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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웃님 고장에 사랑꽃 (2019.7.30.)

― 강릉 〈고래책방〉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848

033.641.0700.

https://www.instagram.com/gore_bookstore

https://www.blog.naver.com/gore0001



  강릉에 닿고서야 강원도에서 겨울올림픽을 치른 적 있은 줄 떠올립니다. 고흥서 강릉에 닿기까지 버스랑 기차에서 10시간을 보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고흥서 음성까지 대중교통으로 11시간이 걸리니, 외려 강릉까지는 좀 가까운(?) 길이었다고 느낍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어디로든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만, 시골이나 작은마을에서는 어디로든 멀고 더디기만 한 나라예요. 무슨 뜻인가 하면, 모두 서울로 쏠린 나머지, 이 나라 골골샅샅 수수하고 아름다운 곳이 바로 옆마을하고 이어질 길조차 없이 싹둑 끊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대중교통으로 강릉에서 영양에 가자면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데에만 다섯 시간이고, 버스를 기다리는 데에 두 시간을 써야 하니, 모두 일곱 시간이 걸립니다. 전라도 고흥에서 보성읍이나 장흥읍에 가는 데에도 대중교통으로는 한나절을 옴팡 써야 하거나 더 걸리곤 하지요. 대중교통으로 고흥서 완도나 진도를 가자면 하루를 고스란히 써야 하고요.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에 가장 많이 몰려서 사는 까닭이 있습니다. 모두 다 서울하고 부산에 있다 할 만하거든요. 그러나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 아닌 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까닭도 있어요. 서울이나 부산에 갖가지 물질문명하고 문화가 쏠렸습니다만, 서울이나 부산에는 숲이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에는 맑은 냇물이나 하늘이나 땅이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에는 조용한 거님길이나 풀밭길도 없고요.


  강릉에서 삶을 짓는 이웃님이 있어서 이분을 만나려고 작은아이하고 마실을 합니다. 함께 강릉 바닷가에 앉아 모래밭을 맨발로 느끼는데 작은아이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며 손을 잡고 끕니다. 강릉 바닷물은 고흥 바닷물하고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고흥은 흙놀이를 할 만한 아주 고운 모래라면, 강릉은 투박하면서 굵은 모래입니다. 강릉은 사람이 미어터진다 할 만큼 바닷가가 시끄럽고 가게에 자동차가 가득하지만, 고흥은 우리 몇만 까르르 떠들면서 바닷물하고 한덩이가 되어 놉니다.


  해가 지고서 〈고래책방〉에 찾아갑니다. 저녁에도 문을 여니 고맙게 찾아갑니다. 8월 3일부터는 ‘고래빵집’도 문을 연다고 해요. 이제 일곱 달을 조금 넘겼다고 하는 갓 태어난 책집인 〈고래책방〉인데요, 책꽂이가 매우 시원시원합니다. 더 많은 책을 꽂거나 갖추기보다는, 더 아늑하게 책을 두면서 쉼터까지 느긋하게 둡니다. 튼튼하며 알뜰한 책상이 길게 있습니다. 책꽂이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빵굼틀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샌지와 빵집 주인》이 떠오릅니다. 빵냄새를 맡았다면서 돈을 물리려는 빵집지기가 있었다는데, 〈고래책방〉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빵냄새로도 배부르고 책내음으로도 마음부르도록 꾀하는 터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고래책방〉에 머물 수 있는 틈은 매우 짧아 책 두 자락만 빠듯하게 고르고서 다시 길을 나섭니다. 먼저 그림책 《낱말 먹는 고래》(조이아 마르케자니/주효숙 옮김, 주니어김영사, 2014)를 고릅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책집답게 고래를 이야기하는 책을 한켠에 잘 모아 놓았어요. 우리 책숲에 있는 그림책도 여러 자락 보이는데, 아직 안 갖춘 그림책 하나를 집어듭니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사라 룬드베리/이유진 옮김, 산하, 2018)를 보고 빙긋 웃습니다. 옮긴님이 스웨덴말을 알뜰히 여미는 길을 즐겁게 나아가네 싶어 반갑습니다. 다만 어린이 말씨를 아직 깊이 헤아리지는 못하고, 번역 말씨를 다 걷어내지 못합니다.


  〈고래책방〉 아래칸(지하)에 깃든 ‘강릉을 사랑한 작가’ 칸을 바라봅니다. 저는 아직 강릉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없습니다만, 저도 ‘강릉이란 고장을 사랑하는 글벗’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릉도 영양도 안동도 장흥도 곡성도 광주도, 고루고루 사랑하는 글벗이 되고 싶달까요. 〈고래책방〉 윗칸(2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인문책을 살뜰히 갖춘 책꽂이가 반깁니다. 책마다 책집지기 눈썰미로 가린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강릉이란 곳을 놓고서‘고래책방이 있어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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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벌레가 풀벌레로 (2019.1.30.)

― 제주 〈제주풀무질〉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11길 8

064.782.6917.



  서울에 책수다를 나눌 일이 있어 마실을 하는 길이었는데, 호미출판사 홍현숙 님이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에 닿아 우체국을 찾으려고 사십 분 가까이 길을 헤매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짜르르 울립니다. 여태 짐을 이고 지고 끌며 흘린 땀보다 굵은 눈물방울이 흐릅니다. 책마을 큰누님이 흙으로 돌아가시는구나.


  굳이 스스로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은 홍현숙 님은 책마을에 이모저모 대단한 물결을 일으켰지만, 뒤에서 조용조용 다음 책짓기를 했습니다. 홍현숙 님이 《뿌리깊은 나무》 막내 디자이너로 들어가서 ‘끄레’라는 디자인 두레를 일으켜서 이끄는 동안 어마어마하다 싶은 담배를 태웠다 하고, 마음 맞는 벗님이 있으면 밤을 밝혀서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바람에 실어서 하늘로 띄웠다지요.


  이녁 가신 길을 밤새워서 지킨 아침에 갖은 짐을 이끌고서 성균관대 앞으로 갑니다. 이곳에는 이제 명륜동 살림을 접고서 제주로 옮기려 하는 〈풀무질〉이 있습니다. 다만 명륜동에도 〈풀무질〉은 남아요. 이곳을 이어받으려고 하는 젊은 일꾼이 여럿 있다더군요. 〈풀무질〉은 서울살이를 접고 제주로 삶터를 옮긴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서울벌레가 시골벌레로, 참말로 ‘풀벌레’로 거듭나려는 길입니다.


  《교육사상가 체 게바라》(리디아 투르네르 마르티/정진상 옮김, 삼천리, 2018)를 고르고,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18)를 고르고, 《골목 하나를 사이로》(최영숙, 창작과비평사, 1996)를 고릅니다. 늘 이고 지고 끄는 짐이 많으니 책 석 자락을 골라도 묵직합니다. 〈풀무질〉이 짐을 옮기는 길에 석 자락 짐을 덜 수 있었을까요.


  겨울에는 겨울을, 봄에는 봄을, 비오는 날에는 비를, 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바람을, 오롯이 기쁘게 맞아들일 새로운 풀벌레는 어떤 날개돋이를 할까요. 그리고 서울에서 새로운 서울벌레가 되어 책지기를 맡을 젊은 일꾼은 이곳을 어떤 꿈터이자 사랑터로 지펴 낼까요. 모두 즐겁게 웃는 길을 그려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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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꽃 곁에 수다꽃 (2019.7.24.)

― 광주 〈러브 앤 프리〉

광주 남구 천변좌로418번길 17

https://www.instagram.com/lovenfree_book



  서류 하나에 이름을 받는 일로 광주마실을 합니다. 이름 하나가 대수롭기에 바로 이 대수로운, 대단한, 엄청난 기운을 나누어 받으려고 고흥서 반나절을 달리는 광주로 갑니다. 광주버스나루에서 서류에 이름을 받고 우체국에 가서 부칩니다. 빗방울이 살짝 듣습니다. 고흥으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가 애써 걸음을 했으니 광주에 있는 책집에 들러서 돌아가자고 생각합니다.


  광주로 마실 나올 일이 잦지는 않지만 한걸음 두걸음 잇다 보니 광주 시내버스를 타는 일도 차츰 익숙합니다. 금남로 전철나루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잘 달립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동서남북이 헷갈립니다만 하늘이랑 구름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간 마을책집 〈소년의 서〉는 이 바람이 흐르는 곳에 있었어’ 하고 어림하면서 걷습니다. 길그림이나 길찾기가 아닌 바람결을 따라 책집을 찾아나섰고, 참말로 바람결이 이끄는 곳에 〈소년의 서〉가 있어요.


  〈소년의 서〉에 살짝 들르고서 고흥에 돌아갈는지 마을책집 한 곳을 더 들를는지 망설이는데, 〈소년의 서〉 책집지기님이 “여기서 15분쯤 걸어가시면 젊은 친구들이 하는 멋진 책방이 있어요. “러브 앤 프리”란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곳이에요. 꼭 가 보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이웃 책집지기님이 ‘사랑스러운 책집’이라고 귀띔하는 곳이라면 참으로 사랑스럽겠지요?


  골목을 걷고 걷습니다. 광주 골목도 매우 살갑습니다. 이 살가운 멋이랑 맛을 광주에 계신 분도 살갗으로 깊이 느끼면서 느긋이 걷고, 해바라기를 하고 바람을 쐬고 꽃내음을 맡고, 돌턱에 앉아 다리쉼을 하겠지요.


  마을쉼터가 있어 뒷간에도 들르고 낯을 씻고 다리를 쉽니다. 새로 기운을 내어 더 걸어서 〈러브 앤 프리〉에 닿습니다. 이 마을책집하고 마주보는 마을가게에 마을 할매랑 할배가 잔뜩 나앉아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수다꽃 마을가게를 바라보는 고즈넉한 마을책집이란 무척 어울립니다. 더구나 〈러브 앤 프리〉는 무엇보다 시를 아끼는 곳이로군요.


  등짐을 내려놓고서 《상어 사전》(김병철 글·구승민 그림, 오키로북스, 2018)을 넘깁니다. 제가 아는 상어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구나 싶지만, 젊은 이웃님이 이런 도감을 쓰고 그린 대목만으로도 반가워서 덥석 집습니다. 웬만한 마을책집에 가도 으레 만나는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줌파 라히리/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인데, 그동안 미뤄 두었는데 오늘은 집어들어서 읽어 보기로 합니다.


  책집 한쪽을 가득 채운 시집 겉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단출하면서 단단하게 차려 놓은 시집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시집 가운데 어느 시집을 손에 쥐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읽을까 하고 어림하다가 《작은 미래의 책》(양안다, 현대문학, 2018)을 집습니다.


  1990년대에 태어난 분들은 이른바 ‘젊은 시인’이란 이름을 내겁니다. 예전에는 198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더 예전에는 197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더 예전에는 1960년대나 195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젊은 시인’이라 했어요. 가만히 보면 그 어느 곳보다 시나 소설을 이야기하는 판에서는 ‘젊은 글님’이란 이름을 으레 내겁니다. 글님이 젊기에 목소리가 젊다는 뜻일까요? 우리 삶터에는 젊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몸나이로만 젊다고 할 만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몸나이 아닌 마음나이로, 또 넋나이로, 생각나이랑 꿈나이랑 사랑나이로 젊음을 말할 적에 비로소 곱게 피어나는 눈부신 ‘젊은 노래’가 태어나리라 봅니다.


  시를 아끼는 〈러브 앤 프리〉에 《우리말 글쓰기 사전》 한 자락을 드리면서, 광주길에 시외버스에 쓴 동시 ‘홀’을 흰종이에 옮겨적어서 드렸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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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러 왔습니다 (2018.3.14.)

― 부산 〈고서점〉

051.253.7220

부산 수영구 수영로464번길 19, 2층



  2001년부터 해마다 부산 보수동으로 찾아갔다가 2014년에 어떤 일을 치르면서 네 해 동안 발을 끊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가서 그동안 달라진 자취를 살핍니다. 예전 간판을 떼고서 새 간판을 붙인 모습이 눈에 뜨이는데, 예전 간판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예전 간판을 ‘헌책집 자취(역사)’로 삼아서 잘 건사해 두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쓰레기로 치웠을까요?


  2019년에 새터로 옮긴다고 하는 〈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얼추 스무 해를 거의 해마다 만나던 헌책집이 깃들 새로운 보금자리에는 어떤 숨결이 흐를까요. 어쩌면 보수동에서 〈고서점〉이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보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 헌책집 한 곳이 그동안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얼마나 땀흘렸는가 하는 나날이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이제 보수동이란 곳은 누가 나서지 않아도 이름터요 멋터가 되었겠지요. 다만 이곳에서 ‘보수동 책방골목 잔치’를 꾀하고 이끈 일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대목은 남겨 놓고 싶습니다.


  《제주도 수필》(석주명, 보진재, 1968)을 봅니다. 짝이 안 맞는 하나로도 반갑습니다. 헌책집을 찾아가며 이런 아름책을 만날 적마다 어떻게 제 손으로 이 책이 올 수 있나 싶어 놀랍니다. 틀림없이 잘 보이는 책시렁에 놓였는데, 숱한 책손 눈길이나 손길을 따라 떠나지 않고 제 눈앞에까지 남았어요.


 《普通學校 農業書 卷二》(朝鮮總督府, 1914)하고 《朝鮮語學習帳 第一號》(?, 1914)를 고릅니다. 같은 분이 쓰던 교과서하고 공책일 테지요. 갓 일제강점기였을 무렵 쓰던 책하고 공책일 텐데, 이분이 쓰는 한자는 매우 힘차지만, 한글은 엉성합니다. 그때에는 다들 이러했으리라 느낍니다. 묵은 《한글사전》(한글편찬회, 동명사, 1953)하고 《농업통론》(백남혁, 대동문화사, 1948)를 집습니다. 말이 흘러온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시론》(김종길, 탐구당, 1965)이라고는 조그마한 책을 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판으로 알찬 책이 나왔어요.


시라고 쓰면 시가 되고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된다는 안이하고도 편리한 사정은 앞에서 말한 시인의 선수적인 기술자적인 성격을 강조한 현대시의 민주주의의 폐단일지는 알 수 없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시라는 딱지가 붙고 시인이라는 호칭이 붙었다고 해서 시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혹은 군자의 면목으로는 범죄인이오 악동인 적지않은 시인들을 문학사가 매장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시인이라는 하나의 고귀한 사회적인 인간형을 쉽게 가질 수 있는 이유로 아전인수될 수는 없다. (66, 67쪽)


  깨알같은 글씨로 빡빡하게 엮었어도 이러한 책이 태어난 대목을 반기면서 좋아하던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책을 깨알같은 글씨로 엮으면 다들 싫어합니다. 글밥이 너무 많다고 여겨요. 즐거이 배울 수 있다면 글밥이 많든 적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만, 요새는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넘치기에 종이책이 자꾸 얄팍한 길로 갑니다. 얄팍하대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종이를 좀 헤프게 쓰는 셈은 아닐까요.


  《길은 멀다》(슬라보미로 라위쯔/최재형 옮김, 코리아사, 1959)하고 《난장이의 독백》(芥川龍之介/신태영 옮김, 규장문화사, 1979)을 고릅니다. 《난장이의 독백》을 읽으니 예전에 읽은 글이네 싶습니다. 사진책 《活動하는 얼굴》(최민식, 삼성출판사, 1973)을 고를 수 있어 고맙습니다. 최민식 님 사진책을 아직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손바닥책 《우리의 美術과 工藝》(고유섭, 열화당, 1977)하고 《제주 민속의 멋 1》(진성기, 열화당, 1979)를 고릅니다. 두 가지 책은 우리 책숲에 건사하지만, 굳이 한 자락을 더 챙기려고 합니다. 《농민문화》(한국농촌문화연구회 부설 농민문화사) 111호(1978.12.)라는 잡지가 새삼스럽고, 《月刊 內外 出版界》(내외출판계사) 1977년 1월호도 새삼스럽습니다.


청계천7가 덤핑서적 상가를 가리켜 우리 출판계의 암이라고도 하고 우리 문화계의 치부라고도 한다. 그리고 출판계의 점잖은 분들은 이를 아예 입에 담지도 않으려 하며 애써 외면한다. 외국 손님들의 눈에라도 띨세라 쉬쉬하며 마치 병신 자식 골방 속에 가둬두고 시침떼는 형색이다 … 해답은 간단하다. 당국은 정책이 없고 출판업계에는 청정한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질 만한 맑고 ‘깨끗한 여자’의 수가 적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60, 61쪽)


  1977년 언저리 책마을을 묵은 잡지로 엿봅니다. ‘무궁화문고’란 이름을 단 《북녘하늘 제치고》(손수복, 형문출판사, 1981)는 얼마나 끔찍한 동화책이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독재권력은 아이들을 얼마나 억눌렀고, 그때 글쓰던 어른은 얼마나 아이들 마음을 어지러이 휘젓는 짓을 일삼았을까요? 가만히 보면, 독재부역을 하며 반공동화나 새마을동화를 쓴 ‘어른’이란 분들 가운데 이녁 잘못을 뉘우치고서 어떤 돈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밝힌 이를 아직 못 보았습니다.


  《어린이 그의 이름은 ‘오늘’》(김재은, 태양문화사, 1977)을 보고서 ‘교양국사 총서’로 나온 손바닥책을 여러 가지 고릅니다.


《교양국사 총서 2 한국의 고분》(김원룡,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3 청자와 백자》(진홍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5 불탑과 불상》(황수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8 토기와 청동기》(한병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14 한국의 건축》(정인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5)

《교양국사 총서 17 한국의 지도》(방동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18 한국의 산천》(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19 동학 농민 봉기》(한우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2 신라의 토우》(이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3 한국의 시가》(박성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4 한국의 무용》(성경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5 국악의 역사》(장사훈,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교양국사 총서 28 판소리》(강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보수동 책방골목의 공간과 사람들》(보수동책방골목, 임시수도기념관, 2016)이란 책이 나온 적 있다고 합니다. 《한국문학의 의식》(김병익, 동화출판공사, 1976)이란 책을 뒤적입니다. 마침 요즈막에 김병익 이분이 ‘문단 미투’를 둘러싸고서 한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스스로 몸담은 그릇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몸짓을 예전 글에서도 느낍니다.


  《현대사를 엮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1》(주간시민 엮음, 중앙출판인쇄, 1977)하고 《부산 시인》 44호(1993.11.)를 고릅니다. 부산사람이 아니면서 굳이 부산 이야기를 다룬 책을 고릅니다. 부산사람이 아니어도 이 땅에서 책이라고 하는 길을 걸어가기에 곁에 둘 만하다고 여기니 살펴봅니다. 《동물의 생활》(조복성, 정음사, 1967)는 부일여중도서관에 있다고 나온 책입니다. 새삼스레 고맙지요. 이런 묵은 책을 건사하다가 내놓아 주기에 저로서는 조복성 님이 쓴 이 책을, 비록 낡아서 바스라지려고 하는 판이어도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직장훈련교재》(부산시, ?)는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박정희 군사독재 무렵에 나온 비매품이지 싶습니다.


이 책자는 단순한 외식금지, 출퇴근엄수, 무단이석금지, 당직철저 등의 외형적 복무자세확립을 위해 쓰여진 목적보다, 조국근대화는 결코 물질의 재건만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정신의 재건이 앞서야 한다는 과제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므로, 직장훈련담당관 역시 이 점을 직시하고, 공무원의 보다 철저한 정신의 재건과 윤리관확립에 성실한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머리말)


  책집에 간다면 책을 사려는 뜻입니다. 책집이 가득한 골목에 간다면, 이때에도 책을 사려는 뜻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왔기에 모처럼 보수동 모습을 사진으로도 담지만, 이보다는 온갖 책이 눈에 밟힙니다. 주머니가 닿는 대로 장만하려고 합니다. 《약소민족의 비애와 혁명》(C.볼즈/정문한 옮김, 인간사, 1962)하고 《지나온 세월》(이방자, 동서문화원, 1974)하고 《スポツの施設と用具》(東次右衛門, 旺文社, 1950)까지 고르기로 합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하루를 묵으며 생각하니, 아무래도 아쉬워 1947년에 나온 잡지 《조선교육》(조선교육연구회)도 장만해야겠구나 싶습니다. 책집지기한테 전화를 겁니다. 택배 짐에 이 책을 같이 넣어 달라고 여쭙니다. 책값은 누리은행으로 더 넣기로 합니다. 오늘을 읽으면서 어제를 알고, 어제를 읽으면서 오늘을 압니다. 어제하고 오늘을 읽으니 모레를 알고, 모레를 문득 마음으로 읽으면서 오늘하고 어제가 흘러가는 바람결을 깨닫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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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어루만지는 손길 (2018.4.1.)

― 도쿄 진보초 〈山陽堂書店〉



  도쿄  진보초 책골목에는 남다르다 싶은 책집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책손이 많고 책집이 많으니 저마다 새로운 빛을 즐길 수 있겠구나 싶어요. 저 책집에서는 저러한 책을 다루니, 이 책집에서는 이러한 책을 다루면 되어요. 그리고 ‘이 책꾸러미’ 가운데 몇 가지에 더 마음을 쏟아서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山陽堂書店〉은 ‘岩波文庫’를 살뜰히 다루는 곳이라고 큼지막하게 밝힙니다. 그렇다고 ‘암파문고’만 있지 않아요. 다른 책도 제법 있습니다만, ‘암파문고’만큼은 이곳이 도쿄에서, 또는 일본에서, 또는 이 별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한국에서 헌책집을 다닐 적에 암파문고를 눈여겨보곤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건드리기조차 어렵겠구나 싶은 갈래를 깊거나 넓게 다루는 책이 꽤 많거든요. 또 책이 참 이쁘고 단단합니다. 여러모로 배울거리가 많아서 암파문고를 즐거이 장만해요.


  오늘 〈山陽堂書店〉에 들러 《光る砂漠》(矢澤 宰·?部澄, 童心社, 1969)이라는 사진책 하나를 먼저 고르고, 《季節の事典》(大後美保, 東京堂出版, 1961)이라는 새로운 사전을 다음으로 고릅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전도 펴낼 수 있군요.


  먼저 두 가지 책을 셈하기로 합니다. 책을 더 보다가 셈할 수도 있으나, 책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싶어요. 책값을 셈하며 넌지시 여쭙니다. ‘이 아름다운 책시렁을 사진으로 담아도 되겠습니까’라는 말을 일본말로 종이에 적어서 여쭙니다. 책집지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책시렁을 사진으로 찍으려는데, ‘岩波寫眞文庫’를 한 권에 500엔씩에 판다는 글씨를 봅니다.


  손바닥책을 그렇게 알뜰히 펴낸 이곳인데 사진책도 손바닥으로 냈을 테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핍니다. 아마 1950년에 첫 사진문고를 내놓았지 싶은데, 그때에는 책값이 100엔씩이었다고 적힙니다. 헌책집 〈山陽堂書店〉에서 500엔에 파는 암파사진문고는 1950∼60년대에 나온 오래된 책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집어가고 싶으나, 짐 무게를 헤아려야 하기에 이 책을 고를까 저 책을 집을까 망설이면서 하나하나 살핍니다. 모두 일곱 자락만 고르기로 합니다.


《岩波寫眞文庫 13 心と顔》(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1)

《岩波寫眞文庫 37 蚊の觀察》(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1)

《岩波寫眞文庫 63 赤ちゃん》(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三木淳·?口進, 1952)

《岩波寫眞文庫 88 ヒマラャ, ネパ-ル》(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3)

《岩波寫眞文庫 197 インカ, 昔と今》(岩波書店 編集部·泉 靖一, 1956)

《岩波寫眞文庫 215 世界の人形》(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7)

《岩波寫眞文庫 總目綠》(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60.3.)


  알뜰한 사진문고를 만나서 반가운데, 《アサヒグラフ》 1962년 2월 18일 임시증간호가 보입니다. ‘皇太子 ご夫妻 東南ア訪問’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판이에요. 이른바 특별판입니다. 이 사진잡지도 고르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책을 고르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잇달아요. 사진기를 거쳐 바라본 책시렁은 눈부시고, 눈부신 책시렁을 밝히는 아름다운 책이 저를 부릅니다. “어이, 나도 좀 꺼내서 살펴봐.” “나는 어때? 나도 한국으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한국에서는 날 본 적이 없지? 그러니까 나야말로 한국으로 데려가 줘.” 책마다 목소리를 내면서 부릅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 사진만 찍기로 합니다. 수다를 떨던 책이 쳇쳇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혼자서는 너희를 다 들고 갈 수 없는걸. 앞으로 너희를 넉넉히 챙겨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빌게.’ 하고 마음말을 들려줍니다. 정갈하게 가꾸는 정갈한 책집에서 정갈한 손길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롭게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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