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룻바닥에 누워서 놀아라 (도서관일기 2012.5.3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전기도 물도 쓸 수 없지만, 첫째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할 적에 동사무소에서 선물이라며 주던 물휴지로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우리 집은 아이들한테 물휴지를 안 쓴다. 여느 집에서는 갓난쟁이가 똥을 누면 종이기저귀를 갈며 물휴지를 쓸는지 모르나, 우리 집은 천기저귀를 쓰고 물로 씻기니까 물휴지를 쓸 일이 없다. 다섯 해 가까이 한쪽 구석에 처박은 물휴지인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쏠쏠히 쓸모가 있다.


  둘째 아이가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으니까,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이곳저곳 닦는다. 아이가 기어서 다닐 만한 데를 샅샅이 닦는다. 기다가 손을 뻗을 만한 데까지 헤아리며 닦는다. 아이가 기지 않고 걸었으면 도서관 바닥을 샅샅이 닦을 생각을 했을까. 이때에도 맨발로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으로 닦았겠지. 그러니까, 나로서는 두 아이가 하루라도 더 일찍 더 즐거이 뛰놀 터전으로 보듬고 싶으니 바닥을 꼼꼼히 닦는다.


  바닥 닦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가 묻는다. “바닥은 왜 닦아요?”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 손 지저분해지지 말라고 닦아요?” “네.” 동생이 기어다녀도 손바닥이 지저분해지지 않을 즈음 되니, 첫째 아이가 다시 묻는다. “왜 신을 신고 다녀요?” “아직 아주 깨끗하지는 않으니까.” 첫째 아이가 슬쩍 신을 벗는다. 맨발로 뛰어다닌다. 이윽고, 두 녀석은 도서관 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드러눕는다. 마치 집에서 놀듯 논다.


  그래, 모레에도 글피에도 또 닦고 다시 닦을 테니 너희들 마음껏 신나게 뒹굴며 놀아라. 여기는 너희들 책터이기 앞서 놀이터란다. 여기는 우리들 삶터이고 살림터란다.


  둘째 아이가 바지에 똥을 한가득 누었기에, 가슴으로 안아 이웃 보건지소 수돗가로 가서 밑을 씻기고 바지를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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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나물꽃 책읽기

 


  내 어릴 적 일을 돌이킬 때에 늘 부끄럽던 대목 하나는 ‘나물을 잘 알아보지 못하던 눈길’이었다. 어머니가 차린 밥상에 놓인 나물은 이름을 알아맞히더라도, 막상 이 나물 반찬이 되기 앞서 ‘흙땅에 뿌리내린 풀포기 모습’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둘레 밭뙈기나 논두렁을 찾아보기란 만만하지 않았고, 애써 찾아보았다 한들 얼마나 잘 헤아렸을까 궁금하다. 늘 곁에 두며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면 지식으로 그칠 뿐이라고 느낀다.


  잘 찍은 사진이나 잘 그린 그림으로 엮은 도감을 읽거나 외운다 해서 풀을 알지 못한다. 식물도감이나 세밀화 그림책을 살핀다 해서 풀을 알아보지 못한다. 풀을 알자면 풀하고 살아야 한다. 풀을 알아보자면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손수 풀을 뜯어 냄새를 맡고 이빨로 씹으며 혀로 느껴야 한다. 풀을 사랑하고 싶다면, 풀씨를 받아 스스로 씨앗을 뿌려 새싹부터 첫 줄기와 꽃과 열매까지 한해살이를 찬찬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일본사람 우오즈미 나오코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원예반 소년들》을 읽으면, 고등학교 1학년 아이 둘이 ‘페튜니아 꽃씨’가 얼마나 작은가 하고 처음으로 느낀 대목이 잘 나온다. 고등학교 남학생 둘은 꽃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흙 부스러기’나 ‘먼지 알갱이’와 같다고 느낀다. 참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여느 어린이나 푸름이라 한다면, ‘시금치 씨앗’이나 ‘쑥갓 씨앗’이나 ‘상추 씨앗’이나 ‘당근 씨앗’을 어떻게 느낄까. 아이들이 줄기를 똑 따서 날리는 민들레 씨앗을 헤아려 볼 노릇이다. 하늘하늘 잘 날도록 달린 웃몸을 뺀 아래쪽이 씨앗인데, 얼마나 자그마한가. 그러나, 민들레 씨앗도 여느 풀씨를 헤아리면 매우 크다. 여느 들풀이나 멧풀은 씨앗이 얼마나 작은가. 사람들이 먹는 푸성귀 또한 씨앗이 얼마나 작은가. 그나마 무씨나 배추씨는 크다 할 테지만, 이 또한 얼마나 작은가.


  돈나물은 씨앗 크기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돈나물 씨앗을 흰종이에 솔쏠 뿌려 놓는다면, 이 씨앗을 알아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언제쯤 풀씨를 옳게 알아보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풀씨가 따스히 깃드는 흙을 옳게 보듬으며 아낄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즐겁게 풀을 먹고 살피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논둑에서 돈나물꽃을 보고는 자전거를 세워 한참 들여다본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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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꽃이 필 무렵

 


  도시에서 살아가면 누구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어느 때라도 감자를 손쉽게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가게에 가면 감자이건 오이이건 양파이건 마늘이건 파이건 무이건 늘 있어요. 시골에서 살더라도 읍내 가게에 이 같은 푸성귀는 언제나 싱그러이 놓입니다. 감자가 싹을 터서 꽃망울 터뜨리려면 유월을 맞이해야 하는데, 감자꽃이 필 무렵인 유월 첫머리에도 가게나 저잣거리에서는 감자를 다룹니다. 감자싹이 막 돋을 무렵인 오월에도 가게이든 저잣거리이든 감자를 내놓습니다. 비닐집에서 감자를 거두기도 하고, 커다란 저온창고에 감자를 가득 쌓고는, 한겨울에도 꺼내어 파니까 감자를 구경할 수 있겠지요.


  바람을 쐬고 햇볕을 먹으며 흙땅에 뿌리를 내린 뒷밭 감자잎을 쓰다듬습니다. 무럭무럭 크렴. 알차게 여물렴. 우리 아이들 맛난 감자를 누릴 수 있게 네 사랑을 듬뿍 담아 주렴. 토막토막 썰어서 묻은 작은 씨감자 알에서 더없이 굵직하고 튼튼한 줄기가 올라 예쁘장하게 꽃망울이 돋는구나. (4345.5.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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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마땅하지만, 이 사진책은 여느 새책방에서 살 수 없고, 도서관에도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사진은 ‘돈이 될’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2] 한국연합광고, 《全斗煥 대통령》(문화공보부,1982)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이라 하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은 문화공보부에서 펴냈습니다. 이 사진책에 사진을 넣은 사람들 이름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인지, 문화공보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었는지, 청와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은 사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오래 묵은 사진은 헌책방으로 흘러들곤 합니다. 나는 아직 헌책방에서 ‘이승만 대통령 사진’을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나오면 이 사진도 퍽 돈이 될 만하다고 여길는지 어떠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다가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곧잘 구경합니다. 그런데 이 세 대통령 사진은 아직 돈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에 앞선 ‘김영삼 대통령 사진’도 돈으로 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달라 하는 사람이 없으면 폐휴지에 섞어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드리면서 고물상으로 가져가도록 한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숱한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흘러들면, 이 사진만큼은 제법 돈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으로 지낸 나날이 길 뿐더러, 정치 홍보 사진이 많은 터라 헌책방으로 흘러들 만한 사진도 많은데, 다른 어느 사람보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만큼은 돈값이 쏠쏠하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대통령 노릇을 한 전두환이라는 분 사진은 어떤 값어치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표도감을 살피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분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자주 얼굴을 보여줍니다. 우리 옆나라에서도 이와 같다 하는데, 민주정권 아닌 독재정권을 꾸린 이들은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인다’고 해요. 이를테면, 북녘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쥔 분도 북녘 우표에 참 자주 얼굴을 선보여요. 다만,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이는 정치 지도자는 독재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영국 여왕은 어떤 사람이라 할 만한지 알쏭달쏭하곤 합니다. 영국 우표에 영국 여왕 옆얼굴이 참 많이 나오거든요. 그 나라에서도 여왕이 독재자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니면 다른 뜻에서 널리 우러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리송합니다.

 

 

 

 


  전두환이라는 분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를 지킨 노태우라는 분은 ‘기념우표에 꼭 한 번만 얼굴을 내밉’니다. 내가 한동안 우표를 곧잘 모았기 때문에 이 같은 얘기를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1988년부터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분은 ‘우표에 얼굴 자주 내미는 일은 독재정권 지도자나 하는 짓’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이러한 ‘국민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서 딱 한 번만 얼굴을 내밀겠다고 밝혔다고 해요.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에서 대통령 이름은 한자로 적고 ‘대통령’은 한글로 적습니다. 문득 떠오르는데,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2∼1987년에 ‘대통령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 알아야 한다’는 숙제를 곧잘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으레 이런 짓을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도 온통 한자투성이입니다. ‘세계 속의 한국’도 ‘의지와 헌신’도 아닙니다. 그예 한자 자랑입니다. 마치 오늘날 대통령이 영어 자랑을 하듯, 1982년 이무렵에는 한자 자랑을 드러냅니다.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넘기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진부터 지구별 수많은 나라 정치 지도자를 만났다는 사진이 가득합니다. 한국땅 대통령은 나라밖 수많은 정치 지도자한테 ‘훈장’을 달아 줍니다. 나라밖 정치 지도자보다 ‘키가 작은’ 한국 대통령이기에, 나라밖 정치 지도자는 한국 정치 지도자 앞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복지를 살찌우며 민주를 이루겠다는 세 가지 뜻을 밝힌다는 전두환 대통령이라 하는데,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에 나오는 모습 가운데 95%는 나라밖 정치 지도자하고 손을 맞잡거나 푹신한 걸상에 다리 벌리고 앉아 웃는 모습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사진을 찍었고, 틀림없이 누군가 책으로 묶었으며, 틀림없이 누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진책을 비매품으로 널리 뿌렸으니까, 이 사진책은 스무 해를 흐르고 흘러 헌책방 책시렁에 꽂힙니다. 어쩌면 이 사진책은 앞으로 스무 해가 더 흐르도록 ‘애써 장만하는 사람’ 없이 먼지만 먹을 수 있으나, 어떤 쥐대기를 만나 조용히 사고팔릴 수 있어요.

 

 

 

 


  내가 떠올리는 전두환 대통령 사진으로는, 예전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이 찍은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모습’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기자한테 필름 아끼라고 소리지르면서 2차이고 3차이고 더 술을 푸러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또렷이 떠올라요. 참 마땅한 노릇인데, 전두환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도, 또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승만 대통령도 사람이에요. 게다가, 이들 모두 할아버지예요. 어여쁜 손자가 있겠지요. 사랑을 물려주고픈 아이들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당신들은 이와 같은 사진책, 나라돈으로 찍고 나라돈 받는 공무원이 널리 퍼뜨린 《全斗煥 대통령》 같은 사진책을 당신 귀여운 손자한테 어떻게 보여줄 만할까요. 백 해나 이백 해쯤 흐른 뒤, 이 나라에서 살아갈 뒷사람은 이 사진책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들추며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이 사진책 귀퉁이에 적힌 대로 ‘1980년대 대통령 전두환 씨는 나라를 지키고 살찌우며 일으킨 멋진 군인’으로 되새길 만한가요.


  아마, 앞으로 이백 해쯤 흐른다면, 전두환 대통령 사진도 이럭저럭 돈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물건은 ‘나이를 먹으’면 돈이 된다 하니까요.


  그나저나,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동안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무렵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밭에서 권력이나 권위를 내세웠을까요, 아니면 당신 이름을 숨겼을까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이나 이런저런 정치권력자 곁에서 사진을 찍은 이들이 제법 많을 텐데, 이들 이름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던 사진기자나 사진 공무원으로는 누가 있었을까요. 너무 배고픈 나머지 식민지 제국주의자 돈이든 독재정권 대통령 돈이든 어쩔 수 없이 받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을 찍던 그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분들은 오늘날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쥐며 당신 뒷사람한테 사진삶을 물려주는가요.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을 찍던 분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마음이었을까요. 당신 사진이 묶여 사진책으로 태어났을 때에 당신 벗님들한테 ‘자, 보라구, 내 사진으로 이런 사진책이 나왔다구.’ 하면서 선물할 수 있었을까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랑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 곁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은, 어떤 꿈을 꾸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요. 이분들은 사진 한 장에 사랑을 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인 줄 조금이나마 헤아린 적 있을까요. (4345.5.29.불.ㅎㄲㅅㄱ)

 


― 全斗煥 대통령 (한국연합광고 엮음,문화공보부 펴냄,1982.12./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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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기저귀 빨래 책읽기

 


  첫째 아이가 태어난 2008년 8월 16일부터 내 삶에서 ‘빨래’는 아주 진득하게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밥하기’라든지 여러 갈래 집일이 단단히 자리잡았다. 첫째 아이가 스스로 똥오줌 다 가리고부터 이제 ‘빨래’ 일이 많이 줄어들까 하고 생각했으나,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리고 나서 곧장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내 삶에서 ‘빨래’는 앞으로도 몇 해 진득하게 이어가리라 느낀다.


  갓난쟁이는 언제 똥이나 오줌을 눌 지 알 수 없다. 식구들이 밥먹는 자리에서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자다가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함께 나들이를 가는 길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번쩍 안아서 예쁘다 말할 때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그러니까, 아이들 빨래는 언제나 한다. 아침에도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언제나 한다. 똥기저귀나 똥바지 빨래라면 더더욱 언제나 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다.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 지 여러 해 되었다.


  문득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빨래하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 ‘날마다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이나 될까. ‘날마다 똥을 주물럭거리며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쯤 될까.


  내가 국민학생이던 어린 날, 내 할아버지는 당신 몸을 쓰지 못해 으레 누워 지냈다. 내 어머니는 내 할아버지 똥오줌을 날마다 여러 차례 받았고, 이불이며 옷가지이며 으레 손으로 빨래를 했다. 빨래기계가 마땅히 없던 무렵이기도 했으나, 빨래기계가 있대서 똥이불이나 똥옷을 기계로 빨지 못한다. 손으로 빨아야 한다.


  나는 참 여러 해에 걸쳐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할아버지 똥옷을 빨래한 적은 없었지만, 똥이불을 빨래할 때에 어머니 곁에서 발로 밟는 일은 으레 거들었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똥을 주무르면서 무어라 싫어하거나 꺼려한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그저 늘 하는 일이요,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삶이었다.


  아이들 똥을 날마다 숱하게 주무르기에 내 손과 몸에는 아이들 똥내음이 밴다. 내 옷가지에는 아이들 침내음이랑 오줌내음이랑 땀내음이 밴다. 이 삶이 싫다거나 이 삶이 못마땅하거나 이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느 때였나, 꽤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우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꽤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다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는 아버지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눈 똥을 치운 적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못 치우지 않을까? 옆지기가 눈 똥은 치울 수 있을까? 살붙이가 게운 것을 치울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벗이 몸져 누우며 내놓은 똥오줌을 치울 수 있을까? 예쁘장한 아가씨들 젖가슴이나 엉덩이는 주무를 수 있어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똥은 주무를 수 없을까?


  똥을 주무르지 못하는 사내라면, 거름을 주무르지 못하겠지. 거름을 주무르지 못한다면 흙을 만지지 못하겠지. 흙을 만지지 못한다면 사랑을 아끼지 못하겠지.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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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5-30 00:02   좋아요 0 | URL
아기 똥기저귀를 빠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집 애 아빠도 아이들 키울 때 큰거 싸놓으면 나를 불렀죠.ㅜㅜ

숲노래 2012-05-30 00:29   좋아요 0 | URL
아버지들은... 스스로 아이였을 적 제 똥을
누가 어떻게 치웠을까쯤이라도 생각해야지
비로소 철들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