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 오줌그릇

 


  9월 24일, 작은아이가 오줌그릇에 두 차례 쉬를 눈다. 다만, 두 차례로 끝났고, 이듬날에는 오줌그릇에 쉬를 누지 않는다. 그래도 열여섯 달만에 비로소 오줌가리기를 시킬 수 있던 셈이다. 퍽 더디더디 가는 노릇인데, 이제 하루에 한두 차례씩 오줌그릇 쓰기를 익히면, 방바닥이고 마룻바닥이고 부엌이고 오줌바다가 되는 일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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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9.22.
 :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마실

 


- 포두면 남성리 이웃마을로 마실을 가기로 한다. 작은아이까지 함께 갈까 싶다가, 작은아이는 낮에 이마가 조금 뜨거웠고, 한참 낮잠을 자느라, 큰아이만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리기로 한다.

 

- 큰아이랑 둘이서 자전거를 달린다. 퍽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앞서까지 이렇게 늘 둘이서 자전거를 달렸다. 큰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는데, 작은아이는 돌 언저리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다. 오늘은 작은아이가 없어 한결 가벼운 자전거는 아니다. 이웃마을에 마실을 가느라 실은 책짐 무게가 제법 되어 여느 때처럼 두 아이를 실은 무게인 자전거이다. 발포 바닷가를 지나는 오르내리막을 달린다. 두 아이를 태우며 이만 한 힘으로 이만 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포를 지나 덕산마을로 넘어서려는데 고갯마루가 퍽 가파르다. 높이는 그리 안 높지만,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너머 옆마을인 만큼, 고갯마루가 두 마을을 가른다. 이곳에 이러한 찻길이 없었을 옛날에는 두 마을이 어떻게 오갔을까. 아마 멧골을 타면서 오갔겠지. 꽤 가파른 멧골을 지게를 짊어지며 오갔겠지.

 

- 덕산마을을 지나며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아도 예쁜 마을이구나 싶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내려서야 비로소 얼마나 예쁜가를 알 만하겠다고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마을이든 이웃한 마을이든, 우리 보금자리가 어떤 모습이요 빛깔이며 내음인가를 헤아리자면, 두 다리로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안아야지 싶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본다.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쬔다. 이러는 동안 천천히 마을과 숲과 삶과 꿈을 읽는다.

 

- 자전거에서 내려 살짝 다리쉼을 한 다음 더 달린다. 익금 나루터 옆을 지난다. 나루터 옆이니 또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옆인데, 이곳에서 남성리로 넘어서는 고갯마루를 새삼스레 올라야 한다. 다섯 살 큰아이가 뒤에서 외친다. “아버지 힘내세요!” 그래, 힘낼게. 기운내서 이 고개를 넘을게.

 

- 땀 펑펑 흘리며 고갯마루를 다 넘는다. 논에 물을 대는 못 옆으로 난 논길을 달린다. 누렇게 익은 논 사이를 지나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거쳐 이웃집에 닿는다. 이곳은 그러께 즈음 고흥에 자리잡은 이웃집이다. 오늘 이곳에서 모임이 있기에 찾아온다. 나를 뺀 모든 분들은 자가용을 몰고 왔다. 아마 다들 생각하리라. 시골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 자가용 있으면 가뿐하겠지. 자가용 있기에 제법 먼 데도 다니겠지. 시골에서는 두어 시간에 한 차례 군내버스 지나가는데, 자가용 있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다닐 만하겠지. 그런데, 다들 자가용을 굴리려 하니까 군내버스도 훨씬 적게 다니지 않을까. 모두들 자가용을 몰려고 하니까 자꾸자꾸 새 찻길이 늘고, 숲이 줄며, 우리 삶터가 메마르고 말지 않을까. 저마다 자가용을 한두 대쯤 굴리니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와 흙땅이 사라지는 셈 아닌가.

 

- 모임은 밤이 깊을수록 더 무르익는다. 나는 큰아이를 재워야 하기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찍 빠져나온다. 천천히 까매지는 하늘을 본다. 달이 뜬다. 반달이다. 고운 반달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덮는다. 뒷등만 켜고 앞등은 안 켠다. 저 멀리 앞에서 마주 달리는 자동차 보일 때에만 앞등을 켠다. 등불 하나 없는 호젓한 숲속 시골길을 불빛 없이 달리고 싶다. 꾸벅꾸벅 조는 큰아이가 이 호젓한 시골 저녁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빈다. 달빛에 기대고 별빛을 바라보며 집에 닿는다. 큰아이는 아주 곯아떨어졌다.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땀투성이 몸을 씻는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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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2.8.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시골에 도서관을 여는 일을 헤아려 본다. 시골에는 사람이 적으니까 굳이 도서관을 안 열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뜻밖에 참 많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가야 하니까 도시에 열어야 하고, 도시에서도 시내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내가 서재도서관으로 꾸리는 ‘사진책 전문’ 도서관 또한,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찾아오기 쉬운 커다란 도시 시내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고들 말씀한다.


  도서관이라는 곳을 찬찬히 그려 본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많이 읽어 주면 책이 반갑게 여기리라 느낀다. 다만, 반갑게 여기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가장 좋으며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이란 종이꾸러미로 엮을 때에만 책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 살아가는 몸짓과 말짓과 마음짓 모두 책이라고 느낀다. 곧, 시골에서는 흙을 만지고 햇살을 쬐며 새와 벌레 노랫소리 듣는 일 모두 책읽기가 된다고 느낀다.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애써 종이꾸러미 책을 안 읽어도 될 만하다. 그러나, 언제나 삶책과 자연책과 나무책과 풀책을 읽기에, 여기에 다른 한 자리로 종이책을 읽으면서, 마음과 몸을 고르게 살찌울 수 있으리라 느낀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도시에는 ‘종이책 도서관’에 앞서 ‘자연책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숲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도시 아파트나 건물 사이사이 조그맣게라도 숲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가 득시글거리는 찻길 한켠에는 길다랗게 숲길이 이루어져, 이 거님길 걷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을 느끼면서 햇살과 바람을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교나 공공기관도 자동차 대기 좋은 아스팔트 바닥만 마련하지 말고, 두 다리로 사뿐사뿐 디딜 흙땅과 숲이 얼마쯤 있어야 한다. 방음벽을 세우지 말고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룰 노릇이다. 전철이 지나는 기찻길 옆이든, 고속도로 가로지르는 곁이든, 어디에나 숲이 있고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야지 싶다. 먼저 이렇게 도시가 숲 품에 안기도록 하고 나서야, 종이꾸러미로 된 책을 갖추는 도서관을 마을마다 알맞춤하게 세워야지 싶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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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 (도서관일기 2012.8.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름에는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며 책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책 갈무리는 끝냈어도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큰아이가 한참 크던 세 살 적에 인천을 떠나 충북 음성 멧골로 갈 적에도 이와 비슷했는데, 아이들하고 집에서 함께 부대끼는 겨를을 보내느라 막상 도서관에 머물며 책손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언제나 내 마음은 ‘책보다 아이’ 쪽으로 기운다. 이제 둘째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는 두 살이니, 작은아이하고 복닥이고 큰아이하고도 어울리면서 ‘도서관보다 집’에 오래 머문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들 크는 나날이란 짧으리라.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크리라. 그동안 집에서는 집살림 잘 꾸리고, 책을 둔 도서관에서는 책이 안 다치고 곱게 깃들도록 하면 되리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도서관보다, 책 하나 알뜰히 아낄 고운 책손을 바라는 만큼, 책바다에서 책사랑을 익히고픈 이라면 언제라도 즐거이 마실을 올 테며, 이때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손을 맞이하며 함께 놀 수 있겠지.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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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676) 코드(code) 1

 

  언제부터인가 유행말처럼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여러 기관장을 뽑을 때에 “코드 인사”를 한다고도 말합니다. 참말 ‘코드’가 무엇이기에 여러 곳에 이 영어가 쓰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설마 싶어 국어사전부터 뒤적이는데, 뜻밖에 국어사전에 영어 ‘코드(code)’가 “(1) 어떤 사회나 계급, 직업 따위에서의 규약이나 관례 (2) 상사(商社)가 국제 전보에서 정하여 두고 쓰는 약호나 기호 (3) 정보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 체계. 데이터 코드, 기능 코드, 오류를 검사하기 위한 검사 코드 따위가 있다”처럼 세 가지 말풀이를 달고 실립니다. 영어사전에서 다시 ‘code’를 찾아보면 “(1) 암호, 부호 (2) = dialling code (3) 프로그램 데이터 코드 (4) (사회적) 관례 (5) (조직·국가의) 법규”라고 풀이합니다.


  이래저래 따지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이나 “코드 인사”라고 하는 ‘코드’하고 걸맞는 말뜻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래저래 따지자면, “기호(嗜好)가 맞는 사람”이 “코드가 맞는 사람”일 텐데, 영어 ‘code’는 ‘記號’이지 ‘嗜好’는 아니에요.

 

 대통령과 생각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말이 안 맞다
 대통령과 느낌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마음이 안 맞다

 

  “뜻이 맞다”거나 “죽이 맞다”고 할 때에 비로소 ‘코드’하고 어울리는 말마디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어를 쓰자면 올바로 쓸 일이에요. 굳이 영어 아니어도 될 말마디이니, 알맞고 바르게 한국말을 살피면 좋겠어요. (4336.7.1.불./4345.9.25.불.ㅎㄲㅅㄱ)

 

..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7) 코드(code) 2

 

허균과 허난설헌, 우리 시대에도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51쪽

 

 “우리 시대(時代)에도”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오늘날에도”나 “요즈음에도”로 손볼 수 있어요. ‘계속(繼續)’은 ‘꾸준히’나 ‘한결같이’로 손질하고, ‘호출(呼出)해야’는 ‘불러야’나 ‘모셔야’나 ‘생각해야’나 ‘끌어들여야’로 손질해 줍니다.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 꾸준히 불러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 한결같이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인가요
→ 다시 되뇌어야 하는 꼭지점인가요
 …

 

  사람을 가리키니 ‘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를 살핀다면 ‘이야기’라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둘러싼 무언가를 밝히거나 따진다면 ‘대목’이나 ‘꼭지점’ 같은 낱말을 들면 됩니다. 말투를 바꾸어, “오늘날에도 생각해야 하는가요”라든지 “요즈음에도 이야기할 값어치가 있는가요”처럼 말할 수 있겠지요. (4345.9.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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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허난설헌, 오늘날에도 꾸준히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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