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고니못 (2021.5.12.)

― 서울 〈호수책장〉



  시골사람한테 서울마실은 가장 가깝습니다.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오가는 길은 서울을 다녀오는 길보다 단출하며 길삯마저 적게 들어요. 곰곰이 보면 시골에서도 읍내나 면내를 잇는 길이 뻥뻥 뚫리고, 시골에서 구경터(관광지)로 삼는 곳도 길이 잘 뚫립니다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시골버스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나라가 모든 사람을 온통 서울바라기로 몰아붙인 지 꽤 깁니다. 얼추 즈믄 해가 넘을 테지요.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로 알맞게 나누던 작은 울타리일 적에는 곳곳이 사이좋게 어울릴 만했다면, 한나라로 삼는다며 크게 치고받으면서 이웃을 무너뜨릴 적에는 서울 한 곳만 키우려 했어요.


  굳이 한나라여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라가 없어도 될 만합니다.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없이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노래할 적에 참다이 아름다우면서 즐겁다고 느껴요.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나오기에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이 불거져요.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하는 자리에는 깍두기가 없습니다.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기에 외려 하나가 되고, 하나로 묶어세우면서 되레 갈기갈기 쪼개지면서 미워하고 시샘하고 억누른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논밭이었고, 새마을로 가꾸면서 높다란 집이 섰고, 이제는 집보다 우람하게 자라난 나무가 퍽 많은 서울 강서에 〈호수책장〉이 있습니다. 못에는 고니랑 오리가 노닙니다. 못가에서는 온갖 숲짐승이 이웃이 되어 목을 축입니다. 예부터 고니나 한새(황새)나 오리가 내려앉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여겼습니다. ‘오리나무’는 오리를 비롯해 사람이 알콩달콩 지내던 터에서 잘 자랍니다.


  마을책집은 둘레 여러 배움터 곁에 있습니다. 배움터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다리를 쉬고 눈을 밝히면서 깃들 샘터입니다. 어린이는 어린 눈빛으로, 푸름이는 푸른 눈망울로, 어른은 철드는 눈길로 손에 쥘 그림책이에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면서 새롭게 그림책을 마음에 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한가람이 흐르는데, 서울 곳곳에 고니못에 오리못에 한새못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그늘에 풀밭에 꽃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지 마시오’ 하고 울타리를 치는 데가 아닌, ‘맨발로 들어가시오’ 하고 활짝 여는 빈터랑 쉼터가 늘면 좋겠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집은 마을이웃한테 이런 이야기를 속삭이고 이런 생각을 펴겠지요. 햇살이며 햇빛이며 햇볕이 쏟아지는 〈호수책장〉 길턱에는 매미 허물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어느 나무 밑에서 꿈꾸다가 날개를 달고서 노래하는 몸으로 피어나고는, 이곳에서 우리 손길을 기다릴까요?


ㅅㄴㄹ


《내가 지구별에 온 날》(나비연, 있는그대로, 2020.11.11.)

《해녀 비바리와 고냉이》(오은미, 오울, 2019.11.30.)

《연필》(김혜은, 향, 2021.4.30.)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박신영, 사계절, 2020.5.15.)

《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안은영, 천개의바람, 2016.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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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들어와 보셔요 (2021.5.11.)

― 인천 〈북극서점〉



  그저 길에 서면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몰라 헤맵니다. 자동차가 시끄럽고, 잿빛집이 해바람을 가리며, 땅바닥은 풀밭이나 흙이 아닌 딱딱한 잿빛돌이나 까만돌이거든요. 그저 숲에 서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맨 적이 없습니다. 숲에서라면 여기에 머물러도 좋고, 봉우리나 등성이 쪽으로 가도 좋으며, 빙글빙글 돌아도 좋아요. 푸르게 우거지는 곳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어디에나 드러눕습니다.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갈 적마다 책집을 찾아갑니다. 어느 고장이든 사뿐히 찾아가면서 그곳에 깃든 마을책집으로 걸어갑니다. 마을책집이 없는 고장은 어쩐지 쌀쌀맞습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고장은 그곳 이웃님한테 “요 가까이에 그 책집 있는데 가 보셨나요?” 하고 여쭙니다.


  마을책집에는 책을 열이나 스물씩 한꺼번에 사려고 찾아가지 않습니다. 둘러보다가 맞춤한 책이 없으면 꾸벅 절을 하고 돌아나오면 되고, 둘러보다가 눈에 뜨이는 책이 있으면 한두 자락을 집으면 됩니다. 길가에서 보면 모를 만한 마을책집입니다. 들어와 보면 시끌시끌한 바깥소리를 고스란히 막고서 큰고장 한복판에서 ‘종이숲’을 이룬 풋풋한 내음을 누리는 쉼터입니다.


  슥 지나치기만 하면 몰라요. 모두 내려놓고서 골목을 사뿐히 걸어 보셔요. 턱을 넘지 않으면 모르지요. 무엇을 바란다는 생각을 지우고서 가만히 열고서 넘어요. 인천 부평에 있는 〈북극서점〉으로 찾아가는 5월 첫무렵 햇볕이 뜨겁습니다. 굴포천에는 푸나무가 우거집니다. 고맙게도 푸나무가 마음껏 우거져도 그대로 두는군요. 뜰지기(정원사)를 부려서 매만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람 손길을 안 받고서 짙푸르게 피어나기에 숲이거든요. 마을책집이란 마을지기인 책집지기가 하나씩 헤아려서 건사한 책으로 꾸민 종이숲입니다. 이 종이숲에서는 ‘왜 이 책을 골라서 이렇게 두셨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두 손에 종이내음을 묻힙니다.


  더 좋거나 훌륭한 책을 만나러 마을책집에 가지 않아요. 마을에서 푸르게 피어나는 길에 동무할 책을 새롭게 마주하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더 빨리 읽거나 더 많이 읽으려고 마을책집에 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피면서 스스로 빛날 적에 즐겁게 웃고 노래할 만한가를 돌아보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푸른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푸른빛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책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마을빛하고 책빛을 읽을 길이 없습니다. 걸어갑니다. 혼자서도 걷고, 동무랑 나즈막히 수다를 펴면서 걷습니다.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고, 바구니에 책 몇 자락을 담아서 풀내음이 싱그러운 냇가에 가서 풀밭에 폭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ㅅㄴㄹ


《Big bird's day on the farm》(Cathi Rosenberg-Turow 글·Maggie Swanson 그림, Golden Books, 1985)

《플란더즈의 개》(위다/송숙영 옮김, 삼신, 1986.9.25.)

- ‘딱따구리도서관 세계명작’ 몰래책

《어린이세계 297호》(강인덕 엮음, 극동문제연구소, 1989.9.1.)

《새의 언어》(데이비드 앨런 시블리/김율희 옮김, 윌북, 2021.4.5.)

《der Maulwurf und der kleine Schneemann》(Zdenek Miler, leiv Leipziger Kinderbuch, 2016/2019)

《Der Maulwurf im Fruehling》(Hana Doskocilova 글·Zdenek Miler 그림, leiv Leipziger Kinderbuch, 2007/2018)

《스스스스스》(슬로보트 글·방새미 그림, 북극서점, 2020.7.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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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이 태어나 마을이 피어난다 (2021.4.23.)

― 포항 〈달팽이책방〉



  아침에 포항에 깃들어 책집마실을 하다가 어찌해야 싶어 한참 헤맸습니다. 오래오래 곁에 두던 빛꽃눈(사진기 렌즈)이 숨을 거두었거든요. 이 빛꽃눈이 해롱거리는 줄 진작 알았으나 더 손질을 맡기지 않았어요. 스무 해란 나날을 함께하며 손질을 석 벌 맡겼으니 이제는 쉴 때일 테지요. 마침 포항에 빛꽃집(사진가게)이 있습니다. 웃돈을 치러 빛꽃눈을 새로 장만합니다. 살림돈을 허느라 후줄근하지만 써야 할 곳에 즐겁게 쓰고서 다시 차곡차곡 벌면 됩니다.


  닳고 낡아 맨들맨들한 빛꽃눈은 등짐에 깊숙이 넣습니다. 새 빛꽃눈을 쓰다듬으면서 〈달팽이책방〉으로 갑니다. 기찻길 기스락에 ‘만물수퍼마켓’이 그대로입니다. 〈달팽이〉로 걸어가는 길에 새로 들어선 가게를 곳곳에서 봅니다. 이제 〈달팽이〉 앞에 섭니다. 노랫가락이 가볍게 흐르고 책손이며 찻손이 꾸준히 드나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마을이 달라진다는 옛말이 있는데, 책집이 태어나면 마을이 피어난다는 새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뛰놀기에 마을이 빛난다면, 책집이 불을 밝히기에 마을이 사랑스럽지 싶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마을이 무르익는다면, 책집이 열 해 스무 해를 뿌리내리기에 마을이 아름답지 싶어요.


  요 몇 해 사이에 미처 찾아가지 못한 대구 〈대륙서점〉이 지난 2019년 6월 19일에 닫은 줄 뒤늦게 알았어요. 일흔 해를 이은 마을책집을 닫는 마음이란 어떠할까요. 마을에서 찾지 않기에 마을책집이 닫는다고도 하지만, 이보다는 마을일꾼이어야 할 사람(공무원·교사·시장·군수·의원)이 스스로 두 다리로 거닐며 마을책집을 찾지 않은 탓이 크지 싶습니다. 벼슬자리에 선 이들한테 으레 씽씽이(자가용)를 내주지만, 이제는 씽씽이 아닌 ‘마을책집에 가서 책을 사서 읽도록’ 해야지 싶어요. 마을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마을가게에서 살림을 장만하며, 벼슬꾼 스스로 마을빛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대수롭습니다. 지은이가 손수 지은 살림꽃을 아로새긴 꾸러미가 책이기에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단합니다. 지은이가 손수 살아내는 오늘꽃을 갈무리한 꾸러미가 책이라서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글·그림·빛꽃으로 그러모아 꾸러미로 엮은 책이란, 언제나 사랑으로 어질며 상냥히 슬기를 담아낸 노랫가락이기에 대수로우면서 대단합니다. 혼자 움켜쥐려는 앎빛이 아닌, 이웃하고 나눌 앎빛을 그리면서 이야기로 모두 풀어내어 값싸게 익히고 즐기도록 짓는 책입니다.


  마을을 사랑하기에 마을 한켠에 책집을 열어요. 마을 이웃 스스로 마을빛이 되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하루를 밝히도록 북돋우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책집을 엽니다. 달팽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요. 달팽이다운 날갯짓으로 눈부십니다.


ㅅㄴㄹ


《누가 시를 읽는가》(프레드 사사키·돈 셰어 엮음/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2019.3.25.)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히읗, 히읗, 2021.1.19.)

《보이지 않는 잉크》(토니 모리슨/이다희 옮김, 바다출판사, 2021.1.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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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예순다섯 해 (2021.3.4.)

― 춘천 〈명문서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그 고장에 책집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그 고장에서 가까이 마실할 책집을 헤아립니다. 헌책집이든 새책집이든 어떤 책집이 그 고장에 깃드는가를 살펴요. 그 고장 책집으로 마실할 적에는 으레 걷습니다. 제 삶자리에서 그 고장까지 버스에 기차를 갈아타면서 돌고돈 끝에 비로소 하늘숨을 쐬는 나루(터미널·역)부터 천천히 걸어요. 이때에 큰길로 잘 안 걷습니다. 일부러 골목이나 샛길로 돌아요. 5∼10분이면 갈 곳을 30분을 들여서 거닐고, 20분쯤 걸어갈 만한 길을 애써 1시간을 들여서 빙 돕니다.


  책집 한 곳을 둘러싼 마을을 헤아립니다. 마을에서 책집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느낍니다. 마을에 풀꽃나무가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살펴요. 하늘을 찌를 듯이 잿빛집을 높이는 마을인지, 나즈막한 골목집마다 마당이며 꽃밭을 가꾸면서 꽃그릇을 길가에 내놓고서 짙푸르게 숲빛을 품으려고 하는 마을인지 둘러봅니다.


  꽃그릇 하나 없거나 마당나무 한 그루 없는 마을이라면, 이곳 이웃은 두 손에 책을 쥘 말미를 내기 어렵구나 싶습니다. 들꽃이 한들거리고 철 따라 온갖 나무가 가벼이 춤추는 마을이라면, 이곳 이웃은 문득 책 한 자락 손에 쥐고서 삶을 곰곰이 새길 줄 아는 어질며 상냥한 숨빛이로구나 싶어요.


  2021년까지 예순다섯 해를 헌책집지기로 살림을 이은 〈명문서점〉에 들어섭니다. 춘천에 드문드문 마실한 지 열대여섯 해이지만 막상 〈명문서점〉까지 찾아들지 못했어요. 가까이 있던 〈경춘서점〉에 먼저 들렀다가 주머니가 다 털렸거든요. 〈경춘서점〉에서 주머니가 다 털린 그날 밤 생각하지요. ‘이다음에 춘천에 오면 〈명문〉부터 들러야 두 곳 모두 들르겠지’ 하고요.


  두 마을책집은 춘천에서 매우 오래도록 책내음을 퍼뜨렸습니다. 〈경춘〉은 이제 책집을 접었습니다만, 〈명문〉 할머니는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책을 거느려요. 예순다섯 나이가 아닌 ‘예순다섯 해 책길’을 춘천시나 강원도나 이 나라는 얼마나 헤아릴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책살림 한길을 걸은 지기님 아닐까요? 춘천은 〈명문〉 하나만으로도 온나라에 으뜸 책고을로 이름을 펼 만하지 않을까요? 돈벌이에만 눈먼 ‘중국사람거리(차이나타운)’를 때려짓지 말고, 수수하면서 곱게 빛나는 꽃봉오리 같은 마을책집을 눈여겨보면 좋겠습니다.


  봄날에도 흰눈이 푸짐푸짐 쌓인 춘천에 마실한 오늘, 봄빛을 담은 책을 만납니다. 책에 앉은 더께는 착착 닦아내면 됩니다. 묵은 만큼 이야기가 빛나고, 오랜 만큼 새롭게 캐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ㅅㄴㄹ


《하늘의 절반》(클로디 브로이엘/김주영 옮김, 동녘, 1985.5.30.)

《삐아제의 認知發達論》(B.J.완스워즈/정태위 옮김, 배영사, 1976.1.10.)

《테니스 룰 핸드북》(久保圭之助/장원 옮김, 창작사, 1974.10.15.)

《내가 마지막 본 파리》(피츠제럴드/김량식 옮김, 문공사, 1982.3.1.)

《世界의 名作 29 황금의 손길 外》(조운제 옮김, 중앙일보, 1977.4.10.)

《빛과 사랑을 찾아서》(三浦綾子/백승인 옮김, 설우사, 1976.10.30.)

《핵심 영어 단어장》(편집부, 시사문화사, 1984.1.25.)

《알기 쉬운 월별농사기술》(이효근, 마을문고본부, 1975.12.10.)

《농촌극 입문》(하유상, 마을문고본부, 1976.9.26.)

《미네르바 22 소년과 물고기》(막스 벨쥬이스/편집부 옮김, 한국프라임, 1998.)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하》(미하일 불가꼬프/박형규 옮김, 한길사, 1991.9.25.)

《韓國近代人物의 解明》(이이화, 학민사, 1985.12.20.)

《북한 논리퀴즈》(위형복 엮음·이영식 그림, 다다미디어, 1994.7.5.)

《自我槪念과 敎育》(W.W.퍼어키/안범희 옮김, 문음사, 1985.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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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손바닥에 (2021.3.13.)

― 구례 〈섬진강 책사랑방〉



  책집은 크다고 해서 책을 고루 갖추거나 많이 들이지 않습니다. 책집지기 눈썰미하고 손길에 따라서 갖추거나 들여요. 책집지기로서 이 책도 아름답고 저 책도 사랑스럽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차곡차곡 갈무리하려 합니다. 자주 팔려서 읽히는 책이라면 더 자주, 어쩌다 팔릴는지라도 책손이 알아보아 주기를 바라는 책을 돋보이는 자리에 가만히 놓습니다.


  저는 부릉이(자동차)를 건사하지 않습니다. 부릉이를 몰 수 있다는 종이(운전면허증)조차 안 땁니다. 저 같은 사람이 더러 있을 테지만, 오늘날에는 ‘부릉이를 모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오늘날에는 시골집에서 살며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고 ‘잿빛집(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천만이 봤다는 영화를 안 보기 일쑤요, 백만이 읽었다는 책을 안 읽기 일쑤입니다.


  천만 영화나 백만 책이 안 나쁠 테지만, 만 사람이 즈믄(1000) 가지 영화를 즐기고, 만 사람이 온(100) 가지 책을 즐기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나라 곳곳 마을책집이 즈믄이라면, 이 즈믄 곳에 즈믄 가지로 다른 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내로라하는 책이 아니라, 마을을 사랑하고 아이랑 신나게 노는 아름다운 마음을 들려주는 저마다 다른 책이 저마다 다른 손길을 타면서 수수하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옷을 장만하려고 순천마실을 나오면 으레 순천책집을 들릅니다. 오늘은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구례로 갑니다. 달책 〈전라도닷컴〉에서 〈섬진강 책사랑방〉 이야기를 읽었어요. 부산 〈대우서점〉 지기님이 구례로 책살림을 옮기셨더군요.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큰아이는 집에서 봄꽃이랑 놉니다. 작은아이는 마실길에 봄꽃을 만납니다. 우리 집에서 보는 봄꽃을 섬진강 둘레에서 쓰다듬고, 우리 집에서는 못 보는 봄꽃을 책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냇바람을 마시면서 어루만집니다. 예전에 길손집(여관)이던 곳을 헌책집이자 책찻집으로 바꾼 〈섬진강 책사랑방〉은 책으로 마시는 바람을 두 갈래로 보여줍니다. 코앞에 있는 섬진강이랑 가볍게 등진 지리산입니다.


  모든 냇물은 멧골에서 비롯하고, 숲은 멧골을 품어요. 책이 되어 주는 나무는 아름드리숲을 이루면서 멧골에서 솟는 샘물을 맑게 보듬고요. 모든 책은 삶이자 숲입니다. 모든 책은 살림이자 사랑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냇가에 앉거나 멧길을 타 봐요. 냇바람하고 멧바람이 섞인 숨결을 품은 책을 손에 쥐고서 노래해요. 노래를 부르다가 책을 가볍게 내려놓고서 아이랑 뜀박질하고 놀아요. 노래하는 숲이 책이 되고, 놀이하는 사람이 책을 쓰고, 이 모두를 사랑하기에 책집이 됩니다.


ㅅㄴㄹ


《여류보도사진가 마가레트 버크-화이트》(장양환 엮음, 해뜸, 1988.7.17.)

《오늘의 藝術》(岡本太郞/김창협 옮김, 태화출판사, 1981.6.5.)

《The Music Hour, third book》(Osbourne McConathy·W.Otto Miessner·Edward Bailey Birge·Mabel E.Bray·Shirley Kite, Silvey Burdett com, 1929/1937)

《꼬마 율리시스》(윌리엄 사로얀/윤종모 옮김, 고려원, 1990.1.15.)

《自轉과 公轉》(성내운, 대한교육연합회, 1976.1.1.)

《實錄阿片戰爭》(진순신/신정철 옮김, 박영사, 1975.12.15.)

《하늘을 나는 장화》(마르셀 에메/오생근 옮김, 과학과인간사, 1978.9.5.)

《조스》(P.벤칠리/김진욱 옮김, 마당, 1983.7.15.)

《너를 부른다》(이원수, 창작과비평사, 1979.4.25.)

《글짓기 指導敎室》(김종상, 교육자료, 1977.4.1.)

《샘터 특별편집 : 自然食》(이문재, 샘터사, 1982.9.25.)

《글짓기 선생》(이주홍, 수문서관, 1978.)

《옷장 저쪽 나라》(C.S.루이스/이미림 옮김, 분도출판사, 1983.11.10.)

《尹伊桑, 삶과 음악의 세계》(루이제 린저/신교춘 옮김, 영학, 198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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