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 2012년 3월호

 

 

 

(편집부 묻기)


<뿌리깊은 글쓰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선생님의 소개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여느 저자들처럼 이력이라던가 출간했던 책들의 나열이 아닌 단 몇 줄에서 아주 짧고 굵게 선생님 삶의 단편을 읽을 수 있었달까요. ^^

 

선생님께선 우리말에 대한 애정, 헌책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말과 관련한 책들도 굉장히 많이 쓰셨더군요. 우리말, 책, 특히 헌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되신 사연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이라는 '그림책 서점'을 비롯해 선생님의 일상, 책과 함께 하는 삶, 독서 철학 등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최종규 이야기)

 

 저는 제가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요. 얼마 앞서 내놓은 《뿌리깊은 글쓰기》 또한 제가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는 말글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이 책에 앞서 《생각하는 글쓰기》와 《사랑하는 글쓰기》를 내놓았고, 청소년과 함께 말글을 생각하고 싶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내놓기도 했어요. 네 가지 책은 모두 ‘한 사람이 살아가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말글’이란 무엇일까 하는 테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어요. 말과 글은 지식이 아닌 삶으로만 받아들여 주고받을 수 있다고 느끼거든요. 어느 누구라도 지식으로 말을 할 수 없고, 어떠한 사람이라도 지식으로 글을 쓸 수 없다고 느껴요. 지식을 내세우며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 이런 사람은 삶을 지식으로 들씌우는 겉치레예요. 겉치레 삶이요 겉치레 사람이기 때문에 겉치레 가득한 지식으로 말글을 뒤집어씌우겠지요.

 

 

 

 

 

 

 

 

 

 

 

 

 

 

 

 한삶이라면 즐거이 누릴 나날이라고 생각해요. 부질없이 지식자랑을 하거나 덧없이 지식놀음에 사로잡힌다면,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이러한 글을 읽는 사람이나 참 슬프겠구나 싶어요. 한겨레 말글을 옳고 바르게 쓰자는 이야기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올바로 가다듬자는 굴레에 매이지 않아요. 흔한 말로 ‘토박이말 사랑’이나 ‘민족주의’로 기울어질 수 없고요. 내 삶을 참다이 바라보고, 내 삶을 착하게 사랑하며, 내 삶을 곱게 돌보는 길이 되어야 비로소 한겨레 말글을 옳고 바르게 쓰는 자리에 선다고 느껴요. 곧, 말이 삶으로 되고, 삶이 말로 돼요.

 

 2004년에 처음 내놓은 《모든 책은 헌책이다》하고 2006년에 선보인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랑 2009년에 빚은 《책 홀림길에서》는 옳고 바르게 살아갈 길을 ‘헌책방과 책’이라는 테두리에서 살폈어요. 세 가지 책 또한 말글 이야기하고 매한가지예요. 헌책방과 책을 지식으로 살피거나 헤아릴 수 없어요. 헌책방을 더 많이 다녔거나 헌책방이라는 데를 가 보아야 헌책방을 알지는 않아요. 책을 더 많이 읽었거나 책을 꽤 많이 사서 읽는다고 책을 알지는 않아요. 내 삶으로 얼마나 ‘책 쉼터와 책 씨앗’을 깨달아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지 싶어요.

 

 

 

 

 

 

 

 

 

 

 

 

 

 

 그래서, 《뿌리깊은 글쓰기》를 즐거이 장만해서 읽을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나쁘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시기보다는,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내 넋을 곱게 추스르는 길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잘못 쓰는 영어를 바로잡자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길들기도 하니까요. 이를테면, 아직도 ‘빵꾸’ 같은 말을 재미있다며 그냥 쓰는 어른이 많아요. 이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도 ‘빵꾸’ 같은 말을 물려받아요. 어른들이 ‘잘 가, 잘 있어.’ 하고 인사하지 않고 ‘바이바이, 굿바이.’ 하고 인사하니 돌을 갓 지난 아기들까지 ‘바이바이.’ 하고 인사해요. 이런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 삶을 옥죄는 슬픈 굴레예요. 내 삶을 아름다이 돌보자고 쓰는 말이요 글이어야지요. 안타깝고 딱한 길로 흐르는 모습에 얽매인 말이나 글이 되는 일은 내 삶을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셈이에요.

 

 2007년 4월에 고향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어요. 개인 도서관을 꾸렸어요. 제 어린 나날부터 늘 읽고 곱게 건사하던 책으로 도서관을 마련했어요. 처음 책을 읽던 날부터 문득 떠올렸거든요. 내 마음을 아름다이 일군 이 책들을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 이렇게 내 보금자리에 갈무리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읽은 책으로 꾸미는 도서관’이 태어나리라고.

 

 

 

 제가 제 책으로 꾸민 도서관에는 문학책, 어린이책, 환경책, 국어사전, 인문책, 만화책, 그림책, 사진책 들이 골고루 있어요. ‘사진책 도서관’이지만 사진책만 갖추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살아가며 읽는 책은 여러 가지 골고루이거든요. 사진책만 읽어서는 사진을 읽거나 알지 못해요. 그림책과 만화책을 함께 읽으며 사진을 헤아려요. 동화책과 시집을 같이 읽으며 사진을 생각해요. 거꾸로, 사진책을 함께 읽으며 문학을 읽어요. 그림책을 나란히 읽으며 인문과 환경을 헤아려요.

 

 제 ‘사진책 도서관’은 2007년 4월에 인천 배다리에 처음 열었고, 2010년 가을에 충청북도 충주로 옮겼다가, 2011년 11월에 전라남도 고흥으로 다시 옮겼어요. 이제 앞으로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가며 더는 살림집 옮기지 않으려 해요. 전문 도서관인 ‘사진책 도서관’이라면 서울이나 큰도시와 가까이 있어야 좋다고 말씀하는 분이 많지만, 제 생각으로는 도서관이라는 책터는 도시하고 동떨어진 시골마을에 태어나야지 싶어요. 사람들 누구나 흙에서 자라는 목숨을 먹거든요. 흙에서 난 풀을 먹고, 흙에서 난 풀로 먹이를 삼는 짐승들을 고기로 바꾸어 먹어요. 흙이 있어야 바다에서 살아가는 뭇 목숨도 있어요. 그런데 도시에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있거든요. 출판사나 회사나 대학교는 몽땅 도시에 있기는 하지만, 서울과 큰도시에 몰린 사람들이 책에 깃든 씨앗과 알맹이를 옳게 받아들이거나 깨닫는지는 아리송해요.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데에 찾아와서 사진과 책과 사진책을 헤아리려는 분이라면, 지식 아닌 삶을 느껴야 한다고 여겨요. 그래서, 흙을 밟고 흙내음 맡는 시골마을로 느긋하게 찾아와 느긋하게 책을 읽어야 마음밭에 고운 사랑씨가 맺히리라 믿어요.

 

 그래서 저는 또 이런 사진책 이야기를 《사진책과 함께 살기》라는 책으로 2010년에 묶었어요. 올 2012년에는 사진책 이야기 하나 새로 내놓아요. 이렇게 제 손으로 도서관을 일구기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책에 담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따로 글을 써야겠대서 쓰는 글은 아니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글로 담아요. 집에서 살붙이와 복닥이는 하루가 글로 시나브로 태어나고, 두 다리와 자전거로 이 나라 곳곳을 누비는 나들이가 글과 사진으로 태어나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까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을 썼어요.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인천 골목길을 톺아보는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사진책도 빚었어요.

 

 

 

 

 

 

 

 

 

 

 

 

 

 

 

 늘 책을 읽으니 도서관을 꾸리고 책도 쓴다지만, 가만히 따지면 책은 종이책에만 있지 않아요. 책은 사람책에 먼저 있어요. 흙책이 있고 햇살책이 있으며 바람책이 있어요. 풀책과 나무책과 꽃책이 있어요. 돼지책이랑 소책이랑 닭책이랑 고양이책도 있어요. 집에서 살림을 하는 분들은 살림책을 읽어요. 손으로 빨래하며 빨래책을 읽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책을 읽겠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종이로 된 책만 책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막상 종이책을 읽으면서도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깨닫지 못해, ‘종이책 위기’가 찾아든다고요. 사람들은 먼저 종이책에 앞서 사람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사람책에 어리는 사랑을 헤아려야 해요. 사랑책 믿음책 꿈책을 먼저 읽어야지요. 이렇게 사람책을 읽는 몸가짐으로 종이책을 읽어야, 비로소 내 넋과 얼을 북돋우는 슬기로운 길을 찾는다고 느껴요.

 

 이웃이나 동무나 집안어른은 우리 네 식구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 주셔요. 저희는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 1인잡지 ‘함께살기’를 만들어 그렁저렁 밥벌이를 하지만 꽤 팍팍하기는 팍팍해요. 이번에 태어난 《뿌리깊은 글쓰기》를 사람들이 널리 사랑해 주고 읽어 주실 뿐 아니라, 마음 깊이 고운 말글을 품을 수 있다면, 저희 시골 도서관이며 시골 살림집이며 어여삐 뿌리내려 꽃피우리라 생각해요.

 

 

 이렇게 지내며 꿈을 하나 꾸는데요, 제 책들이 찬찬히 사랑받아 2쇄 3쇄 죽죽 찍으며 글삯을 벌면, 이 글삯으로 시골마을 논밭이랑 멧자락을 조금씩 사고 싶습니다. 우리 땅을 조금씩 늘려 이 땅이 시멘트덩어리나 아스팔트덩어리로 바뀌지 않도록 지키고 싶어요. 갯벌을 메운 논밭을 모두 사들일 수 있으면, 이 갯벌 메운 땅에 바닷물 다시 흐르게 해서 어여쁜 갯벌로 되살아나도록 하고 싶어요. 흙이 살아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살고, 우리 식구들이 살아나면 우리 이웃 또한 살아날 뿐더러, 우리가 다 함께 누릴 책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아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알라딘서재(blog.aladin.co.kr/hbooks)나 네이버카페(cafe.naver.com/hbooks)로 찾아오시면 시골마을 도서관 책지기 아저씨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

 

잡지에는 이렇게 적은 글 가운데 몇 대목만 따서 실었기에,

이 자리에 통으로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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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 들이기

 


 책꽂이를 좋은 녀석으로 들이고 싶었다. 크기를 헤아리고 갯수를 살핀다. 내가 쓰고픈 책꽂이는 밑바닥부터 나무 두께가 어느 만큼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손수 나무를 맞추어 짜는 길을 돌아본다.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값이 얼마나 하는가 어림한다. 좋은 나무를 골라 좋은 책꽂이를 짜는 분한테 말씀을 여쭌다. 더없이 좋구나 싶은 책꽂이는 하나에 이십팔만 원. 나는 이 책꽂이를 여든 개는 들여야 한다. 이십팔만 원짜리가 여든 개라면 이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된다. 공장에서 만든 책꽂이는 이모저모 해서 하나에 십만 원 남짓. 이 녀석을 예순 개 들여도 육백만 원이지만, 여든 개는 있어야 하기에 팔백만 원 돈.

 

 이도 어렵고 저도 팍팍하다. 이만 한 책꽂이를 들이기 앞서 학교땅부터 사야 하는데, 좀 까마득하다.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직 더 기다려야 할까. 가장 값싸고 빠르게 장만해서 책을 건사할 ‘네 칸 칼라박스’를 백십만 원어치 들이기로 한다. 칼라박스를 주문하고는 한숨을 쉰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하게 수를 내지 못한다. 집일을 건사하고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옆지기랑 둘이 책꽂이를 짜기란 좀처럼 만만하지 않다. 옆지기가 둘째를 업고 둘이 책꽂이를 짤 수 있을까. 이틀에 하나를 짜더라도 이렇게 할 때가 가장 나을까. 이 꿈은 놓고 싶지 않다. 앞으로 이 꿈을 이루고 싶다. 이 꿈을 이룰 때까지 우리 책들이 땅바닥 아닌 책꽂이에서 기다리도록 보살피고 싶다. (4345.3.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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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05 10:12   좋아요 0 | URL
칼라박스는 모두 조립해야하는건가봐요?
일손이 많이 드시겠는걸요... 아휴. 백십만원어치면 엄청난 양이겠군요.

하지만... 그런 꿈을 갖고 계신 된장님은 정말, 제게 힘을 주시네요.
네, 꼭 이루실 수 있을겁니다,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화이팅!

숲노래 2012-03-06 05:00   좋아요 0 | URL
아, 그냥 완제품입니다 ^^;;
그저 교실 한 칸 겨우 채우는 숫자밖에 안 돼요.

돈을 더 모아서 두 칸 더 채울 책꽂이를
잘 생각해야지요.... @.@

울보 2012-03-05 13:45   좋아요 0 | URL
정말 일손이 많이 필요할듯,,하네요,
아자아자 힘내세요,.
꿈은 이루어진다,,,

숲노래 2012-03-06 05:01   좋아요 0 | URL
어제 올 듯하더니 안 오고
오늘 온다고 하네요...
흠... =_=
 


 시골 국회의원

 


 읍내만 다녀오면 몸앓이를 한다. 읍내를 넘어 순천시내를 다녀와도 몸앓이를 한다. 순천시내를 넘어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라든지, 인천이나 서울이나,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와도 몸앓이를 한다. 멀리 갈수록 몸앓이는 더 모질고 여러 날 간다. 가깝다 하는 읍내를 다녀오면 하루쯤 몸앓이로 지나가는구나 싶으나, 여러모로 참 힘들다.

 

 읍내에 빵집이 여럿 있다. 시골 읍내에까지 파리바게뜨가 있었으나 지난해 끝무렵까지는 시골스러운 빵집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곳은 크게 넓히는 한편, 한쪽에 걸상을 여럿 두고는 마실거리를 판다. 읍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꽤나 드문데, 크게 넓힌 빵집에는 사람들이 꽤 북적거릴 뿐 아니라, 알바하는 아이가 셋씩이나 있고, 빵을 굽는 일꾼은 둘이나 된다.

 

 읍내를 다녀올라치면 때때로 ‘국회의원 예비 후보자’를 만난다. 좁은 읍내이니, 이들이 한 번 읍내를 돌며 인사를 하면 어느 골목으로 새더라도 어김없이 얼굴을 마주치며 이름쪽을 받는다. 예비 후보자라는 이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고흥 도화면에서 나고 자랐다 한다. 다만, 중학교 갈 무렵이면 하나같이 읍내로 나오고, 고등학교 갈 무렵이면 순천이든 광주로 나가며, 대학교는 아주 마땅히 서울로 나간다.

 

 전라남도 고흥군은 한국땅에서 손꼽힐 만큼 ‘주민이 줄어드는 시골’이다. 해마다 몇 천 사람씩 도시로 빠져나간다. 지난 2011년까지 7만을 가까스로 버티었으니, 해마다 몇 천 사람씩 도시로 빠져나간다는 숫자란 대단히 크다. 시골살이 하겠다며 들어오는 사람이 적잖이 있지만, 이들은 ‘꽤 나이를 먹은 사람’이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들어서는 ‘좀 젊다 싶은 사람’은 찾아보기 몹시 힘들다.

 

 고흥하고 이웃한 보성은 어떨까. 아마 보성도 젊은 사람은 가까운 도시인 순천이라든지 광주라든지 여수라든지 목포라든지 쉬 떠날 테지. 돈이나 뭐가 더 되면 대전이나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으로 갈 테지. 이리하여, 고흥군이랑 보성군은 국회의원을 내지 못한다. 고흥군이랑 보성군은 둘을 한데 묶어 국회의원을 한 사람만 내놓는다.

 

 고흥은 군이고, 보성도 군이다.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더라도 군이다. 군인 만큼 땅은 넓다. 땅은 넓되 사람이 적다. 서울이라든지 부산이라든지, 커다란 도시에서는 구마다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뿐 아니라, 구에서 두 사람을 뽑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서울이나 부산이라 한다면, 구를 둘로 쪼개야 하기까지 하리라.

 

 그런데, 국회의원을 ‘사람 숫자’를 세며 뽑는 일이 얼마나 알맞을까 모르겠다. 나로서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눈길을 둘 까닭이 없는데, 요즈음 읍내를 다녀오면서 문득문득 ‘정치를 하거나 공무원 일을 하는’ 사람이란 무언가 하는 생각이 곧잘 든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왜 있어야 할까? 이들이 없으면 어떨까?

 

 주민세이든, 보험료이든, 세금이든 왜 내야 할까 궁금하다. 새 고속도로를 왜 내고, 새 기찻길을 왜 내야 할까 궁금하다. 새 물건은 왜 만들어야 하지? 새 자동차는 왜 만들어야 하지?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들이지? 대학교는 무엇을 하지? 예술은 뭐고 문화는 뭐지? 문학은 뭐고 스포츠는 뭐지?

 

 밥을 안 먹고 살아갈 사람은 없다. 물을 안 마시며 살아갈 사람은 없다. 바람을 안 들이키며 살아갈 사람은 없다. 밥과 물과 바람이 없다면, 누구라도 죽는다.

 

 가공식품이건 식당에서 사다 먹는 밥이건, 누군가 흙을 일구어야 만들 수 있다. 흙이 없으면 밥이란 없다. 소고기이든 닭고기이든 쌀이든 보리이든 밀이든 배추이든 당근이든, 흙이 있어야 얻는다. 게다가, 이 흙이란 농약과 비료로 찌든 흙이 아니라, 깨끗한 흙이어야 한다. 깨끗한 햇살을 누리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깨끗한 바람이 흐르는 곳에 있는, 깨끗한 흙이어야 한다.

 

 모든 도시는 쓸데없다고 느낀다. 모든 물질문명은 덧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골은 차츰 사라지고, 도시는 자꾸 커진다. 시골은 나날이 더러워지고, 도시는 날마다 훨씬 지저분해진다. 시골에서 살아갈 사람은 부쩍 줄고, 도시에서 살려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는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한 사람조차 없어도 된다고 느낀다. 주민등록을 뭐하러 하나. 신분증이 왜 있어야 하나. 경찰은 왜 있어야 하나. 군인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 모든 정치꾼과 공무원은 그야말로 시골 흙일꾼 등을 후리면서 쇠밥그릇 붙잡는 날라리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정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거나 국회의원 일을 하고프다면, 이런 국회의원 몇 사람쯤 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국회의원은 마을에 따라 알맞게 두어야 한다. 도시는 워낙 사람이 많으니, 사람 숫자를 따져 더 둘 수 있으리라.

 

 국회의원이 300이든 3000이든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일을 하자면, 이들은 달삯을 ‘이제껏 받는 달삯과 견주어 ⅛만 받아도 넉넉’하다. 이보다 더 적게 받아도 넉넉하다. 국회의원은 한 달에 100만 원을 받고 일해도 된다. 다만, 국회의원한테는 ‘모든 찻삯을 거저’로 해 주면 된다. 덧붙여, ‘모든 밥값을 거저’로 해 주면 된다. 국회의원은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찻삯이랑 밥값만큼은 세금으로 대면 된다. 그러나, 밥값은 한 끼니에 1만 원을 넘지 않게 해야지. 그리고, 국회의원은 배우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책값 또한 거저’로 해 준다. 무슨 책을 사서 읽든, 국회의원은 언제나 모든 책을 거저로 사서 읽도록 해 준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다달이 100만 원 일삯을 받으면서 ‘찻삯 밥값 책값’은 거저로 하면 아주 씩씩하고 튼튼하며 슬기로이 일할 수 있으리라 본다. 더없이 마땅하지만, 국회의원한테는 ‘전용 자가용’을 주면 안 된다. 늘 대중교통만 ‘거저’로 타야 한다. 그래, 국회의원한테는 ‘전용 자전거’ 한 대를 빌려줄 수 있으리라. 나중에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다음 국회의원한테 물려주는 좋은 자전거 한 대를 빌려줄 수 있으리라.

 

 시골에서는 자전거 없으면 다니기 힘들다. 자전거만 있으면 시골에서 못 갈 곳이 없다.

 

 곧, 국회의원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한두 시간쯤 달려서 오갈 수 있는 넓이만 한 데에 한 사람씩 있으면 된다. 도시는 좁은 땅에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들를 곳이 많아, 국회의원이 조금 더 많아야 하리라. (4345.3.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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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그린다

 


 밤이 깊어도 잠들 줄 모르는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그림종이를 펼친다. 둘째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끼어들고 싶다. 둘째가 어머니한테 기어간 사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저 그리고픈 대로 그리고, 아버지는 첫째 곁에서 이모저모 그림을 그려 본다. 그림종이 앞에 엎드려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후다닥 그린다. 아이는 오른손에 연필을 쥐고 엎드린 채 그림을 그렸지만, 아버지는 아이 왼손에 연필 쥔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알아보려나, 알아보겠지. 그런데 나는 첫째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응, 무얼 그렸나. 이게 귤이니?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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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씨와 오이씨

 


 따스한 날씨가 새로 찾아옵니다. 새 날씨에 맞추어 올해 텃밭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어린싹 틔울 판을 마련하기로 합니다. 지난해에는 밭에 바로 씨앗을 심었는데, 이렇게 해도 되지만 다른 풀이 나란히 싹이 트며 당근이랑 감자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어요. 올해 당근은 제대로 거두고 싶어, 판에 씨앗을 먼저 심어 어느 만큼 자란 다음 옮겨심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돌을 고른 흙을 손으로 솔솔 뿌립니다. 판에 흙이 다 차면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자리를 내고 씨앗을 심습니다. 당근씨는 아주 작아 흙을 살짝 덮고, 오이씨는 조금 크니 살짝 깊이 묻고 흙을 덮습니다. 아이는 지난해에 당근씨를 함께 심었습니다만, 한 해 지나고 다시 보니 당근씨인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올해 이렇게 당근씨를 심고 이듬해에 또 심고 다음해에 거듭 심으면, 아이도 당근씨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심는지 찬찬히 깨닫겠지요.

 

 마을 귀퉁이에 굴러다니는 판을 몇 더 주워 다른 씨앗을 심고, 달걀판에는 능금씨랑 배씨를 심을 생각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따스한 날씨가 고맙습니다.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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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4:11   좋아요 0 | URL
씨앗을 심는 시기군요!
저는 당근은 키우지 못 했지만 오이는 길러본 적 있어요. 된장 님처럼 씨앗부터 심은 건 아니고요 이웃 할머니께서 싹 틔우신 모종을 주셨었지요. 토종 오이였는데 엄청 맛있었죠. 반찬 해 먹을 겨를도 없이 우리 식구 너도나도 똑똑 따서 맨입에 그냥 먹었답니다. 오독오독 씹으면 싱그러운 오이향기가 물씬~~아항..

숲노래 2012-03-04 04:06   좋아요 0 | URL
집에서 작은 화분으로 길러 보셔요. 꽤 많이 스스로 얻어 즐거이 먹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