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 할아버지 (2021.5.11.)

― 서울 〈책방 진호〉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제가 좋아하는(취향) 책”을 살피지 않습니다. 책집에서 살펴서 읽고 장만하는 책은 “좋아하는 책도 싫어하는 책도 아닌, 그 책집에 있는 책”입니다. 언뜻 본다면 딱히 안 좋아하는 책을 왜 읽고 사느냐고 물을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이 푸른별(지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녁 살림자리에서 스스로 지은 사랑에 따라 쓴 책을 읽습니다. 이런 저한테 “그러면 그대는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하고 묻는 분이 많아요. 저는 “제가 쓴 책을 사랑하지요. 제가 읽을 글이란 제가 쓴 글이에요. 이웃님한테도 똑같이 말하지요. 이웃님이 사랑할 책은 이웃님이 손수 쓴 책이에요. 이웃님이 읽을 글은 바로 이웃님이 스스로 삶에서 지어낸 이야기로 쓴 글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는 제가 쓴 글을 사랑해서 읽듯, 이웃님은 이웃님이 쓴 글을 스스로 사랑해서 읽으면 됩니다. 이런 사랑은 책집에서 새삼스레 얽혀요. 스스로 사랑으로 지은 글을 담은 갖가지 책을 “어떤 삶이고 살림이며 사랑을 담았나” 하는 눈으로 들여다보고 헤아립니다. 책집은 다 다른 삶에서 다 다른 살림으로 지어 다 다른 사랑으로 쓴 책을 다 다른 지기가 다 다른 눈빛으로 갈무리한 이야기밭이라고 느껴요.


  노량진에는 〈책방 진호〉가 있어서 찾아갑니다. 이곳이 없다면 노량진에 걸음할 일이 없어요. 책집지기님은 까만머리 아저씨에서 흰머리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젊은날부터 책집지기로 곁에 책을 둔 손길은 하얀날(노년기)에 이르러 새삼스레 가다듬는 빛이 흐릅니다. 책손은 책집을 꾸준히 찾아가면서 새책을 즐거이 만나고, 책집지기는 책손이 사들이는 책을 헤아리면서 어느 갈래 어느 책이 글꾼(책손)한테 바라지하는가를 어림하고 배웁니다.


  책은 줄거리로만 읽지 않습니다. 책은 이야기로 읽고, 글빛으로 읽으며, 책낯으로 읽기도 하는데, 책에 깃든 손때로도 읽으며, 책을 찾는 책손 눈빛으로도 읽습니다. 책집지기라는 자리는 바로 이 눈빛을 흐뭇하게 누리면서 기쁘게 북돋아 책손하고 펴냄터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일 테지요.


  책손이 손에 쥐고서 눈을 반짝이더니 꼼짝않고 서러 아뭇소리도 안 들린다는 듯 한참 서면, 책집지기도 곁에서 매우 조용히 있습니다. 책손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가만히 보면서 “저 책은 어떤 숨결이 흐르기에 저토록 저이를 새빛으로 이끌까?” 하고 생각하지요. 책손은 “아, 이 빛나는 책을 알아차려서 건사한 손길이란 얼마나 눈부실까?” 하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릴케 短篇選 정의의 노래》(라이나 마리아나 릴케/조철 옮김, 문화공론사, 1977.12.1.)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생활》(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김철 옮김, 뿌리깊은나무, 1984.3.1.)

《가가와 도요히코》(스미야 미키오/김은숙 옮김, 보이스사, 2004.10.10.)

《中國民族性硏究》(項退結/홍인표 옮김, 을유문화사, 1975.12.10.)

《율리시이즈 1·2》(J.조이스/김종건 옮김, 정음사, 1968/1973.10.15.거듭)

《몽떼·크리스또 伯爵 1·2·3》(A.뒤마/오증자 옮김, 정음사, 1969/1974.4.15.거듭)

《쟝·끄리스또흐 1·2·3》(로망 롤랑/김창석 옮김, 정음사, 1969/)

《ねえさんといもうと》(シャ-ロット ゾロトウ 글·酒井駒子 옮기고 그림, あすなろ書房, 2019.4.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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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을 새로 연다 (2021.6.20.)

― 광주 〈산수책방 꽃이피다〉



  광주 산수마을에 책집이 새로 열었습니다. 여러 큰고장에 대면 광주에는 아직 마을책집이 적습니다. 오늘 바라보기에는 드문드문 있는 마을책집이라 할 텐데, 마을도 나라도 살림집도 거듭나는 길이니 찬찬히 움트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우리가 손수 집을 지어서 살았으나, 요새는 집장수가 우르르 뚝딱 올려세우는 집을 사들이는 흐름입니다. 큰고장이건 시골이건 살림집은 으레 손수 지었어요. 나무지기(목수)를 부르더라도 곁에서 함께 일하며 보금자리를 다스렸습니다. 제가 나고자란 인천에서도 동무네 집이건 고모네 집이건 다들 손수 지은 작은 ‘골목집’입니다.


  손수 집옷밥을 지어서 살림을 가꾸는 손길을 거의 잊거나 잃은 판이니, 마을책집이 드문드문 있을 만해요. 시골에서는 마을책집이 아예 없다시피 할 테고요. 조금만 똑똑하면 큰고장 열린배움터(대학교)로 보내려 하고, 덜 똑똑하면 큰고장 만듦터(공장)로 보내려 하는 시골이니, 이 시골에 마을책집이 제대로 서기란 서울이나 큰고장보다 훨씬 빠듯합니다.


  전라남도에서 살며 처음 보고 겪은 일이 숱합니다. 이를테면 “마을은 밑바닥이니 적어도 면소재지로 가라. 좀 돼면 읍내로 가라. 더 돼면 순천으로 가라. 더더 돼면 광주로 가라. 더욱 돼면 대전·부산·인천으로 가라. 잘 돼면 서울로 가라.” 하는 소리가 흔합니다. 다시 말해, 광주조차 둘레 다른 큰고장이나 서울을 바라보는 물결인 셈입니다.


  작은아이하고 금남로부터 걸어서 〈일신서림〉에 들릅니다. 저잣거리 곁에 있던 〈일신서림〉은 자리를 옮겨 토막책집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다리를 쉬고 새삼스레 걸어 〈산수책방 꽃이피다〉에 닿습니다. 마을쉼터 곁에 마을책집이 태어났군요. 더 살피면 이 책집 곁에 산수시장이 있습니다.


  저잣거리란 마을을 이룬 오랜 터전입니다. ‘가게’라고도 하지만, 우리말로는 수수하게 ‘집’입니다. ‘떡집·찻집·빵집·빨래집·신집·쌀집’처럼 ‘책집’이에요. 글바치는 예부터 이웃글(한문)을 높이 여겨 ‘책방·서림·서점·문고’처럼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저잣거리 숱한 집(가게)처럼 “책을 놓은 보금자리다운 아늑히 살림길을 여미는 슬기를 읽고 나눈다”는 마음으로 보면 ‘책집’이에요. 또는 ‘책숲·책밭·책터·책누리·책빛’입니다.


  한 모금을 머금고서 한 줄을 읽습니다. 두 모금을 마시고서 한 줄을 씁니다. 석 모금을 맞이하고서 빛꽃(사진)을 한 칸 남기고, 넉 모금을 홀짝이고서 이제 살림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해가 천천히 이웁니다.


《하프와 공작새》(장준영, 눌민, 2017.4.28.)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장영은, 민음사, 2020.3.8.)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김산들, 시공사, 2019.2.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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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0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을 책집
산수책방에 꽃이피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곳을 부러워하는데...
너무 예뻐요~♡

숲노래 2021-07-08 15:15   좋아요 1 | URL
서울에야말로 이쁜 마을책집이
곳곳에 많은걸요.
조금만 둘레를 보고 마을을 눈여겨보시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서울 마을책집을
날마다 1곳씩만 가더라도
한 해로는 도무지 다 다닐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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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걸으면 (2021.6.26.)

― 대전 〈우분투북스〉



우리는 어느 곳에서 살더라도 온눈(모두 보는 틔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부릉부릉 찻길을 메우는 소리가 가득한 곳에서는 부릉노래를 바탕으로 바라보고, 촤륵촤륵 빗소리가 넘실거리는 곳에서는 빗소리를 밑틀로 바라보며, 멧새 노랫소리나 벌나비 날갯짓소리가 가득한 곳에서는 멧새랑 벌나비가 베푸는 소리에 기대에 바라봅니다.


대전 지족산 곁에 있는 마을책집에 찾아간 다음에 열린배움터(대학교) 곁에 깃든 〈우분투북스〉로 찾아가려고 시내버스를 기다립니다. 서울 못지않게 부릉노래가 넘실거립니다. 버스에 타기 앞서도, 버스를 타고 달려도, 버스에서 내려 걸어도 부릉노래는 이 고장을 가득 채웁니다.


한여름에 땀내어 책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이 고장뿐 아니라 웬만한 고장은 부릉노래로 춤춥니다. 새도 벌나비도 풀꽃나무도 아닙니다. 비도 바람도 눈도 구름도 아닙니다. 그저 부릉부릉 시끌벅적하고, 갖은 틀(기계)이 부딪는 소리가 북새통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스스로 고요하거나 새롭게 소리를 키울 만할까요? 이러한 터에서 스스로 돌보거나 사랑하려면 무엇을 보거나 들을까요?


책집에 깃드니 자잘한 소리가 모두 사라집니다. 책집 골마루를 거닐며 바깥소리에 마음을 빼앗길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푸르게 마음을 가다듬고 파랗게 하늘을 품을 만합니다. 삶을 노래하는 책을 곁에 두기에 마음도 몸도 싱그러이 달래거나 다스리는구나 싶습니다.


책집에서 다리도 마음도 포근히 쉬고서 바깥으로 나오면 새삼스레 갖가지 자잘한 소리가 춤춥니다. 우리는 이 온갖 소리에 잡아먹힐 수 있고, 잡아먹히기 싫어 스스로 부릉이(자동차)를 건사할 수 있고, 부릉이를 아랑곳않고 스스로 살림빛으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거리를 걸을 적마다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골뿐 아니라 큰고장 어디에서나 나무가 우거지기를 바랍니다. 마을마다 조촐히 책집이 깃들어 다리도 마음도 눈도 쉴 만하기를 바랍니다. 열린배움터 젊은이가 틈틈이 책집마실을 하면서 푸른넋으로 나아가도록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손쉽게 읽을 책이 아닌, 가리고 살피고 추려서 읽을 책입니다. 값싸게 사들일 책이 아닌, 제값을 치러서 누리고 나누고 노래할 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저마다 아름다우니 이 빛을 펴고 맞아들일 노릇이거든요. 아름살이로 나아가는 아름손길로 아름책을 곁에 둔다면 우리 삶자리는 모두 아름터가 되리라 생각해요.


ㅅㄴㄹ





























《숲에서 한나절》(남영화, 남해의봄날, 2020.9.15.)

《대마와 대마초》(노의현, 소동, 2021.1.1.)

《충실한 정원사》(클라리사 에스테스/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11.15.)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이병철, 천년의상상, 2021.5.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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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1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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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그림 (2021.5.12.)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우리나라에 풀꽃두레(환경단체)가 제법 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시골이라는 터전에서 숲을 품고 들에서 일하며 바다에서 놀던 무렵에는 따로 풀꽃두레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풀님이요 꽃님이자 숲님이고 들님에 바다님이면서 멧님이었거든요.


  시골을 밀어내어 서울을 넓히면서 풀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자랍니다. 숲을 망가뜨리거나 바다를 더럽히는 일이 늘어나면서 풀빛으로 몸을 물들이는 사람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풀꽃두레는 시골 아닌 서울에 터를 두고 뿌리를 뻗습니다. 시골에서 싹트는 풀꽃두레가 없다시피 해요. 이러다 보니 풀꽃두레는 시골살이나 시골빛을 오히려 모르거나 등집니다. 옛 벼슬꾼뿐 아니라 새 벼슬꾼도 숲들바다를 짓뭉개지만 정작 아무런 목소리가 없고, 오히려 “멧자락 햇볕판”하고 “바다 바람날개(해상 풍력발전)”를 나라가 함박돈으로 밀어붙이도록 이바지합니다.


  서울 하늬녘에는 마을책집 세 곳 〈꽃 피는 책〉하고 〈호수책장〉하고 〈나무 곁에 서서〉가 이웃입니다. 세 곳은 들빛하고 물빛하고 멧빛으로 어우러지면서 다른 숨결입니다. 목소리로만 읊다가 빛바랜 적잖은 풀꽃두레와 달리, 이 마을책집 지기님이 일구는 ‘숲보’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걸어가는 푸른물결이라고 느낍니다.


  숲을 품고 노래하는 사람이 읽는 책은 숲책이 바탕일 테지만, 이보다는 언제나 하늘이요 해요 별이며 빗물이고 구름이자 바다이고 들녘에 풀벌레하고 새입니다. 굳이 종이에 얹은 풀책(식물도감)을 펴야 풀을 알 수 있지 않아요. 스스로 풀을 바라보고 훑고 혀에 얹고 씨앗을 받고 꽃을 누리면 저마다 다르면서 즐거이 풀을 익히고 사랑하는 길로 갑니다. 누가 붙인 이름을 외워야 새를 아끼지 않아요. 우리 나름대로 새를 지켜보고 동무하면서 새롭게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해는 어디에나 드리웁니다. 별은 어디에나 돋습니다. 마음을 뜬다면 해님을 맞아들이면서 해맑게 빛나는 몸으로 거듭납니다. 눈을 틔운다면 별빛을 받아들이면서 환하게 춤추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곁에 흐르는 바람을 느껴요. 곁에 곱살곱살 바람이 흐르도록 다독여요. 둘레에 피고 지는 꽃을 봐요. 마을에 송이송이 꽃이 피고 지도록 손길을 뻗어요. 사람이 심어서 자라는 풀꽃나무는 한 줌조차 안 됩니다. 풀벌레하고 새하고 짐승하고 비바람하고 해님에 별님이 심고 돌보는 풀꽃나무가 한가득입니다. 어린이하고 조그맣게 숲을 속삭입니다. 푸름이하고 새록새록 멧길을 맨발로 나들이합니다.


ㅅㄴㄹ


《철새, 생명의 날갯짓》(스즈키 마모루/김황 옮김, 천개의바람, 2018.10.26.)

《문장부호》(난주, 고래뱃속, 2016.11.21.)

《햇볕이 아깝잖아요》(야마자키 나오코라/정인영 옮김, 샘터, 2020.3.20.)

《소를 생각한다》(존 코널/노승영 옮김, 쌤앤파커스, 2019.12.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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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곁에서 (2021.4.24.)

― 구미 〈책봄〉



  여름에 여름꽃이 가득합니다. 꽃은 늘 핍니다. 가을에 가을꽃이 곳곳에 흐드러집니다. 겨울에 겨울꽃이 있고, 봄에 새롭게 봄꽃이 있어요.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을 만납니다. 시골에서도, 멧골이나 숲에서도,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다 다르게 스스로 빛나는 꽃을 보고서 다갑니다.


  모든 푸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잎도 다 다른 때에 돋아요. 차근차근 돌아가면서 푸르게 빛나는 풀꽃나무이듯, 우리 곁에 있는 책도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살림을 지으면서 다 다르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다 다르게 엮은 이야기로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이 다 다른 책을 건사하는 책집까지 다 달라요.


  모든 책집이 똑같이 생긴다면 메마릅니다. 다 다른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힌다면 끔찍합니다. 길들이기잖아요.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책집인데 똑같은 책만 다룬다면 나눔길이 아닌 굴레나 쳇바퀴일 테지요. 구미를 사랑하는 〈책봄〉은 책으로 봄꽃이 되고, 책을 보는 우리 눈빛을 꽃내음으로 북돋우지 싶어요.


  여러 고장을 돌고돌아 책집 앞에까지 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들여다보고서 느긋하게 들어섭니다. 고흥에서도 보는 꽃이요 서울에서도 만나는 꽃이지만, 책집 앞에서 만나는 꽃은 바로 오늘 여기에서 새롭게 만나는 숨빛입니다.


  요새는 집을 높다라니 짓고서 부릉이(자동차)를 둘 자리를 넓게 마련하는데, 부릉이한테는 귀퉁이를 조금만 떼어주고서 빈터하고 풀밭하고 숲정이한테 넓게 내어주면 좋겠어요. 땅바닥이라 할 1층에는 차댐터를 못 두게 하고 모조리 풀꽃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봄꽃이 있으면 종이책은 없어도 되더군요. 여름꽃이 있으면 글을 안 써도 넉넉하더군요. 가을꽃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즐겁고, 겨울꽃이 있으면 배움터란 부질없어요. 들풀과 들꽃과 나무와 새와 풀벌레를 저마다 온(100) 가지씩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마을하고 보금자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푸짐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서 풀꽃나무에 새에 풀벌레가 모조리 터를 빼앗기면서 우리가 저마다 즐거이 짓던 이야기가 갇히거나 사라질는지 몰라요.


  동그란 책상에 앉아서 창밖 햇빛을 바라봅니다. 햇볕을 듬뿍 머금는 노란꽃을 지켜봅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도 책집 앞 들꽃을 보면서 웃어요. 어른들은 너무 빨리 걷느라 꽃을 더 보고 싶은 아이를 자꾸 잡아끌지만, 문득 멈춰 봐요. 들꽃을 같이 보고서 책집에 나란히 들어와 봐요. 봄내음이 물씬 흘러요. 부릉이를 달포나 몇 해쯤 멈춰 볼까요? 두 다리로 사뿐히 걸어서 책집에 찾아가 봐요.


ㅅㄴㄹ


《이해받지 못할 글들의 조그만 어휘집》(유경, 유영, 2020.11.20.)

《결혼 탈출》(맹장미, 봄알람, 2021.3.29.)

《여우 달리기》(방새미, 2018.10.22.)

《Here's Your Spring》(책봄, 20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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