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강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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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5


옛 서울 냇가로 마실을 가다
― 시간 속의 강
 한영수 사진
 한선정 엮음
 한그라픽스 펴냄, 2017.5.1. 4만 원


  여름에 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 같은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일손을 쉬고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이와 달리 여름에도 여름 휴가를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좀처럼 여름 휴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살림이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은 따로 여름 휴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짐승을 치는 분이라면 언제나 짐승 곁에 머물며 짐승을 돌보아야 합니다. 논밭을 가꾸는 시골지기도 논밭 곁에서 지내지요.

  이 여름날에 사진책 《시간 속의 강》(한그라픽스,2017)을 읽습니다. 한영수문화재단에서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입니다. 어느덧 세 권째 나오는 한영수 님 사진책이에요. 첫째 권 《Seoul, Modern Times》가 2014년에 나왔고, 둘째 권 《꿈결 같은 시절》이 2015년에 나왔습니다. 셋째 권인 《시간 속의 강》이 2017년에 나오는데, 세 사진책은 지나온 우리 삶을 서울이라는 고장을 바탕으로 삼아서 보여줍니다. 이제 사진으로 남은 아득한 옛 살림을 보여주지요.

  《시간 속의 강》은 1950∼60년대라는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여줍니다. 이 물줄기는 서울이라고 하는 터전에서 한강이라는 시간과 발자국과 사람과 마을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시간 속의 강》에 나오는 한강 둘레는 참말로 어느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요 냇가이며 살림자리일까요? 사진 밑에 1950년대 어느 해라든지 1960년대 어느 해라는 말을 안 붙인다면 도무지 떠올리기 어려운 서울 한강 모습이지 싶습니다. 노들섬 뚝섬 마포 한남동 같은 이름을 안 붙인다면 그곳이 참말로 그곳이 맞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서울 한복판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을 떠올리던 분들조차 머리에서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950∼60년대에 서울 한강이 얼어붙은 날 얼음을 켜서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내다 팔려고 끌고 가는 일을 하던 분들조차 다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즈음 한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분은 없겠지요? 그런데 1950∼60년대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엄청나게 큰 얼음을 톱으로 켜서 썼대요. 게다가 이 얼음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실었어요.

  한강 얼음에 소수레입니다.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할 뿐 아니라,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한강에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서 햇볕을 쬘 뿐 아니라, 물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한강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한강을 옆에 끼고 살림집을 짓습니다. 어른들은 물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물에서 놉니다. 한강물 곁에서 마을을 이루어 삽니다. 한강을 어여쁜 냇가로 여기면서 이웃하고 사귀고 동무하고 어우러져요.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모래밭을 밟아요. 냇가에서 풀내음을 마시고 새소리를 들어요.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테지만, 이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스러운 기운을 듬뿍 먹으면서 아이들이 자랐다고 합니다.

  이제 서울이라고 하는 고장은 어마어마한 개발로 옛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울에서 풀집이나 논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궁터나 성터는 남고, 기와집도 조금 남지요. 빨래터나 우물터나 대장간이나 길쌈터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버드나무 그늘에서 멱을 감던 일은 그야말로 사진에나 남겨진 모습이 될 만합니다. 뱃사공이 길손을 실어 나르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모습으로 사진에만 겨우 새겨진 자국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서울도 예전에는 시골과 같았다고 해요. 서울도 얼마 앞서까지는 시골스러웠다고 해요. 서울에서 다른 고장으로 여름 나들이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해요. 서울에서는 한강에서 여름을 나고 여름을 누리며 여름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한강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찻길을 걷어내고서 이곳에 다시 모래밭이 펼쳐지도록 바꿀 수 있을까요? 앞으로 서울사람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밭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켜거나 얼음지치기를 할 날을 새삼스레 맞이할 수 있을까요? 흐르는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여름에 시원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떠나지 못하신다면, 어여쁜 물줄기하고 모래밭이 눈부신 한강을 사진으로 만나는 《시간 속의 강》을 곁에 두고서 펼쳐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서울에도 한때 멋스럽고 신나는 물놀이터가 있은 줄, 누구나 걸어서 여름과 겨울을 누리던 냇물하고 냇가가 있은 줄 되돌아봅니다. 2017.8.4.쇠.ㅅㄴㄹ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보내 주셨습니다. 고맙게 싣습니다 *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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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8.3.


순천 마을책방 〈그냥과 보통〉에서 장만한 《삼등여행기》를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읽는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 닿은 뒤 햄버거집에 들렀다. 집에서 노는 두 사람(곁님하고 작은아이)을 헤아리며 햄버거를 둘 장만한다. 이 길에 왕잠자리 한 마리가 바닥에 밟혀서 죽은 모습을 본다. 왕잠자리가 어떤 까닭으로 죽어서 길바닥에 내려앉았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왕잠자리를 여러 번 밟은 듯하다. 사람들은 아마 왕잠자리를 밟고도 모르고서 지나다녔지 싶다. 길바닥에 눌러붙은 왕잠자리 주검을 집어서 둘레를 살피는데 흙하고 풀이 있는 데가 안 보인다. 시골 읍내에서도 흙하고 풀을 찾기 어렵다. 한참 걸어서 냇가에 닿은 뒤 풀밭에 왕잠자리 주검을 내려놓는다. 1930년대에 조선·중국·러시아를 가로질러 프랑스까지 기차로 여행을 하고는 배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사람은 ‘삼등여행’ 이야기를 남겼는데, 시골 읍내에서 삶을 마감한 왕잠자리는 이 땅에서 어떤 나들이를 누렸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오늘 마실길에 큰아이하고 ‘크랜베리스(Cranberries)’ 노래 ‘Zombie’를 들었는데 큰아이가 “in your head in your head” 같은 대목을 흥얼거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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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8.3.


ㅊ출판사에서 내기로 한 글꾸러미가 있다. 이 글꾸러미를 ㅊ출판사 편집부하고 주고받으며 여러 차례 손질하는데, 다섯 갈래로 나눈 글꾸러미 가운데 셋째 갈래 글을 놓고 손질하다가 막혀서 일을 쉬기로 하면서 큰아이하고 마실을 나온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하기로 한다. 오직 큰아이하고 이 여름날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마실을 누리기로 한다. 순천 중앙시장에서 복숭아를 장만하고, 골목을 걷고, 마을책방에 깃들어 책하고 벗삼으면서 쉬고, 순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고, 이렇게 오붓하게 예닐곱 시간을 보낸다. 함께 노래를 듣고 함께 그늘길을 걷는다. 함께 얘기를 나누고 함께 뙤약볕을 쬔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큰아이가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아이 숨결을 느끼며 《어쩌면 좋아》를 읽는다. ‘서커스’ 출판사에서 사노 요코 님 산문책을 두 권 옮겼단다. 예순 한복판에 선 할머니 그림책 작가로서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수수하게 흐른다. 그야말로 수수하게 흐른다. 이야기란 언제나 수수한 삶에서 태어난다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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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와 마법의 옷장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페트리샤 리 고흐 글, 김미련 옮김 / 느림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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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3



할머니한테서 듣는 이야기

― 타냐의 마법의 옷장

 페트리샤 리 고흐 글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김미련 옮김

 느림보 펴냄, 2004.12.13.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타냐에게 물었어요.

“넌 누구니?”

타냐가 수줍게 대답했지요.

“발레리나예요. 전 튀튀가 참 좋아요.”

“그래?”

둘은 빙그레 웃었어요.

“나도 발레리나야. 나도 튀튀를 좋아해.”

“정말요?”

타냐는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은 몹시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거든요. (9쪽)



  우리가 쉽게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대에 올라야 배우나 가수라고 잘못 여기곤 해요.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인데 말이지요. 학교에 가서 교탁 곁에 서야 교사가 되지 않아요. 이른바 교원자격증을 따야만 교사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집에서 여느 아이를 돌보며 가르치는 어버이도 누구나 교사예요. 그리고 여느 집에서 여느 어버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며 소꿉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배우나 가수입니다.


  어떤 몫을 스스로 맡아서 즐겁게 노래할 줄 안다면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입니다. 스스로 신나게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얼마든지 연주자입니다. 스스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면 얼마든지 자전거 선수입니다. 스스로 활짝 웃으며 부엌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요리사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발레가 좋아 언제나 발레를 생각한다고 해요. 이 아이는 따로 무대에 선 일은 없지만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하고 처음 극장에 갔대요. 아직 극장 문을 열지 않아서 기다리는데 발레옷인 튀튀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 뒤를 좇으며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발레옷을 들고 극장 골마루를 걸어가는 할머니도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하거든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르는 분일까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른 적이 있을까요? 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할머니 스스로 발레리나로 여긴다면 할머니는 참말 발레리나예요. 이리하여 할머니는 이제껏 살아오며 누린 숱한 발레 이야기를 아이한테 상냥하면서 멋스레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극장에서 일하는 할머니한테서 그토록 좋아하는 발레 이야기를 한껏 들으며 가슴이 부풉니다.


  그림책 한 권은 발레를 말할 뿐입니다만, 발레를 비롯한 모든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즐겁게 꿈꿀 수 있는 마음이 된다면 모두 달라진다고 하는 실마리를 찬찬히 밝히는구나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몸짓으로 즐기려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걷는 길이 달라져요. 2017.8.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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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8.2.


빨래를 널고 쉬면서 그림책을 편다. 이제 햇볕이 가장 뜨거운 한낮에도 처마 밑 평상에 앉으면 땀이 안 흐른다. 바야흐로 곡식을 살찌우는 볕이 되는구나 싶다. 그림책을 배우면서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는 젊은 분이 내놓은 《우리 가족이에요》를 읽어 본다. 그림책에는 세 사람이 나오고 세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가 있는데,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살짝 아리송하다. 다만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대수로울 일은 없다. 서로 아낄 줄 알고 보듬을 수 있는 한식구로 지내는 마음이라면 다 좋지. 이야기는 비가 오는 날 ‘형한테 우산 갖다 주기’ 심부름에서 고빗사위를 맞이한다. 그런데 형은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네. 그러면 우산이 없어도 될 텐데? 짐짓 씩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엄마!”를 찾는 사람 형이 재미있다. 겉으로는 작을는지 모르나 속으로는 야무진 ‘사람 아닌 동생’이 살뜰하다. 다만 이 그림책이 어른 그림책이 아닌 어린이 그림책이라 한다면, ‘마릴린 먼로 치맛자락 날리는 모습을 빗댄 그림’이 아닌 다른 그림을 새롭게 생각해 내어 넣으면 더 좋았으리라. 익살맞은 대목으로 여길 수 있으나 ‘어린이가 바라보며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를 살리는 길을 더 살피면 좋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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