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뒷모습

 


  잠을 자는 아이 모습을 바라볼 때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저 잠을 자기 때문에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잠에 빠져들며 한창 뛰놀 꿈나라가 그윽하게 아름다우리라 느끼기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아이가 되건 어른이 되건 맑고 귀엽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지지 않습니다. 이맛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고요하고 정갈합니다. 제아무리 모진 짓을 일삼는다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는 모습은 더없이 아늑하고 예쁩니다. 예쁜 사람도 예쁘고, 미운 사람도 예쁜 잠자리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쁜 짓을 하건 미운 짓을 하건, 잠자리 모습뿐 아니라 밥자리 모습도 누구나 예쁘구나 싶어요. 밥을 차릴 때를 비롯해서 밥을 먹을 때와 밥그릇 치울 때 모습을 살피면, 여느 때에 예쁜 짓을 하건 미운 짓을 하건, 그지없이 맑으며 곱구나 싶어요. 또한,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라든지,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서 김을 맬 때라든지, 낫을 들고 논에서 벼를 벨 때라든지, 아이를 안고 들길을 거닐 때라든지, 어느 누구라도 어여쁜 빛 한껏 뿜는 아리따운 얼굴이 된다고 느낍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인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폭 빠져들 때에는 가없이 어여쁘구나 싶습니다. 내 마음 사로잡는 책 하나 손에 쥐어 가만히 눈알을 굴릴 때에는 구부정한 허리가 곧게 펴지고, 흐트러진 매무새가 정갈해지며, 흐리멍덩하던 눈에 무지개빛이 감돈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잠을 자야 합니다. 툭탁툭탁 다툼질이 그치지 않는다면 모두 한숨 자고 일어나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지 싶습니다. 치고받는 싸움질이 끊이지 않는다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똥을 누고 오줌을 누어야지 싶습니다. 전쟁터 군인들이 뒷간에 나란히 앉아 똥오줌을 누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밭일을 하고 논일을 하며 들과 숲 품에 안겨야지 싶습니다. 돈도 이름값도 주먹힘도 내려놓고, 다 함께 작은 연장 하나 손에 쥐며 흙을 만지고 햇살을 누리며 바람을 쐬어야지 싶어요. 즐겁게 사랑하며 빛낼 좋은 지구별 한삶이에요. (4345.5.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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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날 좋은 책 (도서관일기 2012.5.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니 좋은 마음이 될까. 나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날까. 첫째 아이와 함께 서재도서관으로 나와 책을 갈무리하며 생각한다. 내 마음이 좋은 날씨를 부를는지 모르며, 좋은 날씨가 다시금 나한테 좋은 넋을 북돋울는지 모른다. 내 생각이 좋은 삶을 부를는지 모르고, 좋은 삶이 새삼스레 나한테 좋은 얼로 책을 마주하도록 이끌는지 모른다.


  좋은 얼거리는 천천히 이어진다. 궂은 얼거리 또한 천천히 이어진다. 좋은 꿈은 차근차근 이루어진다. 얄궂은 꿍꿍이 또한 차근차근 얽히고 설킨다.


  내 삶을 어떻게 아로새기며 누리려 하는가는 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내 삶에 아름답다 싶은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이렁저렁 따분하거나 부질없는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사랑스러운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지식조각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나 스스로 생각하고 갈무리할 노릇이다.

 


  꿈을 꾼다. 이 땅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 꽃피우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 모과가 익고 매실이 익으며 오디가 익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 감자가 자라며 당근이 자라고 오이랑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꿈을 꾼다. 꿈을 엮고 꿈을 빚으며 꿈을 들려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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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 자리 바꾸기 (도서관일기 2012.5.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이름을 새로 적기로 한다. 이제까지 ‘사진책 도서관’이라 했으나, 이제부터 ‘서재도서관’이라 적으려 한다. 이름을 새로 적더라도 사진책을 알뜰살뜰 건사하는 도서관 모습은 그대로라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림책 도서관’이든 ‘만화책 도서관’이든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도서관을 나라나 지자체에서 세우지 않고, 개인이 혼자 읽던 책으로 꾸리는 일을 생각해 주지 못한다. 나는 내 책으로 내 서재이자 도서관을 꾸리는 일을 하는데, 내 둘레 사람들은 자꾸 내가 ‘헌책방 장사’를 하는 줄 잘못 말하고 잘못 생각한다. 더는 두고볼 수 없다고 느껴, 도서관 이름을 새로 적어 보기로 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책을 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참말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책을 갈무리하는 날이라면 더없이 고마운 노릇이지만, 이 틀에서 못 벗어나는구나 싶다. 그래서 내 생각도 바꾸기로 한다. 날마다 두어 시간 즐겁게 마실을 하며 책을 갈무리하고, 식구들과 서재도서관 둘레 들길을 거닐거나 멧길을 오르내리자 생각하기로 한다. 아침에는 식구들 빨래를 하고, 낮이 되기 앞서 식구들 밥을 차려서 먹은 다음, 천천히 짐을 꾸려 서재도서관으로 나와 책을 조금 갈무리하고서, 슬슬 들길을 걷는다. 들길을 걷다가 멧길로 바뀔 수 있고, 다시 천천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들길을 거닐며 들풀을 뜯어먹을 수 있다. 아이들과 노래부르며 노닐 수 있다.


  책꽂이 자리 바꾸기를 한다. 이제 꼴이 제법 나며, 어느 만큼 치웠구나 싶다. 자질구레한 짐은 한쪽으로 몰아놓자. 여름에는 책손을 부르자. 좋은 책을 만나러 좋은 시골로 나들이하면서 좋은 삶을 누리자는 이야기를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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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시 책읽기

 


  다섯 시가 되면 우리 집 처마에서 함께 살아가는 제비들이 재재배배 노래를 한다.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새날이 밝았다고 깨닫는다. 그러나, 제비들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새벽 두어 시면 아이들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조용히 일어나니까. 새벽 다섯 시에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며 이제 좀 자리에 다시 드러누워 아침까지 쉬자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일고여덟 시 사이에 일어날 테니, 이때에 홀가분하며 기쁘게 다시 일어나도록 몸을 누여야지.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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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버스 텔레비전 책읽기

 


  시외버스에 붙은 텔레비전에 역사연속극이 나온다. 역사연속극은 어느 해 어느 역사를 보여주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칼과 창과 활을 갖춘 사내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곰곰이 생각한다. 역사연속극이나 역사영화라 이름을 붙이며 보여주는 모습이란 으레 ‘싸움’이고 ‘죽임’이며 ‘칼부림’이다. 지난날 사람들은 늘 싸우고 언제나 죽이며 노상 칼부림을 했다는 소리인가 궁금한데, 연속극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이든 이 굴레에서 헤어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란 그저 땅빼앗기 역사이다. 어느 해 어느 임금이 나라땅을 어느 만큼 넓혔고, 어느 해 어느 임금이 나라땅을 어느 만큼 잃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달달 외워 시험문제 잘 맞추도록 이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땅빼앗기가 역사가 될 만한가 아닌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임금님들 쓸데없는 싸움짓에 휘둘리며 피를 흘려야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임금님들 궁궐을 짓고 성곽을 쌓느라 집과 고향 잃은 채 서울 언저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임금님 수라상은 역사일까. 임금님 으리으리한 옷은 문화일까. 임금님을 둘러싼 신하들과 심부름꾼들은 사회일까.


  아이들과 함께 탄 시외버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역사연속극은 온통 죽이고 죽는 외침과 목소리뿐이다. 아이들이 이런 연속극이나 영화를 볼 때에 역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역사라 할 때에는 이렇게 죽이고 죽여야 역사가 된다고 생각해야 옳을까.


  학자들은 임금님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옛 신하들이 남긴 책을 살피고 유물과 유적을 캐내어 되살린다고 한다. 그런데, 학자들 가운데 이 나라 98%를 넘게 차지하던 여느 흙일꾼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적바림하거나 되살리거나 알아보려 하는 몸짓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 여느 흙일꾼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오늘날 학자들은 얼마나 잘 읽거나 헤아리거나 살필까.


  아이랑 쌀보리 놀이를 한다. 내가 아이랑 하는 쌀보리 놀이는 언제 누구부터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이하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내가 아이랑 하는 가위바위보는 언제 누구부터 했는지 알 노릇이 없다. 왜냐하면, 역사책이나 문화책이나 사회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적히니까. 다만, 곰곰이 생각을 기울인다. 내 어버이를 생각하고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생각한다. 하나하나 되짚으며 먼먼 옛날 한아비 삶과 놀이를 생각한다. 생각을 좇고 생각을 밝히다 보면, 뿌리를 알고 줄기를 알며 잎사귀와 꽃봉우리를 알 수 있겠지. (4345.5.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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