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식구 사는 집

 


  우체국 일꾼이나 택배 일꾼, 또 마을 어르신 들이 우리 집에 들를 때면 으레 묻는다. “아니 이 집에 애가 몇이오?” 큰아이가 저지르는 짓 하나 때문에 모두들 무척 궁금해 한다. 큰아이가 뭔 짓을 저지르는가 하면, 이 신 꿰고 저 신 꿰겠다면서, 작아서 못 신는다든지, 안 신으니 치운 신까지 하나하나 다시 찾아서 섬돌 언저리에 잔뜩 늘어놓는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서 신놀이 곧잘 즐긴다. 이 신 꿰다가 저 신 꿰고.


  한 시간만 다른 일 하느라 못 쳐다보면, 섬돌은 그야말로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가지런히 놓아도 십 분 채 안 지나 다시 어수선하고 어지럽게 바뀐다. 여러 날, 또는 이레나 보름쯤 그대로 두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착착착 가지런히 놓는다. 어차피 또 어지른다 하더라도, 그때그때 다시 가지런히 놓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고 보면, 아이들도 뭔가 느끼지 않을까. 안 느끼려나.


  그런데, 신을 가지런히 놓고 보니, 그야말로 우리 집에는 큰식구 사는구나 싶다. 우리 집에는 ‘아’가 얼마나 될까? 4346.4.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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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발가락

 


  아이들 발가락 조물조물 주무른다. 발가락이나 발바닥 차가운지 따스한지 느낀다. 차가우면 오래도록 조물조물 주무르고, 따스하면 조금만 주무른다. 너희는 이 작은 발로 콩콩콩 뛰어다니지. 너희는 이 조고마한 발로 날듯 날듯 걸어다니지. 너희 어머니도, 너희 아버지도,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작디작은 발로 까르르 웃음짓고 노래하며 살았단다. 작은 발에 작은 몸에 작은 손, 그러나 몸뚱이는 작다 하지만, 마음은 넓고 깊으며 클 테지.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몸처럼, 마음 또한 꾸준히 넓고 깊으며 큰 그릇 그대로 곱게 키울 수 있기를. 4346.4.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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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잠자리

 


  아이 어머니가 아흐레째 집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열하루 더 아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 아이 어머니는 스무 날 집을 비우면서 아픈 마음과 몸을 달래는 길에 나섰다. 아이들이 차츰차츰 어머니를 그린다. 문득 생각한다. 아버지가 여러 날 집을 비울 때에 우리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너무 마땅하지만, 아버지가 집을 비울 적에도 아이들은 아버지 집에 없다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집에 없든 아버지가 집에 없든 똑같은 셈이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에 함께 있으면서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며 놀이도 같이 하기를 바란다.


  작은아이는 졸음이 쏟아져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도 틀림없이 어머니가 많이 그리우리라. 그래도 아버지 품에서 달게 잠든다. 큰아이는 울먹인다. 어머니 집을 비운 지 아흐레만에 울먹인다. 큰아이 달래고 어르며 겨우 잠자리에 누인다. 한숨을 길게 길게 다시 길게 내쉬다가, 천천히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르다가는, 노랫말을 몽땅 바꾸어 큰아이한테 바치는 노래로 부른다. “사름벼리 예쁜 아이 씩씩한 아이 튼튼한 아이 ……”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 그리는 아이한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 더 사랑하고, 아이들 더 아끼며, 아이들 더 보살피며, 살그마니 쓰다듬는 일이 될 테지.

 

  큰아이야, 작은아이야, 네 아버지가 얼마나 예쁜 아버지이니? 예쁜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아버지가 안 예쁘고 미운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같이 잘 노는 아버지로 하루를 즐겼니? 아버지가 같이 안 놀아 주면서 너희는 심심하게 보냈니? 꿈나라에서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고운 이야기 길어올려 주렴. 꿈누리에서 맑은 눈빛으로 먼 곳 있는 어머니한테 기운 내라고 어깨 토닥여 주렴.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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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3 23:32   좋아요 0 | URL
아유...사름벼리가 울먹이는군요. 그렇지요.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겠지요.
더구나 아직 어린 아기들인데요. 그래도 아버지 따스하고 사랑 가득한 손길 안에서 씩씩하게 어머니 기다리라 믿어요.
예쁜 아버지, 함께살기님! 편안하고 고운밤 되시길 기도 합니다. ^^

숲노래 2013-04-04 00:23   좋아요 0 | URL
네, 이제 저도 손가락이랑 온몸이 다 꼬부라지네요.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자꾸 오탈자 나와서 다시 치느라 힘들어요.
이제 참말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누워
좋은 밤 아이들 빌면서 저도 좋게 자야지요..,....
 

버스에서는 잔다

 


  두 아이 데리고 군내버스 타며 읍내로 나갔다 온다. 아이들 그림놀이 할 적에 쓸 빛연필을 두 아이가 서로 분지르는 바람에 제대로 쓰기 어렵기에, 종이를 돌돌 벗겨 쓰는 굵은 빛연필 새로 장만하기로 한다. 조각맞추기도 하나 장만하고, 큰아이 글쓰기 공책도 여러 권 더 장만한다. 과일집에서 과일 몇 가지 사고, 두 아이 나누어 먹을 과자 한 가지 산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려는데, 자리 하나에 큰아이랑 작은아이 나란히 앉히려 했더니 작은아이가 칭얼칭얼한다. 작은아이가 저는 안아 달란다. 그래, 너 안고 가마.


  군내버스에 빈자리 몇 보이지만, 바로 다음 역인 봉황골에서 할매 할배 많이 타실 줄 뻔히 아니, 빈자리에 앉지 않는다. 할매 할배 빈자리 다 채우고 여럿 서서 가신다. 나는 작은아이 안고 동백마을까지 간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긴 채 잔다. 코코 잘 잔다. 그런데, 동백마을 닿아 가방 메고 내리려 할 무렵, 작은아이가 퍼뜩 깬다. 쳇. 어쩜 너는 버스에서만 자고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깨니. 집에 가서도 한 시간 즈음 더 자면 얼마나 예쁘니. 집으로 와서 먹으라 한 과자를 평상에 내려놓는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등허리를 편다. 아이구 허리야.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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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받이

 


  비오는 어느 날, 뒷밭으로 가서 밥상에 올릴 나물 뜯고 국에 넣을 쑥을 뜯는데, 어느새 큰아이가 조로롱 아버지 곁에 달라붙는다. “아버지 뭐 해요?” “쑥 뜯어.” “비오잖아요.” “괜찮아.” “비 맞으면 안 돼요. 옷 젖어요.” “응, 젖어도 돼. 말리면 되니까.” “안 돼요. 젖으면 안 돼요.”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머리에 우산을 받힌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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