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2010년 6월 30일에 멧골자락으로 살림집을 옮긴 우리들이 참으로 이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고이고이 살고픈 마음을 담아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첫째가 무럭무럭 크고, 둘째가 어여삐 태어나 자라는 동안, 살구나무 두 그루도 씩씩하게 뿌리내려 주면 좋겠다. 한 그루는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서 심고, 다른 한 그루는 둘째 아이를 헤아리면서 심는다.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두 그루는 아직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습이다. 밤에는 퍽 쌀쌀한데 이 두 어린나무가 다부지게 힘을 내어 튼튼하게 제 보금자리로 삼아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4344.4.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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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뜯이


 하루에 두 차례 쑥뜯이를 합니다. 여러 날 아침과 낮을 삼십 분 즈음 쑥뜯이로 보냅니다. 봄이 지나면 더는 쑥을 구경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쑥뜯이를 합니다. 아직 다른 풀을 잘 모르니 쑥뜯이를 더 바지런히 한다 여길 수 있고, 뜯은 쑥으로 쑥버무리를 마련하는 솜씨를 익히려고 날마다 바지런을 떤다 여길 수 있습니다. 네 식구 시골살이를 하는 둘째 해에 더 많이 알거나 훨씬 잘 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올해에는 쑥뜯이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있어도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음성 장마당에서 홑잎나물 삶은 뭉치를 둘 장만해서 닷새째 넉넉히 먹습니다. 그제, 홑잎나물을 훑는 나뭇잎이 어떠한 모양인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예전에도 숱하게 보기는 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바깥뒷간 옆에서 자라는 나무에 홑잎나물로 삼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그저께 비로소 알았습니다.

 풀뜯이를 하자면 사슴이나 토끼처럼 풀을 뜯어서 먹어야 하겠지요. 낯익어 보이는 풀이든 낯설어 보이는 풀이든 한두 닢을 살짝 뜯어서 혀에 올립니다. 살살 씹으며 어떤 물이 나와 어떤 맛이 나는가를 헤아립니다.

 책 하나를 찾거나 살필 때에 ‘처음부터 다 아는 책’을 장만하는 때도 있으나, ‘처음부터 까맣게 모르는 책’을 장만하는 때가 훨씬 잦습니다. 책 하나 가만히 손에 쥐어 넘기면서 비로소 이 책이 내가 읽을 만한가를 깨닫습니다. 누가 이 책을 좋다고 이야기하거나 말거나 나 스스로 이 책을 넘기면서 좋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좋다 할 만한 책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삶은 나 스스로 일굽니다.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모습이라면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모습 그대로를 내가 좋아한다 할 수 있겠지요.

 쑥뜯이를 할 때에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섭니다. 쑥을 뜯는 논 둘레에서 아이는 노래를 부르거나 뜀박질을 하거나 아버지와 함께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다 보면 쑥내가 물씬 오르는 쑥이 있습니다. 이때에 아이는 쑥잎을 들어 아버지보고 냄새를 맡아 보라며 들이밉니다. 아이 손톱보다 작은 쑥잎 하나에서도 곱다 싶은 쑥내가 짙게 납니다.

 아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이 빗물에 섞여 내렸다지요. 시골마을이요 멧골자락이라지만, 이곳에서 쑥뜯이를 하면 방사능 머금은 빗물을 받은 풀일 테니까, 내 몸에 나쁠 수 있겠지요. 그러면 공장 가공식품은 얼마나 안 나쁠 만할까요. 공장 가공식품은 어떤 푸성귀나 열매를 그러모아서 만들까요.

 쑥을 뜯고 곰취를 뜯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조금 걸을 만하면 아이하고 손을 맞잡으며 달래 캐러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봄날입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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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삶이


 지난해 섣달부터 올 사월 첫머리까지 빨래삶이를 못했다. 집물을 못 쓰며 빨래를 다른 집에서 했기 때문이다. 넉 달 만에 빨래삶이를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한다. 날은 따뜻하고 바람도 조용하다. 이런 날 이불도 함께 빨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침부터 여러 집일을 하느라 등허리가 쑤셔서 이불빨래는 엄두를 못 낸다. 다가오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둘째한테 쓸 새 기저귀를 삶으면서 이불빨래를 하나하나 할까 생각한다. 아무쪼록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맑은 날씨이기를 바란다.

 나 혼자 살아가던 때에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딱히 즐기지 않았고, 둘이서 함께 살아가던 때에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굳이 즐기지 않았다. 이레를 돌아보며 하루나 이틀쯤 느긋하게 쉰다 여길는지 모르나, 토요일이라서 밥을 굶어도 되거나 일요일이라서 손발을 안 씻고 자도 괜찮지는 않다. 나날이 밥을 먹고 날마다 새 빨래가 나온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날씨가 맑기를 바란다. 꽤 예전이라 할 내 스무 살 적에 신문배달을 하던 때라든지, 군대에 갔다 오고 난 뒤로 다시 신문배달을 하던 때에는 토요일 낮부터 일요일까지 비가 몰아서 오기를 비손했다. 왜냐하면 토요일 낮부터 일요일까지는 신문을 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신문을 돌리는 여느 날에 비가 내리면 신문비닐도 많이 써야 할 뿐더러, 비 맞으며 서너 시간씩 신문을 돌리는 일이 몹시 고되다.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홀살이를 하던 때라든지, 이제 딸아이 하나를 돌보며 둘째를 기다리는 내 삶에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기를 빈다. 왜냐하면 이런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사람들이 어디 놀러다닌다든지 쉰다든지 하면서 나로서도 집일에 더 품과 땀과 겨를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오덕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없다. 아이들과 할 공부를 헤아리며 무슨 이야기를 나눌는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집일에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에 꽤 홀가분하면서 느긋하다. 느긋하게 이불을 빨 수 있고, 홀가분하게 아이를 씻길 만하다.

 몇 시간씩 빨래삶이를 하거나 이불빨래를 하고 나서 마당에 빨래를 잔뜩 널어 놓는다. 잠자리에 까는 평상도 마당에 펼친다. 아이는 마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아버지 집일을 거든다고 부산을 떤다. 등허리를 톡톡 토닥이면서 이제 좀 기다리면 될까 하고 마당에서 기지개를 켜다가는 걸상 하나를 비워 책 하나 들고 나와 해바라기를 하며 읽으려 하면, 아이도 걸상 하나에 있던 빨래를 옆으로 치우고 영차영차 올라와서 아버지 하는 양을 따라하려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기다린다. 맑은 토요일과 밝은 일요일이 되기를 비손한다. (4344.4.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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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는 힘들지만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달삯을 벌어들이느라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무 살부터 내 삶길을 글쓰기와 사진찍기로 맞추면서 살았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벌기란 몹시 벅차다. 더더구나 나처럼 돈이 되는 글이 아니라 돈이 안 되는 글, 이른바 ‘우리 말 이야기’랑 ‘헌책방 이야기’를 즐겨쓰는 사람이 무슨 글삯을 벌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용하게 굶어죽지 않고 어찌저찌 버티었다. 힘들 때마다 형이 살림돈을 도와주었으니까 버티었다 할 텐데, 날마다 수없이 글을 써대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기에 날마다 이모저모 책읽기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썼다.

 시골집으로 옮기고부터는 도시에서처럼 죽기살기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용솟음치는 글을 쓴다. 그나마, 샘솟는 글을 모두 쓴다거나 어느 만큼 후련하게 쓰지는 못한다. 글을 좀 쓰고 싶어도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고, 집일을 해야 하며, 밥을 차려야 하는데다가, 요사이는 시골집 깃든 둘레에 있는 이오덕학교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책이야기 공부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글조각을 붙잡을 겨를이 거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란 참 힘들다 할 만하다. 글을 쓰는 주제에 책조차 안 읽는다면 무슨 글을 쓴다 하겠는가.

 요즈음, 나는 책을 참 못 읽는다. 그래도 오늘날 여느 사람들과 견주면 꽤 많이 읽는다 할는지 모르지만, 종이책 몇 쪽 넘기기조차 몹시 버겁다. 요 며칠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 읽어 주기도 제대로 못한다.

 등허리가 몹시 쑤셔서 자리에 털썩 드러누운 채 두 눈이 감기기 앞서 몇 가지 책을 넘겨 보곤 했다. 이 가운데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안목,2011)는 꽤 잘 읽혔다. 예전에 처음 나올 때(2005년)에 진작 읽은 책이니 다시 읽어도 잘 읽힌다 할 터이나, 다시 읽으면서도 새로 읽는 느낌이었고, 필립 퍼키스 님 글책은 여러 차례 되읽어도 늘 새삼스럽게 기쁘다.

 생각해 보면, 일이 쌓이고 몸이 힘들기 때문에 이 책 저 책 자질구레하다 싶은 책까지 못 들춘달 수 있다. 참으로 읽어야 할 책을 더 깊이 읽는다 할 만하고, 참말로 아름답구나 싶은 책을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다 할 테지.

 저녁나절, 아이는 제 엄마한테 “빨강머리 보고 싶어.” 하면서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또 보았다. 같은 이야기를 언제나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보는데, 오늘 본 〈빨간머리 앤〉에는 앤이 후두염에 걸린 미니메이를 돌보는 이야기가 흐른다. 빨간머리 앤은 미니메이가 살아난 뒤에 후유 한숨을 돌리면서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세 쌍둥이를 건사하던 일을 겪지 않았다면 미니메이를 보살필 수 없었으리라’ 하고 말하면서, 지난 괴로운 일을 나쁘게만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 앤은 얼마나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며, 공부를 하고 싶었겠나. 그러나 앤은 학교도 못 다니고 공부도 못하며 어머니나 아버지 사랑 또한 받지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나날이 있어서, 좋은 삶동무 다이애나를 사귀고 다이애나 동생인 미니메이를 보살필 슬기를 몸으로 아로새기듯 얻었겠지. 책이란 종이책만 책이라 하겠나. 몸뚱아리 책도 책이고 설거지 책도 책이며 빨래하기 책도 책일 테지. 책을 읽기는 힘들지만, 용케 책하고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그럭저럭 버티며 오늘 하루도 마감하며 이제 슬슬 자리에 누워야겠다. (4344.4.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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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이야기] 11. 서울 책나라. 2009.봄.


 헌책방치고 큰길에 자리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드물게 큰길가 목 좋은 데에 자리하면서 책을 무척 많이 다루는 헌책방이 있습니다만, 웬만한 헌책방은 큰길가보다는 골목 안쪽에 자리합니다. 큰길가에 자리하더라도 사람 발길이 잦은 곳에 자리하기 벅찹니다. 헌책 팔아 가게삯을 치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살림을 꾸리는 분들은 해가 날 때에 해를 바라보면서 일을 하기를 바라고, 책손들이 햇볕을 쬐면서 따사로운 기운으로 책 하나 맞아들이기를 비손합니다. 생각해 보면, 헌책이든 새책이든 따사로운 햇살이 누구한테나 골고루 따스한 마음길을 베풀듯, 따사로운 넋이 깃든 책을 누구나 따사로운 발걸음으로 찾아나서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북돋우고, 따사로운 눈길로 이 땅 곳곳에서 따사로운 땀방울을 흘릴 수 있으면 기쁘리라 꿈꿀 테니까요. 어른도 아이도 고운 책결을 느끼면서 고운 마음결을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 2009.봄. 서울 회기동 책나라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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