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꽃


 느티나무에는 느티꽃이 핀다. 감나무에는 감꽃이 핀다. 배나무에는 배꽃이 핀다. 복숭아나무에는 복숭아꽃이 핀다.

 해마다 찾아오는 고마운 봄에는 온갖 풀과 나무마다 피어나는 갖가지 새 꽃봉오리를 만날 수 있다. 봄철 논둑에서 쑥을 뜯으면서 이 고운 쑥을 맛나게 먹다가도 어느 때부터 쑥꽃이 피면 더는 못 먹겠지 하고 생각한다. 쇠뜨기는 줄기를 뽑아 먹는다는데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지난해에는 쑥갓꽃을 보았다. 그렇지만 아직 쑥꽃은 못 보았다. 올해에는 꼭 쑥꽃을 보리라 생각하며 텃밭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쑥은 뜯지 않는다. 텃밭 풀뽑기를 할 때에도 쑥만큼은 고이 남길 생각이다.

 바람이 꽤 세게 부는 봄날, 산수유꽃과 참꽃과 벚꽃과 오얏꽃과 단풍꽃에 이어서, 조팝꽃과 느티꽃이 흐드러진다. 조팝꽃은 금세 알아볼 만하지만 느티꽃은 쉬 알아볼 만하지 않다. 아마, 오얏꽃이나 벚꽃은 누구나 알아볼 테지만, 또 매화꽃이나 딸기꽃은 곧장 알아챌 테지만, 단풍꽃이 어떤 꽃인지 들여다보기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느티꽃 또한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해마다 새로 돋는 느티잎을 따서 밥에 얹어 먹는다든지 다른 풀잎과 버무려 지짐이를 구워 먹는다든지 할 사람은 더욱 드물겠지.

 몽글몽글 맺힌 단풍꽃처럼 몽글몽글 맺힌 느티꽃을 바라본다. 지난해 느티나무 열매(씨앗)가 떨어져 흙에서 뿌리내려 자라난 어린 싹을 내려다본다. 사람들이 느티나무 둘레에 하도 풀약을 쳐대기에 지난해라든지 지지난해에 돋은 새싹이 살아남기란 몹시 힘들단다. 논이든 밭이든 풀약을 많이 치니까, 마을 어귀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라고 풀약을 안 칠 수 없으리라 본다.

 두 해를 작은 풀싹처럼 자란 아주 어린 나무를 하나 캔다. 두 해를 자란 어린 느티라 하지만 손가락 하나로 흙을 살살 후벼서 팔 수 있다. 가지가 둘로 갈라져 올라온 느티를 캐며 줄기를 만지는데, 나무답게 줄기가 꽤 야무지다. 여느 풀이라 하면 말랑말랑하거나 보드랍다 할 텐데, 두 해를 묵은 어린 느티는 가늘고 작지만 야물딱지구나 싶다. 이렇게 야물딱지지 않고서야 이 둘레에서 뿌리를 내리며 제 삶을 지킬 수 없겠지. 너는 이곳에 있으면 어차피 풀약에 맞아 죽거나, 풀약에도 살아남는달지라도 웬만큼 키가 자라면 ‘요 몹쓸 잡풀!’ 하면서 목아지가 뎅겅 베일 테니까 우리 집 텃밭 가장자리 한쪽에서 예쁘게 자라 주렴. 둘째 아이가 태어나 열 살쯤 되면 어린 느티줄기가 나무로 자라서 그늘을 드리울 수 있을까. (4344.4.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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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8 : 새책방


 1961년에 한국말로 처음 옮겨진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씀)이 2011년에 자그마치 쉰 해 만에 다시 옮겨집니다. 1980년대에도 옮겨졌지만, 이때에는 간추린 판이 나왔습니다. 2011년에 새옷을 입은 《인간의 벽》(양철북) 세 권은 ‘그동안 쉰 해가 흘렀다지만, 쉰 해에 걸쳐 그다지 달라지거나 나아지거나 거듭나지 못했다’고 할 만한 교육 터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점수를 매기는 것 따위는 교육이 아니다. 5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별하는 것은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187쪽).” 같은 글월에 밑줄을 죽 긋고는 한참 되읽습니다.

 1961년에 처음 옮겨진 책은 오만 원이고 십만 원이고 삼십만 원이고를 준다 하더라도 장만할 길이 없습니다. 1980년대에 간추린 판으로 나온 책 또한 헌책방을 샅샅이 누비더라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오직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책을,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에 안은 책을, 이제는 언제라도 새책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둘레에 널리 알리며 읽으라고 외치거나 선물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묻힌 책을 찾아 읽습니다. 오래도록 예쁜 빛줄기를 베풀지만 팔림새는 안 좋아 안타까이 스러진 책을 살핍니다. 같은 책을 조금 더 값싸게 장만할 수 있고, 때로는 나라밖 책을 고맙게 마주하는 헌책방이에요.

 새책방에서는 언제라도 널리 나누고픈 책을 만납니다.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새롭게 읽을 책을 찾으려고 할 때에 걱정없이 손에 쥘 만한 책을 갖추는 새책방입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어여쁜 이야기책이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예전에 나왔다가 스러지고 만 책을 되살릴 때에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새책방이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꾸준하게 새책을 빚습니다.

 그렇지만, 새책방 가운데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마주하기는 힘듭니다. 저마다 다른 크고작은 도시나 시골에 걸맞게 고이 꾸리던 작은책방은 더 뿌리내리지 못해요.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갖출 새책방은 책팔이로는 살림을 꾸리기 벅찹니다.

 작은 동네책방은 거의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작은 동네책방이 사라졌더라도 사람들이 책을 안 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작은 동네책방이 아닌 큰도시 큰책방에서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합니다.

 요즈음 누리책방은 ‘미리보기’가 잘 짜였습니다. 셈틀을 켜고 들여다보면, 머리말과 차례와 열 몇 쪽 남짓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여느 새책방에서는 눈치를 보며 ‘미리읽기’를 했지만, 누리책방에서는 ‘책 다칠 일이나 책에 손때 묻힐 걱정’ 없이 미리읽기를 합니다. 다만, 여느 새책방에서는 사이사이 아무 데나 뒤적일 수 있습니다. 책내음과 책결을 손으로 느낍니다. 누리책방은 책을 만지거나 골고루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고기집이 늘고 술집이 늘며 옷집이 늡니다. 여느 사람들 눈길과 마음길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퍽 옅으니까 작은책방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곧, 작은책방뿐 아니라 작은 삶을 다룬 작은 책 또한 살아남기 빠듯합니다. 누구나 작은 사람인데, 작은책방 작은 새책은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4344.4.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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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7 : 헌책방


 서울 혜화동에서 1978∼79년부터 자리잡으며 사람들하고 책을 나누던 헌책방 한 곳이 2011년 4월 1일로 문을 닫았습니다. 헌책방 일꾼 전인순 님은 당신이 샛장수(중간상인 또는 나까마)로 처음 일하던 때가 1960년대 첫무렵이라고 떠올립니다. 샛장수로 열 몇 해, 또는 스무 해쯤 일한 끝에 아주 작은 가게를 얻은 때가 1978년이나 1979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샛장수를 처음 한 해도 또렷이 몇 해인지 떠올리지 못하고, 가게를 처음 차린 해도 제대로 돌이키지 못하지만, 헌책방 문을 닫아야 하는 때는 날짜까지 똑똑히 아로새겨집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을 다른 헌책방으로 옮기는 일을 거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책을 빼서 열한 시 무렵에 책꽂이까지 모두 들어냅니다. 고작 너덧 시간 만에 모든 책과 책꽂이가 텅텅 빠집니다. 부스러기를 치우고 남은 짐조각을 건사하는 헌책방은 간판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간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터에 새로 들어올 떡볶이집이 얼른 떼어내어 새 간판을 올리겠지요. 어디에선가 헌책방 박물관을 짓는다고도 하지만, 조용히 문을 닫는 헌책방 간판 하나 살뜰히 돌보려 하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느라 책을 빼는 동안, 동네사람이 지나가며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침 일곱 시 반 즈음부터 가게 문을 여는, 건너편 보성문구사 할아버지가 “이 봐, 혜성(책방 이름)! 어디 가? 이사 가? 그러면 나는 어떡해?” 하고 외칩니다. 가게 문을 열고는 헌책방 앞으로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문 닫아요? 미리 말 좀 해 주시지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진작 찾아와서 책을 보고 샀으면 될 일입니다. 늙수그레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여기를 떠나요? 아이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서운해서 어쩌나.” 하고 인사를 하며 손을 잡습니다. 일흔넷 헌책방 일꾼은 그냥 일꾼이 아닌 ‘할아버지 일꾼’이고, 할아버지 일꾼이 떠나는 길을 안쓰럽게 여기며 마지막말을 남기는 이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인 ‘동네사람’입니다.

 서울 혜화동 작은 헌책방에 있던 책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으로 옮깁니다. 서울 혜화동이며 삼선동이며 명륜동에는 이제 헌책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난날 이 둘레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으나, 이제 이 둘레에서 헌책방이라는 씨는 깡그리 말라비틀어집니다. 강북구청 둘레에 헌책방 한 곳 튼튼히 살아숨쉽니다만.

 그러나, 문을 닫는 헌책방만큼 튼튼하며 굳세게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강북구청 둘레에는 〈신광헌책〉이 있고, 혜화동 마지막 헌책방 〈혜성서점〉 책은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이 넘겨받습니다. 일흔네 해 책을 만지며 늙은 할아버지 한 사람은 쉰 해 즈음 한길을 걸었고, 앞으로 숱한 헌책방 일꾼은 쉰 해나 예순 해 안팎을 헌책을 만지는 삶을 일구다가 조용히 마무리짓겠지요.

 여태껏 한 번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난 적이 없는 헌책방 책터입니다. 앞으로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날 일은 좀처럼 없겠지요. 그런데, 헌책방이란 늘 그랬어요. 낮은 자리에서 예쁘며 해맑게 책을 어루만지며 이어왔어요.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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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28 10:4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강북쪽의 헌책방이 많이 문을 닫았네요.제 기억에 태능역의 상수서점,마아역 부근의 헌책방,수유역쪽의 헌책방등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몇년 사이에 다 닫았다군요.

숲노래 2011-04-28 12:10   좋아요 0 | URL
수유역에서 화계사 가는 길목에 있는 <신일서점>은 잘 있어요. 많은 곳들이 문을 닫고, 이러한 자리에는 분식집이나 닭집이나 옷집이나 찻집이 들어서곤 하더군요..

카스피 2011-04-28 15:05   좋아요 0 | URL
신일 서점은 아직 있군요.제가 갈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장사를 안하는 줄 알았지요^^

숲노래 2011-04-29 05:23   좋아요 0 | URL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셔야 해요. 책을 사러 바깥으로 돌아다닐 때에는 가게문을 닫고 나가시니까요~
 



 옛사람 읽던 책을 읽으며


 누군가 장만해서 읽어 주었기에 먼먼 뒷날, 누군가 고맙게 새삼스레 집어들어 읽습니다. 책이란 책입니다. 옛책도 헌책도 새책도 아닌 책입니다. 살아숨쉬는 사람처럼 살아숨쉬는 책입니다. 펄떡펄떡 숨쉬며 일어서는 내 몸뚱이처럼, 가난한 마음을 펄떡펄떡 일으켜세우는 마음밥인 책입니다. 백 그릇을 먹고 즈믄 그릇을 비워도 언제까지나 더 먹을 수 있고 다시 먹을 수 있는 책입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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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치우기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집안을 치운다. 오늘은 빨래줄을 마당에 새로 걸어 이불을 볕바라기 시킨다. 둘째한테 쓸 새 기저귀 넉 장을 오늘도 삶았고, 옆지기 속옷 석 장도 삶았다. 물을 걱정없이 쓸 수 있다 보니, 바지런히 걸레를 빨아 방바닥이나 옷장 뒤쪽이나 신나게 훔친다. 새 냉장고를 들이면서 예전 냉장고 있던 바닥자리 엉겨붙은 먼지와 머리카락을 샅샅이 닦는다. 큰방 바닥에 잔뜩 쌓기만 하던 책을 모조리 치운다. 집안을 치우면서 밥물을 안친다. 반찬을 무얼 해서 아이와 옆지기를 먹일까 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터에, 옆지기가 모처럼 사라다를 마련한다. 밥하고 사라다로 아침이자 낮밥을 먹는다. 설거지를 마친 뒤 문간에 쌓인 짐을 치우다가 쌀푸대에 담긴 감자를 본다. 감자가 이렇게 집안 한켠에서 조용히 썩을 뻔했구나. 잊고 지내느라 못 먹은 감자였으나, 우리 집은 시골집이기 때문에 싹이 잘 난 감자들은 좋은 씨감자 노릇을 한다. 장마당에서 씨감자를 사자면, 이만 한 푸대에 담긴 씨감자를 십만 원쯤 했겠지. 텃밭에 신나게 골을 내어 감자를 묻는다. 석 골을 묻기 앞서, 마당에 볕바라기 시킨 이불을 두들겨 먼지를 떨고는 방으로 들인다. 바람이 몹시 세게 불고 볕이 구름에 자꾸 가려서 더 말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감자를 더 묻을까 하다가, 오늘 빨래도 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 옷과 옆지기 옷을 빤다. 아이 이불 한 점을 빤다. 냉장고 들어선 부엌 살림을 갈무리하면서 곰팡이 핀 벽을 닦는다. 아이는 어머니하고 피아노를 치다가 영화를 보다가 칭얼칭얼 짜증만 부리다가 겨우 잠이 든다. 졸릴 때에 진작에 낮잠 잤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이제 슬슬 저녁 먹을 때가 된 듯하며 하루 일을 마무리지으려고 몸을 씻는다. 몸을 씻으면서, 빨래하고 씻는 조그마한 방 벽과 천장을 닦는다. 사이사이 쉰 때를 헤아리면 오늘은 여덟 시간 집안 치우기를 한 셈인데, 여덟 시간 집안을 치웠어도 다 치우지 못했다. 그동안 제대로 안 치우고 제대로 살림을 건사하지 않았으니, 하루 여덟 시간을 들인들 모조리 추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잠자리에 들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듯하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더니 어머니 곁에서 붓에 물감을 묻히며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4344.4.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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