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재우는 시외버스

 


  옆지기는 작은아이를 맡고, 나는 큰아이를 맡는다. 두멧시골집에서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와, 고흥읍내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 버스역에서 청주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타며, 청주 버스역에서 음성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스스로 몸부림을 치면서 온갖 놀이를 하고 싶다. 갑갑한 몸을 풀고 싶어 이래저래 비틀고 꼬물꼬물 노닥거린다. 너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으로 가는 길, 순천에 거의 닿을 무렵 두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순천에서 청주로 가는 길, 세 시간 달리는 버스에서 한 시간 반쯤 되자 두 아이가 사르르 잠든다. 처음에는 두 아이가 따로 앉았으나, 작은아이를 달래려고 나와 큰아이 사이에 앉히고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십 분쯤 사진기 들여다보다가 큰아이가 “나 이제 안 볼래. 보라 혼자 보라고 해.” 하더니 아버지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작은아이를 왼허벅지에 앉힌다. 큰아이가 잘 자도록 자장노래를 부른다. 두 가락쯤 불렀을까, 사진기 손에 쥔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폭 고개를 떨군다. 깊이 잠들어 느긋하게 쉴 수 있기를 빌며 자장노래를 열 가락 남짓 더 부른다. 내 허벅지 둘은 두 아이 눕히는 베개가 된다. 옆지기가 작은아이를 넘기라 말하지만, 옆지기가 한갓지게 쉴 수 있기를 빌며 내가 둘 다 안는다. 한 시간 남짓 두 아이를 허벅지에 앉히고 누여 재운다. 호젓한 길을 널널한 시외버스가 달린다. 나도 눈을 감는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날을 되짚는다. 내 어버이가 나와 형을 어떻게 보살피며 하루를 누렸을까 헤아린다. 이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지난날을 돌아보는 거울이요, 내 어버이가 살아온 한때를 짚는 발자국이면서,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숨결일 테지. 자는 아이 둘 끌어안고 시외버스를 달리지만, 몸이 힘들거나 허벅지가 저리거나 팔이 아프지 않다.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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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서운함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가 음성 멧골집이 너무 추우니 아이들 걱정스럽다며 설에 오지 말라 전화를 하셨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설 즈음 해서 고흥 시골집도 추위에 걱정스러울 수 있겠다 싶어, 음성 가는 기차표를 취소했다. 이듬날 아침, 음성 할머니가 전화해서 마중 나오신다고 언제쯤 음성으로 오느냐고 물으신다. 그렇지만 너무 추워 오지 말라 하셔서 기차표를 취소하고 말았는걸요.


  고흥 시골집 물이 얼건 말건 그냥 가야 했을까. 어차피 여러 날 길게 비우면 물이 얼다가 다시 녹을 수 있으니 그냥 가도 되었을까. 2월 8일 고흥 시골집 온도는 올들어 가장 낮게 떨어진다. 밥 끓이는 가스불도 얼어 잘 안 켜진다. 아이들 태우고 면사무소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자전거 멈추개까지 얼어붙는다. 따스한 고흥까지 추위를 느낀다면 다른 곳은 얼마나 춥다는 소리일까.


  그러나 자꾸자꾸 아쉽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든 말든 그냥 가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달리 어찌할 길은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기다리자. 설과 함께 추위가 물러가기를 가만히 기다리자. 올 설에는 고흥 시골집에서 마을회관 합동세배를 구경하면서 설 언저리 시골마을 삶자락을 누려 보자. 434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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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도시에서는 아파트 한 평에 천만 원이나 이천만 원쯤 하고, 어느 곳은 삼천만 원까지도 하리라. 시골에서는 땅 한 평에 십만 원이나 오만 원쯤 하고, 어느 곳은 삼만 원도 하리라. 아파트 한 평 천만 원과 시골 땅 한 평 십만 원만 대더라도 100:1이 된다. 도시에서 10평짜리 아파트를 사거나 30평짜리 아파트를 사려 한다면, 이 돈으로 시골에서 2000평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지으면, 먹을거리를 모두 손수 길러 먹을 수 있으며, 남는 먹을거리는 내다 팔아 벌이를 삼을 수 있다.


  다만, 시골은 도시와 달리 달삯을 은행계좌에 꾸준히 넣어 주는 일자리가 없다 여길 만한데, 이제 돈으로 밥을 사다 먹는 얼거리가 아닌, 스스로 땅에서 밥을 얻는 얼거리로 삶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야 하리라 느낀다. 언제까지 밥을 사다 먹으면서 스스로 몸을 망가뜨려야 할까.


  내 집을 갖고 싶다면, 아파트를 사지 말고 시골에 땅을 마련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건설업자한테 휘둘리지 말고, 건설업자가 쏟아내는 쓰레기에 숲을 망가뜨리지 말며, 건설업자 돈벌이 그만 시키면서, 나무와 흙과 짚과 돌로 아름답고 정갈한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도시에서 ‘정치나 경제나 노동이나 사회나 문화나 문학을 갈아엎으려는 다부진 몸짓’을 선보일 수 있고, 이러한 몸짓도 무척 어여쁘다고 느끼는데, 도시에서 몸부림을 친대서 도시가 달라질 일이 있을까 궁금하다. 도시를 떠나야 도시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숲속에 손수 집을 짓고 예쁘게 살아가는 이웃을 만나뵈니, 눈이 트이고 마음이 열리며 즐겁다.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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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식구들 먹을거리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에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가장 무거운 것을 넣고, 가방이 꽉 찬 뒤에는 장바구니를 하나씩 꺼내어 담는다. 그런데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거닐며, 또 다리 아프다는 큰아이를 품에 안고 길을 걷자니, 장바구니 여럿 들고 지고 하자니 퍽 힘들다. 가만히 보면, 저잣거리로 나들이 다니는 살림꾼은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하더라도 너무 힘들겠구나 싶다. 차라리 가방을 하나 더 챙길 때가 나으리라 본다.


  군내버스에 탄다. 장바구니 여럿이니 발밑에 두면서 이 녀석들 건사하느라 애먹는다. 참말 장바구니로 물건 챙겨서 다니기란 수월하지 않다. 할머니들은 가게에서 내주는 비닐봉지를 여럿 손에 쥐고, 보자기로 짐을 묶어 들기도 하는데, 손아귀가 참 아프시겠지. 서른 해 쉰 해 예순 해, 오직 손아귀힘으로 짐을 들어 나르는 나날이었으리라. 하루하루 알이 배기고 굳은살 박혀 딱딱해지는 손바닥은 나무를 닮는다. 군내버스에 탄 할머니 한 분, 오늘 마침 읍내 장날이라 사람 북적북적대니, “오늘은 옴시롱 감시롱 차가 되다.” 하고 한 마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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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순이

 


  아침똥과 낮똥을 지나간 작은아이가 저녁똥을 푸지게 눈다. 워낙 푸지게 누면서 웃도리까지 똥이 묻는다. 밑을 씻기는 김에 작은아이 머리를 감기고 몸도 씻긴다.  그러고 나서 큰아이를 불러 너도 옷 다 갈아입고 씻자고 이야기한다. 큰아이는 그림 그리려 하는데 왜 씻자고 하느냐 말하다가 옷을 한 꺼풀씩 벗는다. 알몸으로 씻는방까지 달린다. 큰아이 머리부터 감기고 몸을 씻긴다. 그러고서 몸 물기부터 훔치고 머리를 말린다. 춥다고 하니 다시 방으로 달린다. 속옷을 입히고 웃도리를 입힌다. 바지를 입힌다. 큰아이는 옷을 다 입더니 치마를 찾는다. 이제, 아버지가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하려고 갈 때, 큰아이가 문득 “(다 마른) 빨래 내려서 갤게.” 하고 말한다. 응? 어인 일이지? “그래, 고마워. 잘 개 주셔요.”


  빨래를 다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큰아이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옷을 갠다. 옳거니. 이 녀석, 아침에 해서 다 마른 빨래 가운데 한복 치마 낀 모습을 보았구나. 그러니, 빨래를 개겠다고 했지.


  큰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빨래를 곱게 갠다. 작은아이는 아직 빨래를 개지 못한다. 큰아이는 돌을 지날 무렵부터 빨래를 갠다며 시늉을 하고 빨래놀이를 했으나, 작은아이는 두 돌까지 석 달 남은 오늘까지, 빨래를 개려고 하지 않는다. 빨래를 들고 훌훌 흔들기는 하지만, 누나처럼 얌전히 앉아 곱게 개지는 않는다. 아마, 두 돌 무렵이 되거나 두 돌을 지나면, 누나 곁에 나란히 앉아 빨래를 곱게 갤 테지. 그때에는, 우리 집 큰아이는 심부름순이, 작은아이는 심부름돌이가 되어 함께 살림을 꾸리리라.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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