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아이들

 


  하룻밤 바깥마실 다녀온 아버지가 시골집에 저녁 아홉 시 무렵 돌아온다. 바깥 볼일 보는 사이 집에 전화를 하면, 여섯 살 큰아이가 집전화 받으면서 “아버지 집에 없어서 울었어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잘 지내려나. 하룻밤 사이에 돌아오자니 몹시 벅차지만, 몸이 고단하면 시골집에서 여러 날 쉬면 다 풀리리라 생각한다. 바쁜 걸음으로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아이들을 부른다. 두 아이 모두 저녁 아홉 시가 넘고 열 시가 되도록 좀처럼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는다. 두 눈은 틀림없이 졸린 눈이다. 아니, 졸음이 넘치고 넘쳐 어찌할 바 모르는 눈이다. 여느 날은 작은아이부터 안아서 재우나, 오늘은 큰아이부터 안아서 재운다. 아버지 품에 안긴 큰아이는 말도 투정도 떼도 없이 몸을 맡기고 고개를 파묻는다. 잠자리에 반듯하게 눕히자마자 곯아떨어진다. 하룻밤이라지만, 그끄제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가 그제 늦은 저녁 돌아왔으니, 너희한테는 거의 이틀 동안 아버지 얼굴 못 본 셈일 테지. 기다려 주어 고맙다. 아버지도 너희를 생각하며 한결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다짐을 한다.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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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똥

 


  자는 아이가 끄응끄응 소리를 내기에 왜 그런가 하고 들여다본다. 이불을 걷어차는가 싶어 이불을 여미려 하는데 이불 한쪽이 촉촉하다. 쉬를 누었나. 바지 앞쪽을 만진다. 안 젖었다. 뭘까. 문득 옆지기가 말한다. “냄새 나지 않아요?” 응? 이불 젖은 자리를 손으로 비빈 다음 코에 댄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옆방 불을 켠다. 아이 몸을 돌려 엉덩이를 본다. 엉덩이 쪽이 흥건하게 젖었다. 아, 자면서 응가를 누었구나. 왼팔로 작은아이를 안고 씻는방으로 간다. 바지를 벗기고 물을 틀어 똥꼬와 다리와 발바닥을 씻긴다. 똥 묻은 아랫도리를 씻기니 작은아이가 으앙 하고 운다. 그러나 작은아이를 왼팔로 품에 안아 다독이니 울음을 그친다. 이내 새근새근 잠든다. 천으로 물기를 닦는다. 한팔로 안은 채 바지를 새로 입힌다. 조금 더 품에 안아 다독이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 눕힌다. 깊이 잠들었는지 깨지 않는다. 속이 더부룩해서 자다가 똥을 누었나 보다. 시원하게 다 누었을까. 개운한 얼굴로 잘 자는 아이를 바라본다. 똥바지 빨래는 아침에 하기로 한다. 434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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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어젯밤 자면서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인가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웃을 때에만 웃는 어버이는 아닌가 돌아본다. 아이들이 골을 부릴 때에 똑같이 골을 부리는 어버이는 아닌가 곱씹는다. 내 목소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된다. 내가 웃는 목소리일 때에 아이들 또한 웃는 목소리가 된다. 내가 골을 부리는 목소리라면, 아이들도 자꾸자꾸 골을 부리는 목소리를 흉내내려 하겠지.


  왜 어버이가 아이한테 자장노래를 불러 주는가. 새근새근 예쁘게 재우고 싶은 마음에, 어버이 스스로 고운 목소리 되어, 고운 삶을 짓고 싶기 때문이리라. 나도 고운 삶을 짓고, 고운 생각을 북돋우며, 고운 사랑과 꿈과 이야기로 나아가야지.


  아이들아, 우리 가슴속에서 샘솟을 사랑을 생각하자. 옆지기야,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날 믿음을 생각하자. 달빛을 떠올리고, 햇볕을 되새기자. 구름을 그리고, 무지개를 말하자. 4346.1.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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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두 아이 재우면서 자장노래를 부른다. 문득문득 깨닫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지 않았으면, 오늘 이렇게 자장노래 불러 주기는 어렵겠구나. 아마,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새롭게 아이들을 낳으면, 어릴 적 부른 놀이노래가 거의 없는 나머지, 따로 노래테이프나 노래시디를 사다가 틀겠지. 클래식노래를 튼다든지 무슨무슨 노래를 들려준다든지 하겠지. 생각이 좀 없다면, 텔레비전을 하염없이 켠다든지 아무 만화영화나 틀기만 할 테고.


  내 어린 나날, 내 둘레 어른들 늘 하는 말은 “그렇게 놀고 언제 공부할래?”였다. 그러면, 이런 말 하는 어른이 누구인가 먼저 살핀다. 무서운 어른이면 꽁지 빠져라 내빼고, 좀 살가운 어른이면 입을 비쭉 내밀고는 “쳇, 공부할 때에는 공부한단 말예요!” 하고 쏘아붙이다가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공부 너무 안 하고 놀기만 했나? 공부는 좀 이따가 하지 뭐.’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바라던 공부’는 퍽 게으르게 했다. 때로는 안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 때문만은 아닐 텐데, ‘어른들이 바라던 공부’는 꽤 덜 한 탓에 시험성적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인천에서 다닌 학교에서 치면, 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늘 들기는 했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마음은 학교 교실에 갇힌 공부보다는, 학교 바깥에서 뒹구는 놀이에 닿았으니까.


  오늘도 작은아이 팔베개를 하며 거의 두 시간 즈음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며 생각한다. 똑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기는 싫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꾸자꾸 새 노래를 부를 테야.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다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가 하나둘 튀어나온다.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았다면 까무룩 잊고 말았을 노래가 갑작스레 솟아나온다. 어, 이런 노래도 부르고 살았구나.


  어릴 적 놀며 부르던 노래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내 어릴 적 놀이가 떠오른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에 또래 아이들이랑 뒹굴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떠오르고, 동무들이랑 얼마나 개구지게 복닥였는가 하는 그림이 환하게 떠오른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아주 마땅하지만, 우리 두 아이하고 함께 뒹굴 또래 동무는 옆마을에까지 없다. 어쩌다 이웃집(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도시로 떠난 분들이 낳은) 아이들이 놀러온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도시에서 어린이집이나 학원이나 텔레비전이나 장난감에 길든 터라, 우리 아이들하고 뒹굴거나 뛰놀거나 노래부르며 놀지 못한다. 서로 안 어울리고, 같이 못 어울린다. 참 재미없는 아이들이다. 면소재지에 가든 읍내에 가든 똑같다. 오늘날 시골 아이들은 참 재미없다. 뭐, 도시 아이들도 참 재미없지. 놀 줄 모르고 노래할 줄 모른다.


  어딘가에는 잘 놀고 잘 노래하는 아이들이 있겠지. 어느 도시에서는 틀림없이, 또 어느 시골에서는 어김없이, 그야말로 골목스럽고 시골스러운 아이가 꼭 있겠지. 날마다 옷 더럽히고 노래부르며 목 쉬는 아이들 반드시 있겠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둘레에 맑은 웃음과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겠지.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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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큰아이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더니 손으로 코를 슥 문지르다가 빨간 피를 본다. 코피가 나네. 다시 누우라고 이르고는 휴지를 두 칸 뜯어 코피를 닦는다. 콧등과 등판을 살살 주무르고는 이마를 쓸어넘긴다. 자, 자, 더 자자. 어제 늦게 자고 오늘 너무 일찍 나려 하니까 몸이 힘들어서 그래.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놀 때에도 잘 놀면 코피는 사라져.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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