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존스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엘리엇 고온 지음, 이건일 옮김 / 도서출판 녹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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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2] 엘리엇 고온,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책이름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글 : 엘리엇 고온
- 옮긴이 : 이건일
- 펴낸곳 : 녹두 (2002.12.27.)
- 책값 : 13000원


 (1) 어머니


 이 나라 천만 노동자 모두한테 어머니와 같다던 이소선 님이 2011년 9월 3일 아침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둔 이소선 님한테는 지난 1970년 11월 13일부터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돌이키면, 1970년 11월 13일 뒤로도 어머니였으나, 이에 앞서도 어머니였습니다. 천만 노동자한테 어머니였든 아들아이 하나한테 어머니였든, 여러 아이한테 어머니였든, 이소선 님은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어머니로 살아가기 앞서는 예쁜 딸이었겠지요. 당신을 낳은 어머니한테 더없이 예쁜 딸이었을 이소선 님이었겠지요. 이소선 님이 아들 전태일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또 이 나라 노동자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당신은 당신 아들아이를 비롯해 숱한 사람들한테 어머니 품을 따사로이 내밀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 그녀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이라는 물결에 내던져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불행과 죽음을 목격했고, 토론토에서 노동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보고 배웠다. 그녀는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희망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미국으로 들어갔다 … 그녀는 멤피스에서 탐욕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또 전쟁으로 노예들이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서 그녀는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인종간 증오와 계급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의 빈곤과 동경,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가 부인들과 중산층 직장 여성들을 엘리트주의자들로 규정했다 … 마더 존스는 존경과 안정에 대한 그들의 탐욕을 철저히 불신했으며, 그런 욕심에 배신의 씨앗이 자리잡게 된다고 믿었다 ..  (62, 78, 356, 372쪽)



 흙으로 돌아간 이소선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땀흘려 일하는 여느 사람들 누구한테나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아이들을 착하게 돌보면서 다 함께 착하게 살아가고픈 꿈을 나누는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어느 어머니라 하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플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어머니한테는 혼잣힘으로 살림을 잘 꾸리는 아이도 사랑스럽지만,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아니,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한테 더 마음을 쏟고 더 땀을 들여 더 기운을 내도록 북돋웁니다. 따돌림받으며 괴로운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온갖 궂은 일에 시달리면서 아파하는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어머니입니다.

 당신 아이를 함부로 해코지하거나 들볶는 누군가 있다면, 스스럼없이 곧바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입니다. 몽둥이나 회초리나 전쟁무기 따위로 아이를 지키지는 않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오직 당신 자그마한 몸뚱이 자그마한 사랑으로 아이를 지킵니다.

 아이를 돈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아이를 이름값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키, 조그마한 손, 조그마한 몸뚱이라 하지만, 어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꿋꿋하게 당신 아이를 건사합니다.


.. 경찰은 자본가들이 요구한 대로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이 1876년에 발족되었다 … 네 개 철도회사들은 경기 침체기에도 주주들의 배당금은 꼬박꼬박 나눠 주면서도, 직원들의 임금을 10퍼센트 삭감(그것도 1년에 두 번)했다 … 자본가들·학자들·언론인들은 자립을 촉구하였고, 자유방임주의 경제와 다윈의 적자생존론은 그런 위기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야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호물품을 마구 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  (86, 10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자한테 어머니와 같은 이소선 님이 있다면, 이소선 님처럼 모든 노동자한테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는 있을까 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어머니 이소선 님처럼,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아버지는 있을까 하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톺아봅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따사로운 어머니’ 같은 ‘따사로운 아버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돈도 힘도 이름도 없다지만, 작은 맨몸뚱이를 내맡기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이 작은 맨몸뚱이 하나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누가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여느 아버지는 없을까요. 참말 여느 아버지는 당신 여느 아이들을 여느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는가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학원을 여럿 다닌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손꼽히는 대학교를 다닌 다음 손꼽히는 이웃나라에 배움길을 떠나야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회사에 들어가 손꼽힐 만큼 높은 연봉을 받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스스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크기까지 받은 사랑씨를 저희 새로운 아이한테 곱게 물려주는 사랑길을 걸을 때에 슬기롭습니다.


.. 노동조합은 넓은 의미의 가족이었다. 노동조합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버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 미국의 자본가들은 시민동맹과 같은 어용단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시민동맹은 매우 공격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했으며 8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입법의 반대에 앞장서고 있었다 … 광산주들 역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경비원들을 유지하는 데 수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썼다. 조업이 멈춰진 광산은 추가로 수십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실은 미국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인식이 자본가에서 깡패나 불량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 부를 축적하는 일과 자유를 짓밟는 일, 이 두 가지 일은 같은 일이었다 ..  (150, 176, 342쪽)


 이소선 님은 ‘노동자 어머니’요 ‘전태일 어머니’입니다. 이소선 님은 참말 고스란히 ‘어머니’입니다. 나이 여든한 살이 되어도 ‘어머니’입니다.

 우리와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미국땅에서는 백 살 나이를 살아낸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이 ‘어머니’입니다. 이른바 ‘마더 존스’ 님은 여든을 넘고 아흔을 넘긴 때에도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요, 따사로운 사랑과 따사로운 손길로 가난하고 힘겨우며 외롭거나 지친 모든 착한 사람들을 넉넉히 감싸안으면서 껴안는 좋은 어머니였어요.


 (2) 사랑


 엘리엇 고온 님이 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녹두,2002)라는 책이 있습니다. 2002년에 이 책이 나오기 앞서까지 1978년에 한글로 옮겨진 《마더 죤스》(평민사,1978) 하나만이 ‘노동자한테 어머니인 사람이 일군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자서전을 쓴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은 《마더 죤스》라는 책에서 당신을 ‘영웅’이나 ‘성녀’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는 이름 ‘어머니’ 그대로, 어머니로서 아파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따사롭게 돌보고픈 마음을 찬찬히 그려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도시락을 예쁘게 꾸려 보자기에 싸서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고는 ‘밥 좀 먹으면서 일하’라고 북돋웁니다.

 고추장을 담가서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간장을 담고 된장을 담아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을 손수 갈무리해서 고추장이며 간장이며 된장을 담습니다. 김치를 담고 나물을 무치며 닭을 잡아 곱니다.

 때때로 이러한 일을 맡는 아버지가 있습니다만, 아버지들은 당신 아이들이 밥을 굶을까 걱정하는 일이 퍽 드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려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아버지란 참으로 드뭅니다.


.. 4반세기 이상을 그녀는 아동노동, 노동대중의 빈곤, 미국의 자유파괴 등, 사람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진실을 폭로하는 사람이었다 … 그녀는 남녀 노동자들에게 세상은 그들의 손으로 이룬 것, 그래서 세상은 바로 그들의 것이라는 믿음을 분명히 심어 주었다 … 가혹한 착취의 시기에, 그녀가 벌인 싸움은 인간다운 노동시간 확보와 적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조직화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돋보였다. 그녀는 연설을 하고, 미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조에 가입시키고, 잠은 노동자들의 오두막·하숙집, 아니면 친구들의 집에서 해결하는, 미국 행동주의자들의 자니 애플시드라 할 수 있었다 ..  (25, 26∼27쪽)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라는 책이름이지만, ‘어머니 존스’, 곧 ‘존스 어머니’는 조금도 “위험한 여성”이 아닙니다. 존스 어머니는 참말 존스 어머님입니다. 이소선 어머님은 참말 어머님이듯, 존스라는 분도 어머님이에요.

 힘든 아이들을 코앞에서 버젓이 보는데, 이 힘든 아이들을 따사롭게 얼싸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외로운데, 이 아픈 아이들을 포근하게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는 사람 존스 어머니가 아닙니다. 싸우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존스 어머니요, 사랑하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입니다.

 《미혼의 당신에게》(백산서당,1983)라는 책을 읽을 때에도 이 책을 일구어 내놓은 다나까 미찌꼬라는 일본 ‘어머님’은 참말 어머니로서 가녀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물과 웃음을 나누려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식을 뽐낸다든지 학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우러르거나 학식을 섬길 까닭이 없습니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할 뿐입니다. 오로지 아이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을 아끼며 보살필 뿐입니다. 서로 미워한다든지, 나 홀로 1등을 차지하면서 우쭐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할 뿐이요,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밥술을 나누는 기쁨을 맛볼 뿐입니다.


.. 마더 존스로서 그녀의 생애는 정말 놀라운 용기의 이야기, 정말 훌륭한 싸움의 이야기다. 그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문제들을 회피하는 동안, 마더 존스는 그것들로 불타올랐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들에 의지해야 하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 마더 존스는 무소유의 이상을 잊지 않았고, 그것의 찬미자가 되었다. 그녀의 자기부정의 삶은 경박함과 물질주의를 꾸짖는 것이었다 … 그날(100번째 생일) 마더 존스는 뉴스·영화 기자들에게 예전에 서운했음을 털어놓으면서, “미국은 돈으로 세워진 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피로 세워졌어요. 미국의 자유를 지킬 권능이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는데, 노동자들은 그 권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직 배우지 못한 거요. 또 여성들의 손에도 아주 놀라운 능력이 주어졌건만, 그들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른다오. 자본가들은 그 여인네들을 사교클럽에 끌어들이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숙녀로 만들려고 하지. 우리 나라엔 그런 숙녀는 필요없고, 여성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  (99, 146, 204, 444쪽)


 어머니 존스는 아픈 사람들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외로운 사람들하고 같이 지냈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슬픈 사람들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사랑은 혁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제도개혁이나 선거민주주의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은 높은 연봉이나 걱정없는 공무원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에서 나타납니다. 사랑은 솔솔 김이 나는 따뜻한 밥그릇에서 싹틉니다. 사랑은 시원한 물 모금과 기름진 논밭에서 태어납니다. 사랑은 굳은살 박힌 손으로 빨래하고 바느질하며 이부자리를 까는 삶에서 비롯합니다.


.. 그녀는 인종·종교·국적을 초월해서 노동계급 연대의 대오를 갖추자는 호소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자본가들은 남부와 북부를, 미국 본토인과 외국인들로 갈라서 여러분의 대오를 이간시켜 정복하려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공동의 명분을 위해 사용자와 싸우는 광산 노동자들입니다. 자본가들의 칼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가난·고통, 그리고 여러분 자녀들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더 강력하게 연대하라고 합니다 … 나는 정의를 위한 계급투쟁에 나설 때면, 동부와 서부·남부와 북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미국에 있는 모든 노동자 자녀들의 발에서 쇠고랑이 벗겨진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런데 아프리카 흑인 아이 한 명의 발에서 쇠고랑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서 또 싸울 것입니다.” ..  (183쪽)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입니다. ‘어머니 존스’는 사랑으로 이룬 웃음입니다.

 어머니 이소선이나 어머니 존스를 괴롭힐 뿐 아니라, 어머니 이소선과 어머니 존스가 도우면서 지키려 하던 착한 사람들을 들볶은 이들은,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잊거나 사랑을 등지면서 그예 돈바라기로 삶을 깎아먹은 안쓰러운 넋입니다.


 (3) 아름다운 삶을 찾기


 우는 아이를 잘 달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들은 여느 어머니들보다 우는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합니다. 우는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울음을 그치면서 마음을 쉬곤 합니다.

 밥을 잘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가 차리는 밥을 떠올리면서 그리는 여느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예부터 집일을 여자가 도맡도록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아버지들 스스로 아이한테 ‘아버지 손맛’을 물려주려고 힘쓰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아이한테 따순 사랑을 좀처럼 물려주지 못하나, 여느 어머니는 여느 아이한테 당신 여느 손길로 따순 사랑을 언제나 물려줍니다.

 보드라운 목소리로 싱그러운 노래를 불러 주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노는 아버지가 어김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노래하며 놀 겨를을 그닥 내지 못합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일터로 가서 여느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거나 얽매이기 일쑤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와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과장 자리이든 부장 자리이든 사장 자리이든 스스럼없이 내려놓으면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겠다고 나서는 여느 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느 어머니는 당신 여느 아이하고 곱게 노래를 부르면서 오순도순 여느 놀이를 즐깁니다. 여느 아이를 여느 손길로 사랑하고자 여느 어머니는 이런저런 일자리 이런저런 이름값을 얼마든지 곱게 내려놓습니다.


.. 그녀가 뉴스에 처음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아동들의 5분의 1이 빈곤 속에 있다. 그들은 마더 존스의 자식들이다. 어엿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 또한 그녀의 자손들이다.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며, 현 시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마더 존스의 자식인 것이다 ..  (30쪽)


 지난 2008년부터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삐 살아갑니다. 갓난쟁이들은 쉬가 마려우면 그냥 쉬를 하니까 빨랫감이 하루에 마흔 장이나 쉰 장이 나오기도 하고, 두 살쯤은 지나야 낮오줌을 가릴 만하며, 세 살쯤 되어야 비로소 밤오줌을 가립니다. 둘째가 두 살을 지나고 세 살을 지날 두어 해 뒤까지 이 기저귀 빨래는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지런히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며 빨래를 걷다가는 빨래를 갭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을 추스르면 빨래를 나누어 맡고 빨래 걷기와 개기도 하나둘 나누어 맡습니다. 네 살배기 아이는 아직 서툴지만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갤 때에 어설픈 손짓으로 빨래를 만지작거립니다. 곧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을 지나면서 빨래 널기와 걷기와 개기를 시나브로 야무지게 해낼 수 있겠지요.


.. 부는 가난의 충격적인 장면 가까이에서 뻔뻔스럽게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  (81쪽)


 빨래기계를 쓴다면 빨래하는 집일에서 조금은 홀가분할는지 모릅니다. 자가용을 굴린다면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고 읍내로 장마당 마실을 다니느라 헉헉거리며 땀으로 흠뻑 젖지 않아도 좋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이 삶을 좋아합니다. 손으로 하는 빨래가 좋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빨래기계를 들이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나 자전거를 몰 때에 시원하며 즐겁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자가용을 굴리지 못합니다.

 네 식구는 가만히 꿈을 꿉니다. 우리한테 돈이 없으나 우리한테 돈이 생긴다면, 우리한테 돈이 모자라지만 우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우리한테 새로 생기거나 넉넉한 돈으로 빨래기계나 자가용이 아닌 고운 흙으로 살가운 논밭이나 멧자락을 장만할 꿈을 꿉니다. 몸을 살찌울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꿈꿉니다. 마음을 살찌울 아름다운 책을 ‘언제 생길는지 알 길이 없는 돈’이 들어올 날 신나게 장만하자고 꿈을 꿉니다.

 한 번 살다가 죽은 다음 또 사람으로 다시 살 수 있을는지, 아니면 목숨은 이제 끝일는지, 아니면 넋만 살아남아 어딘가를 떠돌는지는 모릅니다. 어찌 되든, 이렇게 사는 동안에는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흙으로 돌아갈 때에는 또 이때대로 아름다운 내 넋이 되도록 보살필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지요.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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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우어줄라 쇼이 지음, 전옥례 옮김 / 현실문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에는 자유도 민주도 없다
 [책읽기 삶읽기 71] 우어줄라 쇼이 엮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 나라에는 헌법이 있지만, 헌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때때로 특별법이 생기면서 헌법을 뛰어넘습니다. 인권을 비롯한 기본권보다 권위와 권력이 앞섭니다. 자연과 삶보다 개발과 경제가 앞섭니다. 평등과 평화보다 안보와 군대가 앞섭니다. 자유와 민주는 언제나 뒷전이 됩니다. 사랑과 믿음을 지키는 나라정책이나 나라살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정책만 자유와 민주하고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라살림만 사랑과 믿음하고 등지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부터 자유와 민주랑 사귀지 못합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깃들기 어렵습니다.

 나라정책에 앞서 여느 사람들부터 자유와 민주를 먼저 살피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돈벌이를 먼저 살핍니다. 나라살림에 앞서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누구나 언제나 이름값을 먼저 헤아립니다. 입시지옥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제도권학교가 함께 만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느 어버이 또한 함께 만듭니다. 비정규직이나 푸대접이나 따돌림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회사가 함께 만들지만, 어른이 된 여느 사람들 또한 함께 만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자리부터 자유와 민주가 가장 앞설 수 있도록 해야, 내 삶터가 달라지고 내 마을이 달라집니다. 내가 꿈꾸는 마음밭부터 사랑과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 내 나날이 바뀌고 내 이웃이랑 동무가 바뀝니다.


- 남녀의 동등한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종이 위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 (12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나와 결혼할 남자는 내 예술과도 결혼해야 한다. 내 예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관용을 베푸는 게 아니라! (33쪽/조지 엘리엇)
-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도 남자고, 진실에 반대하는 자들 역시 남자다. (53쪽/메리 아스텔)
- 남자들은 여자를 껴안는 대신에 덮친다. 남자들은 여자를 얻는 대신에 산다. 남자들은 뭔가 이문을 남겨야 하는 사업을 하듯 여자를 다룬다. (80쪽/루트 베를라우)



 우어줄라 쇼이 님이 엮은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라는 작고 도톰한 책을 읽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며 여성으로 말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보여줍니다. 숱한 서양사람이 어떠한 말을 길어올려 참삶과 참자유와 참민주를 바랐는가를 보여줍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어여쁜 사람인 줄 느끼며 살아갈 참평화와 참평등과 참사랑이 어떠해야 좋을까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종이에 적힌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삶으로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권리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키우는 일은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무기와 군대가 더 많고 더 세다 해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무기와 군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전쟁이요 푸대접이며 따돌림입니다.

 여자 군인이 드물게 있으나, 군대는 남자가 만들어 남자로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여자 정치꾼과 경제꾼이 더러 있으나, 정치이든 경제이든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집을 떠납니다. 남자들은 저를 낳아 키운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 홀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 짝을 만나 아이를 낳았어도,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처럼 제 아이를 키울 생각을 않고, 아이를 키울 몫은 오직 여자한테 떠넘기고는 집 바깥에서 무언가 ‘큰 일’을 벌입니다. 돌이키면,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도 으레 어머니(여자)였지, 아버지(남자)는 아니라 할 만합니다.


- 남자가 권력과 어리석음 대신 영혼과 인간성을 채워 넣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86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남자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모든 남자가 독재자가 될 것이다. (96쪽/애비게일 애덤스)
- 어른들은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들이 놀 때 각기 다른 운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들이 배우는 종목이 각각 다르다. (163쪽/게르트루드 피스터)
- 아름다운 여자는 이중으로 보복 조치를 당한다. 몸은 묶이고, 남자의 소유물인 자신의 모습은 길들여지고 다듬어진다. (182쪽/수잔 팰루디)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버려야 나라살림이 살아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에 들일 돈을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에 들여야 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단단히 움켜쥐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면 남북이 하나되는 마당에 든다 하는 돈이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가 무섭게 버티는데 대학등록금이 이토록 비쌀밖에 없습니다.

 장난감 칼이나 총을 아이한테 선물하는 일부터 잘못인 줄 느끼지 못하기에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전투기나 군함이나 탱크나 잠수함이나 미사일을 만들 돈으로 햇볕힘을 알뜰히 쓰도록 애쓸 노릇이요, 지구별 자원을 걱정할 일입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칼이 아닌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총이 아닌 빨래비누와 걸레와 수세미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나날을 어릴 적부터 맞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집일을 거들며 찬찬히 배우는 삶을 어린 날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입으로 넣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한글은 나중에 깨치더라도 흙살림을 먼저 옳게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며 즐거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며 아끼는가를 익혀야 합니다. 영어나 한자는 모르더라도 집살림을 제대로 알뜰살뜰 느껴야 합니다.


-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그게 예절에 맞는지 어떤지 묻고 싶지도 않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판단에 따라 흔들리고 싶지 않다! … 나는 진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 (218쪽/루이제 뮐바흐)
- 여자답다는 말은 남자들에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형용사다. (233쪽/헤드비히 돔)
- 사회 모든 분야의 원칙은 남자가 정한다. (274쪽/앙엘리카 메르켈)
- 여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가 곁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토록 난폭하게 구는 것이다. (279쪽/조앤 콜린스)



 이 나라에서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아니, 이 나라에는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아예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조차 쉬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이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며 건사하는 삶입니다.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사람다이 살아가면서 둘로 나뉜 성별에 걸맞게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다운 나날을 일구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생각부터 하지 않는데다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줄 모릅니다. 내 삶은커녕 동무 삶과 이웃 삶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보듬을 줄 모릅니다.


- 여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사내 아이를 재봉학원과 부엌으로 보내라. 그렇게 3세대가 흐르면 여러분도 남자가 바느질과 요리를 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억압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날이 오리라. (340쪽/이다 한-한)
- 여자는 과거에 대체로 정치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전해 내려온 나쁜 정치 습관과 전통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생각해 낼 수가 있다. (385쪽/에밀리 그린볼치)
- 집안일은 사람의 일이지 여자의 일이 아니다. (418쪽/알리스 슈바르처)
- 전쟁은 경악스러운 강간을 동반한다. (464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아픈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떻게 해야 즐거우며 반가운 나날을 맞이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모든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보내는 틀에 짜맞추어집니다.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가는 틀에만 짜맞추어지면서, 스무 살이 되건 스물다섯 살이 되건 스스로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집안을 건사하거나 하는 일을 겪지 않고 배우지 않으며 대물림하지 않습니다. 그예 돈을 더 많이 더 빨리 벌어들이는 일자리 얻는 틀에 갇힙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학문하는 데가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일자리에 들어갈 자격증인 졸업장을 따는 곳일 뿐입니다. 대학등록금이 비싼 까닭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들일 일자리를 얻도록 내밀 자격증인 졸업장을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보아야 하고, 사람을 느껴야 하며,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아름다이 사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자유도 민주도 없습니다. (4344.8.13.흙.ㅎㄲㅅㄱ)


―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우어줄라 쇼이 엮음,전옥례 옮김,현실문화연구 펴냄,2003.12.2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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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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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책과 ‘시험문제’ 교재
 [책읽기 삶읽기 70]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쓴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를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어 집일을 옆지기한테 맡긴 채, 자리에 드러누워 책을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면 책이든 뭐든 읽지 말고 가만히 쉬어야 할 텐데, 끙끙 앓며 누워 지내기만 하자니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껴, 책 하나를 손에 쥡니다.

 장만하기는 일찌감치 장만했으나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여러 해를 보낸 《장정일의 공부》를 펼칩니다. 다섯 해 앞서 이 책을 읽었으면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세 해 앞서 읽었다면, 또 지난해에 읽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앞으로 세 해나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장정일의 공부》에 나오는 사회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에는 눈길이 쏠리지 않습니다. 사회 이야기를 깊이 파헤치고 싶어 하는 대목에만 눈길이 쏠립니다. 정치를 다루는 이야기 말고 정치에 깃든 장정일 님 삶을 밝히는 대목에만 눈길이 갑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머릿기사를 모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아홉 시 새소식을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새소식도 찾아서 듣거나 보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라 할 만큼, 신문 머릿기사나 방송 새소식은 ‘하루 지나면 부질없는 옛이야기’로 쌓이거나 묻히거든요.


.. 한 번도 살상 거부를 위한 종교적 정언 명령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 ‘대체 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라는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일부 거대 개신교 목사들이 주장하는 특혜와 형평성 시비는 그들이 한 번도 대체 복무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념으로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스개일 수밖에 없다 ..  (19쪽)


 신문과 방송은 등지면서 책을 읽는 까닭은 한 가지인지 모릅니다. 책은 언제라도 되넘길 수 있습니다. 참책인가 거짓책인가는, 장만해서 책꽂이에 꽂은 책을 한참 뒤에 펼치건 곧바로 펼치건 금세 드러납니다. 아니, 책꽂이에 꽂은 책을 얼마나 나중에 꺼내어 펼치느냐에 따라 참값과 거짓값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1회용품이 아닌 책이라 할 때에는 대물림을 해서 여럿이 돌려 읽어야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애써 종이에 책을 찍을 때에는 한 번 읽고 지나치거나 잊어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삶을 파헤치며, 삶을 나누는 책이어야 비로소 책답다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덕일은 “앞의 대동법 논쟁에서 보았듯이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괴로움은 양반 사대부들의 가렴주구였지 국왕의 군사력 강화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 박정희의 일성 앞에 ‘입이라도 벙끗’ 하는 국민은 곧바로 ‘빨갱이’가 될 각오를 해야 했고, 빨갱이로 찍히는 것은 곧바로 죽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박정희를 말하기에 앞서, 이승만 체제의 전체주의적인 요소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 ..  (38, 370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합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시험문제 외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공부를 안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노상 ‘시험문제 외우기’만 합니다. 공무원시험이건 자격증시험이건 영어시험이건, 으레 시험을 치를 때에 더 점수를 잘 받게끔 문제를 외우는 데에만 마음을 바칩니다.

 참으로 많다 싶은 한국사람이 도서관에 갑니다. 그러나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지 않습니다.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다지만, 정작 ‘배우는(공부하는) 책’이라기보다 ‘시험을 잘 푸는 데에 도움이 될 교재’가 꽤나 많은 셈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붙잡고는 ‘공부 시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배움’도 ‘공부’도 없습니다. 오직 ‘시험’만 있습니다. 대학교라고 그닥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나는 반값등록금을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반토막으로 깎아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학등록금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학교에는 오직 참배움만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대학교에 못 들어가게끔 제대로 ‘공부하는 길을 가르쳐’서, ‘참다이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은 곧장 대학교 바깥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대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을 쫓아내지 않아요. 대학교는 ‘공부 안 하는 대학생한테서 등록금을 받아 장사하는 곳’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대학교를 구태여 다니면서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일은 걸맞지 않아요. 대학교가 ‘공부하기’하고 동떨어졌는데, 이런 대학교를 얼른 그만두든지 아니면 뜯어고치든지 해야지, 그저 반값등록금 노래만 붙잡아서는 샛길에서 이리저리 헤맬 뿐입니다.


.. 민족주의라는 잣대만으로 저항운동을 투시해 온 한국사는 근대사회 이행 과정 중에 불거져 나온 여러 가지 부문 운동을 모조리 억압하거나 민족주의 투쟁 속에 귀속시켜 버렸다 …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하면서 황국신민을 양성하고 민족성 말살에 참여했던 초등학교 교사들과, 일본군 내의 한국인 장교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 다카키 마사오는 물론이고 태평양전쟁에 참여하기를 호소했던 수많은 문인들과 언론들을 더 이상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전범이라고 일컬어야 한다) ..  (207, 210∼211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돈을 치러 살 만한 책은 돈을 치러 사고, 그저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이제껏 책을 꽤 많이 읽었을 텐데, 언제나 더 새롭게 생각하고 더 새롭게 바라보며 더 새롭게 배우려고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서 시험문제 외우기 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집에서도 시험문제 외우기는 안 하겠지요. 아름다운 당신 한삶을 배움이 아닌 시험에 허덕이도록 내동댕이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이 되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사랑을 이루고 싶기에 사람을 사귀며 배웁니다. 삶을 일구고 싶기에 보금자리를 아끼며 배웁니다.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 앞자락에는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덧이름이 붙습니다만, 글쎄요,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인문학 되살리기’를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참말 옳게 배우고 옳게 살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글을 쓴 한 사람 마음밭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4344.8.10.물.ㅎㄲㅅㄱ)


―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씀,랜덤하우스 펴냄,2006.11.13./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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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영어 사전 - 개정판
안정효 지음 / 현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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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 가로막는 영어 불지옥이기에
 [책읽기 삶읽기 68] 안정효, 《가짜 영어사전》(현암사,2000)



 896쪽에 이르는 《가짜 영어사전》(현암사)은 2000년에 처음 나오고, 2006년에 927쪽으로 다시 나옵니다. 영어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을 하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그러모은 《가짜 영어사전》은 책이름 그대로 한국사람이 옳지 않게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영어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더는 찍지 않고 더는 팔지 않으니, 이 책을 찾아서 읽자면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헌책방을 뒤져야 합니다. 애써 다리품을 팔면서 이 책을 찾아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이 나오기 앞서이든 이 책이 나오고 나서이든 이 책이 자취를 감추고 나서이든,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버릇은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는 버릇이 좀처럼 들지 않아요.


.. 한국인이 외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도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생 외국인과는 대화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없는 한국사람들끼리, 우리 말은 내버려 두고 어떤 불량 ‘외래어’를 남용하느냐 하는 현실은 마땅히 걱정해야 할 만한 점이다 …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목적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자신이 화려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외국어를 즐겨쓰고는 한다 ..  (4∼5쪽)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한테까지 정규 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 아니어도 어릴 적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고 영어 영화를 봅니다. 돈이 좀 있으면 나라밖으로 퍽 오래 다녀오기도 하고 아예 몇 해쯤 살다가 한국으로 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돈을 들여 영어를 익숙하게 하도록 길들이’면, 나중에 ‘돈을 쏠쏠히 벌 일자리를 다른 사람보다 한결 수월히 거머쥘’ 수 있다고 여기니까요.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려 하는 움직임이든, 여느 살림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몸부림이든,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나라와 여느 살림집 모두 ‘돈을 더 버는’ 데에 뜻을 둡니다. 아이들이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영어를 배워 영어책을 마음껏 읽는다든지, 영어 쓰는 나라에서 문화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을 꽃피운다든지 하는 뜻으로 영어를 일찍부터 날마다 여러 시간 끝없이 가르치지 않아요.

 이런 한국땅인 터라, 아이들이 어린 날부터 배우는 다른 과목이든 무엇이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을 더 잘 벌도록 돕는’ 쪽으로 기웁니다. 아이들이 착하게 살아가거나 참다이 어깨동무하거나 곱게 살림을 일구도록 돕는 쪽으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요. 아니, 어린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부터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겉치레하는 말입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오직 영어를 내세울 뿐 아니라, 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찾는 데에는 젬병이 되고 맙니다.


.. 또다른 이상한 영어인 ‘핸들을 잡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직업이 운전사이다’라는 엉뚱한 뜻이 되듯, 기껏해야 ‘입에 재갈을 물린다’라는 뜻 말고는 서양인의 귀에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개그를 한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내 직업은 코미디언이다’라는 놀라운 의미상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러나 ‘gag를 하다’는 ‘우억우억 게우다’라는 뜻이다 … 길거리에서 ‘핸드폰(물론 이것도 가짜 영어임)’ 따위 제품에 관해서 설명과 선전을 하는 예쁜 아가씨를 ‘나레이터 모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필시 그들이 ‘모델처럼 예쁘고 젊으며, 상품에 관한 설명(narration)을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하는 ‘선전’은 영어로 ‘sales pitch’이지, 전혀 ‘narration’이 아니다 ..  (16, 68쪽)


 《가짜 영어사전》을 곁에 두고 여러 해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가짜 영어사전》을 찬찬히 읽으면 나 스스로 잘못 길들거나 익숙한 영어가 너무 많다고 느낄 만합니다. 스스로 생각꽃을 피우면서 생각밭을 일군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리는 영어를 쓸 일이 없겠지요. 나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라는 일을 하니까 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 가운데 어느 한 마디도 쓰지 않을 뿐더러, 쓸 까닭이 없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똑같이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숱한 이웃이나 동무는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뿐 아니라 미처 싣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어를 온갖 자리에 마음껏 씁니다.

 《가짜 영어사전》을 읽다 보면 ‘굳이 안 다루어도 될 만’하거나 ‘말풀이가 그닥 시원스럽지 못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잘못 쓰는 영어를 까밝혀 바로잡으려’는 데에 마음을 쓰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게 쓰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그러니까, 《가짜 영어사전》은 ‘바른 영어 바른 씀씀이’를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갈 수 없겠지요. 아니, 이 대목만 짚을 수 있어도 고마운 노릇이에요.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람치고 옳고 바르며 알맞고 아름다이 한국말을 살뜰히 익혀서 알뜰히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거든요.


.. ‘르뽀’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의 ‘reportage’를 일본 글자로 표기한 다음 앞부분을 잘라서 쓰던 말을 한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반토막 언론 용어이다 … ‘-ment’는 ‘statement’나 ‘comment’ 같은 단어의 꼬리에 붙는 접미사로서 혼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전혀 단어 노릇을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방송국에만 가면 여기저기서 ‘멘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 정작 영어 ‘ment’는 ‘말’이라는 단어 가운데 ‘ㄹ’ 받침 정도에 해당한다 …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차에 ‘캐비넷’이 달렸다. 서양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노릇이지만, 진짜다 ..  (181, 247, 588쪽)


 ‘멘트’라는 영어이든 ‘멘토’라는 영어이든 ‘멘토링’이라는 영어이든 공무원부터 진보 지식인까지 마음껏 쓰는 한국입니다. 진보 지식인이든 보수 지식인이든 수구 지식인이든 누구이든,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제도권학교 일꾼이든 대안학교 일꾼이든 이런 영어를 영어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마땅히 쓸 낱말이 없다’고 여기거나 ‘한국말로 사랑스레 나타낼 생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캐비넷’이든 ‘핸드폰’이든 엇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영어를 영어다이 배우지 않거나 못하니까 《가짜 영어사전》을 써서 다룰 만큼 한국사람 스스로 엉터리 말을 자꾸 씁니다. 잘 살필 수 있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가짜 영어’는 ‘거짓 영어’나 ‘콩글리쉬’가 아닙니다. ‘엉터리 말’입니다. 잘못 쓰고 아무렇게나 쓰는 ‘엉터리 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쓰는 말마디 가운데 ‘영어 꼴인 말마디’를 그러모았다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알파벳으로 적는 엉터리 말’을 다루는 《가짜 영어사전》이에요.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영어를 쓸 때에 알맞고 바르게 영어를 쓰기’를 바랍니다. 애써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영어를 쓰는 모습까지 꾸짖지 않습니다. 영어를 얼토당토않게 쓴 자리를 ‘올바르며 사랑스럽고 알맞게 가다듬을 한국말’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다루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깊이 생각하거나 톺아보지는 않아요.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어쩌면 앞으로 다시 나올는지 모르는 새판이든, 《가짜 영어사전》이 한국말답게 쓰는 한국말을 더 헤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이 뜻있는 책이 뜻있게 읽히면서 사람들 말매무새와 말씀씀이를 추스르는 도움책으로 자리잡으리라 봅니다.


..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행하는 가짜 영어의 생태 가운데 하나가 용법의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는 ‘크로스오버’이고, ‘투 톱’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스포츠에서만 머물지 않고 정치계로까지 진출했다 … ‘프로포즈’는 동사이고, 흔히 사용하는 ‘프로포즈하다’라는 표현은 ‘청혼하다하다’라는 소리가 된다. 정확히 말하려면 ‘프로포잘하다’가 되어야 한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도 ‘이소라의 프로포잘하다’라는 이상한 뜻이 담긴 제목이다 … ‘egg fry’를 제대로 된 영어로 고치면 ‘fried egg’이다 ..  (678, 751∼752, 873쪽)


 영어에 미친 사람들 밑뿌리를 생각해 봅니다. 영어에 미친 사람들은 영어에만 미쳤다기보다 돈에 미치고 도시에 굶주리며 미국에 목매달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 이웃을 더 사랑하려고 영어를 배우지는 않으며, 지구별 모든 이웃을 아끼려고 영어를 익히거나 즐겨쓰거나 껴안는 한국사람이라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영어에 눈멀기 앞서 참삶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영어에 목매달기 앞서 참사랑을 보듬지 않습니다. 영어에 사로잡히기 앞서 참사람이 되려 힘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영어를 제대로 못해도 착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어요. 영어를 안 배워도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을 수 있어요. (4344.7.16.흙.ㅎㄲㅅㄱ)


― 가짜 영어사전 (안정효 씀,현암사 펴냄,2000 첫판,2006 고침판/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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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동물농장.1984년 e시대의 절대문학 6
조지 오웰 원작, 박경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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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 즐거운 까닭
 [책읽기 삶읽기 67] 박경서,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판으로 나옵니다. 예전에도 이러했고 오늘날에도 이러합니다. 조지 오웰 님 책 가운데 《동물농장》과 《1984》가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올 뿐 아니라, 《위건부두로 가는 길》처럼 당신 스스로 밑바닥 삶을 몸소 겪으며 적바림한 이야기도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추천·명작도서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 님 책입니다. 논술을 헤아리든 독후감 숙제를 써야 하든, 이 나라 푸름이라면 조지 오웰 님 책 한 권쯤 읽고 느낌글을 써 본 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라 할 만한 이 땅 아이들이 조지 오웰을 읽기는 읽는데, 조지 오웰이 왜 글을 썼고 무슨 글을 썼으며 어떻게 글을 썼는지를 함께 느끼거나 받아들이려나요.

 곰곰이 돌이키면, 조지 오웰뿐 아니라 김동인이든 이효석이든 김유정이든 황순원이든 서정주이든 윤동주이든 한용운이든 이육사이든 신경림이든, 학교에서 읽으라 시키면 읽고, 논술시험 공부를 하라 하면 공부를 하곤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푸름이 스스로 조지 오웰을 알아채거나 김유정을 알아내는 일이란 없겠지요. 푸름이 스스로 책방마실을 하며 여러 가지 책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조지 오웰에 흠뻑 젖어든다든지, 신동엽이나 김수영한테 살며시 녹아든다든지 하는 일이란 있을까요.


.. 독자들은 작품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나 사회를 거부하고 거기에 과감히 맞선 작가이다 ..  (10∼11쪽)


 번역을 하는 박경서 님은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을 내놓습니다.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면서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곰곰이 적바림합니다. 조지 오웰을 더 잘 읽거나 제대로 알아채자는 이야기보다는, 조지 오웰이 어떠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면서 어떠한 글을 어떻게 써서 어떠한 사람한테 어떻게 읽히고 싶었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온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든, 요즈음 다시 나오는 책을 새책방에서 마주하며 읽든, 조지 오웰 님 글자락을 하나하나 더듬으면, 박경서 님이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에서 적바림하듯이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예나 이제나 이렇게 밑바닥 사람들하고 뒤엉킨 채 지낸 삶을 글로 쓴 이는 몹시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으레 ‘밑바닥 사람은 이렇게 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대로 쓰거나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쓰거나 ‘나도 예전에 이처럼 가난해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쓰기 일쑤예요. ‘바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들게 글을 쓰는’ 오늘날 글쟁이는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묻겠지요. 요즈음 글을 쓴다는 사람치고 돈을 많이 버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고, 요즈음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몸소 가난한 채 글을 쓰는 셈이 아니냐고.

 그렇지만 스스로 얼마나 어떻게 가난한가를 찬찬히 밝히는 ‘글을 쓰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난이 왜 가난이며, 가난한 삶이란 어떠한 삶이요, 이 가난한 삶을 누리는 내 나날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고 살림하는 나날을 가만히 옮겨적거나 찬찬히 되살리도록 글을 쓰는 사람도 거의 찾아볼 길이 없어요.


.. 그의 이런 행동은 문학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정 알고 싶었으며, 그들의 고통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그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또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배운 더 큰 교훈은 그 제도가 주인들마저도 끝없이 노예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중산층으로서 어떤 우월감을 지니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했고, 나아가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29∼30, 40, 44쪽)


 조지 오웰 님은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들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번역 일을 할까요. 조지 오웰 님 책을 읽는 사람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책을 읽을는지요.

 밑바닥 사람들 밑바닥 삶자락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다면서 정작 나 스스로 밑바닥 아닌 하늘 높은 구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듯하는 매무새는 아닐까 궁금합니다. 삶과 책과 앎과 함이 한동아리로 이어지는 일이란 거의 없는 오늘날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책은 많이 읽고 책을 즐겁게 읽는다지만, ‘읽기로 끝’이고 ‘읽은 책을 곰삭여 내 삶을 거듭나도록 이끄는 길 찾기’는 안 하는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조지 오웰 님한테는 ‘내려가야 할 밑바닥’이 있습니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도 ‘더 내려갈 밑바닥’이 있을는지 모르나,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 조지 오웰 님은 ‘위에서 살짝 찾아와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처음부터 밑바닥이면서 앞으로도 밑바닥이요 언제까지나 밑바닥인 채 살림을 꾸리고 글을 쓰며 사람을 사귀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얼마쯤 될까요.


.. 오웰을 제외한 20세기 전반기의 영국 소설가들은 대부분은 인간의 소외와 내면세계의 탐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뿐,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 오웰이 그의 정치적 글쓰기에서 보여준 중심 사상은 ‘문학이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진리는 반드시 믿어져야 하며, 작가는 진리인 것을 신뢰성·정확성 및 신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 특혀 현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는데, 현대 전쟁이란 영토의 정복이나 그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체의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  (70, 77, 124쪽)


 조지 오웰을 좋아하면 조지 오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기에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노신이든 루쉰이든 좋아한다면 노신이든 루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니까 읽을 까닭은 없어요. 서정주를 읽든 한비야를 읽든 법정을 읽든 박완서를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원수를 읽든 권정생을 읽든 이오덕을 읽든 임길택을 읽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 어느 책을 읽더라도 내 삶으로 파고드는 이야기 속살을 잡아채어 내 삶이 아름다이 꽃피울 참답고 착한 길을 잘 느끼며 몸소 슬기롭게 일굴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조지 오웰을 읽으며 즐겁다면, 조지 오웰이 살아가며 글을 쓰던 매무새가 무엇을 하려는 몸짓이었나를 깨달으면서 내 하루를 더 알차게 사랑하는 길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으면 벅찬 가슴 그대로 내 삶길을 사랑하면 돼요.

 책은 어디에서든 책이고, 꿈은 어디에서도 꿈입니다. 내가 발을 디딘 터전을 옳게 읽으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몸을 바치는 보금자리를 바르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나와 이웃을 참답게 사랑할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동무를 사귀며 날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까닭은 한 번 선물받은 고마운 목숨을 착하게 사랑하면서 누리는 길을 서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삶은 없고, 더 나은 책 또한 없습니다. 내 좋은 삶이 있고, 내 좋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4344.7.13.물.ㅎㄲㅅㄱ)


― 조지 오웰 (박경서 글,살림 펴냄,2005.6.30./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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