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줄기

 


바람 한 줄기
후박나무에 앉았다가
동백나무에서 쉬었다가
초피나무하고 손짓하고는
모과나무와 살그레 웃고
감나무랑 도란도란 얘기하더니
뽕나무 곁에 사뿐 내려앉아
오늘은 재 너머
오리나무한테 가는 길이라
바쁘단다.

 


4346.12.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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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안고 어르며 하루 내내 돌보는 나날은 아주 짧다. 아이들은 어느새 쑥쑥 자라 어른이 된다. 조그마한 몸으로 살포시 안기며 어버이 품을 따사로이 누리는 나날은 무척 짧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살가이 안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이 큰 뒤에도 살가이 안지 못한다. 아이들을 언제 어떻게 안으면서 하루를 어떻게 누릴 적에 즐거울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먹으면서 큰 아이들이 사랑을 물려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아이 곁에 서고, 조금만 더 따스히 아이 눈높이로 지내며, 조금만 더 보드랍게 아이 손을 잡고 하루를 누릴 수 있으면, 다 함께 활짝 웃는 삶 되겠지. 작은 눈빛이 사랑 되고, 작은 손길이 꿈 되며, 작은 마음이 빛줄기 된다. 4346.12..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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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타키무라 유우코 지음, 허앵두 옮김, 스즈키 나가코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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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67) 공功 1 : 공을 들이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맺어지는 하나의 열매이다. 우리는 각각 이 귀중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 한다
《엘렌 지 화잇/왕대아 옮김-가정과 건강》(시조사,1950) 머리말

 

  한자말 ‘가정(家庭)’은 한국말 ‘집안’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행복(幸福)’은 한국말 ‘즐거움’을 가리켜요. 그러니, “가정의 행복”이란 “집안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나 “집안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을 나타내요.


  “가족(家族)들의 끊임없는 노력(努力)으로”는 “식구들이 끊임없이 애써서”나 “식구들이 끊임없이 힘을 쏟아”로 손질합니다. “하나의 열매이다”는 “열매이다”로 고쳐 줍니다. ‘각각(各各)’은 ‘저마다’로 다듬고, “맺기 위(爲)하여”는 “맺으려면”으로 다듬습니다.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에서는 토씨 ‘-의’를 덜어 “날마다 공을 들여야”로 다듬어 줍니다. ‘귀중(貴重)한’은 “귀하고 중한”을 뜻한다 하는데, 이 글월에서는 흐름을 살펴 “고운 열매”나 “좋은 열매”나 “아름다운 열매”로 다듬어 봅니다.


  외마디 한자말 ‘공(功)’ 뜻풀이를 보면 “(1) = 공로(功勞) (2) = 공력(功力)”처럼 나옵니다. ‘공로(功勞)’는 “일을 마치거나 목적을 이루는 데 들인 노력과 수고”라 하고, ‘공력(功力)’은 “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힘”이라고 해요.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힘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힘을 쏟아야 한다
→ 날마다 땀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온힘을 다해야 한다
 …

 

  힘을 들여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땀을 들여서 고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을 듬뿍 들여서 달콤한 열매를 맺습니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즐겁게 힘을 들이고 땀을 들이면서 즐겁게 삶을 짓습니다.


  조그마한 일을 하든 커다란 일을 하든 즐겁게 ‘힘’을 들입니다. 언제나 기쁘게 ‘땀’을 쏟습니다. 한결같이 ‘온힘’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환하게 웃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온마음’을 바치는 동안 시나브로 예쁜 말빛이 흐드러집니다. 4337.7.4.해/4346.12.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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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은 식구들이 끊임없이 애써서 맺는 열매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 고운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힘을 들여야 한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1) 공功 2 : 공을 들였겠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 관리하고 보살피느라 집 주인도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따뜻한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혹한에 견디며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149쪽

 

  ‘자신(自身)이’는 이 글월에서 덜어도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이 아닌 “사랑하는 나무를”처럼 쓰면 돼요. ‘관리(管理)하다’는 ‘보살피다’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 글월에서는 겹말입니다. “관리하고 보살피느라”는 “보살피느라”로 바로잡습니다. ‘집 주인(主人)’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집임자’로 손질합니다. “나무도 따뜻한 자신(自身)의 고향(故鄕)을 떠나”는 “나무도 제가 태어난 따뜻한 곳을 떠나”나 “나무도 따뜻한 제 고향을 떠나”로 손보고, ‘이전(以前)에’는 ‘예전에’로 손보며, ‘경험(經驗)하지’는 ‘겪지’로 손봅니다. “혹한(酷寒)에 견디며 적응(適應)하느라”는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느라”나 “모진 추위를 견디며 지내느라”로 다듬어 줍니다.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 무척 땀을 들였겠지만
→ 무척 품을 들였겠지만
→ 무척 사랑을 들였겠지만
→ 무척 힘을 들였겠지만
→ 무척 애를 썼겠지만
 …

 

  보기글 끝쪽을 보면 “애를 썼을까요”라고 나옵니다. 이 대목처럼 앞쪽에도 “무척 애를 들였겠지만”이나 “무척 애를 썼겠지만”처럼 적으면 됩니다. 앞쪽과 뒤쪽을 살짝 다르게 적고 싶다면, 앞쪽에서는 “힘들 들였겠지만”처럼 적으면 돼요. 그런데, 사랑하는 나무를 보살핀다고 하니까, “사랑을 들였겠지만”처럼 적을 수 있고, “품을 들였겠지만”으로 적을 수 있어요. 4346.12.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랑하는 나무를 보살피느라 집임자도 무척 땀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제가 태어난 따뜻한 곳을 떠나 예전에 겪지 못한 모진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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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글쓰기 (강경옥 님 작품 표절 작가한테)

 


  강경옥 님이 그린 만화책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이 있다. 이 연속극 대본을 쓴 작가가 얼마나 안타까운 넋으로 글쓰기를 하는가를 놓고 글을 하나 썼는데, 어떤 사람이 내 글에 댓글을 붙여 주었다. 이 댓글에는, “8개가 겹쳐?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럼 콩쥐팥쥐는 신데렐라 표절이냐? 두 작품 사이에 유사성은 8개가 훨씬 넘어 인간들아 잘 나가는 작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생긴 것도 멋 같이 생긴 돼지 작가 강경옥 정말 노답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더 상처를 받아봐야 또다시 이런 짓 못하겠지 돼지 돼지 강경옥” 하는 이야기가 흐른다.


  곰곰이 이 댓글을 살피니 ‘잘 나가는 작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이라 말하는데, 그 방송작가라는 분이 얼마나 ‘잘 나가는 작가’인지 모르겠으나, ‘잘 나가는’ 틀을 놓고 따지자면, 만화가 강경옥 님은 1985년에 처음 만화가로 발을 디딜 적부터 만화밭에서 ‘잘 나가는 작가’였다. 이제 만화가로서 서른 해 발자취를 남길 텐데, 서른 해 동안 꾸준하게 새로운 작품을 내놓으면서 언제나 ‘잘 나가는 작가’로 이녁 만화를 우리한테 베푼다.


  표절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부터 안쓰럽지만, 표절 글쓰기를 하는 작가를 우러르거나 감싸면서, ‘표절을 한 원래 작품을 쓴 작가’를 함부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안쓰럽다. 어떻게 이 꼴이 되었을까. 어떻게 이 모양이 될까.


  표절 글쓰기를 해서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거나 연속극 대본을 내놓거나 책을 펴내는 이들 모두한테 말하고 싶다. 이녁들이 그렇게 표절 글쓰기로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거나 책을 팔아 보았자, 그런 빛이 얼마나 가겠는가? 나중에 죽어 무덤으로 들어갈 적에 마음이 가벼울까? 표절 글쓰기를 한 이녁 작품을 다른 누군가 슬그머니 다른 표절 글쓰기로 팔아치우려 한다면 이녁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


  표절 글쓰기를 하는 까닭은, 이렇게 할 때에 돈이 되고 이름값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 글쓰기를 하면서 글힘(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누리고 싶다면 누릴 노릇이리라. 그리고, 권력을 누리는 동안 참다운 사랑도 꿈도 빛도 이녁한테 깃들지 못하는 줄 느끼리라. 권력과 돈과 이름값이란 그야말로 덧없다. 며칠이나 갈까. 몇 해나 갈까.


  표절 글쓰기를 한 작가한테 아이가 있을까 궁금하다. 아이가 없다면 나중에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을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어버이가 표절 글쓰기를 했던 사람’인 줄 나중에 알아챈다면, 어버이로서 아이 앞에서 어떤 얼굴을 들 수 있을까.


  원래 작품에 제대로 글삯(저작권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돈을 아낀다든지 이녁 이름값을 더 높인다든지 하면서 겉보기로 무언가 대단한 것을 거머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름답게 거둔 돈이나 이름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못한 삶으로 이어진다. 아름답게 빚는 사랑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진다. 늦게 뉘우칠수록 스스로 수렁에 빠져든다. 늦게 고개 숙일수록 스스로 바보스러운 삶을 이을 뿐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작품을 선보이는 우리 모든 ‘글지기’들은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 때문에 글을 쓰지 않는다. 아름다운 빛을 글 한 자락으로 담아서 곱게 선보여, 우리 삶터를 사랑과 꿈이 가득한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일구고 싶기에 글을 쓴다. 표절 글쓰기를 한 작가와 이런 작가를 감싸는 사람들 모두 착하고 참다운 얼굴로 돌아오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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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와 분홍이 난 책읽기가 좋아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조세현 옮김 / 비룡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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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5

 


삶을 이루는 이야기
― 노랑이와 분홍이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
 조세현 옮김
 비룡소 펴냄, 2005.10.4.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람이 드세게 불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 한 점 없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낮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맞으며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우체국으로 가서 부칠 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과 우체국 사이는 2킬로미터라 그리 멀지 않지만, 드센 겨울 된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전거를 달려 돌아오는 길은 십오 분 남짓 걸립니다. 이틀 내리 찬바람을 먹으며 고단했는데, 조용한 아침볕과 아침바람을 누리니, 어제와 그제 있던 일이 참말 있었나 알쏭달쏭합니다.


  아침밥을 끓입니다. 어제 불린 쌀을 끓입니다. 누런쌀에는 바구미가 꽤 들어서 한참 바구니를 솎습니다. 이 바구미는 어떻게 쌀봉지에서 알을 깨고 쌀알을 파먹는지 궁금합니다. 바구미는 추운 겨울에도 안 죽는지, 물에 불려도 안 죽는지 참 궁금합니다. 바구미한테는 쌀알만 있으면 될까요. 바구미는 쌀알만으로도 즐겁게 삶을 짓고 알을 까면서 신나게 지낼 만할까요.


.. 어느 날, 작은 나무 인형 둘이 오래된 신문지 위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 ..  (5쪽)


  시골에서는 햇살과 햇발을 언제나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처럼 높다란 건물이 있지 않으며, 도시처럼 자동차 싱싱 쌩쌩 넘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골에서 살더라도 멧자락을 바라보지 않고 구름을 마주하지 않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햇살이나 햇살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늘을 누리고 햇살과 햇발을 포근히 안으려는 마음일 때에, 시골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늘과 햇살과 햇발을 따사롭게 맞이할 수 있어요.


  지난 여름 끝물에 처마 밑 제비들이 떠났지만, 한가을에 딱새 두 마리가 빈 제비집에 깃들었습니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 겨울나기를 하려는 딱새 두 마리는 아침저녁으로 딱딱딱 노래를 들려줍니다. 딱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딱딱딱 들린대서 옛사람은 이 새한테 딱새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을까요.


  이른아침에 마루문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면 처마 밑 둥지 딱새는 화들짝 놀라 포르릉 날아갑니다. 날아간댔자, 우리 집 마당 초피나무나 후박나무 사이로 날아갑니다. 멀리 가지 않습니다. 마당에서 딱새들이 무얼 하나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면 이윽고 딱새는 다시 처마 밑 둥지로 돌아갑니다. 딱새한테 이 제비집이 무척 포근한가 봐요. 그나저나 딱새가 빈 제비집에서 오래 지내면 딱새 냄새가 남을 텐데, 이듬해 새봄에 제비들이 다시 이 둥지로 돌아올까 모르겠어요.


.. 노랑이가 또 물었어. “우리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니?” 분홍이가 대답했지. “아니, 난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걸.” ..  (7쪽)


  솥끝이 터서 여러 날 물을 제대로 못 만지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물 만질 사람은 나 혼자이니 손가락을 밴드로 감싸고 씌우개로 씌우고 하면서 물을 만졌어요.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겼어요. 다만, 아이들을 씻기더라도 내 몸은 안 씻습니다. 아이들은 씻겨야겠다 생각하며 씻기지만, 손가락 따끔거림 때문에 내 몸은 나중에 손가락이 다 아물고 나서 씻자고 생각합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곧잘 설거지를 거듭니다. 이 작은 아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내가 설거지 해도 돼?” 같은 말이 샘솟을 수 있을까요.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서 집일을 거드는 이 마음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을까요.


  고운 빛은 곱게 흐르며 고운 넋이 됩니다. 고운 넋은 다시 흘러 고운 사랑이 됩니다. 고운 사랑은 따사룬 빛처럼 곱게 감돌며 고운 삶 됩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 적에 고운 빛을 누릴까요. 우리들은 서로 어떻게 얼크러질 적에 고운 넋을 나눌까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꿈을 키워 하루하루 가꿀 적에 고운 사랑을 꽃피울까요.


.. 분홍이는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마구 웃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요리조리 움직이는 팔이랑, 앞뒤로 돌아가는 머리랑, 숨 쉬는 코랑, 걷는 발이랑, 이 모든 게 그냥 생겨난 거란 말이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11쪽)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 《노랑이와 분홍이》(비룡소,2005)를 읽습니다. 노랑이와 분홍이는 인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하고 움직일 줄 알며 숨을 쉬는 인형이라고 해요.


  노랑이와 분홍이는 참말 인형일 뿐일까요. 몸집 커다란 사람은 이 인형을 만든 님일까요. 사람은 참말 사람일 뿐일까요. 사람 또한 어떤 다른 큰 님이 빚은 인형은 아닐까요.


  나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꽃은 어떻게 피어났을까요. 풀은 어떻게 자랐을까요. 새는 누구일까요. 벌레는 무엇일까요. 짐승은 무엇이지요. 물고기는 누구인가요.


  하늘은 왜 파랗게 빛나고, 들은 왜 푸르게 빛날까요. 우리 몸은 왜 물로 이루어졌고, 바람은 어떻게 이토록 싱그럽게 흐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유전자나 조합식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지구별을 밝히지는 못합니다. 씨앗이 왜 태어나고, 씨앗에서 왜 목숨이 자라는가를 어느 과학도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학문으로 과학을 하고, 시험공부로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쳐요. 참말 무엇을 헤아리거나 가르치는가요. 참말 무엇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가요.


.. “하지만 너랑 나는 왜 이렇게 다르지?” 분홍이가 말했어 ..  (25쪽)


  그림책 《노랑이와 분홍이》를 보면, 첫머리인 5쪽에 “분홍이고 …… 노랑이었어”라 나옵니다. 첫 판이 아닌 무척 많이 찍고 널리 사랑받는 책인데, 아직도 이 잘못된 말투를 바로잡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두 숨결은 ‘분홍이’요 ‘노랑이’입니다. “분홍이고 …… 노랑이었어”가 아니라 “분홍이이고 …… 노랑이였어”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이 작은 그림책에는 이밖에도 올바르지 않은 말투가 곳곳에 드러납니다. 몇 가지만 골라서 가다듬어 봅니다.


- 신문지 위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
→ 신문지에 누워서 햇볕을 쬐었어 

 

- 뭐 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니
→ 뭐 하는지 너 아니 

 

- 기억이 안 나는걸
→ 생각이 안 나는걸 

 

- 마구 웃기 시작했어
→ 마구 웃었어 

 

- 모든 게 그냥 생겨난 거란 말이지
→ 모두 다 그냥 생겨났단 말이지 

 

- 불가능한 일이니까! 절대로 불가능해
→ 터무니없는 일이니까! 도무지 말이 안 돼


  자리에 앉으라 할 적에는 “자리에 앉으라” 할 뿐입니다. “걸상에 앉아”라 하지 “걸상 위에 앉아”라 하지 않아요. 영어에서는 ‘위’를 가리키는 전치사라든지 낱말을 쓸는지 모르나, 한국말은 영어가 아닙니다. 한국말은 한국말대로 알맞게 써야지요. 이런 말투 저런 글월로 이 그림책을 엮어도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럭저럭 읽힐 만하고, 글을 읽는 아이들도 혼자서 이 그림책을 읽을 만합니다. 그러나,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은 말투로 엮은 그림책을 읽는다면,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은 말투에 젖어들 테지요.


  아이들이 읽도록 엮는 그림책은 말투 하나와 토씨 하나까지 더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삶을 보여주는 어른들은 매무새와 말씨를 스스로 아름답게 추스르면서 착하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즐겁게 누리는 삶인 줄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삶인 줄 서로 깨달아 빙그레 웃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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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3-12-28 09:4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아직 못 읽었네요.
그나저나 손이 다쳤는데 계속 물일을 해야 해서 상처가 잘 아물지 않겠어요. ㅠㅠ

숲노래 2013-12-28 11:55   좋아요 0 | URL
아물지 않아도, 자꾸 물일 하고 또 하면...
알아서 아물더라구요 ^^;;;
그러나 손은 되게 못생긴 모습이 되지요~

그래도, 그런 것도 예쁜 훈장이라고 느껴요 ^^

착한시경 2013-12-28 09: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당나귀 실베스타와 요술조약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숲노래 2013-12-28 11:56   좋아요 0 | URL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과 동화책은
모두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느껴요.
하나하나 즐겁게 찾아서 읽고
밝은 사랑을 누려 보셔요~

저는 야금야금 하나씩 찾아서 즐기는데
이제 몇 작품만 더 보면
한국에 번역된 책은 모두 모을 수 있어요.
아아아... 아직 번역 안 된 다른 작품을
언제 구경해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