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2.31.
 : 한 해 마무리 자전거


- 한 해를 마무리지으면서 자전거를 탄다.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에서 논다. 얘들아, 양말조차 신기 싫으니?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하나 부치려 한다. 12월 31일에 부친들 1월 1일을 지나 1월 2일이나 3일에 들어갈는지 모르나, 한 해를 넘겨 부치기보다는 한 해 마지막날에 부치고 싶다.

 

- 아이들 태울 수레는 튜브가 다 닳아서 더 태우지 못한다. 수레바퀴에 넣는 20인치 튜브를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두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가야 한다. 혼자 타는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놓으니, 작은아이가 손을 뻗어 딸랑이를 딸랑딸랑 긁으면서 논다. 재미있지? 네 아버지도 어릴 적에 자전거 딸랑이 긁는 재미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쉬잖고 딸랑이만 긁었지. 자전거를 타면 딸랑이를 일부러 긁어야 한다고 여겼달까. 자전거를 타는 자랑을 하고 싶었달까.

 

- 한겨울이더라도 바람이 잔잔하면 안 춥지만, 바람이 드세면 골이 띵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오늘은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리니 이럭저럭 낫다. 두 아이를 태우고 수레를 끌자면 한겨울에도 땀으로 온몸을 씻는다. 호덕마을 어귀에서 살짝 자전거를 세워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숨을 돌린다. 동짓날 지나면서 해가 길어졌다고 느낀다. 동짓날까지는 참말 해가 일찍 떨어졌다. 네 시 무렵만 되어도 어둑어둑했는데, 동짓날 뒤로는 네 시 언저리 되어도 해가 높다고 느낀다. 아니, 동짓날이 지나니, 마당에 넌 빨래를 네 시까지 두어도 되겠다고 느낀다.

 

- 햇볕 한 조각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해가 있어 낮이 있다. 해가 있어 풀이 자란다. 해가 있어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해가 있어 풀과 나무가 자라니,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은 해한테 무엇일까. 사람은 그저 해한테서 받기만 할까. 해는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는 사랑을 느끼면서 즐겁게 따순 볕을 베풀지는 않을까. 겨울해와 겨울바람을 잔뜩 맞아들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한테 줄 주전부리를 가방에 그득 담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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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96] 아버지와 아이

 


  손을 잡으면 함께 걷고
  어깨를 겯으면 나란히 걸어
  마주보면 고운 보금자리.

 


  아버지와 아이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아버지와 아이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지요. 같은 길을 걷기에 늘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른 길을 걸으니 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려는 마음이 같으면 어느 길을 걷든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서로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같으면 어느 길에서든 고운 빛이 드리우는 살가운 보금자리 일구리라 느껴요.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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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1-06 12:04   좋아요 0 | URL
글이 참 따뜻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였습니다.
오늘도 배움을 얻어 갑니다~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4-01-06 13:07   좋아요 0 | URL
우리 아이들과 나는
서로 어떤 사이요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저절로 이런 글이
나오더라구요... 흠...
 

.. 경기문화재단 사외보 2014년 1-2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지난해 11월에 써 두었고, 이제 비로소 올립니다~ ^^ ..

 

..

 

말넋 21. 우리와 함께 있는 말
― 누가 언제 쓰는 말일까

 


  아이한테 읽히려고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그림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읽히기도 하지만, 아이가 한글을 천천히 익히면서 스스로 읽을 책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어버이 목소리를 들으며 말을 익히고, 나중에는 눈빛을 밝혀 글을 깨칩니다.


  어느 책이건 아이한테 먼저 쥐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작 그림책이건 번역 그림책이건 아이들 삶과 걸맞지 않다 싶은 낱말이나 말투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아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없는 낱말과 말투가 있어요. 이를테면, 요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조차 ‘생일잔치’ 아닌 ‘생일파티’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버스데이 파티’라고까지 합니다. ‘버스데이 파티’라 하는 곳은 아이들한테 영어를 더 가르치려 하는 곳인데, 요즘 어른들 가운데 ‘파티’가 영어이고 ‘잔치’가 한국말인지 아는 분이 무척 적어요. 이리하여 ‘돌잔치’ 아닌 ‘돌파티’를 ‘럭셔리’하게 하는 어른들이 있어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참말 이렇습니다. 어느 그림책을 읽다가 ‘생일파티 미션’이라는 말이 흐르기에 이내 덮었어요. 도무지 보아주기 힘들더군요.


  스웨덴에서 1983년에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는 2011년에 옮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기 앞서 차근차근 살피다가, “첫눈은 뭔가 특별하고 멋지니까요”라든지 “눈에게 불공평하게 굴지는 않아요”라든지 “눈은 자작나무 숲 위로 펑펑 내리고 있어요”라든지 “한손 부인”과 “한손 씨”와 같은 말투를 봅니다. “계속 달리기만”하고 “내처 달렸어요” 같은 말투도 봅니다.


  아이들한테 ‘다르다’나 ‘남다르다’라는 낱말을 들려주는 어른이 아주 드문 요즈음입니다. ‘까다롭다’라는 낱말을 쓰는 어른도 퍽 드뭅니다. 어른들 스스로 “첫눈은 뭔가 남다르고 멋지니까요”라든지 “눈한테 까다롭게 굴지는 않아요”처럼 말하지 않아, 아이들은 ‘남다르다’라든지 ‘까다롭다’ 같은 낱말을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좀처럼 못 듣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자면 “눈은 자작나무 숲에 펑펑 내려요”처럼 손질해야 합니다. 눈은 “숲 위로”가 아닌 “숲에” 내립니다. “지붕 위로” 쌓이는 눈이 아니라 “지붕에” 쌓이는 눈입니다. 영어 현재진행형을 잘못 옮겨 “내리고 있어요”라 적지만, “내려요”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어른들 읽는 책에서도 올바로 가누어야 아름답고, 아이들 읽는 책에서는 더욱 마음 기울여 올바로 가누어야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한손 부인” 아닌 “한손 아주머니”요, “한손 씨” 아닌 “한손 아저씨”입니다. 아이들이 어른한테 “한손 부인” 하고 부르겠습니까. “한손 아주머니(아줌마)”라 부르지요.


  누가 언제 쓰는 말인가 하고 찬찬히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으레 쓰는 말을 아이들이 흔히 들으면서 자라는 줄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부터 말매무새 올바로 가다듬으라 했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듣는다는 뜻이에요. 어른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어른들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고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말이 모두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로 이어져요. 여느 때에 언제나 아름답게 말할 줄 아는 어른이어야, 아이들 또한 언제나 아름답게 말하는 삶 물려받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늘 사랑스레 말할 수 있는 어른이어야, 아이들도 늘 사랑스레 말하고 글을 쓰는 넋 이어받아요.


  정일근 님이 쓴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1987)을 읽다가 8쪽에서 “대청마루 떡하니 놓인 쇠북을 보면”이라는 대목을 만났어요. 제 이름 ‘최종규’에서 ‘종’은 한자로 적으면 ‘쇠북 종’입니다. 제 이름에 깃든 ‘종’이라는 한자를 ‘쇠북’으로 읽는 줄 어릴 때부터 알기는 했지만 쇠북이 무엇인 줄 가르쳐 주는 어른이 둘레에 없었어요. 다른 동무는 예쁘거나 멋지다 싶은 뜻(새김)을 이름으로 얻는데, 나는 쇠북이 뭐냐, 웬 이름이 이러한가, 하고 여겼습니다. 아마 어른들도 쇠북이 무엇인 줄 제대로 몰랐구나 싶은데, 나이 서른을 한참 넘긴 어느 날 스스로 쇠북을 깨달았어요. 쇠로 만든 북이라 쇠북이요, 쇠북이란 ‘종’을 가리키는 한국말이었습니다. 떵떵 울리는 ‘종’은 중국말이었어요.


  이오덕 님이 쓴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굴렁쇠,2007)을 읽으며 31쪽에서 “나만은 내일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대목을 만납니다. 무릎을 철썩 칩니다. 그래요. 저도 어릴 때부터 ‘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썼어요. 몸이 아프면 학교를 쉽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몸이 아픈 날 회사를 쉽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에서 몸이 고단하면 집일을 살짝 쉽니다. 학교나 회사를 다닐 적에는 “학교를 빠진다”라 말하기도 했어요. 이럴 때마다, 학교에서는 ‘결석’이라는 말을 썼고, 회사에서는 ‘결근’이라는 말을 썼어요. 서류에는 이런 낱말 써야 한다고 하지만, 왜 서류에 ‘쉼’이라는 말을 쓸 생각은 못 할까요.


  우리 겨레가 한자를 쓴 지 1500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 겨레가 한자를 쓰지는 않았어요. 임금님과 신하와 지식인만 한자를 썼어요. 서울에 모이거나 읍내에 모인 몇몇 관리와 지식인, 여기에 임금님만 한자로 글을 썼을 뿐, 글 아닌 말에서는 모두 ‘한자 아닌 한국말’이었어요. 99.9%를 훨씬 넘는 여느 사람들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면서 ‘정갈하고 고운 한국말’을 썼습니다. 정치와 행정 맡은 이들이 한자를 받아들여 썼다지만, 다른 거의 모든 사람은 한자를 모르는 채 한국말만 알뜰살뜰 주고받았어요.


  여느 시골사람은 ‘물들이기’를 하지만, 관리와 지식인은 ‘염색’을 말합니다. 여느 시골사람은 ‘흙(논밭) 일구기’를 하지만, 관리와 지식인은 ‘농사’를 말합니다. 더 낫거나 더 좋은 말은 따로 없다고 느껴요.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말이 새로 태어나고, 우리가 생각하며 사랑하는 자리에서 말이 새로 자랍니다. 아이 앞에서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삶과 넋 곱고 사랑스레 돌보며 말과 글 나란히 곱고 사랑스레 돌보기를 빌어요. 삶사랑이 말사랑 됩니다. 삶가꾸기가 말가꾸기 됩니다. 삶짓기가 말짓기 돼요.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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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간판 옷집

 


  헌책방을 꾸리는 분 가운데 간판을 굳이 올리지 않는 분이 있다. 예전 가게 간판을 그대로 두는 분이 있다. 이와 달리, 헌책방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드물다.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본다.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은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어떤 넋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이곳에 헌책방이 있었다는 자국을 치우지 않은 모습이 무척 반갑다. 문화부도, 시청이나 군청도, 신문사나 방송사도, 출판사나 작가나 시인도, 헌책방을 살뜰히 아끼는 법이 없고, 알뜰히 사랑한 일이 매우 드물다. 헌책방이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돌아보거나 갈무리하는 공무원이란 없으며, 헌책방 박물관도 없다. 헌책방 간판 하나 건사하는 기관이나 박물관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전주 홍지서림 골목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옷집은 ‘헌책방 간판’을 얌전히 두었다. 옷집 간판과 예전 헌책방 간판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간판 하나로도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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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0   좋아요 0 | URL
전주에 갔다오셨군요.저도 저 간판 기억납니다.한참 절판된 SF및 추리소설을 찾으로 전국을 누볐을때 저곳에서도 한 두권 구매한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늦었지만 함께살기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숲노래 2014-01-07 01:5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즐거우며 아름다운 새해 예쁘게 누리셔요~
 

전주 관광지도

 


  전국 어디에나 헌책방은 있다. 그러나 헌책방을 관광지도에 예쁘게 적어 넣는 지자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부산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있으나, 이곳을 관광지도에 넣은 지 아직 열 해가 안 된다. 서울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어떠할까? 서울 관광지도를 거의 본 일이 없어 모르겠는데, 서울 관광지도에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적어 넣었을까?


  곰곰이 헤아리면,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조차 관광지도에 안 넣기 일쑤이다.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까. 아니, 관광지도를 만드는 일은 공무원이 하는데, 공무원 스스로 책방마실을 누리거나 즐기지 않기에,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을 못한다고 느낀다.


  ‘전국 새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국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만큼 많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다. 이분들이 서로 조각조각 정보를 주고받은 열매를 얻어, 지난 2004년에 처음으로 ‘전국 헌책방 목록과 전화번호부’를 마무리짓고 세상에 두루 알렸다. 아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내려받아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이 꽤 될 테지. 관광지도에는 없으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리라.


  전주 관광지도에 〈홍지서림〉 한 군데는 나온다. 그렇지만, 〈홍지서림〉을 둘러싼 헌책방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홍지서럼〉이 있는 골목에 전주시는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술의 거리’라,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기에 예술인가. 전주시 공무원과 예술인한테 참말 차분히 여쭙고 싶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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