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을 펼쳐라! - 조선의 뼈대를 세운 법전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 지음, 오승민 그림, 강문식 감수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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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6


뇌물죄를 볼기 100대로 다스린 경국대전
― 경국대전을 펼쳐라!
 손주현 글
 오승민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7.8.7. 12000원


  조선 무렵 법 이야기를 다룬 《경국대전을 펼쳐라!》(책과함께어린이,2017)는 돋보이는 몇 가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신분이나 계급이 있던 조선 무렵이라지만, 노비도 아기를 낳으면 말미를 얻도록 법에서 지켜 주었다고 해요. 아기 아버지가 되는 노비한테도 아기가 태어난 뒤 보름 동안 아기하고 곁님을 돌보도록 말미를 누리도록 법으로 지켜 주었다 하고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얼마나 느긋하게 말미를 얻거나 누릴 수 있을까요? 아기를 낳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헤아리는 이야기는 법에 어떻게 나오고, 이러한 법을 일터에서는 얼마나 살필까요?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은 이른바 출산휴가를 얼마나 누릴 만할까요?


“옛날부터 법은 있었어. 특히나 조선 바로 전의 고려에도 엄격하게 정해진 법전이 있었다고 해. 그런데 법이 있다고는 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늘 해 오던 관습이나 왕의 명령에 따르기 일쑤였어.” (17쪽)

치국이와 해박이는 팔을 높이 들어 서로의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거야! 아무리 노비라지만 아기를 낳기 전후로 80일 정도는 쉴 수 있어. 남편도 15일은 쉴 수 있고.” (35쪽)


  경국대전을 살펴보면, 조선 무렵에 돈을 써서 꿍꿍이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을 볼기 100대를 맞도록 하고, 3000리가 넘는 외딴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유배야 유배라고 하더라도, 볼기 100대를 때렸다는 대목이 돋보입니다. 삶자리에서 쫓겨나듯이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일이 고달프기도 하겠지만, 볼기 100대를 때린다니, 참으로 훌륭하지 싶어요.

  사람이 맞아 보아야 번쩍 눈을 뜨면서 잘못을 뉘우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뇌물죄 볼기 100대’라고 한다면, 스스로 높다는 신분이나 계급에 선 이들이 섣불리 뒷돈을 주고받지는 못하리라 느껴요.

  그냥 감옥에 넣기보다는, 또 돈을 써서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제도보다는, 이처럼 사람들이 어떤 몹쓸 짓을 했는가를 볼기질 100대로 다스리는 벌을 한 번 받는다면, 아무래도 그런 바보짓을 할 엄두를 못 내겠지요.


“그나저나 높은 분을 찾아가 뇌물을 주다 걸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장형 100대에 처하고 최대 3000리 밖으로 유배를 갈 수 있다고 했잖아. 이 정도면 거의 사형 아래 단계라고 할 수 있지.” (65∼66쪽)

“맞아. 특히 수령은 임기를 채우고 다시 옮겨 가지만 아전들은 평생 한 관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백성들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그러다 보니 조정과 백성들 둘 다 속이는 일도 가능해.” (93쪽)


  《경국대전을 펼쳐라!》는 모두 열한 갈래로 나누어 경국대전에 깃든 법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비록 조선 무렵 법이기에 오늘날 법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옛 살림을 돌아보면서 배울 곳을 배우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가난해서 시집을 가지 못하는 아가씨한테 나라에서 돈을 보태 주어 시집을 갈 살림을 이루도록 했다고 합니다. 가을걷이가 적으면 세금을 덜 내거나 안 내도록 했다고 하지요. 조선 무렵에도 재판에서 3심 제도가 있었다고 해요. 벼슬을 얻는 시험에서 시골사람이 따돌림을 받지 않도록 헤아리기도 했답니다.


“이에 기록상 명명백백히 이 생원의 주장이 옳은 바, 노파 개덕은 양인이라 할 수밖에 없노라.” 어쩔 수 없었다. 치국이는 개덕 노파가 우는 소리에 따라 울었다. “거봐라. 이제 개덕이 자식들은 다 내 재산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고 내가 맘대로 팔아 치워도 아무 말 못해. 그게 법이야!” (122쪽)


  법이 없어도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법이 있으나 나쁘게 사는 사람이 있고요. 법을 몰라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법을 아는데 그악스럽거나 어처구니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법이 있어야 사회가 올바로 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법이 없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곧고 착하며 고운 마음을 가꿀 줄 안다면 사회가 올바로 설 만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법을 아름답게 세워서 즐겁게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우리 삶터는 매우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오늘 우리는 조선 무렵 경국대전을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 법을 되짚는다면, 앞으로 오백 해 뒤에는 ‘오늘 우리 사회 법’으로 우리 먼 뒷사람들이 ‘그때에 참 아름다운 법이 있었다지?’ 하는 이야기가 흐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8.2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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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감정 문학과지성 시인선 318
최정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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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3



믿을 수 없는 말

― 레바논 감정

 최정례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6.5.4.



수박은 가게에 쌓여서도 익지요

익다 못해 늙지요

검은 줄무늬에 갇혀

수박은

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

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하지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레바논 감정)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수퍼마켓엔 겨울딸기가 있어요

그것도 두 팩에 7천 원 소리치면서

전에 딸기는 수원 딸기 밭에 있었는데

연인들은 5월이면 딸기 밭으로 가

처음으로 눈을 맞추고 몸을 만졌는데 (겨울딸기)


어릴 때 사촌은 기차는 바퀴가 없는 것이라고 우겼다. 겨울방학 책에 뱀 꼬리처럼 사라지는 기차 그림엔 정말 바퀴가 보이지 않았다. 기차를 타본 내가 기차를 타보지 않은 사촌의 말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내부순환도로)



  믿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럼없이 말하고 거리낌없이 말할 적에는 믿습니다. 허물없이 말하고 참다이 말하면 믿어요. 스스럼없거나 거리낌없을 적에는 때때로 투박하거나 거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씨는 참답기에 좀 날카롭더라도 얼마든지 믿을 만합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감추거나 숨기며 말할 적에는 안 믿습니다. 아무리 달콤하거나 부드럽거나 듣기 좋도록 말하더라도, 거짓으로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요.


  값싸게 파는 것이기에 좋을까요? 값비싸게 팔기에 안 좋을까요? 제대로 지어서 제값을 붙여서 판다면 좋겠지요. 값은 때로는 쌀 수 있고 비쌀 수 있어요. 값이 대수롭지 않아요. 제구실을 하는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장만하며 꾸리는 살림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삶일까요? 우리는 어떤 말을 나누면서 사귀거나 만나는 사이일까요? 참을 드러내려고 스스럼없거나 거리낌없는 하루를 짓는가요? 겉보기로만 좋도록, 그저 그럴싸해 보이도록, 껍데기만 가꾸는 말마디로 살아가지는 않나요? 아니면, 투박하거나 거칠더라도 참다운 살림을 지으면서 차근차근 하루를 누리나요? 2017.8.2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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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스피카 3
야기누마 고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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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0



네 별은 멀리 있지 않아

― 트윈 스피카 3

 야기누마 고 글·그림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3.10.18. 13500원



“가모가와 걔한테는 이 길 가르쳐 주지 마. 별도 그렇고, 벚꽃도 그렇고, 그 바보는 위만 쳐다보고 다녀서 조마조마해 못 보겠거든.” (46쪽)


“너네 엄마도 사자호 사고로 돌아가셨어?” “네.” “그럼 왜 로켓에 타려고 그래?” “꿈이니까. 우주는 내 단 하나뿐인 꿈이니까.” (63∼65쪽)


“쭉 보고 있었어. 그래서 나, 정말 좋았어. 친구라고 해 준 거, 정말 좋았어.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 (183쪽)


“왜 라이온 오빠는 나한테만 보여?” “뭐.” “보이는 걸 왜 보인다고 하면 안 될까? 난 그냥 라이온 오빠가 있다는 걸 딴 애들한테도 가르쳐 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뛰자, 꼬마야.” (348∼349쪽)



  별은 늘 우리 가슴에 있다고 느낍니다. 꼭 밤하늘을 올려다보아야 만나는 별이 아니라, 우리 가슴을 가만히 들여다볼 적에 느낄 수 있는 별이지 싶습니다.


  밤하늘에서도 별을 만나지요.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별은 틀림없이 저 먼 하늘에 있습니다. 더욱이 밤뿐 아니라 낮에도 별은 늘 있어요. 햇빛이 밝다고 여겨서 별빛을 못 느끼거나 안 느낄 뿐입니다.


  그러니까 별은 밤별뿐 아니라 낮별도 있는 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 가슴속 별을 언제 어디에서나 헤아릴 수 있어요. 지구하고 가까운 해가 베푸는 햇빛에 가린, 저 먼 별누리에서 지구까지 찾아오는 수많은 별빛을 생각할 줄 안다면, 기쁠 적이나 슬플 적이나 노상 피어나는 우리 가슴속 별빛을 생각하는 하루가 될 만합니다.


  몸을 떠난 사람은, 이른바 죽은 사람은, 몸뚱이가 여기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몸뚱이가 없더라도 우리 곁에서 몸이 떠난 이들이 마음으로 함께 있는 줄 느낄 수 있어요. 기쁠 적에 함께 기뻐하고 슬플 적에 함께 슬퍼하는 수많은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도 별을 보려고 할 적에 별을 볼 수 있듯이, 일찌감치 몸을 떠나 마음만 남은 이웃을 가만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별바라기를 하지 않는 살림이라면, 한결같이 우리 둘레에 머물면서 함께 웃고 떠드는 동무나 이웃이 어떤 마음인지 못 알아채면서 그냥저냥 지낼 수 있습니다.


  곧 다 같이 별을 알아보면 좋겠어요. 하늘에서도 둘레에서도 마을에서도, 무엇보다 마음속에서도 별을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모든 곳에서 별을 찾고 싶은 이쁜 아이들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 《트윈 스피카》입니다. 2017.8.2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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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8.25.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차근차근 밥짓기를 배우리라는 마음으로 칼질을 맡기고 마늘을 까도록 시킨다. 작은아이하고 둘이서 읍내마실을 다녀오는데, 작은아이가 작은 부엌칼을 보더니 “저기 누나가 쓰는 칼이 여기도 있네? 나도 저런 작은 칼 갖고 싶은데. 나도 잘 썰 수 있는데.” 하고 말한다. 곁님이 늘 들려주던 말처럼 두 아이는 서로 다른 결에 맞추어 스스로 무엇이든 알뜰히 해내리라 느낀다. 작은아이가 쓸 새로운 작은 부엌칼을 곧 장만하자고 생각한다. 구월을 앞두고 아침까지는 선선하지만 저녁에는 아직 덥다. 신나게 땀을 쏟으며 밥을 지어 차려 놓고 나서 씻는다. 아이들이 맛나게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곁에 앉아서 그림책 《하얀 도화지》를 편다. 몸을 잃은 물고기 한 마리가 아이 그림종이에서 되살아나는 이야기가 흐른다. 아이 스스로 꿈을 그리고, 이 꿈에 맞추어 물고기 한 마리가 새롭게 깨어나서 힘차게 헤엄을 친다. 아니 난다고 해야 할까. 냇물이나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어느 모로 본다면 날갯짓이지 싶다. 물속 헤엄짓이란 사람으로서는 하늘을 마음껏 나는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꿈이 있으니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니 꿈이 새로 자라고, 그래, 이렇게 꿈하고 그림은 늘 맞물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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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 서점원이 찾은 책의 미래, 서점의 희망
다구치 미키토 지음, 홍성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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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5


마을책방에서는 책만 사지 않습니다
―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다구치 미키토 글
 홍성민 옮김
 펄북스 펴냄, 2016.10.20. 13000원


  책방이 없는 시골과 도시를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 책방이 없다면, 시골에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는 일철이 있고 일철이 아닌 때가 있어요. 일철에는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할 만큼 바쁩니다만, 일철이 지나면 여러모로 한갓집니다. 시골에 책방이 없다고 한다면, 일철이 아닌 쉬는 한갓진 철에 책을 곁에 두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도시에 책방이 없다면 시골하고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심고 가꾸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일철이 날씨 흐름하고 맞물리면서 흐릅니다. 도시에서는 봄부터 겨울까지 따로 날씨나 철에 따라서 일을 하지 않아요. 비가 오거나 볕이 내리쬐거나 출퇴근 시간은 같습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출퇴근 시간은 같지요. 도시에 책방이 없다면 날마다 똑같이 일하러 다니느라 바쁘거나 벅차거나 고단한 터라 책을 곁에 둘 만큼 느긋하거나 넉넉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책 한 권을 살 돈이 없다기보다도 책이 있어도, 이를테면 도서관이 있어도 빌려서 볼 만한 겨를이나 말미를 못 낸다는 뜻이에요.


서점은 단순한 기호품을 다루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재해는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도호쿠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 국민 모두에게 책은 필수품이었다. (9쪽)

내가 초등학생 때는 서점 장사가 잘되었다. 동네도 시끌벅적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모든 교류의 장이 서점이었다. 계산대 옆에는 응접세트가 있었고 그곳에 늘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22쪽)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펄북스,2016)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일본에서 작은 마을책방을 꾸리는 분이 이녁 책살림을 풀어놓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커다란 도시가 아닌 작은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하는 마음과 삶과 생각을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아주 깊은 시골까지는 아닙니다만, 한국으로 치자면 보성읍이나 봉화읍 같은 곳에 마을책방을 열어서 꾸린다고 볼 만해요. 책을 사서 읽을 만한 사람이 적다고 할 만한 곳에서 마을책방을 꾸린다고 할까요.


이토 씨는 과일에 제철이 있듯이 책에도 ‘철(때)’이 있다고 했다. 무조건 신간이라고 제철이 아니다. 오래된 책도 제철이 찾아온다. 어떻게 그 타이밍에 손님에게 제안할까. (31쪽)

동네서점에는 ‘철수’라는 선택지가 없다 … 반면에 전국적으로 뻗어 있는 대형점은 모리오카라는 땅에서 장사가 안된다면 철수해 버리면 된다. (56쪽)


  일본하고 한국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온누리에 손꼽히는 ‘책벌레’ 나라일 수 있습니다. 출판사도 책방도 대단히 많고, 책방거리도 곳곳에 있을 뿐 아니라, 책 팔림새도 돋보입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숫자나 크기만으로 일본이 ‘책벌레’ 나라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느껴요. 한국 사회나 정치나 역사 흐름을 돌아본다면,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을 가르는 틀에다가, 양반만 한문을 익혀서 책을 볼 수 있던 틀도 깊었습니다만, 배우려고 하는 마음은 한국도 대단히 드높아요. 비록 오늘날 이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교’에 목을 매다는 입시교육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지요.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우리만의 색깔을 갖고 한 권 한 권을 파는’ 열정이다. (61쪽)

손님이 어떤 책이 필요할지 상상해서 스스로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길을 만드는 것이 서점의 역할이자 즐거움이다. (69쪽)


  《동네서점》은 마을에 책방이 있으면 무엇이 좋은가 하는 대목을 차분하게 짚습니다. 마을에 책방이 있으니, 첫째 마을에서 책을 바라는 분들이 즐겁게 나들이를 온다고 해요.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을 찾기도 할 테지만, 책이 무엇인가를 더 살갗으로 느끼려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가 책을 인터넷서점에 주문을 넣어서 사더라도 ‘손에 책을 쥐어서 우리 스스로 눈으로 글씨를 좇아 마음에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읽는다’는 일을 이루거든요. 사람들이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구태여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기보다는 스스로 짬을 내어 가볍게 바람을 쐬듯이 책방마실을 다닌다고 합니다.

  요 몇 해 사이에 한국 곳곳에 독립책방이 잇달아 문을 여는 모습을 이런 얼거리로 바라볼 수 있어요.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는 분은 때때로 ‘베스트셀러’도 장만해서 읽지만, 베스트셀러만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중심 진열과 홍보’를 하기 마련입니다. 책을 꾸준히 즐겁게 읽는 분들은 여러 갈래 책을 고루 살필 뿐 아니라,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책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요. 손에 쥐어서 읽을 책이니, 책방마실을 하면서 ‘낯선 여러 가지 책’을 죽 돌아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한 책을 스스럼없이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기 마련이에요.


“이 책을 읽었는데 다음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손님이 얼마나 많은 서점이 될 수 있을까. (122쪽)

인터넷서점과 지역자본이 아닌 대형서점의 체인점 때문에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실현시키기 위한 우리의 각오가 부족했을 뿐이다. (134쪽)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장만할 적에는 ‘다음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하고 허물없이 물어볼 만한 책방지기를 만날 수 없습니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장만할 적에도 계산원이나 관리자를 붙잡고 책수다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책을 꾸준히 즐겁게 읽는 분들은 어느 한 마을에 살면서 스무 해나 마흔 해나 예순 해까지도 걸쳐서 단골로 책방마실을 할 텐데,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는 이 오랜 단골이 오랜 삶길에 걸쳐서 책을 마주하는 마음을 읽거나 헤아리기 어렵지요.

  이 대목에서 마을책방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길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을책방은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울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마을책방은 마을책방다운 살림을 알맞게 가꾸면서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우물가나 샘가나 물가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는 매출과 유통과 홍보 흐름에 맞추어 책을 놓을 테지만, 마을책방에서는 마을사람 마음을 이끌 만한 책을 저마다 다르면서 재미있게 가꾸어 볼 수 있어요.

  이른바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뽑는다면, 마을책방에서는 ‘마을에서 사랑하는 책’을 그때그때 다르면서 새롭게 선봉일 만해요.


서점에서 단지 책을 사는 것뿐이라면 대형서점이 있으면 충분하다. (55쪽)

전부 베스트셀러만 진열하면 오히려 책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서점원은 잘 알고 있다. 이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78쪽)


  마을책방에서는 책만 사지 않습니다. 마을책방에서는 책방지기하고 책손이 마을사람으로서 만납니다. 마을책방에서는 책을 징검돌로 삼아서 마을을 한껏 아름답게 가꾸거나 살찌우는 길을 즐겁게 생각하는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마을책방에서는 책방지기하고 책손이 이웃으로서 사귑니다. 마을책방에서는 책을 발판으로 삼아서 이 마을이 늘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이들이 활짝 웃고 어른들이 신나게 노래하는 살림을 짓는 길을 찾아보려는 마음을 나눕니다.

  물건을 그저 사기만 하면 될 뿐이라면 큰 가게, 이른바 대형마트나 백화점만 있으면 돼요. 마을가게가 있는 까닭, 마을찻집이 있는 까닭, 마을떡집이나 마을빵집이 있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마을책방은 수많은 마을살림 가운데 하나이면서, 마을사람이 오순도순 생각을 지피는 씨앗을 얻는 책을 소담스레 갖춘 너른마당이자 열린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7.8.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을 말하는 책/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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