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치마와 동백나무

 


 여름치마를 겨울에 입은 아이가 눈을 맞는다. 속에 옷을 따숩게 입었으니 여름치마를 걸친들 무엇이 대수랴. 아이는 이대로 잘 뛰어놀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 이야기를 겨울날 따순 방바닥에 이불 뒤집어쓰고 엎드려 읽기도 한다. 겨울 이야기를 무더운 여름날 부채질하며 나무 그늘에서 읽기도 한다.

 

 여름치마를 입은 시골마을 겨울아이가 동백나무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는다. 눈이 내리니 눈을 안 맞겠다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래, 동백나무 가지 안쪽은 어떻디.

 

 동백나무 자라고 동백꽃 피는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눈이 올 적마다 땅에 닿기 무섭게 녹는다. 아이 머리카락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밭뙈기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지붕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이내 사르르 녹는다.

 

 따스한 겨울 따스한 마음으로 따스한 하루를 누린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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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22 16:00   좋아요 0 | URL
동백나무 우산을 썼네요.^^
고흥에도 눈이 금방 녹나봐요.
전 경상도에만 눈이 녹는줄 알았어요.

숲노래 2012-02-23 08:12   좋아요 0 | URL
날이 워낙 폭하거든요~
 

176번째 글을 올리고 보니 174번째 글을 빼먹었다. -_-;;;; 바보로군...

 


 책으로 보는 눈 174 : 자연을 버린 책읽기

 


 케라 에이코 님이 그린 만화책 《あたしンち(私の家》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 이름을 한국말로 옮기면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한국말로 옮긴 곳에서는 “우리 집”도 “우리 엄마”도 아닌 “아따맘마’로 옮겼어요. 케라 에이코 님은 ‘와타시노’를 줄여 ‘아타(아따)’로 적고, 이녁 어머니와 식구들이 부대끼는 삶을 만화로 빚어 “우리 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따맘마”라는 한글판 만화책 이름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밝힐 수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아따맘마”는 일본말 ‘아따’랑 영어 ‘맘마’를 더한 이름입니다. 일본사람이 영어쓰기를 좋아한대서 “우리 엄마”를 “아따맘마(私の母)”처럼 적을는지 모르지만,  이 만화책을 내놓은 분은 영어로 이름을 적지 않았어요. 한글판 “아따맘마”에 나오는 사람들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붙이고, 어머니 아버지 고향을 전라남도로 삼으면서, 왜 책이름은 엉뚱하게 붙여야 했을까요.

 

 수수한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수수하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다가 자꾸자꾸 책이름이 걸립니다. 우리한테는 참말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글과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쓴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 펴냄,201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다는 ‘숲 유치원’, 곧 자연 놀이터에서 자라며 뛰도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도시 물질문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일본은 ‘숲 유치원’ 또한 한국보다 훨씬 앞서 태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숲 유치원’ 말고도 ‘멧골학교’도 꽤 일찍부터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생활협동조합’도 아주 일찍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푸른정당(녹생당)’ 또한 참으로 일찍부터 만들었고, 일본 책마을은 아이와 어버이와 교사가 나란히 읽을 그림책을 꽤 예전부터 알차게 빚었습니다.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땅에서는 ‘아이 낳은 어버이’가 자연을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눈길이 달라진다고 느낄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며, 온통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북적거려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동물 캐릭터 같은 인공적인 것에 아주 익숙하다(25쪽).”는 말마따나, 오늘날 아이들은 ㅃㄹㄹ라느니 무엇이라느니 새겨진 신이나 옷이나 밥그릇이나 놀잇감을 뀁니다. 아이들은 자연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부터 자연하고 등을 져요. 자연하고 등을 지니 자연을 파헤치는 정책이 끊이지 않는데, 이보다 ‘사람인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며 품앗이하는 넋이 잊힙니다.

 

 집이 배움터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 한국입니다. 집이 삶터 노릇하고 동떨어지는 요즈음 한국이에요. 여기에, 마을도 학교도 공공기관도 문화시설도 배움터나 삶터나 사랑터나 만남터나 어울림터나 꿈터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4345.1.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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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17 23:03   좋아요 0 | URL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 이것, 맞아요.

제가 밤길에 고양이를 무서워했더니 어릴 적 아이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예쁜 야옹아, 하면서 불러 주고 그랬어요. 아이가 고양이를 예뻐하라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랬다기보다 무엇을 무서워한다는 게 대단한 스트레스잖아요. 하지만 무엇을 예뻐하면 행복해지잖아요. 요즘은 아이가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조를 정도이니, 성공한 것이죠. 제가 잘 했죠? ㅋ

숲노래 2012-02-18 06:51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랑은 삶 곳곳에 예쁘게 자리하면서
아이들하고 기쁜 웃음을 피어냈으리라 믿어요~~
 


 책으로 보는 눈 176 : 작은 마을 작은 책숲

 


 어릴 적부터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돈을 많이 번다면, 많이 버는 돈만큼 땅을 사야겠다고 꿈을 꾸었어요.

 

 땅장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사고프다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조금씩 사들이는 땅뙈기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도록 놓아 주고 싶다는 꿈입니다. 어린 나는 ‘내셔널 트러스트’ 같은 이름은 알지 못했습니다만, 정치를 꾸리거나 경제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땅을 옳게 건사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몹시 슬펐어요. 왜 땅뙈기로 장사를 하지? 왜 좋은 땅에서 살아갈 좋은 생각을 안 하며 애꿎은 땅놀이를 하지?

 

 내가 돈을 모을 수 있을 때에는 숲이 숲 그대로 이어가고, 논밭은 논밭 그대로 돌보며,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는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 그대로 살리고 싶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지키는 숲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레 싱그러이 살아나는 숲을 바랐어요. 나는 이 들판과 숲과 갯벌과 바다와 멧자락이 어우러지는 한쪽에 조그맣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고마워 듀이》(걷는책,2011)를 읽습니다. 첫머리에 “내가 사랑하는 아이오와 주 스펜서는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이다(32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도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 작은 숲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참 예쁘겠다고 느낍니다. 굳이 커다란 도시를 이루어야 한 나라가 대단해지지 않을 테니까요. 애써 커다란 도시로 찾아가야 내 밥벌이를 이룬다거나 내 뜻을 편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자긍심을 가진 농부의 후예였으나 1950년대에 대형 탈곡기와 바인더 기계가 등장하면서 농업의 성격과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큰 농기구를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농작물 생산량은 그대로이고 가격은 떨어지니 농장의 근간이 흔들렸다(355쪽).”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바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느낍니다. 아니, 이 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난 일은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깨닫습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즐거울 텐데요. 내 손으로 흙을 일구어 내 몸을 살찌울 밥을 나 스스로 얻으면 기쁠 텐데요. 왜 커다란 농기계가 나와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왜 경제와 산업과 수출과 무역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더 맛난 밥을 먹어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멋스레 보인다는 옷을 걸쳐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빠르고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굴려야 할는지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은 《자연기행》(까치,2008)이라는 책에서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흙을 밟거나 푸나무랑 벗삼던 사람이라면, 꿀풀도 먹고 까마중도 먹었어요. 풀내음과 꽃내음을 코로 입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였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작은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햇살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풀과 멧새가 골고루 들려주는 노래를 마음껏 들으면 좋겠습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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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 구산동에서 마두역으로 나오고, 마두역에서 7412번 버스를 타고 신사역에서 내린 다음, 신사역에서 전철로 강남역으로 온다. 강남역에서 고흥 가는 고속버스표를 넉 장 끊는다. 어른 둘, 어린이 둘. 버스 타기까지 한 시간 사십 분을 기다린다. 버스에 오르고는 네 시간 오십 분을 달린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부른 우리는, 마지막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옆지기 살붙이가 살아가는 일산으로 마실을 다녀온 머나먼 여러 날 길. 아이들은 다섯 시간 가까운 고속버스에서 아주 죽어나야 했으나 잘 견뎌 주었다. 옆지기도 이 힘든 길을 잘 버티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라고 안 힘들겠느냐만, 세 사람 힘든 티를 이맛살 꼭 한 번 찌푸리며 왔다고 느낀다. 꼭 한 번조차 안 하며 잘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둘째 아이 똥오줌 기저귀를 따순 물에 담그고 헹구어 애벌빨래 하는 사이 옆지기가 미역국이랑 찬밥을 끓여서 늦저녁 밥상을 차렸다. 좋은 하루로 마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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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15 11:10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셨어요? 먼길,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마두역이나 대화역에서 강남역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9700번) 있는데
그거 타셨으면 좋았었을 것을. 많이 갈아타셨네요. 강남역이 아니라 고속터미널 가신건가요?

따순 미역국 드시고 좀 쉬세요...

숲노래 2012-02-16 03:01   좋아요 0 | URL
집에 와서 해롱해롱거립니다 @.@
 


 한동안 조용히 아늑한 때

 


 아이 하나와 살아가던 나날에도 복닥복닥했지만, 아이 둘이랑 살아가는 나날에도 시끌시끌합니다. 아이 셋이나 넷, 다섯이나 여섯, 일곱이나 여덟이 한집에서 얼크러지며 씨름한다면 얼마나 시끌벅적할까 절로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던 사람이라 한다면, 여느 학교 여느 교실을 떠올릴 법하지만, 막상 하루 스물네 시간 숨 고를 짬 없이 뛰고 노래하고 기고 춤추고 하는 아이들 모습을 옳게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이제껏 생각힘이 그리 좋지 않았구나 싶어요. 스스로 겪거나 치르거나 부대끼는 일이 아니라 하면 좀처럼 마음속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들이 어떤 삶을 물려받거나 무슨 이야기를 받아먹으며 자라야 좋을까를 찬찬히 그림으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곱고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사랑스러운 나날을 일구어야 재미날까를 낱낱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어요. 어버이 스스로 그림으로 그릴 때에 좋은 삶이 되고 좋은 이야기가 되며 좋은 밥이 될 테지요. 어버이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면서 어버이부터 좋은 하루가 되고, 아이들과 살붙이 모두 좋은 나날이 되겠지요.

 

 하루 가운데 아주 살짝 한동안 조용히 아늑한 때를 맞이합니다. 밥을 다 먹고, 빨래와 설거지를 마치고, 마른 옷가지를 개고, 방과 마루와 부엌을 쓸고닦아 속이 후련하다 싶을 무렵, 이 한때가 더없이 조용하며 아늑하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아이와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을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따순 물을 받아 두 아이를 차근차근 씻길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수북한 기저귀와 옷가지를 빨래하고 널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밥을 마련하고 차리고 함께 먹은 다음 치울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내 생각이 조용하고 아늑하다면 언제라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내 생각이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우면 어느 때라도 어수선하거나 어지럽습니다. 바야흐로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4345.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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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06 14:2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된장님이 조용하고 아늑하셔서.
꼭 수행하시는 분 같아요.^^

숲노래 2012-02-07 05:21   좋아요 0 | URL
음... 좋은 길을 찾으려고 생각하니,
한자말로 하면 '수행'이 되겠네요 ^^;;

마녀고양이 2012-02-06 19:24   좋아요 0 | URL
내 생각이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우면 어느 때라도 어수선하거나 어지럽습니다.
=> 이게 현재의 제 모습이네요. 주위를 아무리 치운들 무엇하겠어요.
제 속이 시끄러운데... 크게 숨을 쉬면서, 가라앉히는 중이랍니다.

숲노래 2012-02-07 05:20   좋아요 0 | URL
아무쪼록 느긋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기쁘게 찾으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