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사진을 <로타와 자전거> 그림책하고

나란히 놓고서 찍었습니다.

두 그림책이 아주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에 처음 한국말로 번역되었는데,

(어쩌면 1979년이었는지 모릅니다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랑받고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터라,

이참에 함께 사진으로 선보입니다.

즐겁게 누리셔요.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8

 


별잔치를 가슴에 담는 삶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논장 펴냄, 2013.12.16.

 


  하늘에 걸린 달이 초승달 되고, 초승달이 어느새 그믐달 되면, 밤하늘은 온통 별잔치입니다. 서울이나 부산에 살더라도, 대전이나 광주에 살더라도, 인천이나 대구에 살더라도, 조그마한 도시에 살더라도,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 살더라도, 집안에 있는 전깃불을 모두 끄고, 길가에 있는 전깃불은 손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윽한 별잔치가 얼마나 고운지 함께 누려요.


  한겨울 그믐밤에는 마을 고샅길 전깃불이 있어도 별잔치를 가리지 못합니다. 지구별과 제법 가까운 별은 눈부시게 밝습니다. 지구별과 제법 먼 별은 미리내가 됩니다. 지구별과 아주 먼 별은 흐릿흐릿 허연 바탕입니다.


  달에서 지구별 바라본 사진이라든지, 달에서 먼 우주를 바라본 사진을 고맙게 얻어서 들여다보면, 드넓은 우주에 뭇별이 환하게 빛납니다. 이렇게 많은 별이 이렇게 넓은 우주에 그득해요. 지구별은 아주 조그마한 삶자리입니다. 지구별은 드넓은 우주를 이루는 작은 깨알입니다.


.. 로타가 다시 말했어요.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미아 마리아가 말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허풍이 너무 심하네.” 요나스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럼 스키 타고 방향 바꾸기도 할 수 있어?” 요나스는 요즘 한창 방향을 바꾸며 스키를 타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로타는 발끈 화를 냈어요. “내가 언제 방향을 바꿀 수 있댔어?” “좀 전에 뭐든지 할 수 있댔잖아.” “할 수 있어. 방향 바꾸기만 빼고 뭐든지 다.” ..  (3쪽)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다 도시에 살아가기 때문인지 별을 잊습니다. 별을 잊으면서 별을 잃습니다. 별을 잊고 잃으면서 달 또한 잊고 잃어요.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달조차 잊고 잃으면서, 온 우주를 채우며 밝히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함께 잊고 잃어요.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전기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사람들은 함경도에 살든 전라도에 살든, 평안도에 살든 경상도에 살든, 밤하늘을 그득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언제나 누렸어요. 드넓은 우주를 밝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 가운데 하나가 지구라고 노상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았어요.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상냥하며 착합니다. 별을 느끼지 않고 우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상냥하지 않을 뿐더러 착하지 않습니다.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을 꿈꿉니다. 별을 안 느끼고 아주를 안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 아닌 전쟁과 권력과 재산에 끄달립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요. 맑은 냇물을 늘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요. 공장에서 버리고 아파트에서 흘려보내는 지저분한 쓰레기물 흐르는 냇물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기 어려워요.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뜨지 못하고, 맑은 물을 눈과 코와 귀와 살갗으로 누리지 못하니까요.


  나무가 우거진 푸른 숲을 누리는 사람과 나무 한 그루조차 못 누리는 사람은 삶이 달라요. 다만,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데에서 살더라도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 있어요. 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숲속에서 살지만 마음이 좁거나 아픈 사람 있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때에 고운 삶이 되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줄 알면 고운 삶으로 나아가요.


.. 로타는 스키 지팡이 없이도 스키를 타곤 했지만, 비닐봉지 두 개와 밤세를 들고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안되겠다. 넌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로타는 빵 봉지 속에 밤세를 우겨 넣고 고무줄로 다시 꼭 묶었어요. 봉지 속에서 밤세가 조금 못마땅한 눈으로 로타를 바라보았어요. 로타가 밤세를 달랬어요. “조금만 참아. 그 대신 배가 고프면 빵을 조금 먹어도 좋아. 티 나지 않게 말이야.” ..  (7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붙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논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예수님나신날 기다리는 아이들은 ‘성탄절나무’를 집안에 꾸미고 싶습니다. 로타네 아버지는 ‘마을에서 전나무 파는 가게에 그만 나무가 더 없다’고 말합니다. 전나무를 사올 수 없다고 해요. 로타네 아이들은 몹시 서운합니다.


  그런데, 살짝 알쏭달쏭합니다. 로타네가 살아가는 곳은 큰도시가 아니에요. 거의 시골이라 할 만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면, 로타네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 이끌고 가까운 숲으로 가서 전나무 한 그루 벨 수 있어요. 한 시간을 걷든 두 시간을 걷든 숲으로 마실을 가면 돼요. 마을 어른들이 함께 숲으로 나들이를 가서 ‘전나무 마련하지 못한 집’ 숫자에 맞추어 전나무를 베어 올 수 있어요.


  전나무를 꼭 돈으로 사야 하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는 전나무도 누군가 숲에서 베어서 가져오니까요.


  어린 로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로타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돈으로만 하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아요. 전나무를 살 돈은 있으나 전나무는 없잖아요? 그러면, 돈이 아닌 ‘삶과 몸짓과 마음’을 움직여 전나무를 장만해야지요.


.. 로타는 아줌마의 베개를 폭신폭신하게 부풀렸어요. 그리고 빵을 두툼하게 썰고 버터를 발라 아줌마한테 드렸어요. 숨이 찰 때 먹으면 좋다고 하면서요. 그러고는 설거지도 하고 바닥도 쓸었어요. 뭐든지 어찌나 척척 잘 해내는지, 로타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아줌마, 또 시킬 일 있어요?” “그럼, 가게에 가서 신문 좀 사다 주겠니?” 로타는 이 심부름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  (14쪽)

 


  예수님은 어디에서 나셨을까요. 지구별에서 나셨지요. 지구별은 어떤 별일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이지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은 어떤 별인가요. 예수님이 나신 별이지요. 예수님은 어떤 넋일까요. 사랑이 그득한 넋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사랑이 그득한 지구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넋이에요. 누구나 사랑 그득한 넋입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면서 맑은 눈빛으로 환하게 웃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속에 고운 사랑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맑은 사랑 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로타는 돈도 힘도 이름도 딱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로타는 스스로 씩씩하고 꿋꿋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로타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외치거든요. “참말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마음으로 외치고 속삭이며 이야기할 때에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스스로 할 수 없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못해요. 스스로 할 수 있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해요.


.. 아빠도 말했어요. “아무렴, 다른 전나무들은 다 잊어도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가만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신기해. 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크리스마스트리를 구하는 일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어. 맞아. 정말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  (28쪽)

 


  아름다운 빛이 별과 함께 지구로 찾아와요. 아름다운 사랑이 서로서로 마음속에서 샘솟아 지구별을 감돌아요.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우리 살가운 이웃한테 건네요. 우리 살가운 이웃이 건네는 사랑을 즐겁게 내 마음으로 받아요. 아이들하고도 주고받아요. 곁님하고도 나누어요.


  함께 하기에 즐거운 사랑입니다. 같이 나누기에 기쁜 사랑입니다. 함께 걷기에 즐거운 삶입니다. 같이 돕고 돌보기에 기쁜 삶입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인데, 이 예쁜 책에 적힌 글월은 어린이 눈높이와 걸맞지 않습니다. 어린 로타는 그림책에서 ‘다섯 살’로 나와요. 한국 나이로는 일곱 살이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곧, 한국으로 치면 일곱 살 어린이 눈높이로 맞추어 이 그림책 글월을 가다듬어야 올바릅니다. 여덟 살도 아홉 살도 아닌 일곱 살 눈높이로, 초등학생 교과서에 나오는 말마디나 어른들 읽는 인문책에 나오는 말마디 아닌 일곱 살 어린이 말마디에 맞추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흐르는 말투 아닌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듣고 배울 말투로 추슬러야 아름답습니다.


 허풍이 너무 심하네 → 허풍이 너무 세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 겨울 방학이 되었고
 별로 어렵지 않을 → 그리 어렵지 않을
 로타네 가족이 사는 → 로타네 식구가 사는
 아줌마한테 안부 전해 주렴 → 아줌마한테 잘 계시느냐 말씀 여쭈렴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 빵 봉지에 들어가
 게다가 속도도 빨랐어요 → 게다가 무척 빨랐어요
 집에 도착했을 때 → 집에 닿았을 때
 로타가 힌트를 주었어요 → 로타가 귀띔을 했어요
 얼마나 겁을 먹고 있을지 → 얼마나 무서워 할는지
 너무 울적하니까 → 너무 슬프니까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어요 → 큰 소리로 외쳤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자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자
 혹시 쓰레기 더미 맨 위에 → 설마 쓰레기 더미 맨 위에
 절대, 절대 안 배울 거야 → 다시, 다시 안 배워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 스스로도 놀랄 만했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 이만큼이나 하자면 쉬운 일은 아니죠
 화를 내며 연방 으르렁거렸지만요 → 골을 내며 자꾸 으르렁거렸지만요
 하지만 트리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 그렇지만 나무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자, 식사하자 → 자, 밥 먹자
 못 구하면 그때는 단념하는 거다 → 못 사오면 그때는 그만두자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 짐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전나무는 아주 근사했지만 → 전나무는 아주 멋졌지만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 로타 전나무는 늘 떠올리겠어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일곱 살 어린이가 어떤 말을 쓰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게다가, 로타네는 도시 한복판이 아닌 고즈넉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숲으로 둘러싸이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조용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한결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말마디를 떠올려야지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가장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면서 환한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이 그림책 말마디를 하나하나 다듬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이 익숙하게 쓴대서 아무 말이나 아이한테 들려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일곱 살 어린이한테 들려주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가 다 옳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이 다 알맞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거나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서로 살갑고 사랑스레 나눌 아름다운 말을 헤아릴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 어린이가 글을 깨쳤다고 할 적에, 이 아이가 다섯 살 동생한테 물려줄 말을 떠올려요. 일곱 살 어린이가 네 살이나 세 살 동생한테 말을 가르치는 모습을 헤아려요.


  어른들은 일곱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까요. 일곱 살 어린이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배워서 제 어린 동생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밤하늘 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해 봐요.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4-01-08 05:56   좋아요 0 | URL
우리 집 아이들은 이 <로타와 자전거>를 오랫동안 보다 못해
낙서까지 해 놓아서... -_-;;;;
큰아이가 하도 저 그림책을 좋아한 나머지
볼펜으로 그림에 '그림 그린다'며 죽죽 그은 곳이 여럿 있답니다... ㅠ.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이번에 새로 나온 만큼
<로타와 자전거>도 곧 새로 나오겠지요...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소식 전해드려요~~
 

[함께 살아가는 말 186] 보고 배우기

 


  아이들은 보고 배웁니다. 둘레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들도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노는 넋을 배웁니다. 어른들은 해맑은 마음을 배웁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과 꿈이 되어 고운 빛이 됩니다. 아이들은 ‘학습(學習)’도 ‘견습(見習)’도 ‘수습(修習)’도 ‘견학(見學)’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배웁니다. 차근차근 익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견습·수습·견학’은 거의 같은 낱말이고, ‘견학’ 말풀이를 “‘보고 배우기’로 순화”로 적어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국말사전에 ‘배움’이나 ‘배우기’라는 낱말을 따로 실으면 되겠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한국말사전을 누구나 즐겁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삶을 어른과 아이가 서로 ‘보고 익힐’ 수 있도록, 함께 웃으며 어깨동무하면 참으로 기쁘겠습니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부들 책읽기

 


  여름에 꽃이 피고 나서 도토리빛으로 열매를 맺는 부들을 바라본다. 예부터 부들은 어느 자리에 썼을까. 시골에서 으레 만나는 부들인데, 부들 열매와 부들잎, 부들줄기를 어느 자리에 얼마나 알뜰히 썼을까. 겨울로 접어들어 부들 열매는 솜털로 뒤덮인다. 씨앗을 퍼뜨리는 모습일까. 이 겨울이 지나면 이 억세고 단단하면서 무척 보드랍기도 한 줄기는 시들까. 아니면, 이듬해 봄에 다시 씩씩하게 새로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을까. 마을 어귀에 아무도 일구지 않는 빈논이 한 곳 있어, 해마다 봄가을 여름겨울 헤아리면서 부들꽃과 부들 열매를 마주한다. 솜털이 흩날릴 무렵 비로소 겨울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새봄이 찾아오면 부들줄기는 어떤 빛이 될까. 천천히 기다린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후애(厚愛) 2014-01-05 22:05   좋아요 0 | URL
저 부들 무척 좋아합니다.ㅎㅎ
사진을 정말 잘 찍으십니다.^^
아름다워요~

숲노래 2014-01-06 02:37   좋아요 0 | URL
늘 지켜보고
언제나 바라보기에
이만큼 찍는구나 싶어요.

마을에서 부들 구경하는 사람은
어쩌면 우리 식구뿐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무지개모모 2014-01-06 00:14   좋아요 0 | URL
이런 멋은 가을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름처럼 만지면 부들부들 할까요?

숲노래 2014-01-06 02:37   좋아요 0 | URL
'부들'부들하대서 이름이 '부들'이더라구요 ^^;;;
참으로 그래요.
이름 그대로 느낌도 똑같아요~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16) 휘하의 1 : 휘하의 육군

 

오히려 필리포스 왕에게는 이렇게 단순한 상대와의 싸움이 더 여유로운 지휘였을지도 모른다. 역시 휘하의 육군은 주변 세계에서 최강.
《이와아키 히토시/오경화 옮김-히스토리에 (8)》(서울문화사,2013) 129쪽

 

  “이렇게 단순(單純)한 상대(相對)와의 싸움이”는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어느 싸움터에서 무턱대고 앞으로 치고 들어오는 이들을 가리켜 이처럼 말합니다. 그러니까, 맞은편에서 보여주는 모습대로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는 이들과 벌이는 싸움이”쯤으로 손볼 만합니다. ‘여유(餘裕)로운’은 ‘느긋한’이나 ‘한갓진’으로 다듬고, ‘역시(亦是)’는 ‘참으로’나 ‘참말’이나 ‘그야말로’나 ‘어느 모로 보나’로 다듬습니다. “주변(周邊) 세계(世界)에서 최강(最强)”은 그대로 두어도 될 테지만, “이웃 나라 가운데 으뜸”이나 “이웃 나라 사이에서 으뜸”처럼 손볼 수 있어요. ‘왕(王)’은 ‘임금’으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말 ‘휘하(麾下)’는 “장군의 지휘 아래. 또는 그 지휘 아래에 딸린 군사. ‘아래’, ‘지휘 아래’로 순화”를 뜻한다고 해요. 그런데 “지휘 아래”처럼 쓴대서 올바르지 않습니다. 지휘는 아래나 위가 따로 없어요. “지휘를 받아”나 “지휘로”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러면 ‘지휘(指揮)’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단체의 행동을 통솔함”이라 나와요. 그러면 또 ‘통솔(統率)’이란 무엇일까요? 다시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무리를 거느려 다스림”이라 나와요.

 

 휘하의 육군
→ 필리포스 왕이 거느리는 육군
→ 필리포스 왕이 이끄는 육군
→ 거느리는 육군
 …

 

  ‘휘하’는 ‘지휘’로 가고, ‘지휘’는 ‘통솔’로 갑니다. ‘통솔’은 마지막으로 ‘거느리다’나 ‘다스리다’로 가요. 그러니까, 한국말은 ‘거느리다’나 ‘다스리다’입니다.


  처음부터 한국말 ‘거느리다’나 ‘다스리다’라는 낱말을 썼다면 이 보기글은 어떠했을까요. 우리 어른들이 처음부터 한국말을 알맞고 아름답게 가누거나 가다듬으면,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앞으로 어떤 말로 쓰면서 살아갈까요. 4347.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히려 필리포스 임금한테는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는 이들과 벌이는 싸움을 더 느긋하게 지휘할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이녁이 거느리는 육군은 이웃 나라 사이에서 으뜸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함께 25. 사진이 없는 사진

 


  사진을 꼭 찍어야 하지 않다. 사진이 없던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자. 사진이 없던 지난날 신문을 내거나 책을 찍는다 할 적에, 글을 어떻게 써서 신문이나 책을 엮어야 할는지 헤아려 보자. 오직 글만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길을 떠올려 보자.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면, 반드시 사진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빛을 헤아리자. 사진이 없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는다. 사진으로만 들려주거나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는다.


  사진만 기록이 되지 않는다. 사진보다 또렷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이 있다면, 굳이 사진이 없어도 된다. 알뜰살뜰 알차며 또렷하게 쓴 글이 있다면, 이 글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고 마을까지 꾸밀 수 있다. 비록 사진이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알맞게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이 사진으로는 집도 못 짓고 마을도 못 꾸민다.


  이야기를 알차게 담을 수 있으면 된다. 글이 길어야 하지 않아. 글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 사진을 꼭 넣어야 하지 않아. 사진이 여러 장 있어야 하지 않아.


  글이 깃들 자리와 그림이 머물 자리와 사진이 들어설 자리를 생각하면 된다. 글로 빚을 꿈과 그림으로 나눌 사랑과 사진으로 밝힐 빛을 헤아리면 된다. 사진보다 또렷한 이야기이면 넉넉하다. 글보다 똑부러진 이야기이면 즐겁다. 그림보다 빈틈없는 이야기이면 살갑다.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후애(厚愛) 2014-01-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예쁘고 너무 너무 귀엽습니다~!!!*^^*

숲노래 2014-01-06 02:36   좋아요 0 | URL
언제나 맨발로 노는 아이들은
참... 예쁘지요 ㅠ.ㅜ

착한시경 2014-01-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상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귀여운데요...^^ 알차고 또렷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사진만큼이나 오랫동안 남겨둘 수 있을텐데...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4-01-06 02:36   좋아요 0 | URL
스스로 즐겁게 쓰면
어느 글이든 다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착한시경 님 새해 하루하루
늘 즐거우면서 곱게 빛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