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호의 옷감 - 생활 고구려 이야기 그림책
김해원 지음, 김진이 그림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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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4



사랑 담아 고이 물들인 옷 한 벌
― 매호의 옷감
 김해원 글
 김진이 그림
 창비 펴냄, 2011.11.1. 12000원


지밀이가 문을 빠끔히 열고 말했어.
“이제 어머니한테 길쌈 배우느라 너하고 못 놀아.”
매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텅 빈 마당만 바라보았어.
마당에는 달가닥달가닥 옷감 짜는 소리만 맴돌았지. (7쪽)


  우리는 옷을 입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옷을 입습니다. 아기는 갓 태어날 적에 맨몸이에요. 아기만 처음에 옷을 안 입은 채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그런데 어버이는 아기한테 입힐 배냇저고리를 마련해요. 맨몸으로 태어난 아기는 어버이가 사랑으로 지은 첫 옷인 배냇저고리를 몸에 두르면서 따스하구나 포근하구나 좋구나 살갑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밀이도 자기가 지은 실이나 옷감을 꼭 매호에게 맡겼어.
매호는 지밀이 것은 더 정성스럽게 물들이고도, 말은 퉁명스럽게 이러지 뭐야.
“공 잘 찬다고 손 솜씨가 좋은 건 아니더라.”
지밀이가 눈을 흘겼어.
“칠석날 길쌈 겨룰 때 봐. 내가 으뜸일 테니.” (11쪽)


  우리는 옷을 언제부터 입었을까요? 우리는 옛날 옛적에 어떤 옷을 입었을까요? 요즈음은 옷집에 들러 옷을 돈을 치러서 장만할 수 있습니다. 길쌈이나 베틀이나 실잣기나 모싯잎 들을 하나도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옷을 장만하여 입을 수 있어요. 실을 한 올씩 짓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값싸고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옷이 참으로 많아요. 알록달록 이쁜 옷에다가 눈부신 옷도 있어요.

  지난날 고려라는 때에는, 고구려라는 때에는, 옛조선이라는 때에는, 또 나라로 적바림되지 않은 더 아스라이 먼 옛날에는 저마다 어떤 옷을 입었을까 하고 가만히 그리면서 그림책 《매호의 옷감》(창비,2011)을 읽어 봅니다. 이 그림책 숱한 옛사람 옷살림 가운데 고구려 옷살림을 다루어요. 고구려 옷살림 가운데에서 수수한 사람들 옷살림을 다루고, 이 가운데에서도 ‘수수한 옷에 물을 들이는 손길’을 다룹니다.


매호는 밤마다 지밀이에게 줄 옷감을 물들였어
꼭두서니로 꽃보다 붉은 색을
쪽으로 하늘보다 파란 색을
치자로 달님보다 노란 색을 물들였지.

하지만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았어.
“이런 빛깔은 흔하잖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만들어야 해.” (20∼21쪽)


  꼭두서니나 쪽이나 치자는 풀입니다. 들에서 흔하게 자라는 풀이에요. 옛사람은 흔한 들풀 가운데 천에 물을 들여서 곱게 누릴 만한 들풀이 무엇인지 알아냈어요. 꼭두서니물을, 쪽물을, 치자물을 다 다르면서 새로운 빛깔로 태어나는 결을 알아챘어요.

  옛사람은 옷이 되는 실도 풀에서 얻었습니다. 풀줄기를 가르고 다듬고 손질해서 실을 얻었고, 이를 물레로 잣고 베틀을 밟아서 천으로 짰어요. 옛날 옛적에는 모든 사람이 들풀을 잘 알고 다룰 줄 알아야 했어요. 그래야 저마다 옷을 지어서 입거든요. 그리고 옛날 옛적에는 모든 사람이 들풀이나 들열매를 제대로 알아야 땅을 일구거나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었지요.


싸움터에 나가는 날, 매호는 그동안 물들인 옷감을 지밀이에게 주었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야.”
매호는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길을 떠났어.
지밀이는 매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 (25쪽)


  그림책 한 권은 먼먼 옛날 어느 고장에서 옷감을 물들이던 사내하고 베틀을 밟던 가시내 사이에 애틋한 마음이 흘렀으리라 하는 생각을 그려서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 옛날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나 살림이나 삶이 있었는지 알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옷을 입었어요. 저마다 사랑을 담아 옷감을 다루어 옷을 지었어요. 서로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옷을 입었어요.

  가볍거나 손쉽게 돈만 치르면 사서 입는 옷이 아닌, 마음을 담아서 알뜰히 건사하고 살뜰히 보듬은 옷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옷살림이에요. 옷 한 벌을 고이 아껴요. 옷 한 벌을 지은 사람이 어떤 땀을 어떤 손길로 흘리면서 지었는가를 돌아보아요. 옷을 고이 차려입은 곁님이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버이로서 빙그레 웃음을 지어요.

  고구려 이야기 《매호의 옷감》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앞으로 다가올 즈믄 해 살림을 그려 봅니다. 앞으로 서기 3000년 즈음이 된다면, 그때 뒷사람은 2000년대 오늘날 우리 옷살림을 놓고서 어떤 이야기를 붙여서 헤아려 줄까요? 오늘 우리가 즐기거나 나누는 옷살림은 먼먼 뒷사람한테 어떤 그리움이나 사랑으로 읽힐 수 있을까요? 2017.9.1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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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9.13.


서울에서 두 군데 출판사에 들러 책을 산다. 서울서 진주로 가려는데, 진주에 닿아 만날 분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책을 산다. 이 책 저 책 챙기다 보니 가방이 묵직하다. 시외버스가 이 짐을 잘 실어 주겠지. 19시 30분 진주 가는 시외버스표를 미리 끊고 고속버스역에 닿는다. 버스역 맞이방에서 기다리려다 보니 19시 5분 버스에 아직 자리가 있다. 어라? 삼십 분 더 일찍 갈 수 있나? 표파는곳에 여쭈니 자리가 있단다. 얼른 표를 바꾼다. 맨 앞자리를 얻어서 앉는다. 가방을 모두 풀어 내려놓고서 노래를 듣는다. 눈가리개를 하고서 한참 노래만 들으며 몸을 쉰 다음에 《시인의 마을》을 손에 쥔다. 나한테 “시인의 마을”이란 이름은 정태춘·박은옥 두분이 부른 노래에 붙은 이름인데, 이 이름으로 책이 한 권 태어났다. 시인이 사는 마을, 시인이 사랑하는 마을, 시인이 그리는 마을, 시인이 머물다 간 마을, 시인이 태어난 마을, 시인이 자란 마을, 시인이 그리는 이웃님이 살아가는 마을 …… 수많은 마을이 있다. 수많은 마을에는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삶을 짓는다. 이렇게 지은 삶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싹이 트고, 이 다른 이야기를 시인이 살며시 들여다보더니 살그마니 시 한 줄로 옮긴다. ‘시인마을’이란 시인이 살거나 좋아하는 마을일 수 있으면서, 시가 태어나는 마을이요 시가 샘솟는 마을이다. 시가 태어나고 시가 흐르며 누구나 시인이 되어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우리라. 마을은 시인마을 되고, 나라는 시인나라 되어, 이 지구라는 별이 시인별, 이른바 ‘노래별’로 거듭나기를 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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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13.


수원에 닿아 번개모임을 했다. 번개모임을 마치고 사당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넘어서는 버스도 시외버스라고 해야 할까. 마을책방 〈노르웨이의 숲〉은 전철역으로는 ‘성균관대역’에 내려 걸어서 찾아간다. 그러니 사당역으로 버스를 타고 갈 적에는 이 역 둘레로 돌아가는데, 이 자리가 “대학교 앞”이라는 대목을 버스를 탈 적에 새삼스레 느낀다. 앳된 젊은이들이 버스에 가득하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가는 대학생일까? 어쩌면 그렇겠지. 사당역에서 버스를 내리는데 참말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어마어마한 물결이다. 그런데 말이지,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버스에서도 사당역 언저리에서도, 또 전철을 갈아타고 내방역으로 가는 동안에도, 앳된 젊은이들 얼굴에 웃음이 안 보인다. 거의 모두 손전화기를 바라보며 재미난 영상을 보거나 놀이를 할 텐데, 활짝 웃음지으면서 다니는 젊은이를 만나기 어렵구나 싶다. 왜? 왜 이렇게 즐거운 웃음이 없이 영화나 연속극이나 누리놀이에 빠지지? 방배동에 있는 마을책방 〈메종 인디아 브러블 앤 북스〉에 들러 이야기꽃을 피운다. 밤 열한 시가 넘어 공덕역 쪽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간다. ㅈ출판사 대표님하고 ㅌ디자인회사 대표님을 함께 뵙는다. 새벽 한 시까지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룻밤 묵을 곳으로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메이즈》를 마저 읽는다. 나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다. 지난 스물 몇 해 사이에 읽은 소설책을 다섯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렵다. 어쩌다가 얼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이즈》를 손에 쥐고 말았는데,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소설이란 이런 맛을 사람들한테 들려주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책이름으로 붙은 말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 길을 찾기 어려우리라 느낀다. 어디로 가야 즐거운 삶이 될는지 저마다 늘 헤매면서 다리가 아픈 사회라고 느낀다. 그러나 길이란 늘 있다. 남들이 내는 길이 아닌 내가 스스로 내는 길이라면 늘 있다. 사회가 내주는 길이 아닌, 우리가 씩씩하게 걸어가며 내는 길이라면 언제나 환하게 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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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12.


고흥에서 순천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단다. 오늘 처음으로 안다. 고흥에서 일곱 해 사는 동안 이런 시외버스는 참말 처음이다. 과역도 벌교도 안 거치고 곧장 순천 버스역에 닿는다. 다만 기차역까지는 안 간다. 그래서 순천 버스역에서 순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기차역으로 간다. 도시락 삼을 먹을거리를 몇 가지 장만하고 순천 갈대술 한 병을 산다. 수원에 닿으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마을책방에 가서 번개모임을 꾸릴 생각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라는 책을 놓고서 ‘국어사전과 말과 삶과 넋과 살림과 마을이란?’ 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이 길을 가는 기찻간에서 무릎셈틀을 꺼낸다. 새마을호는 자리마다 돼지코가 있다. 무선인터넷이 된다. 새마을호는 탈 만하구나. 한참 글을 쓰고 나서 손이랑 머리를 쉬면서 그림책 《파란 분수》를 읽는다. 분수에서 고래를 만나고, 고래 곁에서 바다를 만나며, 바다에서 새로운 바람을 만난다는 아이가 살며시 웃음을 짓는 이야기가 흐른다. 이쁘다. 그림도 이야기도 빛깔도 다 이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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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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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1



함께 삶을 짓는 어버이

― 은빛 숟가락 12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7.7.31. 5000원



‘나중에 스구루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동명의 여자가 작년 겨울 교통사고로 혼사상태에 빠졌는데, 딱 1년 뒤인 3주쯤 전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젊었을 때 남편을 잃어서 딸도 손녀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분을 만나고 싶어서 속으로 몇 번이나 불렀지만 그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2∼33쪽)


‘아직도 반에서 나와 미유는 따돌림당하고 있고, 노리카는 그 애 나름대로 친구가 있다. 나한테 학교는 전혀 마음 편한 곳이 아니지만 코타가 있으니까 괜찮아. 온 세상이 적이 된다 해도 코타가 옆에 있어 준다면.’ (48쪽)


‘이 사람(친어머니)과 이런 식으로 웃으며 얘기하는 날이 오다니.’ “시라베가 좋아해서 우리 집은 튀김을 꽤 하거든요.” “그럼 그때 불러 줘. 먹으러 갈게.” “하야카와 집안에?” “그래. 널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 준 감사인사를 아직 안 했잖아.” “응. 알겠어요.” (153∼154쪽)



  사귀는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귀기 때문에 이이를 꼭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이하고 꼭 사귀지는 않습니다. 사귀는 마음에서 살을 섞을 수 있을 테지만, 이때에 사랑이 흐른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이와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살을 섞지 않더라도 서로 아끼면서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를 낳아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어른인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에 머물 수 없습니다. 어버이라는 자리에서 아이를 돌보려는 마음이 흐른다면, 어른인 두 사람은 이제 사랑하는 숨결로 거듭나야 해요. 사랑일 적에 비로소 따스하면서 넉넉한 손길로 살림을 지어요. 사랑이기에 비로소 즐거이 노래하는 몸짓으로 삶을 가꿉니다.


  서로 사귀는 사이란, 서로 재미나게 어울리는 하루가 좋다고 여기는 마음이지 싶어요. 서로 사귈 적에는 한결 재미나게 놀거나 나들이를 다니는 하루를 누리려고 하는 마음이 될 테고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재미난 어울림을 넘어섭니다.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기쁨이 흐르는 보금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매만지려고 합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집안일만 해낸다고 해서 누구나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언제나 새롭게 꿈꾸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됩니다. 아이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을 만한 살림을 사랑으로 다스리기에 어버이가 돼요. 《은빛 숟가락》 열둘째 권을 읽으면서 어버이라는 자리, 어버이라는 마음, 어버이라는 사랑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2017.9.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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