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가는 길 큰곰자리 32
이승호 지음, 김고은 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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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1


심부름이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사라지네
― 심부름 가는 길
 이승호 글
 김고은 그림
 책읽는곰 펴냄, 2017.7.21. 1만 원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 ‘심부름’입니다. 심부름꾼은 남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이와 달리 ‘일’은 남이 시킬 적에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하곤 합니다. ‘일꾼’은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때때로 스스로 생각해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옛날하고 퍽 다릅니다만, 옛날에는 아이들이 굳이 어른이 안 시켜도 스스로 낫으로 풀을 벤다든지 소한테 여물을 챙긴다든지, 닭우리에 짚을 깐다든지 했어요. 이때에는 아이들이 심부름 아닌 일을 하는 셈입니다. 씩씩하고 다부지게 작은 몫을 맡은 일꾼이에요.

“근디, 동순아! 너 아부지 심부름 한번 해 볼 텨? 오빠는 못 하겠다니께 대신 늬가 해야겄다.” 아버지는 동이한테 눈길도 주지 않고 동순이에게 말을 시킵니다. ‘얼러리? 동순이한테? 오빠가 버젓이 있는디? 저 아부지 도대체 왜 저런댜?’ (23쪽)

  어른으로서 하기에 벅차거나 틈이 안 날 적에 아이를 불러서 일을 맡깁니다. 바로 심부름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받는 심부름이 반가울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보람을 누릴 만하고, 어버이가 아이를 믿고서 어떤 일을 맡긴다는 즐거움을 누릴 만해요.

  이와 달리 심부름이 번거롭거나 귀찮을 수 있어요. 살짝 짜증이 나거나 성이 날 때도 있겠지요. 툭하면 불러서 이것저것 시킬 적에는 싫은 마음이 날 만합니다.

셋은 다시 걷습니다. 동이는 무릎을 다쳐 걷기가 힘듭니다. 절뚝거리며 걷습니다. “어이, 쩔뚝이!” 그걸 본 누렁이가 동이를 놀립니다. “개가 사람을 놀려?” “개는 사람 아녀?” “넌 개여.” “그런가? 하여간에 쩔뚝이 소리 들으니께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 동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누렁이에게 미안해집니다. “앞으로는 안 놀리께.” 동이가 약속합니다. (68∼69쪽)

  이승호 님이 이녁 어릴 적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그려낸 어린이문학 《심부름 가는 길》(책읽는곰,2017)은 마지못해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 마음을 보여줍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어떻게 살살 꼬여서 심부름을 맡기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심부름길에 나선 아이가 방아깨비하고 말을 섞는다든지, 냇물에서 ‘미꾸용’을 만난다든지, 같이 길을 나서던 누렁이(개)가 사람하고 말을 나눈다든지, 여러 일을 겪는다고 해요.

서랍 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거 아저씨가 돈 꺼내는 소리여. 빚 갚을라고.” 동순이가 실실 웃으며 아는 체합니다. 아저씨가 방에서 나옵니다. 과연 손에 흰 봉투가 하나 들려 있습니다. “자, 이거 아부지 갖다 드려라이. 이제 빚 갚응겨? 안에 편지도 있다이.” (95쪽)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어떤 심부름을 맡기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말 아이들은 사람 아닌 여러 이웃이나 동무하고 말을 섞곤 합니다. 개미하고도, 나무하고도, 나비하고도, 새하고도, 구름하고도, 더구나 바람하고도 말을 섞어요.

  어쩌면 누구나 모든 이웃하고 말을 섞을는지 몰라요. 오늘은 어른이라는 몸을 입으며 살아가는 분들도 이녁이 어릴 적에 어버이 심부름을 하려고 제법 먼 길을 혼자서 걸어서 오가는 동안 들풀이나 들꽃이나 풀벌레하고 말을 섞었을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바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크고작은 수많은 숲짐승하고도 말을 섞었을 테지요. 때로는 도깨비를 만나기도 했을 테고요.

  요새는 아이들이 심부름을 다니는 일이 드뭅니다. 게다가 요새는 전화 한 통이면 가게에서 손쉽게 실어다 날라 줍니다. 어른들도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겨서 글월을 주고받기볻다는 손전화를 눌러서 이야기를 나눌 테고요. 심부름이 차츰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웃음도 재미도 차츰 스러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2017.9.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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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는 책 2017.9.6.


비가 온다. 작은아이는 아직 뒷간에 똥 누러 갈 적에 “똥 누러 같이 가자.” 하고 부른다. 작은아이가 뒷간에서 똥 누는 소리를 들으면서 비님 오시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시집 《물에서 온 편지》를 읽어 본다. 물이 어떤 글월을 띄웠을까. 바다에서 하늘에서 골짜기에서 땅밑에서 저마다 어떤 물에 글월을 띄웠을까. 우리 몸도 거의 모두 물로 이루는데, 우리 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흘러서 글월에 사부자기 내려앉을까. 가만히 흐르는 싯말이 조용하다. 작은아이를 씻기고, 큰아이는 스스로 씻고, 두 아이 밥상을 차리고, 이 아이들을 이끌고 책숲집을 다녀오고, 비를 맞으면서 좀 걷기도 한다. 마당 한켠에 마을고양이가 비를 함께 긋는다. 마당 한쪽에 있던 풀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서 다가온다. 무화과를 파먹던 말벌이랑 모기랑 멧새 모두 이 빗줄기를 그으려고 어디론가 숨는다. 비가 개면 모조리 무화과를 먹으려고 나무 곁에 모일 테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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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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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4


아프고 작은 이와 이웃 되는 언론을 바라며
―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글
 수오서재 펴냄, 2016.8.22. 12000원


  저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제금을 나서 살았고, 이때부터 텔레비전 없는 살림을 지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은 지 스무 해가 넘는데, 살면서 어렵거나 번거로울 일을 못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사는 동안 힘들거나 갑갑한 일을 못 느껴요.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 살림이란, 방송을 들여다보지 않는 살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지 하나도 안 들여다볼 뿐 아니라, 사회 흐름이라든지, 날씨 이야기조차 안 쳐다본다는 살림이기도 해요. 저나 곁님은 ‘마지막으로 어버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무렵’에 얼굴을 보거나 이름을 들은 연예인이나 가수 이름을 어렴풋이 떠올릴 뿐, 누가 뜨거나 지는지 몰라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연예인도 가수도 모르고요.

  방송을 보지 않으니 신문도 읽지 않습니다. 이러니 저희 집에서는 참말로 정치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나 연예인이나 운동경기 이야기를 하나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집에서 스스로 짓는 살림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디거나 느리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가꾸거나 돌볼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나는 역군 아닌데
종현이 아버지인데
지수 씨 남편인데
썩 괜찮은 아들인데
(나는/‘보령 조선소 직원 철판에 깔려 숨져’를 읽고서 2010.10.6.)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수오서재,2016)를 읽으며 살짝 놀랍니다. 저희는 방송도 신문도 가까이하지 않기에 이 시집이 지난해 여름에 나온 줄 몰랐어요. 전남 광주에 있는 마을책방에 갔다가 그곳 책시렁에서 눈에 뜨여서 장만했어요. 이 시집을 선보인 분은 ‘제페토’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요. 이 시집을 쓴 분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젊은지 늙은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마흔 줄을 넘긴 아저씨라고 어림한다고 해요.

  성별이나 나이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시집을 낸 분이 ‘댓글로 쓴 시’가 대수롭습니다. 제페토라는 분은 이녁 이름을 고이 묻은 채, 신문에 실리는 사회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시를 써서 댓글을 남겼다’고 해요. 누리신문에서 글을 읽고서 댓글을 남겼겠지요.

짜디짠 소금장수라지만
씀씀이 푸짐했다
지뢰가 걷어붙인 두 팔로
온종일 땡볕 아래에서 수확한
눈부신 결정들은
소금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
(소금선생/‘세상의 소금 된 손 없는 소금장수의 선행’을 읽고서 2011.5.1.)

  신문에 실리는 사회 이야기에는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단하거나 괴로운 사람들 살림이 묻어나곤 합니다. 제페토라는 분은 아픈 이웃을 신문글로 마주하면서 함께 아파 합니다. 슬픈 이웃을 마주하면서 함께 슬퍼 하고, 괴로운 이웃을 마주하며 함께 괴로워 해요. 그리고 이 모든 마음을 시로 수수하게 풀어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신문에 나오는 사회 이야기는 퍽 딱딱합니다. 이른바 ‘사실 보도’만 하니까요. 일하다가 그만 용광로에 떨어져 아스라이 목숨을 잃은 이웃이 있어도, 입시지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린 이웃이 있어도, 무시무시한 전쟁무기 때문에 티끌처럼 목숨을 빼앗긴 이웃이 있어도, 신문에 글을 싣는 기자는 ‘모든 슬픔이나 눈물 같은 느낌을 감추’고서 딱딱한 사실 보도만 해요.

박정호가 죽었어요
훌쩍대는 전화에
울 엄마는 그 아이
몇 등이냐 물었네
(학원 가는 길/‘명절이 지나고 다니는 학원 수가 더 늘었어요’를 읽고서 2012.9.28.)

  어쩌면 말이지요, 신문이나 방송이 꼭 사실 보도만 해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프거나 슬픈 이웃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함께 눈물을 적시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기쁘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함께 웃음꽃을 피우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엉터리 정치꾼이 재판을 받고 죄값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룰 적에는 매섭게 나무라거나 꾸짖을 수 있어요. 앞으로는 ‘감정 보도’를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참거짓(사실)에 바탕을 둔 곧은 마음(감정)을 드러내는 보도’가 되어야겠지요.

술을 샀습니다
나만큼 가난한 후배에게
한턱을 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는
곱창을 노래했었습니다 (사당동에서)

  방송국에서 파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방송도 신문(종이신문)도 안 보지만, 누리신문에 글을 쓰는 터라, 누리신문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로 얼핏 알았습니다. 파업을 하려는 방송국 일꾼은 앞으로 방송이 옳고 바르며 참다운 길을 가도록 힘쓰려는 마음을 드러내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촛불 한 자루가 일으킨 큰 빛물결처럼 방송국 일꾼이 똘똘 뭉쳐서 일어나는 몸짓도, 참다운 방송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소리물결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바라고 싶어요. 방송 파업을 하는 김에, 방송국 일꾼이 ‘방송국이 있는 서울 같은 도시’를 떠나서 외진 시골이나 멧골로 찾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는 전남 고흥 같은 시골은 ‘○○시 내 고향’이나 ‘○○노래자랑’ 같은 일이 아니라면 방송국 기자도 신문사 기자도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더욱이 외진 시골이나 멧골에 사는 할매나 할배는 ‘방송에 나오는 대로 믿’곤 하셔요. 두 다리로 외진 시골이나 멧골로 방송국 일꾼이 찾아다니면서 ‘입으로 방송 파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렇게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 온몸으로 들려준 ‘새로운 방송으로 거듭나려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앞으로 새로운 방송길을 열 적에 즐거이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리하여 댓글시인 제페토 님이 앞으로 ‘아름답고 즐겁게 피어나는 이웃’ 이야기도 넉넉히 마주하면서 그 시골바람 좋더라 하는 시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에 이어 “그 나물밥 맛나더라” 같은 시가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9.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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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9.5.


“넌 어디에서 태어났니?” 하고 물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병원이요’나 ‘산부인과요’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또는 ‘서울이요’나 ‘부산이요’ 같은 말을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는 병원이나 서울에서만 태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어머니 몸을 거쳐서 이 땅에 나온 자리가 병원이나 서울일 수 있지만, 우리 숨결이나 넋을 이루는 바탕은 언제나 숲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목숨을 이으려고 먹는 밥도 모두 숲에서 비롯하고요. 그림책 《내가 태어난 숲》을 가만히 읽습니다. 바느질이 한 땀 두 땀 흐르면서 이야기가 한 꼭지 두 꼭지 어우러집니다. 붓끝을 넘어 바늘끝으로 이야기꽃이 피어요. 그림책은 투박하게 흐릅니다. 할머니가 찬찬히 놓은 바늘땀은 조용하면서 싱그러운 웃음입니다.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웃음을 새롭게 피우려는 손길은 상냥한 노래입니다. 가을비가 옵니다. 잔잔하게 옵니다. 이 가을비를 맞으면서 마당에서 무화과를 두 소쿠리 땁니다. 말벌도 모기도 파리도 개미도 나비도 무화과 달콤한 열매맛을 보려고 모두 모입니다. 직박구리도 박새도 물까치도 무화과 달달한 열매맛을 보고 싶어 옆에서 저를 지켜봅니다. 그래 그래, 우리 같이 먹자.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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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24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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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3



좋아하니까 함께 있지

― 경계의 린네 24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3.25. 4500원



‘하지만 이걸로 분명해졌다. 이 영이 원하는 것은 무사히 회사 꽃놀이가 열리는 것.’ (73쪽)


“성불했구나.” “다행이야.” ‘하지만 무료봉사. 게다가 환야등 대여료까지 나갔으니 완전 적자로군. 허무하다.’ “저, 모처럼 좋은 자리를 알았으니, 내일 여기서 꽃놀이라도 할까?” “뭐?” “도시락은 내가 싸올게.” (75쪽)


“어머, 정석대로 영의 이야기를 들어주네.” “린네 님이 일하는 걸 보고 배웠나 봐요.” (108쪽)


‘잠시나마 마미야 사쿠라에게서 눈을 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 존경어린 눈빛. 그래, 이제 됐어. 5만 엔짜리 흑여우 같은 건, 이 흐뭇한 한때에 비하면. 물론 상금 5만 엔을 받으면, 편의점의 온갖 진수성찬을 실컷 먹고, 밀린 사신도구 외상값도 다 갚을 수 있어.’ (123∼124쪽)



  우리는 스스로 좋아하니까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한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아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손을 맞잡고 뚜벅뚜벅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마무리짓지 못할 적에는 대단히 아쉬워요. 죽어서도 못 잊고 떠돌거나 맴돌 만하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은 죽음을 무릅쓰고 할 만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죽은 뒤에도 저승에서 잇고 싶은 생각이 들 만해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늘 활짝 웃으면서 할 수 있어요. 서로 좋아하기에 어렵거나 고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함께 할 만합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데에만 매달리면 그만 옆을 못 볼 수 있어요. 지나치게 좋아하기만 하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못 보거나 놓칠 수 있어요. 한 가지만 좋아하느라 고루 못 보기 마련이요, 그저 한 가지만 좋아하느라 다른 모든 것을 제대로 못 살피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얽매이듯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좋아하기에 때로는 살짝 떨어질 수 있어야지 싶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그리는 마음으로 되어 보고, 이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마음이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할 적에는 좋아하는 느낌에서 그치기보다는, 이 느낌을 살찌우거나 북돋아서 참된 사랑으로 가꾸려는 꿈이 있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 되도록 짓고 싶은 꿈입니다. 2017.9.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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