군국주의와 평화주의가 부딪히도록 내몰고, 두 나라 사이에서는 서로 무슨 주의인가에 따라 맞서도록 내몹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 하건 공산주의라 하건, 자유주의라 하건 사회주의라 하건, 서로서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이라면 서로서로 다른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보듬을 노릇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은 삶이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른 모습과 이야기와 꿈을 사랑하거나 아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르고,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어른과 어린이는 다르며,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다릅니다. 바닷가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들판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멧자락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사뭇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삶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면서 서로를 보살필 노릇입니다.


.. 핵무기는 대체 여태껏 무엇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핵무기가 없으면 당연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83년까지 6개국이 총 약 1300개의 원수폭을 이 세상에서 실험적으로 폭발시켰고, 그 사이에 300회의 전투를 치렀지만 원수폭은 단 1개도 전장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전장과 폭발 지점이 일치하지 않는 무기, 그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세계의 수많은 정치가들과 군인들은 그런 효율이 0인 무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고 연구자를 투입했다 … 이만큼의 핵무기가 생산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돈줄은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다 … 거액의 돈이 미사일 제조 관련 회사로 흘러들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160∼162쪽)


 먼 옛날 중국 이야기를 빌지 않고 한국 이야기를 빌어도 알 만한데, ‘멧골에 들어서면 범한테 잡아먹힌다’지만 ‘세금이 더 무서웁기에 범한테 잡아먹히더라도 멧골에 들어간다’던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때에는, 고려 때에는, 신라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스스로 살림을 일구지 않으며 나라일을 돌본다는 임금과 신하와 심부름꾼을 거느린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정부와 공공기관도 우리한테서 거둔 세금으로 정책을 펼칩니다. 여기에다가 군대를 두어야 하니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고, 군대를 더 키워야 한다니까 세금뿐 아니라 사람까지 끌려가야 합니다.


.. 1952년 3월, 마침내 벨기에의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이 소문을 듣고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의 교수 하인리히 브란츠바이너가 단장을 맡았고, 로마 대법원 변호사 이외에 영국·프랑스·벨기에·중국·폴란드 등 각국의 전문가들이 조사단에 동참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성 콜레라·페스트·티푸스·이질 등 다수의 전염병균이 공중 낙하물에서 검출되었고, 그 낙하물은 쥐·파리·빈대·거미·투구벌레·조개·식물류 등 다양했다. 게다가 독가스탄도 잇따라 발견되었다. 조사단은 이 모든 것들이 미군의 비행기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1952년만이 아니라, 그 전년도에도 수 차례 사건이 발생했음을 확인한 증거를 갖고 돌아갔다 … 한국전쟁에 임한 미군은 옛 관동군 이시이 시로와 옛 나치군 발터 슈라이버의 자료를 이미 수중에 넣고 있었다 … 미국 군부가 범죄를 전범까지 통째로 사들여 세균무기 기술을 손에 넣고 있었다 …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경험한 학살사엔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미국의 세균과 독가스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고엽제 다이옥신과 독가스,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의 고엽제와 독가스, 아프리카 각지의 독립전쟁에서 포르투갈의 고엽제, 앙골라 분쟁에서 남아공의 독가스 사용이 악명 높다 ..  (167∼169, 174쪽)


 전쟁은 돈 때문에 터집니다. 일본이 한국으로 쳐들어오든,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든, 고구려가 중국으로 땅을 넓히려 하든, 돈을 더 거머쥐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돈을 더 거머쥐려는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습니다. 사람들 핏값이 모이는 자리에서 돈을 그러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돈(세금)을 긁어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무기를 만들거나 사고팔면서 돈이 흘러넘칩니다. 전쟁을 일으켜 숱한 사람이 죽고 쓰러지면서 돈이 쌓입니다.

 나라를 지킨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애국이요 충성이요 크게 외치지만, ‘사랑한다는 나라’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이 다 죽거나 다치거나 쓰러진다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돌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총을 든 사람 앞에서 총을 들어야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습니다. 총을 든 앞사람이든 총을 든 나라 하든 밥을 먹어야 나를 지키고 내 살림을 꾸립니다. 밥을 먹으려면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흙을 안 일구고 총을 만들거나 총을 쥔다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아요. 총을 들며 ‘적한테서 나를 지킨다’고 하자면, 누군가 ‘총을 든 나와 적군 몫’으로 흙을 일구면서 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키거나 사랑할 뿐입니다. 군대가 생기거나 10만 병력을 일으킨다 해서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되지 않습니다. 세금 짐을 덜거나 없애야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됩니다. 이웃나라가 배를 곯다가 쳐들어오기 앞서, 내 터전에서 내 땅을 사랑하며 일군 곡식을 기꺼이 나누면 됩니다. 밥 열 술 뜰 그릇에서 한 술이나 두 술을 덜어 나누면 돼요. 함께 살아가고 나란히 사랑할 길을 찾아야 즐거워요.


 (2) 한국땅에서 살아갈 아이한테는


 우리 집에 찾아온 둘째 아이는 사내입니다. 병원에 가서 옆지기 몸을 살핀 적이 없기 때문에 사내가 태어날는지 계집이 태어날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사내보다 계집이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내로 태어날 때에는 한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대에 끌려가는 일’ 때문에 걱정스럽거든요.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야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는 일은 ‘나라사랑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 집안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스무 살 푸르디푸른 젊은이한테 ‘세 해 동안 꼼짝 말고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아라’ 하는 일은 아주 좋으면서 반가운 ‘나라사랑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나라사랑일 때에는 우리 둘째를 얼마든지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푸른 논밭과 파란 바다로 보내겠어요. 세 해를 지낸대서 흙일이나 바다일을 알 수 없으니 다섯 해쯤은 지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 아이만 시골로 보내 흙일이나 바다일을 시키기보다 함께 시골로 갈 때에 훨씬 좋을 테니, 아쉬움 없이 시골살이를 하러 집을 옮기리라 생각합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흔히들 말하는 ‘전후 상태’가 결코 아니다. 지구는 몇 십 일에 한 번씩 전쟁을 한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전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 한 달 전의 전쟁조차도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흥분 때문에 빛이 바래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오늘 낮에 일어난 잔학한 사건뿐이고, 이러한 사건이 쉼 없이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그 연속성을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  (136, 140쪽)


 군대라는 곳은 군인을 키워 거느립니다. 군인이란 총이나 칼이나 대포를 다루는 재주에 길들어진 사람입니다. 총이나 칼이나 대포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듭니다. 곧, 군대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곳입니다.

 오직 사람을 죽입니다. 첫째도 둘째도 막째도 사람을 죽입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사람을 잘 죽여야 칭찬을 받습니다. 아니, 군대에서 군인이란 사람을 잘 죽이지 못하면 바보요 멍청이요 얼간이 소리를 듣습니다. 군대에서 총칼을 잘 휘두르지 못하거나 주먹질을 잘 해내지 못하면 ‘고문관’ 딱지가 붙이면서 푸대접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합니다.

 군대라는 곳은 언제나 적군을 만듭니다. 군대에 평화란 없습니다. ‘유사시’라는 이름을 내걸어 삼백예순닷새 전쟁만 생각합니다. 전쟁만 생각하며 전쟁하듯 살아갑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따분해 할 뿐 아니라 ‘애써 익히거나 길들’인 ‘사람 죽이는 재주’를 써먹을 데가 없다고 여겨, 끝없이 훈련을 거듭합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무장 아주 잘된 군사분계선’ 둘레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이곳 비무장지대에서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실탄과 총칼을 들며 북녘 군인하고 맞서니까 굳이 훈련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무장지대 뒤쪽 부대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훈련을 합니다. 비상훈련을 하고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하며, 대대·연대·사단·군단에 따라 훈련을 잇습니다. ‘훈련을 앞둔 훈련’이란 무엇이냐 하면, 혹한기훈력이나 혹서기훈련을 앞두고 ‘미리 겪는 훈련’이에요. 한 주에 걸쳐 벌이는 끔찍한 훈련을 앞두고 ‘체력단련’을 시킨다면서 한 달에 걸쳐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합니다.


.. 인간으로서 오감을 자극하는 무기야말로 그들의 성에 차는 것이다. 고전적인 훈련, 고전적인 전투, 고전적인 무기, 그것이야말로 군인의 전통성을 지키고 자신들의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라고 많은 장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아마도 600만 명이라는 절대적인 숫자보다, 한창 일할 인간의 지혜가 국방에 박탈되고 만다는 게 소련 문화에 미치는 훨씬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진리가 아니라, 거기에 쓰인 주장대로 정치가와 군인이 행동함으로써 지구가 온통 학살의 피로 뒤덮인 게 맞다. 지금껏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 학살·전쟁사였다는 뜻이다 ..  (164, 260, 278쪽)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죽이는 재주’에 길들어야 하는 군대에서 가장 젊으며 푸른 나이에 바보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사랑하는 손길’로 둘레 숱한 이웃하고 착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흙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고, 흙을 일구는 아이로 살며,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 곱게 숨을 다하는 아이로 스며들기를 꿈꿉니다.

 자가용을 몰기보다 자전거를 모는 아이로 살아가고, 돈을 더 벌기보다 사랑을 더 나누는 아이로 지내기를 비손합니다. 딸로 태어난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아이가 이 땅에서 사랑꽃과 믿음나무를 일구는 아름다운 삶이어야 어버이로서 흐뭇하지, 이 아이들이 어설프거나 섣부른 나라사랑에 휘둘린다면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두 아이 어버이는 가장 젊으며 빛나던 때에 비무장 아닌 비무장지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인병기가 되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두 아이 앞날에 이렇게 끔찍한 살인병기 군대 굴레가 들씌워지지 않도록 보살피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 1년 간의 군사비 지출은 지구 전체로 이미 200조 엔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해마다 1인당 약 4만 엔을 내온 셈이다. 이 돈에 매해 학살용 무기 사용에 지출되고 있다 … 모든 무기는 원래부터 사용될 운명에 있다. 무기를 갖고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이 아슬아슬하게 군사력의 폭주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반드시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의 격렬한 갈등이 확인된다 … 세계는 사랑만으로 구할 수 없다. 우리가 국방예산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군인사업을 살찌우고 죽음의 상인을 배불리고 있는 한, 아무리 모금을 해 봤자 의미가 없다 … 군국주의는 하나의 사업이다. 사업이므로 유대인이 옛 나치와 손을 잡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또한 사업이라면 CIA가 다양한 공작을 하고, 그 모든 것이 자유주의를 지킨다는 목적에서 실행했다면 실패로 돌아간 역사마저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전쟁을 만들어 냄으로써 멋지게 사업을 성공해 왔던 것이다. 쉬지 않고 긴장 상태를 만들어 군인이 생계를 잃지 않도록 유지해 가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면, 오늘날까지 계속된 전 세계 군인의 사업은 참으로 번창해 온 것이다 ..  (183, 189, 190, 228쪽)


 히로세 다카시 님이 쓴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덮습니다. 히로세 다카시 님은 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을 썼는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전쟁이 터지는 까닭을 캐내거나 밝히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권력자와 부자가 전쟁산업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는 못난 짓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보여주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글쎄, 모르는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전쟁 권력자를 나무라는 뜻이 아예 없다 할 수 없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입니다만, 두 아이 어버이로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읽으면서 꼭 한 가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참말 우리 두 아이부터 전쟁놀이·전쟁놀음·전쟁무기·전쟁준비·전쟁군대·전쟁세금 따위를 사르르 녹이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쁜 삶길을 걸어갈 씩씩한 아이로 꿈꾸도록 손을 맞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싸움을 일으킬까?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하지요. 사람들은 왜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할까? 바보라서 그렇지요. 사랑을 모르고 꿈이 없으며 삶을 잊은 바보라서 그렇지요.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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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11-06-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의미심장하군요...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숲노래 2011-06-07 16:18   좋아요 0 | URL
더도 덜도 아니거든요.

전쟁은 바보가 일으키고
전쟁에 바보가 휩쓸려요.

입시지옥은 바보가 만들고
입시지옥에 바보가 휩쓸려요......
 
꽃멀미 사진이 있는 에세이 2
차은량 지음 / 눈빛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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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며 열매를 못 맺고 멀미가 난다면
 [책읽기 삶읽기 61] 차은량, 《꽃멀미》(눈빛,2009)



 사진을 찍는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놀이처럼 즐깁니다. 아무 손전화나 아이 손에 집히면 사진기 노릇을 합니다.

 사진찍기 놀이를 즐기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문화나 예술로 여기지 않습니다. 심심할 때에 갖고 노는 사진기로 여기고,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진기로 생각합니다. 때때로, 망가져서 못 쓰는 필름사진기를 들고 사진찍기 놀이를 합니다. 아이로서는 사진을 찍어 어떤 그림을 맺어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어 함께 놀 수 있으면 좋을 뿐입니다.

 아이한테 자그마한 디지털사진기를 사 줄까 어림해 보지만, 선뜻 장만하지 못합니다. 곧장 살림돈부터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오래도록 갖고 놀 만한 작은 사진기 한 대를 선뜻 장만할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아버지 또한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 쓸 필름값을 대기 벅차 쉬엄쉬엄 찍습니다. 필름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느낍니다.

 디지털사진을 찍으면서 메모리카드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사진을 찍은 뒤에는 셈틀을 차지하는 파일을 헤아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찍을 수 있는가를 곱씹고, 셈틀 저장장치가 다 차면 새로 마련할 일을 근심합니다.


.. 아끼던 카메라를 바꿨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단계 다운을 시켰다. 작은 카메라 두 대를 거쳐 급기야는 내 처지에 과분한 카메라를 장만한 날부터 일 년 하고도 수 개월이 지나는 동안 카메라의 노예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 내지 못했다. 한 개의 렌즈만으로 버티겠다던 애초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여유돈만 생기면 렌즈를 사들였다. 카메라 가방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가방을 멘 어깨는 장비의 무게로 한쪽이 기울어졌다 ..  (28쪽)


 사진찍기를 하거나 사진찍기를 하려는 이들은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누군가는 여러 해에 걸쳐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장만하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카드를 긁어 장만합니다. 장만한 장비를 이내 팔고 다른 장비를 갖추기도 합니다. 사진기 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장비로 갈아타기도 합니다. 사진기 몸통과 렌즈를 여럿 갖추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하나만 갖추고,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회사에 따라 숱하게 갖춥니다. 몸통과 렌즈를 하나만 갖춘대서 사진을 못 찍거나 잘못 찍거나 엉터리로 찍지 않습니다. 몸통과 렌즈를 숱하게 갖추었기에 사진을 잘 찍거나 훌륭히 찍거나 사랑스레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사진은 내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한테는 시가 너그러운 사랑이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합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한테는 수필 한 꼭지가 사랑이 되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구실을 합니다.

 시를 백 꼭지 쓰자고 다짐하면서 백 꼭지를 써내지 못합니다. 사진을 백 장 찍자고 다짐하면서 백 장을 찍지 못합니다. 부피로 시 백 꼭지를 채우거나 사진 백 장을 채우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다만, 내 마음을 드러낼 사랑스러운 시나 사진은 하루아침에 만들지 못해요. 내가 살아가는 결에 따라 차근차근 풀어내기만 합니다.


.. 내게는 사진 실력의 향상을 위해 바쳐야 하는 노력보다 카메라와 렌즈의 무게가 더 견뎌 내기 힘들었다 … 열다섯 살 즈음이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에 어떤 소리들이 있을까 하는 문제로 단짝 친구 복희와 서로의 의견을 논한 적이 있었다. 노랫소리, 새소리, 물소리, 아가의 옹알이 소리에 이어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엄마가 용돈 주시려고 돈 꺼내는 소리’라고 말하자 복희는 ‘엄마가 밥상 차리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복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나의 저속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물리고만 싶었다. 복희 못지않게 나도 밥상 차리는 소리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쳤던 것이다. ..  (29, 66쪽)


 시를 쓰는 솜씨는 키우지 못합니다.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재주 또한 북돋우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솜씨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재주 또한 살찌울 수 없어요.

 때로는 손재주를 부려 멋들어져 보이는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빼어난 손놀림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을 빚기도 합니다.

 그런데, 멋들어져 보이는 작품을 시라고 일컬어도 될까 궁금합니다. 멋스레 보이는 작품이라 하면 사진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진과 수필을 엮은 이야기책 《꽃멀미》(눈빛,2009)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차은량 님은 당신 삶결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더 잘난 사진이 아니고 더 못난 글이 아닙니다. 돋보이려 하는 사진이 되지 않고, 내보이려 하는 글이 되지 않습니다.


.. 고춧가루도 있고, 파·마늘도 있고, 마침 지난 조치원 장날 도가에서 사다 놓은 새우젓도 있으니 부추만 있으면 되겠다. 텃밭의 부추는 웃자란 순을 얼마 전 베어 낸 뒤로 아직 먹을 만큼 자라지를 못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면소재지로 나가 부추 한 단을 사면서 김장을 담근다는 소문을 내고 왔다 ..  (114쪽)


 차은량 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을 찬찬히 풀어놓기 때문에, 차은량 님이 사랑스레 살아온 나날을 사랑스러운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좁쌀뱅이나 꽁생원처럼 보낸 나날은 좁쌀뱅이나 꽁생원다운 글과 사진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차은량 님이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녹아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다니기를 좋아하면 걷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스며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자가용을 씽 몰아 휭 오고간다면 자가용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배어들겠지요.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텃밭을 일구고 김치를 담그며 살림도 돌보는 차은량 님인데, 조치원 장날에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면 《꽃멀미》라는 사진수필은 어떤 모양새였을까 궁금합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부추 한 단을 사”는 삶이 아니라 부추가 없으면 텃밭 둘레에서 다른 풀을 뜯거나 멧자락에 들어서 멧나물을 뜯어서 나물김치를 담그는 삶이라면, 《꽃멀미》라는 책이 아니라 ‘꽃소리’나 ‘꽃·새·메’ 같은 책을 내놓았을 수 있겠구나 느낍니다.

 스스럼없을 만큼 수수한 사진과 글이지만, 자가용을 휑하니 타고다니는 사람으로서 수수할 뿐입니다. 시골사람다운 수수함이나 살림하는 일꾼다운 수수함이 짙게 드리우지 못한 사진과 글입니다. (4344.6.4.흙.ㅎㄲㅅㄱ)


― 꽃멀미 (차은량 글·사진,눈빛 펴냄,2009.5.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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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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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를 걸었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책읽기 삶읽기 60] 서영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이 곧게 뻗은 한길을 걷는 사람은 다 다른 모양새와 생각과 느낌입니다. 누군가는 앞만 바라보며 걸을 테고, 누군가는 옆을 두리번거리며 걸을 테며, 누군가는 자꾸자꾸 멈출 테지요.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걷기 때문에 다 다른 생각과 이야기와 느낌이 태어납니다.

 산티아고라 하는 데를 걷는 길 또한, ‘걷는 길은 같다’지만, 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은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게 느끼거나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서영은 님이 내놓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라는 책은, 산티아고를 걸었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를 걸었대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네 골목을 걷든, 아파트 골마루를 걷든,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에 느낌이 태어납니다.


..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학상 심사를 거의 도맡아 해온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란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동안 심사를 너무 많이 해온 것을 깨우쳐 주었다. 폭식 …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멀리 떠나 와 있는 것을 느꼈다 … 나는 문학을 시작할 때 내 문학이 있을 자리는, 그 낡은 구두, 제 몸을 아무리 부딪혀도 삶이 양지로 변하지 않는, 또는 끝내 양지 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비통한 증거로서, 다 해진 그 구두가 있는 자리라 여겼다 ..  (15, 16, 17쪽)


 서영은 님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에서 ‘내려놓기’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서영은 님 스스로 내려놓기를 했다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려놓기를 하겠다’는 생각만 잔뜩 드러날 뿐입니다.

 참으로 내려놓기를 할 마음이라면, 굳이 ‘무엇을 내려놓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내려놓았을 테니까요. 제대로 내려놓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데다가, 어쩌면 내려놓지 않은 채 마지막 삶길까지 걸을 매무새인 터라 ‘내려놓지 못하는 내려놓기’ 이야기가 가득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학상이든 작가이든 김동리이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교수이든 강사이든 가정주부이든 짝짓기 연인이든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나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아 나 스스로 즐거울 길을 걸으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즐겁고 아름다이 받아들여 옳고 바르게 펼치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안 한대서 더 훌륭하거나 많이 한대서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써서 상도 받고 글삯도 벌어야 좋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소설꾼 김동리 님하고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건 없건 나한테 따사로운 사람이거나 나한테 커다란 사람이거나 나한테 애틋한 사람이거나 나한테 좋은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믿음을 품는다 하고, 마음 깊이 살가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믿음을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믿음을 품기도 하며, 마음 깊이 넉넉히 맞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어떻게 일구려 하느냐가 대수롭고, 내 길을 내 발로 어떻게 디디려 하는가가 대단합니다. 돈없는 삶도 내 삶이고 돈있는 삶도 내 삶이에요. 가난하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지 않고, 가멸차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지 않아요. 어떠한 길을 걸어가며 어떠한 삶을 일구든, 내가 나를 바라보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매무새이면 알뜰합니다.


.. 내 마음에서는 김동리와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싶은데, 밖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진이 필요하다, 육필원고가 필요하다, 작가의 방을 꾸미겠다 등등의 일로 전화가 걸려왔다 … 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과 비례해서, 내 마음의 여유는 폭우에 깎이는 산의 절개지처럼 세상 속으로 쓸리어 나갔다. 얄팍하고 거짓된 칭찬, 집단심리에 편승한 일시적 관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높고 낮은 강단에 올라, 독자들의 값싼 호기심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  (21, 30쪽)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여행책도 믿음책도 수필책도 아닙니다. 딱히 어느 한 갈래로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돋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함께 산티아고를 걷는 길동무한테 끝없이 투정을 부리는 대목. 길동무 마음을 살뜰히 읽지 않으며 그예 울타리만 쌓는 대목.


.. “너무 오래 쉬면 일어나기 싫어져요.” 노련한 카미노답게 치타는 앉지도 않고, 사진만 몇 컷 찍은 다음 이내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좋은 경치를 봐도 그냥 스쳐만 간다면, 도대체 이 길은 왜 있는 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마지못해 떠날 채비를 한다 … 그녀는 제법 많은 굴을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비탈을 낑낑거리고 올라왔다. 몸이 추억을 되찾아가는 방법은 그 몸에 기억된 수고를 재현하는 것일까. 비탈 위에서 치타의 손을 잡아끌면서 나는 그녀가 단순히 먹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계된 향수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  (98, 190쪽)


 서영은 님은 스스로 이토록 낮아지고 싶어 글을 쓰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이토록 낮아지자 다짐하면서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사랑을 나누며 내미는 손길을 얼마나 못 받아들이며 얼마나 못 헤아리는가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이제부터는 참사랑과 참믿음을 찾아나서겠다는 다짐을 펼치려는지 모릅니다.

 ‘좋은 경치’는 ‘한 번 보았으니 됐’습니다. 왜냐하면, 길동무이든 서영은 님이든 ‘좋은 경치’가 있는 곳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서 ‘산티아고 걷기’를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려는 산티아고 걷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참다운 삶을 바라보는 고운 넋을 일구려는’ 뜻에서 하려는 산티아고 걷기입니다. 서영은 님 스스로도 밝히고, 이제껏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사람들 또한 밝히는 대목이에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 한낱 관광객 아니겠어요. 좋은 경치에 얽매이자면, 한국땅에서 문학상 심사 오래오래 맡고 대학교수 이름쪽 단단히 거머쥐면 됩니다. 좋은 경치 아닌 좋은 삶을 일굴 노릇이고, 좋은 이름값 아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자며 마음닦이를 하듯 걷는 산티아고 ‘노란 화살표 길’이라고 느낍니다.

 먼 길을 오래도록 걷는 내내 곁에서 이모저모 챙기고 밥을 차리며 도움말을 끝없이 들려주는 길동무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으면서 산티아고를 걸었다면, 이 산티아고 걷기란 무슨 보람인가 알쏭달쏭합니다.


.. 도시에 들어서면 순례자들은 이방인이 된다. 도시가 버린 것은 ‘걷기’이다 …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으니 산티아고가 거룩하고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 있다 ..  (108, 365쪽)


 에스파냐 도시이든 칠레 도시이든 일본 도시이든 한국 도시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사람들이 걷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자동차가 우쭐거립니다. 어느 도시이든 높직한 건물이 가로막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따스한 사람결보다 돈을 앞세웁니다. 어느 도시이든 풀과 나무와 흙이 아닌 시멘트와 아스팔트입니다.

 이러한 도시 얼거리를 일찍부터 알았다면, 서영은 님은 일찌감치 도시를 떠날 노릇입니다. 꼭 산티아고를 걷지 않았어도 슬기롭게 깨달아 아름다이 살아갈 노릇입니다.

 산티아고는 거룩하지 않으니까요. 산티아고는 산티아고이지 서울이나 제주가 아니에요. 산티아고에서는 산티아고를 온몸으로 부대껴서 온마음으로 느껴야 해요. 내가 살아온 대로 보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줄을 깨달아야 해요.

 이제 책을 덮습니다. 외롭다고 생각하며 외롭다는 이야기를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수없이 되풀이하는(그렇다고 ‘외로움’이라는 낱말로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일기책은 덮습니다.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살아가더라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고,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으나 내 마음 차분하게 사랑할 길을 찾지 못하기에 외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산티아고에서 한국땅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떨치거나 예쁘게 껴안으면서 참살길을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글·사진,문학동네 펴냄,2010.4.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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