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22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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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0



무엇이 남하고 비슷한 수수함일까

― 백귀야행 22

 이마 이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시공사 펴냄, 2014.4.15. 5000원



‘그보다 난 다시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게 보이는 걸까?’ (25쪽)


“다들 별 차이 없어. 이이지마 가문의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으면서, 자기와 다른 걸 보는 사람이 무서운 거야. 다들 자기가 제일 약한 존재고, 제일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56쪽)


“당신은 아름다워요. 사람 목숨을 앗아가며 살아왔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죽은 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도리어 당신이 그 목숨을 살렸죠. 떠올려 봐요. 어서요!” (198∼199쪽)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왜 이 두 갈래로 갈리는가를 잘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니 지나치기도 했고, 못 알아보면 못 알아보는 사람한테 아쉬울 뿐이라고 여기기도 했어요.


  아이를 둘 낳아서 돌보는 살림을 짓는 동안 두 갈래로 서는 사람들을 찬찬히 돌아보곤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제가 못 알아본 모습을 먼저 깊이 알아보고 나서 활짝 웃으며 알려주곤 합니다. 거꾸로 아이들이 못 알아보는 모습을 넌지시 알아보면서 가만히 알려주기도 해요.


  아이들은 어떻게 먼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러면서 아이들은 왜 못 알아보기도 할까요? 어버이자 어른인 나는 왜 못 알아볼 때가 있고, 아주 낱낱이 잘 알아보기도 할까요?


  밤이 깊어 두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사이에 누워서 몇 마디를 섞다가 저마다 곯아떨어져서 꿈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늘 생각에 잠깁니다. 알아보는 사람도 나요, 못 알아보는 사람도 나예요. 알아보거나 못 알아보거나 모두 따사롭고 사랑스러운 이웃이나 아이입니다.


  곧 수수한 사람이 따로 없고, 남다른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마음으로 읽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기에 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읽어요. 그동안 얻은 지식에 비추어 살피기에 이 지식에 맞추어 읽어요. 누구는 두려움이 없고, 누구는 두려움덩이예요.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몸짓이 달라지고, 이 몸짓에 맞추어 삶이 바뀌더군요. 우리는 늘 수수한 사람이면서 남다른 사람입니다. 우리한테는 두 갈래 모습이 나란히 있어요. 이를 스스럼없이 바라보고 꾸밈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두려움도 무서움도 모두 말끔히 걷히면서 꿈길을 걸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9.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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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6.


올들어 읍내 우체국에 아이들을 이끌고 다녀오는 길에 사진기를 거의 안 챙긴다. 무겁거나 번거롭기 때문에 안 챙기지 않는다. 일곱 살하고 열 살을 넘어서려는 아이들하고 다니면서 한동안 사진 찍는 일이 크게 준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서 어버이 생각을 들려주는 일, 이 아이들이 궁금해 할 이야기를 먼저 살펴서 말머리를 여는 일, 가만히 바람소리를 듣는 일 들에 품을 쓴다. 군내버스에서 아이들이 잠들면 펼치려고 시집 한 권을 챙긴다. ㅈ출판사 대표님이 요즈음 마음에 든다고 하는 시인 가운데 이병률 님이 있어서 《찬란》을 읽어 보기로 한다. 시집 《찬란》은 내가 좋아할 만한 시나 이야기는 아니로구나 싶지만, ㅈ출판사 대표님이 이 시를 좋아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이웃이 얼마든지 좋아할 시와 노래와 책과 영화가 있다. 내가 좋아하더라도 이웃이 얼마든지 안 좋아하거나 눈길조차 안 둘 시와 노래와 책과 영화가 있다. 요즈음 다른 시인보다 어려운 말 쓰기를 덜 하는 듯싶지만, 그래도 제법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어려운 말이 보인다. 이런 허울을 좀 덜어내면 한결 눈부실 만하리라 생각해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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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캥거루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35
에릭 바튀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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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1


우린 서로 달라서 사랑할 수 있어
― 빨강 캥거루
 에릭 바튀 글·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펴냄, 2017.8.28. 13000원


  온몸이 새빨간 캥거루가 있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모르는 노릇이라고 느껴요. 어쩌면 어느 날 수많은 캥거루하고 다르게 새빨간 털빛인 캥거루가 태어날 수 있거든요.

  한겨레는 으레 까만 머리카락이라고 여기는데,  노란 머리카락이나 파란 머리카락이나 빨간 머리카락인 아이가 태어날 수 있어요. 까만 눈알이 아닌, 푸르거나 파란 눈알인 아이가 태어날 수 있을 테고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아이가 하얗거나 은빛인 머리카락이라면, 이웃이 푸르스름하거나 노르스름한 머리카락이라면, 이 같은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으로 서로 마주하거나 사귈 만할까요.


오늘 아침, 아기 캥거루가 엄마 주머니에서 나왔어요.
“어머나, 세상에! 온통 빨갛잖아. 아유, 무서워.”
다른 캥거루들이 소리쳤어요.
“무섭지 않아. 얘는 그냥 털이 빨간 거야. 그래서 이름도 빨강이야.”
엄마 캥거루가 알려주었지요. (2쪽)


  캥거루라면 털빛이 다를 수 있고, 사람이라면 살빛이나 머리빛이나 눈빛이 다를 수 있습니다. 쓰는 말이 다를 수 있고, 생각이나 꿈이 다를 수 있어요. 힘이나 키나 몸집이 다를 수 있고, 솜씨나 재주가 다를 수 있어요.

  키가 크거나 작아도 모두 똑같은 캥거루요 사람입니다. 털빛이나 머리빛이 달라도 모두 똑같은 캥거루이면서 사람이지요. 겉모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겉모습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즐거이 사귈 수 있을 테고요.

  에릭 바튀 님이 빚은 그림책 《빨강 캥거루》(북극곰,2017)는 어느 날 수많은 다른 캥거루하고 털빛이 매우 다른 새끼 캥거루가 태어난 이야기로 첫머리를 엽니다. 어느 캥거루 마을에서 털빛이 빨간 캥거루가 태어나자 이웃이 모두 놀라면서 무서워해요.

  처음 보니까 무서워할 수 있지만, 나하고 다르니까 ‘쟤는 뭔가 무서워!’ 하는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에 빨강 캥거루를 낳은 어미 캥거루는 슬기롭게 이웃을 마주해요. 그저 털빛이 빨갈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웃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해요. 그리고 어미 캥거루는 빨같 털빛인 새끼 캥거루를 더 따스히 품으면서 슬기로이 가르칩니다. 다른 캥거루보다 힘이 여리더라도, 다른 캥거루보다 잘 놀라더라도, 다른 캥거루가 하는 일을 못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빨간 새끼 캥거루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북돋우지요.


빨강은 무지개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었어요.
엄마가 말했어요.
“아직 어떤 캥거루도 무지개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지 못했단다.
 캥거루는 용감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기도 한데 말이야.” (20쪽)


  사회에서는 으레 사회성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곧잘 해요. 사회에서 잘 어울릴 수 있는 몸짓이나 마음이 사회성이라 할 텐데, 참다운 사회성이라 한다면 ‘나하고 비슷하게 생긴 이’만 이웃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참답지 못한 사회성이기에 ‘나하고 다르게 생긴 이’를 내치거나 등돌리거나 따돌린다고 생각합니다.

  남하고 닮아야 하는 사회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이 나하고 다른 줄 깊이 깨닫고 널리 헤아리면서, 다 다른 이를 저마다 사랑스러운 이웃으로 마주하는 길을 익히는 사회성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회성을 아직 ‘똑같은 틀에 맞추는 길’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사내는 머리카락이 짧아야 하고, 부엌일은 안 해도 되고, 힘이 세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가시내는 머리카락이 길어야 하고, 치마를 둘러야 하고, 부엌일을 잘 해야 하고, 사내보다 힘이 여려야 한다고들 말해요. 그렇지만 이런 사회성이라면 참다운 사회성과는 너무나 먼, ‘갇힌 틀(획일)’이지 싶어요.


빨강은 수백 번을 뛰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무지개 끝에 다다랐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파랑 캥거루 소녀가 있었어요.
“난 겁쟁이 캥거루야.”
“나도 겁쟁이인걸.”
파랑이 대답했어요. (22쪽)


  그림책 《빨강 캥거루》는 아주 쉽고 수수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줍니다. 빨강 캥거루가 태어났다고, 어미 캥거루는 이 빨강 캥거루를 ‘모두 똑같이 사랑스러운 새끼 캥거루’로 마주했다고, 어미 캥거루는 새끼 캥거루한테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는 슬기를 가르쳤고, 새끼 캥거루는 어미 캥거루한테서 이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을 배우면서 무지개를 찾아나서는 새로운 길을 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그리고 빨강 캥거루는 무지개 끝자락에서 새로운 캥거루를 마주쳤대요. 바로 파랑 캥거루라고 합니다.

  파랑 캥거루는 수많은 다른 캥거루 사이에서 어떻게 자랐을까요? 파랑 캥거루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안 받았을까요?

  어쩌면 노랑 캥거루나 푸른 캥거루도 있지 않을까요? 달빛 캥거루나 쪽빛 캥거루도 있지 않으려나요?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지면서 무지개가 아름다워요.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지면서 마을도 나라도 아름다워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태어나면서 자라기에 다 다르게 아름다워요. 2017.9.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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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캥거루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35
에릭 바튀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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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이 아직 이웃나라 그림책을 못 따르는 대목을 잘 느낄 수 있다. 다 다른 숨결이 참말 다르기에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새길을 연다는 줄거리를 투박하면서도 따스하고 넉넉하게 담아낸다고 할까. 대단한 줄거리를 다뤄야 하지 않는다. 고운 사랑으로 짓는 삶을 다루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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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은 책 2017.9.7.


아침에 일찍 책숲집에 가 본다. 며칠 비가 제법 왔지만 이동안 빗물이 많이 새지는 않았다. 빗물을 밀걸레로 조금 닦은 뒤에 책꽂이를 옮긴다. 칸칸이 쌓을 책꽂이는 쌓고, 상자에 넣어 빼둘 책은 뺀다. 뒷판이 헐렁한 책꽂이는 못질을 하고, 그림책하고 사진책이 좀 돋보일 수 있도록 책꽂이를 영차영차 들어서 나른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다. 이러고서 알타리무를 손질해서 썬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저희도 칼을 쥐어 썰고 싶단다. 그러겠니? 나는 풀을 쑤면서 다른 양념 한 가지를 마련해 놓는다. 알타리무 썰기를 마무리하고, 굵은소금으로 재워 놓고는 느즈막하게 밥을 먹는다. 이러고서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를 읽는다. 열다섯 해 만에 바깥일을 하러 나갔다고 하는 일본 아주머니. 집에서는 집대로 집일을 하고, 밖에서는 밖대로 바깥일을 하는데, 두 아이하고 곁님은 집일을 거의 거들거나 맡을 줄을 모른단다. 세 사람이 스스로 나서는 적이 없단다. 얼마나 고단하면서 싫었을까. 어머니(또는 집일을 맡은 사람)가 집일을 안 가르치거나 안 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렇게도 집일을 안 도울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는 틀림없이 달라지리라고, 앞으로는 참말 바꿀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책숲집에 한 번 더 가서 책꽂이를 또 나르고 책을 빼서 옮기는 일을 했더니 그야말로 등허리가 꽤 결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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