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들이 새롭게 (2021.5.13.)

― 서울 〈신고서점〉



  제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우리 집 아이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손에 책을 쥘 적에 “어느 해에 나왔는가”를 안 따집니다. “누가 썼는지”나 “어느 곳에서 펴냈는지”도 거의 안 봅니다. 그저 손에 쥔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읽으려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늘 어린이한테서 배워야 할 노릇이요, 책을 마주하는 눈빛도 어린이한테서 배울 일이라고 여겨요. 다만, 쥠새는 어른이 어린이한테 찬찬히 짚어 주어야겠지요. 책이며 종이가 안 다치도록 쥐고서 가볍게 넘기는 손길은 어린이가 어른한테서 배울 대목입니다.


  서울에 계신 이웃님이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서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서울에서는 버스·전철·자전거나 두 다리로만 다녀 버릇해서 자동차로 움직이자니 무척 낯선데, 생각보다 빠르군요. 열두 시 언저리에 달렸기에, 또 서울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인 터라 덜 막히지 싶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때를 어림하면서 골마루를 돌다가 《최선 컬러학습대백과》 열 자락을 봅니다. 묵은 책이지만 단출하게 담은 글·그림이 아이들한테 이바지하겠다고 느낍니다. 다만 1981년에 계몽사는 일본 책을 베끼고 훔쳐서 이 책을 엮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그분들(엮은이·펴낸이)은 이 민낯을 뉘우친 적 있을까요?


  오늘 바라보자면 “묵은 책”이나, 오늘을 잊고서 책으로만 보자면 “책이 태어나고 그무렵 사람들이 마주하던 살림새를 읽는 길잡이”입니다. 1978년에는 이러한 책을 즐기고 엮었구나 하고, 1987년에는 이런 책을 내고 읽었구나 하고, 1970년에는 이런 책을 주고받거나 책숲(도서관)에 건사했구나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뒷사람이 물려받습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도 돌고돌아서 헌책 한 자락으로 아이들이 이어받아요. 오늘 쓰는 글에 어떤 하루를 담으며 아이들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읽는 책으로 어떤 하루를 배워서 아이들한테 이어줄 만한지 되새깁니다.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 젊은 눈빛이 된 사람들한테 어떤 씨앗을 남기려는 글과 책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먼 앞날뿐 아니라 바로 오늘부터 안 즐겁고 안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글쓰기나 책읽기는 “눈치를 볼 일”이 아니되 “아이들을 볼 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를 비롯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읽을 글이요 책이라고 또렷이 깨달으면서 글줄과 책자락을 여미어야 비로소 어른이요 어버이라 하겠지요. 1991년에 나온 ‘노동소설’을 읽다가 쓸쓸히 덮습니다. ‘일하고 살림하는 목소리’가 아닌 ‘싸움하는 머리띠’만 넘실거렸군요.


ㅅㄴㄹ


《헤밍웨이 서한집》(칼로스 베이커 묶음/이지현 옮김, 예유사, 1981.11.10.)

《철강지대》(정화진, 풀빛, 1991.3.13.)

《韓國 歷代 名詩全書》(문헌편찬회·이병두 옮김, 문헌편찬회 출판부, 1959.2.15.)

《Reader's Digest 1977.3.》(Reader's Digest, 1977)

《Reader's Digest 1978.3.》(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6.》(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11.》(Reader's Digest, 1978)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창작과비평사, 2001.10.10.)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3.1.첫/1996.9.20.21벌)

《이단 종교 비판》(고든 알 루이스/김진홍 옮김,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1972.7.10.)

《週刊朝鮮 937호》(안병훈 엮음, 조선일보사, 1987.3.8.)

《BASEBALL 20호》(하일성 엮음, 인준미디어, 1997.11.1.)

《相對性原理》(제임즈 코울먼/박봉렬 감수, 현암사, 1970.9.25.)

《최신 컬러학습대백과 1∼10》(편집부, 계몽사, 1981.4.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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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빛 (2021.7.17.)

― 제주 〈주제 넘은 서점〉



  곽지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이하지만 바다를 보러 나가지는 않습니다. 오늘 자전거로 달릴 길을 어림하면서 어제 하루 제주에서 보낸 자취를 바지런히 갈무리합니다. 등짐은 아직 묵직합니다. 무게를 못 줄인 채 자전거에 앉아 땡볕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오늘은 하가마을을 거쳐 제주시까지 달릴 생각입니다.


  자동차가 안 다닐 만한 길을 찾아서 달리자니 어느새 오르막입니다. 그래요, 한라산을 바라보며 달리니 내리막 없이 영차영차 합니다. 훅훅 가쁘게 숨을 고르면서 땡볕 오르막을 넘고 다시 넘다가 바야흐로 〈주제 넘은 서점〉이 깃든 마을에 닿습니다. 그러나 책집을 못 찾고 더럭초등학교 앞으로 갔다가 못가를 돌았어요.


  틀림없이 이 둘레인데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집을 하나하나 보다가 아주 조그맣게 선 알림판을 봅니다. 옳거니, 수줍고도 조그맣게 붙인 글씨로구나.


  이곳 〈주제 넘은 서점〉은 아침책집입니다. 아침 여덟 시∼열두 시 사이에 열어요. 그 뒤로는 책집지기님이 다른 일을 보러 나가신다지요. 아침 열두 시에 닫기에 오늘은 아침에 쓸 글을 허둥지둥 매듭짓고서 달렸습니다. 책집 앞에서 땀을 들이고 손낯을 씻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에 땀내음을 말립니다. 다시 손낯을 씻고서 드디어 들어섭니다.


  살림집하고 책집이 맞붙은, 아니 살림집 한켠을 책집으로 꾸민, 포근하면서 멋스러운 책샘터로구나 싶습니다. 마을 한켠이나 골목 안쪽에 깃든 책집은 ‘쉼터’라면, 이곳처럼 여민 책집은 ‘샘터’라고 느낍니다. 책집지기님 손길이 닿은 책으로 가득한 마루하고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이제야 책집으로 품을 들여 마실을 하는 몸차림을 익히는 새날로 접어든다고 할 만합니다. 작은마을이며 배움터 둘레로 작은책집이 몇 군데씩 있던 지난날에는 책집마실을 생각한 사람이 드물었어요. 책집이 빠르게 사라지던 1990∼2010년 사이에도 굳이 책집마실을 하려는 분은 안 많았습니다. 이동안 숱한 마을책집은 조용히 버티며 책빛을 바라보았어요.


  누리책집이 엄청나게 늘고 판을 키운 오늘이 되고서야 비로소 손전화를 끄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마을책집으로 조용히 찾아가서 호젓이 하루를 누리며 등짐을 묵직하게 채우는 이웃님이 천천히 늘어납니다. 책집을 찾아가는 길은 “책만 찾아나서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책집이 깃든 마을을 새롭게 만나려는 걸음”입니다. 왜 이 마을에 이 같은 책집을 여는가를 몸으로 읽고, 왜 이곳에 이 책을 갖추는가를 마음으로 느껴, 책 한 자락을 사랑으로 읽는 숨결을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하려고 책집마실·책숲마실을 할 테지요. 이다음엔 더 일찍 찾아와야겠어요.


ㅅㄴㄹ


《안나는 고래래요》(다비트 칼리 글·소냐 보가예바 그림/최유진 옮김, 썬더키즈, 2020.7.1.)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2021.6.30.)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방》(히구치 유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1.3.15.)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밥 엑스타인/최세희 옮김, 현대문학, 2019.4.30.)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숲노래·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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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1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제 넘은 서점
위트있는 중의법
너무 예쁘네요
습기와 소금기에 책이 걱정되긴 하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숲노래 2021-08-16 10:50   좋아요 2 | URL
아침 일찍 열고 12시에 닫기에
부지런히 나들이해야 하는 곳인데
찾아가 보시면
깜짝 놀랄 만큼 곱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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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길잡이 (2021.6.27.)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숲이란 늑대·곰·범 곁에 토끼·사슴·너구리가 나란히 있는 곳입니다. 숲에서는 모든 들짐승이 저마다 보금자리를 틀고서 어우러집니다. 마을은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데, 어느 모로 보면 마을은 “사람이 갇힌 곳”이 되기 쉬워요. 우두머리가 서서 둘레를 이끈다고 할 적에는 “스스로 짓는 삶이 아닌, 남을 따르는 굴레”가 되거든요.


  어버이는 아이를 이끌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보며 사랑으로 노래하는 살림을 아이하고 함께 누립니다. ‘이끈다’고 할 적에는 이른바 ‘기둥(가부장)’입니다. 기둥이 있어 집이 튼튼하다고도 하지만, 집이 제대로 튼튼하려면 ‘기둥 하나’가 아닌 ‘모든 기둥’이어야 해요. 집안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면서 하나인 기둥일 적에 비로소 사랑이에요.


  숲에서는 으뜸이나 꼭두가 없습니다. 사람은 으레 범이나 사자를 으뜸짐승으로 삼지만, 짐승 사이에서는 으뜸이나 꼭두가 서야 할 까닭이 없어요. 모든 짐승은 저마다 다르면서 하나인 기둥입니다. 풀꽃나무도 매한가지예요. 기둥이 될 나무나 풀꽃은 따로 없습니다. 모든 나무하고 풀꽃이 저마다 다르게 기둥이에요.


  서울 양천 푸름이하고 마을책집 〈나무 곁에 서서〉에서 〈늑대길잡이WolfWalkers〉를 함께 보았습니다. 시골집에서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볼 적하고 또 다르게 마음으로 스미는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집니다. 글꾸러미에 이 이야기를 옮깁니다.


  사람은 숲넋이던 무렵에는 누구나 모든 목숨붙이하고 이웃이자 동무였지만, 마을이라는 굴레를 세워서 울타리를 쌓고부터 모든 목숨붙이를 등지면서 싸우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마을 = 울타리’요, ‘숲 = 품’이로구나 싶습니다. 마을에서 안 그치고 고을이 되고 고장이 되다가 나라로 번지니, 어느새 숲말(말다운 말)을 잊거나 잃습니다. 먹물글(지식·이론)을 세웁니다. 꾸미는 겉글(문학·예술)이 불거지고, 차츰 사랑이며 살림하고 멀어집니다. 남이 아닌 스스로 굴레를 쓰고서 삶이 아닌 죽음으로 갑니다.


  갈무리해 봅니다. “학교(졸업장)·종교(이교도)·사회(자격)·집단(교복·제복)·군대(지식·이론)·단체(노예) = 덩어리·모둠”입니다. “나(참)·스스로(사랑)·숲(길)·들(온)·바람(빛)·바다(숨) = 하나·하늘”입니다. 굴레(사회·학교)에 깃들지 않을 뜻보다는, 사랑으로 가는 슬기로운 살림을 품는 숲이 되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늑대길잡이WolfWalkers〉는 늑대하고 숲하고 마을하고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어디에 있는가를 푸름이 눈높이에서 밝혀 주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나무 정령 톰티》(니나 블라존 글·카린 킨더만 그림/이명아 옮김, 여유당, 2021.6.10.)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사이 몽고메리 글·레베카 그린 그림/이보미 옮김, 더숲, 2019.9.9.)

《삶의 기술 3 : 플라스틱 프리》(크리킨디센터, 교육공동체벗, 2018.8.1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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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꽃 (2021.7.8.)

― 인천 〈시와 예술〉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1991년에 동무가 물어요. “야, 그 시집 뭐야? 나도 빌려 주라.” “응? 그런데 시험문제에는 안 나오는 시집인데?” “그래? 그런데 넌 왜 읽어?” “시를 시험문제 때문에 읽냐. 읽어서 좋으니까 읽지.” “넌 태평하네. 시험문제에 안 나오는 책도 읽고.” “뭐가 태평해?” “넌 시험 잘 보니까 걱정이 없어서 아무 책이나 읽잖아?” “아무 책이라니? 아름다운 책이니 읽지.” “관둬라. 말이 안 통하네.” “네가 더 말이 안 되지.”


  이제 와 돌아보면 셈겨룸(시험)에 허덕이는데 ‘교과서에도 시험문제에도 안 나오는 시를 담은 책’을 읽는 사람이 엉터리예요. 그렇지만 배움책이나 물음종이에서 다루는 글은 하나같이 따분하고, 삶을 등돌렸다고 느꼈습니다. 셈겨룸을 잘 해내야 하더라도 마음을 빼앗길 생각이 없습니다. 둘레에서 바라는 셈(점수)을 잘 받도록 종이를 채우기와,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다스리기는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얼핏 스치면서 본다면 〈시와 예술〉은 조그맣습니다. 얼핏 스치더라도 발걸음을 멈추고서 눈빛을 밝힌다면 〈시와 예술〉은 조촐합니다. 살짝 두리번거린다면 마을책집에서 고를 책이 몇 없습니다. 살며시 마음을 기울여 하나하나 본다면 마을책집에 들를 적마다 한 자락 두 자락씩 장만하는 책으로 우리 살림집이 피어납니다.


  책을 더 손쉽고 싸게 사고 싶다면 누리책집이나 큰책집을 사귀면 됩니다. 책을 그저 즐겁게 노래하면서 사랑하고 싶다면 마을책집으로 이따금 마실하거나 틈틈이 나들이하면서 바람을 쐬면 됩니다.


  책은 얼마나 읽어야 할까요? 우리 마음그릇만큼 읽으면 돼요. 마음그릇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마구 읽다가는 그릇이 깨집니다. 마음그릇을 가꾸는 책이 아닌, 마음그릇 겉모습을 반지르르하게 꾸미는 책만 쥔다면 겉만 멀쩡할 뿐 속은 곪아들기 마련입니다. 책은 늘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헤아리며 읽을 노릇이지 싶어요.


  이 땅에서는 예부터 노래가 흘렀습니다. ‘시(詩)’가 아닌 ‘노래’입니다. 누구나 노래했고, 누구나 노래를 즐겼어요. 이러던 어느 무렵부터 노래가 억눌리고 ‘시’조차 아닌 ‘詩’가 우쭐거립니다. 배움책이나 물음종이에서 다루는 ‘詩’는 으레 삶하고 등진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습니다. 이름나다는 곳에서 펴내는 시집과 문학상을 받은 시집도 쌀섬을 갉는 생쥐 같습니다.


  오늘 이곳을 노래하면 될 텐데요. 보임틀(텔레비전)을 뒤덮은 뻔한 가락이 아닌, 일노래하고 놀이노래하고 살림노래이면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사랑하면 될 텐데요. 살부빔질이 아닌 스스로 아이랑 어른이 되는 슬기롭고 숲빛인 사랑이면 돼요.


ㅅㄴㄹ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박라연, 창비, 2018.4.13.)

《그대의 하늘길》(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7.10.10.)

《죽음의 자서전》(김혜순, 문학실험실, 2016.5.24.)

《reminiscence》(Jung A Kim, KEHER, 20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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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사랑하나요 (2021.7.29.)

― 부산 〈책과 아이들〉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스스로 ‘사랑’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입이나 글로 곧잘 ‘사랑’을 읊더라도 ‘참사랑’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입에 발린 겉사랑’에 맴돌지 싶었어요. 그래서 2008년에 큰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길을 걷기 앞서까지 제가 마음으로 담은 사랑은 ‘책사랑·책집사랑’하고 ‘말사랑·숲사랑’입니다.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짓지 않을 적에는 사랑이 아니더군요.


  어린이책은 어린이일 적에는 거의 못 읽거나 안 읽었습니다. 국민학교란 이름이던 곳을 1982∼87년 사이에 다닐 무렵에는 심부름하고 짐(숙제)이 늘 넘쳤고, 틈나면 동무하고 뛰놀았고, 소꿉돈을 모아 그림꽃책(만화책)을 사읽었어요. 그때에는 알뜰한 어린이책이 드물기도 했는데, 싸움판(군대)을 마치고 앞길을 새로 그리던 1998년 1월 4일 인천 배다리 헌책집에서 《몽실 언니》를 처음으로 읽던 날 비로소 어린이책에 눈을 떴고, 이날부터 쌈짓돈을 털어 ‘어린이일 적에는 못 읽은 어린이책’을 하나씩 챙겨 읽었어요.


  둘레에서 그러더군요. “애 낳았냐?” 하고. 짝꿍조차 없는데 아이는 무슨 아이가 있겠어요. 어른만 읽는 책(인문책)은 허울이 많고 일본스런 한자말을 고스란히 쓰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굳이 되읽을 마음이 안 들지만, 아름다운 어린이책은 언제나 새롭게 되읽으면서 마음이 찌르르 울린다고 느껴요.


  부산에서 1997년부터 어린이책밭을 일군 〈책과 아이들〉을 2021년 여름에 이르러 비로소 찾아갑니다. 인천·서울·충주에서 살던 예전에도 멀었지만, 고흥에서 사는 오늘도 멀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걸음했는데, 길턱을 넘어서며 책시렁하고 책마루를 바라보자마자 “아, 이곳은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책샘터이자 책쉼터로구나” 싶어요. 책집지기 손길이 구석구석 알뜰살뜰 스며서 가볍게 빛납니다.


  아이한테는 책을 많이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무 종이책을 안 읽혀도 될 만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때를 느끼면 제대로 찾아서 챙겨 읽기 마련입니다. 아이는 적어도 열두 살까지, 때로는 스무 살이나 서른 살까지, 때로는 마흔이나 쉰 살에 이르도록 실컷 뛰놀면서 노래하고 춤눌 노릇이지 싶어요. 책을 더 많이 갖춘 책집도 좋습니다만, 아이들이 뒹굴고 떠들고 소리치고 뛰고 달릴 마당이 있는 책집이 늘면 한결 좋겠어요. 아이들이 책으로 나무를 만나기보다, 맨손으로 나무를 타고 오르며 새랑 벌나비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나무를 사귀면 좋겠어요.


  아직 부산시에서 어린이책집 〈책과 아이들〉한테 보람(상)을 안 주었지 싶은데, 뭐 감투꾼(공무원) 스스로 책집마실을 안 하면 책집이 어떤 샘터이자 쉼터요 놀이터인 줄 모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바로 알아보면서 눈빛을 반짝입니다.


ㅅㄴㄹ


《길모퉁이의 짐할아버지》(엘리너 파전/장숙자 옮김, 유진, 2001.5.1.)

《불구두와 바람샌들》(우르줄라 뵐펠/장숙자 옮김, 유진, 2000.12.20.)

《반디 아빠의 이상한 하루》(손연자, 푸른책들, 2001.11.10.)

《에밀, 위대한 문어》(토미 웅거러/김영진 옮김, 비룡소, 2021.3.19.)

《와그르르 와그르르》(네지메 쇼이치 글·고마쓰 신야 그림/고향옥 옮김, 달리, 2019.5.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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