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갑 끼고 매듭 풀고 맺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1.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책짐을 꾸리자며 책을 묶을 때까지 맨손으로 책을 묶었다. 맨손으로 책을 묶으면, 여느 때에 으레 집일을 많이 하느라 꾸덕살 딱딱히 박힌 내 손은 더 투박하고 더 딱딱하게 바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실장갑을 낀 손으로는 책을 묶거나 풀면 손느낌이 썩 와닿지 않았다. 올들어 이 책들을 끌르며 곰곰이 생각한다. 실장갑을 낀 채 아주 가뿐하게 책을 묶기도 하고 끈을 끌르기도 한다. 끌른 끈을 실장갑 낀 손으로 슥슥 펴서 휘리릭 매듭을 짓고는 빈 상자에 휙 던져서 톡 넣는다.


  내 나이를 돌아본다면 책을 읽은 햇수가 꽤 길다 할는지 모르겠는데, 여태껏 책을 읽은 햇수 못지않게 책을 만진 햇수도 길다. 1995년부터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책짐을 늘 묶고 끌르고 다시 싸고 또 풀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언제나 내 등짐으로 책을 날랐다. 출판사에서 영업부 일꾼으로 한 해 동안 일하며 창고 책을 갈무리하느라 또 책을 수없이 만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나절 동안 등짐으로 마흔 권짜리 전집 상자 270개를 혼자 등짐으로 나른 적 있다. 이오덕 님 남은 책을 갈무리한다며 또 책을 끝없이 만지작거렸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이오덕 님 책을 내 머리속에 찬찬히 아로새기며 어디에 어느 책이 있고 어디에 어느 원고가 있는가를 외우고 살았다.


  두 아이와 살아가기에 하루 한나절 겨우 책 갈무리에 쓸락 말락 한다. 고작 한나절 책을 만지는데 실장갑이 새까매진다. 집에서 건사하며 곱게 돌보려 하는 책들인데, 이 책들을 한나절 만지는 데에도 실장갑은 새까매진다. 내가 읽어 건사한 책들은 헌책인가 새책인가 그냥 책인가. 책을 털고 쓰다듬으며 제자리에 꽂느라 막상 책을 읽을 겨를을 내기 힘들지만, 오늘 하루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는 겨를을 냈다는 대목을 고맙게 여기며 싱긋 웃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천천히 풀려나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0.

 


  지난해 유월부터 구월까지 아주 신나게 책을 묶었다. 이 책들은 끈으로 묶인 채 짧으면 여섯 달 남짓, 길면 아홉 달이나 열 달 즈음 지내야 했다. 이제 이 책들을 하나하나 끌른다. 겨우 숨통을 트는 책들은 오래도록 묶인 나머지 끈 자국이 남는다. 돌이키면, 이 책들은 2010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이에 앞서 2007년 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고, 2005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며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들을 얼마나 자주 묶고 얼마나 자주 날랐으며 얼마나 자주 쌓거나 쟁여야만 했던가. 부디 다시는 더 끈으로 묶지 않기를 빈다. 앞으로는 고운 손길 예쁘게 타면서 살가이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책꽂이 먼지를 닦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은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천천히 풀려나는 책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좋고 책들도 좋다. 나도 기쁘고 책들도 기쁘다. 너덧 시간 쪼그려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책을 끌르고 꽂지만 힘들 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팔다리 무릎 어깨 등허리 몽땅 쑤시고 결리며 저리다고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2-03-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사름벼리가 함께 했군요 ^^
마음은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에 쓰셨듯이 천천히 해나가세요.
묶고, 끌르고...그게 우리 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노래 2012-03-15 04:14   좋아요 0 | URL
묶고 끌르는 삶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삶으로
천천히 거듭나고 싶어요.. @.@
 


 다시 읽는 책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장석봉 님이 한국말로 옮긴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여섯 권이 나왔다.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회색곰 왑의 삶》, 《뒷골목 고양이》, 《위대한 늑대들》, 《표범을 사랑한 군인》, 《다시 야생으로》인데, 이무렵 이 책들을 하나하나 사서 읽으면서, 이 아름다운 문학이 새로 옷을 입고 나온 일은 더없이 기쁘고 고맙지만, 틀림없이 이 책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질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들이 아주 아름답고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기도 했으나, 이때에는 나 혼자 살아가던 나날이었지만, 나중에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 하면, 우리 아이들이 시튼 문학을 맛보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알뜰히 이 책들을 건사하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다짐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참말 이 책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나마 몇 가지 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모르는 일인데, 아직 살아남은 책들도 창고에 있던 책이 띄엄띄엄 다 팔리고 나면 다시 찍는 일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잊혀지지 않을까. 이렇게 잊혀지고 나서 스무 해쯤 뒤, 이를테면 2030년이나 2040년에 또다시 새로 옷을 입고 태어날는지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새옷이 썩 반갑지 않다. 아름다운 문학인 만큼 아름다운 번역이 되도록 아름답게 느낄 말글로 꽃피우는 책이 되어야 반갑다. 껍데기만 새롭다 해서 새로운 책이 아니다. 알맹이가 새로울 때에 비로소 새로운 책이다. 옷을 새로 입힌다 해서 새로 태어나는 책이 아니다. 알맹이를 새롭게 일구면서 가꿀 때에 바야흐로 새로 태어난 책이다. (4345.3.13.불.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2-03-13 11:36   좋아요 0 | URL
덧붙이면, 잿빛곰 이야기는 재판을 찍으며 겉그림이 달라졌다.
넷째 이야기는 늑대들부터는 겉그림 짜임새가 달라졌다.
넷, 다섯, 여섯, 이 책들도 하나, 둘, 셋 책들처럼
겉을 꾸미면 한결 멋스러웠으리라고 나 혼자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궁...
 

 

 

 

 

 

 


 6만 원으로 사진책 하나 장만하기

 


  갑작스레 6만 원이 생겼다. 누리책방 알라딘에 쓴 느낌글 가운데 세 꼭지가 ‘이달 좋은 느낌글’로 뽑혀 하루아침에 6만 원을 벌었다. 나는 돈을 벌려고 느낌글을 쓰지 않는다. 누가 돈을 준대서 느낌글을 써 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과 얽힌 내 삶 이야기를, 나 스스로 좋아서 느낌글 하나로 갈무리한다. 이렇게 쓰는 느낌글이기에 ‘이달 좋은 느낌글’이라며 내 글을 세 꼭지 뽑아 주면서 6만 원을 덤으로 안기니 몹시 놀란다.


  그러나 놀라지 않기로 다짐한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6만 원으로 새롭게 책 하나 사기로 다짐한다. 그동안 돈이 없다며 장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애타던 사진책들 가운데 한 권을 산다.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진책을 모조리 사자면 아마 5억 원쯤은 있어야지 싶다. 이 가운데 누리책방에 주문해서 살 수 있는 사진책이라 한다면 ‘알라딘 보관함’에 담은 사진책 값만 하더라도 2천만 원이 넘는다. 더욱이,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로 마실을 가서 그곳에서 사진책을 실컷 장만하여 한국으로 보내 달라 한다면, 나로서는 몇 억 엔어치를 살 테니, …….


  덧없는 꿈인지 배부른 생각인지 모르나, 읽고 싶은 사진책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이 사진책들을 장만할 돈이 내 주머니에는 없다. 나로서는 내가 오늘 읽을 수 있는 사진책을 수없이 되읽으며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나 스스로 내가 꿈꾸는 좋은 사진을 빚어 보려고 한다.


  아무튼, 하늘에서 떨어진 6만 원 선물이 찾아왔기에, 《てるてる はるひ―父さん 晴日を撮る》라 하는 사진책 하나를 산다. 이 사진책을 낸 사진쟁이가 누구인지 모르고, 책에 깃든 사진이 어떠한지조차 모른다. 오직 겉그림 하나만 바라보며 장만한다. (4345.3.12.달.ㅎㄲㅅㄱ)

 

ㄱ.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

ㄴ. 좋은 사진은 좋은 삶에서 태어난다

ㄷ.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누리 모든 책은 새책

 


 첫째 아이와 살아온 다섯 해 동안 나와 옆지기는 둘이 어린 나날 보았던 만화영화를 참 많이 되풀이해서 보았다. 서로한테는 어린 나날 보던 만화영화라 할 테지만, 첫째 아이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만화영화였으니.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나오는 〈라 스트라다〉 영화를 볼 때에도 아이한테는 새로운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가 1950년대에 찍었던가, 무척 오래된 영화라 나와 옆지기가 태어나기 앞서 나온 영화이니 ‘옛 영화’라 여길 만하지만, 우리 아이한테는 아주 새로운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바타〉이든 〈천하장사 마돈나〉이든 아이한테는 늘 새로운 영화이다. 그리고,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인 나한테도 새로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새 영화이다.

 

 오늘 내가 읽는 글책을 우리 아이가 스스로 읽자면 대여섯 해는 더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즐겨읽는 어린이책이라면 우리 아이가 서너 해 뒤에도 읽을는지 모른다만, 어른쯤 되어서야 읽을 만한 글씨 깨알같고 부피 두툼한 책이라면 열 해쯤 뒤에야 읽을 수 있다 할 테지. 열 해쯤 뒤, 나로서는 마흔을 훌쩍 넘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돌아볼 ‘내가 젊거나 어린 나날 읽던 책’은 나한테는 ‘참으로 익숙하고 길들었으며 잘 알 만하다’ 여길 수 있는 책이리라. 그런데, 이 책들은 우리 아이한테 언제나 새로운 책이며 새삼스러운 책이고 놀라운 책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처음 책을 가까이하면서 헌책방을 사귀던 때, 나한테 모든 책은 새책이었다. 나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이름을 붙인 책을 2004년에 내놓기도 했지만, 이 책을 내놓던 내 마음은 “모든 책은 똑같은 책”인데 사람들이 이 마음을 왜 이렇게 못 읽는가 싶어 참으로 슬픈 나머지, 이렇게 책이름을 붙였다. 내 마음으로는 “모든 책은 책이다”라고만 하고 싶었다.

 

 헌책방에서 만나던 책이든, 도서관에서 만나던 책이든, 새책방에서 만나는 책이든, 나한테 모든 책은 늘 새책이었고, 그저 책이었다. 또한, 다 읽고 덮으면 모든 책은 고스란히 헌책이 되었다. 헌책이 되었다는 책을 다시 들추어 읽으면 새삼스레 새책이 되었고, 새책이 된 책을 두어 차례 되읽고 또 덮으면 다시 헌책이 되지만, 이 책을 다시 들추고 보면 거듭거듭 새책이 되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새책이다. 늘 새 이야기를 베풀기 때문이다. 온누리 모든 책은 헌책이다. 언제나 내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밭이기 때문이다. 온누리 모든 책은 책이다. 내 사랑과 내 꿈을 고이 담는 슬기롭고 따사로운 길동무이기 때문이다. (4345.3.1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