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 줘

 


  한창 잘 자다가 한 번 끙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작은아이가 아버지를 부릅니다. 작은아이가 잘 자다가 끙 소리를 낼 적에는 쉬가 마렵다는 뜻입니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작은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쉬 할까? 쉬 할까?” 작은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을 하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작은아이 살짝 안아 마루에 놓은 오줌그릇 앞에 세웁니다. 바지를 내리고 “쉬, 쉬.” 하고 말하면 이내 쉬를 줄줄 눕니다.


  밤오줌을 누고 싶은 큰아이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납니다. 깊이 자고 싶은데 오줌도 누어야 하니까 어쩌는 수 없이 끙 소리를 내고는 일어납니다. 아직 혼자서 마루에 있는 오줌그릇으로 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일으켜세웁니다. 작은아이 쉬 누이고 드러누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일으켜세우느냐 싶지만, 두 아이는 오줌 누고 싶은 때가 다른걸요. 큰아이가 쉬 다 누도록 기다린 뒤 방으로 들어갈 즈음, 큰아이는 으레 “안아 줘.” 하고 두 팔을 벌립니다. 말없이 팔만 벌리는데, 이때에 안지 않을 어버이는 없겠지요.

  고작 이 미터 들어가는 길에 살풋 안아 자리에 눕힙니다. 자리에 누운 큰아이는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고는 이불깃 손으로 살그마니 쥐며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아버지는 밤오줌 누고 개운한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눕습니다. 아침까지는 조용하겠구나.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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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 시골길 걷기
― 가장 즐거운 마실

 


  가장 즐거운 나들이는 걷기입니다.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가 가장 즐겁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 때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천천히 느낍니다. 논을 보고 밭을 보며 풀숲을 봅니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먼 멧골을 봅니다. 하늘과 구름과 해를 봅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를 보지요.


  두 다리로 천천히 걷기에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고, 거리끼지 않으며 달립니다.


  갑작스레 온 나라에 ‘걷기 바람’이 불면서 관광길을 곳곳에 큰돈 들여 우지끈 뚝딱 하고 만드는데, 사람이 거닐 길이란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닐 길은 오직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보금자리와 마을이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숲과 들로 이어지는 풀섶입니다.


  바닥에 아스콘이나 돌을 깔아야 하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세우거나 전망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길로 몇 킬로미터, 저 길로 또 몇 킬로미터, 이렇게 나누어 길을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걷는 길에 표지판이나 알림판 있을 까닭 없습니다. 그저 걷는 길이요, 걷다가 느긋하게 쉬는 길입니다.


  풀숲에 앉으면 되지요. 바위에 앉으면 돼요. 나무 밑에 앉으면 되고, 모래밭에 앉으면 돼요. 따로 걸상을 마련해야 할 곳은 버스터나 기차역입니다. 이런 데에는 걸상을 넉넉히 마련해서 퍽 많은 사람들이 다리도 쉬고 짐도 내려놓기 좋도록 해야 합니다. 공원에 따로 걸상이 있지 않아도 돼요. 다만, 비 내린 뒤에는 풀밭에 앉기 어려울 수 있으니, 비를 그을 만한 자리에 걸상을 둘 수 있겠지요. 이런 걸상은 모두 나무로 짜면 됩니다.


  혼자서도 걷고 아이들하고도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한 시간쯤 가볍게 걷습니다. 두 시간도 이럭저럭 즐겁게 걷습니다. 걷다 보면,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한 아이씩 안거나 업으면 돼요. 작은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걷고, 큰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걸어요.


  아이들은 즐겁게 걸어가면서 다리에 힘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걷고 뛰고 달리고 날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넓게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면서 걷는 내내 바람과 햇살과 흙과 빗물과 냇물과 풀과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시나브로 느낍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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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밟기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일 적에 불을 안 켠다. 불을 안 켜도 자다 일어나면 어느 만큼 앞을 볼 수도 있고, 앞이 아직 새까맣더라도 천천히 발걸음 떼면 어디가 문턱이고 마루인지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어젯밤 또 아이들 장난감을 콱 밟았다. 어젯밤에는 장난감을 콱 밟고는 오른다리에 힘이 쪽 빠지며 주저앉는다. 뭘까. 얼마나 뾰족한 것을 밟았기에 이렇게 아플까. 동이 틀 무렵 발바닥을 쳐다본다. 발바닥 한복판에 시커멓게 핏물 고인다. 그나마 찢어지지 않고 이렇게 속으로 핏물만 고이네. 바늘에 실을 꿴 뒤 달구어서 피고름을 빼야겠구나. 그렇지만, 아이들 밥 먹이고 이것저것 치우고 하면서 좀처럼 바늘 달구어 피고름 뺄 겨를을 내지 못한다. 얘들아, 마음껏 어지르며 놀아도 좋은데, 이것 논 다음 저것으로 넘어갈 적에는 제발 한쪽으로 몰아넣든지 치우든지 하자. 발바닥 너무 아프구나. 4346.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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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5 00:58   좋아요 0 | URL
아이구..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지금은 어떠하신지요?..
나중에, 벼리와 보라가 부모가 되어서 아버지의 글을 읽을 때엔
비로소 그 마음을 감사히 잘 알겠지요.
그리고 모든 어버이의 사랑,은 누구나 이러리라 생각하는 밤입니다..

숲노래 2013-06-25 02:06   좋아요 0 | URL
아이들 불러서
바늘 달구어 핏물을 뺐어요.
이 모습 다 보여주었지요.

아프냐고 묻기에
조용히 있다가 넌지시
"안 아파." 하고 말했어요.

그래도 장난감 어지른 것 안 치우더라구요 ^^;;
같이 치워야지요~~
 

[시골살이 일기 8]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
― 아이들과 자전거 타고 바닷가로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해서 처음 살아갈 적에는 아직 길이 익숙하지 않아 택시를 곧잘 탔지만, 택시로 이곳저곳 다니고, 군내버스로 이 길 저 길 지나가면서 차츰 길을 익힙니다. 어느 만큼 길이 눈에 익으면 자전거로 달립니다. 혼자서도 달리고, 수레에 아이들 태워 함께 달립니다.


  군내버스나 택시로 다닐 적에도 길눈을 여러모로 익히지만, 자전거로 달릴 때처럼 훨씬 잘 익힐 수는 없습니다. 참말 자전거로 이 길 저 길 막다른 데까지 다니다 보면, 지도책에조차 안 나오는 작은 샛길까지 몸으로 헤아리며 살필 수 있어요.


  우리 집에서 발포 바닷가까지는 7킬로미터입니다. 면소재지 택시를 부르면 네 식구 칠천 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까지 헤아리면 만사천 원에 바닷가마실 누려요.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며 달리면, 가고 오는 데에 오십 분쯤 들입니다. 가는 길에는 조금 더 빠르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과 노느라 다리힘이 조금 빠지니 더 품을 들입니다.


  한여름 휴가철에는 바닷가마다 도시사람으로 북적입니다. 도시사람은 전남 고흥 바닷가라 하는 참 먼 데까지 놀러옵니다. 아무래도 큰도시하고 가깝거나 제법 이름난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릴 테니까, 이렇게 깊고 외진 시골 바닷가까지 애써 찾아온다 할 수 있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한테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바닷가라 할 테지만, 도시사람한테는 무척 한갓지며 고즈넉한 바닷가라 할 만하거든요.


  우리 식구는 아무 때나 바닷가로 마실을 나옵니다. 한겨울에도 첫봄에도 늦가을에도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마실 누립니다. 우리 식구 말고 아무도 없는 너른 바닷가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모래밭에서 뒹굴며, 바닷물에 몸을 적십니다. 시골에 살기에 바다는 언제나 우리 차지입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분들은 물결 넘실거리는 바다 한복판을 누리고,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살림 꾸리는 우리들은 마음 내킬 적에 언제라도 바닷가를 한껏 누립니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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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밥, 쉰국

 


  이제 참말 여름이다. 아침에 지은 밥이 남으면 낮에 벌써 살짝 쉰내 돌고, 아침에 끓여 남은 국을 저녁에 먹을 수 없으며, 저녁에 남은 밥이나 국 또한 이듬날 아침에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한다. 겨울에는 하루쯤 묵은 밥도 맛나게 먹을 수 있었지만, 여름이니 끼니마다 밥을 새로 지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끼니마다 밥도 국도 새로 하며 아이들과 살아왔다. 스텐냄비로 밥과 국을 끓이니 그때그때 새로 할밖에 없기도 하다.


  아이들이 밥이나 국을 남기면 모조리 아버지 몫이다. 아이들이 밥이나 국을 조금만 먹으면 내가 먹어야 할 몫이 늘어난다. 잘 살피고 가누어야 한다. 아이들이 저희 밥과 국을 제대로 안 먹으면 아무 주전부리 없이 다음 끼니까지 쫄쫄 굶어야 하는 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끼니마다 즐겁게 맛나게 신나게 먹어야지. 더 마음을 쏟고, 더 생각을 기울여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운 밥을 차리자.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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