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63] 모래밭·모래벌



  한국에는 모래만 넓게 펼쳐져서 다른 것은 하나도 없는 땅이 없어요. 가도 가도 모래만 가득한 벌판은 없지요. 그래서 한국은 무척 아름답거나 살기 좋은 터전이라고 할 만합니다. 모래만 가득한 벌판에는 풀도 나무도 자라기 어려우니까요. 풀도 나무도 자라기 어려우면 냇물도 없을 테고 비도 안 올 테며, 이런 곳에 집을 지어서 살기도 어렵겠지요. 모래만 가득한 벌판은 ‘모래벌판’이에요. 한자말로는 ‘사막(沙漠)’이라 하는데, 이 한자말은 “모래만 있고 물이 없는 곳”을 뜻한다고 해요. 이와 달리 바닷가에 모래가 넓게 펼쳐진 곳에는 물도 있고 숲도 있기 마련이에요. 바닷가처럼 모래가 예쁘거나 곱게 있는 곳은 따로 ‘모래밭’이라고 해요. 풀밭이나 꽃밭처럼 모래로 밭을 이루었다는 뜻이에요. 한국에는 없는 ‘사막’이기에 예부터 이런 땅을 가리키는 한국말은 잘 안 쓰였을 테지만 ‘모래벌판’이 있고, 이를 줄여 ‘모래벌’처럼 쓰면 돼요. 모래와 다른 여러 가지가 어우러진 곳은 ‘모래밭’이고, 다른 것은 없이 오직 모래만 있는 곳은 ‘모래벌’이에요. 4348.12.1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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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71 : 모래사장



모래사장

→ 모래밭


사장(沙場/砂場) = 모래사장

모래사장(-沙場) :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

모래벌판 : 모래가 덮여 있는 벌판

모래밭 : 1. 모래가 넓게 덮여 있는 곳 2. 흙에 모래가 많이 섞인 밭



  한자말 ‘사장’은 ‘모래사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 ‘모래’에다가 한자말 ‘사장’을 더한 낱말은 ‘모래벌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장 = 모래사장’이라면 ‘모래사장 = 모래 + 모래사장’인 꼴입니다. 말이 되지 않지요. ‘사장’이라는 한자말은 따로 쓸 까닭이 없고, ‘모래사장’처럼 잘못 쓰는 겹말은 하루 빨리 치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말은 ‘모래벌판’인데 흔히 ‘모래밭’이라고 말합니다. 바닷가에 나들이를 간다면 이곳에서는 ‘모래밭’이라 하면 되고, 끝없이 모래만 펼쳐진 벌판을 가리키는 ‘사막(沙漠)’은 바로 ‘모래벌·모래벌판’이라고 하면 됩니다. 4348.12.13.해.ㅅㄴㄹ



조용한 해안의 모래사장에

→ 조용한 바닷가 모래밭에

《다카도노 호코/이서용 옮김-달라도 친구잖아!》(개암나무,2012) 3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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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70 : 시작한 시발점



벌어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 처음 벌어지는 자리이다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시발점(始發點) : 1. 첫 출발을 하는 지점 2. 일이 처음 시작되는 계기



  한자말 ‘시작’은 ‘처음’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시발점’도 ‘처음’을 가리키지요. 그러니, “시작한 시발점”이라고 하는 말마디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벌어지는 시발점이다”처럼 쓰든지 “벌어지기 시작하는 곳이다”처럼 쓸 노릇입니다. 굳이 한자말을 안 쓰고 싶다면 “처음 벌어지는 자리이다”나 “처음으로 벌어지는 곳이다”처럼 쓰면 됩니다. 4348.12.13.해.ㅅㄴㄹ



투기의 시작이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 투기가 비롯하며 빈부 격차가 처음 벌어지는 자리이다

《김정일-기억의 풍경》(눈빛,2015) 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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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원 圓


 모두 손을 잡으니 원이 되었다

→ 모두 손을 잡으니 동그라미가 되었다

→ 모두 손을 잡으니 둥글게 되었다

→ 모두 손을 잡으니 동그랗게 되었다


  ‘원(圓)’은 “1. 둥글게 그려진 모양이나 형태 2. [수학]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은 ‘동그라미’입니다. 자리에 따라 ‘동글이·둥글이’를 쓸 수 있고, ‘동그랗다·둥그렇다·동글다·둥글다’를 쓸 만합니다. 그리고 ‘세모·네모’가 한국말입니다. ‘원형·삼각형·사각형’은 한국말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한국말은 나날이 교과서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꾸 쫓겨납니다. 4348.12.13.해.ㅅㄴㄹ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는

→ 동그랗게 나는

→ 빙글빙글 나는

《알도 레오폴드/송명규 옮김-모래 군의 열두 달》(따님,2000) 59쪽


천천히 원을 그리며 하늘로 하늘로

→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하늘로 하늘로

→ 천천히 둥글게 둥글게 하늘로 하늘로

《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백 가지 친구 이야기》(호미,2002) 79쪽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헤엄쳐서

→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헤엄쳐서

→ 크고 둥그렇게 헤엄쳐서

《리타 얄로넨/전혜진 옮김-소녀와 까마귀나무》(박물관,2008) 1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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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92 물불, 불물



  한국말사전에서 ‘물불’을 찾아보면, 요즈음 사전에는 이 낱말이 나오지만, 옛날 사전에는 이 낱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자사전이나 일본말사전에는 ‘水火’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에도 ‘수화(水火)’가 나오는데, “1. = 물불 2. = 물불 3. 일상생활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큰 재난을 일으키는 물이나 불처럼 그 기세가 대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물불’ 뜻풀이는 “물과 불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어려움이나 위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불’이라는 낱말을 “물과 불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는 잘 안 씁니다. 물과 불을 나타내려고 하면 ‘물과 불’처럼 씁니다. 거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꼴로 씁니다. 이 쓰임새를 곰곰이 살피면, 한국말사전에서 ‘물불’로 적기는 합니다만, 일제강점기에 일본 한자말 ‘水火’를 ‘수화’처럼 적다가, 해방 언저리부터 ‘물불’로 고쳐서 썼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물과 불은 언뜻 보자면 서로 다르다 할 만합니다. 물이 있으니 불이 꺼지고, 불이 있으니 물이 마릅니다. 그러나, 곰곰이 살피면, 물을 불로 끓여서 따뜻하게 마십니다. 불을 물로 다스리면서 여러 가지 살림이나 기계를 씁니다. 둘은 어긋나서 부딪히는(상극) 것이 아니라, ‘몸(모습)’이 다를 뿐인 하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람들 넋이 깃드는 몸에는 늘 피가 흐릅니다. 피는 ‘물’입니다. 그런데, 피는 그냥 물이 아닙니다. ‘불을 담은 물’입니다. 피는 먼저 따스한 기운이 있어서 ‘불’과 같습니다. 그리고, 피는 빨간 빛으로 이루어져서 ‘불’과 같아요. 다시 말하자면, ‘피 = 불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불로 이루어진 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은 ‘불물’이라고 할 피가 흘러야 몸입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사라진다면, 몸이 식습니다. 몸이 식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지요. 죽으면 어찌 될까요? ‘불물’이던 ‘피’는 곧바로 마르고 굳어서 사라집니다. 물에서 ‘불 기운’이 없으면 물이 아닌 셈입니다.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까닭도, 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이 김(아지랑이, 수증기)으로 바뀌는 까닭은, 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너무 뜨겁게 달라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곁에서 사람들 삶을 아름답게 돌보도록 하는 ‘피(불물)’가 되거나 ‘물(마시는 물)’이 되자면, ‘고르게 따스한 기운’이어야 합니다. 빗물이든 냇물이든 바닷물이든 모두 ‘한결같이 따스하게 흐르는 기운’이어야 ‘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말은 왜 생겼을까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수화(물불)’이었을 텐데, 한국에서는 ‘불물’입니다. 그러니까, ‘내 피를 따지지 않는’ 셈입니다. ‘내 목숨(숨결)을 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내 피가 어떻게 되든 뛰어들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물만 넘치거나 불만 넘치면, 끔찍하다는 일이 터집니다. 우리 누리는 온(모든) 것이 오롯이 있을 때에 ‘온누리’입니다. 온누리가 아니라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곧, ‘물누리·불누리’라 한다면, 물바다와 불바다가 될 테니, 한쪽으로만 치달은 셈입니다. 물로만 치닫거나 불로만 치달으면 어찌 될까요? 모두 죽어요. 어느 쪽으로 치닫든 모두 죽음입니다. 이쪽이 맞거나 옳거나 좋지 않습니다. 저쪽이 맞거나 옳거나 좋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둘 모두 아름답게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가운데(중도, 중립)’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둘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고 살갑게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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