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 박대원 사진집 안목 모노그래프 1
박대원 사진, 박태희 글 / 안목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2월호(3호)에 사진비평으로 실은 글이다. 잡지에 이 글이 통째로 다 실렸는지, 간추려 실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포토닷> 3호가 나왔으니, 기쁘게 이 느낌글을 띄운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4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는 사진
―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박대원 사진
 안목 펴냄, 2013.12.25.

 

 


  사진은 잘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다울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빗대어 말한다면, 노래는 노래다울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글은 글답고 그림은 그림다우며 만화는 만화다울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괜스레 치레한다면서 노래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에 이것저것 붙이거나 꾸미면 노래도 글도 그림도 만화도 안 된다고 느낍니다. 그저 노래이면 되고 글이면 돼요. 달리 무엇을 붙이거나 달아야 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꽃을 꽂아야 더 예쁘지 않습니다. 꽃은 꽃대로 풀숲이나 들판에서 피고 지는 모습 그대로 예쁩니다. 사람은 꽃으로 꾸미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쁩니다. 사진도 이와 같아요. 이런 솜씨나 저런 재주를 부릴 적에 한결 멋들어지거나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솜씨를 부리면 ‘솜씨 부린 모습’이 드러납니다. 재주를 부리면 ‘재주 부린 모습’이 나타나요.


  오랫동안 사귄 벗님이나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 ‘오랫동안 사귄 결’이 오롯이 깃듭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문득 찍으면, ‘처음 만난 이’라는 느낌이 오롯이 나타납니다. 사진을 허둥지둥 찍어 보셔요. 찍은 이 스스로 이 느낌을 잘 알아챕니다. 오래오래 지켜보다가 가만히 찍어 보셔요. 찍은 이 스스로 이 느낌을 곧바로 깨닫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사진기는 비싼 것이야’ 하고 생각하면, 이 생각이 곧바로 사진에 서립니다. 사진을 찍으며 ‘내 사진기는 값싼 것이야’ 하고 생각하면, 이때에는 또 이때대로 이 생각이 고스란히 사진에 감돕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속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진을 찍으면 늘 마음속 모습과 빛깔과 무늬가 하나하나 박힙니다.

 

 


.. 황학동에서 허탕치고 오는 길이다. “저, 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요!” “이 꼴을요?” 허 참! 하며 어이없어라 웃는다. 이 꼴, 아름답지 않은가 ..  (12쪽 사진)


  박대원 님이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안목,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은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이지만, 한 장 두 장 사진을 넘기는 동안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이 사진책 이름으로 “노숙자”라든지 “몸이 아픈 친구”라든지 “비둘기 날다”라든지 “우리 아이 사랑스럽네”라든지 “구름이 내려앉은 도시”를 붙였어도 이런 느낌이 그대로였으리라 생각해요. 책에 붙인 이름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겉에 넣은 사진이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이니, 그저 그렇구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아이스께끼를 파는 여인은 내 곁님일 수 있고 내 오랜 동무일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일벗일 수 있고, 이웃집 아낙일 수 있습니다. 이녁한테 어떤 이름을 붙이든 대단하지 않아요. 내 마음속에 드리우는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담았을 뿐이요,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엮는 사진을 빚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란,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는 일입니다. 내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으니 사진입니다. 내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어 이웃과 동무하고 빙그레 웃고 싶으니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내가 선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박대원 님은 황학동에서 무엇을 허탕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황학동에서 허탕을 쳤기에 12쪽에 넣은 사진 하나, “이 꼴,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놀라며 즐거워 할 만한 사진을 얻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 허탕이었을까요. 얼마나 예쁘고 멋진 허탕이었을까요.

 

 

 


.. “왜 벌써 가시게요, 형님?” 그 사이 나는 ‘형님’이 되어 있었다. “나 쪽방 있어요! 형님은 어디 잘 데나 있는가요?” 딴데 가지 말고 같이 가자며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외로워서이리라. 요 며칠 전 일하다 넘어져 퉁퉁 부은 눈, 그 눈이 젖는다. 나는 또 만나면 되니 사진 좀 찍게 한 번 웃어 보라고 그를 어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웃지 못 하고 혼자 말끝을 흐린다. “어떻게 웃는 건지 …… 다 잊어버려서요.” ..  (67쪽 사진)


  누군가는 어떻게 웃는지 잊습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웃는지 잊은 이와 형과 동생이 되어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를 영글어서 선보이는 사진꾼 한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67쪽에 넣은 사진 하나를 놓고, 참 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자리가 된다면 훨씬 더 길게 풀어 놓았을 이야기를, 따로 책 한두 권으로 더 풀어 놓을 만한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담은 뒤 말 몇 마디로 마무리합니다.


  사진 하나에 담는 이야기는 얼마나 길거나 짧을까요. 이야기 하나 없이 사진만 있을 수 있을까요. 사진 하나를 들여다보면서 아무런 이야기를 느낄 수 없다면, 아무런 이야기는 느낄 수 없는데 ‘참 멋진 작품이네’ 하고 말한다면, 어떠한 이야기도 샘솟지 않는데 ‘참 그럴듯한 예술이네’ 하고 말한다면, 이런 사진은 어떤 뜻이요 어떤 값이 될까요.


  이리하여, 사진찍기란, 마음속에 사랑을 심는 일입니다. 사랑 씨앗 한 톨을 마음속에 심고 싶어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나날을 곱게 그리면서 씨앗 한 톨 심는 넋이 사진 찍는 손길로 나타납니다.

 

 

 


.. 노숙자 사진은 애써 피해 온 터이다. “한 장 찍어 주소.” “예?” “내 사진 한 장 …….” “아∼! 예, 찍어 드리죠.” 엉겁결에 대답은 했지만 막막했다. 그냥 막스냅이라면 몰라도. “한 장에 얼마요?” “돈은 안 받습니다.” “…… 고맙소.” (73쪽 사진)


  사진기 만든 사람이나 회사는 돈을 벌 생각이었겠지요. 우리들이 쓰는 사진기는 많든 적든 값을 치러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필름 만드는 회사도 돈이 안 되니 필름을 예전처럼 만들지 않아요. 필름을 만들다고 문을 닫은 회사도 있습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만들어 주던 사진관도 꽤 문을 닫았어요. 아무래도, 모두 돈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진은 돈이 있어야 찍거나 읽을 수 있을까요. 돈이 없으면 사진을 못 찍고 못 읽을까요.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진을 누릴 수 있는가요. 돈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사진을 제대로 못 읽거나 찬찬히 안 읽는가요.


  노래를 하고 싶으나 기타 살 돈이 없을 수 있어요. 노래를 즐기고 싶지만 피아노 장만할 돈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요, 돈이 없어 기타나 피아노를 못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타나 피아노만 악기가 아니에요. 아주 값싼 기타나 피아노도 있어요. 빌려서 칠 수 있고, 푼푼이 돈을 모아서 악기를 장만할 수 있어요. 아무 악기 없이 맨손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손수 나무를 깎아 새로운 악기를 만들 수 있어요. 손뼉으로 가락을 넣을 수 있어요. 발을 구르며 가락을 지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려 찰칵찰칵 사진놀이를 해요. 눈을 찡긋 감았다 뜨면서 사진놀이를 해요. 필름을 쓰거나 중형사진기나 대형사진기를 써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쓰든, 손전화기에 딸린 사진 기능을 쓰든, 편의점에서 1회용사진기를 사다가 쓰든, 모두 사진이 되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기계로 찍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진은 졸업장으로 찍지 않아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먼 나라로 유학을 다녀와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이름난 어느 작가한테서 배워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머릿속에 이론을 잔뜩 집어넣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학교를 다니며 글을 배우거나 교과서를 익혀야 글을 쓰지 않아요. 악보를 읽거나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아요. 즐겁게 쓰는 글이고, 즐겁게 부르는 노래예요. 사진 또한 즐겁게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에요.

 

 

 


.. 파지가 그냥 파지 되는 게 아니었다. 종이에 따라 분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책은 겉 표지와 속 종이가 나눠져야 한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얼마나 많이 나는 속을 모른 채 겉만 찍었던가 ..  (126쪽 사진)


  사진은 마음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랑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은 꿈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은 무엇을 찍었을까요?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을 펴낸 출판사 일꾼은 어떤 이야기와 어떤 사진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고픈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은 예나 이제나 바로 이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작가’들이 만들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사랑 한 타래와 꿈 한 모금과 빛 한 줄기를 어우르면서 활짝 웃는 꽃내음으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백 해쯤 지난 뒤에, 앞으로 이백 해쯤 흐르고 나서, 앞으로 오백 해쯤 삶이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어떤 사진책을 들추면서 어떤 사진을 바라보고 가슴이 촉촉히 젖어들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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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못 쓴 시

 


  설날에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에 시를 쓰려 했지만, 시를 한 줄도 못 썼다.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작은아버지하고 작은어머니하고 사촌동생한테 시를 하나씩 써서 선물하고 싶었는데, 연필을 쥐고 공책을 펼치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시를 못 쓴다. 신나게 놀다가 잠든 아이들을 품에 안아 다독이며 재울 뿐, 공책을 펼칠 겨를을 내지 못했다.


  설날 언저리에 왜 시를 못 썼을까. 아무래도, 작은댁 식구들이 아무도 안 왔기 때문이리라. 작은댁 식구는 긴 설 연휴에 외국여행을 떠났다. 우리 아버지는 동생(작은아버지)들한테 몹시 부아가 나셨다. (아버지한테는) 전화 한 통 없이 외국여행을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아를 삭히며 새해인사라도 하려고 동생들한테 전화를 거는데 아무도 안 받는다. 더 부아가 나신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낳아서 돌본 아버지와 어머니(내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삿날에마저 다른 일로 바빠서 안 오는 동생들을 놓고 여느 때에도 몹시 부아가 나셨으니, 설에는 더더욱 부아가 나셨으리라. 나도 설에 안 찾아온 작은댁 식구들한테 써서 줄 시가 없다. 아니, 떠오르지 않는다. 막상 쓰더라도 건넬 길이 없기도 하다.


  고운 종이에 정갈하게 옮겨적은 시노래를 선물하고 싶어도, 받을 사람이 없다면 쓸 수 없다. 누군가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은 아니다만, 받을 사람이 없다면 선물도 못 하지 않는가. 받을 사람이 있기에 선물을 하지 않는가. 읽을 사람이 있어서 쓰는 글이라기보다, 사랑받을 사람이 있기에 사랑을 담아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글을 쓰는 사람이란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글을 읽는 사람이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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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3] 놀라운 아침맞이
― 포근한 겨울날 손님

 


  설날에 고흥을 떠나 음성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습니다. 음성은 눈이 안 녹았고 얼음이 꽤 두껍습니다. 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오니 아직 한겨울인데 얼마나 폭한지, 낮에는 17℃까지 올라갔고, 오늘도 아침이 무척 포근합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마당에 서도 춥지 않습니다. 아니, 시원하고 상큼합니다.


  뒷간에서 똥을 누면서 문을 살짝 열고 마당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로 마을 참새가 예닐곱 마리쯤 내려앉아서 조잘거립니다. 직박구리와 딱새와 박새 들이 우리 집 뒤꼍에서 부산스레 춤추듯 날아다닙니다. 이른아침부터 온통 새노래입니다. 날씨가 따스하니 새들도 즐거운듯 이곳저곳 날아다니면서 노닙니다.


  새는 겨울에도 살아갑니다. 봄 여름 가을뿐 아니라, 겨울에도 바지런히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며 새끼를 돌봅니다.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깃든 딱새 두 마리도 언제나 딱딱딱 재미난 노래를 들려주고, 까치와 까마귀와 멧비둘기도 새삼스럽게 노래를 들려줍니다.


  시골살이란 무엇일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예나 이제나 시골에는 숲이 있고, 숲에는 새가 있습니다. 숲에는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며, 새는 애벌레를 잡아먹습니다. 나무는 애벌레한테 잎사귀를 내줄 뿐 아니라, 새한테 보금자리를 내줍니다. 사람은 나무 곁에서 애벌레가 깨어난 나비춤을 누리고, 애벌레를 잡아먹는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이러면서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모아 장작으로 삼고 집을 지으며 살림살이를 짜요.


  언제나 새노래를 듣는 시골살이입니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 아닌,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여기에 풀벌레 노랫가락이 감돌고, 개구리와 맹꽁이와 두꺼비 노랫자락이 얼크러집니다. 매미도 한몫 단단히 노랫사위 들려주어요. 곧, 시골살이란 시골노래입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노래를 듣고, 이렇게 듣는 노래에 절로 신이 나서 새삼스레 일노래와 놀이노래를 불러요. 그러면,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매미는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며, 새롭게 맞노래를 베풉니다.


  포근한 겨울날 우리 집 둘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어여쁜 손님을 맞이합니다. 얘들아, 고맙구나. 얘들아, 모두 반갑구나. 마음껏 춤추고, 기쁘게 노래하렴. 아름답게 날갯짓하고, 사랑스럽게 먹이를 찾으렴.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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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큰아이, 처음으로 책을 사다

 


  우리 집 큰아이는 그동안 이 책도 고르고 저 책도 고르곤 했다. 아버지 어머니랑 책방마실을 수없이 다니면서, 아이 마음에 드는 책은 모두 골라서 장만했다고 할 만하다. 이번 설에 할머니한테서 세뱃돈을 이만 원 탄 큰아이는 주머니에 돈을 넣고 시골집까지 돌아왔다. 고흥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만하는데, 큰아이는 색칠하기 그림책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너 혼자 그림 잘 그리면서 굳이 이런 책을 봐야 하겠니,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저 책 사고 싶어?” “응.” “그러면, 할머니한테서 받은 돈 줘 봐.” “왜?” “네가 받은 돈으로 사면 되지.”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자.” “한 장만 주면 돼. 한 장은 주머니에 도로 넣어.”


  2014년 2월 1일, 일곱 살 큰아이는 제 돈으로 제 책을 처음으로 산다. 이제껏 아버지나 어머니 돈으로 제 책을 장만했지만, 이날 처음으로 제 돈을 치러 제 책을 산다. 네가 보고 싶은 책이라면, 네가 즐기고 싶은 책이라면, 앞으로 네가 스스로 즐겁게 돈을 벌어서 예쁘게 장만하면 돼. 남한테서 선물받는 책도 좋고, 네가 스스로한테 선물하는 책도 좋아.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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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30. 큰아이―그림에 담는 빛

 


  아이와 마주보고 앉아서 그림을 함께 그린다. 나는 나비를 그리면서 겹겹이 알록달록 빛깔옷을 입힌다. 큰아이가 아버지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저도 따라서 겹겹이 알록달록 빛깔옷을 입힌다. 나는 아이더러 그림을 어떻게 그리라고 시키거나 말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는 아버지 그림을 따라해 보기도 하고, 제 나름대로 그리기도 하면서 하나씩 새롭게 느끼거나 익히리라 본다. 언제나 즐겁게 그리면 된다. 아름다운 그림이란, 즐겁게 사랑하는 웃음을 담을 때에 태어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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