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푸른그림 (2021.5.12.)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우리나라에 풀꽃두레(환경단체)가 제법 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시골이라는 터전에서 숲을 품고 들에서 일하며 바다에서 놀던 무렵에는 따로 풀꽃두레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풀님이요 꽃님이자 숲님이고 들님에 바다님이면서 멧님이었거든요.


  시골을 밀어내어 서울을 넓히면서 풀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자랍니다. 숲을 망가뜨리거나 바다를 더럽히는 일이 늘어나면서 풀빛으로 몸을 물들이는 사람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풀꽃두레는 시골 아닌 서울에 터를 두고 뿌리를 뻗습니다. 시골에서 싹트는 풀꽃두레가 없다시피 해요. 이러다 보니 풀꽃두레는 시골살이나 시골빛을 오히려 모르거나 등집니다. 옛 벼슬꾼뿐 아니라 새 벼슬꾼도 숲들바다를 짓뭉개지만 정작 아무런 목소리가 없고, 오히려 “멧자락 햇볕판”하고 “바다 바람날개(해상 풍력발전)”를 나라가 함박돈으로 밀어붙이도록 이바지합니다.


  서울 하늬녘에는 마을책집 세 곳 〈꽃 피는 책〉하고 〈호수책장〉하고 〈나무 곁에 서서〉가 이웃입니다. 세 곳은 들빛하고 물빛하고 멧빛으로 어우러지면서 다른 숨결입니다. 목소리로만 읊다가 빛바랜 적잖은 풀꽃두레와 달리, 이 마을책집 지기님이 일구는 ‘숲보’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걸어가는 푸른물결이라고 느낍니다.


  숲을 품고 노래하는 사람이 읽는 책은 숲책이 바탕일 테지만, 이보다는 언제나 하늘이요 해요 별이며 빗물이고 구름이자 바다이고 들녘에 풀벌레하고 새입니다. 굳이 종이에 얹은 풀책(식물도감)을 펴야 풀을 알 수 있지 않아요. 스스로 풀을 바라보고 훑고 혀에 얹고 씨앗을 받고 꽃을 누리면 저마다 다르면서 즐거이 풀을 익히고 사랑하는 길로 갑니다. 누가 붙인 이름을 외워야 새를 아끼지 않아요. 우리 나름대로 새를 지켜보고 동무하면서 새롭게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해는 어디에나 드리웁니다. 별은 어디에나 돋습니다. 마음을 뜬다면 해님을 맞아들이면서 해맑게 빛나는 몸으로 거듭납니다. 눈을 틔운다면 별빛을 받아들이면서 환하게 춤추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곁에 흐르는 바람을 느껴요. 곁에 곱살곱살 바람이 흐르도록 다독여요. 둘레에 피고 지는 꽃을 봐요. 마을에 송이송이 꽃이 피고 지도록 손길을 뻗어요. 사람이 심어서 자라는 풀꽃나무는 한 줌조차 안 됩니다. 풀벌레하고 새하고 짐승하고 비바람하고 해님에 별님이 심고 돌보는 풀꽃나무가 한가득입니다. 어린이하고 조그맣게 숲을 속삭입니다. 푸름이하고 새록새록 멧길을 맨발로 나들이합니다.


ㅅㄴㄹ


《철새, 생명의 날갯짓》(스즈키 마모루/김황 옮김, 천개의바람, 2018.10.26.)

《문장부호》(난주, 고래뱃속, 2016.11.21.)

《햇볕이 아깝잖아요》(야마자키 나오코라/정인영 옮김, 샘터, 2020.3.20.)

《소를 생각한다》(존 코널/노승영 옮김, 쌤앤파커스, 2019.12.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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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곁에서 (2021.4.24.)

― 구미 〈책봄〉



  여름에 여름꽃이 가득합니다. 꽃은 늘 핍니다. 가을에 가을꽃이 곳곳에 흐드러집니다. 겨울에 겨울꽃이 있고, 봄에 새롭게 봄꽃이 있어요.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을 만납니다. 시골에서도, 멧골이나 숲에서도,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다 다르게 스스로 빛나는 꽃을 보고서 다갑니다.


  모든 푸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잎도 다 다른 때에 돋아요. 차근차근 돌아가면서 푸르게 빛나는 풀꽃나무이듯, 우리 곁에 있는 책도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살림을 지으면서 다 다르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다 다르게 엮은 이야기로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이 다 다른 책을 건사하는 책집까지 다 달라요.


  모든 책집이 똑같이 생긴다면 메마릅니다. 다 다른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힌다면 끔찍합니다. 길들이기잖아요.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책집인데 똑같은 책만 다룬다면 나눔길이 아닌 굴레나 쳇바퀴일 테지요. 구미를 사랑하는 〈책봄〉은 책으로 봄꽃이 되고, 책을 보는 우리 눈빛을 꽃내음으로 북돋우지 싶어요.


  여러 고장을 돌고돌아 책집 앞에까지 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들여다보고서 느긋하게 들어섭니다. 고흥에서도 보는 꽃이요 서울에서도 만나는 꽃이지만, 책집 앞에서 만나는 꽃은 바로 오늘 여기에서 새롭게 만나는 숨빛입니다.


  요새는 집을 높다라니 짓고서 부릉이(자동차)를 둘 자리를 넓게 마련하는데, 부릉이한테는 귀퉁이를 조금만 떼어주고서 빈터하고 풀밭하고 숲정이한테 넓게 내어주면 좋겠어요. 땅바닥이라 할 1층에는 차댐터를 못 두게 하고 모조리 풀꽃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봄꽃이 있으면 종이책은 없어도 되더군요. 여름꽃이 있으면 글을 안 써도 넉넉하더군요. 가을꽃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즐겁고, 겨울꽃이 있으면 배움터란 부질없어요. 들풀과 들꽃과 나무와 새와 풀벌레를 저마다 온(100) 가지씩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마을하고 보금자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푸짐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서 풀꽃나무에 새에 풀벌레가 모조리 터를 빼앗기면서 우리가 저마다 즐거이 짓던 이야기가 갇히거나 사라질는지 몰라요.


  동그란 책상에 앉아서 창밖 햇빛을 바라봅니다. 햇볕을 듬뿍 머금는 노란꽃을 지켜봅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도 책집 앞 들꽃을 보면서 웃어요. 어른들은 너무 빨리 걷느라 꽃을 더 보고 싶은 아이를 자꾸 잡아끌지만, 문득 멈춰 봐요. 들꽃을 같이 보고서 책집에 나란히 들어와 봐요. 봄내음이 물씬 흘러요. 부릉이를 달포나 몇 해쯤 멈춰 볼까요? 두 다리로 사뿐히 걸어서 책집에 찾아가 봐요.


ㅅㄴㄹ


《이해받지 못할 글들의 조그만 어휘집》(유경, 유영, 2020.11.20.)

《결혼 탈출》(맹장미, 봄알람, 2021.3.29.)

《여우 달리기》(방새미, 2018.10.22.)

《Here's Your Spring》(책봄, 20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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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동무하며 (2021.5.12.)

― 서울 〈한평책빵〉



  처음 ‘서울혁신파크’란 이름을 들을 때부터 무슨 이름을 이렇게 바보스레 짓나 싶었습니다. ‘혁신’에다가 ‘파크’라 하면 새로울까요? 외려 이런 이름이 케케묵지 않을까요? 수수하게 ‘서울쉼터·서울쉼뜰’이라 할 만하고 ‘서울마당·서울뜨락’이라 할 수 있어요. 벼슬꾼 생각이 참 짧습니다.


  이곳에 깃든 〈한평책빵〉에 찾아갔습니다. ‘한 평 + 책 + 빵’인 마을책집이자 찻집입니다. 책을 놓은 자리는 한 뼘보다 조금 크되 나무그늘이 곁에 널찍해요. 서울에 깃든 마을책집 가운데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나무내음을 맡을 만한 곳은 없다시피 합니다. 이처럼 널찍하게 나무 곁에 앉고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다면 ‘하늘쉼터·하늘쉼뜰·하늘쉼밭’처럼 이름을 고치면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책집이 닿을 즈음 아슬아슬하게 닿았고, 책집지기님이 기꺼이 틈을 내주었습니다. 서울 둘레가 아닌 두멧시골에서 사는 보람을 모처럼 누립니다. 먼길을 달리며 그 책집은 어떤 숨빛일까 하고 그렸는데, 노을이 지며 어둠이 깔리는 하늘을 서울 녹번동 한복판에서 바라보며 마음을 쉽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불빛에 가리는 별빛이어도 어디에 얼마쯤 있을까 어림합니다. 큰길에서는 부릉부릉 끝없이 달릴 테지만 마을책집이 울타리가 되고 나무가 둘러싸기에 포근하지요.


  책을 놓을 자리는 한 뼘이면 됩니다. 글 한 쪽을 적어서 놓을 자리도 한 뼘이면 너끈합니다. 서로 손을 내밀면서 따스한 숨결을 나눌 자리도 한 뼘이면 됩니다. 우리는 한 뼘을 떨어져서 살아갈 사람이 아닌, 한 뼘을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어야 저마다 새롭게 빛나면서 하늘빛으로 물들 만하지 싶어요.


  서울시나 은평구에서 이곳 〈한평책빵〉 곁에 비가림터를 마련해 주면서 포도덩굴하고 으름덩굴이 타고 올라서 꽃빛하고 열매빛을 누리도록 이바지하면 좋겠어요. 목돈이 아닌 마음을 기울여 손길을 내밀면 서울도 잿빛 아닌 숲빛으로 차츰 거듭날 만합니다. 뭘 허물고 때려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래되어야 아름답지는 않습니다만, 오랜손길이 품은 살가운 빛살을 읽어내면서 아이들한테 살림자취를 물려줄 수 있어요. ‘부수고 짓기’는 새롭지(혁신) 않습니다. 가꾸고 돌보기에 새롭습니다. 아이는 풀밭을 뛰놀고 어른은 해바라기하며 쉬고, 푸름이는 꽃송이를 들여다보다가 나무를 타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꽃씨를 심고 나물을 돌보는 ‘하늘쉼뜰’로 나아간다면 저절로 마을빛이 피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하루’란 노래꽃을 썼어요. 이 노래꽃을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책 안쪽에 적어서 책집지기님한테 건넵니다. 노래꽃 한 자락을 품은 책을 장만하고 싶으면 이 책집에 시키시면 됩니다. 우표값을 살몃 얹어서.


ㅅㄴㄹ


《철학자의 음악서재》(최대환, 책밥상, 2020.10.23.)

《요정이 된 마녀 우파바루파》(안나마리아 기티 글·라우라 코르티니 그림/안진원 옮김, 서광사, 1999.1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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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돌이’와 ‘보물섬’ (2021.2.27.)

― 진주 〈형설서점〉



  얼마 앞서까지 순천서 진주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꽤 있었으나 어느새 잔뜩 줄어듭니다. 누리그물로 알아볼 적에는 ‘있다’고 뜨는 버스길이나, 막상 순천 버스나루에 닿고 보니 흰종이를 붙여놓았어요. 아, 알림판에 흰종이만 붙이면 끝인가? ‘순천-청주’하고 ‘순천-춘천’ 버스길은 죄 사라집니다. ‘순천-포항’도 곧 사라질 듯합니다. 기차나루로 건너가서 두 시간 남짓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부릉이(자가용)를 모는 분은 나라 곳곳에서 시외버스가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줄 모를 테지요.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으뜸어른(초등학교 교장)으로 꽃마무리(정년퇴직)를 했는데, 그때까지 시내버스·시외버스·전철을 탈 일이 없어서 길삯을 몰랐어요. 적잖은 벼슬꾼(공무원)이며 웃자리 일꾼은 길삯을 거의 모르고 살아가지요. 다들 부릉이 손잡이를 잡을 테니까요. 나라지기(대통령)만 길삯을 모르는 터전이 아니에요. 참 많은 이들이 수수길(대중교통)을 모르거나 등져요.


  진주에는 〈형설서점〉이며 여러 책집을 찾아가려고 옵니다. 저는 책집을 보고서 이웃마실을 갑니다. 책집이 있는 고장은 살기좋다고 여겨요. 책집을 품은 고장은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피어나려는 이야기가 흐르는 삶터라고 여겨요. 삶마다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지으려는 고장이라면 책집이 태어난다고 여겨요.


  책집이 없는 고장이라면 아이가 적어서 죽어가는 고장이기 앞서 일찌감치 죽어버린 고장이지 싶습니다. 책집을 돌아보는 길잡이(교사)하고 벼슬꾼이 없는 고장이라면 그들(교사·공무원)이 걸어온 길이 고장을 죽인 발걸음이었지 싶습니다.


  헌책집 〈형설서점〉 안쪽에 만화책 《보물섬》이 다섯 자락 있습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어쩜 이렇게 정갈하게 보고서 내놓았을까. “그렇게 깨끗한 《보물섬》은 보기 어렵지. 하나에 15만 원씩인데, 어느 분이 틈틈이 오셔서 두엇씩 사 가셨는데 이제 그만큼 남았네.” 우리는 오늘 새로 나오는 책도 챙겨서 읽고, 어릴 적에 읽고 사랑한 책을 되찾아서 읽기도 합니다. 오늘 다른 책을 한 자락도 안 구경하면 《보물섬》을 하나쯤 장만하려나 싶지만, 살살 쓰다듬고서 내려놓습니다. 언젠가 새로 만나겠지요. 어릴 적에도 《보물섬》은 돈있는 작은집에 놀러갔을 적에 보았습니다. 마을에 만화책 빌려주는 짐차가 올 적에 비로소 느긋이 빌려읽었고요.


  그때에도 못 사던 책을 오늘도 못 사네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다가 ‘오늘 새롭게 만나서 곁에 두는 책도 많잖니?’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해돌이를 다룬 반공만화를 보았거든요. 끔찍한 국민교육헌장을 되새기고, 소름돋는 반공독후감에 반공웅변이 떠오릅니다. 앞으로는 이런 바보짓이 이 땅에 발붙이지 않기를 빕니다.


ㅅㄴㄹ


《어두운 마당》(배봉규 글·그림, 한국안보교육협회 엮음, 형문종합교육개발, 1982.4.30.)

《육군문고 4호》(정훈감실, 육군본부, 1959.)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정인, 거름, 1985.6.20.)

《이곳에 살기 위하여》(소피 들로네·마린 뷔소니에르/권명희 옮김, 기파랑, 2006.6.12.)

《돼지 치는 법》(편집부, 부민문화사, 1964.5.25.)

《우리말의 뿌리》(서정범, 고려원, 1989.4.20.)

《국민학교 국민교육 헌장 풀이 5·6학년》(문교부, 1970.6.1.)

《소년소녀문장독본 4 글짓기교실》(박목월, 보진재, 1963.6.30.)

《시사》(이춘성 엮음, 내외문제연구소, 1968.12.1.)

《말꽃 타령》(김수업, 지식산업사, 2006.4.7.)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편집부, 진주프린트사, 1946.10.20.)

《고등학교 국사 하》(국사편찬위원회 1종도서 연구개발위원회, 문교부, 1982.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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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여섯 (2021.2.28.)

― 부산 〈온달서점〉



  술이 얼근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곳이어야 길손집이 있는 나라입니다. 술집 곁에 길손집을 몰아놓으니 엇비슷하게 물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한 살림집 한켠에 길손집이며 술집이며 옷집이며 밥집이며 책집이 나란히 있다면 이 나라가 좀 바뀌지 않을까요? 시끄러운 곳을 한쪽에 모으니 되레 지분거리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데리고 깃들 만한 길손집이 없다시피 해요. 아이하고 조용히 묵고, 아이가 가볍게 뛸 만한 마당이 있는 길손집이란 참 드뭅니다.


  지끈지끈한 머리로 길손집을 나서는데,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낯익은 소리가 골목을 울립니다. “아, 너로구나!” 우리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만나는 직박구리가 부산 광복동 골목에서 자라는 조그마한 나무에 앉았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노래하던 직박구리도 노래를 멈추고 저를 마주봅니다. 둘은 한동안 서로 보면서 그대로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눈짓으로 절을 하고서 보수동 쪽으로 걸어갑니다. 직박구리는 나뭇가지에 얌전히 있다가 다시 노래합니다.


  아침부터 일찍 여는 책집이 있고, 느긋하게 여는 책집이 있습니다. 바지런히 하루를 여는 〈온달서점〉에 들어갑니다. 온달지기님은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는 할아버지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너무 많이 들어와서 팔기 어려운 책이고요, 이 책은 가져오셔도 사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사 가는 사람이 없나? 이래 깨끗한데?” 한참 두 분이 이야기하고서 책값을 치러 드리고는 “저 할아버지가 여든여섯이랍니다. 저런 나이에도 골목마다 돌면서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십니다. 대단하지 않으십니까?”


  여든여섯이란 나이는 무엇을 할 만한 몸일까요? 우리 삶터는 여든여섯 살 할매나 할배한테 무엇을 바랄까요? 여든여섯 해를 살아내면서 몸에 아로새기고 마음에 익힌 슬기나 빛이나 숨결이나 손길을 귀여겨듣고서 새롭게 슬기로 삭이도록 주고받는 징검다리나 이음터가 있을까요?


  곰곰이 보면 어르신 말씀을 나눌 징검다리가 없다시피 한데, 어린이 노래를 나눌 이음터도 나란히 없다시피 합니다. 돌봐주어야만 하는 나이인 여든여섯이 아니요, 가르치기만 해야 하는 나이인 여덟이나 여섯이 아니에요. 함께 생각하고 같이 살림하고 나란히 놀고 노래하며 하루를 꿈꿀 한집안이자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책을 석 자락 셈합니다. “오늘 마수를 해주시네. 고맙게 일찍부터 마수를 합니다. 요새는 열두 시가 되도록 마수도 못하는 날이 흔합니다.” 겉에서 슥 훑다가 지나가면 책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한 발만 디뎌도 이 소리를 듣고요.


ㅅㄴㄹ


《진달래꽃》(김소월, 대원사, 1991.11.15.첫/2001.11.10.새판)

《韓國 俗談의 妙味》(김도환, 제일문화사, 1978.10.3.)

《슬램덩크 31》(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10.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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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albook 2022-05-0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참 좋아요.
설명도 그렇고요.

숲노래 2022-05-07 09:48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보수동을 가꾸는
아름다운 책집이기에
책도 반갑고
사진도 곱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