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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을 걷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2
김담 지음 / 텍스트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위인전’ 아닌 ‘살아온 이야기’ 한 자락
 [잠깐 읽기 33] 김담, 《그늘 속을 걷다》



- 책이름 : 그늘 속을 걷다
- 글 : 김담
- 펴낸곳 : 텍스트 (2009.3.30.)
- 책값 : 9000원



 (1) 그늘 자리에서 살아온 길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텍스트〉가 있습니다. 띄엄띄엄 나오고 있으나 아무런 사람줄과 학교줄과 돈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책이야기만 꾸밈없이 수수하게’ 펼치는 작은 매체입니다. 이 잡지를 정기구독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알쏭달쏭했는데, 이태쯤 지나고 나서 이야기를 들으니, 일터에 도둑이 들어 정기구독자 주소가 든 셈틀을 훔쳐 가는 바람에 보내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출판사에까지 들어가는 도둑이라면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사람이었을까 궁금한데, 그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훔칠 만한 물건은 아무래도 셈틀이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출판사로서도 그 셈틀이야말로 둘도 없는 재산입니다. 셈틀이 비싸고 값싸고를 떠나, 출판사 한 곳을 꾸리며 이루어 온 모든 자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4월 초에 전학했을 때 내가 받은 반 번호가 67번이었지만 그 뒤로도 쉬지 않고 전학생들이 들어왔다. 전학을 오는 반 동무들의 고향도 경향 각지였으나 무슨 이유로 전학을 왔는지는 다들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월요일 애국조회라도 할라치면 사람멀미가 났다. 지루한 조회가 끝나고 각자 자기 반으로 향하는 행렬은 처음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지경으로 길디길었고 운동장에는 온통 흙먼지가 보얗게 일어났다 ..  (13∼14쪽)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텍스트〉에서 올 3월에 낱권책 세 권을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곧 두 번째로 세 권을 더 펴낸다 하고, 앞으로도 세 권씩 꾸준하게 펴낸다 합니다. 이참에 나온 세 권과 다음참에 나올 세 권, 또 앞으로 꾸준히 세 권씩 나올 낱권책은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쪽수로 치면 200쪽 안팎이고 책값은 모두 9000원입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판크기는 아니지만, 단출하게 들고 다닐 만큼 가볍고 수수하게 엮는 손바닥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권은 《신호등 건너기 게임》(신민영 글)이라는 이름이 붙고, 2권은 《그늘 속을 걷다》(김담 글)라는 이름이 붙으며, 3권은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한윤형 글)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 가운데 둘째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책끝에는 ‘릴레이 인터뷰’가 퍽 길게 실립니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를 쓰는 젊은 글쓴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2권 《그늘 속을 걷다》에는, 1권을 낸 신민영 님이 2권을 낸 김담 님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실립니다. 이 자리에서 김담 님은 “이제는 돈이 먼저가 되는 거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던 게 전도돼 버린 현상들이 생기잖아요. 돈을 버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돈이 신이 된 거죠.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건데, 돈을 벌다 보니까 피곤해져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요 … 옛날에는 사람이 돈을 썼는데, 지금은 돈이 사람을 쓰죠.(19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늘 속을 걸었다는 김담 님 이야기에다가, 요즈음 사람들 살림살이를 짚은 한 마디를 곱씹으면서, 어쩌면 앞으로도 이 굴레는 걷히지 않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를 생각해서 버는 돈이 아니요, 나를 생각해서 버는 돈이 아니며, 식구와 동무를 생각하며 버는 돈이 아닌 오늘날 삶이 그예 굳어 버리면서, 우리 마음과 넋과 살림새마저 딱딱하고 메마르게 굳어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골에서는 할머니가 참빗으로 아침마다 물을 묻혀 착착 머리카락을 빗겨 손질해 주었으나 도시로 이주한 뒤로는 그런 알뜰한 손길을 기대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끼니마저 직접 챙기고, 때로는 밥까지 지어야 했다 ..  (25쪽)


 김담 님 말마디는 이어집니다. “도시에서는 공부를 안 하고 건들거리면서 놀아도 일단 보고 듣는 게 있고 즐길 만한 문화가 있죠. 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집에 와서 하는 거라곤 기껏 게임밖에 없어요.(197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도시’라고 했지만, 낱말을 ‘서울이나 부산’쯤으로 고쳐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서울’이나 ‘서울처럼 큰 도시’나 ‘서울과 부산 같은 도시’라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틀림없이 ‘작은 도시’에도 즐길거리나 놀이거리가 있기는 있습니다. 작은 극장이 있는 읍이나 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읍이나 군은 도심지라는 곳이 아주 짧아 몇 분 거닐면 끝입니다.

 제가 태어나 사는 인천을 떠올려 봅니다. 서울사람은 인천에 오면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으며 ‘즐길 놀이가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저야 골목마실을 하고 책방마실을 하지만, 인천에 남아 있는 책방 숫자는 새책방과 헌책방을 통틀어 열 몇 곳밖에 안 됩니다. 아예 없는 동조차 있습니다. 연수동이나 관교동이나 송도 같은 데에는 오로지 아파트뿐이요, 뭔가 사람이 갈 만하다 싶게 만든 자리에는 오로지 술집이 그득차 있습니다. 가느니 술집이요 하느니 술마시기입니다. 이름이 도시일 뿐이라 사람이 더 많아 술집 또한 좀더 많이 있을 뿐이라고 할까요. 공연문화든 출판문화든, 공연예술이든 출판예술이든 하나도 없다 하여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역 문화재단이 있고, 지역문화 활동가가 있으며, 저 또한 지역문화를 한몫 맡는다는 소리를 듣지만,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너나 없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곳에 어떤 ‘지역’과 ‘문화’가 있겠느냐고. 새벽바람으로 일하러 서울로 빠져나가, 밤바람으로 잠만 자러 인천으로 돌아오는 판에, 이곳에 무슨 삶이 깃들겠느냐고.


.. 내가 다닌 여자중학교는 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으로 교문을 함께 썼으며 중교 선도부 학생들이 교문 좌우로 벌리고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감시, 적발하고 벌까지 내렸다. 아침 조회시간이면 무슨무슨 일을 하지 말라고 시작하여 종례 시간 또한 무슨무슨 일을 하지 말라고 끝냈으나 우리들은 교문만 벗어나면 그런 주의사항 같은 것은 까맣게 잊었다 … 고등학교 교복은 일본과 자매결연 맺은 일본 학교의 교복과 같았다. 청소시간이면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반드시 써야 했으며 금지사항이며 주의사항을 외려 들면 숨이 가빴다. 소지품 검사 또한 예고 없이 불쑥 시행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책가방 속을 홀라당 털어 열어 보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시되었다. 소지품가방 속에 바늘쌈지, 손거울 등은 필수품이었다. 몸을 지켜야 한다는 순결주의의 강조는 순혈주의와 내통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현모양처의 여성상이 자리잡아 갔다 … 학교도 병영과 다를 바 없었으며 학급의 반장은 곧 담임선생님을 대리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등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일러 준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  (34∼36, 41∼42, 72쪽)


 김담 님은 거듭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시골을 떠나와 성남에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어요. 일단 마당이 없잖아요. 골목이 쭉 있고, 거기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아유, 숨이 안 막히나요?(204쪽)”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옆지기는 우리 아이를 걱정해서라도 우리가 새로 얻어 살 집에는 ‘작더라도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넓고 시설이 괜찮다 하여도 빌라 같은 데는 우리 삶하고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옆지기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살림에 맞는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이 빌라 저 빌라에 들어가 보는데, 그곳에서 알뜰살뜰 살림 잘 꾸리는 분들이 많기는 하나, 하나같이 너무 어둡고 어수선했습니다. 3층이나 4층쯤 되면 햇살이 살짝 비추지만, 1층이나 2층은 한낮에도 집에서 불을 켜야 합니다. 인천은 그나마 반지하 집은 거의 없다 할 만하기는 한데, 반지하가 아님에도 한낮에 불을 켜야 한다면 사람이 사람다이 살기 어려운 데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이 없으니 그런 데에서라도 살아야지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없으니 더더욱 사람다움을 찾거나 느끼면서 살 작은 방 한 칸을 얻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햇볕 한 줌과 바람 한 점을 먹으면서 살 방 한 칸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한완상 교수가 쓴 《민중과 지식인》을 통해 처음 민중이라는 낱말을 접했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으로서 민중이라면 부모를 비롯하여 나 또한 민중일 테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낱말이었다. 계급과 계급의식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 직업란에 건설현장에서 날품을 파는 아버지의 직업을 ‘건설업’이라고 기재했던 기억은 또렷했다 … 선배들은 철학책을 권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출간한 책들은 내 깜냥으로는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몇 번 읽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  (77, 82쪽)


 김담 님은 당신 책 《그늘 속을 걷다》 머리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세월이 바뀐 이제는 일상다반사였던 이런 일들이 일회성 이벤트 행사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무슨무슨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희번드르르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거나 추억할 수 있을 때 과거일 테지만 그러한 까닭에 각색되거나 조작되는 경우 또한 없지 않을 것이었다. 우파들이 과거를 악용, 남용하는 것과 같이……(6쪽)”

 제 삶을 돌이켜봅니다. 저는 ‘추억’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억에 잠길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곁에는 아홉 달짜리 갓난쟁이 아기가 있고, 둘레에는 어미 잃은 눈도 못 뜨는 새끼 고양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지역 막개발 반대 집회’에 나가야 하기에 부랴부랴 짐을 꾸려 일산에서 인천까지 새벽밥 먹고 날아가야 하며, 저녁에는 책 팔러 서울마실을 해야 합니다.

 저한테 ‘추억’이라 한다면, 하루하루 잊지 않고 땀흘려 보내는 ‘삶’입니다. 술자리에서 떠들거나 무슨무슨 잔치판에서 떠벌이는 놀음놀이가 아니라, ‘늘 새롭게 맞이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김담 님이 쓴 《그늘 속을 걷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김담이라는 한 사람이 가슴에 품고 있는 추억’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김담이라는 한 사람이 온몸으로 부대낀 역사’라고 느낍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학자나 지식인은 ‘마을 토박이라 하는 할매 할배’를 찾아서 옛이야기를 듣고 엮고 짜고 하면서 ‘옛날엔 그랬었지’ 하는 추억을 끝없이 만들고 있는데, 정작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 동무요 이웃이요 후배요 선배요 아재요 아지매요 누나요 동생이요 언니요 오빠요 하는 사람하고는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 역사’를 바로 이 자리에서 여미지 않습니다. 꼭 세월이 흘러 자료 찾기도 어렵고 사람들마다 잊어버리기도 한 나중에서야 ‘역사 찾기’라는 이름으로 ‘추억 곱씹기’만을 되풀이합니다. 생각해 보면, 학자나 지식인은 그 옛날에도 ‘그 옛날에 현실(바로 오늘 일)이었던 때에 등을 돌리거나 못 본 체하며 책상물림’으로만 지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발을 디뎌야 할 자리에서 발을 안 디디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손을 뻗어야 할 자리에서 손을 안 뻗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핑계를 대지요. ‘나도 한마음이기는 했으나 먹고살기 바빠 어깨동무하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뒤늦게 옛이야기를 추억거리 삼아 찾아들으면서 말하지요. ‘이런 이야기는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기에 나라나 학교에 기금을 신청해서 책으로 남겨야 한다’고.


.. 반공글짓기, 반공그림대회. 자나 깨나 반공을 몸으로 실현했다. 때로는 남한에서 북쪽으로 보내는 삐라가 역풍을 받고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오래된 금강소나무 우듬지에 내려앉는 일도 있었다 ..  (39쪽)


 저는 ‘학자’라는 이름과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무섭습니다. 아니, 무섭다기보다 소름이 돋습니다. 문화니 역사니 체험이니 추억이니 하면서 ‘예전에는 불량식품이요 나쁜 짓’으로 깎아내리고 다그쳤던 뽑기라든지 달고나라든지 딱지라든지 아폴로라든지를 되살리는 움직임들을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그리운’ 추억이 되고 ‘애틋한’ 역사처럼 뇌까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지 않습니까? 달고나를 추억하는 이들은 ‘평화의 댐 성금 모으기’를 추억할 수 있습니다. 뽑기를 축제로 되살리는 이들은 ‘반공글짓기 대회’를 축제로 되살릴 수 있습니다. “아빠 어렸을 때에”니 “엄마 어렸을 적에”니 하면서, 군사독재정권이 우리를 억누르던 모습들을 즐거운 옛일이라도 되는 듯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고스란히 이어온 군사독재정권 찌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마치 ‘다시 누리고 싶은 일’이라도 되는 듯이. 꼭 ‘다시 그때처럼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야 옳다’는 듯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같은 입시지옥 또한 오래지 않아 ‘추억 스케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헌법으로 누리도록 해 놓은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몽둥이로 두들겨패며 깔아뭉개는 짓거리 또한 머잖아 ‘추억 만들기’처럼 다룰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2) 그늘 자리 다음을 기다리며


 어설픈 위인전이나 어줍잖은 추억 읊기가 아닌,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갈무리한 《그늘 속을 걷다》를 읽습니다. 그늘 속을 걷는다는 일이란 어두운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짙고, 글쓴이 김담 님 발자취는 어두움을 헤맨 하루하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늘이란 응달지기만 한 자리는 아닙니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는 시원한 가림막이기도 합니다. 지치고 고단한 몸을 쉬게 하는 보금자리 노릇을 합니다. 물기를 남겨 주고 새힘을 북돋우는 샘터와 같습니다. 세상 어느 샘가도 그늘 자리에 있지, 볕바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 누구나 서울대, 연고대를 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기에, 담장 옆 학교 전문대생들이 공부와는 다른 특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무언가 모자라는 이들로 폄훼하기 일쑤였던 어린 우리들은, 그런 그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경찰들과 맞서는 일을 가당찮다고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놀랐다. 무엇 때문에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던 탓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일일연속극과 오락프로그램을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녹화방송 되는 권투와 레슬링을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또한 일요극장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는 미국의 서부영화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우리 나라 배우들 이름은 몰랐어도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들의 이름은 또렷이 기억했다 ..  (43쪽)


 김담 님은 당신이 걸어야 했던 지난 삶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내가 걸을 수밖에 없던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을 걸어야 했기에 당신 ‘스스로 걷고 싶은 밝음’이 무엇이었는지를 환하게 깨닫습니다. 어두운 길을 걸으며 어두움에만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지만, 어두운 길을 걷기 때문에 밝음을 꿈꾸거나 찾는 사람이 있으니, 김담 님으로서는 ‘내 어둠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가’를 찾아내어 뽑아 버리는, 또는 좋은 길벗으로 여기며 살가이 다스리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식당 종업원에게 하대를 하고 반말을 하는 것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을 지탱해 주는 음식물도 소중하고 귀한 것 아닐까 … (고향에서 어르신들이) 화이트칼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듯 보이는데, 왜 다시 내려왔느냐고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되물었다 … 비육우를 대량으로 기르면서 우사(소우리)의 소들은 싱싱한 풀 대신 항생제 범벅인 사료로 연명했으며 사철을 콘크리트로 된 우사 안에서 떠나지 못했다. 돈사(돼지우리)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주변의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었다. 가축에서 대량 소비재로 바뀐 까닭이었다 ..  (114, 139, 165쪽)


 다만 한 가지, 김담 님은 소설쓰기를 하기 때문인지 ‘소설책에만 나올 법한 낱말과 말투’를 제법 많이 쓰고 있습니다. 문학이란 그 문학을 하는 나라나 겨레가 어떠한 말로 삶을 가꾸고 생각을 가다듬는가를 보여주는 열매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문학에 담는 말은 ‘우리들 말’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에 묻히는 말이라거나 옥편에 잠자고 있는 말은 아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민중과 지식인》이라는 책을 읽을 때 ‘민중’이라는 낱말을 낯설다고 느꼈던 분이 ‘면목처량’ 같은 말을 쓴다면, ‘면목처량’은 ‘민중’이라 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소설문학’다운 말로 느낄 수 있을까요. ‘몰풍스럽다’는 누가 알아들을 소리이며, ‘자심했다’는 어느 시골사람이 알아차릴 말이겠습니까.

 ‘사람들 말’이 아닌 ‘우리들 말’입니다. ‘사람들 말’을 쓰는 문학이 아니라 ‘우리들 말’을 찾을 문학입니다.

 잘못 쓰는 말이라거나 엉터리로 쓰는 말이라거나 겉멋에 휩쓸린 ‘사람들 말’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삶이라거나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이라거나 넋하고 얼을 보듬는 ‘우리들 말’로 문학을 일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책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안내서였다. 책과 함께 있으면 지루한 줄을 몰랐다. 교과서는 잊고 챙기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시집을 비롯한 여타의 책들은 상비약처럼 챙겨서 다녔다. 약속한 상대가 약속시간에 늦어도 그다지 화를 내지 않았다. 손에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외딴 시골에 조용히 살고 있으니 인맥, 지연, 학맥, 그런 것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친목회, 동창회 안 나갈 수 있으니 세상 편했다 ..  (69∼70, 153쪽)


 그렇지만 아직 “그늘 속을 걷”고 있는 김담 님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꾸준히 지켜보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김담 님 스스로 걷는 ‘그늘길’에 우리들을 불러올는지, 아니면 김담 님이 그늘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을는지, 또는 그늘길이 그늘길 아닌 자리가 되도록 할는지, 어쩌면 우리들이 미처 못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늘길을 누구나 살가이 깨닫고 받아들이게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웃음 어린 목소리로 부를는지는 모르는 노릇이니까요. (4342.5.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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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04 - ‘1급 장애인’ 아닌 ‘문학사랑이’  장영희 님 떠난 길
 :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책이름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글 : 장영희
- 펴낸곳 : 샘터 (2005.3.15.)
- 책값 : 12000원



 (1) ‘장애인’ 아닌 ‘한 사람’이 죽은 길


 지난 5월 9일,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영희 교수라 하면 먼저 ‘장왕록 박사 딸’이라는 이름에다가 ‘1급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달라붙곤 합니다. 틀림없이 장왕록 박사 딸이 맞고, 1급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끈과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껴안으려 한다면, 아무개 딸이건 몸이 어떠하건 우리한테는 ‘장영희 한 사람’만 보거나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 아직 우리 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장왕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  (38쪽)


 장영희 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뜻밖에 듣고는, 몇 해 앞서 읽고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놓고 있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가는 전철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죽 읽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나왔고(이무렵 300쪽 조금 넘는 책이 12000원이면 꽤 비쌌습니다), 책에 실린 글은 2001년 8월부터 세 해에 걸쳐 〈조선일보〉에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이어썼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은 늘 맨 마지막에 들여다보는 터라, 다시금 책을 읽어내고 머리말을 훑다가 깜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조선일보〉에 이어썼던 글이구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분 장영희 님 글을 다른 매체에서, 이를테면 ‘사회에서 힘여린 사람한테 등돌리지 않고자 애쓴다’ 하는 매체에서 기꺼이 받아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서 돈없는 이가 푸대접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매체에서 넉넉히 껴안을 수 없었을까요. ‘사회에 따돌림과 괴롭힘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입시지옥과 갖은 갈등이 평화로이 풀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매체에서 살포시 손을 내밀 수 없었을까요.


..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고, 그 무슨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의 꿈, 소망, 사랑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125쪽)


 저로서는 쉰일곱 해를 살다 떠난 장영희 님하고 만날 일이란 없었습니다. 나라밖 문학에 그리 눈길을 안 두고 있기도 했기에, 장왕록 님이 펄 벅 문학을 숱하게 우리 말로 옮겼다는 대목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헌책방을 찾으러 신촌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돌거나 두 다리로 골골샅샅 누빌 때 서강대 옆도 곧잘 스쳐 지나가곤 했고, 서강대 앞에 잠깐 문을 열었다가 그야말로 금세 문을 닫은 헌책방마실을 더러 하곤 했지만, 이 울타리 안쪽에 목발을 짚고 강의를 하는 장영희 교수라는 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건너편에 있는 헌책방 〈정은서점〉 아저씨가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이분 따님 가운데 한 분도 장애인이었고,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나 대학 입시를 치를 때에나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도 몹시 힘들었기에), 마음은 모르나 몸은 멀쩡하다 싶은 사람들 둘레에 몸 어느 곳이 다치거나 아파 못 쓰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얼핏설핏 느끼곤 했습니다. 바퀴걸상을 타고 헌책방마실을 하던 사람을 꼭 두 번 만났습니다(열여덟 해 헌책방마실을 통틀어). 팔이나 다리 어느 한 군데라도 아프면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자전거모임에서도 몸 아픈 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통계로는 ‘한 나라 10%는 신체장애인’이라 해서, 우리 나라로 치면 오백만 가까운 숫자가 신체장애인일 텐데,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 가운데 신체장애인을 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걸쳐 신체장애인하고 함께 배운 적이란 없고, 이웃 학교에서도 못 보았습니다. 어쩌면 ‘취학면제’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처음부터 교육권이나 평등권을 누려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화교 선거권’을 준 일도 고작 한 해가 된 듯 싶습니다. 그나마 화교 아닌 ‘외국사람이라고 하는 한국사람’한테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이웃 일본이 한겨레붙이한테 선거권을 안 주는 일하고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요. 재일‘조선인’이든 재일‘한국인’이든, 일본에서 ‘코리아’ 국적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선거권을 비롯해 기초권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라밖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일이요, 우리 어버이 또래 일이며, 우리 삶하고 곧바로 이어진 이와 같은 일에 우리들 눈길이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옳고 바르게 누리면서 어깨동무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이 책(펄 벅, 《자라지 않는 아이》)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어머니이다. 기동력 없는 딸이 발붙일 한 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운명에 반항’하여 싸운 나의 어머니. 장애는 곧 죄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마음속으로 피를 철철 흘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딸을 지킨 나의 어머니. 무엇보다 이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것은 부모님과 내게 너무나 힘겹고 고달픈 싸움이었다.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던 나의 어머니.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들을 찾아가 제발 응시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며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문간을 서성이던 나의 어머니. 조금만 도와주면 나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제발 한몫 끼어 달라고 애원해도 자꾸만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이 세상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업도 그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 비할까 ..  (131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영문과 교수로 영문학을 가르치는 장영희 님 삶에 박힌 ‘좋은 문학’이 당신 삶에 어떻게 ‘좋은 마음밥’이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책입니다. 펄 벅 문학을 다루는 글에서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은 1951년에 발표한 《자라지 않는 아이》이다(1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펄 퍽 문학 가운데 이 책처럼 안 읽힌 책이 또 있을까 싶은데, 《자라지 않는 아이》는 2003년에 새로운 판으로 옮겨지기 앞서 두어 차례 옮겨졌고, 샘터사에서 우리 말로 옮긴 판이 이제까지 나온 옮김판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습니다. 저는 이보다 앞서 나온 낡은 판으로 읽으며 ‘펄 벅 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낳아 기른 아이가 ‘자라지 않는 아이’여서 장애인 삶을 온몸으로 부대끼게 되고 이렇게 부대끼면서 숨기거나 꺼리지 않고 고이 사랑으로 껴안으면서 뭇사람한테 참다운 어머니길이요 사람길이 무엇인가를 밝힌 대목도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당신은 장애를 안은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어도 언제나 얼마든지 어깨동무할 만한 마음밭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마음밭이 없으면 아무리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설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다시 일어서더라도 슬기로움과 튼튼함을 갖추지 못합니다.


..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 없는 재주로 무리해서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가끔 방송이나 신문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1급 장애 여교수의 인간 승리, 그녀의 치열한 삶’ 등등으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책을 소개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문인 220명에 의해 설날에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내 책이 뽑혔다고 했다. 시간에 맞춰 TV를 보니 마침 사회자가 내 책을 들고 소개하고 있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의 단 한 번》은 자서전적 에세이집입니다. 요새 암투병 중이라 투병 중 느낀 바를 적은 책입니다.” 옆에 있던 여자 사회자가 때 맞춰 “쯧쯧”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 책은 이미 4년 전, 내가 암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때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저자 장영희 씨는 1급 신체장애인이라네요.” 순간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숙이며 죽은 사람에 대해 묵념하듯이 눈을 내리깔고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책에 대한 소개는 그게 다였다. ‘자서전적’ 에세이니 불가피하게 나의 신체장애에 관한 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도는 ‘장애인 장영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의 장애를 갖고 있는 ‘인간 장영희’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암만 생각해도 내 삶이 별로 ‘치열한’ 것 같지 않다. 아니, 내 삶이 치열하고 감동스럽다면 난 이제껏 치열하고 감동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226∼227쪽)


 전철은 어느새 대화역에 닿습니다. 다 읽은 책은 앞가방에 넣습니다. 사람들이 자동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는 돌계단을 하나나 둘씩 밟으며 밖으로 나옵니다. 장애인 권리를 생각해 준다는 말은 많아 새로 생기는 전철역에는 으레 승강기가 놓이고 점글판이 붙고 오돌토돌 새긴 돌을 바닥에 깔아 놓곤 합니다. 그나마 전철역 둘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버스역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으로서 시내버스를 타기란 꿈조차 꿀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목발을 짚든 바퀴걸상을 끌든 이때에도 시내버스는 탈 수 없으며, 광역버스 또한 탈 수 없습니다(고작 몇 대에만 탈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어떻겠습니까. 시골버스는 어떠하고, 마을버스는 어떠할까요. 학원버스는 어딘가 나은 대목이 있을까요. 학교버스나 유치원버스는 어떻습니까.

 승강기나 자동계단 같은 시설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을 생각해서 마련한 시설임을 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비장애인은 마땅히 돌계단으로 다닐 뿐이요,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승강기와 자동계단을 타도록 마련해 놓았음을 깨닫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어버이 된 분들은 아이들한테 이런 대목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교사 된 분들은 학교에서 얼마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2) 글 하나에 담으려 했던 사랑


 세상 떠난 한 사람이 죽은 일을 앞두고 여러 매체에서 ‘궂긴 소식’을 실어 줍니다. 모두들 ‘장애인 장영희’한테만 눈길을 맞추고, ‘한 사람 장영희’한테는 눈길을 맞추지 않습니다. 아니, 눈길을 맞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눈길은 장영희 님한테만 맞춰지는 매무새가 아닙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았고, 앞으로도 그리 달라질 듯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만 바라보도록 맞춰져 있으며, 사회로 나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며 더 높은 이름을 날리며 더 큰 힘을 누리는 사람’이 되도록 ‘네 동무를 미워하라, 밟고 타 올라서 너 혼자 1등이 되어라’ 하고 내모는 제도권입시교육이기 때문입니다.


..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은 언제나 이별의 슬픔과 기다림의 갈증을 견뎌내야 하는 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필연적 고통은 그녀로 하여금 시인으로 새로 태어나고, 시의 세계에서 삶의 궁극적인 비상구를 찾게 했다 … 무정한 모정에 대한 비난이 혹독하지만, 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결국은 자신처럼 ‘안’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죽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를 밀치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안고 뛰어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에 자식들을 두고 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73, 108쪽)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새삼 놀랐습니다만, 장영희 님 글을 실었다는 〈조선일보〉는 장영희 님 글을 받으며 어떤 느낌 어떤 생각이었을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신문 〈조선일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하는 데로 모아져 있지 않습니까. 사랑보다 돈을, 믿음보다 이름을, 나눔보다 힘(권력)을 높이 추켜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장영희 님이 그런 신문에 그런 글을 실은 모습은 엇박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금 곰곰이 헤아리면 그리 엇박자는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 하나요 살가운 사람 하나라 한다면, 돈바라기 사람이든 사랑바라기 사람이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일찍 철이 들었든 나이먹어도 철이 안 들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뜨거운 가슴은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습니다. 제힘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너른 넋은 누구한테나 잠들어 있습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장영희 님은 ‘몇몇 깨인 사람한테만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이기보다,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사랑을 말하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책을 거듭 읽으면서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깨인 사람이고 깨이지 않은 사람’이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 그때부터 마아너는 딱딱하고 차가운 금화 대신에 딸 에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며 자기를 버렸던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도 마아너를 따뜻하게 대한다. 그는 에피를 통해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이 세상에 선이 존재함을 새롭게 배운다 …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지만, 이 소설에서 강조되는 점은 돈에 집착했을 때 고립되고 의미 없는 삶을 살던 마아너가 그 돈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발견한다는 아이러니이다 … 거울에는 자기만 보인다. 금ㆍ은으로 사방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거울 속 사람들처럼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돌보며 감옥인 줄 모르는 채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  (135∼136쪽)


 ㅈㅈㄷ이라는 신문들만 골프 이야기입네 외국여행 이야기입네 비싼 자동차 이야기입네 떠들지 않습니다. ㅎㄱ이라는 신문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민’은 옛날 ‘백성’과 달라, 큰차 몰고 나라밖으로 골프를 즐기러 떠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는지 모릅니다만, 주식투자이든 펀드투자이든 돈 놓고 돈 먹는 일거리는 오늘날 ‘부자’뿐 아니라 오늘날 ‘서민’도 함께 즐기는 일인지 모릅니다만, 정규직 노동자만 갖은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라 하여 타워팰리스를 꿈꾸지 말란 법 없습니다만, 딱히 더 나은 신문이나 방송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신문도 ‘한 달 벌이 50만 원으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 눈높이’에서 찾아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고 있거든요. ‘쉬는 날 없이 한 달 빽빽하게 열 시간 남짓 일하여도 백만 원 받기 어려운 형편’인 가운데 지친 몸으로 펼쳐들어 읽을 만한 이야기거리를 다루는 신문이란 글쎄,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다루는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기사로 쓰는 말과 글도 그렇습니다. ‘여느 노동자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읽을 만한 높낮이로 글을 다스릴 줄 아는’ 지식인이나 기자가 이 나라에 몇이나 있는지요. 다루는 기사도 기사이지만, 기사에 담는 말과 글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가를 헤아리면서 늘 힘쓰는 분들은 몇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는지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인지, 한국사람 아닌 이들이 읊는 섞임말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눈만 뜨면 떠드는 ‘세계화’는 실상 자존심도 오기도 없는 ‘강국화’일 뿐,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짐승, 버러지만큼도 취급하지 않는 것이 진정 ‘세계화’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부모 형제들도 바로 지금 우리가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때 간호사로 광부로 낯선 나라에 가서 고된 노동을 하고 고향에 부친 달러는 겨우 우리가 인간과 짐승도 구별 못하는 ‘부자’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인가 보다 …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  (277, 279쪽)


 장영희 님이 서양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을 했다고 하여도, 또 한국문학으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펼쳐냈다고 하여도, 당신이 부대끼고 곰삭이며 차근차근 나누려 했던 이야기는 매한가지였으리라 느낍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하고 노래할 수 없는 이 땅에서 끝없이 걸려 넘어져야만 하는 삶을 꾸리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느끼고 담아내는 목소리는 한결같았으리라 느낍니다. 우리는 ‘달러(돈)’ 아닌 사랑을 보아야 하고, ‘달러’에 매인 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스스로한테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달러’만 보여주고 가르치고 물려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풀어냈으리라 봅니다. ‘사람만이 절망이다’고 느끼는 가운데에도, 이 절망을 딛고 설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한편, 절망을 딛고 선다기보다 절망은 또 절망대로 고운 벗님이니 고마이 껴안으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려는 목소리를 펼쳐냈으리라 봅니다.


.. 어른들의 닫힌 마음으로 아이들의 열린 마음까지 꽁꽁 걸어 잠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 끝에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을 지켜 주는 것은 피비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아이러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 가까이에서 공부할 수 없으니 학교에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이 세상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모자람, 불편함을 갖고 있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고,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  (184∼185쪽)


 장영희 님이 아직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때 방학을 맞이해 한국땅으로 돌아와 동생하고 ‘명품을 많이 판다는 패션가를 지날 일’이 있었고, 이때 동생이 옷 구경을 하러 들어간 가게에서 당신은 못 들어가고(계단 턱이 너무 높아) 문밖에 서서 기다리니, 가게 임자가 나와서 당신을 거지로 여기고는 어서 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아마, 장영희 님으로서는 이런 일을 겪으며 또다시 ‘걸려 넘어지기’를 하는 가운데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라는 영국 시인 문학과 삶을 찬찬히 읽어낼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저는 목발까지 짚지는 않으나 헐렁한 차림새에 고무신을 끌고 자전거를 슬슬 몹니다. 늘 큰 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고 다니니 언제나 온몸에서는 땀내가 풍기기까지 합니다. 몇 해 앞서 ㄱ이라는 국립기관에서 한 해 동안 ‘우리 말 이야기 강사’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 ㄱ이라는 국립기관 건물 지킴이들은 ‘잡상인 출입금지’를 내세워 눈을 부라리고 막말을 하며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그 국립기관에서 강사로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는 갑자기 거수경례를 하더니 높임말로 바뀌더군요. ‘여느’ 강사처럼 까만 양복을 빼입고, 까만 차를 몰며 다녔다면 어느 누구도 저를 가리켜 ‘잡상인’이라든지 ‘노숙자’라든지 ‘미친놈’이라며 삿대질을 안 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늘 겪는 동안, 제가 이런 제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지 않았다면 세상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다만, 이런 일을 겪고 저런 일을 치르면서도 제 어리숙한 마음밭은 좀처럼 자라나지 못하지만.
 





 (3) 문학으로 꾸려 온 삶


 몸이 아픈 가운데에도 글쓰기와 문학즐기기를 멈추지 않은 장영희 님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가면서 책 하나를 더 우리한테 남깁니다. 며칠 앞서 나온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마지막 남긴 선물로, 이제까지는 ‘몸이 살아온 기적’이라면, 앞으로는 ‘마음이 살아갈 기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와 사랑의 강’. 아인슈타인이 시인인지 물리학자인지 모를 정도의 문학적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아침에 눈만 뜨면 세상이 달라지고 아인슈타인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도 점차 힘을 잃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로봇같이 움직이고, 시와 사랑의 강은 자꾸 말라만 간다 … 나는 새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별로 ‘특별’하지 않은 가장 보통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특별하게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대박이 터지거나, 대단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기괴한 일이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잘난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서로 함께 조금씩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사는 세상 ..  (89,141쪽)


 생각해 보면, 살아온 기적이든 살아갈 기적이든 조금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쬘 수 있으면 살아 있음이요 기적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더는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죽어 감이요 또한 기적입니다. 내 몸은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며 숨을 이었고, 내 몸이 숨을 멎으면 흙으로 가면서 다른 목숨붙이가 살아갈 거름이 됩니다. 내가 사는 동안 나한테 스며든 목숨들이 바친 몸뚱이가 기적과 같으며, 내가 죽은 다음 내 몸뚱이가 새로운 밥이 되어 다른 목숨한테 옮아 감이 또 기적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몸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새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 몸이 움직이는 우리들인 가운데, 새 마음을 먹으며 새 넋을 일깨우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이 세상을, 이 나라를, 아니 가족조차 변화시키려는 야심이 없이 아버지는 늘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는’ 학자의 외길 인생을 기쁘게 살다 가셨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104, 316∼317쪽)


 틀림없이 장영희 님은 수많은 마음자리를 고이 얻으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당신 몸뚱이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이 있었다는데, 당신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일도 숱하게 많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렇지만 몸 때문에 걸려 넘어진 온갖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몸삶을 이었듯,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진 숱한 일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면서 마음삶을 이었습니다.

 이 마음삶은 언제나 수필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으며, 한 벌 두 벌 선보인 옷을 모두어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든지 《축복》이라든지 《생일》이라든지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든지 하는 이름으로 고이 묶어내어 나누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세상을 떠난 장영희 님 목소리는 더 들을 수 없고, 앞으로 또다른 장영희 님 선물이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겠지만, 숱한 마음밥이 장영희 님한테 스며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피어났듯, 우리는 우리대로 장영희 님이 나누어 준 마음밥을 달게 받아먹으며 우리 깜냥껏 새로운 마음밥을 일구어 우리 이웃한테 나누어 줄 삶을 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 누운 자리가 고즈넉하고 따뜻하기를 빕니다. (4342.5.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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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다케나카 치하루 지음, 노재명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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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낱 불쌍한 떨거지인 미국과 이명박과 ……
 [잠깐 읽기 31] 다케나카 치하루,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책이름 :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글 : 다케나카 치하루
- 옮긴이 : 노재명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9.4.10.)
- 책값 : 11000원



 (1) 아이들 삶에서 사랑과 전쟁이란


 중학교 1학년인 처남은 ‘한국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를 모릅니다. 헷갈려 합니다. 어쩌면, 해방된 해를 모를 수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잡아먹은 해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르는 일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어딘가 글렀다거나 말썽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전쟁이 터진 해를 안다 한다 하여 전쟁이 어떠한 일인가를 알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피해 숫자를 알고, 휴전을 언제 맺었는지 아는 이들이 한국전쟁뿐 아니라 온누리 전쟁이 우리 삶을 어떻게 옥죄는지를 깨닫고 있을까요? 임진왜란이 우리한테 아픔이었다면, 고구려가 땅을 넓힌 일은 아무한테도 아픔이 아니었을까요?

 곰곰이 살피면, 우리 처남만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한국전쟁을 잘 모릅니다. 일제강점기는 더욱 모릅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잇는 군사독재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며 이러한 독재 앙금이 그리 풀리지 않은 사회 얼거리를 더더욱 모릅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는 아예 모른다 하겠습니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얼핏 들었을 테지만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아이들 삶에 어떻게 잇닿고 있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모두와 얽혀 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와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교사 모두 이러한 이음고리를 못 느끼거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비싼 손전화를 사 줄 돈은 있고, 인터넷게임을 하도록 마음써 주기는 하지만, 아이들한테 제 삶이 어떻게 흘러왔으며 앞으로 어찌 흘러갈는지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생각을 잇지 못합니다.


.. 최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 테러전쟁에 수많은 나라들이 이런 선택을 강요당했습니다. 미국 정부에 반기를 들면 손해를 본다, 그렇기 때문애 전쟁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과연 이 경우에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사상적 근거가 존재할까요? …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이 중동에 개입한 이유는 전략적인 거점과 석유 확보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산유국이 밀집되어 있는 페르시아만의 강대국 이란이 반미로 돌아선 것은 이들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더욱이 미국 식의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사상이 수출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곤란한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란에 전쟁을 유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신에 전쟁을 해 줄 나라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 목표를 이루게 됩니다 ..  (26, 116쪽)


 6월 25일을 안다 하여도 4월 19일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한국사람일까 궁금합니다. 8월 15일을 안다 하여도 5월 18일을 모른다면? 10월 9일은 알아도 11월 13일을 모른다면? 12월 25일은 알아도 5월 1일은 모른다면? 그리고 이 모두를 죄다 모른다면? 이 모두를 죄다 안다면?

 안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알까요. 모른다면 무엇을 어느 만큼이나 모를까요. 뭔가를 안다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요.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마주했으며, 우리 어른 스스로는 얼마나 제대로 샅샅이 깨닫고 있을까요.


.. ‘폭력을 통제하는 방법’은 우연히 발생한 폭력사건에 일시적으로 대처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폭력을 추방할 수 없습니다 ..  (166쪽)


 한국전쟁을 알아야 한다면, 한겨레가 둘로 쪼개어져 서로 죽이고 죽은 일이 끔찍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나쁜 놈이요 빨갱이는 죽일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쟁은 나쁘다’는 속없고 알맹이없는 이야기만 외쳐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전쟁은 ‘대리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이 대리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우리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러웠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한국전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군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이 죽은 이러한 전쟁은 북녘이든 남녘이든,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어느 무엇한테는 이바지할 구석이 없음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쟁이란, 우리 스스로 치고받은 싸움이 되었든, 일본이 우리 땅에 쳐들어온 싸움이 되었든, 때리는 쪽이나 맞는 쪽이나 모두 제 삶이 망가지고 제 삶터가 무너지며 제 삶자락이 사라지게 이끕니다. 나를 때린 이를 내가 앙갚음하며 때린다 하여 나한테 남은 생채기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다리 자른 사람을 찾아가 그이 다리를 싹둑 자른다 하여 내 다리가 새로 돋지 않습니다.

 한 번 죽으면 끝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없습니다. 꺼진 셈틀을 켜듯 다시 켤 수 없고, 하드디스크를 갈아 새로 켤 수 없습니다. 오락실에서 돈을 더 넣고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는 놀이처럼 새로 열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오로지 누구한테나 꼭 하나만 있는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을 망가뜨리고 무너뜨리고 짓밟는 전쟁입니다. 일으켜 짓밟으려 하는 쪽이나 일어나 짓밟히는 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일으켰다고 이네들 삶이 안 무너지겠습니까. 전쟁에 휩쓸렸지만 이겨냈어도 우리 삶이 안 무너졌겠습니까.

 낫과 쟁기가 아닌 총과 칼이란 처음부터 없어야 했습니다. 이제라도 걷어치워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하여 지키는 군대를 키운다지만, 세상 어느 나라 군대이든 ‘지키는 군대’란 어느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라밖으로 쳐들어갔든 나라안에서 쿠테타를 일으키거나 독재에 팔뚝질을 하는 여느 사람을 후려갈기든 하는 군대였을 뿐입니다.

 우리를 지키는 힘은 ‘총칼 주먹다짐’이 아닌 ‘맨 몸뚱이 사랑’일 뿐입니다. ‘돈과 재물’이 아닌 ‘어깨동무 믿음’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이란 몹시 끔찍했던 지난날이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난 삶이요, 우리가 다시 불러들이지 말아야 할 지난 발자국입니다.


..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를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로부터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사실 한 나라 안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내전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슬럼지역에 사는 주민을 개발계획 때문에 강제 퇴거시키는 정책은 여러 나라에서 시행됩니다. 이른바 ‘아름다운 도시’, ‘범죄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지요 …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의 시민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험하고 더러운 것’들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 전가된다는 사실입니다 ..  (172∼173쪽)


 열네 살 처남은 아홉 달짜리 아기를 보면서 ‘귀엽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기가 한 달이 될 무렵부터 보았는데, 나날이 ‘더 귀엽다’고 이야기합니다. 열네 살 처남은 제 두 눈으로 제 가까이에서 아기를 처음으로 마주할 뿐 아니라, 똥오줌을 누고 칭얼거리고 젖과 죽을 먹고 기고 놀고 웃고 우는 모두를 보면서 ‘귀엽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알게 된 처남한테는, 저 스스로 모르게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리라 믿습니다. 아니, 사랑이 싹틀밖에 없습니다. 어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니, 어른이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 말을 하는 이 작은 목숨붙이가 이 하나로 얼마나 아름다운 줄을 느끼고 있으니 마땅히 사랑이 싹틉니다.

 그렇지만, 열네 살 처남 앞뒤와 둘레로 얼마나 많은 어리고 푸르고 젊은 넋들은 ‘귀여운 아기’를 부대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집에서, 제 배움터에서, 제 일터에서, 제 동네에서, ‘귀여운 아기’뿐 아니라 ‘살가운 나무’나 ‘애틋한 길고양이’나 ‘고마운 이웃’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버이와 교사와 학교벗만이 아닙니다. 버스기사나 전철기사, 길에서 스치는 사람, 가게 일꾼, 학원 강사, 동네 사람들 가운데 오늘날 ‘열네 살 아이’한테 사랑과 믿음이 스스로 샘솟도록 도와주거나 이끌어 주는 어른은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평화를 보고 자라야 평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장난감 총으로 전쟁놀이를 하는 가운데 저절로 총싸움은 아무것 아니요 텔레비전으로 흘러나오는 ‘미국이 일으킨 침공’ 또한 재미난 볼거리로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맛을 보고 자라면 사랑을 알면서 나누지만, 돈맛을 보며 자라면 돈만 벌면서 돈에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2) 첫걸음 떼는 책


 일본사람이 쓴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라는 책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이 책을 펼치기 앞서, ‘왜 우리는 전쟁 이야기마저 일본사람 글을 읽어야 하는가?’ 하고 물어야 했습니다. 왜 우리 스스로 우리가 치르고 겪은 그 숱한 전쟁 이야기를 우리 땅과 사람과 넋에 맞추어 풀어내지 않는가 하고 되물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입으로는 ‘전쟁 반대’를 외치더라도, 우리 몸은 ‘전쟁에 길든 채’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전쟁 반대’를 외치는 입이라면, 저절로 ‘군 가산점’ 따위는 얼마나 ‘전쟁 사랑’이며 ‘사람 푸대접’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군 의무 복무’란 참된 나라사랑이 아닌 기득권 지키기에다가 군사독재가 이 땅에서 씻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입으로만 외쳐지는 ‘전쟁 반대’만 있을 뿐, 우리 온몸으로 부대끼려는 ‘전쟁을 털어낸 삶’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전쟁 반대’를 하겠다면, 《우리들의 하느님》을 쓴 동화쓰는 할아버지 권정생 님처럼 “승용차를 버려야 이라크파병을 막을 수 있다”는 깨달음에 가 닿을 터이나, 승용차는커녕 냉장고와 텔레비전조차 못 버리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 가해자, 즉 폭력을 휘두른 학생도 폭력의 ‘희생자’로서 보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생활이 완전히 망가져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폭력의 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는 병든 상태입니다 ..  (200쪽)


 그러고 보면, 이제는 세상을 떠난 동화쓰는 권정생 할아버지님입니다만, 권정생 님 또한 텔레비전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당신 나름대로 세상을 읽자면 텔레비전을 보셔야 했기 때문일 테고, 걸어다니기도 힘든 터라 좋은 영화를 보자면 비디오로 보아야 했기 때문이리라 봅니다.

 권정생 님 작은 집에는 냉장고도 있었습니다. 한 번 앓아누우면 꼼짝 못하고 끙끙거려야 했으니, 며칠 먹을거리를 간수하자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두 다리 멀쩡하고 두 손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텔레비전이 없으면 세상을 읽을 수 없는가요? 신문을 읽어야만 세상을 알까요? 냉장고를 모셔야만 굶지 않고 살게 되나요? 승용차를 굴려야만 집과 일터를 오가며 우리 뜻을 펼치게 되나요? 손으로는 빨래를 못하고 전기 먹는 빨래기계를 돌려야만 할까요? 그러다가 열 몇 해쯤 지난 냉장고와 세탁기와 승용차들은 어떻게 하지요? 이런 기계와 전자제품을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까지 ‘안 버리고’ 잘 쓰고 있습니까?


.. 전후의 일본은 자신의 식민지와 전쟁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따라서 그 후 일본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전후를 보낸 아시아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많은 일본인들은 잊기 쉽습니다. 중국이나 한반도는 1945년 이후 내전이나 분단, 군사지배를 경험했습니다. 이 지역사람들에게 전쟁은 1945년 8월에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반공정책을 지원했던 일본은 두 나라의 분단에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두 나라는 아직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 아시아인들은 지금껏 일본사람들을 증오하거나 해치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일본이 가혹한 식민지배와 잔인한 살육을 범했어도 넓은 마음으로 일본인들을 대했습니다. 일본은 반드시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나라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지금껏 아시아인들이 일본인에게 보여준 관용의 정신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인으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뿐 아니라, 정부를 비판해 온 세력 또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쟁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정치가들은 음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자들입니다 ..  (219, 234쪽)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라고 하는 책은,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는가?’ 하는 밑뿌리까지 파고들지 않습니다. 아니, 파고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분 스스로 아직 ‘나는 밑뿌리가 무엇인지 다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밑뿌리를 찾는 가운데, 모자라나마 풀이법 또한 함께 찾고 있다’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아주 뾰족하고 시원스런 이야기를 바라는 분들한테는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라는 책은 지루하거나 아쉽게 느껴지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에, 또한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평화를 사랑하는 옳은 길’은 무엇인지 누구보다 글쓴이 스스로 찾아나서고 있기 때문에 따뜻한 살내음이 배어 있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거든요. 글쓴이 스스로 아직 어설피 알고 있는 대목이 엿보이고, 잘못 아는 대목 또한 군데군데 보입니다만, ‘옳은 길’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글쓴이가 몸담은 대학교에서 ‘가해자이며 전범인 일본은 어느 누구보다 용서와 사랑을 많이 받은 겨레’임을 몸소 깨닫는 가운데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먹다짐을 일으킨 주제에 입만 살았네?’ 하고 빈정거릴 분이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가해자 또한 제 삶이 망가져 있음’을, 일본사람 스스로 ‘가해자였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제대로 못 느끼는 대목에서 제대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한국사람 스스로 ‘주먹질을 받았음에도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멀리할 줄 알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책을 써내도록 바라고 또 바라야 하겠습니다만, ‘주먹다짐을 일으킨 주제라 할지라도 평화와 사랑으로 돌아서며 고개숙여 뉘우치고 바르게 제 삶을 되찾는 길’이 담긴 이 책 하나를 곱다시 껴안는 일도 겉훑기로나마 보람과 열매를 얻는 일이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 이를 보면 이 분쟁(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은 사실 신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이익 대문에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싸움이라면 인간이 평화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  (96쪽)


 저는 이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읽으며 책 귀퉁이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가 아니라 ‘미국, 그러니까 흰둥이들은 왜 허구헌 날 싸움질이여?’ 하고 책이름을 고쳐 달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흰둥이든 미국이든 이명박이든 또 아무개이든 한낱 불쌍한 떨거지가 아닐까 싶구나.” (4342.4.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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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예수 - 예수는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비출 것이다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지음, 원충연 옮김 / 달팽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5 ― 종교란 ‘가르침ㆍ봉사ㆍ선교’ 아닌 ‘사랑’
 :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볼룸하르트, 《숨어 있는 예수》


- 책이름 : 숨어 있는 예수
- 글 :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 옮긴이 : 원충연
- 펴낸곳 : 달팽이 (2008.8.5.)
- 책값 : 8500원



 (1) 우리가 읽을 책이라면


 저한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셔요?” 하고 묻는 분들한테 언제나 “읽어서 좋고, 받아들여 살 만한 책을 즐겨 읽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문학이냐 비소설이냐 인문학이냐 자연과학이냐 종교냐 예술이냐 하는 갈래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만화책이나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더 좋아할 수 있고, 글만 가득한 책을 더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책이 제 마음을 톡톡 건드릴 수 있다면 모두 반갑습니다. 다만, 건드리다가 그치면 서운합니다. 책이 더 아름답지 못해서 서운하다기보다, 이 책을 쓴 사람 마음밭이 너무 얕아서 서운합니다. 글쓴이가 좀더 깊고 너르게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느끼니 불쌍한 마음이 들어 서운합니다. 얕은 책을 애써 펴낸 책마을 일꾼 땀방울이 서운합니다. 더 가다듬지 못해서 안타까운 한편, 더 갈고닦으며 글쓴이를 일으켜세우지 못해서 슬픕니다.

 이리하여, 저는 따로 갈래를 나누지 않고 책을 장만하여 읽습니다. 종교책을 읽는다 할 때에도, 개신교와 천주교와 천도교와 불교와 이슬람교 책을 굳이 가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저 스스로 참다운 길을 느끼도록 해 주는 책이라면 기꺼이 집어듭니다. 어떠한 종교를 다룬달지라도, 스스로 우상을 모시지 않는 이야기로 펼쳐진다면 고마이 받아듭니다. 어떠한 종교 테두리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자기들 종교 테두리 사람한테만 달고 맛난 마음밥을 선사할 그릇이 아닌 책일 때에 비로소 사들게 됩니다.


..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자유로우면서도 하나님이 자네에게 보내는 사람들과는 일치를 이루게. 사람들이 자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리스도의 말씀이 세상에서 이뤄지게 될걸세 … 선교사는 종교 논쟁을 할 필요가 없어. 예수의 이름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면 그만이야 … 성령은 파당을 만들지 않고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일을 한다네 … 이런 입장 때문에 아마 자네는 윗사람과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하나님이 내려 살펴 줄 거야. 무슨 일이 생기든지 기다려야 하네 …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성령은 군림을 허용하지 않네. 사람들은 생명을 주는 섬김이 아니라 힘에 의지해서 살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세상에 죽음만을 가져다준다네 … 크게 소리칠 필요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돼 … 말의 하나님이 아니라 행동의 하나님이라는 걸 알게 될 거네 ..  (23∼24, 28, 33, 38쪽)


 두 번째 물음은 으래 “한 달에 몇 권쯤 읽으셔요?”나 “한 해에 몇 권쯤 읽으셔요?”입니다. 어떤 책을 즐겁게 읽느냐는 물음 못지않게 부질없는 물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작가 책을 좋아하느냐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물음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어느 일터에 몸담고 있다고 치면, 달삯으로 얼마를 받느냐 묻는 소리인데, 제가 달삯을 200만 원 받으면 그럭저럭이고, 210만 원 받으면 뛰어나고 220만 원 받으면 훌륭하겠습니까. 달삯 1000만 원은 되어야 뭔가 있어 보이고 달삯 900만 원은 좀 모자라고, 달삯 1100만 원은 아주 뛰어나 보이겠습니까.

 어쩌면, 아이들한테 “너 몇 살이니?” 하고 묻는 철없는 어른들 물음하고 똑같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이는 그저 그 아이인 대로 반갑고 귀엽고 좋을 뿐입니다. 그 아이가 네 살이든 여덟 살이든 그리 마음쓸 일이 아닙니다. 아홉 살인데 키가 몹시 크다든지 열세 살인데 키가 참 작다든지 하는 일 또한 마음쓸 대목이 아닙니다. 열다섯에 부쩍 클 수 있고, 아홉 살 키가 스무 살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겉으로 드러나는 매무새가 아닌 속으로 살찌우는 매무새를 들여다볼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속차림을 살피고 속차림을 북돋우며 속차림을 아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어제도 이 물음을 받고 시익 웃으면서 “한 달에 300권쯤?” 하고 대꾸했습니다. 예전처럼 책방 나들이를 자주 못하고 살기에(예전에는 날마다 두어 곳씩 다녔으나 이제는 한 주에 두어 번 겨우 다니니까요), 예전만큼 책을 장만하여 읽지는 못하지만, 책방 나들이에서 더듬는 책과 꼼꼼히 되짚는 책과, 거듭거듭 곱씹는 책을 헤아리면 이만한 숫자로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많다면 많은 숫자일 테지만, 적다면 적은 숫자이고, 넘치면 넘치는 숫자일 테지만 모자라면 모자라는 숫자입니다. 한 달에 삼백 권 읽는 사람과 서른 권 읽는 사람과 세 권 읽는 사람과 세 쪽 넘기는 사람하고는 그리 다를 바가 있지 않습니다. 그저 제 삶이 이러할 뿐입니다.


.. 일하는 계급,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이 되어 있네. 하늘의 이름으로 그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이름은 의미가 있어질 거야 …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세상 위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지 않나? 죽음을 이긴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싶어하고 있어. 그러니 특정 종교를 위한 선전에는 관심이 없지. 자네는 모든 사람을 위해, 그들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모두에게 비추는 복음을 당당하게 대표해야 하네. 예수는 낮은 사람들로부터, 낮은 사람들을 위해 왔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게나 … 자네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어야 해. 그래서 나중에는 후원자들 없이도 지낼 수 있어야 하고, 정부 관리들이나 성공한 사업가들한테 칭송을 받기보다는 낮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게나 ..  (25, 47∼48, 56쪽)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보리술을 사러 찾아가는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할매는 늘 성경을 펼쳐 놓고 있습니다. 돋보기를 쓰고 찬찬히 읽어내려 가십니다. 성경 통째로 읽기를 퍽 많이 하셔서 당신 다니는 교회에서 표창장을 받으셨다고 하고, 무거운 성경을 받쳐 놓고 읽는 틀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할매 삶이 어떠한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마음가짐과 말씨로 사람들과 마주하는지 깊이 알지 못합니다. 다만, 틈틈이 스쳐 지나가는 만남과 할매가 동네에서 이웃한테 보여주는 만남과 때때로 당신 아이들(막내가 저보다 일곱 살쯤 위이더군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말씀으로 돌아보건대, 할매 마음자리 깊이는 할매가 다니는 ㅊ교회 목사님하고 대면 웅숭깊구나 싶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어슐러 르 귄’이라는 분이 쓴 《어스시의 마법사》에 나오는 아렌과 게드와 같은 셈이구나 싶습니다. 아렌은 아주 젊은 제자요 게드는 나이 많이 든 훌륭한 임금 같은 스승입니다. 아렌은 게드를 모시면서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데, 이 여행길은 아렌이 게드한테서 배우는 여행길이라 볼 수 있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외려 게드가 아렌한테서 배우는 여행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할매가 다니는 ㅊ교회뿐 아니라 수많은 교회들에서는 목사님이 신도한테 가르침을 베푼다기보다, 신도들이 목사님한테 가르침을 베풀면서 더 깊고 너르게 예수님 사랑과 마음과 뜻을 받아들이고 깨닫도록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너비와 깊이를 ‘징검다리’에 선 이들한테 넉넉히 나누어 주면서, 징검다리에 선 이들이 다른 나그네를 만날 때마다 기꺼이 당신 자리를 내어주면서 즐겁고 걱정없이 냇물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셈이 아니냐 싶습니다.

 어버이는 딸아들이 튼튼하게 자라도록 피와 살을 내어주고, 교회 신도는 교회 목사가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도록 믿음과 돈과 품과 땀을 내어주는구나 싶습니다. 어머니 자연이 뭇사람과 뭇목숨한테 제 땅과 바람과 물과 햇볕을 베풀면서 오순도순 살라고 하듯, 구멍가게 할매는 당신 식구뿐 아니라 동네 이웃과 교회 목사님한테도 모두를 바치면서 ‘당신이라는 자리가 보이지 않게’ 하는구나 싶습니다.


.. 우리가 만약 증오에 맞서 화를 내지 않는다면 악은 선으로 인도될 거야 …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영혼만 돌봐 왔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의 물질적 삶을 어두운 좌절과 죄에 내주고 말았네 … 영적인 틀은 세워져야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의 자연의 삶에서 나와야 해 … 나는 중국사람들이 교회나 교리의 길이 아니라, 자유로운 하나님의 길로 인도되어지길 기도하네 … 사실, 사람들을 기독교 교회들의 늪에서 건져내는 일은 죄와 불신앙의 야만에서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 … 모든 곳에서 기독교의 겉치레가 완전히 없어져야 하네. 실제의 삶에서 실패한 종교는 어떤 모습을 하든 간에 사람들의 진정한 삶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야 … 자네도 권력과 영향력을 찾는 사람들한테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오직 단단한 바위 위에 짓게 ..  (35, 50∼51, 54, 57쪽)


 구멍가게 할매를 보면서, 또 저잣거리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성경을 숱하게 읽어내는 할배와 할매를 보면서, 이분들이 다른 책들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텐데 하고도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분들한테는 오로지 이 거룩한 책 하나로도 넉넉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분들한테는 거룩하다는 책조차 없어도 즐거웁겠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기 앞서 삶이 튼튼하고, 거룩한 책을 펼치기 앞서 당신 몸과 마음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오직 한 가지 책을 붙안으면서 당신 몸이며 마음이 슬지 않게끔 가다듬는 셈이라고도 느낍니다.

 톨스토이 님 말이 아니어도,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땅이 있어야 하며, 얼마나 커다란 돈이 있어야 하며, 얼마나 높은 이름이 있어야 하며, 얼마나 센 힘이 있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책이 있어야 하며, 얼마나 넓은 집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한테 넉넉한 삶자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받아안으면서 스스럼없이 나눌 품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바라볼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우리가 읽는 책에서 무엇을 얻어듣겠습니까.


 (2) 우리가 살 집이라면


 교회에 빠짐없이 나갈 뿐더러, 틈틈이 제법 큰돈을 내놓기도 하는 아주머님이 저보고 “교회 나가야지.” 하는 말씀을 스무 해 가까이 하셨습니다. 예전에 이태쯤 교회에 나간 적이 있으나 대입시험을 앞두고 더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삶에 치이기도 했으며 책으로 받아먹는 말씀이 고마워 굳이 예배당에 나가야만 믿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즈음까지도 아주머님은 “교회 나가야지.”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저는 천주교회에서 세례와 견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따로 꺼내지 않습니다. 세례와 견진을 받았대도 바지런히 다니는 사람이 못 되기도 하고, 저 스스로 천주교회 길을 따른다고는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교회를 나가” 보라고 하시지만, 아주머님이 다니는 교회는 당신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는 교회가 아주 많이 있는데, 교회 다니는 분들을 보면 집이나 일터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지는 않아 보입니다. 모두들 참으로 먼 데까지 나들이를 다닙니다. 거의 모두 자가용을 끌면서 멀리멀리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동네마다 새 교회는 끝없이 우뚝우뚝 섭니다. 새 교회마다 때 되면 절집 크기 불리는 공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곤 합니다.


..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구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에 목 졸리게 되어 있어 …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작아지고, 예수가 커지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만 하네 … 낡은 세계를 빠져나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게 우리의 목표인 것은 분명하네 …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지 않는 기독교 사람들의 오만함을 경계하게. 그런 기독교 사람들은 유교 사람들에게 절을 해야 돼. 왜냐하면 그들은 존경을 진정한 예배의 시작이라고 봤거든. 우리 모두는 이런 존경하는 마음을 적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가져야 해 ..  (52, 60, 73, 94쪽)


 천주교회가 참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대목 하나는, 절집에 매이지 않는 믿음에 있습니다. 천주교회는 제 삶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멀리멀리 ‘아는 얼굴 있는’ 곳으로 다니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얼굴 있는 데로 나간다고 하여 탈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미사를 함께 받는 일이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개신교회에서 안타깝다고 느끼는 대목 하나는, 자꾸자꾸 큰집을 지어서 더 멀리에서도 자가용 끌고 찾아오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비손을 올릴 수 없을까요. 왜 우리는 으리으리한 절집에서만 비손을 올려야 하는 듯 여기고, 이런 흐름을 부추길까요. 절집을 크게 다시 짓는 데에 바치는 돈(헌금)이 아니라, 바로 내 팍팍한 삶을 일으키는 데에 바치는 돈이 되는 한편, 내 식구들과 동무들과 이웃들 팍팍한 삶을 돌보는 데에 바치는 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살림이 팍팍함에서 겨우 벗어났다 하면, 아니 내 살림이 팍팍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여도 다른 식구와 동무와 이웃한테 나눌 수 있습니다. 다른 식구와 동무와 이웃도 마찬가지 삶을 꾸리니까요. 서로서로 돈이 넘쳐나서 도와주는 삶이 아니라, 모자라는 가운데 도와주는 삶이거든요.

 우리가 따르거나 받들거나 모시거나 세워야 하는 절집이라면, 비바람을 막을 만한 집 하나면 넉넉하기도 하지만,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한데라 해도 넉넉합니다. 말씀과 넋은 절집으로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넋은 지붕을 가려 가면서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타워팰리스에만 찾아오거나 더샵에만 찾아오는 말씀과 넋이 아닙니다. 판자집 철거마을에도 찾아오고 서울역 떨꺼둥이한테도 찾아오는 말씀과 넋입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이라면, ‘나라가 만드는 가난’ 때문에 고달픈 사람들이 쉴 만한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차근차근 마련된 집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개신교회에서 수없이 절집을 지으려 한다면, 이 절집에 예배를 올릴 때에는 ‘거룩한 집’이 되고, 예배를 마친 여느 때에는 ‘가난한 집’이 되어 집없이 헤매는 사람이 깃들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보금자리로 가꿀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개신교회 새 절집을 지을 구실이 생기고, 이런 구실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곳은 절집이 아니라 부자집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 기독교가 적을 사랑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도리어 심판을 받고 있네 … 사업가들, 선교사들, 군인들마다 모두 하나님의 손이 아닌 자신들의 주머니 속에 사람들을 틀어넣으려고만 해 … 어느 누구도 우리가 만든 형식에 따라서 기독교인이 될 필요는 없어. 하나님이 우리의 뜻이 아니라 그의 뜻에 따라 세례를 줄 수 있도록 허용하길. 그래서 사람들이 진짜 자유를 찾고 해방이 될 수 있게 되기를 … 세례를 줄 사람을 고르지 말고 모든 사람들을 신뢰하게 … 자네는 세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 생각을 해야 하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대신, 지역 교회 조직들을 세우는 어리석은 일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건 당연히 사람에게는 영광이 되겠지만 하나님에게는 모욕이 될 뿐이야 … 예수를 따르려는 기독교 사람들은 사람들을 섬겨야지, 지배해서는 안 되네 ..  (66∼69, 90쪽)


 그렇지만, 절집이 부자집이 되어 가는 흐름을 우리 형편에서는 무어라 따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집만 부자집이 되지 않으니까요. 우리네 살림집도 부자집이 되어 버리고 있으니까요. 나라살림이 힘들다는 소리는 그치지 않으나, 서울시청 으리으리 다시 짓는 모습을 보고, 숱한 관공서가 번쩍번쩍 새로 올리는 모습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서울 강아랫마을에 있는 어느어느 우체국 건물은 서울 중앙우체국 건물보다 훨씬 크고 우람하고 빛이 납니다. 돈이 넘쳐나는 동에서 짓는 동사무소와 돈이 쌓이는 구에서 짓는 구청 건물은 어마어마하기까지 합니다. 공무원도 사람이라 공무원이 느긋하게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면, 그만큼 ‘봉사’를 잘할 수 있다고 여길 테지요. 그런데, 공무원이 일하도록 세금을 내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집은 모두 헐리거나 쫓겨나야 한다면, 가난한 사람이 겨우 얻어서 들어갈 만한 작은 골목집은 모두 헐리며 몇 억도 아닌 십 몇 억이 넘는 아파트로만 새로 짓는 재건축과 재개발만 판을 치도록 하는 행정을 짜는 공무원들이 나라안에 득시글거리게 된다면, 이런 부자집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북돋우게 될는지요. 참말 북돋운다고 할 만한지요.

 사람 사는 집이 살림집이 아니라 부자집이 되는 가운데, 관공서 행정기관 건물도 부자집이 되고, 개신교회 절집도 부자집이 되어 갑니다. 믿음을 얄딱구리하게 비틀면서 절집에 돈이 넘치거나 쌓이는 우리네 흐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를 보금자리 아닌 부자집으로 깎아내리거나 비틀고 있기에, 바로 우리 나라가 깎아내려지거나 비틀리고 맙니다.

 공무원이 누구이겠습니까. 목사님이 누구이겠습니까. 신도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식구이고 동무이고 이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처럼 살아가고 있는 판인데, 누가 순복음교회에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부자집에 자가용 몇 대씩 굴리며 떵떵거리고 있는 주제에, 어느 누가 순복음교회를 손가락질할 수 있습니까. 순복음교회뿐 아니라, 수많은 부자 교회는 다름아닌 우리 모습이요 우리 넋이요 우리 말씀입니다.


.. 기독교의 역사 전체는 종교적 예식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인지 보여준다네 … 우리는 신학이나 교회를 대표해서는 안 되네. 우리는 그저 사람들이 진리의 성령 가까이 갈 수 있게 돕기만 하면 돼 … 사람들이 교회 문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도 하나님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왜 상상조차 할 수 없을까? … 혹시 우리는 이교도처럼, 죽고 난 다음의 행복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땅을 버리고, 우리 자신과 이웃들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 모든 종교적인 도발은 피하는 게 좋아. 그리스도가 조용하게 일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자네가 시도하는 일 속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신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길 바라네 … 기억하게, 그들이 ‘기독교 사람들’이 될 필요는 없어. 그런 이름은 전혀 신경을 쓰지 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은 그 실마리를 유교에서 찾든 교부에서 찾든 아무 상관없이 모두 하늘나라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야 ..  (70, 76, 77, 79, 99쪽)


 대학교 졸업장을 따지는 우리가 순복음교회를 만듭니다. 아이들한테 똑같은 학교옷을 맞추게 하고 똑같은 머리길이로 맞추게 하며 똑같은 연속극과 연예인 놀음놀이에 온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우리들 스스로 순복음교회를 만듭니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펜데 굴리는 큰회사 사무직 일자리를 바라는 우리들이 순복음교회를 만듭니다. 쇠밥그릇 공무원시험에 붙어 걱정없이 연금 받고 놀고먹겠다는 우리들이 순복음교회를 만듭니다. 얼굴과 몸매를 따지는 우리들이, 돈벌이밖에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이, 옷차림과 유행에 얽매이는 우리들이, 갖은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이, 사장님입네 교수님입네 기자님입네 선생님입네 사모님입네 하는 거짓 이름값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 우리들이 순복음교회를 만듭니다.

 아니, ‘순복음교회’라는 이름으로 보여지게 되는 거짓 믿음을 만들고, 잘못된 믿음을 세우며, 뒤틀린 믿음을 섬깁니다.


 (3) 개신교회에 ‘칼’이 아닌 ‘사랑’을 드는 《숨어 있는 예수》


 이야기책 《숨어 있는 예수》를 쓴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라는 사람은 1842년에 태어나 1919년에 죽었습니다. 이 책은 꽤나 오래 묵어 있던 글모음입니다. 성경만큼 오래 묵은 글모음은 아니나, 성경에 담긴 말씀과 넋을 고이 새기면서 살아오던 한 사람이 자기와 같이 믿음길을 걷는 젊은이한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담은 조그마한 책입니다.

 얼핏설핏 이 작은 책을 읽는다면, ‘우리 사회 뒤틀린 개신교단에 칼을 들어 썩은 자리를 도려내는’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읽어 줄 수 있다면, 이 책은 어느 만큼 값을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숨어 있는 예수》는 칼을 드는 책이 아닙니다. 사랑을 드는 책입니다. 왼뺨을 내주고 오른뺨도 내주는 예수처럼, 한손에 사랑을 들고 다른 한손에도 사랑을 드는 책입니다.


..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네. 그들은 기독교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고 있는 거야 … 기독교 교회들은 영적인 세계와 사랑을 짓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풍습을 반대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있어 … 지금 자네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 자네가 할 일은 종교적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네의 벗들이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서 문제를 이겨내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야. 예수는 생명, 하나님의 진정한 생명을 주고 싶어해. 종교적 느낌과 의견은 중요하지가 않네. 세상은 생명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경건한 척하는 위선자가 필요하지는 않아 … 서로 존중하는 신앙이 평화를 가져다주게 될 걸세 ..  (100, 112, 116, 127, 128쪽)


 이 세상을 살리는 길은 가르침에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세상을 북돋우는 길은 봉사에 있지 않음을 들려줍니다. 우리 세상을 일구는 길은 선교에 있지 않음을 깨우쳐 줍니다. 오로지 사랑 하나에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부터 믿음길이 열림을 이야기합니다. 나 스스로 어떠한 사람인 줄 느껴야 내 삶을 사랑할 길을 찾고, 내 삶을 사랑할 길을 찾으며 내 삶을 고쳐 나가야, 비로소 내 삶이 새로워지면서 나와 얽히거나 나를 둘러싼 사람들한테 즐거움과 보람과 좋음을 함께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종교를 나누는 일이란 ‘내가 먼저 믿고 보니 참 좋아서 너한테도 믿게 하려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내가 이렇게 믿으며 내 삶을 이처럼 고칠 수 있었음을 털어놓는 일이며, 내 삶을 고치는 길에 접어들었기에 더 나은 삶으로 고쳐 보고자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마음문을 여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함께 돌아보고 함께 나아지자고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다져나가되 그들의 신뢰를 얻기 전까지는 절대 설교를 하지 말게 … 설교가 아니라 삶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야 하니까 말이야 … 자네가 다르게 살지 않고 사람들을 그들의 높이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이해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게 될 거네 …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서게 … 사람들은 목사나 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행동에 이를 수 있네 … 신학에 의존한 추상적인 믿음은 무기력해.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실제적인 표현이 되어야 하네 … 오늘날 중국의 선교사들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처럼 행동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어. 동시에 교회와 기독교 사회는 모든 것을 ‘성공’이라는 기준에 의해 판단하는 기업가처럼 행동하고 있지 …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 교인들만 존중하려고 들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친구로 받아들이기 전에 자기와 똑같이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 (111∼114, 118, 121쪽)


 이리하여 블룸하르트 님은, 중국으로 선교사 일을 하러 간 젊은이한테 틈틈이 편지를 남겼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길을 더듬고 당신이 겪은 삶을 돌이키면서, 당신이 젊은이한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편지들을 찬찬히 얻어읽는 동안 젊은이가 블룸하르트 님한테 말씀과 넋을 받는다기보다 블룸하르트 님이 젊은이한테 말씀과 넋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젊은 선교사가 중국에 들어가 갖은 애를 쓰기에 비로소 블룸하르트 님 당신 마음에 뭉클하고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생겨났구나 싶습니다. 이 움직이는 무엇인가는 블룸하르트 당신이 빚어낸 말씀이나 넋이 아닌, 젊은 선교사와 늙은 블룸하르트 둘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서 하늘나라 아닌 땅나라에서 둘을 지켜보던 말씀과 넋이 살며시 배어들어가 이 책 하나 꾸려지게 되었구나 싶습니다.


.. 기뻐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늘 한결같은 젊은이가 되게 … 자네가 목사나 선교사의 자리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네. 그런 자리는 사람에게서 온 거지 하나님에게서 온 게 아니거든. 자리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과 절대 똑같아질 수가 없어. 그러니 변절의 누룩을 경계하게. 중국사람들과 늘 같은 높이에서 머물러야 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  (118, 128쪽)


 한결같은 젊은이가 되기를 바라는 블룸하르트 님 말은, 곧바로 블룸하르트 당신이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 됩니다. 이리하여 블룸하르트 님은 당신이 높은 이름값을 당신 뜻하고 달리 얻게 되었을 때 스스럼없이 내놓으면서 조용히 물러났고, 사람한테서 온 이름이나 자리가 아닌 하늘에서 온 이름이나 자리를 찾으러, 아니 하늘에서는 이름도 자리도 오지 않음을 느끼면서 몇 마디 글로 당신 삶자락을 남겨 놓았다고 느낍니다. 마지막 눈을 감는 날까지 “변절의 누룩”이 생기지 않도록, 자기가 발디딘 이 지구에서 모든 사람들과 “늘 같은 높이”에서 머물려고, 그리고 사람 아닌 뭇목숨하고도 “늘 같은 높이”에서 얼싸안도록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맞추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서, 《숨어 있는 예수》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우리들한테 고마운 마음밥이 되어 준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 작은 책은 저와 옆지기와 아이한테, 더불어 제 둘레 사람들과 다른 식구와 동무한테도 마음밥이 되어 주겠구나 싶습니다. 날마다 먹는 사랑 깃든 마음밥으로, 언제나 즐기는 믿음 넉넉한 마음밥으로. (4342.3.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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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 임영인 신부의 노숙인 이야기
임영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3 ― 노숙자, 노숙인, 떨꺼둥이, 우리 이웃
 : 임영인,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책이름 :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글 : 임영인
-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2009.2.16.)
- 책값 : 1만 원


 (1) 이 땅에 새로 찾아온 봄볕을 느끼면서


 금토일 사흘 동안은 고향인 인천에 마련한 동네도서관을 열어 놓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금요일 아침 일찍 일산에서 길을 나섭니다. 옆지기가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여 지난주 월요일에 아기와 함께 일산에 온 다음, 옆지기는 내내 일산에 있고, 저는 혼자서 인천과 일산을 오갑니다.

 얼핏 보기에 전철로 움직일 수 있어 괜찮은 듯 여길 수 있지만, 국철 맨 왼쪽에서 3호선 맨 위로 오가는 길은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지치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이야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이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 오가야 하면 퍽 괴롭습니다. 그나마 날마다 오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할 텐데, 이렇게 왕복 여섯 시간 거리를 오가면서, 지난 1994년 한 해 동안 인천 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갔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무렵(요즈음은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인천 서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간 사람이 드물게 있었고, 네 해에 걸쳐 전철로만 다니고 하숙이나 자취를 안 한 사람 또한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냥 전철만 타면 된다고 여기는 잘 모르는 이들은, 왜 우리가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에서 나와도 학교에 아홉 시가 다 되어야 닿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런 통학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그리고 저녁에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전철역으로 달음박질을 치는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녁 여덟 시 사십이 분 전철을 이문역(이제는 외대앞역)에서 타면 집에 열두 시에 닿고, 저녁 아홉 시 사십팔 분 전철을 타면 집에는 한 시가 넘어서야 닿는데, 이튿날 다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까마득했습니다.


.. 일반인이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면 공안원들이 그를 짐수레에 실어 나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숙인이라고 짐짝 취급을 한 것이다 ..  (190쪽)


 오늘도 머나먼 길을 빙빙 돌아 인천으로 옵니다. 한국에서 모든 길은 서울로만 이어질 뿐, 지역과 지역이 이어지는 길은 뚫리지 않을 뿐더러 뚫으려 하지 않으니, 애타는 사람만 애타고 애닳는 사람만 애닳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된 길을 오가게 되면서 고단한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면 ‘책읽을 겨를’을 좀더 낼 수 있곤 합니다. 그래 보아야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하면 곯아떨어져 어설피 졸면서 다니게 되지만, 뒷목과 이마와 눈자위를 주무르면서 책장을 펼쳐 끝끝내 한두 권씩 읽어내곤 합니다. 어쩌면, 집과 가까운 데에서 학교를 다녔다든지, 옆지기 식구네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먼 길을 돌면서 책을 읽는 겨를을 못 내었을는지 모릅니다(그래도 그때에는 그 나름대로 다른 겨를을 내었을 테지만). 그리고, 새벽밥 먹고 서울로 가는 첫 전철을 거의 날마다 타면서 새벽바람으로 서울로 일하러 가는 아주머니들(거의 모두 서울 큰 건물 청소일을 하시던 분들) 삶자락 한 귀퉁이를 아주 살짝이나마 엿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단한 길을 늘 오가는 사람이 퍽 많음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지옥철’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철 한 칸에 사백 사람 넘게 꾸역꾸역 태워 숨도 못 쉬게 되는지를 몸으로 느꼈으며, 만화책에서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창문에 얼굴이 찡기는 일’이 만화가 아닌 진짜 날마다 늘 있는 일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제 몸은 군면제 대상자였음에도 줄을 잘못 서서 군대에 갔고, 그 군대도 강원도 산골짜기 민통선 안쪽 가장 깊숙한 데로 끌려가면서 군대란 어떤 곳인가를 몸소 깨닫게 되었듯, 고달픈 전철길을 여러 갈래로 타야 하는 몸이 되면서, 이 고달픈 길에 몸을 싣는 수많은 이웃을 알게 되는 셈이라 할까요. 책으로만이 아닌, 지식으로만이 아닌, 들리는 이야기로만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으로만이 아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이 아닌, 남들 얘기라 한귀로 흘리게 되는 모습이 아닌.


.. 10년 동안 계속된 거리 급식은 역설적으로 노숙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이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노숙인이 받는 느낌은 ‘예배와 밥의 거래’이다. 예배를 위해 역 광장이나 지하도 바닥에 앉아 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그 눈총에 짓눌려 벽을 향해 쪼그리고 앉거나 선 채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 시간 이상이지만, 식시시간은 불과 3∼4분 … 거리에서 밥을 나눠 주는 모 교회는 교회 건물도 짓고, 병원도 짓고, 수련관도 지었지만, 여전히 거리 급식을 ‘강행’한다 ..  (173∼174쪽)


 동인천역에 내려 인현동 1번지 안쪽 골목길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인천에 살아남은 어느 골목길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이곳 인현동 1번지 골목도 참으로 좁고 조용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가운데, 국철을 바로 옆으로 끼고 있습니다. 국철이 놓이기 앞서부터 있던 동네라, 이곳 인현동 1번지는 국철길에 따라 둘로 쪼개져 있습니다.

 인천 바깥사람이 인천에 오면 늘 누구나 느낀다고 하듯, ‘전철과 고속도로 때문에 남과 북으로 나뉜’ 삶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속도로나 기찻길 때문에 동네가 둘로 갈리고 이웃이 멀리 떨어지는 일은 시골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서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잘사는 동네와 덜 잘사는 동네로 나뉜다지만, 인천은 전철길과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못사는 동네와 또 못사는 동네가 갈려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어느 한 번 ‘고속도로 소음피해’ 보상을 받은 적이 없고, ‘전철 소음피해’ 배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애써 일군 땅뙈기를 빼앗기며 조금 보상을 받은 적은 있으나, 소음과 진동으로 수십 해에 걸쳐 받은 피해를 갚음받아야 함을 어느 누구도 헤아리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전철길이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데에도 인현동 1번지 골목이 참 조용합니다. 옐로우하우스와 산업물류 기차길이 집 코앞에 붙어 있는 신흥동3가와 숭의1동하고 비슷합니다. 참 뜻밖이라고 느끼면서, 이렇게 이곳에서밖에 살 수 없던 골목사람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소음피해를 덜 받도록 집을 짜고 골목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스칩니다. 시끄럽고 고달파도, 다른 어디로 옮길 수 없는 형편이니, 이곳에서 뿌리내리면서 살아갈 마음으로 더 땀흘리고 애써서 동네를 가꾸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동정과 연민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권’. 내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인권이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서 깔깔한 입안 탓에 채 못 다한 말이었다. 노숙인 문제를 인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가 인권 문제인 것은, 노숙인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다는 것을 넘어, 그들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권의 묹는 개인의 느낌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모두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이 방치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도록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55쪽)


 도서관에 앉아 밀린 일을 하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다가, 봄날 햇볕이 더없이 좋다고 느끼면서, 이 햇볕을 그대로 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문을 걸어잠그고 쪽지를 문에 붙입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걸쳐 밖으로 나옵니다. 따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옆지기가 손전화 쪽지를 보내옵니다. 내 얼굴이 지치고 화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지치기는 지쳤겠지만 화가 날 일이 없는데 왜 그리 느꼈을까 생각하다가, 사람이 너무 지쳐서 얼굴에 아무런 빛이 들지 않으면 뚱하거나 꿍해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화 안 나고 짜증 안 났어도 그처럼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느끼면 아기는 어떻게 느끼려나? 아기도 지 아빠가 힘들어하는 줄 느끼면서, 아빠를 좀 쉬게 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몰아 도원동과 선화동을 거쳐 신흥동3가에 닿습니다. 오늘은 학익동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숭의1동으로 접어들어 기차길 옆 텃밭을 신나게 사진으로 담는데, 디지털사진기가 더 눌러지지 않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메모리카드가 0. 헉. 꽉 찼잖아. 아이고, 예비 카드를 안 들고 나왔네.

 이제 등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이었습니다만, 다시 돌아가야 할 판.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돌아가야지. 저런. 젠장. 바보. 밥통.


.. 그가 나가고 난 뒤 실무자들은 나를 구박했다. “신부님이 그렇게 원칙 없이 대하니까 우리가 피곤해요. 신부님도 피곤하고요. 우리가 상대를 하려고 해도 그냥 신부님만 만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 믿음이 가요?” 그래, 맞는 말이다. 피곤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노숙인에게 속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속자고 시작한 일 아닌가. 그리고 어차피 인생이란 속고 속이는 것 아닌가. 노숙인들만 거짓말을 하고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안 하는가. 그깟 만 원짜리 한 장에 뭐 그리 화낼 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왜 작은 거짓에는 분노하고, 큰 거짓에는 관대한 것일까 ..  (102쪽)


 자전거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길, 숭의1동과 숭의2동 갈림길 철길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떨꺼둥이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를 봅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띄엄띄엄 둘러앉아 낮부터 소주병을 까고 있으십니다. ‘여론은 겨울에만 노숙자 편’이라 했고, ‘자연은 봄부터 노숙자 편’이라 했습니다. 바야흐로 따뜻한 봄철을 맞이해,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고 따순 햇살을 받으면서 철길에 앉아서 까는 소주잔이라(이 철길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으나, 철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그야말로 봄나들이 즐기시는 셈이로군요. 꽃지짐 없고 꽃노래 없지만, 꽃다운 날씨를 머금으면서 하루 한때를 마음껏 즐기는.


.. 노숙인이 쉼터를 꺼리는 사정도 있다. 쉼터는 대부분 옹색한 구조라서 군 내무반처럼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해야 하니 개인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규칙은 엄격하고 노숙인의 입장에서 볼편할 수밖에 없다 … 나이 40∼50인 사람들이 군인도 아닌데, 군 내무반보다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1∼2년 이상을 청교도처럼 생활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활을 무난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노슥인들도 군 내무반 수준이면 살 만하다고 말한다. 물론 ‘노숙인 주제에 그런 시설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23∼24쪽)


 다시 옐로우하우스 앞을 지납니다. 한낮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골목을 살짝 기웃거립니다. 어릴 적 ‘옐로우하우스’라는 이름은 익히 듣고 말했어도 무엇을 하는 줄 모르던 때에는 이 골목 안쪽에 있는 오락실에 가느라(그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오락실이 여기에 있었기에) 늘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여느 날 낮부터 오락실에 죽치고 있다가 해 저물 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며 ‘늦게까지 오락실에 있다가 가느라 또 혼날 텐데’ 하고 걱정하던 우리 같은 꼬맹이들을 바라보던 옐로우하우스 아가씨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이 골목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은 아직도 이 골목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다른 데로 옮겨갔을까요? 다른 데에서 다른 일을 할까요? 이 일을 접고 할 만한 다른 일이 있었을는지, 다른 일을 하도록 포주가 놔주었을는지, 그분들 다른 식구들은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 몽실몽실 궁금해집니다.

 자전거는 달려서 신광초등학교 앞을 지납니다. 초등학교 앞임에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건널목 푸른불을 아랑곳않으며 내달리는 수출입 물동량 실은 큰 짐차를 바라보면서 뒷덜미가 쭈뼛쭈뼛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인데, 저 큰 짐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네 아이가 이 학교에 다녀도 저렇게 함부로 내달릴 수 있을까? 자기네 아이가 안 다닌다 하여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스물여덟 해 앞서 이 길을 날마다 걸어다니던 꼬맹이 얼굴을 떠올릴 문방구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가 싶어 천천히 지나가지만, 떠오르는 얼굴도 없고 저를 알아보는 얼굴도 없습니다.

 신흥시장 옆길로 빠집니다. 유동세거리 앞으로 나옵니다. 길을 건너고 전철길 밑으로 낸 개구멍으로 지나갑니다. 이제 배다리 헌책방골목이 나오고 집에 다 왔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이고 집으로 올라갑니다. 오늘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어느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습니다. 이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고 무엇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살짝 궁금하지만, 이 궁금함은 접어둡니다. 어쩌다 한 번, 아니 여태껏 돌아보지 않다가 한 번 찾아와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여쭙는 방송국 사람들한테 속깊거나 너른 생각줄기를 바라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이 아니랴 싶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 돌아볼 줄 알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아니었던 사람한테 참과 거짓을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 보았댔자, 고이 받아들일 가슴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도 없지는 않을 테지만, 왠지 서글프고 씁쓸합니다. 자전거를 메고 집으로 오니 고양이가 창문 턱에서 야옹거리며 반깁니다.
 





 (2) 떨꺼둥이와 어깨동무하는 삶,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성공회 신부 임영인 님이 서울역 둘레에서 떨꺼둥이(노숙자) 삶을 어깨동무하면서 보내 온 이야기를 담은 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떨꺼둥이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떨꺼둥이’란 옹근 토박이말로, “기대거나 지내던 곳에서 가진 것 없이 쫓겨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는 이 낱말을 몰랐습니다만, 노숙자 인권을 헤아리는 일을 하는 분들이 내는 소식지 가운데 하나가 이 낱말로 되어 있어서, 이 소식지를 받아본 뒤로는 ‘노숙자’라는 말을 안 쓰고 ‘떨꺼둥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책에서는 ‘노숙자’라 안 하고 ‘노숙인’이라 쓰는데, 이 낱말은 그리 알맞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고친들, 또 ‘장애우’로 고친들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노숙인’ 아닌 ‘노숙우’라 한들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든, 가리키는 우리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 스스로 ‘장애자-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떳떳이 말하면서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 일반적인 노숙인은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평범해서 노숙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5∼10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숙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노숙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들은 여인숙, 쪽방, 고시원, 사우나, 만화가게, PC방, 기도원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노숙인은 거리가 역사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의식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들이 노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  (13쪽)


 성공회 임영인 신부님은 ‘법에 없’을 뿐더러 ‘법이 지키지 않’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다시서기센터’를 열고, 서울역 앞에 ‘다시서기진료소’도 열었습니다. 혼자힘이 아닌 여러 힘이 모인 일이며, 기꺼이 애쓰는 많은 이들 땀방울이 있기에 서울역 한켠에 컨테이너 건물로 진료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법이 내친 사람이 떨꺼둥이이고, 법이 껴안지 않는 사람이 떨꺼둥이입니다. 그래서 떨꺼둥이와 함께하는 일은 법을 넘어서는 일이 될밖에 없습니다. 무료진료소도, 떨꺼둥이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돕는 손길을 나누는 일도, 어느 개인이나 모임이나 종교에서 할 일이 아닌 나라에서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는 이런 데에 마음을 안 쏟습니다. 눈길을 안 돌립니다. 오로지 하나,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 수 있게 하는 경제성장 숫자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눈길은 오직 여기에만 가 닿습니다.


.. 노숙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들에게도 삶의 윤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고 꽃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에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  (52쪽)


 못사는 사람, 없는 사람, 빼앗긴 사람, 잃은 사람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이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름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이름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집 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차 굴리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대학 나온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집 없고 차 없고 대학 안 나오고 영어 못해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도 한국땅에서 함께 땀흘리고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데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사는 고운 벗이요 이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네 보건복지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다면, 떨꺼둥이뿐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도, 장애 있는 사람들도, 어린 아이들도, 밑바닥과 벼랑과 구석자리에 내몰린 사람들도, 이주노동자들도 고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고르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한국이라면, 처음부터 떨꺼둥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구나 고르게 살 수 없도록 짜여져 있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 내 한 몸 밥그릇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밑바닥에 내몰리는 사람이 늘고, 그예 떨꺼둥이가 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나라 정책도 큰 잘못이지만 우리 생각과 삶 또한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 평일에도 (동냥을 하러) 하루 평균 20∼30곳 정도 교회를 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래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요.” 일 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녀석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 보다. 그 당혹스러움에 구걸이 무슨 직업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물을 수는 없다. 적어도 그런 질문은 녀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능청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우리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잖아요.” 녀석은 교회가 문을 닫는 월요일에 쉰다고 했다. 자식이 비록 교회 꼬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49쪽)


 이야기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는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엽니다. 우리한테 이야기를 겁니다.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떨꺼둥이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즈막하고 털털한 목소리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이야기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손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 숱한 떨꺼둥이 마음을 헤아리는 신부님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우리들한테,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꾸준한 말걸기로 일러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요, 다 같은 이웃이요, 다 같은 동무요, 다 같은 아름다운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4342.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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