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판놀이 2 - 하지 말라면 더 재미있네

 


  책꽂이 짜려고 마련한 널판인데, 책꽂이 안 짜고 남기니, 아이들이 미끄럼놀이를 하면서 널판을 쓴다. 책꽂이를 짤 만큼 튼튼하고 단단하기에, 아이 둘이 올라타서 미끄럼놀이를 해도 부러지지 않는다. 휘청휘청 낭창낭창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고 보면, 이 널판은 널다리처럼 쓸 수도 있을 만하다.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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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31 06:28   좋아요 0 | URL
나무 미끄럼틀이 참 재밌을 듯 해요~
나무 곁에서 나무 미끄럼틀을 타고 작대기도 들고 노니
정말 나무가 재미있는 친구가 되네요~*^^*

숲노래 2013-12-31 09:40   좋아요 0 | URL
오늘이나 내일은 대나무를 아이들과 베어서
그것으로도 함께 놀라고 해야겠다고 느껴요.
흠~~
 


 겨울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3.12.3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가야 한다. 도서관에 살짝 들렀다 갈 생각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도 가고 우체국에도 가고 싶지만, 자전거수레 바퀴 한쪽 튜브가 다 닳은 듯하다. 그래서 튜브를 갈아야 하는데, 며칠 앞서 읍내에 다녀오며 자전거집에 들르면서 미처 새 튜브를 장만하지 못했다. 왜 깜빡 잊었을까. 새 튜브를 장만해서 갈 때까지는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할 수 없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함께 도서관에 가고 자전거도 타고 싶다 말하지만, 함께 못 가는 까닭을 들려준다. 몹시 서운해 한다. 서운해 하면서도 “아버지, 칸츄 사 주셔요.” 하면서 과자 한 가지 사 오라고 덧붙인다.


  두 아이 모두 마을 어귀까지 따라나온다. 큰아이는 무척 잘 달리지만, 키도 작고 다리도 아직 짧은 작은아이는 뒤에 한참 처진다. 큰아이더러, “벼리야, 동생 저 뒤에 있어. 동생 잘 챙겨 줘야지.” “응, 알았어. 잘 다녀오셔요!”


  혼자 자전거를 몰고 도서관으로 온다. 도서관에 옮겨 놓을 책은 바구니에 담았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는 않고 빨래터로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려는 듯하다. 어디에서든 잘 노는 아이들이 고맙다. 사랑스럽다. 이렇게 어릴 적에 씩씩하고 다부지게 놀아야, 나중에 커서 글책을 스스로 읽을 무렵에 훨씬 깊고 넓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느낀다. 놀지 못한 채 글책만 손에 쥐면 지식으로만 머리에 가두리라 느낀다. 어느 책이든 지식이 아닌 삶이기 마련이다. 아쉽다면, 요즈음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은 삶을 이야기하기보다 지식을 다룬다. 위인전과 평전조차 어떤 훌륭한 사람들 삶을 다루지 않고, 이들이 했던 일을 줄줄 늘어놓기에 바쁘다. 삶을 보여주지 않고서 위인전이나 평전이 될 수 있을까. 훈장이나 상장을 밝히는 일은 하나도 재미없다.


  인문책에서도 이런 느낌을 곧잘 받는다. 지식인들은 인문책 살리자는 바람을 일으키고, 인문책을 북돋우려는 지원정책을 여러모로 끌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지식인이 말하는 인문책은 거의 다 지식책이다. 삶책이 아니다. 여느 사람은 읽기 어려운 지식책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흙지기라든지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지내는 사람이 섣불리 다가서기 어려운 지식책이다. 지식책은 지식책이라 해야 할 텐데 왜 인문책이라는 껍데기를 씌울까. 게다가 수많은 인문책이든 지식책이든 모두 도시에서 살며 도시에서 일거리 붙잡는 틀에 머문다. 시골은 ‘여행하는’ 곳으로 여길 뿐인데, 그나마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는 이 나라 시골을 여행하지도 않는다. 하나같이 먼 외국으로 나갈 뿐이다. 사진작가도 먼 외국에서 사진을 찍을 뿐, 가까운 시골이나 골목동네 이웃들을 내 살붙이나 동무로 만나면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겨울이 무르익은 십이월 삼일일이다. 햇볕이 잘 드는 한낮에는 문을 모두 닫기만 해도 도서관이 포근하다. 난로도 없고 난방시설도 없지만, 책이 있다. 마음을 덥힐 수 있는 책이 있다. 이 책들을 가만가만 아로새기면서 따사로운 사랑을 보듬을 책벗이 있겠지. 까치떼 날갯짓을 바라보면서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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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31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정말 맞는 말씀이세요.^^
'이렇게 어릴적 씩씩하고 다부지게 놀아야, 나중에 커서 글책을 스스로 읽을 무렵에
훨씬 깊고 넓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느낀다.'
어느 책이든 참말 자기의 삶대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숲노래 2013-12-31 09:40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즐겁게 책빛 누리시고
12월 마지막날 삶빛도 곱게 즐기셔요~
 


  바다에 둘러싸인 일본이기 때문인지 바다를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퍽 많다. 이 가운데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1969년에 첫판이 나온 뒤 오늘까지도 무척 사랑받는 손꼽히는 그림책이다. 한국에서는 이 그림책을 2009년에 비로소 정식계약을 맺어 번역을 했다. 자그마치 마흔 해나 뒤진 셈이라 할 텐데, 뒤졌다기보다는 이만큼 바다를 깊고 넓게 헤아리는 눈썰미와 마음그릇이 없었다 할 만하다. 다만,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바다는 ‘자연스러운 바다’보다는 ‘사람이 개발을 해서 사람살이를 살찌우는 자원이 많은 바다’라는 눈길로 바라보는 바다이다. 1969년이라는 해를 떠올린다면, 지구사람이 지구를 벗어나 달에도 가려 하고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려고도 하던 때이다. 그러니 깊디깊은 바닷속까지 파고들면서 ‘개발’을 하거나 ‘과학문명’을 키우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따사롭거나 보드랍게 마주하지는 못한다. 처음부터 이런 대목은 헤아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내 집과 우리 마을부터 차츰 깊고 멀리 바라보는 눈썰미가 싱그럽다. 먼먼 우주를 그리듯, 깊고 깊은 바다를 그린다. 넓디넓은 우주를 헤아리듯, 깊으면서 깊은 바다를 헤아린다. 4346.12.31.불.ㅎㄲㅅㄱ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코 사토시 지음, 고향옥 옮김, 김웅서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12월 31일에 저장
절판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가코 사토시 지음, 고연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12월 31일에 저장
절판

지구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코 사토시 지음, 이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12월 31일에 저장
절판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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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5] 바람주머니

 


  어릴 적에는 으레 ‘주부’를 갖고 놀았습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주브’를 갖고 놀았는데, 깍쟁이 같은 동무들은 혀를 굴리며 ‘튜브’라고 말했어요. 어느덧 어른이 되어 혼자 자전거를 따로 장만해서 타다가, 바퀴 안쪽에 바람이 빠져서 갈아야 하면, 드라이버를 써서 겉바퀴를 벗기고 안쪽에 있는 ‘주부’ 또는 ‘주브’ 또는 ‘튜브’를 꺼내어 구멍을 때웁니다. 구멍때우기를 처음 익힐 적에는 자전거집까지 힘겹게 짊어지고 갔어요. 바람이 빠진 자전거를 굴리면 안쪽에 있는 ‘주부’ 또는 ‘주브’ 또는 ‘튜브’가 찢어지거나 갈린다고 했거든요. 자전거집 할배나 아저씨는 언제나 ‘주부’ 또는 ‘주브’라 말했습니다. 어른으로 살다가 어느새 아이를 둘 낳습니다. 두 아이와 살며 살림돈을 버는 어떤 일을 한동안 맡습니다. 서울시 공공기관 공문서 손질하는 일인데, 어느 기관 공문서를 살피다가 ‘구명 부환’이라는 낱말을 보고는 한참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뒤지니, “= 부낭(浮囊)”이라 나오고, ‘부낭’은 헤엄을 칠 때 몸이 잘 뜨게 하려고 고무로 만들어 바람을 넣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요. ‘바람주머니’가 ‘부낭’이요 ‘부환’이고, 요것이 바로 헤엄칠 적에 쓰는 ‘튜브’입니다. 자전거가 달릴 수 있도록 바퀴 안쪽에 바람을 가득 채우는 주머니도 ‘튜브’였지요. 영어사전을 보아도 ‘튜브’는 바람을 넣는 주머니를 가리킨다고 나오는데, 아직 어느 누구도, ‘주부’나 ‘주브’나 ‘튜브’나 ‘부환’이나 ‘부낭’을 보고 ‘바람주머니’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는 않습니다.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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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내 친구는 그림책
타키무라 유우코 지음, 허앵두 옮김, 스즈키 나가코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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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7

 


천천히 자라서 삶이 되는 사랑
― 조금만
 스즈키 나가코 그림
 타키무라 유우코 글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0.1.20.

 


  곧 한 해가 저뭅니다. 음력으로 치면 설은 아직 멀지만, 십이월에서 일월로 넘어가는 달력을 보면서 새삼스레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2013년까지 여섯 살이던 큰아이는 일곱 살로 접어듭니다. 올해까지 세 살이던 작은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어요. 일곱 살이 될 큰아이는 돌쟁이 무렵부터 혼자서 단추를 꿸 줄 알았습니다. 혼자서 단추를 꿸 뿐 아니라 혼자서 옷을 잘 갈아입습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옷을 열 벌 가까이 바꿔 입으며 놀아, 이렇게 한 번 입고 벗은 옷을 어쩌나 하고 애먹기 일쑤였어요.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네 살이 되지만 아직 단추를 혼자서 못 뀁니다. 혼자서 옷을 입지 못합니다. 아직 양말도 혼자 신지 못합니다. 나는 작은아이가 스스로 단추를 꿰고 옷을 입으며 양말을 신기를 바라면서 안 거들려 하지만, 으레 큰아이가 동생을 도와줍니다. 더 나이를 먹으면 으레 혼자 다 잘 하겠거니 생각하지요. 참말 작은아이는 이렇게 늦구나 하고 새로 배워요. 어쩌면, 나도 어릴 적에 이러했을까 싶어요.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나 언니한테서 도움을 받아 느즈막히 혼자서 옷을 입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단비는 시장에 갈 때 엄마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습니다 ..  (2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지내며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요. 사랑을 먹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은 마음밭에 사랑씨앗 심으면서 무럭무럭 키웁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마음밭에서 사랑열매 꾸준하게 거두고 가꾸면서 씩씩하게 살림을 일구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씩씩하게 자랍니다. 사랑받으면 사랑받는 대로 사랑을 가슴으로 포옥 안습니다.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으면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는 대로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을 다스립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은 아이들도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웃음꽃을 피우는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함께 지내는 하루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이동무도 좋고, 놀이기구도 좋아요. 그러나, 어떤 놀이동무보다도 어버이가 가장 반갑습니다.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어버이 손길과 눈길이 가장 기쁩니다. 왜냐하면, 아직 어리거든요. 어리기에 따사로운 손길을 타야 합니다. 어린 만큼 너그러운 눈길을 받아야 합니다.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삶을 익혀요. 어버이 둘레에서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랍니다.


.. 밤이 되어 단비가 잠옷으로 갈아입으려 하는데 단추가 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갔더니 엄마는 아기를 재우고 있었습니다. 단비는 다시 한 번 혼자서 단추를 채워 보았습니다 ..  (10쪽)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글을 일찍 깨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외국말인 영어를 빨리 익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호미를 쥐거나 낫을 들거나 괭이를 잡고 흙을 만지며 놀아야 합니다. 숲길을 걷고, 멧자락을 타고 오르며, 냇물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바닷물에서 헤엄치고,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숲속에서 나무를 타며 놀아야 합니다. 어느 만큼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집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아직 어릴 적에는 어버이 곁에서 맴돌듯이 놀지만, 일곱 살을 지나고 여덟 살을 거치면서 조금씩 테두리를 넓혀요.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이제 어디이든 스스로 나들이를 다닐 만하겠지요. 십 리쯤은 혼자서도 오갈 수 있어요. 이때에는 어버이보다 동무하고 사귀면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길을 넓힐 만해요. 더 너른 누리를 헤아리기 앞서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 스스로 씩씩하게 설 수 있는 기운과 마음과 넋과 꿈’을 사랑으로 받아먹을 노릇입니다.


  글이든 지식이든 외국말이든, 아이 스스로 언제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살 일찍 배운대서 더 잘 하지 않습니다. 두 살 늦거나 열 살 늦게 배운대서 나쁠 일이 없어요. 꼭 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스무 살에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입시지식을 배울 까닭이 없어요.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빛을 익히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에 들어갈 만큼 시험지식은 많이 갖추었다지만, 혼자서 밥을 지어서 차릴 줄 모른다면, 옷을 빨아서 갤 줄 모른다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모른다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줄 모른다면, 이불을 빨거 말리며 해바라기 시킬 줄 모른다면, 씨앗을 심어 밭을 일굴 줄 모른다면, 나무를 돌보며 열매를 거둘 줄 모른다면, 꽃을 바라보고 풀내음을 맡을 줄 모른다면, 어린 동생을 보살피듯이 아기를 따사롭게 어르며 자장노래 부르고 함께 놀 줄 모른다면, 이런 스무 살은 어떤 빛일까요.


  대학생이 되어 인문책은 읽는다 하더라도, 나락 한 톨이 어떻게 다시 볍씨 되어 논자락에서 모로 자라고 이삭을 패며 누렇게 익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논문을 써서 학사나 박사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을 살리는 물과 바람과 햇볕과 흙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덧없습니다.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새로운 빛을 밝힐 줄 알아야 합니다.

 


.. 단비는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나가 됐으니까 낮잠은 안 잘거야.”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기려고 합니다. 단비가 말했습니다. “엄마, 조금만 안아 주세요.” “조금만?” 엄마가 단비에게 물었습니다. “네, 조금만이라도 괜찮아요.” 단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  (24∼26쪽)


  스즈키 나가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타키무라 유우코 님이 글을 쓴 《조금만》(한림출판사,2010)을 읽습니다. 어버이로서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차근차근 읽습니다. 큰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얘는 왜 단추를 못 꿰어? 여기 두 개 안 뀄네.” 하고 말합니다. “얘는 왜 머리를 못 묶어? 나는 묶을 줄 아는데.” 하고도 말합니다. 참말, 여섯 살 큰아이 말대로, 그림책 《조금만》에 나오는 아이는 혼자서 잘 하는 일이 잘 안 드러납니다. 그동안 혼자서 어머니 사랑을 차지한 탓일까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기만 하면서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못 하는 셈일까요.


  그런데, 어린 동생이 태어나 스스로 ‘큰아이’, 곧 ‘누나’가 되면서 새삼스럽게 자라려 합니다. 어린 동생한테 마음을 더 기울일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린 동생을 따사로이 보살필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도 씩씩하게 제 놀이와 자리를 살피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혼자서 야무지게 옷을 입고 몸을 씻으며 어머니 일을 거드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 단비는 엄마 냄새 가득한 품에 포옥 안겼습니다. 그동안 아기에게 조금만 기다리게 했답니다 ..  (30쪽)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집일을 도맡으며 가끔 숨이 차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른 자라 밥하기랑 빨래하기랑 집안일을 살짝살짝 거들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함께 풀을 뜯어 밥을 차리기를 기다려요. 함께 돌을 나르고 대나무를 베어 울타리도 쌓고, 이것저것 꾸밀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다만, 아이한테 이런 말은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큰아이가 나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이렇게 빨래를 잘 해요? 나는 왜 빨래를 잘 못해요?” 여섯 살 큰아이는 세 살 적부터 설거지를 거들겠다며 작은 손으로 그릇을 부시곤 했습니다. 여섯 살이 무르익고 일곱 살로 접어들려는 요즈막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쯤 설거지를 스스로 맡아서 합니다. 걸레를 빨아서 내밀면 아주 좋아라 웃으면서 함께 걸레질을 합니다. 두 살 적부터 비질을 흉내내더니 세 살 적부터 비질을 제법 잘 합니다. 호미질도 꽤 잘 합니다. 삽질은 아직 몸이 작아서 잘 못하지요. 곧 자전거로 함께 달릴 만하리라 느껴요. 이듬해 봄부터 큰아이는 따로 제 작은 자전거를 타도록 하면서 면소재지까지 오갈까 하고 생각해요. 큰아이가 여덟 살쯤 되면, 집부터 바닷가까지 함께 자전거를 달릴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금씩 자랍니다. 천천히 큽니다. 조금씩 힘이 붙습니다. 천천히 눈길을 넓힙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서는 때까지 어버이는 아이를 따사롭게 품습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선 뒤로는 이제 아이도 어른이 되어 그동안 저를 돌본 어버이를 따사롭게 안습니다. 아직 아이들은 키도 몸도 힘도 작아서 어버이 품에 포옥 안기지만, 머잖아 이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보다 키도 몸도 힘도 크면서 어버이를 한결 넉넉하게 안아 주리라 느껴요.


  아이는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천천히 할매와 할배가 됩니다. 아이는 어느새 새롭게 어른이 되고, 새롭게 어른이 되면서 새로운 빛으로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사랑을 물려줍니다.


  조금씩 흐릅니다. 천천히 이어집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따사로운 손길과 손길이 만나면서 한결 빛납니다.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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