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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20 : 안고수비

 

제 농사 솜씨에 자신이 없는 나는 그 말에 단호하게 “아니야” 하지 못하는데 아랫집 형님까지 꽃만 봐도 좋지 뭘, 하면서 나의 ‘안고수비(眼高手卑)’를 위로한다
《유소림-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 88쪽

 

  “솜씨에 자신(自信)이 없는”은 “솜씨에 믿음이 없는”이나 “솜씨를 못 믿는”으로 다듬고, ‘단호(斷乎)하게’는 ‘다부지게’나 ‘똑부러지게’로 다듬습니다. ‘나의’는 ‘내’로 바로잡습니다. ‘위로(慰勞)한다’는 ‘달랜다’나 ‘다독인다’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안고수비(眼高手卑)’는 “눈은 높으나 솜씨는 서투르다는 뜻으로,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말뜻을 살피면 이러한 말을 쓸 만도 할 테지만, 이 한자말을 한글로 적는들 알아볼 수 없고, 한자를 밝혀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어느 지식인이 말한 ‘똘레랑스’도 이런 느낌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말도 이런 느낌이에요.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 서로 잘 알아듣도록 쉽고 알맞으며 곱게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나의 ‘안고수비(眼高手卑)’를 위로한다
→ 눈만 높고 일이 서툰 나를 달랜다
→ 눈은 높지만 일은 서툰 나를 다독인다
 …

 

  보기글을 헤아리면, “할 줄 모르지만 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려 했구나 싶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어서 길러야 하는데, 이렇게 심어서 기르는 솜씨가 서툴기에 입맛만 다시는 모습이고, 이를 본 이웃 형님이 다독다독 품는구나 싶어요. 이런 느낌은 이러한 느낌대로 “할 줄 모르지만 하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랜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삶은 빼어난 솜씨가 있어서 아름답거나 빛나지 않아요. 꾸밈없이 흙을 만나고 사귀면서 즐겁게 누리면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흙을 닮고 흙내음 풍기는 시골스러운 말로 글빛을 밝히기를 빌어요. 4346.1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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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농사 솜씨를 못 믿는 나는 그 말에 똑부러지게 “아니야” 하지 못하는데 아랫집 형님까지 꽃만 봐도 좋지 뭘, 하면서 눈은 높지만 일은 서툰 나를 다독인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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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고 싶은 책

 


  책 하나 선물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여러 날 품으며 곰곰이 돌아본다. 어떤 책을 선물받으면 즐거울까. 어떤 책을 나한테 선물해 달라 이야기하면 즐거울까. 이모저모 헤아리다가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한국에서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는 책이라면 굳이 선물받을 까닭이 없다. 다만, 아직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해 선뜻 장만하지 못하는 책이라면 한국에서 나온 책도 더없이 고마우면서 즐겁게 선물받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선물받고 싶은 책이라 하면, 한국에는 없는 책, 곧 다른 나라에서 나와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책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에서 나온 사진책, 아르헨티나나 칠레나 브라질에서 나온 사진책, 프랑스나 독일이나 덴마크에서 나온 사진책, 수단이나 이란이나 러시아에서 나온 사진책, 이런 사진책을 선물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고마우며 즐거울까.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사진책도서관에 두고 싶어 이모저모 살펴서 ‘누리책방 보관함’에 담은 나라밖 사진책이 이천만 원어치쯤 된다. 하나씩 장만하다 보면 언젠가 모두 장만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사진책도서관 책시렁에 얹지 못했어도 내 마음에는 일찌감치 들어온 책들이다. 손으로 쥐어 펼칠 때에도 즐겁고, 마음으로 그리며 헤아릴 때에도 즐겁다. 겨울날 찬바람 흐르는 별빛이 즐겁고, 새 아침 찾아오며 드리우는 햇살조각이 즐겁다.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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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테 무엇이 대수로운가 하고 묻는다면, 삶이 대수롭다고 말한다. 내 삶이 대수롭고, 우리 곁님 삶이 대수로우며, 우리 아이들 삶이 대수롭다. 우리 어버이 삶도, 곁님 어버이 삶도 대수롭다. 우리 동무들과 이웃들 삶 모두 대수롭다.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이 대수롭고 하늘과 바람과 흙과 들과 멧골 모두 대수롭다. 대수롭지 않은 것을 들라면, 첫째 전쟁이요, 둘째 정치와 행정이며, 셋째 자동차와 학교쯤 들 수 있을까. 학교는 뜻이 있다고 할 테지만, 숲보다는 뜻이 없다. 자동차를 얻어타며 고맙기는 하지만, 갯벌보다는 뜻이 없다. 정치와 행정은 두말할 것이 없고, 전쟁은 세말할 것조차 없다. 나한테는 야구장보다 풀 한 포기가 대수롭고, 텔레비전보다 나무 한 그루가 대수롭다. 야구장이나 전쟁이나 자동차나 학교가 없더라도 살아갈 수 있으나, 들이나 숲이나 풀이나 냇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 지구별 아이들한테 무엇이 대수로울까? 바로 하나 사랑이요, 다음 둘 꿈이요, 이어서 셋 빛이리라. 4346.1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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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야마모토 토시하루 지음, 강석기 옮김 / 넥서스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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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
야마모토 토시하루 지음, 문종현 옮김 / 달과소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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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國際協力師になるために (單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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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球溫暖化、しずみゆく樂園ツバル (單行本)
야마모토 토시하루 / 小學館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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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골에도 배나무골에도 겨울이 찾아온다. 밤나무골에도 대나무골에도 겨울이 찾아온다. 골골샅샅 다 다른 빛과 결로 겨울이 찾아온다. 강원도 시골과 전라도 시골은 겨울맛이 다르다. 평안도 시골과 함경도 시골도 겨울빛이 다르다. 그러면, 서울과 부산은? 대전과 대구는? 인천과 광주는? 도시에서는 어떤 겨울을 어떤 빛으로 마주할까? 도시에서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얼마나 살뜰히 누릴 만할까? 도시에도 겨울이 있다고 할 만한지, 도시에도 여름이나 봄이 싱그럽다고 할 만한지 궁금하다. 다 다른 시골에서 다 다른 살림살이 일구며 다 다른 이야기 한 자락 흐르기에 《감나무골의 겨울》이 곱다라니 태어나리라 느낀다. 4346.1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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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골의 겨울
유소림 지음, 오건업 그림 / 재미마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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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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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헌책방으로 온갖 책이 들어온다. 헌책방을 찾아오는 온갖 사람들이 이 온갖 책을 살펴보다가는 온갖 책을 저마다 즐겁게 장만한다. 누군가 즐겁게 읽은 책을 즐겁게 헌책방에 내놓아 주머니 가벼운 이가 즐겁게 장만하도록 할 때가 있고, 출판사나 작가가 신문·잡지·방송사 기자한테 보낸 책을 이들 매체에서 다 껴안을 수 없어 폐휴지로 내놓았다가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일 때가 있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나 대학 교수한테 보낸 책을 비서가 틈틈이 폐휴지로 모아서 내놓을 적에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가 이름난 누군가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일은 흔하다. 책을 버렸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책을 버렸’기에 헌책방에 이 책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돌고 도는 책’이 되도록 내놓아서 ‘책을 나눈다’고 해야 옳은 말이리라 느낀다. ‘책을 버린다’고 할 적에는 책을 북북 찢어서 아무도 못 보게 불쑤시개로 했다는 뜻쯤 되어야지 싶다. 헌책방에 책이 들어갈 때에는 ‘다시 읽히도록’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선물받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을 적에 이녁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칼로 오리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찢거나 칼로 오린 종이는 어떻게 될까. 잘 건사할까. 이 또한 찢어서 버릴까. 돌고 도는 책이기에, 어느 책을 건사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면, 이 책은 으레 돌고 돌면서 헌책방으로도 들어오기 마련이다. 굳이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오리지 않아도 된다.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자국도 ‘책이 살아온 발자국’이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은 이런 발자국을 보는 즐거움을 곧잘 누리곤 한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온갖 사람들 온갖 ‘이름 적기’를 보았다. 번거로운 듯이 흘려서 쓴 사람이 있고, 도장까지 찍으며 정갈하게 쓴 사람이 있다. 소설쓰는 박완서 님이 내놓은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박완서 님이 ‘나쁜 뜻으로 책을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녁이 집에 건사할 수 없는 책을 틈틈이 내놓아 헌책방에서 새로운 사람들한테 새롭게 읽히도록 했다고 느꼈다. 이오덕 님이 선물한 책도 헌책방에서 만났는데, 이오덕 님 제자라는 분이 ‘책을 안 읽고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즐겁게 읽은 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책을 아낄 젊은 넋’한테 즐겁게 물려주려는 뜻이리라 느꼈다. 요즈음은 손택수 님이 다른 시인한테서 받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퍽 자주 만나는데, 좋은 시집을 가난한 문학청년이 적은 돈으로 장만해서 읽을 수 있도록 고맙게 내놓았으리라 느낀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누군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들어와서, 이 책을 살살 어루만질 적에 얼마나 재미있을까. 돌고 도는 삶에 돌고 도는 책, 돌고 도는 이야기에 돌고 도는 사랑, 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요 며칠 사이, 김용옥 님이 홍준표 경남도지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나왔다고, 이 책을 헌책방에서 샀다는 사람이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지 않을까? 더 넓게 읽힐 수 있는 뜻인데, 왜 이런 일을 놓고 비아냥거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말이 나와야 할까? 언론사에서 보도자료를 폐휴지로 내버릴 적에 고물상 거쳐서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이 무척 많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가 선물받은 뒤 비서가 알뜰히 내버려 주어 헌책방이 즐겁게 받아안는 책이 꽤 많다. 다만, 이런 책 모두 새로운 손길을 받을 만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즐겁게 마주하며 즐겁게 읽을 사람이 있다. 스스로 즐겁게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면 다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나가면 좋으리라. 서로 예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예쁜 생각 주고받을 수 있기를 빈다.


  헌책방이 없으면, 애꿎은 책들 모두 종이쓰레기 되지 않았겠는가. 헌책방이 없다면,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오래도록 돌고 돌며 새로운 이야기 길어올릴 일조차 없이 몽땅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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