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풀꽃나무 이야기 (2021.7.10.)

― 익산 〈그림책방 씨앗〉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자라면서 쓰던 글은 바다하고 하늘을 바탕으로 골목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골목꽃하고 골목나무 이야기였습니다. 고흥이란 고장으로 옮기면서 쓰는 글은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기를 바라는 풀꽃나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열 살을 지날 즈음까지는 노래꽃(동시)을 신나게 썼고, 큰아이가 열두 살을 접어들 즈음 글꽃(동화)을 쓰자고 생각합니다. 말꽃(사전)을 쓰다가 온갖 말빛이 춤추면 가만히 보다가 문득 붓을 쥐어요. 노래꽃도 글꽃도 한달음에 쏟아집니다. 붓을 못 멈춰요. 팔목도 손목도 뻑적지근하도록 글물결이 일렁여요.


  인천에서 서울을 거쳐 기차로 익산으로 가는 길에 ‘빗방울’이라는 글꽃을 써냅니다. 익산 〈그림책방 씨앗〉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여러 어버이하고 함께 읽었어요. 쓰기로는 제 마음하고 눈하고 손을 거친 글꽃이지만, 혼자 써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곁님하고 아이들이 함께 짓는 살림자리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요, 온누리 이웃님이 저마다 사랑으로 하루를 짓는 숨결을 맞아들여서 여미는 이야기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페미니즘 책을 읽히면 서로 싸우자”는 뜻이 되기 쉽겠더군요. 페미니즘은 안 나빠요. 그러나 크게 빠진 대목이 있어요. 바로 살림입니다. 누가 살림을 맡아야 즐거울까요? 어떻게 살림을 지어야 사랑일까요? 아이는 살림을 어떻게 배우며 가꿔야 아름다울까요?


  아저씨는 ‘페미니즘’이 아닌 ‘살림을 사랑으로 노래하는 삶을 즐겨’야지 싶습니다. 어린씨하고 푸름씨는 아저씨랑 아줌마 곁에서 ‘오늘을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소꿉놀이를 살림놀이로 지피는 어질고 착하고 상냥하게 신나고 아름다워 사랑스러운 하루를 누려’야지 싶습니다. 아저씨란 몸으로 아이들하고 살림놀이(또는 소꿉놀이)를 하는 길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같은 책도 썼어요. 누가 더 하거나 덜 해도 좋을 집안일이 아닌, 아이어른이 함께 웃고 노래하며 살림순이에 살림돌이로 피어나면 즐겁더군요.


  오늘날 배움터(학교)는 삶터나 살림터가 아니지요. 배워서 길들이려는 곳인 나머지, 아이어른 모두 스스로 묻도록 안 가르치고 말아요. 우리 보금자리는 삶터나 살림터로 나아갈 적에 언제나 스스로 하루를 그리며 살아갈 노릇이니, 스스로 묻고 스스로 배워서 스스로 사랑하는 삶길이나 살림길로 피어나지 싶습니다.


  마을책집 〈그림책방 씨앗〉에서 그림책을 돌아봅니다. 아이어른이 살림빛을 함께 가꾸고 지으며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살핍니다. 재미난 그림책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사랑으로 살림하는 오늘을 노래하는 그림책이 즐거워요.


ㅅㄴㄹ


《난 삼백 살 먹은 떡갈나무야!》(제르다 뮐러/이원경 옮김, 비룡소, 2020.7.27.)

《일요일, 어느 멋진 날》(플뢰르 우리/김하연 옮김, 키위북스, 2021.7.1.)

《여름날, 바다에서》(파울라 카르보넬 글·마저리 푸르쉐 그림/성소희 옮김, 달리, 2020.6.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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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지켜보는 (2021.7.18.)

― 제주 〈우생당〉



  고흥으로 돌아가는 새벽이 밝습니다. 벼락하고 비하고 바람이 갈마들더니 조용하다 싶으면 구름이 걷혔고, 다시 벼락하고 비하고 바람이 갈마들다가 조용합니다. 자전거를 끌고 나올 적에는 길바닥이 말끔합니다. 14일에 제주에 닿아 자전거로 움직일 적뿐 아니라, 길손집에 깃들어 빨래를 마치고 거리를 거닐 적에 〈우생당〉 옆을 여러 판 스친 줄 새삼스레 되새기며 천천히 찾아갑니다. 몇 판이나 이 앞을 지나갔으나 책집 코앞에서 무슨 삽질이 한창인 터라, 삽질판에 안 다치도록 자전거로나 두 다리로나 멀찌감치 돌았으니 못 봤네 싶어요.


  예전에는 꽤 큼직하게 책손을 맞이한 〈우생당〉일 텐데, 오늘은 “since 1945”라는 글씨만 크구나 싶어요. 어느 고장에나 그 고장에서 책빛을 밝힌 터전이 있습니다. 이러한 곳 가운데 오늘까지 책살림을 펴는 책집은 드뭅니다. 사라지거나 수그러든 곳이 수두룩합니다. 〈우생당〉은 오랜 자취가 있지만, 이곳보다 오래지 않은 헌책집 〈책밭서점〉이 훨씬 넓고 깊게 책을 건사합니다. 더 오래되었기에 책을 더 많이 건사하거나 펼 수 있어야 하지는 않아요. 빈틈없이 건사하거나 눈부시게 다스려야 하지도 않아요. 〈우생당〉다운 이름이 도드라지도록 마을사람하고 나그네한테 빛줄기가 될 책을 차근차근 여미도록 추스르면 좋겠어요.


  해가 잘 드는 곳에는 책걸상을 놓고서 책꽂이를 옆으로 물리면 어떨까요. 책이 햇빛에 다치거든요. ‘베스트셀러’라 해도 똑같은 책을 곳곳에 놓기보다는 한켠에만 놓고서 귀퉁이에 곤두박힌 ‘제주 이야기책’을 한복판으로 끄집어내면 좋겠어요.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은 빽빽하게 꽂을수록 다치기 쉬워요. 어린 손님은 으레 어버이하고 함께 올 텐데, 아이를 이끄는 어버이는 책집까지 오며 힘이 많이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림책·어린이책 칸에 나즈막하고 긴 걸상을 놓으면, 아이도 어버이도 쉬면서 ‘책이 덜 다칠’ 만합니다.


  제가 한창 책시렁을 돌아보고 골마루를 살필 적에 책집 바깥에서 바퀴걸상(휠체어)에 앉은 분이 서성이면서 두리번거리셔요. 무슨 일인가 아리송했는데, 책값을 셈하면서 밖으로 나갈 적에 저를 부르시더군요.  “좀 도와주셔요.” “네? 아? 뒤에서 턱에 받치고 들면 되나요?” 미처 몰랐는데 책집으로 들어서는 턱이 꽤 높고 좁아서 바퀴걸상을 타는 분이 혼자서 들어갈 수 없네요. 그렇다고 손으로 똑똑 두들겨서 알리기에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며 지켜보는 눈길이 있어요. 오래된 만큼 사랑하고 아끼는 손길이 있어요. 이 모두 한결 느긋하면서 찬찬히 품는 마을책집으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꼬마 할머니의 비밀》(다카도노 호코 글·지바 지카코 그림/양미화 옮김, 논장, 2008.4.15.)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김두엽, 북로그컴퍼니, 2021.5.4.)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나가키 히데히로/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2019.8.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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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숲을 건사하는 손 (2021.7.14.)

― 제주 〈동림당〉



  아침 아홉 시에 고흥 녹동나루에서 배를 타려고 새벽 여섯 시부터 자전거를 탑니다. 제주에서 만날 이웃님한테 드릴 책이며 노래꽃판을 잔뜩 짊어지고 달리니 등판과 등짐은 땀으로 흐벅집니다. 뱃길은 한나절(4시간)입니다. 이동안 손님칸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기도 하고 노래꽃을 새로 씁니다. 글꽃(동화)도 한 자락 써요.


  배에서 내리고 보니 성산나루가 아닌 제주나루입니다. 내릴 곳을 엉뚱하게 알았으니, 해날(일요일) 돌아갈 배도 제주나루인 듯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손님이 배에서 다 내리니 제주나루 일꾼이 모두 자리를 비웁니다. 제주로 오면 다니려고 짠 그림이 모두 틀어집니다만, 제주 시내 책집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동림당〉을 찾아 달립니다. 걷거나 버스를 탈 적에는 몰랐는데 제주 시내에 오르내리막이 꽤 많군요. 인천이나 부산도 엇비슷합니다. 오래도록 이은 마을은 비탈을 그대로 살려 디딤돌을 놓아요. 이때에는 가파른 데도 많지만 집집마다 해바람을 알맞게 나눕니다. 처음부터 삽차로 크게 밀어 판판하게 때려지은 데는 높다란 잿빛집이 가득하고 자동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제주 〈동림당〉은 책집하고 살림숲(박물관)을 나란히 건사합니다. 묵은 책·새뜸(신문)·세간에서 제주 발자취를 조촐히 읽도록 선보입니다. 흔히 ‘박물관’이란 일본스러운 이름을 쓰지만, 이 이름으로는 어린이한테 우리 삶자취를 들려주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살림숲’이란 이름을 지어 보았어요. 우리가 살림을 가꾸면서 곁에 둔 연모나 연장을 그러모은 데를 가리키자면 ‘박물 + 관’이 아닌 ‘살림 + 숲’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집과 밥과 옷을 얻습니다. 바다숲이 있기에 비바람을 누리면서 싱그러이 살아갑니다. 별숲이 있기에 밤낮이 흐르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책숲이 있기에 오랜 슬기를 바탕으로 생각날개를 즐거이 펴는 길을 엽니다. 여기에 살림숲을 살그마니 놓아 우리 걸음걸이를 되새깁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마음이란 숲에 묻는 씨앗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나무숲·바다숲·별숲·책숲·살림숲 곁에 말숲·글숲을 놓을 만하지 싶어요. 우리가 쓰는 말은 숲처럼 푸르고 짙고 싱그러우면서 사랑스러울 적에 아름답다고 봅니다.


  숲에서 태어난 숨결로 살림을 지어요. 숲에서 피어난 숨빛으로 삶을 가꾸어요. 숲에서 자라난 말로 이야기를 펴요. 억지스레 나무를 때려박는들 숲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곁에 새가 있고, 새 곁에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 곁에 벌나비에 잠자리에 들짐승이 두루 어우러지기에 숲입니다. 모두이자 하나인 숲이 책으로 찾아옵니다.


ㅅㄴㄹ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자인하우스, 2005.8.17.)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노태우, 을유문화사, 1987.11.20.)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녹색평론사, 2009.10.29.)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허영자, 자유문학사, 1986.5.25.)

《사람 자연 신》(F.S.C.노드롭/안경숙 옮김, 대원사, 1989.9.1.)

《추억이 사는 연못》(이소영, 아동문예사, 1996.7.15.)

《중고생을 위한 도올 선생의 철학 강의》(김용옥, 통나무, 1986.12.15.)

《말하는 나무 의자와 두 사람의 이이다》(마쯔따니 미요꼬 글·쯔까사 오사무 그림/민영 옮김, 1996.6.1.)

《기억법》(이강백, 대한두뇌개발연구원, 1976./1984.8.25.고침판)

《고등학교 독서》(오세영·김영철, 천재교육, 1996.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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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2021.7.17.)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어제는 제주 애월읍 이웃님하고 밤 한 시까지 이야기했고, 오늘은 새벽에 하루 글거리를 서둘러 추스르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주제 넘은 서점〉에 들르고서 제주 시내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길잡이(내비게이션)를 보고서 달린 지는 요 제주마실이 처음이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요. 제가 보기엔 이쪽으로 가라는구나 싶어 ‘이쪽’으로 갔더니 길잡이 화살은 차츰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응? 이쪽이 아닌 요쪽이니?” “에? 이쪽이 아닌 그쪽이야?” 길이로 치자면 〈주제 넘은 서점〉부터 제주 시내 〈바라나시 책골목〉까지 고작 20킬로미터 안팎입니다. 제 다리로는 자전거로 한 시간이 안 될 길인데, 막상 이 길을 거의 네 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그만큼 샛길로 자꾸 빠졌고, 샛길로 빠진 김에 마을길이며 바닷길이며 멧길을 신나게 탔습니다. 제주책집을 자전거로 다니며 등짐은 가벼워지기는커녕 자꾸 묵직해만 갑니다. 이러다 보니 무릎하고 허벅지가 끙끙거려요. “넌 왜 이렇게 나(무릎·허벅지)를 힘들게 하니?” “잘못했어. 조금만 돌아가면 되나 봐. 조금만 더 달리고 쉴게.” “말은 그리 하면서 언제 쉬니?” “조금만 더 가고 쉬면 …….”


  하가에서 신엄을 갔다가 구엄을 지나 수산·장전으로, 상귀·하귀를 돌며 가문동으로, 동귀·외귀를 지나 이호테우에서 노형동으로, 이러다 도두 ·용담을 거쳐 하늘나루가 코앞에서 보이는 곳에서 한참 쉽니다. 용두암 바닷가를 지나 용연구름다리에 이르니 비로소 오늘 자전거길 끝이 보일 만합니다. 용담쉼터에 너럭바위가 있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낯을 씻은 뒤 벌렁 눕습니다.


  나무그늘에 눕다가 앉아서 ‘길지 않은 길을 얼마나 빙그르르 돌았는가’를 헤아립니다. 빙그르르 돌았다지만, 자전거가 있기에 한결 신나게 골골샅샅 누비면서 마을살림을 보고 구름밭을 누리고, 바닷바람에 땡볕을 머금었구나 싶습니다. 너럭바위를 끼고 한참 쉰 다음 일어납니다.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을 마시자고 여기며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천천히 갔는데 이레끝(주말)은 쉰다는 알림판을 봅니다. 오호라, 오늘이 흙날(토요일)이로군요. 이레끝은 누구나 쉴 만한 때라고 생각해요. 책집도 찻집도 쉬어야지요. 이제 오늘은 자전거는 그만 탈 테니, 〈바라나시 책골목〉 앞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허벅지랑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지난 닷새 동안 이고 지고 다닌 책 하나를 꺼내어 넉줄글을 씁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 제가 쓴 책을 으레 등짐에 얹어 챙깁니다. 지난 닷새 동안 짊어진 책을 오늘 비로소 내려놓습니다. 팔이나 붓으로뿐 아니라, 다리랑 등허리로 쓰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는 손으로 쓰고, 햇볕에 바닷바람으로 쓴 책 한 자락입니다.


ㅅㄴㄹ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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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답게 그리고 (2021.7.16.)

― 제주 〈그리고 서점〉



  애월 어린이를 앞에 두고서 제주에 여럿 있는 ‘폭포’란 무엇일까 하고 물어봅니다. “쏟아지는 물이요!” “‘쏟아지는 물’을 어떻게 줄여 볼 만할까?” “음, ‘쏟물’?” “네, ‘쏟물’이겠지요. 말은 이렇게 줄여요. 그런데 ‘쏟물’은 소리내기 좀 어렵지 않나요?” “네.” “우리말은 소리내기 어렵지 않아요. 옛날부터 쓰는 말은 모두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알아채고 소리내어 쓰도록 지었어요. 그러면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지요. ‘물’은 어떻게 엮은 낱말인가요?” “물이라면 ‘무 + ㄹ’?” “네. 그러면 ‘쏟물’은?” “어, 그러면 ‘쏠물’?” “맞아요. 오랜 옛날부터 우리가 스스로 가리키던 쏟아지는 물이란 ‘쏠’이에요.” “우와, 신기하다.” “이제 거꾸로 생각해 볼게요. ‘쏠’이라는 우리말이 ‘폭포’를 가리킨다고 알려주면 알기 쉽겠어요? 아마 외워야 할 테고, 외워도 이내 잊기 쉬워요. 그렇지만 ‘쏠’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이며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말뜻하고 말밑을 헤아려서 파고들면 외울 까닭이 없고, 되게 쉬우며 누구나 알아챌 만해요. “쏟아지는 물”을 줄여서 ‘쏟(쏘) + 물(ㄹ)’이거든요.” “네.” “어린씨한테 다른 낱말을 들어 볼게요. ‘쏘다’나 ‘쏘아붙이다’가 있어요. 벌이 쏘고 말을 쏘아붙인다고 해요. 총을 쏜다고도 하고요. 이 ‘쏘·쏟’은 세면서 빠르게 흐르는 결을 나타낸답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솟·소’도 있어요. ‘솟다·솟아오르다·샘솟다’ 같은 얼개로 나타나는데, 이처럼 말밑을 하나씩 짚으면 사람들이 예부터 어떻게 살면서 생각하고 말을 짓고 나누었는가를 알 만해요.”


  다른 하나를 들어 봅니다. “어린씨 여러분한테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지요?” “네! 맨날 시켜요!” “‘심부름”이란 뭘까요?” “시키는 일?” “네. 시킨다고 해서 심부름이에요. ‘시-’가 붙잖아요. 짐을 싣는다는 ‘싣다’나 힘들거나 괴롭다는 ‘시달리다’도 ‘시-’가 맞물려요. 곧 심부름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남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몸짓이에요. 이와 달리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 있어요. 뭘까요?” “음.” “‘일’이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에요. 오늘날 삶터(사회)에서는 ‘일’이 품는 밑뜻하고 동떨어져 버리고 말았는데, ‘일 + 다’를 생각하면 쉬워요. ‘일다·일어나다’는 물결이 일고 바람이 이는 길, 아직 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태어나거나 오르는 몸짓이랍니다. 그래서 ‘심부름’하고 달리 ‘일’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이루려는 길이에요.“


  말밑은 먹물붙이(학자) 노닥거림이 아닌 어린이 눈빛으로 살피고 찾고 느끼고 나누면서 생각을 스스로 북돋우는 말샘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서점〉이 깃든 애월에서 애월 어린이들 반짝이는 눈빛에 제 말샘도 빛났습니다.

















ㅅㄴㄹ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구본형, 휴머니스트, 2013.7.15.)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2021.6.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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