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1
후지무라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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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7

 


남다른 빛이 흘러
―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1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송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6.15.

 


  남다른 빛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똑같은 빛이 흘러도 사랑이 될 텐데,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자리로 스며드는 남다른 빛 한 줄기 있어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거나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랑이든 따사롭습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사랑은 포근합니다. 남쪽이건 북쪽이건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사랑은 다를 일이 없습니다. 군인이 정치꾼 명령을 받고 서로 치고받으며 죽이는 북새통에서도 사랑은 언제나 똑같아요.


  온누리에 골고루 드리우는 햇볕처럼 모든 사람한테 따사롭게 비추는 사랑입니다. 모든 풀한테 똑같이 찾아드는 햇볕처럼 모든 사람한테 아름답게 스며드는 사랑이에요.


- ‘그래도 솔로 경력은 물론 처녀 경력도 33년이라는 걸 알면, 다들 기겁하겠지. 33년이나 되다니.’ (8년)
- “아, 안녕.” “어젯밤부터 계속 헤어지잔 얘기로 다투느라 힘들어 죽겠어요.” “그런 일로 죽으면 쓰나.” “풋. 아오이시 씨는 참 특이한 것 같아요.” (16∼17쪽)
- ‘남자의 마음을 공부하고 계속 관찰하면서 난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사귈 거라면 성실한 사람을 만나야 해. 마음이 착하고 거짓말 안 하고, 여자를 소중히 여기고, 도박도 안 하고, 씀씀이도 헤프지 않고, 대범하고 …….” (18쪽)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니, 오늘날과 같은 제도권 학교 울타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을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사랑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입시지옥인 학교에서 어떻게 사랑을 가르치나요. 아니, 사랑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할 교사가 있을까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한테 ‘얘야, 우리 교과서는 좀 덮고 사랑을 생각하자.’ 하고 이야기할 어버이가 있을까요. ‘얘야, 너 대학교는 안 가도 되니까, 참다운 사랑부터 제대로 알자.’ 하고 아이 손을 붙잡을 어버이가 있을까요.


  대학교는 안 가도 됩니다. 대학교에 안 간대서 죽는 사람 없습니다. 대학교에 안 가더라도 굶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안 들어갔기에 일자리 못 얻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모르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학력이 높고 재산이 많으며 이름값이 높다 한들 삶이 재미나지 않아요. 사랑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둘레 이웃이나 아이한테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마음밭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지 못해요.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사랑으로 짓습니다.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은 사랑으로 깁고 손질하며 빨래합니다. 우리가 잠자고 쉬는 모든 집은 사랑으로 마련하며 돌보고 가꿉니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사랑이 있어야 아이를 낳지요. 사랑이 있을 때에 어머니가 뱃속에 아기를 열 달 동안 고이 품어요. 사랑이 있기에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사랑이 즐겁기에 아이와 하루 내내 살을 부비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요.


- ‘아오이시 하나에, 33살 생일에 처녀딱지를 떼어버렸다. 아마도. 말도 안 돼. 띠동갑인 연하남이랑, 이런 식으로, 게다가 거의 기억도 없는 상황. 나 진짜 바보 아냐?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첫 경험. 그 경험을 했는지 어땠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끝내다니.’ (46∼47쪽)
- “안경 벗고 먹는 게 낫지 않아요?” “응.” “전 안경 안 쓴 아오이시 씨가 더 좋아요.” (74쪽)
- ‘기분이 이상해. 지금까지 최대한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살아왔는데, 타노쿠라가 다정하게 대해 주니까 응석을 부리고 싶어진다. 역시 남자친구는 특별한 존재구나.’ (101쪽)

 

 


  사랑이 없는 채 찍는 영화가 재미있을까요? 사랑이 없는 채 만드는 연속극이 아름다울까요? 사랑이 없기에 상업영화가 됩니다. 사랑이 없으니 표절을 하거나 도용을 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수를 매기지 않아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몽둥이나 회초리를 들지 않아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사랑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른은 아이들한테 사랑으로 가르칠 뿐, 손찌검이나 몽둥이질이나 체벌 따위를 하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어른이 정치 얼거리를 아무렇게나 세운 뒤에 입시지옥을 세웁니다. 사랑을 모르는 어른이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면서 제도권교육 울타리에서 ‘학습시장 돈벌이’를 합니다. 사랑하고 등진 어른이 아이들을 ‘인적 자원’이라 여깁니다.


  어느 아이든 부속품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아요. 어느 아이든 공무원 부속품이나 공장 부속품이나 회사 부속품이 아니에요. 어느 아이든 사랑을 받아서 태어난 뒤,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 숨결이에요.


  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사랑으로 쓴 책이 아니라면, 굳이 책을 읽을 까닭 없어요. 책은 몰라도 됩니다. 사랑을 담은 책이 아니라면, 애써 책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온통 시험지식만 가득한 교과서를 왜 아이 손에 쥐어 주나요? 사랑을 들려주고 속삭이며 꽃피우는 이야기 그득한 아름다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야지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웃음꽃 지으면서 아름다운 책을 읽어야지요.


- ‘처음으로 남자한테 생일 축하를 받았다. 호텔에 처음 가서 처음으로 남자 옆에서 눈을 떴다. 오늘 하루 난 수많은 첫 경험을 했다. 앞으로 난 이 일을 몇 번이고 떠올리겠지? 몇 번이고.’ (84∼85쪽)
- ‘몇 번이고 그날 밤 일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이번 일도 그럴지 몰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면, 이게 진짜로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면, 무조건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 (86∼87쪽)
- “날 위해서 돈을 안 썼으면 해서.”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자기가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든, 당신을 위해 쓰든, 그건 그 사람 마음이잖아? 자기가 연상이니까, 혹은 자기가 돈이 더 많다고 그러는 건, 결국 그를 무시하고 있다는 거야. 그 사람도 상처받았을걸.” (161∼162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서른세 살 아가씨는 사랑을 꿈꾸지만 서른세 살이 되기까지 사랑을 만나지 못한 채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아니, 사랑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다 할 만하고, 스스로 사랑으로 깊이 파고든 적 없다 해야 옳겠지요. 스스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내는 이래야 해’라든지 ‘이쯤 되는 자격은 있어야지’와 같은 껍데기를 스스로 세우는 바람에 사랑하고는 만나지 못했어요.


  누구라도 그래요. 사랑은 얼굴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목소리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은행계좌나 자가용으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함께할 수 있어요.


- ‘연애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는 나 혼자 그 시간을 다 썼는데. 하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아.’ (114쪽)
- ‘다정하기도 하지. 하지만 난 타노쿠라랑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140쪽)


  남다른 빛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남다른 빛이란, 남보다 더 많은 어떤 물질이 아닙니다. 남다른 빛이란, 나를 나답게 아끼는 빛입니다. 나를 나답게 바라보면서 살가이 어루만질 수 있는 손길입니다. 나를 나답게 마주하면서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삶을 바라는 꿈입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사랑이 싹틀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 누구나 착한 사랑을 속삭일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 사람뿐 아니라, 풀과 꽃과 나무도 사랑스레 뿌리를 내리고 사랑스레 활짝 잎사귀 벌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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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빨래하는 기쁨

 


  손가락이 트는 바람에 며칠 빨래를 못 했다. 오늘 며칠만에 손빨래를 하면서 복복 비비며 아주 즐겁다. 다 마친 빨래를 꾹꾹 짠 다음 마당에 넌다. 바람이 불지 않아 겨울이지만 물기가 잘 마른다. 해가 질 무렵 빨래를 거두어 집안에 옷걸이로 꿰어 넌다. 이제 하룻밤 자고 나면 보송보송 잘 마를 테지.


  손빨래를 할 수 있는 만큼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할 적에도 성가시지 않다. 튼 자리가 갈라져 핏물이 흐르고 따끔거릴 적에는 밴드를 대거나 씌우개로 씌워도 자꾸 성가시다고 느꼈지만, 잘 아물어 아이들 씻기고 빨래를 할 수 있으니 아주 홀가분하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문득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빨래를 잘 해요? 아버지랑 어머니는 왜 밥도 잘 하고 청소도 잘 하고 설거지도 잘 해요?” “그렇게 하고 싶다 생각하니까 잘 할 수 있지.” “나도 잘 하고 싶은데.” “벼리도 잘 하고 싶다 생각하면서 밥을 잘 먹고 무럭무럭 크면 앞으로 잘 할 수 있어.” “에잉.” 두 아이 저녁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마친다. 이튿날 먹을 쌀을 씻어서 불린다. 오늘 하루도 조용히 즐겁게 저문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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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57) 동명의 1 : 동명의 만철 하얼빈도서관

 

전술한 바와 같이 하얼빈에는 1923년 창립한 동명의 만철 하얼빈도서관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최석두 옮김-일본의 식민지 도서관》(한울,2009) 177쪽

 

  “전술(前述)한”은 “앞서 말한”이나 “미리 밝힌”으로 다듬고, “1923년 창립(創立)한”은 “1923년 세운”으로 다듬습니다. “이미 존재(存在)하고 있었지만”은 “이미 있었지만”으로 손봅니다.


  한자말 ‘동명(同名)’은 “같은 이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들추면 “이 작품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1923년 창립한 동명의 만철 하얼빈도서관
→ 1923년에 같은 이름으로 지은 하얼빈도서관
→ 1923년에 똑같은 이름으로 세운 하얼빈도서관
→ 1923년에 지은 이름이 같은 하얼빈도서관
→ 1923년에 세운 같은 이름을 쓰는 하얼빈도서관
 …

 

  “같은 이름”이라는 뜻이라면, 말 그대로 이처럼 쓰면 됩니다. 따로 한자말 ‘동명’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사전을 보면 “같은 말”이라는 뜻으로는 ‘同語’를 쓰고, 같은 뜻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때에는 ‘同志’라 합니다. 설마 싶어 국어사전을 더 뒤적이니 “같은 책”을 뜻한다는 ‘同書’가 실립니다.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同人’ 또한 나란히 실리는군요.

 

 이 작품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 이 작품은 같은 이름으로 나온 소설을 영화로 담아냈다
→ 이 작품은 같은 이름 소설을 영화로 담았다
→ 이 작품은 이름이 같은 소설을 영화로 찍었다
 …

 

  ‘같은이름’이나 ‘같은말’이나 ‘같은동무’나 ‘같은책’이나 ‘같은사람’ 같은 낱말을 쓰기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굳이 한 낱말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한 낱말이 없어도 됩니다. 붙여서 쓰거나 띄어서 쓰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함께 나눌 낱말을 써야 알맞고, 서로 즐겁게 주고받을 낱말을 써야 아름답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서 말삶을 가꿀 만한 말씨와 말투를 헤아리면 됩니다.

 

 같은이름 . 이름같다

 

  다만, 다시금 ‘동명’과 ‘同名’과 ‘같은이름’을 헤아려 본다면, 아직까지는 퍽 힘들지만 앞으로는 ‘같은이름’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실으면 어떠할까 싶어요. 우리 말살림을 북돋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빕니다. 말차례를 바꾸어 ‘이름같다’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어요. 따로 한국말사전에 새 낱말을 싣지 않더라도 ‘같은-’을 앞가지로 삼아서 이런 말 저런 말을 줄줄줄 쏟아내는 틀을 마련해도 돼요.


  ‘같은뜻’이라든지 ‘같은길’이라든지 ‘같은넋’이라든지 ‘같은돈’이라든지 ‘같은사랑’이라든지 ‘같은터’라든지, 때와 곳에 알맞게 여러 가지 낱말을 쓸 수 있어요. 흐름과 앞뒤를 살피며 온갖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4342.10.13.불/4346.12.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미리 밝힌 바와 같이 하얼빈에는 1923년에 같은 이름으로 세운 만철 하얼빈도서관이 이미 있었지만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15) 동명의 2 : 동명의 영화

 

그가 여행 중에 썼던 일기는 훗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고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110쪽

 

  “여행 중(中)에”는 “여행하는 동안에”나 “여행하면서”나 “여행길에”로 손보고, ‘훗(後)날’은 ‘뒷날’이나 ‘나중에’로 손봅니다. ‘출판(出版)되고’는 ‘나오고’로 손질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 앞에서 나오는 말투와 이어 “영화로도 나온다”나 “영화로도 만든다”로 손질해 줍니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 같은 이름으로 영화도 만든다
→ 같은 이름으로 영화도 나온다
 …

 

  문득 궁금해서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니, 한자말 ‘동명’이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리키는 ‘同名’을 비롯해서, 역사 낱말인 ‘동명(東明)’이 있고, 어떤 사람 호라고 하는 ‘동명(東溟)’이 있고, 동해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말 ‘동명(東溟)’과 ‘동명(洞名)’이 있어요. 마지막 ‘洞名’은 “동네 이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 한자말 ‘동명’은 한 가지조차 없다고 느껴요. “동네 이름”은 이름 그대로 이처럼 쓰면 돼요. 어떤 사람 호를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 까닭이 없으며, 동해는 동해이지 ‘동명’이라고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말글을 담는 사전이라면 우리 말글을 담아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사전은 한자말사전이 아니고, 중국말사전도, 역사사전도, 인물사전도 아닙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북돋울 때에 비로소 한국말사전다울 수 있는 한편,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 말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북돋우는 밑틀이 될 테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가 여행하면서 썼던 일기는 나중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책으로 나오고 영화로도 만든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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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양달과 응달

 


  사진을 찍을 적에 빛이 늘 알맞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 바로 이런 빛이지!’ 할 적이 있으나, ‘이런이런, 이런 빛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나?’ 할 적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잦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빛이 알맞든 알맞지 않든, 사진으로 찍고 싶으면 스스로 사진기 노출을 잘 맞추어야 할 뿐입니다.


  지난날 필름사진기만 있던 때에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아주 잘 살피고 알지 않으면 사진이 모두 엉망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디지털사진기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썩 잘 모르거나 제대로 못 살피더라도, 사진기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제법 괜찮게 사진을 찍어 줍니다. 다만, 내가 찍고 싶은 자리에 있는 내가 찍고 싶은 모습이 양달과 응달로 또렷하게 갈린다면, 아무리 디지털사진기라 하더라도 갈팡질팡 망설여요. 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사진기가 오락가락합니다.


  누군가는 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양달과 응달 사이에 빛을 맞춥니다. 양달에 빛을 맞추면 응달이 아주 어둡습니다. 응달에 빛을 맞추면 양달이 아주 하얗습니다. 가운데 언저리에 빛을 맞추면 이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맞추어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모두 찍어야 합니다. 양달에도 맞추어 보고, 응달에도 맞추어 보며, 가운데쯤으로도 맞추어 봅니다. 디지털사진기로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 이렇게 석 장 찍고 나면, 내 마음을 사로잡는 빛을 깨달을 만해요.


  사진 한 쪽이 하얗게 날아가도 됩니다. 사진 한 쪽이 까맣게 어두워도 좋습니다.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를 맨 먼저 헤아리셔요.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참말 내가 바라는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살피셔요.


  나는 내 사진을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어 찍습니다.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면 그늘진 자리에서도 얼굴빛이 살그마니 살아나면서 하얀 데가 덜 하얗습니다. 이불놀이를 하는 우리 집 아이들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으며 생각합니다. 응달 자리를 더 찍으면 ‘사진멋’은 한결 살아날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나는 ‘사진멋’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사진에 넣고 싶어요. 그래서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느라 대문 너머 시골마을 모습이 좀 하얗게 날아가는 느낌이 되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 사진을 새삼스럽게 돌아본다면, ‘아하, 우리들이 어릴 적에 놀던 집과 마을이 이런 모양 이런 빛이었구나’ 하고 되새길 수 있어요. 이불을 말리느라 빨래줄에 널어 마당에 그늘이 넓게 드리우는 겨울날인데, 마당이 넓게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으면 응달빛이 퍽 멋스러운 사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아이들 웃음빛과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나란히 담고픈 마음에 대문 너머 모습이 살짝 하얗게 날아가더라도 이곳을 더 넓게 사진에 담겠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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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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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구니 달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1 베틀북 그림책 12
메리 린 레이 글, 바버리 쿠니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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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6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0.7.15.

 


  메리 린 레이 님이 글을 쓰고, 바버러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바구니 달》(베틀북,2000)을 읽으면, 책끝에 붙임말이 있습니다. 이 붙임말을 읽으면, 미국에서 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그림책 《바구니 달》에서는 미국 숲 문화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나라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수많은 풀 문화와 짚 문화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는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면, 한국에서는 짚을 베어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엮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바구니나 둥구미뿐 아니라, 섬이나 자리를 짤 만한 짚이 나오지 않습니다. 굵고 단단하며 길고 곧게 뻗은 예쁜 짚이 더는 나오지 않아요. 모두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하는 바람에 ‘키 작고 짚 가늘며 거무튀튀한’ 짚만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짚조차 가을걷이를 하면서 모조리 한 덩어리로 묶어 고기소 먹을 사료로 삼습니다.


.. 달이 완전히 둥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허드슨에 갖다 팔 바구니를 짭니다. 그러다 보름달이 뜨면 집을 나서지요. 우리 집엔 말도 없고 마차도 없어서 아버진 그 먼 길도 걸어 다니세요.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시는데, 둥근 달이 보름달이라야 캄캄한 밤길을 환하게 비춰 주거든요 ..  (6쪽)

 


  이 땅에서 바구니 짜고 짚신 삼으며 자리 엮는 사람이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사람을 몽땅 도시가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를 맞이한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를 윽박지르려고, 또 몇몇 재벌을 키워 검은돈을 거머쥐려고 갖가지 특혜를 베풀며 공장을 때려지었습니다. 때려지은 공장에서 부속품처럼 아주 낮은 돈만 받고 일할 노동자가 있어야 하니, 시골에서 젊은이를 끌어모읍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두멧자락까지 작은학교를 끝없이 짓습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모두 ‘도시 예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서 흙 파며 풀 먹는 삶은 ‘가난하고 나쁜 삶’인 듯 가르칩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일을 해야 효도가 되는 듯 가르칩니다. 이러는 한편, 시골을 떠난 젊은이 빈자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채우게끔 부채질을 하고, 비싼 농기계를 써서 젊은 일손 몫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 나라 독재정권은 도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쓰려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한편, 시골에 남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울궈내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다가 쓰도록 이끕니다. 농협에서는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씨앗을 농협에서 사다 쓰는 얼거리로 바꿉니다. 한편, ‘경지정리’를 내세워 시골마다 농기계를 안 쓰면 안 되는 틀로 바꾸지요.


  이렇게 되니, 적게 거두어 적게 먹고도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던 마을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나마, 시골마을 작은학교조차 나라에서는 돈을 안 들이고 지었어요. 시골사람한테 땅을 스스로 내놓게 해서 작은학교 터를 마련하고, 작은학교 건물조차 시골사람 스스로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아서 짓도록 시켰어요. 그리고, 시골마다 학교를 떡하니 지은 뒤에는 온갖 월사금과 납부금을 거둬들였고, 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시골에서는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사라집니다. 시골사람이 짚신 신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짚신을 신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요. 고무신을 신어도 놀리니, 짚신을 누가 신겠어요. 짚이나 억새나 대로 엮은 돗자리는 ‘새마을운동’하고 동떨어진다면서, 짚으로 짠 바구니와 둥구미 또한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하고 안 맞는다면서, 모두 불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던지도록 내몰았습니다. 나일론 돗자리를 쓰도록 시키고,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을 쓰도록 부채질했습니다.


.. 어른들이 바구니를 만드는 동안 어둠이 깃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말하고 가끔은 조 아저씨나 쿠엔 아저씨가 말하지요. 보통은 나무가 자기한테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나도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  (12쪽)

 


  숲에서 조용히 살며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던 이들은 바구니만 짜지 않았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이녁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거두었습니다. 이녁이 지낼 집 또한 숲에서 나무를 조금씩 얻어서 조그맣고 조촐하게 지었습니다.


  숲에서 바구니 짜던 이들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겠지요.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평화로운 삶터를 이루었겠지요. 흙을 만지고 나무를 아끼며 바구니를 짜는 이들 마음속에는 ‘전쟁’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없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기며, 흙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흙을 만지면서 짚을 짜거나 엮거나 삼은 시골사람은 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겼지요. 골짜기와 바다와 냇물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웠어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  (25쪽)


  전문 가수가 불러야 노래가 아닙니다.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가 지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노래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노래는 꿈과 함께 태어납니다. 노래는 마알간 눈빛으로 부릅니다. 노래는 따스한 손길로 부릅니다. 노래는 고운 마음을 나누려는 넉넉한 넋으로 부릅니다.

 


..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지.” 조 아저씨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창고 안으로 날아 들었어요. “바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조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바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누군지 알거든.” ..  (27쪽)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햇살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들풀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지켜봅니다. 바닷물이, 냇물이, 도랑물이, 실개울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구름이 우리를 지켜보고, 멧새가 우리를 지켜봐요. 작은 꽃이, 작은 벌레가, 작은 짐승이, 작은 개구리가, 작은 둠벙이, 모두 우리를 지켜봐요.


  가슴으로 함께 느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저마다 곱게 느껴요.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해요. 우리 마음밭에 뿌릴 씨앗을 저마다 즐겁게 헤아려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이나 전문영역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아 누릴 삶은 장래희망이나 진로계획이 아닌 사랑입니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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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9 09:55   좋아요 0 | URL
바버라 쿠니님의 <바구니 달>을 저도 참 좋게 읽었어요~
그림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옮겨주신 27쪽의 말을 마음에 넣어 두었지요~*^^*

숲노래 2013-12-29 10: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을 읽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리 살펴도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이번에 장만하고 보니 예전에 안 장만했더라구요 ^^;;;

참말 27쪽, 아저씨가 들려준 '바람 이야기'가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대로
우리들이 잊은 '우리 풀짚 문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